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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4-09 15:21:40

시마모토 카즈히코

파일:shimamoto.jpg
이름 시마모토 카즈히코 (島本和彦)
본명 데즈카 히데히코 (手塚秀彦)
출생 1961년 4월 26일 ([age(1961-04-26)]세)
일본 홋카이도 이케다정
국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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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 만화가
데뷔 1981년
대표 작품 불꽃전학생, 역경 나인, 호에로 펜
초급! 기동무투전 G건담, 아오이 호노오
링크 공식 블로그
공식 트위터
공식 유튜브

1. 개요2. 경력3. 특징
3.1. 만화3.2. 본인3.3. 동인 활동, 덕질
4. 인간 관계5. 기타6. 작품 목록
6.1. 연재 작품6.2. 단편 작품6.3. 공저6.4. 디자인, 원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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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일본 만화가. 1961년 4월 26일 홋카이도 이케다출생. '불꽃의 만화가'라는 이명으로 통하기도 한다. 시마모토 카즈히코라는 이름은 사실 필명이며,[1] 본명은 데즈카 히데히코(手塚秀彦)이다. 만화가임에도 굳이 필명을 쓴 것은, 일본에서는 만화의 신이라고까지 불리우는 데즈카 오사무와 성이 겹치는데다 그에 더해 데즈카 오사무의 자녀(아들)인 데즈카 마코토와 동갑내기인 탓에[2] 본명으로 활동하기 곤란했기 때문이다.

대중적으로는 《 불꽃의 전학생》, 《 호에로 펜》, 《 아오이 호노오》가 유명하지만 시마모토가 가장 자신있다고 거론하는 작품은 《 역경 나인》과 《 초급! 기동무투전 G건담》이다.[3]

평소의 언동이나 라디오를 진행한다는 공통점 때문에 (그 자신의 작품에서 등장하는 가상의 만화가인) 호노오 모유루와 동일시되는 경향이 있다. 실제로 대학교 동창이자 지인인 안노 히데아키 오카다 토시오 같은 지인들 말로는 호노오 모유루랑 시마모토의 평소의 모습은 별 차이 없다고 하며 방송에서도 기분이 좀 고양되면 바로 호노오 모유루 그 자체가 되어버리는 걸 볼 수 있다. 후지타 카즈히로도 트위터에서 시마모토를 아예 호노오(ホノオ)라고 호칭해버리는 등 반쯤 공인이나 다름없는 분위기다. 여기에 시마모토 자신도 《 아오이 호노오》에서 자신의 옛 에피소드를 모티브로 삼아 호노오 모유루의 대학 시절 이야기를 그리고 있어서 팬덤 사이에서의 인식을 부채질하는 경향이 있다.[4]

다만 호노오는 약간 소심한 면이 있는 시마모토와 달리 할 말을 다 하고 질러버리는 타입이라서 성격에서 일부 차이가 있다. 실제로도 시마모토가 진행하는 라디오 방송을 들어보면 차분하면서 침착한 면도 있어서 호노오와 완전히 일치한다고는 볼 수 없다. 그래서인지 시마모토 자신도 호노오가 오너캐냐는 물음에는 부정을 표했으며 애당초 후기 만화 등에 등장하는 오너 캐릭터가 따로 있다. 비쩍 마른 채 가죽점퍼를 입고 선글라스와 빵모자를 쓴 디자인이며 이쪽이 시마모토의 평소 성격에 가깝다. 호노오는 단순한 오너 캐릭터라기보단 작가가 하고 싶은 마음 속의 말을 대신 해주는 아바타에 가깝다고 봐도 좋을지도 모른다. [5]

2. 경력

어린 시절 만화, 애니메이션, 특촬물을 좋아했으며 자신이 좋아하던 작품은 전부 히트했다고 한다. 어린 시절 처음 만화로 그린 건 가면라이더(초대)라고 한다.[6] 시마모토는 가면라이더를 정말 좋아해서 "안노가 울트라맨이라면 난 가면라이더다." 라고 하기도 했다. 그러나 당시엔 나이가 크면 만화는 당연히 졸업하는 것이라 여겼고 시마모토도 만화를 멀리한 시기가 있었다. 이때 우주전함 야마토를 보고 감동의 눈물을 흘렸으며 "만화도 애니도 어린이만 보는 것이 아니다." 라는 깨달음을 얻어 그때부터 만화와 애니를 많이 보고 직접 그리며 연구했다고 한다.

오사카예술대학 출신. 군사학과로 유명한 꽤 좋은 대학 붙었는데[7] 오사카예대 학생들이 가면라이더 영화 찍는 걸 보고 "저런 걸 하는 학교에 다니면 하루 종일 내가 좋아하는 걸 할 수 있겠구나." 라고 생각해서 당시로선 그다지 명성이 없던[8] 오사카 예대에 진학한다. "재학 중 데뷔하고 중퇴해서 전설이 되겠다." 라고 생각했으며 실제로 그것을 이루어내 학교에선 유명했다고 한다. 대학 재학 중에는 데즈카 오사무, 마츠모토 레이지처럼 만화와 애니를 둘 다 하는 것을 목표로 했다. 애니메이터 쪽에 더 관심이 있었으나 같은 과 동기 안노 히데아키의 실력에 절망하고, 시마모토가 대학 과제로 만든 애니메이션 '미래로의 사자'가 처참한 반응을 얻어 애니메이션은 접고 만화만 하기로 했다고 한다. 그리고 얼마 뒤 데뷔에 성공했다.

쇼가쿠칸에서 데뷔했는데 원래는 슈에이샤 쪽에서 데뷔를 준비하고 있었지만 그쪽 편집자와 싸워서 쇼가쿠칸에 보냈다고 한다. 쇼가쿠칸을 선택한 이유는 다른 잡지에 비해 신인 만화가 상금이 쪼잔하고 적으니(슈에이샤나 코단샤는 100만엔에 비해 쇼각칸는 반도 안되는 가격), 다른 잡지에 비해 쉽게 상을 딸꺼라 생각했다고. 데뷔 초기작은 카리야 테츠가 스토리를 담당하고 시마모토가 작화한 《바람의 전사 단》과 시마모토의 입상작이었던 단편 '필살의 전학생'을 장편으로 개작한 《 불꽃전학생》. 두 작품 모두 상당한 인기를 끌었다. 본인이 자학을 많이 하고 한국에서는 시마모토의 작품이 메이저의 영역까지 올라간 적이 없어서 이 작가 인기없던 거 아니냐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이 두 작품을 연재할 때는 분명 시대를 풍미했던 인기작가였다. 본인 말로는 데뷔 초에 운을 다 썼다고 한다.

쇼가쿠칸에서는 인생의 파트너 편집자 미카미 신이치(三上信一)를 만나게 되는데 그와 개인적으로도 친하고 신인 만화가를 키워주는 역할도 했다. 다만 1980년대 후반부터 1990년대까지 쇼가쿠칸이 아닌 도쿠마 쇼텐, 타케쇼보 쪽에서 활동하던 시기가 있다. 이후 2000년대에 미카미 신이치가 실권을 쥐면서 쇼가쿠칸으로 복귀. 이후로는 쇼가쿠칸의 터줏대감이다.

1980년대 후반부터 특유의 작풍이 유행에서 빗나가면서 큰 고생을 했다. 아오야마 고쇼와 대담할 때 말하기를 진짜 "난 끝인가?" 하는 생각을 했다고.[9] 90년대에는 주로 디자이너 및 다른 인기 작품의 코미컬라이즈 담당으로 활동했다.[10] 그러다 "선생님은 만화보다 본인이 더 재밌어요." 라는 이야기를 듣고 자신을 주인공으로 한 《모에요 펜》, 《 호에로 펜》, 《 아오이 호노오》를 연재해 인기를 얻고 자전적인 만화를 많이 그리는 작가가 되었다.

3. 특징

3.1. 만화

그림에서 뜨거운 열정, 에너지가 전해져서 열혈, 불꽃의 만화가로 불린다.[11] 초기엔 이러한 화풍이 아니고 마츠모토 레이지 아다치 미츠루 느낌도 나는 화풍이었는데 만화가 데뷔 초부터 점점 진화해 현재의 화풍이 되었다. 뜨거운 느낌을 잘 내줘서 디자이너로서 캐스팅되는 일도 많다. 다만 시마모토 본인은 "나의 본질은 열혈이 아니고 절규다." 라고 한다. 사실 작품의 시츄에이션을 보면 열혈과 그다지 관계가 없고 정신승리 하려고 절규할 때가 많다. 이는 시마모토의 작풍이 기본적으로 열혈을 기반으로 망가지는 개그를 지향하기 때문이다. 열혈의 외침이 망가진 상황에서 울려봤자 절규가 될수 밖에 없는 것.

개그인 듯한 진지한 만화와 진지한 듯한 개그만화 중에서 무엇을 그릴까 고민하다가 후자를 선택했고, 그 결과물이 지금의 모습이라고 한다. 진지하게 보이는 것도 대부분 개그를 의도한 것이다. 이것이 비슷하단 소리를 듣는 쿠루마다 마사미와 시마모토의 결정적인 차이. 개그를 할 때 패러디나 유행을 활용한 개그는 잘 안 하고 필력과 연출을 활용한 개그를 하는 스타일이라 조금 시대성을 탈 수는 있지만 세월이 지나서 봐도 이해하기 편하다는 장점이 있다. 사실 패러디도 많이 하지만 못 알아보면 안 웃긴 패러디는 잘 하지 않고 애초에 무엇의 패러디인지 알아보기 쉽지 않아서 신경쓰지 않아도 된다.

작가 경력의 80%는 개그 작품이지만 스컬맨, 원더 비트, 배틀 필드 같은 진지한 작품도 했고 진지한 전개도 할 능력이 된다. 평생을 개그에 바쳤지만 진지한 SF로도 평가받고 싶다는 욕심이 늘 있다고 한다.

연설이나 설교를 하는 장면이 자주 나온다. 마츠모토 레이지의 작품의 대사를 보고 자신의 인생이 바뀐 것처럼 이러한 메세지를 통해 독자의 인생이 바뀌었으면 한다고 한다. 주로 하는 이야기는 "실패를 두려워하지 마라.", "역경을 받아들이고 즐겨라.", "결과가 보이지 않더라도 노력은 무의미하지 않다." 이러다가 가끔 헛소리로 발전하기도 한다. 궤변을 연발해서 웃기는 캐릭터가 주인공이나 라이벌로 나올 때가 많다.

다른 사람들이 안 한 새로운 작품, 개그를 추구한다. 이유는 거장들과 똑같은 걸로 경쟁하면 비교되어서 망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문제는 이런 것 때문에 유행과 동떨어진 작품이 많으며 불꽃전학생을 제외하면 연재 당시엔 관심을 못 받고 나중에 재조명된 작품이 많다. 10년은 지나서 재평가된 작품도 있으며 심지어 30년 뒤에나 재조명되기도 한다. 다른 작가들이 시마모토의 만화를 따라해서 만들거나, 따라하진 않았지만 내용은 비슷한 작품이 몇십 년 뒤에 대히트하기도 한다. 스스로도 "왜 내가 하면 망하고 다른 사람이 하면 성공하는 거냐?" 라고 자조하기도 했다. 너무 시대를 앞서나가는 작가일지도 모른다.

신인 시절엔 그림을 못 그린다고 자조했지만 노력으로 그림 실력이 크게 늘었다. 그리는 속도가 매우 빠르며 드로잉 실력이 뛰어나서 어지간한 건 안 보고 밑그림 없이 바로바로 그려낼 수 있을 정도이다. 다른 작가의 화풍을 복사하는 것도 가능하다. 그리기 어렵다는 메카나 괴수도 그린다.

엄청난 속필로 유명하다. 초급 G건담은 한 달에 100페이지 넘게 연재하기도 했으며[12] 정기 연재가 있음에도 동인 행사에 50페이지에 달하는 동인지를 자주 투고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G건담과 동인지가 겹쳤을 땐 한 달에 300장 그렸다고 한다. [13]물론 현재의 시마모토는 거의 연출만 하고 주연 캐릭터 및 중요한 장면 외엔 대부분 어시스턴트가 그리는 작업 방식이긴 하지만[14] 이것도 다 시마모토가 수완이 있기 때문에 가능한 것. 그리고 아버지의 사업을 이어받으면서 2010년대 후반부턴 대부분 본인이 직접 그리고 있다.[15]

양면 페이지를 써서 큰 그림을 그려내는 것을 즐긴다. 만화가와 편집자 사이에선 날먹으로 통해서 2연속 양면 페이지는 금기시되는데 시마모토는 3연속 양면 페이지도 쓴 적이 있다. 본인 말로는 절대 날먹이 아니고 혼을 담으려고 그런다고 한다. 그리고 설마 다음 페이지도 양면은 아니겠지?! 하는 독자의 허를 찌르면 웃기지 않느냐고 한다. 그러한 연출 의도라고 해설한다. 하지만 자기 만화에서 "마감이 위험할 때는 양면 페이지를 쓰면 돼! 라고 자학한 적도 있다.

집중선 연출을 즐겨 쓰며 집중선을 스스로 치기도 한다. 집중선은 자신있다고 한다. 아예 집중선 담당 어시를 두기도 했다.[16]

작가로서의 단점은 결말이 명확한 작품이 별로 없다. 대부분 우리들의 싸움은 이제부터다 식의 엔딩이 많다. 특유의 작풍과 어울려서 크게 욕은 안 먹지만 호불호를 탈 수도 있는 점이다. 그의 작품은 결말은 큰 기대를 하지 않고 코미디라 생각하고 그때그때 즐기면서 보는 것이 좋다. 이런 성향은 그가 존경하는 작가들이 이런 결말을 좋아해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이며[17] 시마모토 또한 독자가 생각할 여지가 있는 열린 결말이 훌륭하다 생각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또한 작품에 미소녀는 많이 나오지만 어째 관계 진전이 안 될 때가 많아서 후지타 카즈히로는 "너 연애 못 그리냐!!" 라고 하기도 했다. 시마모토 말로는 젊은 시절 주변에 왠지 여자들은 많았지만 제대로된 연애는 못 해봐서 못 그리겠다고. 본인이 제대로 만화가가 되고자 학교에서 짝사랑 하던 여자들 다 포기하고 중퇴하고 상경한 경험이 있어서 그런지 작품 중 일, 꿈을 위해서 여자 관계를 포기하는 걸 미덕으로 미화할 때가 많다.

자신의 만화가 애니메이션이 되는 것이 꿈이라는데 제대로 애니화된 작품은 없고 의외로 실사화된 작품이 더 히트했다.

3.2. 본인

[nicovideo(sm1521372)]
불꽃전학생 애니화 기념 작가의 메세지 영상 (너무 막나가서 NG받은 판.)[18]
본인의 라디오 방송
시마모토: 크리스마스네요. 지저스 크라이시스트입니다. 세인트 니콜라스입니다.
산타 클로스를 언제까지 믿었나요. 아니, 장난하냐! 언제부터 산타가 없어진 거냐!!
알겠냐. 산타의 의지를 이어받아 이제부턴 너희가 산타가 되는 거다.
산타는 실제론 없다고 마치 자신은 지식인! 상식인!인 것처럼 말하는 놈들에게
정면에서 눈을 바라보면서 이렇게 말해라.
"내가 산타다!! 내가 산타라고!!!"
모두 산타가 되자. 거대한, 거대한 산타가 되자. 드림 러쉬!
본인이 직접 찍은 콩트.
편집자: 체험을 하고 만화를 그리세요.
시마모토: 그럼 살인 만화를 그릴 땐 살인을 하란 말이냐! 타카하시 루미코가 그랬다고! 상상력으로 보완하라고![19]
편집자: 아니 그래도 독자도 체험할 수 있는 거니까.
시마모토: 타카하시 루미코!!! 거짓말을 한 거냐!! 이 자식!!
이 녀석은 자기 만화보다 본인이 더 재밌다는 걸 이제야 깨달았네.
호에로 펜이 연재 시작된 후 이를 읽은 안노 히데아키의 반응
만화보다 본인이 더 웃긴 작가로도 유명하다. 그래서 방송인 활동도 한다.

한 번 재미로 단기 기획으로 라디오를 '시마모토 카즈히코의 망가틱하게 가자'를 했는데 너무나도 웃기다는 소리를 들어서 7년 가까이 하기도 했다.

본인 만화에 나오는 설교나 연설을 대본없이 애드립으로 몇 분 넘게 할 수 있는 수준이며, 본인 만화 같은 대사가 사생활에서도 줄줄 나온다고 한다. 그래서 정말 웃긴 사람으로 불리며 업계의 마당발이다. 어떻게 그렇게 말을 잘하냐는 질문에 "고등학교 때 연극부였고, 혼자 만화나 애니메이션 더빙을 하기도 했고, 여러 만화의 명대사를 반복해서 보면서 뇌에 새겨졌다." 라고 답변했다. 오카다 토시오 말로는 시마모토는 연기를 안 하고 일상 생활에서 말할 때도 마츠모토 레이지 만화 캐릭터처럼 말하는 녀석이라고.

이런 반면 의외로 소심한 면도 있어서 방송 출연했을 때 MC가 말할 기회를 안 주면 중간에 끼어들 틈을 못 참고 아무 말 못 하고 그냥 오는 일도 있다. 발언 기회를 줬더니 너무 길게 연설하다 중간에 커트 당하기도.

젊은 시절엔 상당한 미남이었다. 그래서 시마모토의 만화보다 시마모토의 얼굴과 작가 본인을 더 좋아하는 여성팬이 있기도 했다. 시마모토가 젊은 시절엔 만화 외에도 만화 잡지에 본인의 사진을 건 인터뷰나 칼럼을 연재하는 코너가 있기도 했다. 만화보다 그 코너가 더 인기있었던 적도 있다고 한다. # 실제로 담당 편집자 미카미 신이치는 살짝 바보같지만 친절하고 쾌활한 호청년 만화가로 이미지 메이킹을 해주었으며 시마모토는 "난 그런 사람이 아닌데." 라고 연기하느라 많이 고생했다고 한다.

자신의 작품을 원작으로 한 영화와 드라마에서 카메오로 출연하기도 한다. 예로 역경 나인 실사 영화에는 호노오 모유루로 출연하였다. 스텝롤에도 떡하니 '호노오 모유루 역 : 시마모토 카즈히코'. 주제가를 직접 부르기도 했다. 일드판 아오이 호노오 최종화에서도 바이크점 사장으로 까메오 출연해 주인공에게 「아니야… 자네는 이 바이크에 타고, 내일을 향해 달려가는 거다!! 잘 들어라. 어른이 됐다고 '학생일 때는 좋았는데' 라고 돌아보는, 시시한 어른만은 되지 마라!」라는 명대사를 남겼다.[20] 학창 시절 연극을 한 것도 있고 본인도 배우 욕심이 있다. 가면라이더(1979)의 배우 오디션을 보려고 생각했지만 사정이 있어서 못 봤다고. 학창 시절엔 영상학과 친구들이 만드는 과제물 영상에 배우로 여러 차례 출연했었다. 그런데 뭘 연기해도 웃기다는 소리를 들어서 포기했다고 한다.

시마모토는 스스로 만화보다 본인이 웃기다는 것은 만화가로서 불명예라고 생각한다지만 실제로도 본인이 더 웃기니까 어쩔 수 없다.

친구인 만화가 겸 평론가 야마다 레이지(山田玲司)의 유튜브에 게스트로 출연했다가 야마다가 "역시 넌 인터넷 방송을 해야한다." 라면서 방송을 권유하고 장비와 방송 노하우 지원을 해줘서 2023년 니코니코 동화 유튜브에 '시마모토 카즈히코의 절규 대학'이라는 채널을 개설했다. 개설 초기부터 폭주하는 방송 스타일을 보여주고, 아다치 미츠루[21], 아오야마 고쇼 등 거장 만화가를 게스트로 불러와서 화제이다. 어시 말로는 시마모토는 원래 "나는 버튜버가 될 거다!" 라고 했는데 주변에서 그러면 안 웃기다고 말려서 얼굴까고 방송한다고 한다.

3.3. 동인 활동, 덕질

동인 작가로도 유명하다. 어쩔 때는 동인지가 더 많이 팔릴 때도 있다고 한다.

동인지를 그리는 이유는 유행하는 최신 작품을 한 번 그려봄으로서 최신 유행 그림체와 연출을 흡수하는 공부가 된다고 한다. 그래서 2000년대 이후의 자신의 작품은 연재 중에도 화풍이 바뀐다고 한다.

동인지는 야한 만화가 아니고 개그 만화이며 2023년 기준 약 90권을 내었다. 제목 첫머리에'시마'가 들어갈 때가 많다. (예: 시마라이브, 시마무스메) 자신의 일상을 그려낸 동인지, 자신이 보고 감명받은 작품의 동인지 크게 두 종류를 낸다.

이렇게 시마모토가 내는 동인지는 소량 생산에 출판분만 풀어서 인터넷에선 보기 힘든데다가 팬들의 평도 매우 좋아서 순식간에 매진되고 프리미엄이 붙기로 유명하다. 지금까지 동인지를 낸 작품으로는 우주전함 야마토, 사이보그 009, 마크로스 시리즈, 블랙 잭, 질풍 아이언리거, 러키 스타, 신 고질라[22], 러브 라이브, 러브라이브 선샤인, 걸즈 & 판처, 유리 온 아이스, 킬라킬[23], SSSS.GRIDMAN[24], 우마무스메 프리티 더비, 기동전사 건담 수성의 마녀[25], 치이카와 등 스펙트럼이 매우 넓다. 작가가 그린 동인지들의 표지 일부를 여기에서 볼 수 있다.

꽂힌 미소녀 작품으로는 러브 라이브와 걸즈 & 판처를 꼽으며 굉장한 애정을 보이고 있다.

특히 러브 라이브는 만화가 에노모토 나리코의 추천으로 보았는데 폐교를 막기 위해 최고의 스쿨 아이돌이 되려고 한다는 내용이 마치 야구부의 폐부를 막기 위해 지잡고교 야구부가 갑자원 우승을 목표로 한다는 자신의 만화 ' 역경 나인'과 내용이 비슷해서 마음에 들었다고 한다.[26] 선샤인까진 재밌게 보았다고 한다. 노래는 START:DASH!!에 꽂혔다고 한다. 라이브도 보러 갔다고 한다.[27] 2020년 만우절에는 러브라이브 선샤인 Aqours의 곡 CYaZALEA☆Kiss☆DADANDAAAN MV의 작화를 맡기도 했다. 최애 캐릭터는 쿠로사와 다이아라고 한다.

반면 아이돌 마스터 시리즈에 대해서는 딱히 언급이 없는데, 한번 잡지의 고민 상담 코너에서 "아이마스에 8만엔 결제해 생활이 힘듭니다.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라는 질문에 "남자라면 그런 사소한 거에 연연하지 마! 9만엔 벌어! 그럼 1만엔이 남는다!"라고 답변한 게 팬들에게 화제가 되기도 했다. #[28]

우마무스메 프리티 더비는 사람들이 "시마모토라면 분명 사쿠라 바쿠신 오를 좋아할 것이다." 라는 이야기를 많이 해서 동인지에선 바쿠신오를 간판으로 걸었지만 진짜 최애는 메이쇼 도토라고 한다. 메이쇼 도토도 동인지에 같이 나온다.

프리큐어 시리즈 중 가장 좋아하는 건 하트캐치 프리큐어!라고 한다. 그 다음은 스마일 프리큐어!.

슈퍼전대 시리즈 대전대 고글파이브를 최고로 친다. 고글 핑크가 예뻐서 좋아한다고. 고글 핑크 역의 배우 오오카와 메구미와 만나서 인터뷰한 적도 있다. 그래서 시마모토 작품에서 전대 패러디가 나오면 십중팔구 고글파이브이다. 그 외의 전대는 그렇게 자주 언급하진 않지만 격주전대 카레인저, 임금님전대 킹오저 등을 호평한 바 있다.

4. 인간 관계

4.1. 이시노모리 쇼타로

굵은 선과 줌된 앵글을 애용하는 화풍에서는 생각하기 힘들지만 테즈카 오사무- 이시노모리 쇼타로 라인의 후계자이다. 본인 스스로도 이시노모리 쇼타로의 추종자이기도 하며 자신의 화풍은 이시노모리 쇼타로와 마츠모토 레이지를 섞은 것이라고 한다. 그래도 굳이 따지자면 이시노모리가 기본이라고.

특히 연출법이 이시노모리와 유사한데 집중선, 검은 배경, 양면 페이지 등 시마모토가 즐겨쓰는 기법은 대부분 이시노모리가 즐겨쓰던 기법이다. 호에로 펜에서 '그리긴 편하면서 멋지게 보이는 날먹 기법' 이라고 소개하는 것들도 대부분 이시노모리가 발명한 것이다. 시마모토가 '이제까지 없던 새로운 작품'에 집착하는 것도 이시노모리의 작품론을 따르는 것이다.

좋아하는 작품은 가면라이더(초대)[29], 사이보그 009, 인조인간 키카이다. 그 외에도 변신닌자 아라시, 쥰, 사부와 이치의 체포조 같은 작품을 추천한다고 한다.[30]

어린 시절 가면라이더 1호가 너무나도 좋아서 가면라이더 만화책을 보았다가 충격적인 전개를 보고 "어? 이래도 되는 거야?" 라는 컬쳐 쇼크를 받았으며 그때부터 팬이 되었다고 한다. 이시노모리 선생님은 명작이 나올 때까지 다작과 실험적인 시도를 계속하는 분이라 좀 아닌 작품도 있지만 신들려서 만든 작품은 그 어떤 작가도 따라갈 수 없다고 한다.

이시노모리 쇼타로를 처음 만났을 때는 긴장해서 "서...선생님의 그 뭔가 조잡한 그림이 너무 좋아요." 라고 말 실수를 했는데[31] 이시노모리는 허허허 웃으면서 오히려 좋아했다고 한다. 원래는 이시노모리 어시스턴트를 하며 제자가 될 생각이었지만 [32] 작품 활동을 계속하니 시마모토가 이시노모리 팬에 가면라이더를 잘 그린다는 소문이 이시노모리 귀에 들어가서 시마모토에게 직접 코미컬라이즈를 의뢰하게 되어 제자는 되지 못 했다고 한다.

그런 사정 때문에 스컬맨의 정식 속편을 직접 이시노모리 쇼타로에게 위임받기도 했다. 이시노모리 쇼타로의 밑에서 오랜 시간 일을 배운 건 아니었지만 너무나도 팬이라 감성과 화풍, 작법이 비슷했고 이시노모리는 시마모토를 신용해 자신의 작품의 만화화를 많이 맡겼다.

본인은 사이보그 009의 천사편도 그리고 싶어했지만 이시노모리 쇼타로가 자신의 몫으로 남겨두었기 때문에 실현되지는 않았고, 아쉽게도 이시노모리 쇼타로는 사이보그 009를 완결하기 전에 사망했고, 그 때문에 이시노모리 작품을 간판으로 할 예정이었던 출판사도 잡지를 축소하지 않을 수가 없었기 때문에 시마모토의 스컬맨도 7권에서 연재가 중지된다. 시마모토의 스컬맨은 국내에도 정발되었는데, 작중 등장한 많은 떡밥이 제대로 회수되지 않고 마지막에 진정한 싸움은 이제부터라는 식으로 끝난 이유는 이 때문이다. 심지어 사이보그009와 스컬맨, 가면라이더의 주인공들이 서로 만나는 내용까지 있다. 아마 작가가 생각한 대로 연재를 끌고 나갔다면 제목만 스컬맨이고 내용은 이시노모리 히어로 콜라보레이션이 되었을 듯.

중도의 히어로물 오타쿠이며 이에 따라서 특촬물에도 조예가 깊다. 더구나 이시노모리의 추종자라는 점때문에 상기의 스컬맨을 제외하고도 가면라이더 ZO의 코믹스판, 단편으로 가면라이더 블랙 파트X 이미테이션7를 그리기도 했다. 그 중에서도 명작으로 꼽히는 것은 이미테이션7으로 고르곰이 가면라이더 블랙을 쓰러트리기 위해서 개조된 가짜 가면라이더 블랙 '타치카와 히로시'라는 청년이 탈주하면서 벌어지는 일을 그린 에피소드이다. 중간에 잠깐 어느 라이더와 바이크 대결을 펼치는 것도 있지만, 진짜 백미는 막판에 히로시가 위기에 처했을 때 미나미 코타로가 나타나 가면라이더 블랙으로 변신해서 히로시와 함께 고르곰의 괴인들을 처치하는 장면이다.[33] #

이시노모리가 사망한 뒤로도 이시노모리 프로덕션과 깊은 관계를 이어오고 있으며 일러스트를 그려주거나 헤이세이 라이더 시리즈의 괴인, 크리처 디자인도 해줬었다.

4.2. 마츠모토 레이지

데즈카와 이시노모리 말고도 마츠모토 레이지를 좋아하며 특히 우주전함 야마토를 무척 좋아하는 편으로 고등학교때는 학생회장이었는데 럭비부가 전국대회에 나갈 때의 연설석에서 데슬러 총통의 흉내를 냈을 정도.

우주전함 야마토로 마츠모토가 빵 뜨기 전부터 광속 에스퍼 등 마츠모토 레이지의 작품을 보았으며 특히 '사나이 오이동(男おいどん)'을 봤을 때 이 작가는 크게 될 것이라 느꼈다고 한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이 우주전함 야마토의 경쟁 프로그램인 알프스의 소녀 하이디를 볼 때 시마모토는 마츠모토 작품이라는 이야기를 듣고 우주전함 야마토를 1화부터 보았다고 한다. 이 작품을 실시간으로 1화부터 끝까지 다 본 사람은 몇 안 되는데 그게 자신이라고 자부한다.[34] 안노 히데아키는 나중에 들어와서 1화를 못 봤으니까 자신이 안노보다 야마토 덕력이 높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극장판은 도쿄에서 며칠만 개봉하고 내린다는 이야기를 듣고 가출을 해서 보러 갈 생각을 했으나 여러 사정으로 못 갔고[35] 피눈물을 흘렸는데 다행히도 홋카이도에서도 개봉을 해줘서 극장에서 몇 번을 보면서 뇌에다 내용을 박아버렸다고 한다.

시리즈 중에선 첫작품의 팬이다. 이 첫 작품은 자신의 바이블이라고 한다. 특히 오키타 쥬조 함장을 좋아해서 오키타 대사는 암송 할 수도 있다. 그렇지만 야마토 시리즈는 극장판을 만들어서 우려먹는다던지, 등장인물의 자폭이나 특공을 미화하는 점은 싫어하기 때문에 라디오에서 이것을 대놓고 깐 적이 있다.

야마토 외에는 은하철도 999, 우주해적 캡틴 하록도 좋아하며 자신의 특유의 연설 연출은 마츠모토 레이지 작품의 영향이라고 한다. 그의 작품의 대사를 보면서 인생이 바뀌었다고 한다.

시마모토는 마츠모토 레이지의 제자인 신타니의 제자라 마츠모토와 직접 친분이 있었으며 마츠모토는 시마모토가 자기 만화를 작품에 내도 돈을 거의 안 받았다고 한다. 그리고 시마모토의 데뷔작을 재밌다고 뽑아준 심사위원 중 한 명이 마츠모토 레이지였다고 한다. 운명적인 인연이 있었던 걸지도 모른다.

마츠모토 레이지가 사망했을 땐 추도문을 써냈다.

4.3. 가이낙스 라인

가이낙스를 창설한 멤버들과 대학 동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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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노 히데아키(좌측)와 시마모토(우측)의 젊은 시절
흔히 대학 시절 찍은 사진이라고 알려져 있는데 1985년 뉴타입 7월호 대담에서 찍은 사진이다.[36]
즉, 둘 다 프로 데뷔를 한 후 찍은 것이며 대학 때 같이 찍은 사진은 없다.
아니메 점장 PV 가이낙스 편.
우정 감독 안노 히데아키[37]
콘티, 작화감독 이마이시 히로유키
원화 안노 히데아키, 이마이시 히로유키, 요시나리 요우, 츠루마키 카즈야, 오구라 노부토시, 마사유키
캐릭터 디자인, 나레이션[38] 시마모토 카즈히코

오사카예술대학에서는 후에 가이낙스를 세우는 멤버들이나 다른 업계인들과 영상학과 동기가 되었지만 사실 친분은 그다지 없었다고 한다. 아오이 호노오 작중에서도 안노 히데아키, 야마가 히로유키, 아카이 타카미와 접점은 그리 많지 않다. 다만 당시 대학에서 과제로 제출한 안노의 애니메이션의 퀄이 너무 높아 애니로는 이놈을 이길 수 없다고 생각해서 만화로 주전공을 옮겼으며 마음 속의 라이벌로 여겼다고 한다. 반면 안노, 야마가, 아카이는 시마모토는 자신들하곤 다른 그룹과 놀아서[39] 만날 기회가 별로 없었다고 하며 훗날 "라이벌이라니 그건 그 인간이 멋대로 망상한 거라고"라고 말하였다. 사실 작품 내에서도 호노오는 안노가 내놓는 작품에서 보이는 재능에 일방적으로 좌절하거나 속을 끓이거나 할 뿐 실제로 안노와 인간관계다운 관계를 맺지는 않는다. 그나마 시마모토랑 친했던 멤버는 야마가 히로유키 뿐이었다고. 아카이는 낯가림이 심해서 깊이 친해지진 못했지만 시마모토가 애니메이션 과제를 할 때 좀 도움을 주었다고 한다.

안노는 진짜로 시마모토와 별 접점이 없었으며 시마모토는 안노가 자신을 기억하고 있을 리가 없다고 생각했지만 안노 말로는 "너 좀 특이해서 학교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라고 한다.[40] 안노 말로는 "시마모토는 매사를 승부라고 생각하는 녀석."이라고 하며 농구할 때 "우오오오 나에게 기회를 다오오오오오!" 하고 열혈 대사를 외쳐대서 좀 이상한 놈이라고 생각했으며 지켜보고 있었다고 한다. 나중에 만화책을 보고 "캐릭터가 전부 작가 본인이잖아."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시마모토가 재학 중 만화가 데뷔해서 화제일 때 친구들하고도 이야기했는데 "이 녀석은 만화보다 본인이 더 재밌어."라는 의견이 공통되게 나왔다고. 그래서 호에로 펜을 봤을 땐 "이 녀석은 본인이 더 재밌다는 사실을 이제야 깨달았네."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다만 시마모토가 대학 재학 중 만화가 데뷔하자 안노가 찾아와서 사인해 달라고 했는데 그건 실화라고 한다. 시마모토가 인생 처음으로 사인을 해준 사람이 안노라고 한다. 이렇게 대학생 때는 둘이 별로 친하지 않은 듯하지만 이 사실을 안노가 알게된 이후에는 서로 친해져서 이후로는 자주 접촉이 있다고 한다.

실은 안노의 실력은 인정하지만 안노가 만든 애니메이션 작품은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편. 신세기 에반게리온도 그렇게 감동받지 않았다고 한다. 안노와 같은 세대로서 같은 걸 보고 자라서 이건 저거고 저건 그거 패러디, 오마주라는 게 다 보여서 집중이 되지 않는다고 한다. 그리고 안노 작품은 보다보면 캐릭터의 행동에서 자꾸 안노 본인이 보인다고.[41] 본인 말 "감동하지 않았으니까 난 (프로 데뷔 후) 안노한테 진 적이 없다!"라고 한다. 시마모토가 칭찬하는 안노 작품은 전부 실사영화다.

그러다 처음으로 패배했다고 하고 극찬한 것이 신 고질라이다. 첫날 첫 상영으로 보고 학창 시절 이래 처음으로 절망을 느꼈다고 한다. 이 영화 첫날엔 그렇게 흥행 페이스가 좋지 않아서 응원해주려고 트위터에 "안노 그만해! 나보다 재밌는 걸 만들지 마라!", "특촬을 아는 사람들을 모아놓고 신 고질라를 같이 보면서 '그만둬 안노! 나보다 꽃길을 걷지 마라!' 하면서 무너지고 절망하는 그 처참한 모습을 안노에게 보여주고 싶다." 라고 글을 올렸는데 본인 의도와 관계없이 여러 곳에 퍼지면서 인기있는 글이 되었다. "친구 응원해주려고 올린 농담인데 전국의 놀림거리가 되었어!" 라고 한다. 거기다 안노가 그걸 보고 "그럼 여기서 하도록 해." 라고 절규 상영회를 열어주었다. 그 상영회에서 상영이 끝나고 "우리는 안노에게 졌다! 라고 다 함께 외칩시다!" 하고 외치면서 마무리 하려고 했는데 안노가 깜작 방문했다고 한다.[42] 시마모토는 얼탱이가 나갔다고. 이 일화는 동인지로 만들어서 판매했는데 시마모토가 그린 어지간한 출판만화보다 잘 팔렸다고 한다.

가면라이더 50주년에는 자신이 제일 좋아하는 초대의 그림을 축전으로 그려 올렸는데[43] 당일 안노 히데아키의 초대 라이더 리메이크 작품 신 가면라이더가 발표되어 큰 충격을 받는다. '시마모토가 사랑하는 것을 전부 빼앗아가는 자 안노 히데아키'라는 글을 리트윗하고 공감한다 하기도 했다. # 신 가면라이더와 같이 트위터 실시간 트랜드에 시마모토 이름이 올라가기도 했다. 많은 사람들이 시마모토의 반응을 궁금해 했기 때문이다.

본인은 안노의 재능에 좌절하고 부러워했지만 역으로 가이낙스 멤버들은 대학교 재학중에 프로로 데뷔한 시마모토를 부러워했다고 한다.[44] 아오이 호노오 드라마판에서 1학년 진학과제로 만들었던 애니메이션을 더빙만 새로 해서 그대로 방영했는데, 드라마에서는 무반응에 심한 충격을 받지만 실제로는 안노 3인조는 그 과제 애니메이션을 꽤 괜찮게 봤다고 한다. [45] 실제로 다이콘 3 후속작 기획시 섭외할 인물 리스트에 있었다고 한다. 단지 중간에 꼬여서[46] 실제 섭외까지는 이루어지지 않았는데, 시마모토는 이 에피를 각색해서 자학개그용 소재로 써먹었다.[47]

가이낙스 쪽 인물이라 편의 상 여기서 언급하지만 오카다 토시오와 별로 친하지 않았다. 친하지 않은 게 당연한 게 실은 오카다는 시마모토, 안노 3인조와 같은 대학이 아니다.[48] 불꽃전학생이 가이낙스에서 오카다 토시오의 주도로 애니메이션화 된 적이 있지만 원작의 극초반 부분만이 제작되었을 뿐더러 내용도 상당히 변경되었다. 이는 오카다 토시오가 이런 작품은 재미도 없고 성공할 수도 없다고 생각해서 멋대로 바꾼 거라고. 시마모토는 이것에 대해서 불만을 느꼈으며 오카다를 패러디의 소재로 삼은 적이 있다. 다만 이후로는 오해를 풀고 비교적 괜찮은 사이가 된 듯하다. 아오이 호노오를 취재할 때 오카다가 가장 많은 도움을 줬다고 한다. 오카다의 저서 표지를 그려주기도 했다. 아오이 호노오에 나왔던 그 그림체로.

4.4. 후지타 카즈히로

같은 선데이 작가 중에서도 특히 서로를 의식하는 관계. 절친이자 영혼의 라이벌이다.

담당 편집자가 둘 다 똑같이 미카미 신이치였던 게 인연이 되었다. 당시 신인이라 고민이 많던 후지타를 위해 미카미가 시마모토에게 '기를 좀 불어넣어달라' 고 요청하고, 시마모토는 연말 파티에서 후지타를 불러내 "네 이놈!!" 하고 호통을 지르면서 온갖 설교를 쏟아냈다고 한다. 후지타가 본 시마모토의 첫인상은 "뭐야 이 인간?!" 이었다고. 그리고 후지타는 왠지 그때부터 머리가 빠지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러나 나중에 후지타가 기억이 꼬였는지 2023년 인터뷰에선 팬 사인회에서 처음 만났다고 하기도 했다.[49]

첫만남은 이랬지만, 아무튼 같은 홋카이도 출신이라 여러번 만나면서 친해졌다고 한다. 시마모토가 후지타보다 나이가 많고[50] 10년은 먼저 히트한 대선배라서 처음엔 선생님이라고 불렀지만, 이후 친해져서 말을 놓는 사이가 되었다고 한다.[51]

시마모토의 작품 호에로 펜에서도 후지타를 모델로 만든 후지타카 쥬비로란 인물이 꽤 큰 비중으로 등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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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8월에는 NHK의 기획방송으로 후지타 카즈히로와 합작만화를 완성시키는 기획에 참가하기도 했다.리얼 호에로 펜

테마는 라이벌로 서로 1컷씩 그려 한 페이지의 단편 만화를 완성하는 식으로, 호에로 펜 내에서 비교하자면 후지타카와의 이야기보다는 호노오 모유루와 나가레보시 쵸이치로의 합작 만화 쪽에 가까운 형식이었다. 심사원들의 판정으로는 만장일치로 후지타의 완승.

이때 후지타에게 패하고 너무 분해서 철저한 연구 끝에 초급! 기동무투전 G건담의 치보데 VS 도몬 편을 그려냈으며 걸작으로 완성되어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후지타도 인정해줬다고 한다. 시마모토는 이를두고 "내 생애 처음으로 후지타를 이겼다."라고 평했다. #

꼭두각시 서커스를 보고 완결이 다가올 즈음 스토리 및 콘티 제작 협력 및 시마모토의 작업실 멤버 전체가 어시스턴트로 참여해서 작품을 도왔다고 한다. 인터넷 생방송에서 작가와의 대담 도중 언급된 사실이며 실제로 꼭두각시 서커스 완결편의 스태프 소개, 단행본 마지막 권의 Special Thanks 부분에는 시마모토 카즈히코의 이름이 들어간 바 있다.

시마모토 본인의 언급으로는, 해당 작품에서 자기가 보고 싶은 장면을 넣어달라고 부탁했는데 이후 연재 잡지에 보고 싶은 장면이 없어서 후지타한테 따졌다가 서로 말이 안 맞아서 싸운 적이 있었다는 모양. 알고 보니 후지타는 부탁한 대로 그려줬건만 작가가 하필 그 장면이 나온 잡지를 건너뛰고 봐서 착각한 거였다고...이 일화를 자신의 작품인 《新 호에로 펜》에서 정반대로 '쥬비로는 내가 보고 싶은 장면을 안 그릴 게 뻔하니 내가 그린다!'라는 식으로 각색하여 그린 적이 있다.[52]

후지타와 대담, 토크 이벤트도 자주 하고있고 트위터에선 후지타가 뭘 하고 있는지 사람들로부터 절찬 모집하고 있으며 정보가 입수되면 따라하거나 응징하러 가는 것을 컨텐츠로 삼고있다. 그냥 호에로 펜에서 호노오 모우류랑 후지타카 쥬비로가 하는 짓을 현실에서도 20년 넘게 이어오고 있는 혼의 라이벌이라 보면 편하다.

4.5. 제자

자전적인 만화를 많이 그리는 작가라 제자들이 만화에 캐릭터로 출연하기도 한다.

4.6. 그 외 인물

스승으로는 에어리어 88의 작가 신타니 카오루(新谷かおる)를 거론한다. 시마모토의 스타일은 본인이 독자적으로 다른 인기만화를 연구해서 얻어낸 것이라 스타일이 다르지만[55] 만화 그리는 법의 기초와 업계에서 살아남는 법, 날로 먹는 법 등을 알려준 은인이라고 하며 시마모토의 만화에 여러 번 나왔다. 시마모토는 좀 더 신타니 카오루 밑에 있을까 했지만 신타니가 그리는 복잡한 전투기를 도저히 따라 그려낼 수 없어서 빨리 그만두었다고 한다. 그래도 데뷔할 때 큰 도움이 되었다며 스승이라고 하면 신타니를 가장 먼저 언급한다. 신타니 말로는 시마모토는 "자기가 그린 만화랑 똑같은 인간." 이었다고 하며 "너 계속 그렇게 에너지를 분출하면서 살면 언젠가 기 다 빠진다. 건강 챙겨라." 라고 당부했는데 시마모토는 그 이후로도 계속 그렇게 살았다.

본즈의 사장 미나미 마사히코와 대학 동기이며 친분이 있어 질풍! 아이언리거 기동무투전 G건담의 캐릭터 디자인 쪽 방향성을 제시해 주었다고 한다. (실제로 디자인을 전부 한 건 아니다)

한때 애니메이터를 목표로 했기 때문에 애니메이터들을 좋아하기도 한다. 특히 좋아하는 건 카나다 요시노리. 그 다음으론 아라키 신고, 아시다 토요오, 스기노 아키오를 좋아한다.

소년 선데이에서 활동했던 작가 대부분과 두루두루 친하며 선데이의 최고참인 아다치 미츠루, 타카하시 루미코, 아오야마 고쇼에게 막말을 하거나 개그 소재로 끌어다 쓸 수 있는 몇 안 되는 인물이다.

캔디캔디의 작화를 담당한 만화가 이가라시 유미코(いがらしゆみこ)도 시마모토를 동생처럼 챙겨준다고 한다.

근육맨 유데타마고를 한때 대단히 싫어했다고 한다. 자신은 점프 편집부에 작품을 투고했을 때 "패러디가 너무 많다."라는 이유로 퇴짜를 맞고 선데이로 밀려났는데 어느날 점프를 펼쳐보니 대놓고 울트라맨의 패러디 만화인 근육맨이 있어서 화가 났었다고 한다.[56] 거기다 시마모토는 학생 시절 울트라맨 에이스의 동인 개그 만화를 그렸었기에 "이런 걸로도 데뷔를 할 수 있는 거였어?"라는 생각과 "먼저 해버리면 장땡이라는 건가?! 당했다!"라는 생각이 들어서 충격이었다고 한다. 거기다 근육맨에 나오는 울트라맨의 묘사가 개그톤에 원작하고 다른 부분도 많아서 "이 인간들이 정말 울트라맨의 팬이 맞나? 울트라맨을 우습게 보지 마!"라는 불만도 있었다고 한다.[57] 하지만 이후에 근육맨이 프로레슬링 만화로 전개를 바꾸며 울트라맨의 그늘에서 벗어났고 자신만의 영역을 만들어낸 것을 보고 다시보게 되었으며 현재는 존경한다고 한다.

우미노 치카하고도 친분이 깊다. 우미노 말로는 오빠같은 분이라고 한다. 우미노는 학창 시절부터 시마모토의 팬이었으며 만화가 데뷔 후 힘들 때 시마모토가 격려도 해줘서 "시마모토는 신." 이라고 한다. 호에로 펜에 '리쿠노 치카'라는 우미노를 모델로 한 캐릭터가 나오기도 했고[58] 시마모토가 3월의 라이온 애니메이션 엔드 카드를 그려주기도 했다. 다만 우미노가 사생활을 밝히고 싶지 않아하는 걸 배려해서 이야기는 많이 하지 않는다. 반대로 우미노가 시마모토 이야기를 자주 한다. "시마모토가 갑자기 "우미노! 너 시집보내는 방법이 생각났어!" 하고 전화를 걸었다.", "호에로 펜의 리쿠노 치카는 왜 머리를 가일 같이 그려놨어?" 라고 한다.

불꽃전학생의 히로인을 연기한 성우 히다카 노리코[59], 기동무투전 G건담의 주인공 도몬 캇슈를 연기하고 상술한 아니메 점장의 성우를 담당하기도 한 세키 토모카즈도 시마모토와 친하다.

후배 만화가 우스타 쿄스케는 시마모토를 존경하며 자신의 개그 스타일의 기본은 시마모토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둘이 친분도 있다.

삿포로의 방송국 STV의 아나운서 시부야 모나미(渋谷愛奈美, 애칭 모나밍(もなみん)) #트위터과 오랜 시간 라디오를 같이 진행했으며 시마모토의 유튜브에 자주 게스트로 출연한다.

일본 최초의 코스프레 아이돌이자 여성 만화가 잇폰기 방(一本木蛮)과 의형제이다. 처음 만났을 때는 서먹한 사이였지만 몇 년 뒤 잇폰기가 내일의 죠 팬이란 걸 알게된 시마모토가 "내일의 죠를 좋아하는 사람 중 나쁜 사람은 없다!" 라면서 연락을 해서 연락을 텄고 정신세계가 딱 맞아서 의형제를 맺었다고 한다. 그래서 잇폰기는 오빠나 선생님이라고 부르지 않고 형님(아니키)라고 부른다. 잇폰기는 시마모토의 화풍을 따라 그릴 수도 있어서 가끔 시마모토가 바쁠 때는 어시로 도와주러 가기도 한다. 잇폰기는 호에로 펜의 캐릭터 '모유'의 모델이기도 하다.

후배 만화가 중에선 야테라 케이타(矢寺圭太)[60]를 주목하고 있으며 응원한다고 한다. 야테라는 고등학교 때 호에로 펜을 보고 만화가가 되기로 했으며 대학도 오사카예술대학 중퇴로 시마모토의 후배다.[61] 괜히 응원해주는 게 아닌 셈. 그리고 야테라 케이타에게 '작가의 불행도 만화 소재로 그리라'고 충고한 결과, 주식[62]를 하다 망한 썰을 트위터에 올리며 '주식을 하다 망한 만화가'로 나름 이름을 남기게 됐다.

5. 기타

6. 작품 목록

이하 시마모토 카즈히코의 작품 목록 중 일부이다.

6.1. 연재 작품

6.2. 단편 작품

6.3. 공저

6.4. 디자인, 원안



[1] 아오이 호노오에서 밝히기로, 사이보그 009의 시마무라 죠와 성우 이노우에 카즈히코에게서 따온 게 절대 아니라고 한다. [2] 생일은 다르다. 데즈카 마코토는 1961년 8월 11일생. [3] 오카다 토시오도 시마모토의 최고의 작품은 역경 나인이라고 생각한다고 한다. [4] 호에로 펜의 호노오 모유류와 아오이 호노오의 호노오 모유류가 동일 인물이라고 공인된 건 일단 아니긴 한데…애당초 두 캐릭터의 모티브가 시마모토 카즈히코 자신이라서 주변인도 팬덤도 모두 동일인물로 받아들이고 있다. 심지어 드라마판은 대놓고 아오이 호노오가 호에로 펜의 프리퀄이었다는 결말로 마무리지었다. [5] 아이러니하게도 사회 초년생인데다 재능있는 주변인에게 묻혀버린 젊은 시절을 다룬 아오이 호노오가 연재되면서 "할 말 못하고 소심한 면이 있는 호노오 모유루" (aka 완전판 시마모토 아바타)가 성립되어 버린 감이 있다. [6] 초대 라이더가 의외로 그리기 복잡한 디자인데도 시마모토는 안 보고 즉흥으로 똑같이 그려낼 수 있다. [7] 아오이 호노오에선 빡대가리처럼 나오지만 페이크라고 한다. 동료 만화가 잇폰기 반 말로는 시마모토는 공부 잘 했다고. [8] 현재는 괜찮은 학교이지만 당시엔, 특히 영상학과는 지잡대 수준이었다고 한다. 담당 편집 미카미 신이치는 "그런 지잡대학 나와서 어따 쓰려고 하냐! 넌 만화가 됐으니까 도쿄로 내려와라!" 라고 해서 중퇴했다고. [9] 작가 스스로 《新 호에로 펜》에서 호노오 모유류의 입을 빌려 "똥망작을 낼 수 있는 용기를 가져야 한다"라고 역설한 적이 있다. 영 아닌 거 같은 작품도 용기있게 내 보면 의외로 히트칠 수도 있고, 세 번 중에 한 번 히트작이 나온다면 신에게 감사한다고. [10] 수익을 나눠야 해서 돈이 별로 안 된다고 한다. 《호에로 펜》에서 주인공인 호노오 모유류가 포켓몬을 패러디한 '피카리몽'의 수많은 코미컬라이즈 중 하나를 담당하는 에피소드를 통해 이 소재를 풀었는데, "피카리몽이 전 세계에서 수백만장이 팔리더라도 나에게는 한 푼도 떨어지지 않는다!!" 라는 호노오의 외침이 일품. [11] 한국 웹에서는 "분명히 만화는 눈으로 읽는데 어째서인지 만화가 시끄럽다"는 평을 받는다. [12] 마스터 아시아가 나오는 부분을 빨리 그리고 싶어서 초반을 광속으로 그렸다고 한다. [13] 그래놓고 하는 말이 " 이시노모리 쇼타로 선생님은 한 달에 600장이었으니까 전 아무것도 아닙니다." 라고 한다. [14] 여기에 대해서도 《新 호에로 펜》에서 소재로 삼은 적이 있다. 한 컷 내에서 호노오 모유류가 직접 담당하는 부분을 먹칠로 지워놓자 주연 캐릭터 하나만 달랑 빠졌는데, 이걸 가지고 '작품 하나에서 내(호노오) 비중은 결국 이 정도니까, 어시스턴트인 너희도 호노오 모유류의 일부다' 라고 억지를 부리면서 만화학원 강사로 어시스턴트들을 보내는 기행을 저지르는 에피소드. [15] 2023년 우라사와 나오키의 만화공부 라는 프로그램에 나온 바에 따르면 사업에 집중하고자 화실 규모를 줄여서 어시가 3명 밖에 없다고 한다. 심지어 화실이 회사 사무실 바로 옆방이다. [16] 아마도 픽션이겠지만 호에로 펜에서 호노오는 유럽 쪽에서 거금을 줄 테니 집중선만 그려달라는 의뢰를 받기도 했다. [17] 시마모토가 존경한다는 이시노모리 쇼타로, 마츠모토 레이지, 나가이 고 이 3 작가 모두 열린 결말인 작품이 많다. [18] 악수하는 사람은 불꽃전학생 애니메이션 감독 니시지마 카츠히코. 모에로 펜에서도 나온다. [19] 타카하시 루미코는 "상상력으로 경험하지 않은 것도 만화로 그려낼 수 있습니다. 경험하지 않으면 못 그린다고 하는 사람들은 그냥 재능이 없는 겁니다." 라고 말한 적이 있다. [20] 여담으로 이 대사는 철저히 웃기려고 말한 대사였는데 (해당 작품 자체가 시마모토 자신의 대학 시절을 돌아보는 작품인 만큼, 메타적인 시점에서 보면 넌센스 개그가 된다) 심금을 울렸다는 말을 듣고 기분이 묘했다고 한다. [21] 아다치는 사진은 많이 찍었지만 동영상으로 방송에 출연한 건 시마모토의 유튜브가 최초이다. [22] 이 작품과 관련된 재미있는 에피소드가 있다. # [23] "내가 애니메이션을 만들었으면 나왔을 작품." 라고 극찬했으며 광팬이라고 한다. 애초에 불꽃전학생 오마주가 들어간 작품이다. [24] 신죠 아카네를 구하기 위해 아오이 호노오를 들고 온다는 내용이며 마지막은 최종화의 실사 버전을 시마모토 본인이 따라해서 찍은 사진이 들어가 있다. 정상이 아니다. [25] 자신의 만화 불꽃전학생과 내용이 비슷하며, 구엘 제타크가 젊은 시절의 자신 같아서 좋아한다고 한다. [26] 그래서 시마모토가 그린 러브라이브 동인지는 도입부 내용과 연출이 역경 나인과 완전히 똑같다. [27] CONTINUE Vol.58 인터뷰 중 [28] 사실 역경 나인 연재 당시 독자가 "3만엔 주고 컴퓨터를 사서 거지가 되었어요." 라고 하자 "4만엔 벌어! 그러면 1만엔 남는다!" 라고 한 답변의 재탕이다. [29] 가면라이더는 가면라이더 V3까지만 보고 졸업했었다고 한다. 하지만 가면라이더 스트롱거 마지막화는 이시노모리가 감독을 하고 선배 라이더가 다 나온다고 해서 보았으며 그때부터 다시 라이더를 좋아하게 되었다고 한다. 가면라이더(1979)는 배우를 오디션으로 뽑는다고 해서 오디션을 보려고 했지만 못 봤다고. [30] 전부 만화책 이야기이다. 특촬물로 가면 더 많다. [31] 진심으로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어서 나가이 고를 만났을 때도 무의식 중에 똑같은 말을 해버렸다고 한다. 나가이 고도 웃으며 좋아했다고. [32] 아오이 호노오에서는 나가이 고의 어시가 되는 건 어떠냐는 제안에 이시노모리의 어시가 되면 나가이 고와 동문이 될 수 있다!" 라면서 이시노모리의 어시스턴트가 되겠다고 우긴다. [33] 변신한 모습을 보면 특촬판의 디자인이 아니라, 이시노모리 쇼타로 원작 만화판의 디자인이다. [34] 실은 야마토는 방영 당시엔 하이디에 밀렸고 내용도 복잡해서 그다지 인기 없었다. 나중에 재방송과 극장판으로 재조명된 작품이다. [35] 반면 안노는 도쿄로 가버렸고, 뉴스에도 출연했었다. [36] 그래서 잘 보면 옆에 종이 접힌 부분이 있다. [37] 안노가 "시마모토는 카나다 요시노리 씨를 좋아하니까." 라면서 자신이 아는 사람 중 카나다 작화를 잘 하는 애니메이터를 모아서 만들었다고 한다. [38] 가면라이더(초대) 패러디. [39] 시마모토는 미나미 마사히코 쪽 그룹이었다. [40] 시마모토는 조용히 학교 다녀서 그럴 리가 없다고 했지만 안노는 "그건 아니야." 라고 했다. [41] " 이카리 신지는 자기가 하기 싫은 건 안 하려고 하죠. 안노가 그렇습니다." 라고 한다. [42] 실은 안 오려고 했는데 아내 안노 모요코가 "친구가 망가지고 있는데 당신은 가만히 있을 거야?" 라고 해서 왔다고 한다. [43] 다른 라이더를 그릴 수도 있었지만 초대가 좋아서 그렸다고. 완전히 우연. [44] 그런데 이 3인조도 몇 달 뒤 초시공요새 마크로스로 프로 데뷔했다. 다만 돈은 시마모토가 더 많이 벌었다. [45] 만화에선 야마가 히로유키 한 명만 호평. 안노와 아카이는 딱히 말이 없었지만 말만 없었던 거지 괜찮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46] 저 당시 시마모토는 만화상 타고 만화가 데뷔 확정이라 이곳저곳 왔다갔다 하던 시기였다. [47] 상술된 호노오(시마모토)의 열혈 농구를 보고 너무 시끄럽다고 권유하지 않는 것으로 나온다. [48] 오카다는 훗날 가이낙스가 되는 동인 집단 '다이콘 필름'이 제작하는 동인 애니메이션에 투자금을 지원해주는 부잣집 물주라서 가이낙스 멤버를 알게된 것이다. 시마모토와 관계가 있을 리가 없다. [49] 이 사인회 일화 호에로 펜에서 에피소드로 나왔다. [50] 후지타가 데뷔를 늦게 해서 크게 차이나진 않는다. [51] 애초에 일본은 친하지 않은 사이는 나이를 따지지만 친해지면 그렇게 따지지 않고 오히려 말을 놓아야 진짜 친해진 것으로 본다. [52] 현실에서는 본인 사단을 모두 꼭두각시 서커스 완결을 위해 갈아넣어줬지만 호에로 펜에서는 마지막화를 위해 배분받은 시간이 3개월 밖에 없음에도 조연부터 엔딩을 그려주는 기행을 시작한 후지타카가 주연의 엔딩을 못 낼 것을 예상하고 본인의 연재 스페이스를 사용해서 본인이 멋대로 자기가 보고 싶은 주연들의 꼭두각시 서커스의 엔딩을 그리기 시작하는 것으로 각색되었다. [53] 2023년 후지하라가 직접 스승 시마모토의 자캐 호노오 모유루와 자신이 모델인 마운트 부시가 섹스하는 19금 동인지를 그렸다. 그리고 그걸 스승에게 선물했으며 시마모토는 자기 유튜브 채널에서 그걸 낭독 리뷰하다 할 말을 잃었다. 이 일 이후로 미친 사제라 불리게 되었다. [54] 타가와는 작가로서의 필명이고 본명은 사토 야스히로(佐藤泰洋)이다. [55] 신타니는 마츠모토 레이지에게 배운 소녀만화에 가까운 인간 그림과 리얼한 메카닉 작화의 언밸런스한 조화로 인기를 얻은 만화가이다. [56] 실제로 근육맨은 초반부에 주인공이 마늘을 먹고 거대화해서 괴수와 싸우는, 딱 울트라맨에 개그를 더한 내용이였다. 게다가 작중에서도 대놓고 울트라맨이 언급되었으며, 근육맨은 울트라맨의 대타 정도로 묘사되기도... [57] 그도 그럴것이 단편시절의 근육 스구루는 무려 울트라의 아버지가 술김에 술집 여자를 덮쳐서 낳은 사생아라는 설정이었다. 울트라맨 팬으로써는 화가 날 만도 하다. 당연히 당시 츠부라야 프로덕션은 격분했고, 해당 애피소드는 봉인되었다가 최근에야 해금되었다. [58] 이름부터가 '우미노(바다의) 치카'를 '리쿠노(육지의) 치카'로 비튼 말장난. [59] 안노는 히다카를 짝사랑해서 청혼했다가 차인 적이 있다. [60] 고물 로봇 퐁코, 늘 청춘같아요 작가. [61] 시마모토와 안노가 중퇴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자신도 중퇴했다고 한다. 그런데 저 둘은 프로 데뷔 제안 받고 중퇴한 건데 야테라는 자신은 바보라서 일단 중퇴부터 해버렸다고 한다. [62] 정확히는 초기엔 주식이었다가 선물과 신용거래로 넘어갔다 [63] 간혹 비슷한 이름으로 바꿔 나오기도 한다. [64] 호에로 펜에서는 도쿄 근교에 위치해 있다고 운을 뗐지만 실제 위치는 홋카이도(...) 편집자 주에 따르면 대만보다는 가까우니 어쨌든 근교라는 변. [65] 호에로 펜 RRR에서 시마모토는 "후지타 카즈히로가 멋대로 들어와서 트위터에 생중계로 그림을 그리고 있는데 손님이 안 오다니! 도쿄라면 난리가 났었을 텐데! 내 가게는 대체 어떻게 되먹은 거냐!" 라고 경악했다. [66] 스기타 토모카즈의 아니게라! 디둔 2017년 9월 28일 방송문 참고. [67] 게, 연어알, 메론은 모두 시마모토가 거주중인 홋카이도를 대표하는 특산품이다. [68] 사실 《아오이 호노오》에서도 대학교 내에서 시마모토와 교류다운 교류를 가지는 여성은 톤코와 츠다 2명밖에 없다. 그 둘이 호노오에게 살짝 극성맞을 정도로 달라붙는 바람에 작품 내에서 자주 등장하므로 자연스레 인기가 많아 보이는 것. 만화라서 과장이 많이 섞였음을 감안하면 시마모토와 교류가 별로 없었던 사람들 사이에서 특별히 여자에게 인기있어 보이진 않았다고 해도 이상한 일은 아닐 것이다. [69] 땀에 젖었는데 며칠을 안 갈아입어서 바지를 입은 상태로 썩어버렸다고 한다. [70] 동료 만화가 잇폰기 반의 증언. [71] 물론 개그도 있지만 내용은 전반적으로 진지하다. [72] 이것도 이시노모리 쇼타로가 종종 쓰던 기법이다. [73] 월간 연재작이었는데 1권당 5화가 들어가니, 간단 계산으로 3년 9개월 가량 연재했음을 알 수 있다. [74] 동창 미나미 마사히코가 "스폰서에서 뜨거운 건담을 만들어달라고 한다. 네가 제일 잘하는 게 그거잖아." 라면서 갑자기 끌고와서 요청해서 철야로 만들어줬다고 한다. [75] 정확히 말하면 2절만. '도쿄도에 사는 만화가 시마모토 카즈히코'라고 솔직하게 이름을 밝힌 채 가사 공모전에 참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