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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0-29 02:42:31

스테비차 리스티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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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테비차 리스티치의 수상 이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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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 수정일: 2024년 9월 2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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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마케도니아의 前 축구 선수
파일:690651_0-500670_79614.jpg
<colbgcolor=#eeeeee,#191919><colcolor=#000,#fff> 이름 스테비차 리스티치
Стевица Ристиќ | Stevica Ristić
K리그 등록명 스테보
출생 1982년 5월 23일 ([age(1982-05-23)]세)
유고슬라비아SFR 세르비아SR 브르사츠
국적
[[북마케도니아|
파일:북마케도니아 국기.svg
북마케도니아
]][[틀:국기|
파일: 특별행정구기.svg
행정구
]][[틀:국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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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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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르비아|
파일:세르비아 국기.svg
세르비아
]][[틀:국기|
파일: 특별행정구기.svg
행정구
]][[틀:국기|
파일: 기.svg
속령
]]
직업 축구 선수 ( 스트라이커 / 은퇴)
축구 에이전트
신체 188cm / 체중 85kg
소속 <colbgcolor=#eeeeee,#191919><colcolor=#000,#fff> 선수 예딘스트보 브르샤츠 (2001~2002)
믈라도스트 루키체보 (2002~2003)
FK 실렉스 (2003~2006)
전북 현대 모터스 (2007~2008)
포항 스틸러스 (2008~2009 / 임대)
FC 부뇨드코르 (2010)
FC 암카르 페름 (2010~2011)
수원 삼성 블루윙즈 (2011~2013)
쇼난 벨마레 (2013)
NK 인테르 자프레시치 (2014)
전남 드래곤즈 (2014~2016)[1]
FK 템니치 1924 (2017)
행정 FK 실렉스 (2021~ / 스포츠 디렉터)
국가대표 17경기 1골 ( 북마케도니아 / 2007~2012)
응원가 Ole Ole Ole[2][3]
링크 파일:인스타그램 아이콘.svg

1. 개요2. 선수 경력
2.1. FK 실렉스 시절2.2. 전북 현대 모터스 시절2.3. 포항 스틸러스 시절2.4. FC 부뇨드코르 시절2.5. FC 암카르 페름 시절2.6. 수원 삼성 블루윙즈 시절2.7. 쇼난 벨마레 시절2.8. NK 인테르 자프레시치 시절2.9. 전남 드래곤즈 시절2.10. 은퇴, 근황
3. 플레이 스타일4. 수상 기록
4.1. 대회 기록
5. 여담6. 관련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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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북마케도니아의 前 축구 선수. 현역 시절 포지션은 공격수.

국내 무대로 전북 현대 모터스, 포항 스틸러스, 수원 삼성 블루윙즈를 거쳤고 2016년까지 전남 드래곤즈에서 뛰었다. K리그 등록명은 스테보.

2. 선수 경력

2.1. FK 실렉스 시절

다른 선수보다 상대적으로 늦은 시기에 축구를 시작하였다. 2003년 마케도니아 프리미어 리그의 FK 실렉스에서 프로 생활을 시작하였고 그 해 28경기에 출전하여 18골을 넣어 팀의 준우승에 기여하였다. 그는 2004-05 시즌에 32경기에서 26골을 넣으며 알렉산다르 스토야도프스키와 함께 득점왕에 올랐고, 2005-06 시즌에 31경기에서 27골을 넣으며 2년 연속 득점왕에 올랐다. 2007년 2월에는 국가대표로 처음 선발되어 알바니아와의 경기에서 득점포를 가동하며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고 이에 해외 스카우터들의 눈에 들기 시작하게 된다.

2.2. 전북 현대 모터스 시절

이에 2007년 시즌을 앞두고 전북 현대 모터스로 이적하게 된다. 이 당시만 해도 전북 팬들은 이름값 있는 리그나 선수가 아닌 상대적으로 변방 리그인 마케도니아 리그의 2회 득점왕이라는 것 때문에 '왜 이딴 넘을 사오나'라는 반응을 보이며 별로 좋지 않은 반응을 보였다. 그러나 개막전인 광주 상무 불사조와의 원정 경기에서 킥오프 50초 만에 득점에 성공하며 팬들의 우려를 불식시켰고 2007년 4월 28일 부산 아이파크와의 원정 경기에서는 2골을 터뜨려 K리그 통산 9,000호골을 기록하기도 했다. 그리고 5월 20일 대구 FC와의 홈 경기에서는 해트트릭을 터뜨리는 등 빼어난 활약을 선보이며 컵경기 포함 29경기에서 15골 5도움을 기록했고 K리그 득점 순위 3위에 오르며 첫 시즌 만에 K리그 최고 수준의 공격수임을 스스로 증명해냈다. 이때의 활약으로 전북 내 MVP까지 차지하는 등 좋은 시기를 보냈다.

2008년에도 꾸준히 출장하였으나 이때는 14경기 4골 2어시스트로 작년만큼의 활약을 보이지는 못했고 일본 시미즈 S펄스에서 조재진이 전북으로 돌아오면서 주전 경쟁에서 약간 애매한 위치에 서게 됐다.

2.3. 포항 스틸러스 시절

2008 시즌 전반기가 끝난 후 전북은 포항과 맞임대 형식의 트레이드를 단행하게 된다. 전북은 스테보를 포항으로 임대시키고 포항은 신광훈을 전북으로 임대로 이적시켰다.

이 이적은 양팀의 취약 부분을 해결하기 위한 트레이드로, 양팀 모두 트레이드로 좋은 성적을 거둔 윈-윈 트레이드였다. 전북은 조재진, 스테보, 제칼로가 경쟁중인 중앙공격수 자리에서 교통 정리를 하면서 부족한 포지션이었던 측면 수비수, 특히 우측 풀백 자리를 확보할 수 있었고, 포항은 최효진과 자리가 겹치는 신광훈을 보내주고 노장 외국인 선수 데닐손의 체력 문제와 노병준 등이 버티는 파괴력이 상대적으로 부족한 공격진에 검증된 공격수를 추가할 수 있었다.

2009시즌이 되면서 스테보는 데닐손과 발을 맞추며 K리그 뿐 아니라 AFC 챔피언스 리그에서도 맹활약을 펼쳤다. K리그 개막전 수원과의 경기부터 골을 넣어 3-1 승리에 견인했다. AFC 챔피언스리그와 K리그를 가리지 않고 꾸준히 골을 넣었다. 이중 가장 대표적인 골로는 2009년 9월 30일 FC 부뇨드코르와의 AFC 챔피언스리그 8강 2차전에서 연장 전반 10분에 터뜨린 골로, 이 골이 결승골이 되어 포항은 부뇨드코르와의 2차전을 4-1로 역전승을 거두면서 1차전에서 거둔 1-3의 패배를 지우고 1, 2차전 합계 결과 4-3으로 앞서며 FC 부뇨드코르를 누르고 4강에 진출하게 된다.

4강 2차전에서도 스테보는 카타르의 움 살랄 SC를 상대로 득점을 기록하면서 결승 진출에 공헌했다. 당시 경기가 끝나고 움 살랄의 제라르 질리 감독은 스테보의 골이 들어간 순간 모든 것을 체면했다고 인터뷰를 했다. 사우디의 알 이티하드와의 결승전에서도 선발로 출전하여 좋은 모습을 보이며 포항의 아시아 제패에 1등공신 역할을 해주었다.

2.4. FC 부뇨드코르 시절

자금을 내세워 펠리페 스콜라리 히바우두 등등 좋은 선수들을 영입하였나 포항에게 덜미를 잡혀 탈락한 부뇨드코르는 이름값만 높은 해외 퇴물을 사오는 정책에서 벗어나기로 결정했고 그 정책의 일환으로 아시아 챔피언스 리그 우승의 주역인 스테보와 데닐손을 포항으로부터 영입했다.

이적한 2010 시즌 부뇨드코르에서도 17경기 11골을 넣으며 좋은 활약을 보였으나 한 시즌만에 또다시 팀이 리빌딩을 하게 되면서 데닐손과 함께 방출 당했다.

2.5. FC 암카르 페름 시절

2010년 8월에 러시아 리그의 FC 암카르 페름으로 이적했고 2010-11 시즌 동안 23경기 6골을 넣으며 무난한 활약을 보였다.

2.6. 수원 삼성 블루윙즈 시절

2011시즌 수원이 영입한 용병들이 모두 실패를 거두자[* 반도는 향수병으로 계약해지, 마토는 전반기 시즌 동안 부진, 베르손은 임대해 온 선수를 육성형 외국인 선수로 쓴다더니만 두산 베어스의 후안 세데뇨꼴이 났다. 그래서 급한대로 전 수원 출신의 외국인 선수 [마르셀을 봄에 데려왔으나 이 마르셀은 04시즌 시절의 그 마르셀과는 180도 다른 활약을 보여줘서 방출당했다. 여름에 스테보 다음으로 디에고를 데려왔으나 부상에 시달렸다.] 여름 이적시장에 급하게 스테보를 영입하였다.

수원 팬들은 09년 K리그 개막전에서 골을 넣고 수원 팬들을 향해 화살 발사 세레머니를 한 것과 나이가 들면서 실력이 떨어진 것을 걱정하는 반응과 포항이나 전북시절만큼만 해주면 올해는 걱정없다는 반응이 엇갈렸다.

그러나 스테보는 이적 직후 골폭풍을 몰아치며 수원 팬들에게 사랑받았다. 후반기에만 뛴 선수가 12경기 8골의 뛰어난 득점력을 선보이고 있어서 그동안 하태균만 보면서 혈압을 올리던 수원의 답답한 공격진에 한 줄기 희망이 되어주었고, 10월 3일에 벌어진 FC 서울과의 슈퍼매치에서도 결승골을 성공시키며[4] 수원을 나락에서 구해준 1등 공신으로 대접받고 있다.

그리고 AFC 챔피언스 리그 조브 아한과의 8강과 알 사드와의 4강 1차전에서도 원톱으로 좋은 모습을 보이면서 활약을 기대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4강전 알 사드와의 경기에서 사건이 터졌다.

파일:external/i2.media.daumcdn.net/20111019220816492.jpg

수원 삼성 블루윙즈 대 알 사드와의 경기 중 알 사드의 페어플레이 정신에서 벗어난 2번째 골이 터지자 마토와 함께 앞장서서 적극적으로 상대에게 항의를 했고, 알 사드 선수의 팬 폭행이 터지자 앞장서서 몸싸움에 적극 참여하고, 알 사드의 8번 선수에게 안면 훅을 날려서 코뼈를 부러뜨리며 해당 선수에게 1개월 부상을 입혔다. 이로 인해 스테보는 퇴장을 당했고 총 6경기 출장 징계가 내려졌다.

이날 한국 선수들보다 더욱 적극적으로 몸싸움에 참여하며 팀에 대한 애정을 드러내자 K리그 팬들로부터 알렉산데르 게인리흐과 함께 까방권을 획득했다.

이후 안 좋은 분위기 속에서 광주 원정을 떠났고, 광주 FC와의 경기에서 결승골을 터뜨리면서 팀의 1-0 승리에 공헌했다.

2011시즌은 13경기 9골 1도움으로 마쳤다.

2012시즌에는 라돈치치가 영입되면서 원톱 자리를 내주고 3톱의 측면 공격수와 투톱의 공격수로 뛰었다. 나름 열심히 뛰어주었지만 3톱에서의 스테보는 지난시즌과 같은 파괴력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고, 투톱 전술에서도 라돈치치와 움직임이 서로 겹치는 등 좋은 움직임을 보여주지 못하며 35경기 10골 9어시스트로 시즌을 마감하였다.

특히 선발 원톱 공격수 출장이 보장되던 2011시즌에 비해 원톱 자리를 라돈치치에게 내주고 측면과 벤치를 왔다갔다하는 바람에 출장시간도 상대적으로 들쭉날쭉해지며 폼이 저하되는 모습을 보였다. 이에 수원 팬들도 "우승을 위해서는 스테보를 포기하고 더 좋은 외국인 선수를 영입하는게 나을 것 같다." 라는 반응을 보였고, 타 팀에서도 다소 입지가 애매해진 스테보를 영입하려고 하였으나 서정원감독이 스테보를 2013시즌에도 함께 안고 가기로 결정하여 1년 더 수원의 유니폼을 입을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시즌 초반에는 정대세 조동건이 중용받았고 라돈치치와 함께 찬밥신세로 뛰다보니 수원팬들도 우승을 위해서는 스테보보다 더 실력있는 외국인 선수이 필요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하지만 계약만료 직전에 매 경기 골을 기록했고, 2013년 7월 3일 대전 시티즌과의 경기를 끝으로 수원의 유니폼을 벗게 되었다. 수원에서의 커리어 총합은 61경기 24골.

대전과의 마지막 경기에서 1골 1도움을 기록하면서 수원에서의 커리어를 멋지게 마무리하였으며, 후반 22분에 교체된 후 바로 N석으로 올라가서 10분 가량 응원석에서 팬들과 인사를 나누고 내려갔다. 경기 후에는 자신이 갖고 있던 유니폼부터 시작하여 축구화,정강이 보호대, 양말 등 자신이 가지고 있는 것들까지 다 나누어주는 모습을 보여주며 진정한 프로다운 팬 사랑의 정신을 보여줬다. 관련 기사

팬들 또한 3년동안 팀을 위해 헌신한 스테보에 대한 감사의 의미로 수많은 플랜카드를 펼쳐들며 스테보와의 작별을 아쉬워했고, 스테보가 교체되자 3분 이상 스테보 응원가를 계속 불러주는 등 팬들 역시 스테보의 수원사랑에 화답하는 멋진 모습을 보여주었다.

2.7. 쇼난 벨마레 시절

2013년 여름 이적 시장에서 J리그의 쇼난 벨마레로 이적했다. 반 시즌 동안 8경기(선발 2회, 교체 6회) 1골에 그쳤다.

2.8. NK 인테르 자프레시치 시절

2013 시즌 J리그가 끝나고 쇼난 벨마레와 합의하여 계약 해지하고 자유 계약 신분이 되자 크로아티아 2부리그 소속팀인 NK 인테르 자프레시치에 입단 하였지만 입단 한지 얼마 되지 않아서 전남 드래곤즈로 2년 무상 임대를 가게 된다.

2.9. 전남 드래곤즈 시절

2014년 1월 6일 전남 드래곤즈로 2년 임대되었다. K리그 로컬룰에 따르면 원래는 전남 드래곤즈 수원 삼성 블루윙즈에게 이적료를 지급해 줘야 하나, 스테보는 쇼난 벨마레와 계약해지 이후 자유 계약 상태에서 크로아티아 2부리그 소속 팀인 NK 인테르 자프레시치와 입단 계약을 맺고, 그 팀에서 스테보를 전남으로 임대 해주는 형식으로 계약을 했다. K리그의 독특한 로컬룰을 피하기 위한 독특한 방식의 계약이 이루어졌다는 게 특징이다. 이에 수원측에서는 소송을 제기한다고 하고 있고, 전남을 포함한 다른 구단의 서포터들은 "수원 측 선수도 아닌데 돈을 챙기려고 한다."고 비판했고, K리그만의 독특한 로컬룰과 프로축구연맹을 비판했다. #

다만 당시에는 엄연히 임대 신분이었기 때문에, 이 분쟁에 스테보의 원 소속팀이 휘말려들어 로컬룰과 충돌이 일어날 시 이적 분쟁에서 수원이 상당히 불리해질 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기 때문에(실제로 수원은 고종수로 비슷한 상황을 겪은 적이 있다.) 곧 가라앉았지만, 이후 전남이 완전 이적 계약을 맺은 탓에 또 한번 논란이 되었다. 이로 인해 전남은 꼼수를 부렸다는 비판을 피하기 힘들어졌고, 이를 승인해준 연맹 역시 비판의 대상이 되었다. 그러나 수원 역시 쓸 생각이 없어 계약하지 않은 선수의 발목을 잡는다는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었다.[5]

1월 24일 풋볼리스트 인터뷰에서 전남과 계약하기 전에 중국 슈퍼 리그의 한 팀이 거액의 돈을 내밀어서 계약하려고 했지만, 자신은 "인생에 있어서 돈이 전부는 아니다. 사람들을 존경하고, 선수들을 존경하는 한국에서의 생활이 더 의미가 크다."고 생각해서 거절했다고 한다.

개막전 이후 10라운드까지 득점은 과거 명성과는 다르게 2골(1도움)으로 약간 저조했으나,[6] 그가 출전하는 경기만 놓고 본다면 전남의 골 장면에 항상 직, 간접적으로 관여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K리그에서 검증된 외국인 선수이다보니 상대팀은 봉쇄를 위해 스테보에 수비수를 집중시키고, 이로 인해 다른 동료 선수들이 그 공간을 파고 들어서 좋은 공격을 선보이며 골까지 만들어낸다. 특히 이종호와의 궁합이 아주 돋보였다.
전남 하석주 감독 인터뷰에 따르면 팀 내에서 스테보의 역할은 공격 도우미로 생각하고 있다. 이종호 또한 인터뷰를 통해 스테보에 대한 신뢰를 나타냈다. 본인은 룸메이트고 하니 '태보형'이라 부르며 많이 배우는 모습을 보였다.[7]

또한 시즌이 진행되면서 특유의 득점력도 살아나 상주전의 2골을 포함, 현재 34경기 13골 4도움을 기록하며, 전북의 이동국, 수원의 산토스와 함께 득점왕 경쟁을 펼쳤다. 덕분에 전남은 스플릿 B에서 1위를 유지했다. 시즌 최종전인 인천 전에 득점을 기록한다면 리그 최초로 하위 스플릿 득점왕이 탄생할수도 있다는 기대감이 있었으나, 아쉽게도 마지막 경기인 인천 유나이티드와의 경기에서 골을 넣지 못 하여 결국 득점 랭킹 3위로 시즌을 마쳤다.

그러나 2016년에는 본인의 컨디션 난조 등으로 많이 출장하지 못했고 결국 여름 이적 시장에서 K리그를 떠날 것이 유력해졌다.

2.10. 은퇴, 근황

2017년에 세르비아 리그 소속의 FK 템니치 1924(바르바에서 뛴 것을 마지막으로 선수 생활에서 은퇴했다. 이후에도 계속 K리그를 챙겨보고 있으며 2021년 10월 20일 포항 스틸러스 울산 현대 AFC 챔피언스 리그 4강에서 꺾고 결승 진출에 성공하자 2009년의 ACL 우승을 아직도 기억하고 있으며 지금 그와 같은 길을 걷고 있는 자신의 아들에게 그때 경기를 보여주곤 한다며 정말 좋은 추억이라고 회고했다. #

2023년 김환이 밝히기로는 에이전트 활동을 시작했으며 황진성에게 선수를 추천받고자 연락했다고 한다.

3. 플레이 스타일

188cm의 당당한 체격으로 공중볼을 잘 따내며 몸싸움에도 능하며 헤딩능력이 매우 우수한 공격수이다. 좁은 각도나 어려운 상황에서도 침착하게 정확한 슈팅을 할 수 있을 정도로 골 결정력이 좋은 편으로 전형적인 타겟맨에 가까운 선수이며, 움직이는 범위도 골 에어리어 내외로 넓게 움직이며 상대 수비수를 잘 끌고 다니는 편이다.

수원 입단 초기에는 후반전이 될수록 움직임이 둔해지는 경향이 강했으나 10월 들어서는 그러한 모습이 줄어들고 90분 동안 많이 움직여주고 있다.

다만 단점이라면 압도적인 헤딩능력에 비해 개인기량에 의한 돌파는 그냥 그렇다 보니 혼자 골을 만들어내기보다는 좋은 미드필더들이 공을 잘 배급해 주고 있어야 재미를 보는 스타일이다.

크리스티안 비에리와 비슷한 스타일을 보여주었다.

2012 시즌에는 수원의 팀 사정상 측면 공격수로도 활약했으나 측면 공격수라기보다는 그냥 투톱처럼 박스 에어리어 한쪽에서만 노니는 모습을 보이는 등 측면을 흔들어주는 공격수로서의 활약은 영 아닌 편.

2013년 초반에도 정대세, 조동건, 제난 라돈치치에게 밀려 로테이션 멤버로 뛰다보니 결정력이 좋지 못했지만 계약 만료전 마지막 3경기에서 연속골맛을 보고, 특히 7월 3일에 벌어진 스테보의 고별경기였던 대전 시티즌과의 홈경기에서 1골 1어시스트로 MOM까지 받으며 수원에서의 커리어를 잘 마무리했다.

2012시즌 한정으로 보면, 겉으로 보이는 활약만으로 보면 좀 부족할 수도 있으나 스테보가 보여준 장점이라면 '팀을 위해서 포지션 변경도 감수'하는 등 팀에 헌신하는 긍정적인 성격을 빼먹으면 안될 듯 하다. 라돈치치와 비슷하게 원톱에 최적화된 공격수임에도 팀을 위해서 원톱을 고집하기보다는 투톱의 쉐도우, 좌우측 윙포워드, 알 사드전 한정 헤비급 복서 등등 감독의 요구에 부응하여 다양한 포지션을 소화하였다는 점은 높이 평가받을 수 있는 듯 하다.[8]

생긴 건 일반적인 발 느린 타겟맨을 연상하지만 오히려 아주 동적인 공격수로 본인이 직접 미드 지역까지 내려와 공을 보급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심지어 10번 포지션에서 자리잡고 뛴 적도 있다.

다만 안타까운 점은 동구권 거구의 센터 포지션이 그렇듯 발이 느린 편이라 동적이었지만 크게 효과는 없었다.단 움직임이 매우 위협적이고 가속도 잘 붙는 편인지라 상대에게 충분히 위협이 되었다. 이 때문에 붙은 별명이 마케도니아 탱크였다.

4. 수상 기록

4.1. 대회 기록

5. 여담

# 포항 시절인 2008년 7월 19일, 울산 현대 호랑이와의 경기에서 '독도는 한국땅' 세레머니를 해서 개념 외국인 선수로 널리 퍼졌다. 경기 후 인터뷰에 따르면 "최근 독도에 대한 영유권 주장과 관련하여 냉각된 대한민국과 일본 사이의 관계가 자신의 조국인 마케도니아 공화국이 독립하는 과정에서 세르비아계와 알바니아계가 충돌하는 역사적 아픔과 같아 직접 언더셔츠에 문구를 새겼다."라고 하였다.

파일:/image/117/2009/03/07/200903071554202230_1.jpg

파일:external/file.osen.co.kr/201206272049778440_1.jpg

2009년에는 수원과의 개막전에서 골을 넣은 후 수원 서포터 앞에서 화살을 당기는 세레머니를 시전하여 골을 넣은 직후에 바로 퇴장을 당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후 수원으로 이적한 후에는 이후론 소속팀 서포터에게 사랑의화살을 날린다

2008년 9월 27일 포항과 성남의 경기가 열린 스틸야드에서 하프타임에 란제리 패션쇼가 열렸는데 당시 경고 누적으로 명단에 없던 스테보가 갑자기 나타나면서 상의를 탈의했다. 여성 데이가 아니라 남성 데이가 될 우려로 스테보가 나서서 선뜻 상의 탈의를 한 것이었는데 이 탈의로 여성과 남성 모두 훈훈한 하프타임 이벤트가 되었다고 한다. 영상

격투기 선수 출신이라는 설이 있었으나 네이버 풋볼n토크에서 루머라고 밝힌 적이 있다. 알 사드 무쌍의 활약이 와전된 거라고 한다.

종종 국가대표팀에 발탁되기도 했다. 고란 판데프 같은 괜찮은 공격수에 밀려 자주 출전하지는 못했지만 17경기에 출전해서 1골을 기록했다.

경기 중 자신의 억울함을 증명하기 위해 엠창을 시전하기도 하였다. 어느 팬과의 인터뷰에서, 엠창을 '무언가 맹세하는 행위'로 알고 있었다고 한다. 맞긴 하지 이 행동으로 통해 후에 동료들에게 많은 놀림을 받았다고 한다.

6. 관련 문서



[1] 전남 드래곤즈로 이적 할때는 2년 임대라고 밝혔지만 2014 시즌이 개막하기 전에 완전 이적했다. [2] 오레~ 오레오레오레오레~ 스테보~ 스테보~ [3] 엔하위키 사상 축구 선수 중에서 최초로 선수 응원가에 대한 소개가 붙은 선수다. 윤성효는 선수가 아니니 빼자. 세제믿윤! [4] 다만 이 골은 오프사이드였으나 심판이 제대로 판정하지 못했다. [5] '해외 클럽 또는 하위 리그로 이적하더라도 3년 이내에 국내 타 클럽에 입단할 경우, 해외 이적 직전 국내 소속팀에 이적료를 지불해야 한다.' 는 것이 이 K리그 로컬룰인데, 원 소속 구단의 이적료 수입을 보장하고 국내 구단끼리의 과도한 스카우트 경쟁을 예방하기 위해 만들어진 룰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수원은 엄연히 더 나은 외국인 선수를 영입하기 위해 스테보와 재계약을 하지 않은 상황인지라 도의적으로 논란이 된 것. 그래서 위에서 말했다시피 "쓸 생각이 없어 버린 선수 돈 몇푼 얻자고 발목잡는다."는 시각도 많이 보이는 것이다. [6] 이 두 골이 경남, 울산과의 경기에서 느슨한 수비를 틈타 만든 멋진 골이며, 두 골 모두 결승골이었다. [7] 스테보도 한국에서 오래 생활한 만큼 어지간한 한국어 실력이 된다. 이종호 역시 열심히 영어를 배운다고 한다. [8] 실제 선수들의 경우 한 포지션에 고정되지 않고 다양한 포지션을 소화할 경우 해당 포지션에서 뛸때 필요한 능력이 어떤 부분인지를 잘 잡아내지 못해서 경기 중에 비효율적인 움직임을 보이며 헤매는 경우가 많다. 다양한 포지션 소화능력을 가진 유상철이나 필립 코쿠가 괴물일 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