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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0-11 16:00:43

옹정제(옹정황제의 여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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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800000><colcolor=#ffd700> 后宮甄嬛传 등장인물
옹정제
파일:견환전_황제.jpg
이름 애신각라 윤진 (愛新覺羅 胤禛)
배우 진건빈
민족 만주족
생일 음력 1678년 3월 18일[1]
거주지 양심전(養心殿)[2]
원명원에서는 구주청안.
가족관계 아버지: 강희제
어머니: 태후
동생: 항친왕, 돈친왕, 과군왕, 신패륵 등
아내: 순원황후, 오라나랍 의수
자녀 : 홍시, 홍력, 홍주, 온의공주, 롱월공주, 영서공주[3], 홍염[4], 정화공주[5]
품계 황자 친왕 황제
4황자
옹친왕
황제

1. 개요2. 상세3. 작중 행적4. 원작에서5. 후궁들과의 관계6.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7. 평가
7.1. 동정론7.2. 반론7.3. 재평가?
8. 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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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파일:attachment/옹정제(후궁견환전)/zhenhuanhehuangdi.jpg

드라마 옹정황제의 여인의 등장인물.

소설 《후궁견환전》의 등장인물 현릉과 실존 인물 옹정제를 모티브로 한 캐릭터이다.

2. 상세

강희제의 4황자이자 즉위 이전에는 옹친왕. 강희제 사후 황제가 되었다.

다른 황자들과 치열하게 정쟁을 벌여가며 가까스로 제위에 올라, 의 반석을 다지기 위해 각고의 노력을 기울인다. 본인은 훌륭한 황제가 되고 싶어하지만 공신들의 전횡과 관리들의 부정부패로 고심하고 있었다. 아파서 드러누웠을 때조차 상소문을 읽을 정도로 정무에 열중한다. 그러나 그 마음의 본질은 끝없는 권력욕으로,[6] 황제의 위신에 흠집을 내는 것은 어떤 것도 용서하지 않는다.

태후가 위독했을 때 나눈 대화를 보면 다소 부당한 방식으로 제위에 올랐던 것 같다.[7] 게다가 10황자 윤아 등 반대 세력들이 남아 있었기 때문에 권력과 위신에 예민하게 구는 것으로 보인다.

똑같이 혈육을 제치고 제위에 올라서 지탄받았으나 정관지치를 이루어 후대에 명군으로 평가받는 당태종 이세민처럼 되고싶어 하는듯 하다. 당태종이 어떻게 대평성대를 이뤘냐는 질문에 3황자 홍시가 제대로 답변을 못하자 몹시 화내는 모습을 보였다. 단순히 장자가 학업을 게을리 한다는 이유만은 아닌듯.

다만 꽤나 가정적인 면모도 존재하는데, 친왕 시절에 적복진이었으나 난산으로 숨을 거둔 순원황후를 지금까지 그리워하는 순정남의 면모도 조금은 보인다.

그러나 작가는 진건빈, 정효룡 감독과 나온 토크쇼에서 "한창일 때 죽어서 그렇지 순원이 계속 살아있었다면 얼마 못 가 질렸을 거"라고 말했다.[8]

이 점은 황후도 "신첩은 언니를 죽인 것을 후회합니다. 언니가 늙어가는 모습을 보셨더라면 이렇게까지 신첩을 미워하시지는 않으셨을 텐데..." 하는 식으로 쏘아붙이며 지적했다.[9] 황제는 당연스레 순원은 마음씨가 고우니까 나이 먹어도 아름다웠을 거라고 반박하지만, 설령 그렇다고 해도 황제의 사랑이 변함 없을 거라고는 독자도 작가도 믿지 않는다. 결국 공식적으로 순원이 젊고 이쁠 때 죽어서 신물나지 않고 여전히 좋아라 하는 것뿐, 순원이 살아있어서 황후만큼 늙었다면 신물났을 것이라는 말은 확실시되었다.

실제로 옹정황제의 여인(원작) 티에바에 '주유칙이 죽지 않고 늙어버렸다면 현릉은 그를 여전히 사랑했을까?' 라는 게시물이 올라왔는데 모두 사랑하지 않았을 거라 대답했다. 그러니까 순원황후도 의수 나잇대쯤만 가도 총애를 잃어버리고 쓸쓸하게 황후 일을 하고 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이후 후속작인 여의전이 나오면서 순원이 살아 있었다면 홍력 여의처럼 서로 질려버리고 비극적인 결말이 됐을 것이라는 의견이 많다.

그가 보이는 약간의 순정은 죽은 사람을 위한 것일 뿐, 살아있는 후궁들에게는 냉혹한 황제의 모습을 보여준다. 대부분 정치적인 이유로 총애하고 골고루 이용하며 쓸모가 없어지면 버리고,[10] 그런 식으로 자신의 황권을 강화시키려 한다. 게다가 의심의 왕으로, 조금만 이상한 낌새를 집요하게 의심하며 이는 후궁, 형제, 아들, 신하 등등 모두에게 해당된다. 그리고 이 의심병의 대상이 된 사람은 대부분 죽음을 피해갈 수 없다. 그래서인지 실제 역사와 별개로 드라마 속의 옹정제는 헨리 8세, 조선의 숙종과 비슷한 면이 있다는 반응도 나온다.

3. 작중 행적

화비가 1부 최종 보스, 황후가 2부 최종 보스라면 황제는 히든 보스이자 작중 가장 직접적인 비극의 주축이다.

그가 즉위하고 공신들을 책봉하는 것으로 드라마가 시작된다. 혼란스러운 천하를 다스리느라 경사방에서 패를 올려도 거들떠도 안 보고 후궁들을 신경쓰지 않을 정도로 정무에 힘쓰고 있었으나, 선황은 아들만 24명이었는데 지금의 황상은 3황자 홍시 4황자 홍력, 5황자 홍주 외에는 없다며 황손을 늘리기 위해서는 후궁도 늘려야 한다는 태후의 채근으로 수녀간택을 하기로 한다. 대신 3년에 한 번 수녀간택을 하였던 부친 강희제와 달리 이번 한 번으로 끝내겠다고 못을 박는다.

수녀간택 때에도 의욕없는 티를 팍팍 내면서 적당히 고르고 있었으나[11] 순원황후를 닮은, 솔직하고 총명한 견환을 눈 여겨 보게 되고 그를 후궁으로 간택한다.

우연한 기회에 몸을 숨기며 황제와의 시침을 피하던 견환을 만나게 되고, 그를 알아보기 위해 윤례로 위장한다. 총명한 견환은 나이가 다르다며 당연히 의심했지만 황제는 노안 드립을 쳤다. 그러나 여답응의 난입으로 이내 정체가 밝혀지고 그와 첫날밤을 보내게 되는데, 자신과 백년해로를 바라는 견환의 착한 마음씨에 감동하여 온갖 특권[12]을 주고 견환을 총애한다. 그러나 견환은 그 총애로 인하여 화비의 견제를 받아 위험에 처하고 결국 아이를 유산하게 된다.

화비를 통제하지 못하고, 심지어 벌하지도 못하는[13] 황제에게 실망한 견환은 그를 거부하고, 황제도 상처주는 것이 괴로워 견환을 멀리하는 나날이 한동안 이어진다. 하지만 결국 자신이 황제를 사랑하는 것을 알게 된 견환[14] 은 전략적인 미색 & 나비 사용[15]으로 황제의 총애를 되찾는다.

황제는 견환을 다시 총애하게 된 이후로 권신 연갱요와 돈친왕 윤아의 처리를 위하여 견환과 견환의 아버지를 이용한다. 견환과 견원도의 도움으로 연갱요와 돈친왕 윤아는 숙청되고, 연갱요의 누이이자 자신이 총애했던 화비 또한 직위를 박탈하고 냉궁에 감금시켰다가 사사한다.[16]

그러나 목적이 달성된 후에 견원도 토사구팽 당하고,[17] 견환 순원황후의 대례복을 감히 입었다고 오해하여 그녀 또한 쇄옥헌에 연금시킨다. 견환이 롱월공주 출산한 후에는 견환을 용서하려 하지만,[18] 오히려 자신이 대역이었다는 진실을 안 견환이 황제를 거부하고 떠나려 하자 아무래도 견환을 영영 안 보는 건 쉬이 받아들이기 어려웠는지 아닌 척 두어 차례 만류를 했다. 견환의 마음이 확고하다고 느껴지자 "감로사까지 가지 않고 보화전에서 기도해도 좋다"고 그답지 않게 애둘러 회유까지 했지만, 견환이 이조차 거절하고 출궁하겠다는 의사를 확고히 밝히자 더 이상 막지 않고 견환을 폐비시켜 감로사로 보내버렸다.[19]

견환이 감로사에 떠나 있는 동안에는 견환이라는 이름을 언급한 궁녀를 죽이고 경비에게도 화를 낼 정도로 견환은 일종의 금기가 되지만, 이는 그가 그만큼 견환을 그리워한다는 반증이었다. 실제로 롱월공주의 돌잔치가 파한 뒤 무지불식간에 텅 빈 쇄옥헌에 들리거나, 무심코 경비에게 견환과 처음 만났을 때의 추억을 이야기하거나, 와병했을 당시 헛소리로 소배성 윤례 앞에서 환환을 불렀다.

그러던 중 윤례의 복수를 하고 아이를 지키려는 견환의 술수에 낚여서 감로사에 행차하였다. 그 후 견환의 안부를 물었는데 병이 나 능운봉에서 기거하는 데다 빨래와 청소를 하는 등 고초를 겪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눈이 뒤집혀서 능운봉으로 달려가 견환을 다시 만나게 된다. 그때까지의 그리움과 견환에 대한 책망[20]을 토로하고, 그 뒤로도 태후의 완쾌를 빈다는 명목으로 감로사에 드나들다가 견환이 자신의 아이를 가진 줄 알고[21] 몹시 기뻐하면서 다시 견환을 환궁시키는데, 구설에 휘말리는 것을 피하기 위해 견환에게 뉴호록 씨를 하사하고 희비로 봉한 후 태후의 권유로 4황자 홍력의 친모로 신분을 세탁해 버린다.

이후 견환 온실초와 사통했다는 기귀인의 모함을 받았을 때 처음에는 견환을 의심했다가 진실이 밝혀진 후에는 견환을 신임하고 총애하며, 결국 자신의 손으로 견환의 적이었던 기귀인 안릉용, 황후를 사사 또는 연금해 버린다.

그러나 마격 칸이 경성을 방문하면서 윤례와 견환의 사이를 의심하게 되고, 마격 칸의 요구를 들어 견환을 준가르로 보내는 척 하면서 윤례가 덫에 결려들자 윤례를 변경에 보내버린다. 변경에 보낸 것으로도 모자라 윤례를 경성에 불러 견환의 손으로 죽이게 한다. 황제는 윤례의 죽음에 견환이 크게 상심했다는 것을 안 후 견환에 대한 의심을 끝까지 거두지 못한다.

모친의 최후의 소원도 매몰차게 뿌리치고,[22] 가장 믿고 가까이 하던 동생도 죽이고,[23], 그를 사랑했던 여성들을 내버리고 그가 사랑했던 여인도 믿지 못하게 된 일련의 사건이 아무래도 정신적 타격을 입혔는지, 그 후로는 주색에 빠지고 장수에 집착하며 망가진 모습을 보인다. 그래도 권력욕은 여전한지 정무만큼은 손 놓지 않는다.[24]

우연히 견환이 낳은 6황자 홍염과 윤례의 아들 원철이 매우 닮았다는 것을 알고 친자 확인을 해보려고 하지만, 장수를 위해 먹던 단약의 부작용[25]으로 쇠약해져서 결국 쓰러지고 견환과 녕빈에 의해 독살 당한다.

마지막에 견환과 단둘이 남겨진 그는 견환과 마지막으로 진솔하게 대화를 나눈다. 자신을 애칭이었던 4랑으로 불러달라고 견환에게 부탁하지만, 환궁할 때 그가 보여준 절절한 그리움과 사랑의 고백 때문에 조금이나마 사랑의 감정을 되살리는 것처럼 보였던 견환[26]은 옹정제의 계속되는 의심과 비정함, 무엇보다 윤례를 자신의 손으로 죽이게 만든 증오만이 남아 그에게 매몰차게 대한다.

결국 심미장이 낳은 정화공주가 사실은 온실초와의 사통으로 생긴 아이라는 사실과 견환 또한 윤례와 사통하는 사이였다는 것을 알려주면서 황제의 가슴에 대못을 때려박아버린다. 이를 듣고 배신감과 분노 등으로 눈도 감지 못한채 생을 마감하고, 견환이 천천히 그의 눈을 감겨준다.

이 마지막 장면은 언제나 모든 것을 자신이 원하는 대로 막후에서 조종했다고 믿었던 그가 마지막에는 아이러니하게 견환의 손바닥 위에서 움직였다는 것을 알고 난 후의 좌절감과, 견환에게 배신 당한 배신감 등등이 뒤섞인, 그도 역시 한 명의 인간이었던 옹정제를 잘 표현한 것이라 할 수 있다.

4. 원작에서

파일:견환전 서화열.현릉.jpg
이름은 현릉(玄凌), 묘호는 헌종(宪宗), 연호는 건원(乾元)이다.

5. 후궁들과의 관계

황제에게 있어서 견환 순원황후의 대역이라 믿었지만 결국 자신의 또 다른 사랑이었다.[35] 황제는 견환을 순원 대신이라 여겼기에 순원의 애칭인 '완완(宛宛)'을 따서 완 봉호를 내려주고 견환을 '환환'이라고 불렀었다. 그리고 꿈 속에서 견환 대신 완완을 찾던 황제는 견환이 감로사로 떠난 이후 환환을 부르며 그녀를 찾게 된다.

또한 순원의 대례복을 입은 일로 견환이 해명할 틈도 없이 내친 뒤 관계가 한 번 파탄났음에도 불구하고 견환이 떠난 쇄옥헌을 들여다보거나, 그의 생일을 잊기 위해 무리해서 일하다가 안릉용의 처소에서 실신해 중병에 걸리기도 한다. 안릉용을 탐탁지 않게 생각하던 태후도, 쓰러진 날이 견환 생일이었다는 걸 알게 되자 안릉용의 책임이 아니라고 결론을 내렸다.

시와 역사는 물론이고 정치와 인간 관계에 이르기까지 모든 면에서 그와 화제를 나눌 수 있고 마음이 맞던 견환이야말로 진정으로 속내를 나눌 수 있는 여인이었으나, 오로지 자신의 집착과 이기심과 의심으로 그 관계를 망쳤다. 황제는 순원을 유일한 아내라 말했지만 서로 쓴맛, 단맛 다 맛 본 사이라는 점에선 견환과 더 부부 같은 관계이다. 황제는 대놓고 "견환은 자기에게 가장 중요한 여인이다."[36] 라고 말할 정도.

그 다음은 오라나랍 의수. 부부는 닮는다더니 이 둘은 굉장히 많이 닮았다. 황후가 자기 남자의 마음을 홀린 자기 언니에게 열등감을 느끼다 못해 언니를 죽인 것을 듣고는 황후를 굉장히 증오하게 되지만, 결국 황제도 황후와 별로 다를 바 없다. 황제 역시 자기 여자의 마음을 홀린 자기 동생에 열등감을 드러내다 못해 그를 죽여버렸다.

여자 취향이 분명히 갈리는데 총명하고 재기 있는 타입[37], 머리는 비고 예쁘고 그 제멋대로인 면이 오히려 매력적인 타입[38], 얼굴은 별로여도 얌전한 현모양처 타입[39][40] 으로 나뉜다. 후반으로 가면 예쁘다 싶으면 다 건드리기 때문에 별 의미는 없다. 심지어 "궁정 여자들은 다 고만고만하고 똑같아, 왜 다 똑같을까..."라는 소리를 내뱉기도 한다. 이 막말을 들어준 게 다름 아닌 소배성이다!

왕부 때부터 자신의 지위와 성격을 두려워하는 여자들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는데, 화비는 이런 와중에 거침 없이 굴어서 더욱 총애를 얻은 듯하다. 실제로 후궁에 들어온 견환을 처음 만났을 때도 아첨하고 두려워할 것을 저어해서 윤례를 사칭했다. 나아가 거침 없이 말을 모는 섭란의를 눈 여겨 보곤 후궁으로 들인다. 게다가 섭란의의 태도가 워낙 냉랭한 탓에 신선하게 여기면서 총애를 했다.[41] 그런 주제에 또 너무 입 바른 말 하면 기가 세다고 싫어한다. 다만 단비처럼 평소에 과묵하게 나오다가 직언을 하는 경우에는 예외로 쳐주는 편. 물론 황제가 단비에게 미안한 감정이 남아있기 때문에 그런 것이다. 단비는 화비가 유산했을 때 황제와 태후에 의해 화비를 유산 시킨 누명을 덮어쓰고, 화비 때문에 불임이 됐기 때문이다.

그래도 여자는 기본적으로 머리가 좋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듯하다. 심미장을 간택할 때 그의 청초한 외모를 마음에 들어하면서도 심미장이 책을 안 읽었다고 하자 표정이 팍 썩었고, 이후 윤례와의 대화에서 여자는 아무리 예뻐도 머리가 비면 즐겁지 않았다고 했다.[42]

굉장히 세련되고 세심한 면이 있어 감각이 뛰어나다. 밤중에 언뜻 보고도 화장법을 눈치 챌 정도로 매의 눈을 지닌 데다가 "짐이 사랑하는 여인을 아껴주겠다는데 남들이 무슨 상관이지?", "가을에는 둘이서 술을 담그고, 겨울이 되어 눈꽃이 날리면 짐은 너와 너는 짐과 함께 할 것이다." 등등 여심을 공략하는 로맨틱한 대사도 잘 친다. 후궁들의 결혼기념일[43], 생일[44], 혼수[45], 자신이 준 선물[46], 특별한 추억 등등도 다 기억하고 있다. 이런 점 때문에 그를 진심으로 사랑하는 여인도 몇 있었다. 물론 특별히 총애하거나 이용 가치가 있는 후궁 한정이다. 딱히 관심 없는 후궁에게는 한없이 무심하고 냉정하다.

뿐만 아니라 정치적인 이유로 후궁들을 마음 아프게 한 일이 굉장히 많다. 영귀인의 경우 홍시가 러브레터를 보내자 홍시를 보호하기 위해 펑펑 울면서 억울하다고 외치는 영귀인에게 바로 자살을 하라고 명령했고, 화비 연갱요를 경계해서 환의향에 당문자(사향)를 끼얹어서 불임으로 만들어 놓았으며, 이 과정에서 경빈 여빈(원작 한정)을 불임으로 만든 건 덤이었고, 화비의 유산 책임을 또 단비가 뒤집어쓰는 것을 묵인하고 단비까지 불임으로 만들어 놓았다.

또한 병권을 장악한 연갱요의 눈치를 보느라 화비의 안하무인 짓을 내버려둬서 간접적인 피해를 받은 후궁들이 꽤 있다. 심미장[47], 견환[48], 조귀인[49] 등등 외에도 굉장히 많다. 이렇다 보니 대다수의 후궁들이 화비를 공공의 적으로 여기는데, 황제는 오랜 시간이 걸려서야 화비를 처리해버렸다.

정치적인 이유를 배제하고 봐도 후궁들에게 좋았냐고 하면 그것도 아니다. 후궁들의 마음에 스크래치 잔뜩 내놓고는 정작 자신이 심하다는 생각을 안 하기 때문이다. 즉 굉장히 이기적이고 편협한 사랑법을 하고 있으나 자신은 전혀 지각이 없는, 연애할 때 아주 위험한 타입이다.

그 성향은 심미장을 유폐, 감금시켜 놓을 때와 견환을 쇄옥헌에 유폐, 감금시켜 놓은 후에 심미장과 견환이 냉랭해지자 그 둘에게 각각했던 얘기가 뭐냐면 "짐이 그때 일은 미안하긴 한데 너도 너무 성격이 센 게 아니냐?" 라면서 흉을 볼 때 아주 절정점을 찍는다. 물론 미안한 기색을 드러내는 경우도 있지만 아주 잠깐 그럴 뿐이다. 무엇보다도 황제의 체면이 있어서인지 절대 잘못한 당사자 앞에서 자기 입으로 사과하지 않고, 태후 앞에서나 소자의 잘못이라고 하고 탄식을 할 뿐이다. 특히 미장에게는 "내가 널 힘들게 했다는 걸 안다. 그러나 난 황제이다! 그리고 나도 힘들다!"라는 말도 했다.

게다가 70화에서 드러난 사실인데, 황후가 현모양처가 아니고, 내명부가 개판이며 여러 계략과 음모술수가 횡행한다는 사실을 황제는 이미 전부 알고 있었다! 물증은 없지만 심증은 있었던 것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증거를 찾지 않고 방치한 이유는 귀찮기도 하고 순원에 대한 정 때문에 그대로 놔두었다.

즉, 황제는 이미 죽은 사람 하나 때문에 완전 개판이 나버린 내명부를 방치해두었고, 그 결과로서 열 손가락으로 세기 힘든 후궁[50]들이 죽어나갔으며, 그 황후 손에 죽어간 황손들도 많다. 결국 황후 하나 살리자고 자기 자식들을 죽인 셈. 그마저도 황후(의수)가 순원황후를 죽인 것을 알자 그제서야 처벌을 했을 정도다.

그렇기 때문에 드라마를 보는 사람들 중 열에 일곱은 황제를 욕한다. 심지어 촬영 현장에서 옹정제 역의 배우가 후궁 역의 배우들로부터 왕따였다고 배우들이 직접 언급한다.

후궁들을 사랑하지 않았다. 예를 들어 혜비 심미장은 태도를 바꿔 다시 총애를 받고 회임을 해 그 총애가 절정을 달리는 순간 딱 그때 죽는 바람에 엄청난 애도를 받았다. 더군다나 자신의 아이를 낳다가 사망했으니[51] 더욱 애통했는지 심미장의 장례가 치러지는 동안 다른 후궁들에게도 가지 않았다고 한다. 안릉용이 직접 "폐하께서는 다른 후궁들에게도 가시지 않는다... 혜비를 애도하시는 중이니까."라고 말할 정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안릉용은 코웃음 치며 "걱정 마라. 내가 잘 아는데 곧 괜찮아지실 것이다." 라고 말했는데, 정말로 금방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괜찮아졌다. 그 정도로 아무리 사랑한 사람이라도 순원황후를 투영해 사랑하거나 그냥 애완동물 정도로 예뻐하거나 한 정도이다.

전자, 즉 순원황후의 대역으로 들어온 견환, 안릉용, 여답응은 말할 것도 없고, 원작에선 심지어 견환이 출궁하자 견환의 대역까지 들인다. 어쩌면 섭란의도 드센 성격이 견환을 떠올리게 해서 총애한 걸 수도 있다. 섭란의를 후궁으로 들였을 때는 황제가 한창 견환을 그리워 했을 때였다. 후자인 애완동물은 안릉용이 "전 황제 폐하의 꾀꼬리일 뿐이었어요!"라고 황제에게 반항했던 것과, 화비가 "너(온의공주)는 황제 폐하의 딸이니까 뭘 해도 용서 받겠지! 그치만 나는 뭐냐? 마음 내킬 때만 예뻐하고, 그뿐이지 않느냐!"라며 자신의 처지를 비관했는데, 마음 내킬 때만 예뻐하는 게 딱 애완동물이다.

그러면서도 사랑하지 않는 주제에 독점욕은 엄청나게 강해 후궁의 사통에 대해 굉장히 민감하다.

견환- 윤례뿐만 아니라 손답응이 시위랑 사통하다 걸렸을 때 이성을 잃고 분노할 정도이다. 견환이 죽어가는 황제를 빡치게 하려고 남긴 말이 정화공주의 친아버지는 온실초이고 홍염, 영서 남매의 친아버지는 바로 윤례였다는 말이었다. 그러면서 아이러니하게도 다른 여자의 독점욕은 절대로 용납하지 않는다.[52] 황후가 황제 앞에서 독점욕을 드러내자 " 독사 같은 마음이로다."라는 짧은 코멘트를 남겼다.

또한 사랑이라는 개념 자체를 이해했는지도 의심스럽다. 윤례 완벽을 아내로 들일 당시에 딱 하나만 들여서 완벽의 마음에 상처를 주지 않겠다는 대인배스러운 발언을 하자 아내를 하나 더 들이기를 강요한다. 이에 윤례는 "여자를 더 들여서 아내가 될 완벽에게 상처를 주겠다는 겁니까?" 라며 항의해보지만 무시해버렸다. 일단 저때 황제의 논리는 패국공의 딸 맹정한이 오랫동안 윤례에게 혼담을 넣어왔다가 결혼 소식을 듣고 충격 받아 드러누웠으니, 이걸 내버려두면 공신인 패국공이 불만을 품는다는 이유였다. 사랑도 정치적인 이유가 있으면 철저하게 이용하는 황제답긴 하다.

실제로 후궁들 중 황제를 사랑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오히려 사랑한 사람[53]을 세는 게 빠를 정도. 황제에게 억지로 끌려오다시피 한 녕귀인은 말할 것도 없고, 한때 황제를 진심으로 사랑했던 심미장도 황제의 이기심과 뻔뻔함 때문에 아예 정을 뗀 데다가 심미장보다도 더 진하게 사랑을 나누던 견환도 황제를 애증[54] 하게 되었고, 그 얌전하던 안릉용도 몰락 당시 황제에게 "폐하는 저를 하나의 인간으로 안 보았고 그저 꾀꼬리 취급을 했을 뿐이에요!" 라고 항변한 데다가 황제를 진심으로 사랑한 황후마저 그를 책망했다.[55][56] 결국 견환에게 진실을 들으면서 쓸쓸히 외롭게 죽었으며, 그나마 죽은 이후에도 경귀태비 흔태빈은 매우 심하게 멀쩡했기에[57] 그들이 황제를 사랑하지 않았다는 사실만 증명하고 말았다.

6.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

매화 나비를 좋아한다. 홍매화는 순원황후와 연관이 있어서 보면 슬프기도 하고 울적해지기도 하지만[58] 기본적으로는 좋아하는 듯하다. 황후도 이걸 아는지 안릉용에게 빙희(라고 쓰고 피겨라고 읽는 것)를 시킬 때에도 엑스트라 시녀 빙희 무희들에게 매화 가지를 들게 시켰다.[59] 또한 못생긴 데다가 신분도 한미한 안릉용을 간택한 이유일 정도로 나비를 좋아한다.[60] 견환을 첫 유산 이후 다시 총애하게 된 계기도 그녀가 겨울철에 나비를 망토 속에 숨긴 뒤 황제를 위해 기도를 하는 모습을 보게 만들었고, 이에 황제가 견환의 손을 잡아당긴 그 순간 나비가 한꺼번에 날아들어 황제의 눈길을 사로잡았기 때문이다. 다만 매화를 좋아하는 이유가 순원 때문이라면 나비를 좋아하는 이유는 불명이다.

국화도 좋아한다고 말은 했지만 이것은 가을에 호젓하게 피면서 여름 꽃과 다투지 않아서 그렇다고 한다. 즉, 질투를 하지 않는 여자를 빗댄 것인데 심미장을 한창 총애할 때 그녀를 두고 한 말이다. 그래서 심미장이 국화를 좋아한다는 이유로 그녀가 거주하고 있던 처소인 상희당이란 이름이 촌스럽다며 존국당으로 바꿔버렸다. 그런데 이때 심미장에게 희귀한 녹색 국화를 선물해주다가 그 국화가 자기 거라고 착각해버린 화비를 자극시키고 말았다. 결국 이에 분노한 화비는 견환을 처리하기에 앞서 심미장을 먼저 보내버리려고 음모를 꾸미게 되었다.

문학은 말할 것도 없고, 음악과 미술 등 각종 예술 방면으로도 조예가 깊다. 명화를 수집하는 취미가 있으며, 퉁소도 좀 불 줄 아는 것 같다. 당시 완상재였던 견환과 첫 만남을 하고 퉁소를 꺼내서 좀 불어 보는데 자기가 봐도 이건 영 아니다 싶어서 내려놓는다.[61]

뭔가 연자, 즉, 연밥[62]을 자주 먹는다. 황후가 말하기를 "폐하께서는 연자를 좋아하신다."라고 증명해줬다. 그리고 그 연자를 매번 손톱이 부러져라 까는 사람들은 비빈들이다.[63] 화비의 말에 의하면 오이도 좋아한다.

싫어하는 것은 미신과 부정부패이다. 귀신 소동이 일어났을 때 제비[64]와 화비[65]가 입을 모아 황제가 미신을 제일 싫어하신다고 말한 바 있다. 하지만 천문이 가리키는 운세가 나쁘다는 이유로 안릉용을 한동안 찾지 않거나, 후궁에는 여자들뿐이라 음기가 강하여 온의공주가 울기 때문에 익곤궁에 있어달라는 화비나, 음기가 강해 병이 나고 악몽을 꾼다는 기귀인의 말을 듣고 그 옆에 머무는 것을 보면 사람 마음이 꼭 그렇지만도 않은 것 같다. 그리고 견환이 환궁을 꾸밀 때 소배성도 2월 2일 용대두의 날에 용이 머리를 들어야 풍년이 든다는 속설을 들먹여서 황제가 감로사로 행차하도록 낚았다. 사실 황제는 미신을 싫어하긴 하지만 사람들이 그것을 통해 마음이 평안해질 수 있다면 딱히 크게 뭐라 하지 않아왔다.

부정부패의 경우에는 화비 매관매직을 하다가 들켰을 때 황후가 "폐하께선 부정부패를 그 무엇보다도 가장 증오하시는데 후궁이 앞장서서 부정부패를 한다니!"라고 분노하며 이 사실을 증명했다. 황제 또한 책상에 앉아 셈을 하다가 "매년 돈을 걷는데 매년 돈이 모자라? 이것들이 부정부패를 저지르니까 이러는 거지!"라며 분노하는 장면이 나온다. 후궁들의 아버지들 중 사사된 아버지들은 제비, 기귀인, 안릉용의 아버지, 이렇게 3명인데 그들 모두 부정부패 내지는 부정축재 때문에 사사 당했다. 화비의 오라버니인 연갱요까지 포함하면 넷. 후궁의 아버지들이라면 황제 입장에선 장인어른인 격인데, 그런 사람들을 사사시킬 정도니 얼마나 부정부패를 증오하는지 알 수 있다.[66]

그리고 그보다 더 싫어하는 것이 있으니 바로 8황자당, 즉 8황자 윤사, 9황자 윤당, 14황자 윤제이다. 8황자 윤사에게는 개돼지라는 새로운 이름을 친히 하사할 정도였다. 융과다가 "그래도 폐하의 친형제니까 종실 어른을 보내 잘 훈계해주시옵소서."라는 미온적인 의견을 냈을 때 바로 표정이 썩었고, 그 후로 8황자와 9황자에 대해 강경책을 진언한 견원도에게는 만족스러운 얼굴을 지었다. 친모인 태후가 죽어가면서 한 번만 14황자를 다시 보게 해달라고 부탁하는데 끝까지도 들어주지 않을 정도였다. 74화에서 황제가 견환에게 과군왕을 죽이라 명할 때 어떻게 감히 형제를 죽일 수 있냐고 경악하는 견환에게 "나와 어머니가 황위를 쟁취하려고 작당했었을 때, 그때 이미 우리 살생부에는 14황자의 이름도 있었어. 친동생이고, 친아들이고 상관 없어."라고 말할 정도다. 이를 볼 때 하나뿐인 친동생이었던 14황자 또한 극도로 증오했음을 알 수 있다.

3황자 홍시가 부족한 자질로 끊임없이 자신에게 실망만을 안겨주는 데다 심지어 자신의 후궁인 영귀인에게 집적거리기까지 했는데도 고작 하루 종일 무릎 꿇게 하고 싸대기 2대만 때린 뒤 꾸중하는 선에서 용서했지만, 그렇게 너그럽게 봐줬던 홍시가 8황숙과 14황숙의 용서를 구하는 순간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냉정하게 황실 족보에서 파내버리고 8황숙 윤사의 아들로 만들어버렸다. 뿐만 아니라 준가르의 침략으로 긴박한 상황에 빠지고, 최측근 충신인 장정옥 역시 조심스럽게 청을 올렸는데도 14황자를 등용하는 일만은 끝내 거절했다. 실제 역사에서도 옹정제는 부정부패와 자신과 황위 경쟁 레이스를 펼친 8황자당만큼은 매우 격렬하게 싫어했다. 그러나 14황자는 동복 형제라서 그랬던 건지 죽이지는 않았고 유배만 보냈다.

하지만 역시 최고의 역린 순원황후에 관한 것과, 후궁의 사통과, 자신의 아이가 해를 입는 것. 이 3가지를 건드리면 그야말로 격노한다. 관계자는 거의 대부분 무조건 처형시키고, 변명도 듣지 않고 당사자를 감금해버리는 등 아주 막무가내다. 다만 자신의 아이가 해를 입으면 화비의 아이를 자신의 명령으로 낙태시켜서 그 원한으로 이후 잉태되는 아이들이 해를 입는 게 아닌가 괴로워하고 있었다. 이에 태후는 자신이 한 일이라며 감싼다.

후궁 소생의 서출이기는 하지만 의외로 서출 콤플렉스는 없다. 72화에 황후가 순원을 죽였다는 사실을 알게 된 뒤 그녀와 독대할 때 황후가 "첩이라는 이유로... 서출이라는 이유로 저와 제 어머니가 얼마나 서럽게 사셨는지 아시는지요, 황상? 이미 제 아이는 죽고 없지만 언니를 적복진으로 삼으셨을 때 제 아이도 신첩과 똑같은 삶을 살아가야만 한다는 생각은 안 해보셨습니까?" 라고 묻자, 황제는 "짐도 서출이고, 짐의 어머니도 서출인데 무슨 소리인가? 짐이 언제는 그런 (적서) 차별을 하는 사람이었단 말인가? 그대가 그런 고생을 한 것을 잘 알기에 짐에게 시집 온 그대에게 잘 대해줬었다. 또한 순원이 들어온 이후로도 그에 못지 않게 대우해줬어. 하지만 너는 욕심이 끝도 없었더군."이라고 말한다. 이걸 볼 때 살면서 서출에 대한 서러움은 그다지 받지 않았던 것 같다. 아무래도 어머니인 태후가 아버지 강희제의 후궁이긴 하지만 만주 정황기[67] 출신인 데다가, 자신보다 모친의 신분이 낮은 황자[68]들도 여럿 있었기 때문으로 보인다. 원작에서는 생모의 품계가 높았기 때문에(정1품 덕비) 더더욱 컴플렉스가 있을 이유가 없다. 현청(윤례)도 생모의 품계는 높았지만(정1품 귀비) 신분이 낮았다.

7. 평가

후궁을 지옥으로 몰아넣은 만악의 근원에 특히 정치적 이유나 사적인 이유로 견환을 포함한 후궁들의 마음에 큰 상처를 주고 방치했기에 좋은 평가를 받지 못하고 있다. 후술할 듯 시청자들만 아니라 촬영을 한 배우들도 "이게 다 황제 때문이다."라고 말을 한 것을 보면 어떤 취급을 받고 있는지 알 수 있다. 그러나 옹정제도 가해자가 된 피해자에 속하는 인물이라 비판보다 미미하지만 동정론이 존재한다.

7.1. 동정론

우선 어릴 때 어머니가 장막 뒤에서 융과다의 품에 안겨있는 걸 보고 어머니의 부정을 직접 목격함으로서 여인의 사통에 대한 심한 트라우마가 생겼다.[69] 아이러니한 건 친동생들에게서 황위 계승을 위협 받는 상황에서 가장 큰 뒷받침이 되어준 것이 바로 태후와 융과다. 즉, 자신의 친어머니와 바람핀 남자가 명목상의 외삼촌[70]인 데다 자신의 가장 큰 후원자인 상황이 되었다. 황제가 자신을 기만하는 행위에 격분하는 이유는 형제들의 문제뿐만 아니라 여기에도 있다. 태후에게 " 부황께서 모르셨다고 해서 저도 모른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라며 화 내는 장면이 있다.

더군다나 그 어머니는 친모임에도 불구하고 자신을 직접 양육하지 않았는데[71] 자신의 친동생(14황자 윤제)은 그 어머니가 직접 길렀다. 거기다 아버지인 강희제는 다른 아들[72]을 더 총애하고 있었고, 이 열등감은 두고두고 터져나온다.

가장 사랑했던 여인은 아이를 낳자마자 죽어버리고, 그 여인의 직접적인 부탁과 어머니의 영향으로 좋든 싫든 그 여인의 동생을 정실로 삼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던 데다 자신을 진심으로 사랑해준 화비가 임신할 수 없도록 직접 손을 써야만 했다. 임신한 아이를 유산시키고 그 후 수 년 동안 임신을 하지 못하게 막은 것은 본인의 황제 자리를 위협할 황자를 낳지 못하게 하기 위한 지극히 정치적인 선택이었을 뿐이다.

간단히 말해서 이쪽도 가해자가 된 피해자라 볼 수 있다. 세상을 떠난 태후 앞에서 자장가를 불러달라 청하는 장면이나, 죽기 전 견환에서 한 번만 4랑이라고 불러달라고 애원하는 장면이 그의 외로움을 보여준다. 화비의 처분도 황후에게 맡기고 알리지도 말라고 했지만 두고두고 끝까지 화비에게 미안한 마음을 감추지 못하며[73], 안릉용이 유산했을 때는 자신의 탓이라며 견환도 달래지 못할 정도로 상심한다.[74] 화비의 일로 누명을 썼던 단비, 늘 현명하게 처신하는 경비에 대해서도 미안한 마음은 늘 갖고 있다. 이 두 사람을 자신의 편으로 만든 것이 견환에게 큰 힘이 되었다고 할 수 있다. 단비의 경우 최근석 소배성의 일 때 살짝 의심받았긴 하지만, 그 외에는 단비고 경비고 단 한 번도 의심 받지 않을 정도로 황제가 신임하고 있었다.

어머니의 부정으로 여성을 못 믿게 되었고 한편으로는 혐오하였다. 그러다 자신을 이해해주고 같은 마음을 나눌 수 있었던 순원황후를 유일하게 사랑하게 되었지만 그녀마저 일찍 세상을 떠남으로서 마음의 문을 아예 닫아버렸고, 그녀의 대역으로 들여왔지만 새로운 사랑인 견환을 뒤늦게 찾았으나 본인의 잘못으로 자신의 곁에 있던 사랑마저 자기 손으로 떠나보냈고, 끝까지 자신의 잘못을 알지 못하고 고독하게 죽었다.

견환과 3년간의 이별 후 재회할 때 견환이 사죄하는 모습을 보이자, 이제서야 네 성격이 온순해졌다는 망언을 한다. 견환이 환궁한 뒤 온갖 금은보화를 하사하지만 본인이 예뻐하는 여자에게 항상 하는 행위였고, 이것으로 황제가 자신의 잘못을 알고 있었다고 보기는 어렵다.

즉, 본인의 마음의 상처를 제대로 치유하지 못해 트라우마가 남았고, 자신이 사랑 받고 사랑한다는 사실조차 제대로 깨닫지 못하여 남들에게 씻지 못할 상처를 주며 피해자들을 만들게 되었다.

황제를 증오한 견환조차 황제와 나눴던 사랑을 모두 부정한 적은 없다. 환궁할 때 황제가 건넨 말에 살짝 미간이 떨리더라며 근석이 이야기하자 "그토록 상처를 입히고, 약을 바른들 무슨 소용이겠느냐?" 라며 대답하기도 하고, 황제가 숨을 거두자 그때서야 4랑이라고 불러주며 "우리가 처음 만난 날... 살구나무 아래에서... 자신을 과군왕이라고 하셨죠? 아마 그때부터 잘못된 걸 거예요..."라고 독백하는 장면은 견환이 황제를 한때나마 진심으로 사랑했었음을 보여준다.

7.2. 반론

하지만 평생을 나갈 수 없는 궐 안에 갇혀 정상적인 남자라곤 하늘의 아들로 칭송 받는 황제밖에 없는 상황에서 견환 및 후궁들에게 무슨 선택지가 있었을까. 귀한 집안에서 자라 남자에 대해 알지 못하고 신부 수업이나 받으며 16세 전후에 시집 온 후궁들에게 존귀하신 황제는 그 사람의 됨됨이와는 상관 없이 첫사랑 그 자체였을 것이다. 대부분 황제의 진면모를 발견하며 사랑을 접었지만, 결국은 마지막이 중요한 거다.

견환이 환궁한 뒤에도 견환보다 순원황후와 더 닮았다는 망언을 하며 황제의 막내 동생과 사랑에 빠졌다는 처제에게 집적대는 추잡스러운 모습을 보여준다. 이때 견환이 옥요와 신패륵을 밀어주자 삐지는 모습을 보이며 본인에게 다 생각이 있다는 둥 기어코 처제를 후궁으로 들이겠다는 모습을 보이다가 처제가 정인과 혼인하게 해달라며 간청하자 그제서야 포기한다.

이는 순원황후에 대한 미련이 일종의 습관으로 남았을 가능성이 높다. 즉, 못 다한 사랑에 목말라 지금 곁에 있는 것들을 제대로 보지 못하고, 그러다가 정말 소중한 것을 놓쳐버리고 다른 사람들까지 망쳐버리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사람이 하나 더 있는데 바로 온실초. 온실초는 한 사람에게만 진심을 다하여 지키겠다고 결심하고 노력하다 둘 다 진정한 사랑을 놓치며 안타까운 결말을 맺었다.

온실초 견환을 지키기 위해 필사적이었으나 견환은 황제의 후궁이었고, 훗날 견환이 윤례와 사통하는 것을 알면서도 그 사랑을 접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가 황제에게 학을 뗀 심미장과 우연히 동침을 하게 되었지만, 온실초 또한 미장을 사랑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됐을 때 미장이 죽게 되었다.

황제의 성격을 보여주는 또 다른 장면은 30화에서 견환 화비로 인해 유산한 후 대화를 나누는 장면인데, 이때가 총 76화의 긴 내용 중에서 유일하게 황제가 눈물을 흘리는 장면이다. 황제가 어이없게도 피해자인 견환에게 "왜 화비 말을 또 그렇게 잘 들었냐?"며 질타하자 견환이 반박한 후에 "화비의 성격이 그토록 나쁜 걸 모르는 것도 아니면서 왜 그렇게 큰 권리를 주셨습니까, 폐하?" 라고 따질 때 눈물을 한 방울 떨군다. 그 전 장면은 화비에게 대놓고 독한 말을 하며 화 내는데 이 역시 유일하다. 그래도 황제가 일말의 죄책감과 감정을 가지고 있다고 보여주는 장면이라고 할 수 있겠다. 대의를 위했기 때문에 자신의 잘못이 아니라고 합리화하는 심리 상태를 가장 잘 보여주는 장면이다.

위에서도 언급되었듯 누가 무슨 음식을 좋아하는지, 무슨 옷을 좋아하고 어떤 옷이 잘 어울렸는지, 무슨 장신구를 하사했었는지, 심지어 시집 온 날, 혼수품, 첫날 밤의 대화, 궁녀의 성격과 얼굴까지 죄다 기억하는 엄청난 기억력도 자주 보여주는데, 단순히 여색을 탐하는 수준이 아니라 높은 미적 감각과 까다로운 취향의 소유자임을 알 수 있다. 궁에서 나고 자라 천자의 자리까지 올랐고 최고의 것만 취하며 살았을 황제이기에 어쩌면 당연한 것이다. 그토록 미적 감각이 뛰어나고 예민한 사람이었기 때문에 더욱 쉽게 상대에게 실망하고 싫증을 내고 또 의심한 건지 모른다. 작가인 류렴자 순원황후가 요절하지 않았으면 그 역시 싫증냈을 것이라고 한 것도 비슷한 맥락이라고 볼 수 있다.

감정적으로 황제가 아닌 보통 사람의 면모를 곳곳에서 드러내긴 한다. 그게 하필이면 화비를 처리하는 일에서 가장 오래 질질 끌면서 표현되고, 더군다나 화비의 일은 황제가 미안할 것도 있었기 때문에 조금 불분명하게 그려진다. 하지만 조귀인도 "원래부터 별로 신경도 안 쓰던 미천한[75] 막내 동생 공주"라고 인증한 조괴공주가 준가르로 화친을 위해 시집 갈 때 울었다는 이유로 우울해하면서 견환에게 찾아온 것[76], 자신의 아이들이 자꾸 태어나지 못하는 것은 자신이 지은 죄가 많아서 그렇다고 자책하는 등의 모습으로 볼 때 냉혹한 면 뒤에 조금은 인간적인 모습을 볼 수 있다.

마지막으로, 어떠한 일이 있을 때 자기가 불리하면 후궁들에게 "지금 짐을 탓하느냐?(혹은 원망하느냐?)"라고 자주 묻는데, 이 역시 단지 황제로서 업신여김을 당하고 싶지 않은 마음뿐만 아니라 미움받는 것을 두려워하는 마음을 보여주는 버릇이다. "지금 감히?"라는 뉘앙스로만 묻는 것이 아니다. 예를 들어 견환이 유산 후 아기의 배내옷을 쥐고 잠든 걸 보고 "이렇게 아이를 못 놓아주는 것은 짐을 원망하는 것이냐..."라고 혼자 되뇌인다. 다만 자기가 명백한 가해자의 입장인데 가혹한 점을 딱히 고칠 생각도 안 하면서 자꾸 짐을 원망하냐는 소리만 자꾸 하니 더 뻔뻔해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한 가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여기 적힌 주장은 모두 '황제 불쌍하다'에 지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나라를 다스리는 황제라는 입장 때문에 후궁들에게 잔인할 수밖에 없었던 면도 있지만, 그 입장을 떼고 봐도 잔인할 수밖에 없었던 점도 엄청나게 많다! 화비에게 한 짓이야 화비 집안이 잘못했으니 나라를 위해서라도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칠 수 있겠지만, 다른 후궁들은 그냥 잘못한 것도 없는데 황제의 트라우마와 감정에 휩쓸려서 다친 사례가 대다수. 애초에 사람들은 황제가 아무 마음의 상처도 없이 악의를 가지고 후궁들을 괴롭혔다고 생각해서 욕하는 게 아니다. 그냥 욕 먹을 짓을 했으니까 욕하는 거지. 살기 힘들었고 여린 마음에 상처를 입었다는 이유로 남을 괴롭혔다는 게 참작이 된다면 언니 때문에 트라우마가 있었던 의수, 천대 받는 삶을 살아왔던 릉용, 유산 트라우마가 있었던 화비가 한 짓도 다 참작이 될 수 있다.

제 아무리 후궁들에게 잘해주고 기념일을 기억해주는 등, 살뜰하게 챙겨줬다고 해도 후궁들이 애교나 부리며 고분고분 말을 잘 듣고 서로 좋을 때나 연애질하며 사랑꾼 노릇을 했을 뿐이다. 정작 후궁들이 힘들어할 때는 내버려두거나, 오히려 더 힘들게 하거나, 황제가 오히려 후궁들을 힘들게 만든 장본인이다. 심미장이 황제를 기만했다는 누명을 쓰고 갇혔을 때 가둬둔 거야 결백하다는 물증이 없으니 어쩔 수 없다 쳐도, 가둬두고 나 몰라라하며 심미장이 생명의 위기를 겪는 지경까지 가도록 방치한 데다, 결백하다는 게 확실하게 밝혀지고 나서도 제대로 된 사과를 하기는커녕 "물론 내가 힘들게 했지만 나도 황제라서 힘들다!" 라는 뉘앙스로 자기 변명을 늘어놓았다. 아무리 좋을 때 잘해줘봤자 힘들 때 이렇게까지 해를 입혔으니 후궁 입장에선 오히려 잘해준 것도 원망스러울 수밖에 없다.

이건 진심으로 사랑한 여자인 견환에게조차 마찬가지로 견환이 화비 때문에 유산하고 괴로워할 때도[77] 방치해놓고 얼굴도 보러 가지 않았으며, 연갱요 때문에 화비를 함부로 어쩔 수 없다는 자신의 입장도 제대로 설명해주지 않았다.[78] 본인 입으로는 "견환이 너무 소중해서 자기가 더 힘들게 할까 걱정된다." 라고 말했지만 객관적으로 생각해보면 결국 총애를 잃었다는 인상을 주어 다른 후궁들에게 뺨까지 맞는 지경으로 떨어뜨린 것이다. 게다가 견환이 다시 총애를 되찾은 것은 견환 본인이 노력해서 극복한 것이지 여기서 황제가 잘한 부분은 전혀 없다. 총애를 되돌려준 것도 결국 견환이 "유산과 후궁 내의 천대로 힘든 와중에도 신첩은 폐하를 생각해요!" 라는 모습을 보여줬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 이후에 황제가 순원을 언급하며 견환의 자존심을 모욕하고 사랑을 짓밟기까지 한 것은 구제불능 수준의 잘못이다.

순원황후에 대한 사랑이 아무리 컸다고 해도, 그 사실이 그녀를 제외한 남들에게는 심각한 민폐를 끼쳤다. 내명부가 얼마나 개판이고 내명부의 후궁과 시녀들이 고초를 겪는 걸 넘어서 심지어 목숨까지 위협받는지도 잘 알고 있었고, 자기 자식들마저도 몇 번이고 유산되는 지경임에도 순원 생각 때문에 황후가 깽판치는 것을 그대로 방조한 것은 명백한 잘못. 의수가 한 짓은 사실상 황제도 공범이라고 볼 수 있다. 더군다나 그 의수가 순원 때문에 온갖 사고를 치게 된 계기조차 원래 황제의 정실부인으로 내정된 것은 의수였는데, 순원에게 빠져 끝내 약속을 어기고 그녀를 첩실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그것도 첩의 딸이라는 점 때문에 어린 시절 내내 고통 받았던 의수를 말이다. 애초에 그 순원조차도 죽지 않고 살아서 다 늙은 모습을 보여줬으면 그렇게 사랑하지 않았을 거라고 작품 내의 인물을 포함해 수많은 사람들이 입을 모아 말하는 판국이다.

자신이 힘들었다고 해서 남을 괴롭혀도 되는 것은 아니다. 젊은 시절의 트라우마를 끝까지 극복하지 못하고 남들에게도 이 모든 잘못을 저지른 것으로 보면 (감정적으로) 나약하기 때문에 민폐를 끼친 캐릭터로 분류할 수도 있을 듯하다.

하지만 가장이기 전에 황제이고 황제의 일신이 천하의 안녕과 직결된 문제이다. 옹정제는 군주로서는 매우 모범적이고 탁월하였다. 어느 정도냐면 1000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한 기강이라고 평가 받을 정도로 업무에 굉장히 열정적이었다. 일과 가정의 두 마리 토끼는 평범한 사람도 둘 다 못 잡는 경우가 많은 편인데, 황제의 일이란 건 만민의 안전과 직결된 문제이고, 당연히 일과 가정 구체적으로 황위 계승 문제 따위가 아니면 아내와의 세세한 정 따위 문제는 우선 순위에서 밀린다. 아내의 마음을 헤아리고 거기 맞춰주는 것도 엄연히 정신노동인데, 거기 집중하는 만큼 조정 일에 쏟을 에너지가 줄게 되면서 더 많은 사람이 피해보게 되는 나비 효과로 번질 수 있다.

더구나 중국사의 암군들을 보면 나쁘게 표현하면 여색, 좋게 표현하면 너무 애처가라 나라를 말아먹은 사례가 많다. 그리고 황제의 가정이란 것도 후궁들끼리 시기질투하며 각종 계략을 벌이다가 대형사고로 터지지만, 최종 결정권은 황제에게 있어서 바쁜 정무 속에서 내명부의 음모를 파헤치고 신경쓰는 것도 초인적이라 여겨질 정도다. 일단 드라마 옹정황제의 여인에서는 옹정제의 조정 일과를 보여주기보다는 내명부만을 보여주다보니, 황제의 조정 일은 잘 보여주지 않아서 황제가 힘들다는 인상이 적다. 일반인도 아니고 황제라는 특수한 직위를 고려해서 봐야 한다. 그리고 옹정제는 성격이 부드럽지 못하고 딱딱하고 권위주의적이긴 하지만그 또한 현대적 기준의 가장을 대입해서는 안 되고, 유교 이념 국가이자 전제군주정의 정점인 황제이고 지금보다 훨씬 가부장적 질서가 강했다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

사실 실제 역사 속 유능한 권력자가 가정에는 비정한 사례는 동서고금 통틀어 상당히 많다.[79] 율리우스 카이사르는 정황상 무죄에 가깝지만 아내가 간통 혐의만 있다는 것으로 이혼했고,[80] 표트르 대제 쉴레이만 대제 콘스탄티누스 대제 영조는 친아들을 처형시켰다. 현재도 독일의 위대한 군주로 손꼽히는 프리드리히 대왕도 아버지 프리드리히 빌헬름 1세의 가혹한 폭력의 피해자였고, 자신도 아내이자 왕비인 엘리자베트 크리스티나와 형식상의 부부 관계만 유지할 뿐 기념일이 아니면 만나지도 않을 수준이었다. 그야 게이니까... 당태종은 형과 동생을 죽이고 그 일가까지 죄다 죽였고,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어려웠던 시절 함께했던 조강지처와 아들을 죽였다. 아내를 몇 번이나 죽이고 갈아치우기로 유명한 헨리 8세마저 위대한 영국인 100인에 꼽힐 정도로 적지않은 업적을 세웠다. 남자 쪽만 그런 게 아니라 예카테리나 대제도 남편 표트르 3세 전대미문의 실책을 벌이자 쿠데타를 일으켜서 황위를 찬탈했고, 그로 인해 표트르 3세와의 사이에서 낳은 파벨 1세와의 관계가 평생 서먹했다. 심지어 그 아들인 파벨 1세는 즉위한 후 어머니 예카테리나 대제의 친귀족적 정책에 반동하다가 암살당했다. 이런 점을 고려할 때 권력자가 무정하다 못해 비정한 점은 오히려 고증에 가까운 셈이다.

그러나 이것은 드라마의 황제가 옹정제니까 해줄 수 있는 얘기이다. 드라마는 원작의 캐릭터에 현실의 옹정제를 대입하여 각색한 것일 뿐 역사와 다른 부분이 많고 원작에선 여색을 밝히며 조정에서 일하는 모습을 잘 보여주지 않는다. 드라마에서 묘사한 캐릭터 자체를 평가해야지 '옹정제는 청을 번영시킨 위대한 황제였다.' 같은 역사적 사실을 끌어와 평가하는 건 맞지 않다. 이왕 각색하는거 가정제 만력제를 주인공으로 삼아 이런 본작의 옹정제와 비슷한 인간으로 묘사했다면 황제에게 그런 실드를 쳐줄 사람이 과연 얼마나 있을까.

60여 명이나 되는 후궁들 중 40여 명 이상이 암투로 인해 죽거나 미치거나 폐출되는 시대가 정상은 아니다. 사실 그렇게 정무가 바빠서 후궁들의 패악질을 막을 생각이 없다면 여색 좀 그만 밝히고 후궁의 수를 많이 늘리지 않고 현재 있는 후궁들을 공평하게 총애해서 후손을 보면 될 일이다. 하지만 황제는 매번 새로운 후궁이 들어오는데 마음에 드는 후궁만 지나치게 편애해서 괜히 다른 후궁들의 질투를 사게 하는 정반대의 행동만 했다. 그 와중에 또 후궁들을 빨리 질려해서 후손을 많이 낳지 못하자 내명부는 계속 후궁을 늘려 황손을 보고자 했다. 결과적으로 후궁의 수는 계속 늘어나는데 사랑은 주지 않아 후궁들이 황제의 미약한 총애라도 얻고자 계략을 꾸미고 암투를 벌여 모함을 하고 살인을 하는 참혹한 사태가 일어났다.

게다가 궁을 통솔하면서 후궁을 어지럽히는 황후가 문제긴 하지만, 이 정도면 이 지경이 되도록 별 조치를 취하지 않는 황제에게도 문제가 있다. 강희제도 후궁이 많았지만 황후나 황귀비가 육궁을 통솔하지 않은 말년에도 이런 일은 없었다.[81] 드라마에서도 암투가 끊이지 않는데, 이는 후궁의 기강을 잡지 않고 방관한 황제의 탓이 크다.

또한 후궁들의 유산과 후반부의 암투는 의수의 짓인데, 애초에 원래 적복진이 되어야 했던 의수를 측복진으로 만들고 첫눈에 반한 순원황후를 적복진으로 만들었다. 또 "네 아이가 죽었지만 순원이 아이를 가졌으니 그 아이는 네 애다."라는 말도 안 되는 억지를 내세워 의수를 미치게 만들고 암투에 뛰어들 게 만든 건 황제다.

그리고 중국 드라마가 늘 그렇듯 옹정황제의 여인 봉건제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작품이다. 봉건제가 얼마나 여자를 억압하는지 보여줘야 하는 것이고, 그 봉건제의 꼭대기에 있는 황제로 인한 필연적인 문제를 보여줘야지 황제의 정신 건강 같은 문제는 핀트가 엇나간 것이다.

사실 이 모든 것이 단순히 황제 혼자만의 문제도 아니고 시대 자체의 문제이다. 수십 명의 여자들이 황제 한 사람만의 사랑을 바라며 살고 황제나 웃어른의 비위를 맞추고 살아야 한다. 조금이라도 그들의 심기를 거스렸다가는 벌을 받거나 목이 떨어지고 더 나아가서는 멸문하게 된다. 가뜩이나 황제를 자주 보지도 못하는 마당에 황손을 낳지 못하면 인간 취급도 받지 못하고 딸을 낳으면 아들이 아니어서 걱정이고 아들을 낳으면 황위 다툼을 하다 죽을까 걱정이다. 이런 상황에서 제정신일 사람이 누가 있을까. 결국 후궁들의 암투는 시대가 만들어낸 비극이고, 황제는 그 비극을 줄이지는 못할 망정 더 악화시킨 인물이라고 할 수 있겠다.

7.3. 재평가?

패러렐 월드인 여의전 아들과 비교하면 오히려 아버지가 좋게 재평가되는 면이 있었다. 팬들은 같은 황썅이라도 좋아하는 여인은 확실히 지켜주었다는 점, 후궁의 혼수품이나 기념일을 기억하고 챙겨주는 등 섬세하고 아낌 없이 잘해주는 옹정제의 면모만큼은 좋게 평가한다. 또 옹정제는 감정이 앞서 나가서 후궁과 자식들에게 함부로 손찌검이나 발길질을 가하지 않았다. 견환의 사통을 의심했을 때 손찌검을 딱 한 번 했지만. 그러나 여의전에서의 건륭제 순원왕후급으로 좋아했던 여인이라도 감정이 앞서나가면 수 차례나 손찌검한다.

또한 부자가 같은 의심병을 가졌으며, 후궁들이 사통을 저지르는지 아닌지 민감해하지만 아버지인 옹정제는 어머니의 사통에 대한 트라우마가 있기 때문에 일부 팬들은 이해하며 동정을 한다. 윤례가 보낸 희귀비안(熹貴妃安)이 적힌 편지를 확인하며 견환과 사통을 저질렀음을 사실상 확신했음에도, 끝까지 인내하다가 견환의 손으로 윤례를 죽이게 하는 잔인한 복수를 하긴 했지만 결코 견환을 폐위시키지는 않았다. 그러나 아들인 건륭제는 후궁의 사통에 민감해하는 확실한 배경 설명도 없고 확실한 증거도 없는 상황에서, 질투에 미쳐 사통을 의심한 상대를 곧바로 고자로 만들어 사랑했던 여인에게 내시로 주는 등 이해가 안 가는 또라이짓을 하는 바람에 아버지가 더 평가 받았다. 심지어 그 사랑했던 여인은 릉운철을 특별한 친구로 여겼을 뿐 사통하지 않아서 평범한 시청자가 보면 역겨운 상황으로 느껴지기 충분했다.

8. 기타

작가는 역사 속에 많은 군주들이 양귀비 같은 여자들에게 홀려 나라를 말아먹었기 때문에 황제로서 후궁들을 사랑하지 않고 총애만 하는 것이라 했다. 또한 순원황후가 죽은 후 새로운 사랑을 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견환을 만나기 전엔 한동안 나타나지 않았던 탓도 있다고 한다.

의심병 환자인 이 드라마에서의 옹정제와는 달리 실제 역사에서의 옹정제는 황위 다툼을 벌였을 당시에 자신의 편을 들어준 형제들을 매우 아꼈다. 그 중에서도 특히 과군왕 윤례와의 사이가 좋았다고 한다. 강희제의 17황자 윤례는 옹정제를 강희제 시절부터 13황자 윤상과 함께 가장 적극적으로 지지해준 사람이었고, 옹정제 역시 자신을 물심양면으로 지지한 동생 윤례를 매우 아끼며 후히 대우해줬다. 물론 자신을 위해 10년이나 유배를 갔다 온 13황자 윤상의 공에는 살짝 미치지 못하였기에, 옹정제는 황제로 즉위한 지 몇 년이 지나서야 윤례의 품계를 친왕으로 올려줬다. 그래도 옹정제와 대립했던 8황자 윤사, 9황자 윤당, 10황자 윤아, 14황자 윤제가 옹정제 즉위 후 어떤 꼴을 맞았는지를 생각하면 윤례는 그야말로 천수를 누린 거였다.

옹정제의 배역을 맡은 진건빈의 부인 장근근의 외모가 실제로 손려와 닮았다. 심지어 견환의 동생 견옥요를 맡은 서로도 약간 닮았다. 옹정제의 첫사랑인 순원황후와 견환 자매가 닮았다는 설정에 맞춰 보면 그야말로 최적의 캐스팅.

진건빈은 <대송전기지조광윤>에서도 사별한 황후를 잊지 못하는 조광윤의 순애보 연기를 선보인다. 여기서는 어릴 때부터 부모들 간에 혼약이 오갔던 그래서 조강지처마저 홧병나서 죽게 만들어버렸던 운명의 사랑이자 개국 때부터 황후였던 왕월홍이 세상을 떠나자 실의에 빠져있던 중, 동생 조광의가 마침 후촉을 정복하며 항복해온 맹지상의 비였던 화예부인이 놀랄 만큼 형수와 닮았길래 광윤에게 후궁으로 들일 것을 청하지만 광윤은 계속해서 망설이는 것으로 묘사된다. 은도가 1인 2역을 연기.[82]

콧수염 고증을 잘해서 옹정제의 어진에 나온 콧수염과 완전 똑같다.

촬영 중 갈등이 빚어지는 씬만 찍고 나면 후궁 역의 배우들이 진건빈에게 몰려와서는 몰려와 이게 전부 다 황상 때문이라며 재잘거리고는 돌아갔다고 한다.

별로 중요한 이야기는 아니지만 설정 상으로 피부가 까만 것 같다. 태후의 말에 따르면 태어났을 때부터 피부가 매우 까만 편이었다.

황제 얘기를 하다가 마침 황제가 오자 견환이 "조조 얘기를 하니 조조가 왔다(=호랑이도 제 말하면 온다)"고 말했는데, 옹정제를 연기했던 배우 진건빈은 신삼국에서 조조를 연기했다는 배우개그가 존재한다.


[1] 실제 역사에서는 10월 13일이 생일이다. [2] 실제로 청나라 황제는 옹정제부터 양심전에 거주하게 되었다. [3] 애신각라 윤례의 딸. [4] 애신각라 윤례의 아들. [5] 실은 온실초의 딸이다. [6] 드라마 최후반부에서 근석"폐하는 권력을 가장 염려하시니..."라고 표현했다. [7] 실제 역사에서도 즉위 과정에서 다소 석연치 않은 부분이 있어서 강희제의 유서를 조작했다는 등의 소문이 돌았다. [8] 정확히는 진건빈이 말한 것을 작가가 맞장구쳐준 것이다. [9] 원작에선 의수가 아예 순원이 젊고 예쁠 시절에 죽게 만들었던 점을 후회하기까지 한다. [10] 화비, 기귀인, 지답응 등이 여기에 해당된다. [11] 보다 못한 태후가 한 마디 하자 대충 보고 이름이 재밌다고 하동춘을 고른다. 물론 태후는 몹시 못마땅해했다. [12] 후처라는 이유로 과거 황후에게까지도 허락하지 않았던 혼인 의식을 치르고, 후궁으로서는 금기시되는 정치 참여까지도 허락했다. [13] 이게 다 연갱요 때문이었다. 조정 내에 연갱요의 권력이 지나치게 크다 보니 연갱요의 여동생인 화비를 쉽게 처벌할 수 없던 것. [14] 예전과 같은 순수하고 맹목적인 사랑은 아니고, 황제가 주는 총애의 근본적인 한계를 깨닫고, 심미장의 설득과 더불어 자기를 밟으려는 후궁들에게 수모를 당하면서 궁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총애를 되 찾아야 함을 깨달았던 것이 더 큰 이유였다 [15] 이때는 한겨울인데도 용케 나비를 잡아와서 옷 안에 넣기까지 했다. [16] 다만 황제는 원래부터 연세란을 사사 시킬 생각은 전혀 없고 세란이 얌전히 지내면 나중에 귀인으로 봉해서 편히 살게 해주려 했다. 그러나 연세란이 방화 사건을 일으켜 사사했다. [17] 황상이 과이가 악민에게 시켜 견원도에게 해명을 올리라고 하지만 악민이 전했을 리는 만무하다. 연갱요를 아부하는 글을 쓴 전명세의 글을 갖고 있기도 해서 악민의 모함에 제대로 걸려들어 의심병 환자인 황제를 제대로 긁어버렸다. 황제의 의심병과 예민한 성정이 악수로 작용한 셈이다. [18] 이미 다 옛정 따위는 버리고 "감히 순원의 대례복을!"이라며 실컷 온갖 막말을 다 해놓고 롱월을 낳자 자기가 언제 그랬냐는 듯 "환환! 네가 짐의 아이를 낳았구나! 널 완비로 책봉하겠다!"라고 한다. [19] 관심 밖이 되거나, 갈등을 빚을 경우 후궁의 생사조차 여념하지 않는 냉정한 옹정제로써는 이례적인 면모였다. 견환을 결국 출궁시키기로 단념했을 때는 짐짓 무관심하고 퉁명스레 대꾸했지만, 사실 이는 정말로 견환에게 질리거나 보기 싫다는 의미가 아니다. 이미 어울리지 않게 여러 차례 만류하려 했으며, 그조차 거절당하자 황제의 위신+특유의 자존심 탓에 더 이상 회유하지 못하고 배짱을 부린 것에 가깝다. [20] "다 니가 성격이 세서 내보낸 거야." 하는 식이다. 자신이 잘못했다는 생각은 추호도 없다. 후술하는 황제의 성격이나 취향 건을 보면 알겠지만 황제는 여자들과의 관계에서 생각 없이 상처를 주는 이기적인 남자의 유형이지만 자기가 잘못했다고 생각하는 건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면서도 너무 자길 두려워하며 설설 기는 여자도 싫어하지만, 너무 입바른 소리 하는 강한 여자도 그닥 좋아하지 않는 복잡한 취향의 소유자이다. [21] 물론 당연히 황제의 아이가 아니다. [22] 태후의 마지막 소원이 14황자 윤제를 만나고 싶다는 거였다. 그런데 태후는 그럴 만한 자격도 없는 것이, 태후는 옹정제와 황위 쟁탈을 위해 음모를 꾸밀 때 14황자 윤제의 이름을 살생부에 넣었다. [23] 윤례가 매일 밤 꿈에서 나온다고 탄식했다. [24] 실제 역사에서도 옹정제의 사망 원인으로 지나친 업무로 인한 과로사가 꼽힐 정도이다. [25] 이것도 녕빈의 수작이었다. 단약의 재료로 쓰이는 주사와 최음향을 같이 쓰면 겉으로는 건강해보여도 매우 몸에 해로운데, 계속 황제가 쓰도록 했다. [26] 이건 견환이 "환궁한 뒤 폐하가 저를 만질 때마다 구역질이 났었습니다" 하고 직접 말했기 때문에 사실이 아니다! 견환은 이미 옹정제에 대한 사랑은 출가하면서 끝났던 상황이며, 오직 윤례만을 진실한 사랑으로 여기고 자신은 그의 아내라고 생각했었다. 마지막에 눈을 감겨주고 눈물을 흘린 것도 사랑이 남았기 때문이 아니라, 다시는 돌아갈 수 없는 순수했던 시절에 대한 회한과 그토록 사랑했던 사람에 대한 마지막 예우에 훨씬 더 가까운 연출이다. [27] 조선에도 비슷한 경우가 있었다. [28]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자기 첫 아이(현릉과 황후 의수의 아이)가 죽었을 땐 현릉은 순원황후에 푹 빠져있는지라 자기 아이가 죽었는데도 '황후가 애 임신했으니 그거 니 애로 치셈' 하는 투의 발언을 하며 자기 아이의 존재도 죽음도 너무나 가볍게 여겼다. 게다가 정치적 목적으로 화비와 자신의 아이를 사산시키거나 하는 등, 충분히 자기 혈족(그것도 자식들)에게 함부로 한 게 있다. 어찌 보면 인과응보일지도 모른다. [29] 이름 혹은 지위명이 나온 인물만 세도 황후 2명, 추존 황후 2명, 후궁 54명이 있으나 더 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견환이 출궁 당시 부여음을 포함해 10명의 후궁이 죽거나 폐위됐다. [30] 즉 11명의 자식들 중 진짜 자식은 꼴랑 6명밖에 안 되며, 그 중 2명의 황자가 황위를 잇지 못하고 작품이 완결나버렸다는 것이다. [31] 수정판에서는 영빈이 강심수에서 채빈으로 바뀌었고, 회숙제희가 삭제되어 4남 6녀로 변경되었다. [32] 이수용과 사미인은 나중에 총애를 잃었다. 이수용은 유산으로, 사미인의 경우 코가 여전히 예뻤지만 나중엔 생각나지 않게 되었다고 한다. [33] 서연의는 견환의 얼굴이 견환의 출궁 후에 총애를 독차지한 부여음과 닮은 것을 보고 황제가 사랑하는 여자라는 사실을 눈치 챈 후 견환을 도와준다. [34] 위균은 견환과 많이 닮은 정도는 아니지만 묘하게 흡사하다고 한다. 순원과는 별로 안 닮은 듯. 견환은 수녀 간택 당시에 그 모습을 직접 보고 혀를 찼다. 현릉은 견환의 눈치가 보였는지 뽑으면서도 대놓고 기뻐하지는 않는다. [35] 대표적으로 1부에서는 홍매화를 보고 순원을 떠올리며 울적해 했지만, 2부에서는 홍매화를 볼 때 섣달 그믐날 홍매화 덕분에 견환과 처음 연을 맺었던 일을 떠올리며 더 이상 울적해 하지 않고 애틋한 감상에 빠진다. 이렇듯 황제에게 견환이 대용품이 아닌 진짜 사랑임이 암시된다. [36] 황제가 순원은 '유일한 아내', 견환은 '가장 중요한 여인'이라고 한 것. [37] 순원, 견환, 심미장 등이 여기에 해당된다. [38] 화비, 여빈, 기귀인 등이 여기에 해당된다. [39] 황후, 단비, 안릉용 등이 여기에 해당된다. 그러나 황후는 평범할 뿐이지 못생긴 얼굴은 아니고, 단비는 드라마에서 묘사가 없지만 원작 묘사에 따르면 빼어난 미인이고, 안릉용은 드라마에선 설정이 바뀌었지만 원작에선 미인이다. 원작에선 여자의 외모를 보는 안목이 높다고 묘사된다. 후궁들 모두 못해도 보통은 된다. [40] 참고로 황후 역의 채소분은 분장 탓에 미모가 너프되었을뿐 미스홍콩 3위 출신의 미녀 배우이다. 채소분 젊은 시절 [41] 사실 섭란의 윤례를 사모했다. [42] 옹정제 본인이 대단히 세심한 면이 있어서 이렇게 세심하게 이거저거 다 따져가며 여자들을 고르는 것일지도 모른다. 일단 위와 아래에 나온 것을 기준으로 삼아서 황제의 취향인 여자를 고려해보면 일단 자기 맘에 들 정도로 머리가 좋아야 하며, 외모도 당연히 갖춰야 하고, 자기한테 마구 개기거나 입 바른 말만 늘어놔도 안 되지만 그렇다고 너무 설설 기고 솔직하지 않는 것도 아닌(그러니까 적당한 데서 강직하고 적당한 데선 굽히는 처세술을 아는) 여자가 취향이라고 할 수 있다. [43] 화비의 결혼기념일을 기억한다. [44] 견환의 생일을 기억하나, 출궁하자 의도적으로 잊으려고 한 듯하다. [45] 단비의 혼수인 목걸이를 알아봤다. [46] 심미장의 팔찌, 견환의 촉금 신발, 견환의 비취 팔찌, 화비의 봉황 비녀. [47] 화비 때문에 거짓 회임 누명을 쓴 데다가 답응으로 강등 당하고 몇 달간 감금 당했었다. [48] 견환은 화비 때문에 처음으로 회임한 아이를 유산 당했다. 물론 직접적인 원인은 안릉용이 준 연고 때문이지만. [49] 딸 온의공주를 화비에게 빼앗겼다. 심지어 화비가 황제의 환심을 사려고 온의공주에게 약을 먹여서 배탈을 내는 등 피해를 당했다. [50] 황후의 음모 때문에 죽은 사람들을 다 포함하여 방귀인, 화비, 제비, 기귀인, 안릉용, 심미장, 영귀인 등이 죽어나갔다. 극 시작 전에는 이보다도 더 많았을 거다. [51] 사실 심미장의 딸 정화공주는 황제의 딸이 아니라 사통한 온실초의 딸이였다. 황제는 정화공주가 자신의 자식이라고 철석같이 믿고 있다가 임종 직전에야 견환에게 미장의 사통 사실을 듣고 더욱 고통스러워 하며 죽었다. [52] 남존여비가 일반화된 당시 시대상을 고려하면 어쩔 수 없는 한계일지도 모른다. [53] 순원, 황후, 화비, 단비(드라마에서만 해당된다.), 서연의(원작). [54] 환궁 후에는 혐오, 증오에 가깝다. 특히 윤례를 직접 죽이게 만든 사건 이후에는 더욱. [55] 이전에는 화비도 대들었다고 되어 있었으나 죽는 방법을 결정해준 것은 황후였으며, 그 때문에 화비가 자결하지 않고 황제의 성지를 가져오라고 뻗대고 있었다. 때문에 황제에게 직접 대들거나 거역한 것은 아니다. 다만 죽기 직전에야 자신의 불임에 대한 진실을 알고 비로소 "폐하! 이 세란에게 너무도 하십니다!"라고 절규하며 원망했다. [56] 황후의 경우 황제와의 마지막 독대에서 "당신이 날 적복진(정실부인)으로 삼아준댔는데 왜 나 대신 내 언니를 적복진으로 삼았어?"라고 대들었다. [57] 다만 황후 단황귀태비는 황제를 위해 울어주었다. [58] 섣달 그믐날 황실 연회에서 화비가 사연을 모르고 갖다놓은 매화를 보고 급우울해져서 눈 속에 핀 매화를 보러 나갔다. 그리고 그날, 견환과 마주쳤다. [59] 정작 황제는 황후가 언급하기 전까진 순원황후가 아닌 견환과의 추억을 떠올렸다. [60] 사실 나비보다는 나비가 릉용에게 날아들어 그녀의 머리에 꽂혀있던 해당화가 눈에 띄었는데 순원황후가 해당화를 좋아했다. [61] 물론 소배성은 칭찬해주지만 아첨일 확률이 높다. [62] 연꽃 열매다. [63] 관계는 없을지도 모르지만 연자(蓮子)는 연자(戀子), 즉 "당신을 사랑합니다."라는 말과 발음이 비슷해 한시에서 종종 쓰인다. [64] "폐하께서는 미신을 가장 증오하셔. 자신 있으면 자네가 해." [65] "귀신? 폐하께선 세상에 귀신 같은 건 없다고 하셨어요! 그런 건 말로 다 와전되는 거라고요." [66] 실제 역사상으로도 청나라 때 가장 부정부패가 없었던 때가 옹정제의 재위 기간이다. 훗날 역사학자 장학성"옹정제가 관료 사회를 개혁하여 기강을 바로잡은 일은, 실로 천 년에 1번 있을 만한 쾌거로다!"라 평가할 정도. [67] 원래는 포의 출신이지만 강희제의 총애를 받아 만주 정황기로 진봉되었다. 게다가 옹정제 본인은 생모보다 신분도 지위도 높은 양모 효의인황후(생전엔 황귀비였으며 사망 하루 전에 황후로 승급되었고 사후에도 황후로 추존되었다)가 내명부를 다스리며, 자신을 전적으로 지지해주었기에 서출 컴플렉스를 느낄 가능성은 거의 없었다. [68] 대표적으로 관비 출신이었던 양비(실제 역사에서 관비가 아니라 태후와 같은 포의 출신이다. 물론 같은 포의라도 태후 쪽이 훨씬 더 격이 높았다.)의 아들 8황자나 한족 출신과 침모의 아들인 윤례와 신패륵 등. [69] 이건 드라마 기준이고, 원작에서는 심지어 섹스 장면까지 목격한 듯하다. [70] 융과다는 강희제의 정실인 효의인황후의 남동생이었고 그 효의인황후는 옹정제의 양모로 그를 친자식처럼 아끼고 물심양면으로 지원해줬으며 융과다와 그의 가문도 마찬가지였다. 때문에 옹정제에게 있어서는 군사력 외에도 정치적인 정통성 확보를 위해서도 중요한 인물이었다. [71] 후궁이 자기가 낳은 아이를 직접 키우려면 빈부터 가능하다. 옹정제를 낳았을 때 태후는 빈이 아니었다. 이 때문에 옹정제는 효의인황후 동가씨의 손에 키워졌다. [72] 극 중에서는 윤례로 나온다. [73] 황제가 속으로 미안하든 말든 본인을 진심으로 사랑했던 화비에 대한 예가 아니다. 마지막까지 황제를 찾았던 화비인데 용기가 없어 남에게 처분을 떠넘기고, 심지어 견환이 화비가 임신하지 못한 이유에 대해 알려주어 죽기 바로 전 사랑하는 사람에게 배신 당하는 최악의 죽음을 맞이하게 되었다. 물론 화비가 죽을 만한 짓을 하긴 했지만 그렇다고 황제의 태도가 바람직했던 건 아니다. [74] 최음향 때문이긴 하지만 최음향을 몰랐던 황제의 입장에서는 100% 자신의 탓이라고 여기는 게 맞긴 하다. 어의가 하지 말랬는데 기어코 성관계를 했으니... [75] 생모가 선대 황제의 귀인으로 선황제 사후 태빈으로 품계가 올랐다. [76] 이 시기의 견환은 황제에 대한 실망감 때문에 잠시 황제의 시침을 거절하고 있다가 이때 결국 그를 맞아준다. [77] 정확히는 환의향과 안릉용의 책임도 있으니 100% 화비 때문은 아니었지만. [78] 하지만 애초에 연갱요 때문이 아니었어도 견환이 원하는 수준까지의 엄벌은 내리지 못했을 것이다. 연갱요가 몰락하고 화비의 온갖 죄가 까발려졌는데도 결국 봉호 박탈과 답응으로의 강등에 그쳤고, 심지어 다시 귀인으로 올려줄 궁리까지 하고 있었다. 그리고 태후에게는 세란이가 본성은 나쁘지 않은데 조금묵과 어울려 다니다보니 저렇게 됐다고 쉴드를 친다. 즉 화비를 엄벌하지 않는 데에는 옹정제 본인의 사심도 있었다. [79] 반대로 실제 역사 속 무능한 권력자가 가정에는 온화한 사례도 동서고금 통틀어 상당히 많다. [80] 다만 고대 로마는 동양과 달리 여자의 이혼 경력이 큰 흠이 되는 사회는 아니었다. 당장 카이사르 본인도 전설적인 바람둥이였고, 카이사르에게 아내를 뺏긴 사람도 많았지만(폼페이우스와 크라수스의 아내도 카이사르와 염문이 있었는데, 저 둘은 이혼만 했을 뿐 딱히 불륜 건으로 카이사르에게 악감정을 가지진 않았다.) 멀쩡히 정치판에서 활동하고 다녔고, 여성 혹은 남성 편력이 공적인 영역에서 문제되는 일은 굉장히 도를 넘은 케이스(간통남과 신전에서 공개 섹스를 한 아우구스투스의 딸 대 율리아라던가)가 아닌 이상에야 없다시피 했다. [81] 다만 강희제는 차기 황제가 되고 싶어서 설치던 아들들 때문에 꽤 고생이 심했다. [82] 물론 픽션으로, 야사에서는 오히려 광윤과 광의가 이 여자를 놓고 다퉜고 그 때문에 촉영부성 사건이 촉발되었을거라는 떡밥도 전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