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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2-18 17:12:26

이타노 이치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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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작품
2.1. 감독 작품2.2. 참가 작품2.3. 기타 작품

1. 개요

板野一郎
이타노 서커스의 최고 정점으로 꼽히는 마크로스 플러스 '전설의 5초' 로 불리는 장면
단 5초 동안 들어간 프레임이 116장에 프레임 내 동시에 움직이는 미사일은 29개다.

일본 애니메이터, 연출가, 애니메이션 감독. 1959년 3월 11일 생.([age(1959-03-11)]세) 가나가와 현 요코하마 시 출신. 인터뷰 기사

메카닉과 미사일, 폭발에 인생을 바친 애니메이터. 옛날 애니메이터들은 다 잘그려야 성공할 수 있었는데 사람을 못 그림에도 자신이 잘하는 한분야에 집중하여 명성을 얻은 애니메이터이다. 자신의 스승으로는 야스히코 요시카즈, 코가와 토모노리, 이시구로 노보루 3인을 거론한다.

학생 시절엔 불량 학생이었다. 빨리 취업하고 싶어서 공업고등학교에 다녔는데 좀처럼 원하는대로 공부가 되지 않아 학교에서 오토바이를 타면 퇴학이라고 했는데도 오토바이를 타고 막 살았다. 집안에서도 내놓았다고 한다. 이게 걸려 퇴학당할 상황에 처하자, 어릴 적부터 애니메이션을 좋아했었기도 해서 전단지의 광고만 하나 보고 스튜디오 무사시에 발을 들였다. 그림을 별로 잘 그리진 못했으나 아르바이트 겸 주어진 일을 다 해내자 애니메이터를 해보라고 연락이 왔고 이타노는 학교에 자신이 취업했다고 알리고 졸업장을 받았다고 한다.[1] 이 사실을 부모에게 알리자 당시로선 애니메이터란 직업을 별로 좋게 보지 않아서 실망하면서도 "네가 드디어 사람 구실을 하는구나" 라는 이야기를 했다고 한다.[2] 그래도 공업 고등학교를 다닌 걸 후회하지 않는데 건축 설계도를 그리는 걸 공부할 때 3점 투시를 배워서 그림을 입체로 파악하고 그릴 수 있게 되었다고 한다. # 오토바이는 학교를 졸업한 뒤로도 좋아해서 통근 수단으로 썼고 취미로 드라이브도 자주 했다고 한다. 오토바이를 타고 미사일이나 총을 발사하면 어떻게 보이나 확인하고 싶어 오토바이에 타고 불꽃놀이를 쏴본 적도 있었다. 이러한 경험 덕분인지, 이타노의 작품 중 메가존 23 엔젤 캅은 오토바이 관련 묘사가 매우 리얼하다.

상당히 근성이 있는 인물로 유명했는데 돈 욕심이 별로 없고 자신이 하는 일을 수행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젊은 시절엔 정말 돈도 안 받고 사서 고생을 했다. 동화 일을 하는 시기에는 월급이 쥐꼬리라 하루 종일 그리고 이틀에 한번 철야로 일을 해도 출퇴근 차비도 안 남으니 그냥 일하는 데서 의자 늘어놓고 잘 정도였는데, 그런 와중에도 자기가 동화 그리는 장면에서 나오는 폭발 신을 두고는 '진짜 폭발은 이런 식으로 안 나온다!'라며 딴지를 걸고 결국 자신의 주장을 관철시키기까지 했다. 사람을 잘 못 그리는 타입이라 장당 단가는 다른 애니메이터 들에 비해서 밑바닥에서 놀았는데 "내가 한 장이라도 더 그리면 되겠지"라는 마인드로 일했다고 한다. 동기인 모리야마 유지 안녕히 우주전함 야마토 사랑의 전사들을 스튜디오에서 침낭놓고 철야하면서 그리던 중에 이타노 이치로가 잠이 오자 연필로 허벅지를 찌르고 얼굴을 주먹으로 때리는 등 자해를 해가며 잠을 쫓아내고 그리는 걸 보고 경악했다는 일화가 있다.

스튜디오 콕핏에서 일하던 중 1979년 기동전사 건담 1화를 보고 충격을 받아 "이건 내가 해야되는 작품이다." 라고 생각해 회사를 바로 그만두고 선라이즈로 이적해 원화가로 승격되었다. 완전 신인이었으나 TV판 후반부부터 두각을 보이기 시작해 중요한 장면을 많이 맡았다. 에르메스의 비트의 움직임을 일부러 동화를 넣지 않고 순간이동을 시키거나 곡선궤도로 이동시키는 표현 기법도 종래에 있던 것이 아니라 그가 창시한 것이라고 한다. 이후 건담 시리즈에 나오는 사이코뮤 병기의 움직임 표현은 이 사람이 창시한 것이 된다. 연출팀 선배들이 움직임이 말도 안된다고 계속 사이에 동화를 끼워넣자 열받아서 연출팀이 술마시러 갔을 때 몰래 타임 시트[3]에 동화를 넣으라는 문구를 지워버렸다고 한다. 토미노 감독은 이 결과물을 보고 "정말 우주적인 움직임이다"라면서 극찬을 하고 "너 왜 진작에 이렇게 하지 않았냐?"라고 물어봤다고 한다. 이타노가 "전 전부터 이렇게 했는데 선배들이 고쳤습니다."라고 하자 "건담은 지금까지의 애니와 다른 애니메이션이니까 지금까지와 똑같이 만들면 안 된다."라고 하면서 오히려 연출팀을 혼냈다고 한다. 이타노는 그때 "아 역시 토미노 씨는 대단한 사람이다, 선구자다."라는 생각을 했다고 한다. # 또한 자브로에 있는 잠깐 배경으로 지나가는 홍학의 동화를 240컷이나 그려서 움직임을 표현했다고 한다. 원래는 몇 마리 안 되는 걸 여러 마리로 그려냈다. 이걸 채색하던 스태프들이 못 그리겠다고 그만둬서 채색 하청 회사 사장이 분노해 이타노를 찾아와서 "너 때문에 회사 망하게 생겼다."라고 하며 때렸다고 한다. # 기동전사 건담 최종화에서 키시리아 자비가 샤아가 쏜 바주카포에 개발살나는 장면도 이 사람 작품이다. 원래 콘티보다 화끈하게 그렸다고.[4] 릭 돔에 원래 디자인에 없던 버니어를 그려넣은 것도 자신이고, 연방군이 난전을 하는 부분은 그리다가 지겨워서 철인 28호 점보트3를 멋대로 끼워넣었다고 한다.[5] 이런 걸 전부 수정하던 야스히코 요시카즈가 병원에 실려가서 말릴 사람이 없어서 맘대로 했고 그래서 건담 후반부는 자신의 색이 드러났다고 한다. #

그의 실력에는 토미노 요시유키 야스히코 요시카즈도 감탄을 했으며 야스히코는 나중에 이타노를 자신의 제자로 불러들여 기술을 전수했다고 한다. 그리고 기동전사 건담 3부작 극장판 2부와 3부에서 로봇 전투신을 그린다. 새로 추가된 전투신은 대부분 이타노가 그렸다고 보면 된다. 움직임이 유독 부드러운 장면이 있다면 이타노가 그린 것이다. 스탭롤에서도 원화가 중 맨위에 크레딧되었다.

이후 전설거신 이데온에도 참여하게 되는데, 여기서 14화부터 이미 비범한 미사일 작화를 선보였으며 여기까지만 해도 미사일 궤도는 직선이었으나[6] 29화에선 드디어 미사일 궤도를 곡선으로 그려내는 이타노 서커스의 프로토 타입을 처음 선보이게 된다. 여기서는 코가와 토모노리에게 가르침을 받았고, 또한 카나다 요시노리의 작화를 연구하며 자신만의 연출 노하우를 쌓아나가기 시작하게 된다.[7]

이타노는 이시구로 노보루의 영향으로 화면 가득한 화염이나 버섯구름 같은 종래에 쓰이던 관습적인 폭발 묘사를 거부하면서 자신이 경험으로 알고 있는 연기와 파편이 있는 실제에 가까운 폭발 묘사를 애니메이션에 도입했고,[8] 건물이 실제로 어떤 식으로 부서지는지 알기 위해 건물 철거 현장을 찾아다니고는 거기서 얻은 경험을 작화에 반영했고, 밀리터리 취미를 통해 알고 있던 지식과 고등학교 시절 얻은 경험들과 카메라 관련 지식을 살렸다.

이타노 이치로의 이름값은 초시공요새 마크로스에서 절정에 다다른다. 하청 원화로 온 것들을 찢어버리고 자기가 다시 그리는 미친 짓까지 한 덕에 마크로스 작업 도중에만 2번이나 쓰러져 병원에 실려갔지만, 마크로스에서 이타노 이치로가 그려낸 메카 액션은 전설처럼 회자되기에 이르렀다. 1컷당 2,500엔을 원화 작업료로 받았는데, 1컷 그리는데 일주일 걸렸다고 한다.[9] 그리다가 쓰러진 마크로스 TV판 27화는 볼 가치가 있다. 그리고 여기서 그는 카와모리 쇼지와 만나게 되고 카와모리 쇼지의 카메라 앵글 연출법과 그의 미사일 궤도와 폭발 지식이 합쳐지면서 이타노 서커스라는 작화 기술이 완성되었다.

참고로 마크로스는 일본 로봇 애니메이션 최초로 캐릭터의 작화감독과 메카닉 작화감독을 구분하는 시도를 최초로 했는데 이타노 이치로가 그 첫타를 장식했다. 즉 역사적인 메카 작감 1호라는 것이다. 스승인 야스히코도 대담에서 이 얘기를 듣고 "어? 네가 1호였어?" 하고 놀랐다고. 또한 메카 작감이란 개념이 최초라서 캐릭터 작감이었던 미키모토 하루히코의 1/4의 돈 밖에 못 받았다고 한다. 그걸 만회하겠다고 그리다가 두 번이나 쓰러져서 병원에 실려가는 게 불쌍해서 제작측에서는 쓰러진 뒤부터는 돈을 더 줬다고. #

이때 안노 히데아키는 아예 이타노 이치로의 집에서 숙식을 하면서 그에게 그림을 배웠다고 한다. 그래서 안노는 이타노를 자신의 스승님으로 뽑으며 이타노 서커스를 이타노 이치로 수준으로 구사할 수 있게 되었다. 안노도 사람을 못 그린다는 점에선 비슷했는데 스승을 아주 잘 고른 것이었다.

메가존 23에서도 메카쪽 작화감독으로 참여해 액션을 선보인 후 메가존 23 파트2에선 처음으로 감독을 맡기까지 했다 자신의 새로운 시도가 연출과 감독에게 계속 수정을 당하고, 콘티도 자신의 기준에 못 미쳐서 감독을 해야겠다고 결심했다고 한다. # 이후 이시구로 노보루의 지원으로 아트랜드의 인력을 지원 받아 아트랜드 분사 D.A.S.T의 실질적인 리더 역할을 하며 OVA로 감독 작품을 여럿 선보였다. 그러나 신선한 영상미의 작품을 많이 만들었지만 욕도 많이 먹었다. 기존의 관행과 너무 달라서 사람들이 생소하게 느끼거나 이해하기 힘든 작품을 만드는 경우가 많았다. 결국 D.A.S.T를 떠나게 되었다. [10] 감독으로서 중심을 두는 건 개척자 정신으로, 욕 먹어도 늘 새로운 시도를 하는 걸 목표로 한다고 한다. 어차피 앞서가는 사람은 욕을 먹기 마련이므로 욕은 신경쓰지 않는다고 한다. #

특히 감독으로서는 스토리와 구성에서 문제가 생기는 경우가 많다. 간츠의 원작자 오쿠 히로야는 이타노의 애니메이션이 매우 마음에 안 들어서 아예 후속작의 애니화를 다 거절할까도 생각했다고 하기도 했다. BLASSREITER는 최고급 각본가를 모아 흥미로운 전개를 보여줬으나 이타노 이치로가 하필 제일 중요한 최종화의 각본을 직접 쓰는 바람에 결말이 이상하다는 혹평을 받았다. 그래서 2010년대 부터 감독 활동을 접고 연출과 후배 육성 위주로 활동한다. 그나마 이시구로 노보루의 지도를 받으면서 만든 메가존 23이 좋은 평을 받았고, 스토리를 아예 포기하고 고어와 액션에 집중한 작품 엔젤 캅이 서양에서는 좋은 평을 받았다. 감독작 대부분이 고어물 연출이 있어 고어물을 좋아한다면 이타노가 감독한 작품도 취향에 맞을 수 있다. 고어 애니메이션을 좋아하는 애니메이터 Henry Thurlow는 이타노 작품도 좋다고 한다. 이런 작품을 만드는 감독은 이타노를 제외하면 카와지리 요시아키, 오오하타 코이치 정도 밖에 없다.

그후로는 게임 쪽 관련 일들도 하고 하다가, 2000년대 이후엔 3D CG 전문 회사 그라피니카에 어드바이저로 들어가 제자를 키우고 있으며 CG 쪽으로 주력하는 편이다. CG로 만들어낼 수 있는데 왜 괜히 손으로 그리는 고생을 하냐고 생각하는 듯. 사실 이타노 이치로의 진짜 주특기는 레이아웃과 카메라 앵글에 있었으니, CG로 옮겼던 것은 정답이었다. 3D CG로 하면 피사체의 움직임을 잡아주고 카메라 앵글을 이타노 이치로가 하던대로 돌려주면 수백 수천장 그릴 필요없이 동일한 영상이 나오게 된다. 울트라맨 넥서스 등을 보면 CG쪽 일로 참여해서도 화끈한 미사일 난사는 잊지 않고 보여주고 있다.[11] CG로 옮겨도 그 스타일은 여전하기에 CG로 옮긴 뒤로도 명성이 높은 몇 안 되는 애니메이터. 시로바코에서는 3D로 옮긴 2D 애니메이터의 대표로 나와서 후배를 격려하고 지도하는 역할로 나왔다. 의외로 CG 프로그램은 전혀 다루지 못하고 후배에게 시키고 그림과 구두로 연출을 지도한다고 한다. 자신의 완벽주의 때문에 만약 CG 프로그램을 완벽히 다룰 수 있게되면 끝없이 컨트롤하고 수정하고 있을 게 뻔하기 때문에 공부하지 않는다고 한다. # 그리고 예전에 한 번 배워봤는데 프로그램이 버전업 되니 자신이 쌓은 기술이 무용지물이 된 경험이 있어서 다시는 안 한다고 한다. 그래서 스태프롤에도 CG 디렉터가 아닌 CG 어드바이저로 주로 올라간다. 그렇다고는 해도 이것도 충분히 대단한 것이다. 자신의 CG 영상의 비결은 왜곡에 있다고 한다. 렌즈로 찍은 영상은 멀리있는 물체를 잡으면 왜곡이 생기는데 CG는 화면 멀리 잡아도 왜곡이 안 생겨서 위화감이 생긴다. 그걸 이펙트 효과를 넣어서 왜곡해버리자 자연스러운 영상이 나왔다고 한다. #

2000년대 와서 감독을 한 작품으로는, 간츠 애니메이션, BLASSREITER가 있다. 현재까지도 기동전사 건담 THE ORIGIN 낙원추방 등에 참여하는 등 활발히 활동중. CG로 옮긴 것이 여러모로 득이 되었다는 평이다.

같이 일하는 감독은 카와모리 쇼지, 야스히코 요시카즈가 있다. 같이 일하는 애니메이터는 유키 노부테루가 있다. 유키 노부테루는 이타노를 존경해서 애니메이터가 되었다고 한다.

후배 육성을 중시한 이시구로 노보루의 가르침을 이어 받아서 제자를 많이 키우고 있는데 대표적인 제자로는 안노 히데아키가 있다. 제자를 고를 때 그림 실력은 보지 않고 근성을 본다고 한다. 이는 자신이 그랬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림은 실력이 없어도 누구나 계속 붙잡고 노력하면 잘하게 되지만 근성은 없으면 그만두고 도망가기 때문이라고 한다.

마크로스 플러스의 주인공 이사무 다이슨은 이타노 이치로가 모델이라고 한다. #

2. 작품

2.1. 감독 작품

2.2. 참가 작품

2.3. 기타 작품


[1] 이는 다니던 학교가 취업이 목적인 학교여서 가능했다고 한다. [2] 출처: WEB 애니메 스타일 인터뷰 [3] 동화를 얼마 넣으라고 지시하는 지시문. [4] 키시리아의 성우였던 코야마 마미는 이 장면을 보고 충격을 받아 한동안 식사도 제대로 하지 못했다고 한다. [5] 이는 나중에 문제가 되어 결국 수정되었다. [6] 이데온에서는 미사일이 직선궤도로 날아가며 마치 레이저처럼 보이는데 마크로스만큼 화려하진 않아도 이것만의 멋이 있어 이데온이 더 좋다는 사람들도 있다. [7] 궤도가 곡선으로 휘는 미사일은 카나다 요시노리가 원조이다. [8] 이타노 이치로의 폭발 묘사는 이시구로 노보루의 것이 원조지만, 파편 묘사는 이타노 이치로가 재해석하였다. [9] 그러나 이런 일화는 일류 애니메이터들 사이에선 흔하다. 오오히라 신야의 경우 이펙트 애니메이션을 '한 컷'을 위해서 14장의 셀, 풀 24프레임으로 총 1,000매가 넘는 컷트를 수개월 동안 작업하고...촬영하기 무리라는 이유로 '거절'당한 적이 있다. [10] D.A.S.T는 하청 회사로 활동하다 2011년 문을 닫았다. [11] 이타노가 울트라 시리즈에 관여한것은 영화 ULTRAMAN부터이며, 이 작품에서 보여준 화려한 CG 공중전은 이후 울트라 시리즈 액션의 방향성을 크게 바꿔놓게 된다. [12] 야마가 히로유키가 콘티를 그렸는데 처음이라 못해서 이타노가 수정했다고 한다. [13] 12화는 1컷만 해서 논크레딧으로 했다고 한다. [14] 우주흉험괴수 케르빔은 이타노가 디자인한 것이다. [15] 본 작품에서도 이타노 서커스가 나오지만, 제자들이 한 것이라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