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ir.pe (일반/어두운 화면)
최근 수정 시각 : 2024-12-26 10:57:30

서태지/여담

파일:상위 문서 아이콘.svg   상위 문서: 서태지
{{{#!wiki style="margin:-10px" <tablebordercolor=#3e2c64> 파일:stj_icon_black3.png 서태지
관련 문서
}}}
{{{#!wiki style="margin: 0 -10px -5px; min-height: 26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word-break: keep-all;"
<colbgcolor=#f5f5f5,#2d2f34><colcolor=#3e2c64,#ddd> 음악 <colcolor=#000> 음반 목록 · 콘서트
소속 그룹 서태지와 아이들 · 공연 세션
관련 인물 양현석 · 이주노 · 신해철 · 김종서
기타 비판 · 노래방 수록 목록 · 여담
서태지의 음반 목록은 틀:서태지의 음반 목록 참고 }}}}}}}}}

1. 개요2. 사회 참여3. 오타쿠4. 팬 사랑과 역조공5. 연예인들의 연예인6. 기타

1. 개요

서태지의 여담을 정리한 문서.

2. 사회 참여

"제가 어렸을 때부터 들었던 음악이 록 음악인데요. 록 음악에는 항상 저항 정신이 들어 있잖아요. 잘못된 게 있으면 음악이나 예술을 통해서 고칠 수 있는. 그런데 1집 낼 때는 사실 경황이 없었어요. 그냥 서태지와 아이들이라는 댄스팀을 만들어서 음악적인 관심을 많이 보인 반면에, 가사적인 측면에서는 그다지 사회적 비판이라든지 사회 참여를 별로 못 했어요. 그런데 저희가 이제 나이가 좀 들면서 여유로워지기도 하고요, 그런 영향이 있기 때문에, 꼭 사회 비판적 음악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요."
1995년 12월 17일 방영된 추적 60분에서의 인터뷰 내용

3. 오타쿠

오타쿠다. 그것도 빼도박도 못하게 아이들 시절부터 자기 기타에 닥터 슬럼프 코믹스 1컷을 붙여놓았고, 7집 당시 다큐에서 화장실에 원피스 만화책이 쌓여있었다. 심지어 이나중 탁구부 괴짜가족을 좋아한다고.[4] 그외에도 시간나면 이것저것 보긴 하는 듯. 7집 당시 영상물을 보면 강 장관 절교해라면서 20세기 소년 대사를 패러디하는 모습도 나온다. 8집 수록곡 <틱탁> 프로모션 때는 마침 20세기 소년이 영화화되어 한국에 개봉할 시기여서 공동 프로모션을 하기도 했다. 뮤직비디오에 20세기 소년 관련 이미지를 사용하였고, 영화 상영관에선 상영 전 뮤직비디오를 먼저 틀어주는 방식으로 협력했다.
평소부터 RC에 대한 애정을 숨기지 않고 아낌없이 표현한 것으로 유명하다. 영상물을 보면 꼭 나오는 장면이 RC를 가지고 노는 장면이라 해도 될 정도. 서태지와 아이들 시절부터 즐겨온 취미생활이며, 2004년 블라디보스톡 때는 배에서 원격 조종으로 RC를 하기도 했다. 다만 지금은 육아 때문에 잠시 휴업 중이라고.
UFO, 미스터리, 특촬물 덕후이기도 하다. 사실 80~90년대에 어린이용으로 많이 나왔던 책에 이러한 이야기들이 많았다. 이는 음악의 소재가 되거나 프로모션에 활용되기도 했다. 5집 수록곡 <테이크 1>은 외계유입설[5]에서 모티브를 얻어 만든 곡이라고 밝힌 적이 있었고, 장장 30분에 이르는 애니메이션 뮤직비디오까지 나왔다. 또한 6집 수록곡 <울트라맨이야>는 특촬물에 대한 애정을 드러내면서 이 세상의 모든 오타쿠를 위한 응원가이기도 하다. 서태지컴퍼니 내의 레이블인 괴수대백과사전 또한 1980~90년대에 각종 괴수물에 대한 내용이 적혀 발매된 책자의 이름 괴수대백과에서 따온 이름[6]. 특히 8집은 모아이, 버뮤다 삼각지대 같은 유명한 미스터리 떡밥을 집대성한 앨범이었다.
만화 말고도 RC, 자동차[7], 오토바이, 음향장비, 장난감[8] 등 재력과 덕력을 고루 갖추고 골고루 다 소화하는 능덕이다. 한번 손을 대면 완전히 자기 것으로 만들고 말겠다는 기질이 강한 데다 손재주도 좋은 편이라 타고난 훌륭한 오타쿠다.
7집 다큐에서 서태지의 일본 내 자택 촬영을 했는데, 서태지가 만든 프라모델들을 보고 촬영 스태프가 "만드는 걸 좋아하시나봐요?"라는 질문에 서태지는 "음악도 만드는 건데요, 뭘. 다를 거 없죠."라고 대답하는 장면이 나온다. 음악도 그렇고 창작 활동 자체에 흥미가 많은 걸로 보인다.
서태지와 아이들 멤버 중 가장 친했던 양현석 또한 이런 성향에 어느 정도 물든 걸로 보인다. 힐링캠프 양현석 편에서 자신의 사무실을 공개했는데, 각종 로봇과 히어로물 피규어에 둘러싸여 있어 MC들이 당황하기도 했다. 사실 서태지 주변 사람들 중 많은 사람들이 오타쿠거나 그런 성향을 가지고 있다.

4. 팬 사랑과 역조공

1993년부터 경호업체 'TRI인터내셔널'이 서태지를 경호하고 있다. 이 업체의 김성태 대표는 서태지를 경호하면서 겪었던 일들을 책으로 엮어 내기도 했다. 기사

그런데 이 책이 나오기 훨씬 이전에도 팬 경호와 관련된 각종 에피소드들이 인터넷에서 회자되었다. 대표적인 것을 꼽자면 경호업체와 계약할 때 팬 경호 조항을 넣었다고 한다. 절대로 팬을 폭행해서는 안 되며, 존댓말을 써야 한다는 내용이라 한다. 콘서트 전날에 팬들이 밤을 새고 있는 것을 알고 경호 업체를 보내 지켜주기도 했다고. 이를 갈무리한 블로그 글

재산 목록 1호는 팬들이 보낸 종이학이라고 한다. 2015년 3월 1일에 열린 앙코르 콘서트에서 언급했다. 이미 2007년에 데뷔 15주년을 맞아 팬들이 보낸 종이학을 전시하기도 했다. 이처럼 일찍이 과도한 조공은 받지 않았다.

1995년도 3월, 잡지 인터뷰에서 20년 후에 팬을 만난다면 커피를 사겠다고 한 적이 있었다. 링크 이 약속을 지키기 위해 데뷔 20주년이 되는 해에 커피 역조공을 했다. 그런데 그것이 실제로 일어났습니다

2012년 12월에 영등포 CGV THX관에서 <서태지 특별 상영주간> 동안 서태지 공연 실황을 상영했는데 이 시기에 맞춰 6층 카페 건물을 빌려 서태지 카페를 운영한 것. 음반이나 티켓 등 서태지 팬이라는 증표를 보이기만 하면 아메리카노를 무료로 제공했다. 종이컵은 서태지 팬덤의 상징인 노란색이었는데, 서태지가 직접 그린 그림이 들어갔다. 카페 내부 인테리어에도 서태지의 일러스트가 들어갔다고 한다. #

이 이벤트는 서울을 비롯해, 대구광역시, 부산, 광주, 제주까지 전국적으로 진행되었다. 12월 3일엔 대구시민운동장 주변, 5일엔 광주무등경기장 주변, 7일엔 부산사직종합운동장 주변, 제주도는 3일부터 7일까진 제주도 조안스튜디오에서 커피 버스를 운영했다.
파일:external/mimgnews1.naver.net/IE001523802_STD_59_20121203194806.jpg

2014년 12월 24일에는 평창동 자택으로 팬 300명을 초대하는 평창동 원정대 이벤트를 열었다. 기사 팬들에게 손수 포장한 선물 주머니를 나눠 주었는데, 기본 아이템은 여러 종류의 과자와 홍삼액, 핫팩이며, 여기에 서태지 브릭, 케토톱, 기타 피크 등이 랜덤으로 들어갔다.

이 이벤트는 2016년 2월에 방영된 MBC 예능 프로그램 능력자들에 서태지 능력자로 출연한 김홍기 씨가 방송에서 언급했다. 해당 방송 동영상

방송에는 안 나왔지만, 팬들이 쓴 후기을 보면, 집 앞에 푸드트럭을 세워 두고 율무차, 커피 등을 나눠 주었다고 한다. 인원이 많은 관계로 집 마당에서 팬들을 맞았기 때문에 마당 곳곳엔 난로를 설치했다. 즉, 자택 마당에서 진행한 팬미팅인 셈.

그런데 일부 인터넷 커뮤니티에선 이를 악의적으로 왜곡하여, 팬들을 추운 데 밖에서 기다리게 하고 꽁꽁 언 초코파이만 던져 주었다는 내용으로 둔갑했다. 사실, 당시에도 그리 화제가 되지 않은 일이었으나, 일부 어그로꾼이 뒤늦게 거론하기도 하며, 이를 무비판적으로 자기 블로그에 퍼 가 조회수를 올리려 하는 블로거도 있으니 주의를 요한다. 일설에 따르면, 서태지의 팬이었지만 그가 결혼한 뒤 안티로 돌변한 일명 뭉클이 이벤트 당첨자 중에 포함되어 악의적인 왜곡 글을 인터넷에 퍼뜨렸다고 한다. 이 자는 나중에 익명제 사이트로 옮겨가 악의적인 소문을 퍼뜨리고 다닌다고 한다. 팬덤 뒤에 숨으려고 팬코스프레하며 악의적인 루머를 퍼뜨리고 다니는 인간들이 있는 정황이다. 사람이 사람 좋아하는 게 뭔지도 모르는 주제에 팬코스프레를 하니까 당연히 들키는 경우가 많다. 디시인사이드 서태지갤러리에서도 들통나서 글 삭제를 하는 경우가 많았다. 진짜 팬이 아닌 팬코의 정황이 있으므로 이것은 팬덤을 비롯해 서태지를 이미지 살인하는 사기 행위이므로 확인을 꼭 하는 것이 필요하다.
2019년 12월 25일에 서태지 컴퍼니에서 5년 만에 평창동 원정대 현장 동영상을 공개했다.

2008년 무렵 메이크어위시 재단에서 백혈병에 걸린 남자 고등학생의 소원을 들어주기 위해 서태지에게 연락을 취했고, 서태지가 이 소원을 들어주었다고 한다. 기사 서태지를 만난 고등학생은 백혈병이 완치되고 기타리스트가 되는 꿈을 이뤘는데, 그 소년이 오랜 기간 할로우 잰의 기타리스트로 활동했던 서한필이다.[9] 링크

5. 연예인들의 연예인

1990년대와 2000년대에 어마어마한 파급력으로 문화 대통령 소리를 들었던 사람이라서, 현재 활동하는 연예인들 중에서도 서태지의 팬들이 어마어마하게 많다. 그리고, 연예인들뿐만 아니라 유명인, 셀럽, 공인들도 포함하는데 어린 시절에 서태지를 TV에서 보고 자란 아이들의 영원한 우상이기도 하다. 자타공인 연예인들의 연예인이라고 할 수 있다.

6. 기타

외가가 독립운동가 집안이라고 한다. MBC 인간시대에서 다룬 서태지 다큐멘터리에 따르면, 서태지의 외증조부가 조선시대 말기 고종 황제를 보필했던 육군 대장이었다고 한다. 링크 일제강점기가 시작된 뒤로는 독립 운동을 했다는데, 전처였던 이지아 친일파의 후손이었던 탓에 어떤 언론에서는 두 사람의 결별을 ' 독립 투사의 후예와 친일파 후예의 이별'이라는 자극적인 제목으로 다뤘다고도 한다. #
서태지가 대한민국 국민 중에서 최연소 운전면허 취득자라고 한다. 서태지는 '빨리 면허 따고 싶어서.'라고 말하기도 했다. 한편으로는 당시 긴머리가 흔치 않던 시절이라 긴머리를 하고 대중교통을 타면 사람들의 시선이나 어른들의 한마디가 불편해서 빨리 자동차를 몰고 싶었다고 발언한 적도 있다. 당시 서태지는 필기와 실기를 먼저 통과한 후 도로주행 시험을 1990년 자신의 생일, 즉 2월 21일 아침 첫 시험자로 미리 예약했다. 그리고 한 번에 통과해서 서태지는 만 18세가 되는 생일 아침에 운전면허에 최종합격하였다.[14]
영화 가필드에 출연하였다. #
몽골의 힙합 그룹 루미노가 서태지 아이들의 컴백홈과 원타임의 쾌지나 칭칭나네를 섞어 요상한 곡을 만들어 냈다. 듣기 서태지는 이후 사후 승인을 해줬다 관련기사
2008년 GM대우 토스카광고를 찍어 컴백 전에 소소한 이슈를 끌고 다녔다. 그런데 2015년 초에 있었던 9집 마무리공연에 람보르기니 디아블로[15]를 끌고와 토스카는 그새 팔아 치운 거냐는 의견이 많았으나, 아직까지 잘 타고 다닌다고 한다.[16][17]
1980년대 인기 드라마 수사반장 중 한 에피소드 '서태지' 라는 인물이 등장한다. 연기한 사람은 박영규이며, 겁탈을 당한 부인의 원수를 갚는 내용이다. 이곳에서 다시 볼 수 있다.
가수 원미연의 3집 수록곡인 ' 그대 내 곁으로'는 서태지에게 받은 노래다. 2014년에 소격동을 부른 아이유와 더불어 서태지가 곡을 준 단 둘뿐인 여자가수. 다만 아이유는 일종의 콜라보레이션이었으니 조금 경우가 다르긴 하다. 다만 원미연은 생각만큼 그 노래가 히트하지 못해 서태지에게 미안한 마음을 갖고 있다는데 반 농담삼아서 자기가 무리하게 랩까지 소화해서 잘 안 된 것 같다고 언급했다. 당시에는 방송여건상 랩도 본인이 직접 전부 불러야 했었다고 한다.
가수 허니의 'X라는 아이'라는 곡이 서태지와 아이들 은퇴 전 극비리에 작곡한 곡이란 이야기가 있으나, 전혀 아니다. 원래 따로 작곡된 노래에 서태지가 약간의 조언과 가이드용 랩 데모 8마디만 만든 것. 인터넷에 돌아다니는 서태지의 음성이 실린 버젼은 이 데모 테이프에서 유출된 것이다. # 허니의 기획사 직원들이 서태지와 아이들 매니저였던 최진열을 비롯해 전부 서태지와 연관된 사람들이어서 극비리에 도와줬다고 한다.
서태지와 아이들로 활동할 때, 그의 매니저가 이동 중인 차 안에서 당시로서는 일반인은 홍콩 영화에서나 보던 수백만 원대의 비싼 초창기 휴대폰을 직업상 사서 사용하는 모습을 보게 된 서태지가 호기심에 그게 얼마냐고 물었다. 특별히 자신에게 말을 먼저 걸거나, 뭔가 일 외적으로 다른 일에 호기심을 보이지 않던 서태지의 이례적인 행동에 장난기가 발동한 매니저는 서태지에게 "야, 이거 만 원도 넘어. 살래?"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그리고는 말없이 웃던 서태지는 일주일 뒤 그 다음 번 매니저와 함께 차에 타게 되자 매니저에게 진짜로 만 원을 주면서, "그거는 나 주고 형은 이걸로 새 거 하나 사"라고 말했다고 한다. 그렇게 20대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세상물정에 어둡고 악기 구매할 때 물건 값 흥정도 못 해서 항상 다른 사람이 나서서 해야했다고 한다. 서태지와 아이들 활동 시의 수익을 분배할 때에도 액수를 묻지도 않은 채 항상 "부모님에게 보내 달라"라고 부탁했다고 한다. 돈도 거의 가지고 다니지 않아 별명이 서크루지였다.
<컴백홈>을 패러디한 <컴배콤>이란 곡이 있었다. 음치가수 컨셉으로 데뷔한 개그맨 이재수의 작품이었는데, 서태지가 음악 저작권 협회를 탈퇴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 서태지는 이재수의 음반을 내 준 라인음향을 상대로 고소했다. 고소 사유는 일반인이 생각하는 것과 달리 코믹한 컨셉으로 패러디한 것 때문이 아니라, 원작자의 동의 없는 발매. 즉 저작권 침해 문제 때문이지만 서태지에 대한 오마쥬라는 라인음향의 주장이 어그로를 끈 탓도 있다.[18]
서태지는 리메이크곡이 없는 이유에 대해 자신의 음악을 팬들과 자신만 공유하고 싶기 때문이라고 직접 밝혔다. 가끔 YG엔터테인먼트 서태지컴퍼니 소속 가수들이 라이브나 방송에서 서태지의 곡을 리메이크하다가, 최초의 레코딩 버전 리메이크로 빅뱅이 서태지와 아이들 4집의 '필승'을 빌렸다. 후에 응답하라 1994 OST에서 리메이크가 성사되어 성시경이 서태지와 아이들 2집의 너에게를 불렀다. 발라드곡을 발라드 가수가 부른 격. 성시경은 내레이션에 특히 신경을 많이 썼다고 전해지는데 2016년 4월에 우리동네 음악대장 복면가왕에서 하여가를 리메이크 해서 불렀는데 이 역시 정말 이례적으로 리메이크를 허락받았기에 성사되었다. 9집 이후에는 리메이크 앨범이 따로 나오거나 한 방송을 통째로 서태지 리메이크로 채우는 등 관대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다만 서태지가 그 동안 리메이크에 유독 엄격했던 것은 이런 이유도 있겠지만 더 깊이 들어가보면, 서태지는 상술했다시피 서태지 이재수 고소사건으로 자신의 노래를 리메이크하고 무단으로 상업적 활동까지 한 저작권 피해를 겪었는데, 그러면서도 자신의 창작물의 저작권은 제대로 지켜주지 않으면서도 돈은 돈대로 징수하는 한국음악저작권협회에 실망해 탈퇴까지 했다. 심지어 서태지가 음저협에서 탈퇴한 이후에도 음저협은 저작권료를 챙기는 양아치짓을 벌이다가 서태지측에게 소송을 당하기도 했다. 결과는 12년간의 소송 끝에 서태지측의 승소로 끝났다. 이렇듯 한국에서 대중 문화의 2차 창작이나 그에 따른 상업적 활동이라는 개념이 제대로 자리잡기도 전인 2000년대 초에 리메이크에 엮인 사건에 워낙 크게, 그것도 일찍 데였다 보니 자신의 노래를 리메이크해 상업적으로 이용하는 것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일 수도 있다. 당연히 개인이나 소규모 록밴드가 자신의 노래를 리메이크해 유튜브에 올리거나 소규모 공연장에서 연주하는 것 등 작은 규모는 눈 감아준다.
스튜디오에서 보드 장갑에 보드복을 입고 노래를 하는 등으로 우리 나라에 생소하던 스노보더의 복장과 문화를 소개하여 스키장에서 마이너였던 보더들이 스키를 누르고 대세로 올라게는 계기가 되게 하였다. 심지어 스노보드 종목인 프리스타일이란 이름의 곡도 있다. 세계적인 스노보드의 유행이 서태지가 등장한 때와 겹친 영향이 더 크지만, 서태지와 아이들도 하나의 기폭제가 되어 주었다. 실제로 서태지와 함께 시나위에 있던 김종서, 이주노[19]는 우리 나라 스노보드와 스케이트보드 쪽에서 거의 1세대다.
노래 가사에서 알 수 없는 가사[20]가 많이 나온다. 서태지와 아이들 시절에는 그래도 몬더그린 수준이었지만 솔로 데뷔 이후에는 음악 스타일 자체가 연주의 비중을 보컬과 비등하거나 혹은 그 이상으로 중시하는 성향이 강해지면서 자연스레 가사가 잘 안들리는 경향도 더 강해졌다. 가사를 외우거나 가사집을 보지 않고 그냥 노래만 들으면 가사를 알아듣기 힘들 정도. 그래서 한때 팬들에겐 그런 구절들이 무슨 말인지, 무슨 뜻인지 해석하는 것도 유행하기도 했다. 예를 들자면 좀 많은데, 2집의 죽음의 늪 후렴구 가사 중 '피하지 않겠어' 뒤에 나오는 가사나, 3집의 교실 이데아에서 '그걸로 족해 족해'이후 가사집에 적혀있지 않은 목소리[21], 마찬가지로 3집 수록곡 널 지우려 해의 마지막 부분에서 서태지가 부르는 정체 불명의 노래, 6집 인터넷 전쟁에서의 후렴구의 코러스로 들어가는 스크리밍 등, 심지어는 5집의 Take 3처럼, 가사집을 보지 않으면 가사가 전혀 들리지 않는 곡까지 있다. 게다가 Take 1의 경우 15년 일겅 남탕 콘서트에서 의미 불명 가사[22] 에 관한 팬의 질문에 서태지 본인이 직접 답을 했는데 원래 우리 말로 녹음을 하였으나 외계어로 바꿔서 불렀다고 한다. 여기에 대한 의미는 자신만이 알고 있으며 죽을 때까지 안 알려줄 거라고 한다.[23]
서태지와 아이들 시절 서태지는 트로트곡을 만들어 부른적이 있다. 전체 부분을 공개하지는 않았지만 1집 때 방송 프로그램이나 콘서트에서 한, 두 소절 부른적이 있으며 1.5집 에서도 Rock & Roll Dance 마지막 부분에서 서태지가 해당 노래를 부른다. 가사는 아래와 같다.
그대가 없으면 나는 외로워
그대가 없으면 나는 외롭지지지
지금부터 그대에게 사랑을 고백할 거야~[24]
이렇게 그는 트로트에도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으며 결국 서태지와 아이들 4집 1번트랙 Yo! Taiji! 에서 뽕기 충만한 트로트락을 선보이기도 했다.
데뷔 초기부터 위천공으로 고생을 많이 했다고 한다. 그래서 회식이나 술자리에선 술은 그냥 혓바닥에 할짝거리는 정도로 그쳐야 했다고. 공개적인 행사에서 샴페인을 마실 때도 샴페인 거품을 앞니로 깨물기만 하고 마는 모습도 보여주었다.[25] 너무 힘들 때는 한 끼 식사를 우유로 때워야 했다고 한다.
병역에 관해서는 여러 말들이 많은데, 1994년말 연예인 병역 비리를 내사한 경찰의 중간 발표에 따르면 '서태지는 성격장애로 면제, 이주노는 피부과이상(문신)과 정신장애로 면제, 양현석은 병명미상으로 의병제대'를 한 의혹이 링크 있다고 했다. 하지만 한달 후에 무혐의로 내사를 종결했다. 링크
주위 인물과 팬들의 성화로 지금은 담배를 안 피운다고 한다. 중2 때 흡연을 시작했다가 고1 때 끊었다고 이야기한 적이 있지만, 완전히 끊지는 못한 것 같다. 자신의 컨텐츠에 대해 철저하게 관리하는 성격탓에 흡연장면이 노출되지는 않았지만, 8집 뮤직비디오의 촬영과정을 담은 다큐에서 자신의 테이블에 담배를 올려놓은 모습이 아주 잠깐 나오는 등 약간의 정황이 확인되었고, 이번 남탕, 여탕, 혼탕을 주제로 한 클럽공연(일겅) 때 전자담배를 피우는 퍼포먼스를 시전하여 팬들에게 충공깽과 심쿵을 선사하였으나 수년 전에 완전히 끊었으며 전자담배 연기는 단순 수증기라고 밝혔다. 최수종쇼에서도 담배 피우는 모습을 주변 사람들이 보기 싫어한다고 말했는데, 사실은 건강에 나빠서( 하희라의 질문)가 아니라 뻐끔거리기 때문이라고[29].
사촌동생 강현구는 강개토라는 예명을 가진 싱어송라이터로 활동 중이다. 서태지의 영향인지 강개토 역시 본인 음악의 작사, 작곡, 편곡, 연주, 엔지니어링 등 모든 작업을 혼자서 소화한다. 본래는 서태지가 6집 발매 직전 강현구도 미국으로 건너와 있었던 상태라 서태지가 귀국하면 베이시스트를 맡기로 했으나, 귀국 날짜가 달라진 탓에 못하게 되었다고 한다. 이때 당시 서태지에게서 베이스를 선물 받았다고 한다.[30] 개토네이션이라는 밴드를 결성해 디지털 싱글을 중심으로 7장의 앨범을 발매하며 활동하는 중이다. 초창기에는 얼굴이 공개되면 괜히 서태지와 엮여 오해를 살까봐 가면을 쓰고 활동했으나[31] 현재는 가면을 벗은 상태. 결혼식 때는 서태지가 그에게 축하화환을 보내어 화제가 되기도 했다. 발매 하는 음악 대부분은 음원 순위 10위권에 랭크 되었으며, m.net 및 곰 tv 뮤직비디오 실시간순위 1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삼성, 웅진, 두산, 신한, 우리 등 다수의 기업체 음악작업을 진행했으며, '광고음악의 장르가 신세대들의 소비심리에 미치는 영향'이라는 논문을 발표하기도 했다. 현재는 여러 음악 콘텐츠 제작자로서의 활동은 물론 대학교 실용음악과 학과장으로 재직 중이다.
유머를 자주 구사한다. 그런데 그 유머들이 하나같이 썰렁하고 재미가 없다. 오죽하면 팬들조차 노잼이라고 까고 있는 중. 그런데 더 심각한 건 본인은 개그를 좀 한다고 생각하고 있다. 얼굴은 속여도 유머감각은 못 속이는 50대 아재답다.

데뷔가 워낙 오래된지라 서태지와 가까이 있어보고 싶어서, 닮고 싶어서 등의 팬심으로 연예인이나 방송계 직종 등에 종사하는 서빠들이 꽤 존재한다. 덕분에 메이킹 영상 등을 보면 스텝들 중에 싸인을 받거나 실물을 봐서 헬렐레한 모습을 보이는 장면이 자주 등장한다. 연예인들에게도 "연예인들의 연예인'"소리를 들을 정도다.
우스갯소리로, 서태지가 컴백하면 음악 평론가들도 같이 컴백한다는 소리가 있다.

서태지가 출연한 광고 중에 서태지 본인의 목소리로 녹음되지 않은 광고가 있다. 당시 은퇴 후에 미국으로 떠난 뒤여서 미처 녹음을 할 수 없어 대역이 대신 녹음했다고 한다. 당시 대역을 맡은 사람은 KBS2 스펀지의 권재영 PD로, 2004년 2월 21일 방영분에서 드러났다.
자신의 단독 공연에 돈을 아끼지 않고 투자하여 매 공연마다 기록적인 수준의 물자가 투입된다. 공연 시장의 규모가 해외에 비해 많이 작은 편인 한국에서 전폭적인 투자 없이는 해보기 힘든 실험들을 시도할 수 있기 때문에 서태지가 컴백할 때마다 업계의 노하우가 새로 쌓인다고 할 정도. 비단 음향만이 아니라 연출에서도 황당한 요구를 해오는 클라이언트 때문에 골머리를 앓다가 어떻게든 만들어내는 경험이 공연 업계 전반으로 확산된다고 한다.[32]
서울토박이 집안 출신이다. 구한말 시절인 증조부 때부터 대대로 서울특별시 종로구 일대에 살았다고 한다.[33] 그래서인지 다른 가수들과 다르게 특유의 단어인 서울사투리들이 나오는 경우가 종종 있다.
과거 신해철, 기타리스트 탑과 스키장에 놀러갔는데 쉬고 싶다던 신해철을 부추겨 신해철이 상급자 코스에서 스키를 탔고, 결국 팔이 빠지는 부상을 입게 된 적이 있다. 당시 신해철이 응급실에 누워 괴로워하고 있을 때 서태지가 밖에서 다른 사람들과 함께 신해철을 구경했고[34] 그를 발견한 신해철이 급분노해 " 저 XX가 서태지다!"라고 외칠 뻔 했다고 한다. 링크
굉장한 동안이다. 1972년생으로 2023년 기준으로 50대 초반으로 접어들었지만 양현석(1970년생)이나 이주노(1967년생)는 그 나이대에 비슷해[35] 보이는데 서태지만 아직까지 나이에 비해 매우 젊어보인다. 물론 40대에 들어서는 표정에 따라서 살짝 나이 든 모습이 나오기는 한다. 그래도 40대로는 절대 안 보인다. 이승환, 이선희와 함께 대표적인 동안 뮤지션 중의 한 명이다.
2018 제1차 남북정상회담의 환송식에서 ' 발해를 꿈꾸며'가 송출되었다. 평화통일을 기원하는 가사말과 김대중 전 대통령이 생전 좋아하던 노래 중 하나인 것이 큰 영향을 끼친 것으로 풀이된다.
최근 자신이 살던 평창동 자택을 팔고 이사를 간 것으로 보인다.[36] 이후 서태지 본인이 2019년 크리스마스 안부글을 통해 이사한 것이 맞다고 이야기했다.
동(東)태지의 모아이가, 서(西)태지의 Human Dream를 꺾어 패배를 안긴 적이 있다.
양현석과 마찬가지로 '다르다'와 '틀리다'를 구분하지 않고 '틀리다'로 얘기한다.
1995년 2월에 문화 평론가 이동연 교수와 진행한 인터뷰에서 자신의 음악에 전위주의가 존재하느냐는 질문에 대해, 전위주의를 따른 전위음악은 기존의 음악적인 상식을 완전히 깨는, 화성이나 비트, 리듬 따위의 기본적인 음악의 구성요소들을 완전히 해체하는 형식이라 본다며, 그런 의미에서 아직 자신의 음악을 포함한 우리 대중음악에 온전한 전위주의는 없는 것 같다고 밝혔다. 앞으로 그러한 전위주의를 해 보고 싶은 마음은 많이 갖고 있다고 한다.[37]
2002 ETPFEST에 히데를 섭외하였고[38] 이에 생전 고인이 꿈꾸던 해외 진출의 꿈을 이뤄줬다며 유족들은 서태지에게 감사의 인사와 함께 고인의 기타 옐로우하트를 선물했다.[39]
머틀리 크루 성공한 덕후이다. 머틀리 크루의 드러머 토미 리는 서태지가 만든 록 페스티벌인 이티피 페스티벌을 통해 내한하기도 했다. 다만 머틀리 크루 드러머로서가 아니라, 자신의 밴드를 이끌고 내한한 것이다. 또한 2019년에는 머틀리 크루의 'girls girls girls' 뮤비를 보고 동경하던 바이크 면허를 땄다고 밝히기도 했다.
스매싱 펌킨스에 대해서는 오랫동안 여러 경로로 팬심을 밝혀 왔다. 링크 5집에서 스매싱 펌킨스 스타일의 얼터너티브 락인 Take Five를 선보이는 것을 시작으로 2001년 공식 홈페이지 서태지 닷컴을 오픈했을 때 ‘아이 앰 원’, ‘제로’, ‘서티-스리’ 등을 추천하기도 했으며, 2004년 배철수의 음악캠프에 출연했을 때는 “빌리 코건의 프로젝트 밴드 즈완의 ‘리릭’이라는 곡을 즐겨 듣는다”며 “스매싱 펌킨스는 나에게 꾸준하게 음악적인 자극을 주는 밴드”라고 말했다. 2010년 스매싱 펌킨스 내한 공연 때는 서태지컴퍼니가 후원사로 나서기도 했다.14년도에 9집 발매 전 업로드 된 잭 오랜턴 사진의 떡밥과 우연히 겹쳐져 '9집은 스매싱 펌킨스 풍의 얼터너티브 록 장르다. 스매싱 펌킨스와 콜라보다.' 등의 소문이 돌았던 것은 덤.[40]
기타 제작가 박민병은 어린 시절부터 서태지의 팬이었다. 서태지에게 헌정할 목적으로 12년 동안 건조한 목재로 제작한 기타는 서태지 라이브 공연에서 TAKE THREE를 연주하는 데 쓰였다. 박민병은 아픈 몸을 이끌고 공연에 참석했다.
서태지와 아이들 시절 수익배분이 꽤 화제가 되었다. 서태지와 양현석이 공통적으로 말한 부분은 활동 수익이 4:3:3 이었고 음반 수익은 서태지 본인이 밝힌바로는 6:2:2였다. # 이주노 말에 의하면 전체 수익의 절반은 서태지가, 나머지 절반을 자신과 양현석이 나눠가졌다고 한다. #[41] 혜자도 이런 혜자가 없다 온라인에서는 전설의 수익 배분이라고 불리는데, 그도 그럴 것이 서태지와 아이들이라는 그룹 자체가 하나부터 열까지 서태지 없이는 돌아가는 그룹이 아니었고 활동 수익은 그렇다 쳐도 음반에서 양현석과 이주노의 기여도를 생각하면 8:1:1이었어도 할 말이 없을 거라는 것.[42] 덕분에 서태지는 이 방면에서는 ' 보살'이라는 반응을 얻었다. 한편으론 그렇게 90년대 당시 몇십억을 벌고도 그 돈을 다 날린 이주노에 대해 안타깝다는 반응도 있었다. 서민 출신 양현석이야 알다시피 YG 엔터로 욕은 먹어도 사업은 성공했다.
파일:attachment/적절하게방한_1.jpg

전 프로게이머 김대기가 그와 닮은꼴이어서 그런지 서태지 관련 합성이 많다. 해당 사진의 원본은 2000년 8월 29일, 서태지가 김포국제공항[43]을 통해 미국에서 귀국하는 모습이다.


또한 서태지의 노래인 모아이를 적절히 개사해서 부른 영상인 서대기 - 적절하니 MV는 2008년에 디시 힛갤에 올라갔다.
2020년대 기준 10대들에게는 교과서로 접한 인물이다. 의 유튜브 채널 시즌비시즌에 언급되었다. 링크 관련 기사 중학교 역사 교과서에 서태지가 등장했다는 기사도 있다.
2022년 6월 13일, 강남 논현동의 9호선 언주역 인근 본인 소유 빌딩을 400억원에 매각했다. 이 빌딩은 2002년에 50억에 매입하여 2005년에 45억원을 들여 신축했는데, 20년만에 300억원 정도의 차익을 거둔 셈이다. 링크 부동산 업계에서는 서태지를 부동산 투자에 일찍 눈을 떠 성공한 몇 안되는 연예인 중 한 명으로 평가했다. 다만 이 건물이 서태지컴퍼니 사옥과 연습실이 있었던 곳이기 때문에 일부 팬들 사이에서는 갑작스러운 건물 매각 소식에 불안감을 드러내기도 했다. 하지만 여전히 그의 사이트는 여전히 활성화 중이기에 건물을 이전한 것일 뿐 회사를 아예 처분한 것은 아니다. 현재 서태지컴퍼니 업무는 서태지컴퍼니의 김민석 이사가 차린 스포트라이트라는 회사에서 맡고 있는데, 이 회사의 사무실은 마포구에 있다.[44] 이후 서갤 등에서 종로 묘동 건물도 매각했다는 루머가 나왔다.
서태지가 타던 것으로 추정되는 람보르기니 디아블로 차량이 매물로 올라왔다. 해당기사, 매물링크
과거 서태지와 아이들 활동 당시 마약에 빠질뻔 한 적이 있었다고 한다. 당시 일부 가수들이 마약의 유혹에 빠졌을 때 서태지도 멋도 모른체 마약의 유혹에 빠질 위기에서 김종서"태지야! 안돼!! 그건 가짜음악이야!!!!" 라고 일침을 가하여 그때 정신을 차리면서 마약의 유혹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고 한다. 인생의 길라잡이가 되어준 김종서에게 지금도 늘 고마움을 느낀다고...
평창동 자택을 매각 후 서태지가 김포에 거주한다는 소문이 존재했으나 평창동 자택 등기부 등본을 조회해보면 서태지 부모님이 김포 아파트로 이사를 한 것이며 서태지가 부모님과 김포에 거주한다는 것은 사실이 아니다.
서태지를 잘 아는 한 연예 관계자는 "서태지 역시 한국에서 자녀교육이 힘들다고 판단했다. 서태지, 이은성의 딸이라는 꼬리표를 단 채 살아야 하는 딸의 미래를 위해 한국에서의 삶을 정리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전했다.
2024년 12월 24일 오랜만의 근황 소식을 알렸다. 아빠로서 "딸이 만 10세, 곧 사춘기 올 듯…혼자 문닫고 들어가"라며, 요즘 딸이 바이올린에 빠졌다고 밝혔다. #


[1] 오히려 이 분류는 서태지가 아니라 대놓고 노무현의 선거 유세에 참여까지 했었던 6촌 형 신해철에게 더 어울리는 분류이다. [2] 애초에 서태지가 미국 랩을 한국 대중음악계에 가져왔던 이력을 생각해보면 반쪽짜리 논리다. 당시 미국인도 이라크 전쟁 반대하는 사람들은 꽤 많았다. [3] 한편 마이클 잭슨이 김 대통령 취임식에 참석했다. [4] 재미있게도 괴짜가족 주인공 고테츠의 한국판 이름은 변태지. [5] 외계유입설은 프랜시스 크릭의 가설에서 비롯됐다. 기사 왓슨과 함께 DNA 구조를 밝힌 노벨생리학상 수상자 그 사람 맞다. [6] 괴수들 특유의 킹왕짱 먼치킨스런 이미지 때문인지 자신의 레이블 (괴수인디진)내의 뮤지션들 또한 그런 킹왕짱 먼치킨 뮤지션이 되길 바란다는 의미까지 포함했다고 한다. 그리고 그들은 굇수들이 되었다. [7] 본인 소유로 람보르기니 디아블로를 가지고 있었다 [8] 당시 일본 자택을 촬영한 다큐에서 고가의 에어소프트 전동 소총도 볼 수 있다. [9] 2022년 연말까지 활동한 뒤 탈퇴했다. [10] 서태지 역시 고등학교를 자퇴하고 시나위에서 베이시스트로 활동했기 때문이다. [11] 첫 장면에서 나오는 핸드폰이 서태지폰이다. 알람도 해당 기기에 수록된 서태지가 직접 녹음한 줄리엣 알람. [12] 후에 해피투게더에 출연하며 밝힌 바로는 서태지 역시 성시경의 팬이라서 허락해줬다고 한다. [13] 처음에는 워낙 좋아하는 트랙이기도 해서 편곡을 세게 가고 싶었지만, 선배님이 왜 자신에게 리메이크를 맡겼을까를 생각해보며 본인의 목소리에 맞게 말랑한 사운드로 바꾸었다고 밝혔다. [14] 출처 서태지 아카이브 [15] 배우 박상민이 타는 차종과 동일한 모델이다. [16] 참고로 2대 중 한 대는 서태지가 08년 ETPFEST에서 관객 경품으로 내놓았다고 한다. [17] 일단 나름 차덕후답게 다양한 차를 소유하고 알려져있지만, 많은 매니아들에게 익숙한 것은 6집과 7집 당시에 타고 다녔던 에쿠서라 불리는 현대 에쿠스다. 물론, 토서카로 알려진 토스카를 소유한 뒤에 에쿠서의 행방은 묘연하다. 평창동 자택 혹은 서태지컴퍼니 건물 주차장에 있겠으려니 하고 추측만 무성하다. [18] 여담으로 라인음향은 10대 소년들로 구성된 밴드인 더 이스트라이트를 상대로 갑질을 한 그 기획사가 맞다. 이름만 바뀌었을 뿐 동일 회사이다. [19] 이주노의 소속가수 영턱스 클럽의 멤버 송진아는 심지어 이주노의 영향 때문에 스노우 보드에 빠져 나중에 가수 때려치고 스노우보드 선수가 되었음. [20] 잘 안 들리든지, 아니면 분명히 가사는 가산데 가사집에 적혀있지 않다. [21] 팬들과 방송, 그리고 음악 사이트에선 '내 사투로 내가 늘어 놓을래'로 단정지었다. [22] 티라키소리모올라키솔졉이라 들린다. [23] 다만 5집 Seo Tai Ji 앨범에 대한 이해가 어느 정도 필요하다. 개인적으로(특히 정신적으로) 매우 힘들었을 당시에 만든 앨범이었기 때문. 그 때문인지, Take 5를 자주 셋리스트에 올리기는 하나, 나머지 곡들을 셋리스트에 잘 안올리려고 하고 특히 Take 3는 Quiet night 투어에서야 첫 라이브가 나왔고, 방송 등에서도 5집에 관련된 이야기는 잘 안 하려고 한다. 게다가 실제 5집 전후 상황은 이지아와 관련된 문제가 얽혀있기 때문에 더더욱 이야기 하기가 어려운 것이 맞다고 볼 수 있으며 그에 대한 내용을 암호같은 느낌으로 적절히 표현해 가사로 만든 것으로 볼 수 있다. 즉, 아무리 매니아들이 Take 1에서 외계어로 바꾼 가사의 원 가사를 알았다고 하더라도, 오히려 실망할 가능성이 크다. [24] 마지막 줄은 3집 <다른 하늘이 열리고> 콘서트에서 추가로 불렀다. "야으야으" 에 가깝게 바이브레이션을 넣으면서 끝낸다. [25] 그러나 전 매니저 최진열의 증언으로 서태지와 아이들 시절 어려운 자리에서도 체면을 생각해서 술잔을 입에 대는 시늉이라도 하라고 했는데도 절대로 입에 대지 않았다고 한 것 보면 위가 안 좋아서라기보다 술에 취하는 것 자체를 싫어하는 걸로 보인다. [26] 폐간된 음악잡지 <뮤직라이프> 1995년 2월 호 또는 3월호에서 담당 기자가 언급했다. [27] 사실 이게 정상이다. 지금 한국의 청년 인구수는 대폭 줄었음에도 여전히 과거 병력 수준을 똑같이 유지하기 위해서 정말로 신체 및 정신적으로 문제있는 사람들까지 현역, 아무리 못해도 공익으로 전부 끌고가려는 무리수를 두는 것이다. 전세계적으로 징병제가 유지되는 국가중에서 한국만큼 기를 쓰고 전부 끌고가려는 혹독한 시스템을 유지하는 국가도 드물다. [28] 기자 본인의 기사를 갈무리한 블로그이다. [29] 담배연기를 들이마시지 않고 입안에 고인 것을 뱉어낸다는 뜻. 매니저였던 최진열 씨도 같은 말을 했다. 을 참은 채 입만 벌렸다 다물었다 하면 비슷한 모습이 나온다. [30] 서태지가 이전부터 사용해오던 빨강색의 베이스 기타라고 언급했다. 아마도 잭슨인 듯 하다. [31] 다른 개토네이션의 멤버들도 얼굴에 페인팅을 하였다. [32] 대표적인 예시로 2008 ETP의 등장씬에 쓰인 캡슐에만 어마어마한 돈이 들어갔다고 한다. 2009 ETP에는 2008에 쓰인 캡슐을 다시 쓰기 위해 보수하는데도 또 다시 어마어마하게 들어갔다고 한다. [33] 이와 비슷한 케이스로 같은 서울토박이 집안 출신인 손석희 앵커, 김태영 前 국방부장관, 성우 고 장세준 등이 있다. [34] 본인 말에 의하면 신해철을 보고 있었던 것이 아니라 신해철을 보고 몰려드는 사람들의 반응을 구경하고 있었던 것이라고(...) [35] 양현석 서태지와 아이들 시절엔 노안이라는 말이 많았다. 얼굴이 젊을 때보다 많이 안 늙어서 지금은 노안까지는 아니다. 반대로 서태지는 데뷔 당시에도 동안인 편이었지만 늙는 건 양현석처럼 굉장히 느리고 적게 늙었다. [36] 무한도전에 나온 그 집 맞다 [37] 이 인터뷰는 같은 해에 출간된 <새로운 유토피아를 꿈꾸며>에 실려 있다. 기존 인터뷰에 없었던 내용이 본인 피셜로 언급되니, 관심이 있다면 대형 도서관을 통해 찾아보길 바란다. [38] 파타와 히스도 Dope Headz라는 밴드의 멤버로 참석했다. 후기 영상을 보면 서태지와 대화를 나누는 파타를 볼 수 있다. [39] 요시키가 LUNATIC FEST 무대에서 옐로우 하트를 들고 나오는 영상이 공개되면서 다시 유족들에게 돌려준 것으로 보인다. [40] 실제로 9집은 신스팝 스타일의 일렉트로니카 락이였으며 크리스말로윈의 후반부에 나오는 'Oh My Jack O lantern was fake' 라는 비밀가사를 통해 서태지가 해당 떡밥을 통해 낚시를 했었다는 걸 보여준다. [41] 서태지와 아이들 음반 정보를 보면 알겠지만 거의 95%가 서태지가 혼자 다 했다. 그래서 양현석, 이주노 역시 이 부분에 대한 불만은 없었다고 한다. [42] 그나마 양현석은 '널 지우려 해'와 '이 밤이 깊어가지만' 작사에 참여했지만 이주노는 그마저도 없어서 서태지가 나눈 6:2:2가 얼마나 보살급 배분인지 알 수 있다. 그래도 춤은 이주노가 만들지 않았나? 게다가 서태지는 편곡에다가 음반 매니지먼트, 마케팅까지 혼자 다 했다. 사실 초기 기획사와 수익 배분 때문에 갈라선 서태지였던만큼 이런 부분에선 꽤 통 큰 양보를 한 것으로 보인다. [43] 첫 번째 사진의 '인천공항 국내선 2청사'는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는다. 인천국제공항은 2018년에 개장한 제2터미널은 있어도 인천국제공항에 따로 마련된 국내선 터미널은 없다. 애초에 저 짤의 원본이 되는 서태지의 6집 활동을 위한 귀국 당시에는 인천공항 자체가 없었다. 해당 사진의 배경 또한 김포국제공항 국제선 청사이다. [44] 비활동기이므로 업무가 없어서 사무실 규모를 줄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파일:CC-white.svg 이 문서의 내용 중 전체 또는 일부는
문서의 r3236
, 9번 문단
에서 가져왔습니다. 이전 역사 보러 가기
파일:CC-white.svg 이 문서의 내용 중 전체 또는 일부는 다른 문서에서 가져왔습니다.
[ 펼치기 · 접기 ]
문서의 r3236 ( 이전 역사)
문서의 r ( 이전 역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