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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18223d><colcolor=#ffffff> 여의전의 등장인물 건륭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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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 애신각라 홍력 爱新觉罗 弘历 |
배우 | 곽건화 |
거주지 | 원명원 → 수강궁 → 수황전 → 양심전 |
지위 | 황제 |
가족 |
아버지
옹정제, 생모
이금계, 양모 숭경황태후 뉴호록 씨 아내[1] 효현황후 부찰 랑화, 계황후 오라나랍 여의, 효의황후 위연완[2] 슬하 17남 10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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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드라마 여의전의 등장인물.2. 작중 행적
청앵(여의)을 사랑하여 적복진으로 들이려 하나, 희귀비 일파의 계략으로 3황자 홍시가 실각하고, 홍시의 양모이자 청앵의 고모였던 황후 또한 연루되면서 어쩔 수 없이 부찰 랑화를 적복진으로 들이게 된다. 하지만 아버지 옹정제에게 간절히 부탁하여 청앵을 측복진으로 맞이할 수 있도록 허락받으며, 첫날밤을 청앵의 방에서 보낸다.옹정제 사후 황제 자리에 오르지만 여의(청앵)를 탐탁지 않게 생각하는 태후 때문에 둘 사이에서 고민하게 된다. 설상가상으로 부찰 랑화, 고희월 등이 여의를 시기하여 음해하지만 그녀들의 친정을 신경쓰지 않을 수가 없어서 그녀의 억울함을 알면서도 제대로 두둔하지 못하고 급기야는 여의를 냉궁으로 보내기까지 한다.
흑화한 해란의 반격으로 여의를 괴롭히던 고희월, 부찰 랑화, 김옥연 등이 하나하나씩 무너지면서 여의를 황후 자리에 앉히게 되지만, 건륭제의 마음 또한 서서히 변해가고 있으며 한향견, 위연완 등에게 더 끌리게 되고, 설상가상으로 릉운철과 여의가 사통했다는 의심까지 품으면서 둘의 관계는 점점 나빠진다. 결국 강남에서 기녀들과 놀다가 여의에게 비난을 듣고 크게 다투다가 파국을 맞이하게 된다.
여의와 해란의 협공으로 5황자 영기, 5황녀 경시의 죽음, 릉운철과의 일 등이 위연완의 짓임이 밝혀지면서, 그녀에게 독과 해독제를 번갈아 먹이며 죽느니만 못한 고통을 겪게 한다. 이후 화해를 위해 여의를 찾아가나 그녀는 이미 건륭제의 진면모와 궁중 내 암투에 지칠대로 지쳐서, 모든 걸 단념한 상태였고 건륭제가 용비와 목란위장으로 간 사이 연금된 이후부터 앓던 폐병으로 죽었다.[3] 여의의 사망 소식을 듣고 충격을 받지만 옆에 있던 경빈이[4] 여의가 말도 안하고 약도 먹지 않은 건 목숨을 버리는 것으로 복수하려던 거라고 하자, 짐과 황후가 어떤지는 네가 논할 처지가 아니라며 당장 나가라고 소리치고 홀로 남은 뒤 왜 여의가 병도 감추고 약도 먹지 않았는지 한탄한다. 이후 여의가 죽기 전 친아들 영기에게 남긴 편지를 읽고 그녀가 직접 반으로 찢어서 불태운 황후의 초상화를 보고 죽어서나마 자금성에서 벗어나고 싶어했던 여의의 진의를 깨닫는다. 여의의 장례식 이후 어릴 때 그녀와 함께 자주 올라갔던 성루에 혼자 올라가, 여의와의 첫만남부터 적복진 간택과 황후 책봉까지의 추억을 생각하며 오열한다.
결국 여의의 뜻대로 황후가 생전의 행적이 좋지 못하고 판단력을 잃었기에 황후의 예로 장례를 치르기 불편할 터이니 황귀비의 예로 행하고, 일체의 기록과 그림을 남기지 말고 (다만) 오라나랍씨가 훙(薨)했다고만 공표하라고 명한다.[5] 태후가 찾아와 이 처사에 대해 궁 내에서도 의견이 분분하다며 여의를 황후의 예로 장례치르지 않는 건 물론 순혜황귀비와 합장하고, 위패 및 제향도 올리지 않고 모든 사서에 기록도 남기지 않고 그림도 남기지 않다니 아직도 그녀에게 앙금이 남아있냐고 한소리 한다. 그러나 여의는 황후의 자리, 영화, 권세를 비롯한 모든 것을 개의치 않았으니 자신조차 여의에게 황후의 책무를 강제할 필요는 없고 여의는 본래 궁중에 있지 말았어야 할 사람이라고 얘기한다.[6][7]
이후 여의가 죽은지 9년이나 지났는데도 이옥을 비롯한 심복들의 간청에도 후궁들조차 찾지 않고, 양심전 안에서 여의가 생전에 가장 아꼈고 사후 유품이나 다름없는 녹매 화분만[8] 바라보며 두문불출한다. 태후가 15황자 영염이 혼례를 올리고 친왕에 봉해진데다 7공주와 8공주도 모두 시집을 갔으니, 거의 미쳐버린 채로 유폐된 위연완을 처리해서 매듭을 지어야되지 않겠냐고 하자 심복들을 시켜 그녀를 독살한다.
여의의 사후 한참의 세월이 흐른 뒤 아들 가경제에게 양위하고 태상황이 된 뒤에도 외롭게 늙어가던 중 태감의 도움을 받으며, 한 상자를 꺼내는데 그 안에는 여의가 직접 녹매와 여지를 수놓은 손수건과[9] 건륭제에게 절연을 선언하며 잘랐던 머리카락이 있었다. 건륭제는 늙어서 백발이 된 자신의 머리카락을 잘라 상자 안에 함께 넣고, 그 상자를 손에 꼭 쥔 채로 눈을 감아 사망하는 것으로 드라마는 막을 내린다.[10]
자신의 이기심으로 수많은 후궁들을 고통과 죽음으로 밀어넣은 업보로 그토록 사랑했던 여의는 생전에 화해하지 못한 채로 떠나보냈고, 결국 자신도 죽기 직전에나마 끝나버린 여의와의 인연을 어떻게든 이어가고자 하는 서글프지만 자업자득의 최후를 맞았다. 비록 여의가 죽어서나마 자유로울 수 있도록 황귀비의 예로 장례를 치르고 그녀에 대한 기록도 전부 지워버렸지만, 건륭제 본인이야말로 죽을 때까지 여의에게서 벗어나지 못했고 평생을 그로 인한 후회 속에서 살아갔다.
그나마 홍력 자신을 두고 암투를 벌이는 궁중과 내명부의 여인들에게 휩싸여 미쳐갈 수밖에 없는 환경이었다고 옹호할 수 있다. 게다가 슬하의 자식 17남 10녀 중 4남 1녀를 제외한 대부분이 자신보다 먼저 죽었고, 황후와 후궁을 통틀어 22명의 부인 중 먼저 사망한 자들만 무려 14명이다. 그러나 홍력이 직접적으로 죽게 만든 자들 중에는 아들(영황, 영모)과 후궁( 의환, 여의, 연완)도 있었으니 결국 변명에 불과하다.
이렇듯 본인부터가 후궁들을 진심으로 대하지 않고 제멋대로 이용하기만 했으니, 당연하게도 홍력을 진심으로 사랑하는 사람은 랑화, 여의, 희월, 의환 뿐이었다.
3. 원작에서
전작의 생모가 미천하고 뉴호록씨의 양자라는 설정은 이어지나 견환에게 항상 효자였던 전작과 달리 생모에 대한 미련 때문에 뉴호록씨를 태후로 추존한 후 거처를 수강궁에서 자녕궁으로 옮기는 것을 망설인다. 그러나 여의의 설득으로 태후의 거처를 옮기고 생모를 위해 신분이 낮은 선제의 후궁들을 비빈릉에 안장시킨다. 생모의 출신 때문에 서출 콤플렉스가 있어 다음 황위는 적자에게 물려주고 싶어해 황후인 부찰 랑화를 신경써준다.처음엔 여의가 3황자 홍시가 찬 여자라 쪽팔린다고 안 좋아했지만 막상 혼인하고 보니 솔직함이 마음에 들어 총애하게 되었다. 원래는 청앵과 남매 내지는 청매죽마 사이로 "청앵 누이"라고 불렀다. 소설 수정판에선 <장두마상> 연극을 보며 청앵과 만나게 되는데 홍력은 부부가 재결합하는 이 연극의 결말을 좋아했으나 청앵은 싫어했다. 그래서 청앵이 미리 홍력의 이름을 사칭하고 여주인공이 이별을 선언하는 결말로 바꾸는데 분위기가 파토나고 청앵은 사실대로 말한 뒤 밖으로 나간다. 홍력은 뒤따라가서 "청앵 누이"라고 부르고 결말에 대해 이야기 하는데 홍력은 여자가 참으면 다 원만해진다고 하고 청앵은 남주인공이 여주인공을 지키지 못했는데 왜 다시 부부가 되어야 하냐고 한다. 둘 다 굽히지 않았지만 홍력은 오히려 청앵에게 호감을 느낀다. 그런데 수녀선발 직전 홍시가 곧 실각할 것이라는 소식을 듣고 형을 위해 용서를 구하려 하는데 랑화가 가도 소용없으니 황제가 시킨 일을 하라고 말리자 그만두고 청앵이 혈육이니 중시할 것이라는 얘기를 듣자 복진을 고른 후 옹정에게 가려고 한다. 홍력은 랑화를 측복진으로 선택하고 홍시의 소식에 눈치없이 축하하려고 하며 청앵에게 비아냥거린 희월을 싫어해 적복진으로 고를 듯하다가 낙선시키는 것으로 모욕을 주고 청앵을 적복진으로 선택한다. 하지만 옹정이 나타나 홍시와 황후를 실각시켰음을 밝히며 무산시키고 홍력은 두려워하면서도 물러나지 않아 옹정은 황후의 언니인 효경황후를 떠올리며 그 집안의 희망을 꺾고 싶지 않아서 홍력이 랑화를 적복진으로 삼게하는 대신 청앵을 측복진으로 삼고 싶어하는 홍력의 소원을 들어준다. 덤으로 희월을 격격으로 삼게하나 홍력은 마음에 들어하지 않았다.
즉위 후엔 혜귀비 고희월을 더 총애했지만 여의에게 조정과 후궁의 관계 때문에 예전만큼 잘해주지 못하게 될 거라고 귀뜸해 주었다.
아버지 못지않은 독종. 여성편력이 쩌는데다 한 후궁만 총애하지 않고 두루두루 총애하여 후궁들의 암투를 매우 치열하게 만드는 원흉. 여의가 시녀 아약에게 모함을 당했을 거라 의심하면서도 냉궁으로 보내고 아약은 후궁으로 만들어 총애한 줄 알았으나 이게 다 페이크. 아약의 처소를 찾을 때마다 발가벗겨 무릎꿇리고 넌 그저 여의의 노비일 뿐이라며 정신공격을 해댔다.
냉궁에서 방화사건과 비상사건으로 여의의 목숨이 위험하자 홍력은 더 이상 방관하지 못하고 여의를 데려온다. 배후에 희월이 있다고 의심하여 여의가 조사하는 건 허락하나 희월은 다시는 만나고 싶지 않을 정도로 싫지만 고빈을 버릴 수 없어 쫓아내지 못한다. 희월이 자백하며 부찰 제영의 죽음은 랑화의 짓일 거라고 하자 나의 황후는 그렇지 않다며 부정하나 홍력은 이미 부찰 제영의 죽음이 랑화의 짓이라고 짐작하고 있었다. 고희월의 죽음 후 랑화를 멀리하나 그럼에도 적자의 어머니인 랑화를 놓지 못하며 영종이 죽은 후 랑화의 건강이 악화되자 그녀의 건강회복을 위한 지방순행을 단행한다. 랑화가 악행을 저지르긴 했으나 대부분의 일은 그녀의 짓이 아니라는 사실을 밝히고 죽자 슬퍼한다. 랑화가 죽은 후 믿어주지 못한 죄책감 때문에 그녀를 잊지 못하는 중이다. 랑화의 장례식에서 영황과 영장이 지나치게 슬퍼하지 마시라고 말하자 적모의 장례에 슬퍼하는 기색이 없고 불충불효하다고 황위계승권을 박탈했다. 얼마 후 여의의 처소에서 자다가 랑화를 부르면서 잠에서 깨는데 여의에게 꿈에 랑화가 눈물을 흘리면서 '왜 신첩의 이름을 불러주지 않으세요? 아직도 신첩을 의심하십니까? 신첩이 싫으십니까?'라고 묻는다고 말하며 괴로워 한다.
태후를 경계하여 태후가 들인 후궁들을 불임으로 만들어버렸다. 병에 걸렸을 때 홍력은 "어냥"을 불렀다.[11] 홍력에게 어머니는 이금계 하나 뿐이고 태후를 어머니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홍력은 사실 여의가 아닌 청앵의 아이같은 천진난만함과 솔직함을 사랑했고 청앵에 대한 미련 때문에 여의를 놓지 못한다. 홍력의 순원황후는 청앵이다. 청앵의 대역으로 외모가 닮은 위연완과 왕부지가 있다.
4. 평가
배우 곽건화가 홍력 역에 캐스팅되었다. 캐스팅 때부터 역대 최고 건륭제 비주얼이라며 큰 기대를 모았고, 예상대로 드라마 내내 변발로도 감춰지지 않는 절대불변의 미모를 보여주었다. 하지만 외모 빼고는 장점이 없다는 평가를 받으며 현지에선 渣男(똥차와 비슷한 뜻의 신조어)에서 기반한 渣龙이라는 별명으로 불리며 욕 먹는다. 이런 탓에 작가가 드라마에서 조금 순화시키려했으나 곽건화가 원작대로 하자고 해서 무산.패러랠 월드인 여의전의 아들과 비교하여 좋게 아버지가 재평가되는 면이 있었다. 팬들은 같은 황’썅’이라도 좋아하는 여인은 확실히 지켜주었다는 점[12], 후궁의 혼수품을 기억하는 등 섬세하고 아낌없이 챙겨주는 등, 잘해주는 면을 좋게 평가한다. 또 옹정제는 감정이 앞서 나가서 후궁들, 자식들에게 함부로 손찌검, 발길질하지 않았다.[13] 견환의 사통을 의심했을 때 손찌검을 딱 한 번 했지만, 여의전에서 건륭제는 아들들은 물론이고, 순원황후급으로 좋아했던 여인이라도 감정이 앞서나가면 수 차례 손찌검한다.
때리기만 하면 다행으로, 4황자는 김옥연이 뒷수작을 부리며 임신한 황후에게 불경한 말을 했다[15]는 이유로, 1,3황자는 주변인들이 순귀비가 계황후가 될 것이라고 떠받든 것과 부찰 황후의 장례에서 울지 않았다는 이유로 다 호적에서 파버리고 황위계승권을 박탈해버린다. 그래놓고 결국은 위연완의 아들이 괜찮다며 위연완을 죽여버리고 태자로 세우는 걸 보면 그야말로 미친 놈(...) 반면 옹정제 역시 3황자 홍시를 호적에서 파버리긴 했지만 3황자를 태자로 세우려는 황후의 뒷수작 때문에 심기도 불편했고, 이미 생모 제비의 아버지(홍시 입장에서는 외할아버지)가 선황 대에 뇌물 받다가 처벌받은 배경이 있고, 그 생모 제비는 섭란의에게 약을 먹여 불임으로 만든 뒤 자살했고[16], 영귀인에게 찝적거린 일까지 있으니 애저녁에 눈 밖에 나긴 했지만 그래도 끝까지 3황자 홍시를 꾸짖고 감싸다가 결국 역적인 8,9황숙과 14황숙을 편드는 말에 빡 돌아서 터진 일이다.
부자가 공통적으로 후궁에게 매맞는 벌을 내린 적이 있는데, 옹정제는 최음향을 쓴 것과 그로 인해 유산하게 된 것까지 알고도 그저 안릉용을 봉호를 박탈하고 답응으로 강등하는 것으로 마무리하려 했지만 견환의 첫 아이를 유산시킨 것까지 알고 나서야 매일 뺨맞는 벌을 내렸는데, 건륭제는 5공주가 김옥연의 개로 인해 놀라 죽었다는 이유로 자기 분 풀릴 때 까지 채찍형을 내린다(...) 물론 공주의 옷이 김옥연 처소에서 나온 천으로 만든 것이고 거기서 김옥연이 쓰는 향이 났다는 증언이 있긴 했지만 김옥연이 반박했듯 육목평(당시 경빈)에게 준 그 천을 하필 공주의 옷을 만들어 줄 줄은 알 수 없었기 때문에 말이 안 되는 증거 혹은 진짜라 해도 우연인 것으로 실제로 김옥연은 이 건은 누명을 쓴 것이었다. 물론 건륭제는 가볍게 무시하고 더 조사하지도 않는다.[17]
또한 부자가 같은 의심병을 가졌으며 사통에 민감하지만 아버지는 자신의 어머니가 사통을 저지른 상황에 대한 트라우마가 있기 때문에 일부 팬들은 이해하며 동정을 한다. 그리고 과군왕이 보낸 희귀비안(熹貴妃安) 편지 같은 증거를 확인하고, 끝끝내 인내하다가 견환의 손으로 과군왕을 죽이게 하는 잔인한 복수를 한다. 그러나 건륭제는 확실한 배경 설명이 없고, 제대로 된 증거도 없는 상황에서 질투에 미쳐 사통을 의심한 상대를 곧바로 고자로 만들어 사랑했던 여인에게 내시로 주는 등 이해가 안가는 또라이짓을 하는 바람에 아버지가 더 고평가받았다. 심지어 그 사랑했던 여인은 그를 특별한 친구로 여겼을 뿐, 사통하지 않아서[18] 평범한 시청자가 보면 역겨운 상황으로 느껴지기 충분했다.
거기다 후궁을 거느리는 것이야 황제로서 어쩔 수 없는 일들이라고 해도, 위연완이 보내줬다고 기녀와 노닥거리기까지 한 건 더할 나위 없는 쓰레기 인증. 다른 건 극 중 흐름상 이해하던 팬들도 여기서 학을 떼는 경우가 많다. 오죽하면 극 중에서도 결국 여의가 머리를 자른 후, 건륭제를 시중들었던 기녀들을 비구니로 만들었다며 건륭제가 징징거리자 태후가 여의가 착해서 그걸로 끝났지 자기 같았으면 머리를 잘라 성문에 걸어놔서 백성들을 달랬을 거라고 한 소리 하는 지경이다. 그 이후의 대화도 가관인데, 여의를 황후로 삼을 땐 그렇게 싫어해서 반대했으면서 왜 지금 폐할 때도 반대하냐고 태후에게 따지자 태후도 경인궁 오라나랍씨 때문에 여의를 싫어했던 거라며 황제는 그렇게 황후로 세우겠다고 하더니 이젠 왜 못 폐해서 난리냐, 늙어서 싫어졌냐고 역으로 따지고 할 말 없어진 건륭제는 변한 건 여의라며 땡깡을 피운다.
아들이 아버지보다 훨씬 냉혹한 놈이라는 건 엽혁나랍 의환과 화비의 사례를 비교해보면 알 수 있다. 아버지인 옹정제의 경우, 불임약을 먹이긴 했으나[19] 적어도 화비에게 죄책감을 가지고 있어 잘해주려 했다. 그래서 화비가 저지른 수많은 악행이 드러났음에도 웬만하면 목숨은 끊지 않으려 했고, 화비가 자신을 진심으로 사랑했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옛정을 생각하여 나중에 평안히 여생을 살게 해주려 했다. 그러나 건륭제는 오직 태후가 추천했다는 이유만으로 죄없는 의환 모자를 차갑게 대했다.
남주인공을 너무 지나칠 정도로 성격파탄자로 만들어 극에 몰입이 안된다는 비판이 있다. 도저히 남주의 정신상태가 이해가 되지 않으며, 이 정도로 학대를 당하고도 견환처럼 진작에 돌아서지 않는 여의를 신기해하는 시청자들이 많다. 안그래도 극의 중심에 있지 못해 페이크 주인공 논란이 많은데 저런 쓰레기를 끝까지 놓지 못하는 여주의 성격에 더욱 몰입이 안된다는 편. 아무리 후궁 시리즈가 로맨스가 주요한 작품은 아니라지만 독자와 시청자들에게는 고구마 백개를 삼키는 듯한 답답함과 짜증을 유발한다. 심지어 부찰 랑화가 존재하는 전반부에는 악행을 다 알고 나서도 결국은 건륭제가 부찰 랑화를 덮는 전개라[21] 여의도 더더욱 답답한 캐릭터가 된다.
다만 이것은 원작과 달리 설명이 부족해서 생긴 문제다. 원작 독자들에게도 욕은 많이 먹지만 왜 이렇게 되는지는 이해했다. 원작에서는 홍력이 아버지에게서 냉대받아 궁에서 멸시받았다는 전작의 설정이 이어지고 희귀비와 오라나랍씨의 암투를 어릴 때부터 목격하여 후궁들을 의심하게 되는 원인이 된다. 올바르게 자라기 힘든 환경에서 자란 것이다. 청앵에게 반한 것도 주눅들어 살던 자신과 달리 당당하고 그가 봐온 여자들과 다르게 솔직해서다. 또한 황제가 되면서 후궁들이 겉으로는 자신에게 순종하지만 끊임없이 암투를 벌이자 더욱 의심하게 된다.
이런 행적들로 인해 엄청나게 욕을 얻어먹어서인지 드라마에서는 원작과 다르게 마무리된다.
[1]
오직 정실인 황후만이 아내로, 원후 부찰씨와 계후 오라나랍씨만이 아내라고 할 수 있다.
[2]
이쪽은 추봉으로, 생전에 혼인한 아내는 아니다.
[3]
병이 심해서 남은 시간이 3~4개월정도였지만 여의 본인이 치료부터 약을 먹는 것도 모두 거부했다.
[4]
원작에선 누군지 모른다. 경빈은 자금성에 남아있었다.
[5]
여의는 생전에 자유로워지기를 바랐고 황후의 예로 장례를 지내면 죽어서도 영원히 자신의 옆에 묶여있어야 하기에 그렇게 했던 것이다.
[6]
후궁들간의 편애를 일삼으며 내명부를 개판으로 만드는데 건륭제도 한몫했지만, 여의가 사랑과 이상에만 집착하며 황후로서 후궁들을 잘 다스리지 못한 것도 사실이다.
[7]
사실 여의가 황후가 되고나서 트롤짓을 한 후궁들이 너무 많다. 당장에 소록균의 아들들도 문제가 되었고 악역인 김옥연, 위연완, 액음주 이 셋의 트롤링이 앞선 악역들인 랑화와 희월을 압도한다. 또한 서비의 자살, 매빈의 사사, 영비 파림씨의 유산, 향비의 불임같은 랑화가 황후였을 때보다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문제들이 즐비했다.
[8]
건륭제가 남방에서 어렵게 구해와 직접 여의에게 선물해준 것으로 여의가 임종을 맞이하는 자리에도 있었다. 여의는 이 녹매를 자신이 좋아하는 꽃을 기억해주고 선물한 건륭제의 진심이라고 여기며, 건륭제와의 사이가 파탄나고 익곤궁에 유폐됐을 때에도 유일하게 곁에 두고 각별하게 아꼈다.
[9]
여의가 잠저시절 건륭제에게 직접 만들어준 손수건으로, 여기서 녹매는 여의의 본명인 청앵을 뜻하고 여지는 건륭제를 뜻한다. 건륭제 역시 황제에 등극한 뒤에도 이 손수건을 꼭 들고다녔다.
[10]
이때 말라죽어서 오랫동안 꽃을 피우지 못했던 여의의 녹매 화분에 싹이 튼다. 이를 본 태감이 기뻐하며 알려주지만 건륭제는 이미 숨을 거둔 뒤였다.
[11]
태후는 "황어냥"이라고 부른다.
[12]
황제답게 매우 권위적인 인물이지만 견환이 자기에게 순종하지 않고 출궁해도 잊지 못하고 여러 가지 파격적 특혜를 주며 환궁시켰고, 어머니의 트라우마로 후궁의 사통을 가장 혐오하였음에도 사통한 정황이 거의 확실한 견환을 끝끝내 망설이며 사사하지 못했다.
다른 후궁이었다면 어림도 없었을 일이다.
[13]
3황자 홍시가 영귀인을 탐했을 때, 기귀인이 6황자가 온실초의 아들이라고 했을 때, 홍시와 기귀인의 뺨을 때리긴 했다. 하지만 이건 맞은 쪽이 너무 엄청난 병크(...)를 터뜨렸기 때문에 때린 게 오히려 봐주는 셈.
[14]
자기가 용비를 지나치게 총애하여 후궁의 기강을 엉망으로 만들었으면서 자초지종도 묻지 않고 용비에게 불임약을 가져다 준 여의의 뺨을 때렸다. 용비에게 불임약을 건네준 건 여의지만 이를 명령한 것은 태후였고, 애초에 용비는 처음부터 건륭제를 싫어해서 불임약임을 알면서도 스스로 마신 거였다...
[15]
다만 김옥연도 여의가 임신한 줄은 몰랐다. 그 전에 쌓은 업보가 있지만.
[16]
물론 홍시의 체면을 생각해서 황후의 권유로 병사로 처리하긴 했지만, 후궁의 자살은 친정까지 연루되는 불경죄에 속한다.
[17]
사실 조금만 냉정하게 생각한다면 김옥연보다도 육목평을 의심하는 게 수순이다.
[18]
물론 시대 배경을 따지자면 둘의 관계에 불쾌감을 느낄 수도 있기 때문에 여의도 처신에 어느 정도는 문제가 있었다. 하지만 건륭제는 이러한 관계를 알고 의심한 게 아니라, 자객에게서 여의를 구하는 중에 발생한 신체 접촉 때문에 불쾌함을 느낀 것이었다.
[19]
화비의 오빠 연갱요가 야심이 많고 군권을 모두 장악해서 이유를 납득할 수 있었다
[20]
서비가 분신자살을 했음에도 죄책감조차 느끼지 않고 때마침 태어난 여의의 딸 5황녀 경시에게만 관심을 가지고 장례조차 신경써주지 않았다. 심지어 경시가 심장병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 '서비가 저주한 것은 아닐까?'라는 한마디 한다. 이쯤되면
사이코패스처럼 보일 정도. 반면 옹정황제의 여인에서 옹정제는 안릉용이 유산하자 (화비의 일로) 하늘이 자신을 용서하지 않는 것 같다며 큰 죄책감을 보였다.
[21]
심지어 가장 큰 사건인 아약의 배신도 결국 건륭제가 아약의 혀를 잘라 배후를 덮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