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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0-09 00:25:49

안노 히데아키/생애



1. 개요

안노 히데아키의 생애를 정리한 문서.

1.1. 학창 시절과 아마추어 시절

파일:젊은 시절의 안노 히데아키.jpg
초등학교 시절부터 만화와 텔레비전에 푹 빠져 살았던[1] 이른바 1세대 오타쿠. 중학교 시절에는 순정만화에도 심취했고, 고등학교 시절에는 미술부의 부장을 맡을 정도로 그림 실력이 출중했고 아마추어 특촬 모임에 들어간 적도 있었다고 한다.

재수한 끝에 실기시험만으로 입학 가능한 오사카예술대학에 들어갔으나 학업보다는 동아리 활동에 매진했다. 그리고 동아리 활동을 하면서 만난 학우들(훗날 결성되는 가이낙스의 주축 멤버들)과의 인연으로 아마추어 영상 제작 집단 DAICON FILM( 다이콘 필름)의 멤버가 되었고, 오사카에서 열린 SF 대회의 오프닝 애니메이션과 특촬 영상 제작에 참가하게 되었다. 이후 《 돌아온 울트라맨》이란 패러디 특촬물과 《 애국전대 대일본》 DAICON IV 오프닝 같은 작품의 제작에 참여해 관심을 받았다.
위는 「서투른 대포도 많이 쏘면 맞는다!(へたな鉄砲も数うちゃあたる!)」[3]는 1979년(재수할 때 소속되었던 아마추어 애니메이터 집단 '그룹 SHADO[4]'에서 취미 활동으로), 「튼튼한 타이어(じょうぶなタイヤ!)[5]」은 1980년에 오사카 예대 재학 시절에 만든 것.[6]
DAICON III 오프닝
DAICON IV 오프닝
DAICON IV 오프닝은 한국에선 여태 정식 공개된 적이 없다가, 2008년 PISAF에서 《 극장판 천원돌파 그렌라간 홍련편》의 상영 뒤에 치러진 특별 행사에서 상영되었다. 본편 BGM은 영국의 심포닉 프로그레시브 록 밴드 ' 일렉트릭 라이트 오케스트라'의 Twilight.[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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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이낙스의 초대 CEO였던 오카다 토시오가 운영하던 오타쿠 대상 굿즈 판매 가게 제너럴 프로덕츠의 홍보 포스터. 안노가 그린 DAICON FILM 포스터에는 중앙에 본인 캐릭터가 그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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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ICA FILM 활동 시절의 아마추어 특촬 작품 《돌아온 울트라맨》, 안노 히데아키는 총감독[8] 겸 주연인 울트라맨(그것도 본인이 고집해서 안경 쓴 민낯)으로 출연했다.

위의 경험에서 만난 지인들과의 인연으로, 아르바이트 애니메이터로 스튜디오 누에의 《 초시공요새 마크로스》(1982년작)의 원화를 그렸다.

* 다이콘 3에는 스튜디오 누에 팀(이들도 SF 동호회 출신의 1세대 오타쿠들)이 왔었는데, 이때 만난 인연으로 프로의 애니메이터들은 어떻게 일하는지 궁금해서 스튜디오 누에가 만들고 있던 마크로스 TV판 작업에 견학을 갔는데, 이때 이타노 이치로가 느닷없이 컷 봉투 원화를 주면서 이거 고쳐보라고 했다. 안노는 그렇게 메카반(班)에 들어가 3개월간 마크로스 원화를 그렸다. 원래 애니메이터는 동화부터 시작해서 선긋는 연습부터 하고 원화로 들어가는데 안노는 선을 너무 지저분하게 여러 번 긋는 버릇이 있어서 도저히 동화는 시킬 수가 없었고, 그렇다고 해서 그림을 못 그리는 건 아니었기 때문에 바로 원화로 투입되었다. 때문에 안노 히데아키는 자신은 동화를 그린 경험이 없어서 그림이 서툴다고 겸손을 떨었다. 그리고 잠잘 곳이 없던 안노는 이때 이타노 이치로의 집에서 신세를 졌다고 한다. 그리고 이때의 인연으로 나중에 마크로스 극장판에도 원화로 참가한다. #
* 마크로스 TV판 작화를 할 때는 1컷 1,800엔을 받았다고 한다. TV판이라서 적게 받았는데, 후술할 나우시카 때는 깜짝 놀랄 만큼 두둑하게 받았다고 한다. 그리고 잠잘 곳이 없어서 톱크래프트의 작업 책상 밑에서 잠을 잤다고 한다. #

1.2. 스튜디오 지브리와의 인연

다이콘 필름에서 활동할 때 잡지 아니메쥬에 실린 바람계곡의 나우시카(1984년작) 작화 스태프의 모집 광고를 보고 도쿄로 가서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을 만났다. 미야자키는 안노가 면접에서 가져간 원화를 보고 그 재능을 높이 평가했고, 까다롭다고 여겨졌던 클라이맥스의 거신병 장면의 원화를 맡겼다. 이렇게 된 이유는 미야자키가 인력이 부족했기 때문이었기도 한데, 안노 말로는 호박이 넝쿨째 굴러온 격이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스즈키 토시오 말로는 그런 어려운 씬은 젊은 애들에게 맡겨야 필사적으로 하니까 일부러 맡겼다고 밝힌 바 있다.

* 안노가 밝히길, 자신은 거신병 장면의 매수를 더 늘려 그렸어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미야상'(미야자키)은 작화 팀에 여유가 없어서 개봉 일자에 못 맞추니 그걸로 됐다고 하고[9], 거신병의 그림자도 색을 더 넣어서 거대한 입체감을 주어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미야상으로부터 2색까지 늘리는 것은 허락하나 3색으로 늘리면 죽여버린다는 쪽지를 받았다고 한다. 안노는 스태프들 몰래 매수를 늘려 원화를 그렸지만, 지금도 "거신병이 무너지기 전에 머리를 하늘로 쳐들고 고개를 한 바퀴 돌리면서 녹아내렸어야 했다; 그리고 거신병이 녹아내리는 장면도 원화와 원화 사이의 동화도 미야자키 하야오는 동화 5장이면 된다고 지시했는데 동화 7장을 넣었어야 했다. 녹아내리는 것이 너무 빨라서 러시 필름을 봤을 때는 죽고 싶었다. 실패작이었다"라며 두고두고 아쉬워한다. 그 이후로는 미야자키 하야오의 말은 듣지 않게 되었다고 한다.

안노는 지브리에서 채용이 결정됐지만 오사카 예대에서 학비를 내지 않아 제적되고 말았다. 도쿄에 거주지가 없던 안노는 나우시카 작업 기간 동안 스튜디오에서 먹고 자고 생활했다. 그리고 이 3개월 동안 카나다 요시노리와도 함께 일했는데, 카나다는 애니메이션은 대충 할 곳은 대충 해도 된다고 가르쳐 줬다. 안노는 그 말이 맞다고 생각했다며 전력으로 집중해야 할 장면과 힘을 빼야 할 대목은 빼는 연출을 하게 된다. 정해진 예산이 100일 때 별로 중요하지 않은 장면까지 일일이 공을 들이면 전반적으로 퀄리티가 낮아질 뿐으로, 보여주고 싶은 대목에 80을 들이고 나머지는 20으로 대충 해도 된다는 뜻이다. 이 가르침은 안노의 작품 세계에 그대로 드러난다. 신비한 바다의 나디아가 그렇고 신세기 에반게리온(화장실 변기 그림 한 장으로 횡스크롤하면서 대사로만 몇 분간 때우면서 제작비를 절감하는 연출)도 그렇다.

안노는 이 시절에 만난 이타노 이치로 미야자키 하야오를 자신의 스승으로 여기고 있다. 작화 스승이 이타노고 연출 스승이 미야자키이다. 특히 미야자키 하야오로부터 애니메이션 감독의 역할이 뭔가를 배웠다고 한다. 안노가 미야자키를 의식하게 된 작품은 《 미래소년 코난》인데, 여동생과 채널 싸움을 해서 이겨서[10] 본방을 사수했다. 《 루팡 3세 칼리오스트로의 성》은 극장에서 2번 연속 봤는데 동시 상영이어서 다른 영화 할 때는 로비에서 기다렸다고 한다.

이후에도 안노는 가이낙스 소속이면서도, 가이낙스가 한가할 때는 스튜디오 지브리의 작품에 참가했다. 반딧불이의 무덤(1988년작)에서 관함식 장면을 그렸다.

작화보루에서도 안노의 80년대 및 비교적 최근의[11] 작화 영상들을 볼 수 있다.

1.3. 왕립우주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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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때의 작업을 발판 삼아 1984년 12월 24일에 함께 DAICON IV를 만들었던 다이콘 필름 멤버들( 야마가 히로유키, 아카이 타카미, 오카다 토시오)을 주축으로 가이낙스를 설립했고, 첫 번째 작품인 극장용 장편 애니메이션 영화 《 왕립우주군》 제작에 참여했다. 안노는 우주선의 발사 장면, 전투기 격추 장면 등의 원화를 그렸다.

왕립우주군은 평론가들로부터 호평을 받았지만 일반 대중은 재미없다며 외면했기에 흥행을 대차게 말아먹었다. 당초 이 작품만 만들고 해산할 예정이었던 가이낙스는 흥행 실패로 생긴 빚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살 방법을 궁리하여 여러 애니메이션의 하청 작업과 간간이 만드는 오리지널 창작물로 회사의 생계를 꾸려가게 된다.

1.4. 톱을 노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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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립우주군》의 실패는 또 다른 의미에서 하나의 전기였다. 가이낙스 사장이었던 오카다 토시오는 짊어진 빚을 갚기 위해 잘 팔릴만한 노선으로 오타쿠들이 좋아하는 미소녀와 메카가 등장하고 각종 패러디로 버무려진 OVA SF 애니메이션 《 톱을 노려라!》를 기획했다. 그 각본을 읽은 안노는 감독직을 자청했다. 이렇게 안노의 경력에서 첫 연출작인 톱을 노려라[12]는 의외로 많이 팔렸을 뿐만 아니라 재능 있는 작화가 정도로만 인식되던 그가 뛰어난 연출 능력 또한 가지고 있다는 것을 보여줬고 이로써 안노는 업계의 주목을 받게 되었다.

1.5. 신비한 바다의 나디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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톱을 노려라!》의 준수한 흥행과 평가 이후 《 신비한 바다의 나디아》를 NHK 도호라는 굴지의 대기업으로부터 넘겨받게 되었다. 나디아는 단번에 가이낙스의 대표작이 될 정도로 큰 성공을 거두며 안노를 애니메이션계의 양지로 끌어올려 줬다.

하지만 이 작품은 그에게 상당한 좌절을 안겼다. 사실상 하청업체로서 버거운 스케줄을 감내해야 했으며 스폰서와의 잦은 충돌을 겪으며 가이낙스라는 조직 자체가 흔들렸는데 실질적인 수익은 대부분 NHK에서 가져갔고 빚을 다 갚지도 못했다. 결국 《나디아》 종영 직후 오카다 토시오가 현실에 염증을 느끼고는 가이낙스를 등졌으며[13] 마에다 마히로 등의 인물들은 퇴사하여 곤조를 설립했다.

나디아는 한국에선 1992년 10월 22일부터 1993년 4월 8일까지 MBC 방송에서 매주 목~금 오후 6시 10분에 방영하여 일본 못지않게 적지 않은 인기를 끌었다.

1.6. 공백기

《나디아》 종영 이후 4년의 공백기를 가졌다. 사다모토 요시유키의 말에 따르면 《에반게리온》의 기획이 오랫동안 승인되지 않았고, 안노는 스튜디오에서 이불을 깔고서 4년간 생활을 했다고 한다. 2년이 지난 시점에서 월급도 안 나왔다고. 이 시절에는 운동을 하며 몸에 체력을 붙였고 겨울에는 스키, 여름에는 스쿠버 다이빙을 취미로 즐기기 시작했다고 한다.[14]

안노는 자신에게 있어서 멘토이자 목표이기도 한 토미노 요시유키를 찾아가 그의 아래에서 일을 하면서 비로소 초심으로 돌아와 다시금 자신만의 방향성을 추구하게 됐다.[15] 그리고...

1.7. 신세기 에반게리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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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5년, 그의 대표작인 《 신세기 에반게리온》이 방영됐는데, 온갖 기독교적 요소와 은유, 오마주, 패러디 음모론으로 점철된 이 작품은 이례적일 정도로 대성공을 이루었다.

에반게리온은 안노에게는 4년 만에 겨우 작업한 작품으로, 당시 인터뷰에서 '전력을 다해서 그리고 있다'고 말하는 등 정말로 모든 것을 쏟아부은 모양이다. 게다가 작품 제작 과정이 힘들었는데, 제작 막바지에 이르러서는 제작비에 치여가며 간신히 완성했다. 결국 TV판의 종영 이후 안노는 완전히 폐인이 되었는데, 소문을 들은 미야자키 하야오가 회사에 전화를 걸어서 "나도 그랬다. 쉬면 된다!", "만들고 싶을 때가 될 때까지 쉬면 된다. 그때가 되면 사람도 돈도 반드시 모인다."라고 말을 해줘서 마음이 편해졌다고 한다. 그리고 곧바로 극장판을 만들어야 할 사정이라서 압박을 느껴서 위험할 때도 여러 사람, 특히 미야자키 하야오의 도움이 컸다고 한다. 안노의 에반게리온 제작 비화 인터뷰 동영상

그렇게 힘들게 만든 작품이라 육체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지쳐있던 안노는 주변의 공격에 민감하게 반응했다. 특히 1996년에 있던 인터뷰에서 논란이 많던 25화와 26화[16]는 아무 문제가 없으며 만약 이상하다면 시청자 니들 잘못이라고 말했다.[17]

이후 안노와 가이낙스는 《신세기 에반게리온》의 극장판의 제작에 착수했고, 총집편 격인 사도신생과 완결편 엔드 오브 에반게리온을 내놓았다.

사도신생은 TV판 1화~24화의 단순한 총집 영상이고 엔드 오브 에반게리온은 진정한 에바 TV판의 결말이다. 엔드 오브 에반게리온은 파격적인 연출과 내용 전개로 끝을 맺으면서 극장을 찾은 관객들을 완전히 멘붕시켰는데 일설에 의하면 관람 도중 구토를 했다는 관객도 있다고 한다.

다만 극장판의 스토리텔링 방식은 토미노 요시유키의 《 전설거신 이데온》이 훨씬 앞섰다. 안노가 이데온의 영향을 많이 받기도 했고 엔드 오브 에반게리온도 전체적으로 이데온의 극장판을 그대로 오마주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사실 이데온도 토미노가 영미권 작품인 유년기의 끝을 흉내 낸 것이고, 안노도 유년기의 끝의 팬임을 몇 번이고 밝혔지만 영상적인 부분과 그것을 시청자에게 선보이는 방식은 명백히 이데온을 참고했다.

훗날 미야자키 하야오와 대담을 주선한 적이 있는데, 미야자키는 안노를 옆에 두고 그의 작품을 논할 때, "안노의 가장 큰 장점은 솔직하게 만든다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웃음) 에반게리온 같은 정직한 영화를 만들어서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증명해 버렸지."라고 웃으면서 뼈 있는 비평을 날렸다.[18][19] 옆에 앉아 있던 안노의 표정은 미묘... #[20]

미야자키 하야오 입장에서 에반게리온을 저평가한 이유는 어린 시절부터 TV를 보고 자란 '테레비 세대'가 자기들이 좋아하는 특촬물( 울트라 시리즈, 가면라이더) + 거대로봇물 애니메이션( 기동전사 건담, 전설거신 이데온) + 인형극( 썬더버드) + 영미 SF 소설( 유년기의 끝) 및 영화에서 이것저것 흉내 낸 것( 패러디 오마주)일 뿐으로, 창작가 본인이 영향을 받은 작품을 스스로 소화해서 재창조한 철학과 사상이 없기 때문이었다. 또한 친우인 오카다 토시오도 비슷한 논조로 에반게리온을 평했다. 이러한 주장은 에반게리온에 영향을 준 작품들을 구해 보기 힘들었던 90년대와 2000년대까지는 "에반게리온을 지나치게 과소평가하고 있다" 라는 이유로 에반게리온 팬에게 외면받았으나, 인터넷을 통해 이런 작품의 영상과 책을 다시 구해 볼 수 있게 된 2000년대 중반 이후부터는 결국 이 주장이 맞았다는 것으로 굳어져 가고 있다. 미야자키나 토미노는 안노와 비슷한 시대의 작품을 크리에이터 입장에서 많이 보고 공부할 수밖에 없었던 사람들이니만큼 이런 걸 이미 과거부터 느꼈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에반게리온의 성공으로 가이낙스에는 예전이라면 상상도 못 했을 만큼의 거액이 들어왔다. 하지만 돈이 들어오니 가이낙스 경영진들은 사업 계획 없이 그냥 되는대로 하는 식의 경영을 하기 시작했다. 이때부터 막대한 돈과 인력을 쏟아부었음에도 불구하고 손해만 본 프로젝트가 수없이 많았고, 프로젝트가 줄줄이 망해도 경영진이나 담당 책임자는 돈이 있으니 개의치 않고 막장식의 사업을 계속했다. 이런 상황에서 가장 고생을 많이 한 것은 사원들인데, 사원들에게 돌아가는 돈은 거의 없었다고 한다. 이로 인해 안노는 가이낙스와 멀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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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년 당시 사진

이후 1999년 당시 가이낙스 사장이었던 사와무라 타케시(澤村武伺)의 탈세 사건이 일어나자 안노 본인은 경영에 전혀 손을 댄 적이 없고 해당 사건을 당시에 전혀 몰랐음에도 에반게리온의 방송국인 TV 도쿄에 불려가 사죄를 해야만 했다. 다음해인 2000년에 탈세 사건으로 사와무라 타케시가 사장직을 사임하고 야마가 히로유키가 사장이 되었는데, 야마가는 안노에게 '네 이름이 대표 이사직에 있지 않으면 어디에서도 신용을 해주지 않는다. 이름만이라도 괜찮으니 임원을 해 달라'라는 요청을 했다. 이에 안노는 '이름만 올리는 거라면 상관없어'라고 대답하며 가이낙스의 대표 이사직을 맡게 됐다.

2003년에도 가이낙스의 막장 경영은 계속되었는데, 회사가 기울어져 '다음 달에는 자금이 바닥난다'라는 말을 수도 없이 들었다고 한다. 그러자 안노가 대표 이사로서 할 일을 하려고 회사 상황을 서류 등으로 확인해 보았는데 매우 놀랄 수밖에 없었다. 급여에 편차가 심할뿐더러 일을 거의 안 하는 사원들은 높은 급료를 받고 있었고, 정작 가이낙스를 부자로 만들어준 에반게리온에 시간과 노력을 투자한 사원들은 급료가 낮았기 때문이었다. 안노는 수차례 사내 시스템의 개선을 건의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2004년에 또다시 에반게리온 덕으로 회사가 살아났지만 90년대 후반 당시처럼 돈을 낭비했다.

안노가 스튜디오 카라를 설립해 가이낙스를 퇴사한 이후로도 가이낙스와의 로열티 및 빚 문제, 사장의 성추행 사건 등으로 가이낙스와의 관계는 여전히 좋지 못한 상황이다.

1.8. 그 남자, 그 여자의 사정

에반게리온 구극장판의 여운이 가실 때 즈음인 1998년에 안노는 순정만화 원작 《 그 남자, 그 여자의 사정》를 감독했다.[21] 여러 실험적인 연출로 나름 호평을 받고 상업적 성과도 나쁘지 않았지만 막판 전개에서 자금이 부족해져서 여러 실험적 연출만 하다가 마지막 화를 흐지부지 끝내버렸는데, 이 때문에 에반게리온 때와 마찬가지로 엄청난 항의를 받았다. 그러나 애니메이터 스즈키 슌지 말로는 고교생의 사랑보다 더 나아간 묘사[22]를 제대로 넣으려다가 프로듀서와 싸우고 강판된 거라고 한다. # 가이낙스의 프로듀서인 사토 히로키(佐藤裕紀)가 이 작품의 프로듀서였으나 중간부터 감독으로 크레딧되는데 안노가 쫓겨나서 사토 히로키가 대신 감독을 했을 수도 있다.

1.9. 집 보는 에비츄

믿기 힘들겠지만 이것도 안노가 기획했다(...). 딱히 일화는 없는데, 한국에서 이게 유명해지면서 "사실 에반게리온 만든 아저씨가 만든 거다"라고 말해주면 다들 충격 먹는다. 물론 감독은 다른 사람.

1.10. 실사 영화

이후 안노는 한동안 애니메이션에는 손을 끊고[23] 러브 앤 팝》, 《식일》 같은 상업성과는 거리가 먼 실험적 실사 영화를 연출했지만 평론은 좋지 않았다. 애니에서나 먹힐 기법을 무리하게 실사 영화에서 시도했다는 비평을 받았다. 그나마 러브 & 팝이 마니아 사이에서는 신선하단 평을 받았다.

또한 그러던 와중 오덕 인증을 제대로 했는데, 2003년에 연출한 《 큐티하니》 실사 영화판은 애니메이션스러운 연출법과 안노 자신의 취향이 적극 반영된 터라 B급을 넘어서 충격과 공포 수준이다. 나가이 고 선생과 안노 자신도 특별 출연했다. 큐티하니는 흥행에도 실패해서 기울어 가던 제작사의 숨통을 완전히 끊어놓는 쾌거를 이뤘다. 이 큐티하니 실사판으로 이득을 본 것은 당시 무명이었던 코다 쿠미밖에 없었다. 그야말로 안노의 흑역사.

그러나 이 시기에도 애니메이션에 대한 열망이 완전 사라진 것은 아니라서 2003년 뉴타입 인터뷰에서 '영화를 통해 많은 것을 배웠다. 애니에도 써먹어 보고 싶다'라고 말하는 등 애니메이션에 대한 애정을 드러냈다.

실사 영화들을 찍으며 독립 영화 제작이라는 현실을 배운 안노 히데아키는 후속작인 에반게리온 신극장판에서 독립 영화와 동일하게 사비를 들인 인디식 제작 방식을 도입하여 자유로운 창작 환경을 구축하였다. 그리고 훗날 신 고질라를 감독할 때에도 많은 참고가 되었다는 점에서 무의미한 시기는 아니었던 셈.

1.11. 에반게리온 신극장판

안노는 가이낙스를 떠나 스튜디오 카라를 설립한 뒤, 에반게리온 신극장판 시리즈를 내놓았다. 인터뷰에 의하면 TVA와 같은 내용으로 만들고 결말만 살짝 바꾸면 되겠다고 시작했는데, 파부터 필름 유실 등의 문제로 완전 새롭게 만들어버렸다고.... 그래도 파까지는 어느 정도 TVA의 전개를 따라갔지만 세 번째 작품에서는 파격적인 스토리 전개를 펼쳤다. 그리고 결국 Q를 만들다가 우울증이 오게 된다.

1.12. 2차 공백기

에반게리온: Q를 만들면서 정신에 큰 충격을 받아 우울증이 생겼다. 각본, 콘티를 너무 늦게 작성해서 제대로 작화할 시간을 주지 않는다고 스즈키 슌지가 화를 냈으며, 스즈키 슌지가 회사를 그만두는 등 제작 현장에 불화도 일어났다. 결국 안노는 창작 활동 대부분을 접었다. 1년간 회사에서 출근하지 않고 두문불출하는 동안 동료와 아내 안노 모요코가 회사를 대신 운영했다고 한다. 결국 Q 시사회와 이벤트는 츠루마키 카즈야가 안노를 대신해서 다녔다.

우울증이 상당히 심각해지자 스승인 미야자키 하야오가 격려를 하러 왔다.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과 스즈키 토시오가 식사회를 마련하기도 했고, 바람이 분다에선 성우 역을 맡겼다. 그런데 그걸로는 회복이 안 되더라고 밝혔다.

신 고질라를 만들 때 안노가 신 에바 극장판(Q) 때 많은 분들께 실례를 저질렀었고, 본인도 많은 신경증과 스트레스 때문에 제정신이 아닐 정도로 업계를 떠나 있었다고 하며 주위 사람들의 응원과 고지라 극장판을 만들어 달라고 한 회사의 열정에 감동하여 감독을 맡게 되었다고 할 만큼 마음 고생이 많았던 듯하다.

이때의 이야기는 안노 모요코가 '커다란 순무(주)'라는 작품으로 애니화했다. Q라는 순무를 뽑고 안노가 만신창이가 되는 걸 볼 수 있으며 그 이후 아내의 지원을 받고 요양을 하며 일본 애니(메이터) 견본시장 신 고질라를 만든다. 그리고 표정이 밝아지고 깨달음을 얻는 엔딩으로 끝난다. 정황상 2017년 경에는 우울증을 극복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후에도 우울증은 몇 차례 재발한 것으로 보인다. 특히, 오카다 토시오가 에반게리온의 마키나미 마리 일러스트리어스가 안노의 아내 안노 모요코라고 헛소리를 퍼트렸고, 그 때문에 아내가 욕을 먹는 것을 보고 정신적으로 괴로워서 신 가면라이더 작업을 끝나는 대로 쉬기로 했다고 한다.

1.13. 신 고질라

에반게리온 Q 이후 안노는 토호로부터 고지라 신작의 감독직을 제의받아 이를 수락했다.

이 소식이 알려지자 에바 팬들 사이에서는 " 하던 거나 제대로 끝내라"는 악평이 나왔으나, 고지라 시리즈 팬들은 12년 만에 드디어 신작이 나온다며 기대감을 높였다. 당시에 일부 극성 에바 팬들이 "에바에 고지라 묻히지 마라", "이 영화가 망해야 안노가 딴 거 안 만들고 에반게리온 완결편을 만든다" 같은 폭언을 해서 한국 고지라 팬덤에서는 에바 팬덤을 곱게 보지 않는 분위기가 있었다.

그리고 2016년 7월 19일 가진 발표 회견장에서 "제 작품은 완전히 무에서부터 다시 만드는 타입인데, 에바 신극장판에서 그걸 세 번이나 해 버려서 다시는 작품이라는 걸 만들지 못하게 되는 것 아닌가 싶을 정도까지 궁지에 몰리고 말았습니다. 그때 신 고질라의 감독직 제안이 들어와서 구원받았다는 기분으로 받아들였으며, 완전히 다른 작품을 만들면서 심신을 재충전했기 때문에 에바를 계속 만들 수 있겠습니다. 에바를 기다리신 여러분, 죄송합니다."라고 말했다. 고지라 영화를 발표하는 자리에서 에바 팬들한테 사과한 것인데, 그 순간 회견장 분위기가 무척 어색해졌다고... 이 사과도 에반게리온 팬들에게 큰 비판을 받았다. #

신 고질라는 초대 고지라에 담긴 비판적 메시지를 현대 일본에 맞게 리메이크했는데 고지라보다는 고지라라는 거대한 재난이 닥쳤을 때 그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는 일본 관료제의 경직된 모습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데 집중했다. 개봉하자 높은 평가를 받았고, 2016년 일본 실사 영화 중 흥행 1위를 기록하였다. 그리고 그해 일본 아카데미에서 최우수 작품상과 감독상을 비롯한 7개 부문에서 수상했다. 여지껏 실사 영화에서 좋지 않은 평을 받은 안노가 자신의 능력을 인정받았기 때문에 안노에게도 의미 깊은 작품이 되었다.

또한 이때 호평을 받으면서 자신감을 얻고 우울증을 극복했다고 한다. 2021년 3월 22일에 방영된 신 에반게리온 극장판 𝄇 제작 다큐는 4년 동안 안노를 밀착 취재하면서 에반게리온 제작 과정을 담았는데, 그렇다는 건 신 에바의 제작 기간은 4년이며 신 고질라를 끝내자마자 에바를 만들기 시작했다고 할 수 있다.

여담이지만 공동 감독이자 특수 촬영 감독인 히구치 신지, 주인공 아구치 란도 역의 하세가와 히로키와 함께 홍보를 위해 부산국제영화제를 방문해 생애 첫 내한을 할 예정이었지만... 안타깝게도 에반게리온 극장판의 제작을 위해 불발되었다. 한국 팬들은 안노가 대중들 앞에 나서는 걸 꺼리고 이전에도 홍보를 위해 다른 나라들을 방문한 적이 없기에 별로 신경을 쓰지 않거나 에반게리온 극장판의 제작 소식에 안도감을 표했지만, 내한 불발에 아쉬움을 표하는 팬들도 적지 않은 편.

다만 신 고질라를 안노 작품으로 보기 힘들다는 견해도 많다. 안노가 애초에 고지라 오타쿠도 아니었고, 안노가 연출하고 각본에도 손댄 건 맞지만 나머지는 다 히구치 신지 느낌이라는 것이다. 안노는 그저 거대 괴수가 나오는 미니어처 특촬물의 연출을 해보고 싶어서 참여한 것일지도 모른다. 오시이 마모루는 안노 히데아키가 진짜로 하고 싶은 건 신 울트라맨일 것이며 신 고지라는 히구치 신지의 작품이라는 견해를 보였다. #

1.14. 신 에반게리온 극장판 𝄇

신극장판 파부터 뿌려진 무수한 떡밥들이 Q에서도 해소되지 않고 오히려 더 늘어난 데다가, Q가 나온 후 마지막 편과의 텀이 길어서 비판을 받았다. 그래서 팬들 사이에서는 팬들을 위해서라도, 또한 안노를 위해서라도 어서 빨리 신 에반게리온 극장판 𝄇이 제작되어 개봉하기를 바라는 의견이 자주 나왔다.

일단 개봉 연도는 2020년 6월이 될 예정이었지만 코로나19가 심해지면서 개봉이 늦어졌다. 그나마 2021년 1월에 개봉이 확정되면서 드디어 끝마무리를 할 분위기가 보이고 있었으나, 일본 내 코로나 확진자 급증으로 다시 한번 개봉을 연기했다. 그러던 중 2월 26일 저녁에 스튜디오 카라의 공식 유튜브에 예고편이 공개되며 3월 8일로 개봉이 확정되었음을 알렸다.

그리고 나온 결과물은 어쨌든 마무리는 지었지만 상당히 호불호가 갈릴 수밖에 없는 모양새로 끝나버렸다. 연출이나 작품의 퀄리티 자체는 여전히 좋은 부분이기에 평론가나 취향에 맞는 관객은 호평하는 측도 많지만 시리즈물 전체의 관점에서 서사가 엇나가고 캐릭터들의 관계도 의도적으로 꼬아서[24] 등에서 싫어하는 사람도 굉장히 많다. 작품과 관련한 자세한 평가는 신 에반게리온 극장판 𝄇/평가 문서 참조.

1.14.1. 에반게리온 신시리즈?

그러나 이후 안노는 '아직 에반게리온이 끝난 게 아닐 수도 있다'라면서 새로운 에반게리온 차기작이 또 나올 수도 있음을 암시했다.

사실 충분히 나올 만한 것이, 일단 에바의 판권부터 사실상 안노가 전부 갖고 있는 데다, 에반게리온 시리즈는 전 세계 미디어 믹스 프랜차이즈 중에서도 규모 면에서는 약 20위 안에 들 정도의 대규모 컨텐츠이기 때문에, 안노 입장에서도 신작만 내면 10년은 더 우려먹을 수 있을 에바를 그냥 완전히 끝내고 묵혀버리기엔 아까울 것이다. 그리고 이번의 신 에반게리온 극장판은 어디까지나 에반게리온 신극장판의 완결일 뿐이지 신세기 에반게리온이나 다른 외전작들과는 거의 상관없는 작품이기 때문에 새로운 세계관을 차용한다면 차기작의 제작도 문제는 없다. 예전에 안노는 에반게리온이 건담처럼 인물과 세계관을 바꿔서 계속 나오는 시리즈가 되길 희망한다는 의견도 밝힌 바 있다.

다만 성우들도 나이가 있고,[25] 다들 이번 극장판으로 본인들이 연기한 주요 캐릭터들과 완전히 작별했다는 입장이기에[26] 감독만 놓지 못한 에바 아마 기존 캐릭터들은 다시 나오기 힘들거나, 나오더라도 성우가 바뀔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1.15. 신 울트라맨

2019년 초 안노가 신 울트라맨의 제작 요청을 수락했다는 이야기가 일본 주간지에서 나왔다. 당시에는 아직 루머에 지나지 않지만 츠부라야 프로덕션과 안노는 한 번도 사실이 아니라고 부정하는 발언을 하지 않았고 결국 2019년 8월 신 울트라맨 제작은 사실이라고 시인했다. 다만 신 고질라와 반대로 신 울트라맨은 감독은 히구치 신지이며 안노 히데아키는 각본과 연출 보조를 한다. 에반게리온 제작이 끝난 뒤인 2019년 6월 이후에 참여해 2021년 개봉 예정이라고 한다. 안노가 각본도 이미 다 써서 제출했다고. 안노 히데아키는 이 작품을 만들려고 에반게리온 그만 만드는 거 아니냐는 우려를 잠재우려는 것인지 신 에반게리온 극장판 4부는 각본이나 콘티는 다 완성했다고 말하며 에바가 먼저 나온다고 강조했고, 실제로 신 에반게리온 극장판 𝄇이 2021년 3월 8일에 개봉하면서 약속은 지켜진 셈이 되었다. 그런데 신 울트라맨이 코로나19 바이러스의 재확산으로 인해 무기한 연기되었다가 # 2022년 5월 13일에 개봉했다.

1.16. 신 가면라이더

2021년 4월 3일 7시 30분부터 시작된 가면라이더 시리즈 탄생 50주년 기념 라이브 방송에서 발표된 신작. 2023년 3월 17일에 개봉했다.

1.17. 신 재팬 히어로즈 유니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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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2월 14일 신 재팬 히어로즈 유니버스를 발족하기로 했다. 안노가 진행했거나 진행 중인 작품들인 신 고질라, 신 에반게리온 극장판 𝄇, 신 울트라맨, 신 가면라이더(영화)신(シン) 시리즈를 내걸어 한데 묶는 시네마틱 유니버스 프로젝트로 진행할 것으로 보인다. 안노가 특촬 마니아라는 점을 고려해 보면 성덕 중에서도 가장 스케일이 큰 사례인 셈.

다만 여기에 대해 은근 반발이 있는데, 묶인 캐릭터들이 특촬물과 연관이 있다는 점[27]과 안노의 손길이 닿은 작품이란 걸 빼면 연관성이 없다시피 한 데다[28][29] 에반게리온을 빼면 전부 타사의 IP를 기반으로 한 작품들이기 때문.

1.18. 우주전함 야마토 시리즈 50주년 기획

2024년 3월 30일, 우주전함 야마토 50주년을 기념하여 본인이 기획, 프로듀스하는 프로젝트를 시동한다고 밝혔다. # #

오해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작품을 만드는 건 아니고 그냥 팬 이벤트 기획이라고 한다.

1.19. 우주전함 야마토 신작

2024년 인터뷰에서 실사 영화를 3번 해서 너무 지쳤으며, 다음 작품은 다시 애니로 할까 생각 중이라고 한다.

2024년 10월 50주년 기념 상영회에서 신작으로 우주전함 야마토 리메이크를 할 것이라고 발표하였다. 우주전함 야마토 2199 시리즈의 세계관과 다른 세계관의 작품이라고 한다.

이즈부치 유타카가 "다른 것도 해야될 것이 있지 않아?" 라고 질문하자 "하고 싶은 건 많지만 야마토를 할 수 있게 됐으니 우선 야마토를 해야지." 라고 했다.

1.20. 기타 경력

안노의 엑스트라 경력은 엄청나게 화려한데, 그 출연 목록이 자신이 연출한 영화들(가령 러브 & 팝, 식일, 큐티하니)부터 아내의 만화가 원작인 사쿠란, 지인 히구치 신지가 연출한 일본침몰 등등등... 이외에도 셀 수 없이 많다. 여기서 그의 목소리를 들어볼 수 있는데 생각보다 의외로 부드럽고 온화한 편이라 놀라는 사람들이 많은 편으로 평소 거침없는 성격과 터프한 외모와 갭이 느껴진다는 평. 지인들 말로는 저 온화하고 친절한 목소리와 표정으로 음담패설을 막 하는 것에서 신비로운 매력이 느껴진다나.

야애니 크림레몬 시리즈 중 팝 체이서와 스타 트랩에 참여했다. 팝 체이서는 키타쿠보 히로유키 감독이 참가해 달라고 할 때 "너도 이제 이런 거 만드냐...." 라며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으나 콘티를 보고 매력을 느껴 참가했다고 한다. 완성본도 마음에 들어서 스승 미야자키 하야오에게도 자랑한다고 보여줬는데 "안 야하잖아! 포르노라면 더 막 가야 되는 거 아니냐!" 라고 혼났다고 하는데, 이 이야기는 키타쿠보 히로유키의 증언이다. 그래서, 안노가 미야쟈키한테 보여줄 때 키타쿠보도 같이 끌려가서 혼났다고 한다. 지금처럼 미야자키 하야오같은 거장이라는 이미지가 확고해서 사람들이 잘 믿지 않는 이야기인데 거짓이 아니라 진짜라고 한다. #

에반게리온 드라마 CD에서는 사도들의 성우로서 활약하더니만 스튜디오 지브리 미야자키 하야오의 신작 《 바람이 분다》의 주인공 호리코시 지로의 성우를 맡게 되었다. 처음에는 당연히 거절하려 했지만 지브리, 특히 미야자키 감독과의 인연 때문에 승낙했다고 한다. 말이 빠르고 단어 발음이 정확해서 적합하다 판단했다고. 안노 曰 미야자키 감독에게는 대사가 별로 없는 과묵한 역이라고 들었기에 쉽겠거니 했는데 정작 대사는 잔뜩에다 독일어, 프랑스어에 노래까지 하는 하드코어한 배역이어서 애를 먹었다고. 깨알 같은 평가. 미야자키 감독의 말로는 '지금 세상에서 제일 잘나가고 있는 사람의 존재감이 필요했기 때문'이라는 모양. 카메오 출연 등을 제외하면 사실상의 성우 데뷔작인데 이런 묵직한 작품의 주연으로 등장하게 되었다. 무미건조한 목소리 때문에 연기력 면에서 그다지 좋은 평가를 받지는 못했지만, 그것이 오히려 작중 호리코시 지로의 성격을 잘 드러냈다며 호평하는 사람들도 있었느니 나름대로 성공적인 데뷔라고 할 수 있을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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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로바코에서 칸노 미츠아키로 등장한다. 잠깐 나오지만 이야기의 흐름을 뒤바꿔 놓았다.

이와이 슌지 감독의 영화 라스트 레터에서 키시베노 소지로 역을 맡았다. 무려 장편 영화의 주연급 배우로 등장한 것인데 의외로 연기력은 나쁘지 않다는 평을 받았다.
[1] 1960년대에 태어난 이 세대는 '테레빗코'라고 해서 현대 문명의 신기(神機)인 텔레비전을 어릴 적부터 보고 자라서 그 영향을 듬뿍 받은 세대였다. 컴퓨터, VCR, 가정용 게임기, PC방 등 TV 말곤 뭐도 없던 시절이라 놀이터에서 또래끼리 모래 먹어가며 뛰어놀거나, 집에서 만화를 읽거나 TV에서 틀어주는 프로그램을 실시간 시청하는 것이 즐거움이었다. [2] 이는 신세기 에반게리온 이카리 겐도 이카리 신지 부자의 관계와 유사하다. [3] 제목의 뜻은 일본의 관용구로, '처음에 서툴러도 많이 하면 잘하게 된다'라는 뜻으로, BGM은 《 기동전사 건담》의 명브금 From Sleep의 후반부이다. [4] 영국의 SF 드라마 UFO에 나오는 특수 본부의 이름이다. 나중에 에반게리온의 네르프의 모티브가 된다. [5] BGM은 고지라 시리즈의 " 괴수대전쟁 행진곡. 신 고질라의 '야시오리 작전' 장면에서도 등장하는 곡이다. [6] 이 두 작품은 시마모토 카즈히코가 자신의 오사카 예대 재학 시절을 모티브로 그리는 만화 《아오이 호노오》(안노 등 실제 인물도 등장)에 전 컷 실려있기도 하다. [7] 전차남(드라마)의 오프닝곡도 똑같이 Twilight가 쓰였는데, 다이콘 IV 오프닝의 오마주다. 애초에 서브컬처계를 다룬 드라마라서 오프닝부터가 GONZO가 제작한 애니메이션이며 작중에 오덕계 패러디가 많이 나온다. 주인공의 아무로 드립이나 "지온 공국이여 영원하라"도 등장하고, 마지막 회에서는 마틸다 아쟌 성우까지 카메오 출연 할 정도. [8] 그러나 제작을 질질 끌다가 이대로는 완성이 안 되겠다고 도중에 감독직은 아카이 타카미로 교체당했다. [9] 본래 그림 콘티에는 거신병과 오무가 직접 대결하는 장면도 있었지만 제작 일정상 삭제되었다. [10] NHK에서 하는 거니까 봐야 한다는 논리로 설득했다. 여동생이 보고 싶어 했던 애니는 오프닝만 보면 되는 허접이라고 눌러내리고. [11] 다만 추정(persumed)이다. [12] 다만 안노의 실질적인 프로 감독 데뷔작은 게임 ' 몽환전사 바리스' 광고라고 한다. [13] 이건 오카다 토시오의 일방적인 주장이고, 토시오가 너무 일을 안 해서 쫓겨났다는 정황이 많다. [14] 그래서인지 《에반게리온》에서도 스쿠버 다이빙 장면이 나온다. [15] 또 다른 멘토인 미야자키 하야오와는 상당히 사이가 벌어진 상태였다. 에바 종영 이후에야 화해했다고. [16] 마지막 26화에서 주변 사람들이 뜬금없이 신지에게 축하한다고 말하면서 박수 치자 신지가 고맙다고 말하는 장면 이상한 바다의 나디아에서 나디아의 생일을 알게 된 친구들이 박수 치며 생일 축하한다고 하자 고맙다고 말하는 장면과 똑같다. [17] 참고로 이 인터뷰에서 자신은 소류 아스카 랑그레이를 가장 좋아한다고 대답했다. [18] 미야자키의 평은 중의적인 의미로 여러 해석의 여지가 있다. 우선 중론은 알맹이가 없다는 취지의 우회적인 비판이라는 것이다. 의역하면 '안노 감독은 에반게리온같이 정직하게 이런저런 요소를 조합한 영화를 만들어서, 정작 자신에게는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증명해 버릴 정도로 솔직하게 만든다는 게 장점이라면 장점이다'는 말이다. [19] 한편 다른 의미로는 '의도를 은유하지 않고 솔직하게 표현해, 에반게리온은 사실 픽션이고 아무것도 아니다는 식의 메시지를 정직하게 전달하는 게 장점이다'는 해석도 가능하다. 이 경우는 에반게리온이 오타쿠의 계몽을 위한 작품이였다는 평가와 연결해 의역한 것이다. [20] 안노는《 모노노케 히메》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냐는 질문에 본인 앞에서는 말할 수 없다고 넘겼는데, 나중에 스즈키 토시오와의 대담에서 "레이아웃이 별로였다. 미야상(미야자키)이 어떻게 그런 레이아웃을 오케이했는지 이해가 안 간다. 미야상이 나이를 먹었다는 것을 느꼈다."고 평했다. # [21] 후반부는 에반게리온 TV판같이 연출된 오픈 엔딩이다. 이 때문에 원작자인 츠다 마사미는 안노의 이런 모호한 엔딩 처리 행태에 열받아 단행본 말미에서 안노를 깠다. [22] 원작의 정사 신으로 추정. [23] 나중에 말하길 애니메이션계에 한동안 실망해서 애니메이션을 하고 싶지 않았고, 실사 영화에 흥미를 느끼게 되었다고 한다. # [24] 감독이 모르고 이런 전개를 한 것이 아니다. 이미 공식 굿즈, 일러스트에서도 볼 수 있듯이 팬덤의 인식도 잘 알고 있었을 터였는데 그걸 고의적으로 엇나가게 한 것이다. [25] 주역 성우진들이 이제 50대 중반을 바라보고 있고, 조연 같은 경우 60~70대이기 때문에 거의 은퇴를 바라볼 나이다. 후유츠키 코조 역을 맡은 키요카와 모토무의 경우 90을 앞둔 고령이라 실제로도 Q부터 목소리에 힘이 점차 빠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으며, 이후 2022년 사망해 영영 작품 활동에는 참여할 수 없게 되었다. [26] 3.0 + 1.0 제작 당시 안그래도 심한 안노의 자기 중심적인 태도가 카라 설립 이후 더욱 강해지면서 작품에 몰입하여 연기해야 하는 성우들의 고충이 심했다는 설이 중론이다. [27] 가면라이더는 원래 만화 원작이고, 에반게리온은 울트라맨을 오마주한 애니메이션으로 특히 신 에바 극장판에서는 이 점을 대놓고 의식한 연출을 보였다. 또한 에반게리온 역시 TV 시리즈와 신극장판 시리즈 마지막 에피소드에 촬영장, 대본, 무대 장치 같은 요소를 노출하여 특촬물의 성격을 띠고 있음을 강조한 바 있다. [28] 특히 다들 거대한 존재들인데 혼자만 사람 사이즈인 가면라이더( 울트라맨 VS 가면라이더에선 거대화 이벤트가 있었다.), 상황 따라 사람을 돕는 결과가 나올 뿐 인류를 위협하는 대괴수인 고지라(심지어 신 고질라는 애초에 재앙으로 묘사했다), 거대 로봇도 괴수도 히어로도 아닌 어중간한 존재일뿐더러 애초에 세계 자체가 다른 시리즈들과 달리 너무 독자적인 에반게리온 등.... [29] 그나마 신 울트라맨 세계관에는 어떤 생물이든 거대화시킬 수 있는 기술이 있어서 울트라맨을 비롯한 외계인들도 이 기술로 거대화하고, 지구인도 거대화시킬 수 있다는 묘사가 나오면서 차후 등장할 히어로들이 울트라맨과 같은 크기가 될 개연성은 챙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