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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0-25 22:58:21

선진시대

중국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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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夏) 상(商) 주(周)
춘추시대 전국시대
先秦時代(先秦时代)

1. 개요2. 상세3. 역사4. 특징
4.1. 문화4.2. 문자

1. 개요

중국사에서 진나라 중국 통일 이전의 시기를 통틀어 일컫는 것으로, 중국 문명이 발생한 이래 하(夏), 상(商), 주(周)의 3개 왕조와 춘추전국시대까지를 포함한다. 상고시대(上古時代), 혹은 하상주시대(夏商周時代)라고도 하고, 하나라를 인정하지 않는 쪽에서는 상주시대(商周時代)라고 하기도 한다.

기원전 21세기부터 진시황이 천하를 통일한 기원전 221년까지이므로 약 1800년이라는 엄청난 기간이 선진시대에 포함된다. 다만 중국 최초의 국가가 하나라인지, 상나라인지도 논란이 있고, 실체가 확인된 상나라도 건국 연대가 불분명하여 정확히 몇 년 동안의 기간이라고 말하기는 힘들다.

2. 상세

하상주단대공정에 의하면 하나라는 기원전 2070년, 상나라는 기원전 1600년, 주나라는 기원전 1046년에 건국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하상주단대공정 자체가 논란이 많은 학설이라 정확한 것은 아니다.

본래는 실체가 확인된 주나라부터를 중국사의 시작으로 보았고, 하와 상은 전설 정도로 여겨졌지만, 은허 유적이 발굴되면서 상나라의 실체가 확인된 이래 상나라부터를 중국사의 시작으로 보고 있다. 일각에서는 얼리터우가 하의 유적이 아니냐는 학설을 제기하고 있으나, 결정적인 근거는 아직까지는 드러난 바 없다.

이 시대는 통일된 왕조가 중국을 통치하는 모습이 아니라, 중국 곳곳에 성읍국가가 있었던 것으로 추정한다. 하나라와 상나라는 그 중 하나였고, 제일 세력이 큰 부족이었던 것이다.

실제로 상나라가 있을 때도 다른 곳에 주나라가 공존하고 있었다. 주의 건국연대라는 기원전 1046년은 주 무왕이 상나라의 왕이었던 제신을 치고 상나라를 멸망시키면서 중원의 맹주가 되었던 때이다. 진나라 이전이라는 뜻의 선진시대라는 말이 무색하게 진나라가 이미 선진시대에도 주나라의 제후국으로서 존재하고는 있었지만 진시황 천하를 통일한 이후를 진한시대(秦漢時代)로 따로 분류하는 것도 그런 이유이다.

비슷하게 중국사에서는 수도가 다른 국가에 함락되는 때를 기점으로 시대를 구분하는데, 예컨대 명나라가 멸망하기 전에도 청나라는 이미 만주에서존재했지만, 중국인들이 청대(淸代)라고 부르는 건 청이 당시 수도였던 베이징을 점령했을 때부터이다.

3. 역사

4. 특징

선진시대는 대체로 청동기 시대이다. 상나라 유물 중에 철제 도끼가 발견되기는 했지만 그건 극소수고, 철기가 나타나기 시작하는 건 기원전 6세기 춘추시대이다. 그리고 전국시대에 철기가 널리 보급되고 아예 철기가 보편화되는 건 진한시대이다.

하나의 중국 관념 때문에 상나라 주나라를 하나의 나라처럼 생각하고, 춘추전국시대는 하나였던 주나라가 여러 국가로 분열된 것으로 이야기되는 경우가 많으나, 실제로는 이 두 나라는 가장 영향력이 강한 국가였을 뿐 이들이 모든 영역을 지배했던 것은 아니며 군소 국가들이 많이 존재했다. 춘추전국시대의 강남 지역 제후국들은 주나라에서 갈라져 나왔다기보다는, 원래 황하 문명의 주역인 한족(漢族)과는 거리가 멀었던 그 지역의 토착 세력들이 주나라의 영향권 안에 들어간 것에 가깝다. 그리고 이들이 중화라는 관념 아래 통합되기 시작하는 것은 진한시대부터다.

4.1. 문화

춘추전국시대 제자백가가 나오면서 동아시아 전통 학문의 토대가 마련되었다.

조상에 대한 제사 유교가 생기기도 전인 상나라 때 처음 생겼다. 이 당시에는 왕실에서만 제사를 지냈는데, 선대 왕들을 기리는 행사를 지냄으로써 왕의 정통성을 공고히 하고, 왕권의 강화를 꾀한 것이다. 이후 유력 가문들도 가문의 세를 과시하려는 목적으로 제사를 지내기 시작했다.

유교가 보급된 후로부터 제사는 유교적 의례가 많이 도입되었고, 효를 실천하는 목적으로 지내게 되었지만, 이건 나중에 가서 의미를 덧붙인 것이고, 제사의 원래 목적은 따로 있었던 것이다.

4.2. 문자

이 시대에 한자가 처음 탄생했다. 처음의 한자는 상형문자 수준이었다. 그리고 기원전 13세기에 이르면 거북이 등껍질에다가 글자를 새긴 갑골문이 탄생하며 한자는 상형문자에서 벗어나 전서(篆書)의 초기 형태가 성립된다.

서주시대에는 청동기에 글자를 새긴 금문이 많이 쓰였다. 이 금문 춘추전국시대에도 많이 쓰였는데, 이때 쓰던 서체를 대전체(大篆體)라고 한다. 다만 이 시기에도 목간은 있었다.

이때만 해도 한자는 지역마다 같은 뜻이라도 글자 모양이 다 달랐다. 그러나 진시황이 중국을 통일한 이후 지역마다 제각각이던 자형이 소전체(小篆體)라는 조금 더 간단한 형태로 발전한다.

전서의 특징은 얇고 구불구불한 것이 특징이다. 종이가 발명되지 않았으므로 돌이나 청동기에다가 글자를 새겨야 했는데, 붓도 아직 발명이 안 된 시기지만, 붓이 있었다 해도 딱딱한 물건에다가 글자를 쓰면 지워질 수밖에 없다. 그래서 같은 걸로 글자를 새겼기 때문에 글자의 모양이 그렇게 생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