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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1-21 10:04:26

아오이 호노오

아오이 호노오
アオイホノオ
파일:아오이_호노오_1권.jpg
장르 개그, 청춘물, 군상극, 논픽션( 팩션)
작가 시마모토 카즈히코
출판사 파일:일본 국기.svg 쇼가쿠칸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미정
연재처 주간 영선데이 → 겟선
레이블 파일:일본 국기.svg 겟산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미정
연재 기간 2007년 ~ 연재 중
단행본 권수 파일:일본 국기.svg 30권 (2024. 07. 11.)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미정

1. 개요2. 등장인물3. 등장 작품4. 미디어 믹스
4.1. 드라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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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시마모토 카즈히코가 주간 영선데이에서 2007년부터 비정기 연재한 만화. 그러나 후에 주간 영선데이가 휴간[1]되면서 같은 출판사의 겟선[2] 으로 이적하며 재개되었다. 짧은 작품을 주로 하던 시마모토의 최장기 연재작이다.

제목은 직역하면 '푸른 불꽃'(青い炎)이란 의미이지만 '풋풋하던 시절[3]의 호노오 모유루'라는 의미도 동시에 가진다. 작가가 밝힌 바에 따르면 《 호에로 펜》의 스핀오프에 해당하는 만화라고 한다.[4] 다만 드라마판에서는 결말을 호에로 펜과 직접 연결해 놓아 팬덤에서는 일종의 프리퀄에 가깝다고 받아들이는 경향이 강하다.

호노오 모유루라는 젊은 만화가 지망생을 그린 만화로 호노오를 시마모토의 페르소나적인 캐릭터라고 생각하는 독자들이 많다. 정확히 말하면 자전적 만화가 맞긴 맞는데 각색과 과장이 많이 들어가 있다. 한국의 웹툰으로 치면 마음의소리/ 마음의소리 2 또는 선천적 얼간이들 류의 작품이다. 만화적으로 과장된 이야기를 실제로 믿게 되면 곤란하기 때문에, 단행본 첫 페이지에는 <이 이야기는 픽션이다!!>[5], 둘째 페이지에는 < 실존하는 인물, 단체 등의 명칭이 일부 등장하지만 아무튼 픽션이다>[6] 라고 명기된다. 드라마판도 마찬가지. 무대가 되는 것도 오사카예술대학이지만 오오삭카 예술대학[7]이라는 식으로 가공의 이름을 사용한다. 이 작품에 나온 시기는 오사카예술대학에서 거물이 가장 많이 배출된 해로 호노오는 "이런 시골 지잡대[8]에 이렇게 대단한 놈들이 있으면 도쿄에는 저런 놈들이 드글댄다는 거잖아!" 라고 절망했지만 실제로는 그때 이 학교에 우연히 유독 걸출한 인물이 많이 모였던 것이다. 바쿠만과 비슷하단 소리를 듣지만 바쿠만보다 이 만화가 먼저 나왔다.

작중에서는 호노오가 안노 히데아키 등과 면식이 있는 것으로 나오고, 작중 등장인물들의 인간관계나 사건은 실제 시마모토의 경험이 바탕이 되긴 했지만, 이것도 연출상 과장이 많다. 물론 실제로 얼굴 정도는 아는 사이였던 건 사실이고 서로가 깊게 얽히는 이야기도 존재한다고 한다.[9] 이외에도 이미 80년대부터 뉴타입등의 잡지에서 둘이서 대학시절의 이야기를 대담하는 형식의 인터뷰도 있었다. 하지만 모두 입을 모아 과장이 많이 되었다고 한다. 다만 이후 안노 히데아키 니코니코 동화 생방송에서 한 말로는 적어도 자신이 직접 목격한 부분에 있어서는 현실과 별 차이 없던 모양이다.

시마모토 말로는 "존경하는 애니메이터 야스히코 요시카즈 씨가 안노 히데아키와 대담하는 걸 봤는데 야스히코 씨가 경어를 쓰면서 안노를 거장 대우해주고 있는 걸 보니 대학 시절 안노에게 패배해 열등감을 느꼈던 기억이 되살아났다. 이걸 만화로 그려보기로 했다." 하고 그렸다고 한다. 아카이 타카미 말로는 시마모토, 아카이, 야마가 히로유키 3명이 인터뷰를 받을 때 "3분은 대학 시절 어떤 관계였나요?" 라고 할 때 시마모토가 "적이었습니다." 라고 말하는 걸 본 야마가가 "대학 동기를 친구가 아니고 적이라고 생각하는 게 참 너답다. 그 이야기를 만화로 그려봐라." 라고 해서 나온 만화라고 한다. 둘 중에 뭐가 진실인지는 불명이지만, 두 이유가 동시에 성립해도 모순되는 것은 아니므로 둘 다 진실일지도 모른다.

마츠모토 레이지의 에세이적인 개그 만화 '사나이 오이동'에서 영감을 얻은 작품으로 호에로 펜과 차별화를 두어서 "이기려고 하지 않는다. 질때는 진다.", "일부러 과하게 웃기려고 하지 않는다." 등 지금까지의 자신의 작품과 반대로 그리는 걸 컨셉으로 삼았는데 그게 잘 먹혔다고 한다.

아다치 미츠루 타카하시 루미코 등이 대두하는 1980년대 초반이 배경이며, 이 시대를 서브컬쳐적인 관점과 호노오 모유루의 청춘이라는 두 가지의 관점을 통해 그리고 있다.

호에로 펜은 다른 사람 만화가 나오면 이름을 변형해서 저작권을 피해갔지만 이 작품은 허가를 받고 그대로 인용하는 것이 차이점이다.

24권까지 1부 오사카 예술대학 편이고 25권부터 도쿄 편이다.

국내에서는 지명도가 없다시피 하였으나 일부 컬트적인 팬들에게서 인기가 있었고, 일드 마니아층에는 드라마판 쪽이 주로 알려져 있었다.[10] 작품이 처음 연재된지 16년이 지나서야 무단 번역본이 나돌기 시작했는데, 가이낙스 라인 쪽 인물 관련 썰 외에도 시마모토 특유의 연출, 한국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호에로 펜》(의 짤방들)이 가지고 있던 컬트적인 인기 등의 요소가 종합되어 인지도가 크게 올랐다.

2. 등장인물

파일:상세 내용 아이콘.svg   자세한 내용은 아오이 호노오/등장인물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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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등장 작품

작중에서 다루어지는 실제 작품들을 서술한다. 셀 수도 없이 많은 작품이 언급되어 다 언급할 수는 없고 작품의 원활한 이해를 위해 해설이 필요한 작품, 시마모토 카즈히코의 작풍에 영향을 준 작품 중심으로 서술한다.

다른 건 특별히 신경 안 써자도 되지만 은하철도 999 터치 이 두 작품은 꽤 중요한 부분을 스포일러하므로 이 작품을 보기 전에 봐두거나 각오해두는 걸 권한다. [11]

4. 미디어 믹스

4.1. 드라마

드라마 아오이 호노오 관련 틀
{{{#!folding [ 펼치기 · 접기 ]
파일:테레비 도쿄 로고(1998-2023).svg 드라마24
리버스 엣지 오카와바타 탐정사
( 2014년 4월 19일 ~ 2014년 7월 12일)
아오이 호노오
( 2014년 7월 19일 ~ 2014년 9월 27일)
타마가와 구청 OF THE DEAD
( 2014년 10월 4일 ~ 2014년 12월 20일)

아오이 호노오의 주요 수상 이력
{{{#!folding [ 펼치기 · 접기 ]
역대 도쿄 드라마 어워드
파일:도쿄 드라마 어워드.gif
연속 드라마 부문 우수상
제7회
( 2014년)
제8회
( 2015년)
제9회
( 2016년)
잘 먹었습니다
우먼
BORDER
MOZU
퍼스트 클래스
아오이 호노오
오늘은 회사 쉬겠습니다
맛상
데이트~사랑이란 어떤 것일까~
민왕
변두리 로켓
낚시 바보 일지
당신을 울리는 사랑
지지 않는 태양
유토리입니다만, 무슨 문제 있습니까?

역대 성운상 자유부분 수상작
파일:seiunprize.jpg
제45회
( 2014년)
제46회
( 2015년)
제47회
( 2016년)
『NOVA 신작 일본 SF 컬렉션』
전10권 간행
아오이 호노오 페리 로단 시리즈》 500권 출판 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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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프닝 영상. 카나다 요시노리와 그와 스타일이 비슷한 애니메이터들[53]이 만든 애니메이션 오프닝의 패러디가 잔뜩 들어가 있다.

2014년 7월 19일부터 9월 27일까지 테레비 도쿄에서 실사 드라마판이 방영되었다. 감독은 용사 요시히코와 마왕의 성 용사 요시히코와 악령의 열쇠 등을 담당한 후쿠다 유이치. # 방영 결정 후에 나오는 단행본 띠지에서는 <드라마화는 아니메화와 달리 대개 실패하기 마련이지!> 라며 셀프 디스 했다. 그러나 실제 드라마는 원전-실제 인물을 상당 수준 재현했고, 원작의 연출도 어느정도 따르려고 많이 노력한 편. 다만 분량 문제로 연재분의 에피소드를 추려내고 적절히 섞어서 이야기를 다시 짰고, 원작에서 무수히 인용되는 여러 작품들 중 일부는 어른의 사정이 있는 관계로 생략되기도 한다. ( 스타워즈 시리즈 등) 일부 작품은 돈 때문에 안 되고 할리우드 작품은 당연히 대부분 생략. 그리고 분량 때문에 편집된 장면도 많다. 그건 블루레이에 들어갔다.

이렇게 생략된 부분이 있지만 원작을 잘 살려서 명작으로 평가받는다. 톤코와 츠다와 관련된 부분은 드라마 오리지널로 결말을 냈다. 기동전사 건담, 울트라맨 BGM은 원작의 음악을 그대로 튼다. 시마모토 만화의 미디어 믹스 중에서 원작을 따라서 만든 작품은 이것 밖에 없다.

만화에서 언급된 오사카예술대학의 학생 과제물 영상은 애니메이션은 원본 필름 그대로 틀고, 단편 영화는 원본 영상을 참고로 새로 찍었다.[54] 작가와 이 작품에 나오는 본인들 말로는 원작 완벽 재현이라고 한다. 소실된 냥나코 타이거스는 아예 새로 그렸다. 다이콘 3 오프닝 애니메이션도 원본 그대로 틀었다. 그래서 호노오가 왜 친구들과 자신의 과제물 때문에 절망했는지 만화보다 더 이해하기 편하다는 장점이 있다.

2015년 제46회 성운상 자유부분을 수상했다. 수상 이유는 "소위 「SF 팬덤의 역사」를 주제로 한, 실화 바탕인 최초의 작품."


드라마 판 오프닝을 어느 팬[55]이 애니메이션으로 만든 팬 무비도 있다. 이건 시마모토 본인과 후쿠다 유이치 감독이 보고 극찬했다.

드라마에 나오는 소품, 호노오의 원고, 애니메이션 같은 건 시마모토가 바빠서 시마모토의 의형제이자 여성 만화가인[56] 잇폰기 반(一本木蛮)이 만들었다. 잇폰기는 한국에도 이 드라마 팬이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이 드라마에 나오는 만화, 애니메이션, 특촬물 이야기를 이해할 수 있는 사람들이 한국에 있을까?" 라고 반응하기도 했다.[57]

같은 감독 작품 오늘부터 우리는!! 3화에 이 드라마와 같은 배우로 호노오 모유루가 카메오 출연한다.


[1] 사실상의 폐간 [2] '월간(겟칸) 소년 선데이를 줄여서 겟선. 다른 잡지는 월간지가 하나 둘 있었는데 소년 선데이는 '증간 소년 선데이'라는 이름으로 월간지를 내서 2009년까지 월간 선데이란 것이 없었다. 작품 중 호노오가 "월간 선데이는 안 나오지 않을까요?" 라고 하는 대사가 있는데 이걸로 개그한 것이다. [3] 일본어의 青い에는 (열매 따위가) 덜 익다, 미숙하다라는 뜻도 있다. [4] 이 만화에선 호노오의 연재 작품이 시마모토의 작품과 동일한 제목으로 나오지만 호에로 펜에서는 변형된 제목으로 나오는 차이가 있다. [5] 이 문구는 페이지를 꽉 채우는 극태명조로 대문짝만하게 인쇄된다. [6] 오카다 토시오는 시마모토 카즈히코와의 대담에서, 호에로 펜은 "모든 만화가 이렇다고 생각하면 된다!"라고 해놓고 아오이 호노오에선 "픽션이다"라고 얘기한 게 이상하다고 웃으면서, 반대잖아요? 라고 얘기했다. [7] 한자로는 대작가 예술대학. 발음이 비슷하다는 것을 이용한 말장난이다. [8] 라고 호노오(시마모토)는 말하지만 어느 정도 명성은 있었다. 당시에도 방송국 스태프, 영화 스태프, 배우, 음악과 미술 교사 등은 잘 배출했었다. 다만 호노오와 안노 3인조가 있던 영상기획학과는 당시 영화계의 침체, 선배 감독이 다 해먹고 신인에게 기회를 안 주는 분위기라 취업이 암담하였고 괴짜만 있는 학과라는 인상이었다고 야마가 히로유키 등이 증언했다. 그래서 원래 영화나 드라마를 가르치는 학과였는데 호노오와 안노 3인조는 연출 수업의 기술만 배우고 만화와 애니메이션으로 튀어버린 것이다. 이후 이들이 성공해 앞길을 터줘서 만화와 애니메이션으로도 꽤 권위있는 학교가 되었다. [9] 실은 안노 3인조는 다이콘 필름의 속편을 만들 때 시마모토를 애니메이터로 기용하려고 했었다고 한다. 다만 만화에서는 각종 어이없는 이유를 들면서 시마모토는 후보에서 탈락. [10] 오히려 2023년 기준으론 드라마를 볼 경로가 많이 사라져서 드라마의 인기가 줄었다. [11] 은하철도 999는 극장판 은하철도 999 1만 봐도 된다. [12] 카나다의 제자들이 많이 참가한 작품이라 카나다 본인도 크레딧은 숨기고 참가했었다는 소리도 있다. 애초에 당시 일본의 어지간한 인기 애니메이터는 다 1번은 그리고 갔던 작품이다. [13] 그렇다고 뷰티플 드리머가 못 만든 작품은 절대 아니다. 수많은 크리에이터와 아티스트들에게 어마어마한 충격과 영향을 준 굴지의 명작으로, 후대 일본 만화, 애니메이션의 타임루프물 작품들은 상당수 이 작품의 영향을 받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14] 안노도 사람을 아예 못 그리는 건 아니고 미소년, 미소녀 캐릭터도 그릴 수는 있다. 움직이는 걸 잘 못 그린다고. 그리고 애초에 사람은 그리기 싫다고 한다. [15] 시마모토는 울트라맨을 좋아해서 학창시절 울트라맨 패러디 개그 만화를 그린 적이 있다. 그래서 근육맨 (나중에 프로레슬링 만화가 되지만 이때는 울트라맨 패러디 개그만화였다.)을 보고 "이런 만화로도 데뷔할 수 있는 거였어?!" 하고 놀랐다고 한다. [16] 오히려 호노오는 TV 특촬을 좋아해서 고지라 시리즈는 잘 안 봤었다고. [17] 호노오(시마모토)의 친구 중 미나미가 두 명이 있고 이 영화에 두 명이 같이 참여했는데 미나미 마사히코와 다른 사람이다. 이 각본을 쓴 건 각본가 지망생 미나미. [18] 샤아 아즈나블, 브라이트 노아, 마틸다 아쟌 성우가 시마모토였다고. [19] 현재는 폐업했지만, 가게 자체는 오사카 우메다에 실존했었다고 한다. [20] 1970 ~ 1980년대 애니메이션 잡지는 크리에이터 소개만 잔뜩 있는 전문지에 가까웠다.. 그러다 1980년대 후반부터 사무라이 트루퍼, 란마 1/2이 히트하고 성우 붐이 오면서 애니메이션 크리에이터에 대한 소개가 줄어들게 되었다. [21] 자붕글은 이데온과 정반대로 무적강인 다이탄 3처럼 유쾌한 코미디가 많다. 다만 토미노가 이제껏 어두운 작품 위주로 만들었던데다, 자붕글은 이데온 바로 다음에 나온거라 후유증에 시달릴 팬들을 위해 극장판에는 이번엔 안 죽습니다라는 코멘트를 붙여야 했다.(...) [22] 호노오가 록키를 보게되는 극장은 딱히 묘사가 되지는 않지만 다카다노바바에 있는 와세다 쇼치쿠 극장으로 추정된다. 상영 영화는 대개 인디 영화나 클래식 명작 영화 (관객의 요청으로 상영결정되는 경우도 있다.)가 중심이며, 입장권을 끊으면 그날 상영하는 두편 영화를 다 볼 수 있다. 지금은 1300엔정도 하지만, 호노오가 갔을 시대에는 500엔이었다. 드라마는 2014년에 없어진 스칼라좌에서 본다는 설정. [23] 당시 비디오 테이프는 최신 미디어 기록 매체라 대여 안 하고 구입하면 엄청나게 비쌌다. [24] 시마모토의 만화 역경 나인에서 부원들이 록키는 3, 4만 봤다고 하자 "안 돼! 1, 2를 봐야지!" 라고 화를 내는 장면이 있다. [25] 나중에 호노오는 톤코에게 주인공이 쳐발리고 결말도 안 나오는 영화 보러가자고 꼬신거냐고 한 소리 듣게 되지 않아서 정말 다행이었다고 정신승리한다.(…) [26] 인기 배우 겸 아이돌이라 부르기 굉장히 힘든 사람이다. [27] 프레임 단위로 끊어보는 것. 당시 기록 매체였던 VHS로는 힘들었고 베타맥스는 되었다. [28] 학원물이 많이 나오는 사람이 많은 이유는 가벼운 소재로 한탕 할 수 있는 소재라서가 아니라 누구나 공감하고 접근할 수 있는 대중성이 있기 때문에 인기가 있는 것이다. 아직 지망생이라 창작자와 독자 사이의 경계에 있던 호노오로서는 만드는 사람 입장으로 안이하게 봤던 것. [29] 아다치 미츠루의 만화를 본 사례와는 정반대. 이쪽은 "야구를 제대로 못 그리면서 왜 인기가 있지? → 이제보니 학원물이였네? 학원물이니까 인기가 있구나!"라는 식으로 곡해했다. [30] 호노오는 메종일각을 보고 루미코의 시끌별 녀석들의 캐릭터와 겹치는 부분이 있는데도 왜 인기가 있는지 의아해핬었다. 도라에몽을 통해 얻은 정답은 '비슷한 캐릭터를 그리더라도 트렌드에 맞게 변화를 주는 것'. [31] 다만 사람에 따라선 안 웃기고 비참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32] 안노 히데아키의 아내 안노 모요코 말로는 안노는 결혼 전까지 계속 그랬다고 한다. [33] 이 만화는 아카이 타카미가 감수했으므로 사실일 가능성이 높다. [34] 사실 아무것도 안 그리고 시간만 때우던 중에 MAD홀리한테 새로 그린게 있냐는 질문에 액션 학원 만화라고 둘러대서 타임어택 했던 것도 한 몫 했다. [35] 사실 호노오가 SF를 선호했던 이유가 배경 그리기 쉬워서도 있었다. 우주는 그냥 검은 바탕에 화이트 좀 뿌려서 별이라 하면 되고, 그 외의 건물들은 전부 가상의 공간이니 적당히 자기 마음대로 그려도 되는데, 학원물은 현실을 무대로 하니 고증을 지켜야해서 곤란했던 것. [36] 호노오는 "사이토 지로가 누구야?!" 라고 반응. [37] 사실 한신 타이거즈를 나타내는 것으로, 귀엽게 그린 호랑이다. [38] 아카이는 이게 대단하다 생각해서 카피해서 가져갔었으며 그래서 오카다 토시오도 이걸 봤었다고 한다. 오카다도 괜찮았다고 했다 [39] 호노오는 잠결에 들어서 확실한지 잘 모르겠다고 하지만 나중에 나오는 걸 보면 진짜로 한 말이다. [40] 카리야 테츠를 직접 만나면 처맞을 것 같아서 25년을 안 만나고 피해다녔다고 한다.(카리야는 실제로 사람을 패서 물의를 일으킨 적이 있다.) [41] 애초에 필명으로 에로 만화를 그렸던 사람이다. [42] 일단 이노우에 노리요시는 신인이었던 건 사실이지만 중학교만 졸업하고 고등학생 나이부터 만화 어시를 했고 호노오(시마모토)보다 데뷔가 4년 정도 빠르므로 호노오처럼 막 튀어나온 신인 작가는 아니었다. 호노오보다 잘 그리는 건 당연하다. [43] 20권 표지가 이 여자. [44] 같은 이유로 사귀지 못한 원더 마스미와 다른 여자이다. 당시엔 여자는 결혼을 일찍 하는 것이 일반적이라 대학 때 이미 약혼하는 여자들이 많았다. [45] 이 만화에서 호노오가 친구들과 홋카이도 여행 갔을 때 갔던 그 카페로 실존한다. 2023년 기준 계속 영업하고 있으며 시마모토가 그렸던 만화를 안 버리고 보관해둬서 시마모토가 보여달라고 하면 보여준다고 한다. 시마모토가 지금도 다녀서 가게가 시마모토 그림 천지라고. [46] 여기에 아카이 타카미, 니시모리 아키라, 네코마타야도 같이 갔다. [47] 호노오가 안노나 다른 작가에게 패배감을 느꼈을 때도 이 정도로 분노하진 않았다. 다른 건 천재나 프로에게 진 거지만 이건 전혀 상상도 못한 인물에게 진 거라 충격이 컸던 모양. [48] 실제로는 오프닝은 야마가의 실력이 엉망이라 이타노 이치로가 고쳐줬는데 시마모토는 그걸 몰랐다. 다만 구성이라거나 구도 같은 건 야마가의 원안도 많이 남았다. 애초에 야마가는 만화와 애니메이션에만 관심이 없었지 영화는 엄청나게 많이 봤던 인물이라 기본 연출 실력이 없을 수가 없었다. [49] 그런데 호노오는 이때 이미 프로 만화가였으며, 첫 작품부터 히트해서 안노와 야마가보다 돈을 더 많이 벌고 있었다. [50] 그래서 그런지 시마모토가 NHK 전 마크로스 대투표에 게스트로 출연했을 때 가장 좋아하는 마크로스는 마크로스 7이라고 했다. [51] 엉망 수준이 아니라 사전에 받은 9화 콘티를 마음에 안든다는 이유로 호치키스로 종이 끝을 다 찍은 뒤 버려버리고 자기 멋대로 새 콘티를 만들었다(...) [52] 다만 대충 만든 건 아니었고 9화는 야마가가 직접 안노 히데아키, 마에다 마히로, 사다모토 요시유키를 호출해서 작화를 싹 뜯어고쳐 만든 거라 유명한 에피소드이다. 작중에 아카이 타카미가 야마가에게 소개시켜줘서 왔다는 실루엣만 나오는 두 명의 애니메이터가 실제로는 마에다와 사다모토. 문제는 야마가가 자기 멋대로 만들어서 다음 에피소드의 스케줄이 다 꼬였고 야마가는 마크로스 제작 현장에서 쫓겨났다고 한다. [53] 이마이시 히로유키 등. [54] 초상권 문제도 있고 드라마의 배우와 다른 인물이 튀어나오는 문제가 있어 새로 찍은 것이다. [55] 아마추어가 아니고 스튜디오 카라 CG, 디지털 부 직원 若月薪太郎가 만들었다. [56] 잇폰기는 시마모토를 형님이라고 부른다. 호에로 펜의 여성 어시스턴트 겸 동료 만화가 '모유' 라는 캐릭터도 호노오 모유루를 형님이라고 부르는데, 모유의 모델도 잇폰기다. 잇폰기 본인도 코스프레 선구자로서 아오이 호노오 만화에도 간접적으로 등장하는데, 코스프레 문화가 아직 널리 알려지지 않은 시점이라 호노오는 잇폰기를 라무 흉내 내는 이상한 여자라고 생각한다. [57] 한국은 오히려 8~90년대 한국 경제의 전체적인 고성장에 힘입은 비디오 보급 및 다양한 외화 수입 등의 문화적 풍요 덕분에, 당시 태어났던 그리고 현제 인터넷 문화의 주류층이라고 할수 있는 3~40대가 작중 등장하는 문물의 영향을 직빵으로 받은 세대라 아이러니하게도 어릴적 추억으로 받아들여질 여지가 있다. 이를 이해하기 위한 좋은 예를 들자면 한국은 70년대 작인 울트라맨 타로와 90년대 작인 에반게리온이 같은 90년대에 수입되었다. 오타쿠 층은 그들대로 이미 일본쪽 오덕 문화사에 빠삭한 경우가 많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