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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1-17 16:55:43

이주노

파일:서태지와 아이들 로고.svg
서태지 양현석 이주노
1집 2집 3집 4집
<colbgcolor=#000><colcolor=#fff,#ddd> 이주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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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이주노
본명 이상우(Lee Sang Woo)
출생 1967년 2월 10일 ([age(1967-02-10)]세)
경기도 시흥군 안양읍
(現 경기도 안양시)
국적
[[대한민국|]][[틀:국기|]][[틀:국기|]]
본관 경주 이씨(慶州 李氏)[1]
학력 소래종합고등학교 (중퇴)
신체 172cm, 53kg
가족 장인(1963년생), 장모(1965년생), 배우자 박미리(1990년생), 딸 이재이(2011년생), 아들 이산희(2013년생)
병역 병역면제(생계곤란)
직업 가수, 댄서, 래퍼
데뷔 1992년 서태지와 아이들 1집 '난 알아요'
링크 파일:유튜브 아이콘.svg 파일:인스타그램 아이콘.svg

1. 개요2. 생애 및 활동
2.1. 데뷔 이전2.2. 서태지와 아이들 활동2.3. 해체 직후
3. 기타 사항
3.1. 가족사3.2. 몰락
4. 논란 및 사건 사고
4.1. 2002년 성추행 사건4.2. 최진실 스토킹 사건4.3. 사기 사건4.4. 2016년 성추행 사건4.5. 특수폭행 사건
5. 근황6. 관련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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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한국의 댄서, 래퍼, 가수, 음반제작자로 본명은 이상우. 이주노라는 이름은 당시 잘 나가던 솔로 가수인 이상우 동명이인이었기 때문에[2] 이를 피해서 주노라는 가명을 썼다고 이주노 본인이 쓴 My Story라는 책에서 밝힌 바 있다.[3]

8/90년도 무렵 국내에서 손꼽히던 댄서 출신으로 전설적인 그룹 서태지와 아이들의 멤버이자 맏형이었다. 서태지와 아이들 해체 이후, 영턱스클럽, 허니패밀리, 팝핀현준 등을 발굴하여 당시 양현석보다 잘 나가는 듯 싶었지만, 2000년로 접어들면서 잇따른 사업 실패와 사기 범죄 연루 등의 여러 구설수에 오르며 신뢰도가 바닥으로 떨어졌다.[4]

2020년 베리스토어 부사장에 취임했고, 현재 꾸준히 활동하고 있다.

2. 생애 및 활동

2.1. 데뷔 이전

경기도 안양에서 서울특별시의 명문 집안 출신인 아버지와 어머니 송영자의 무녀독남 외동아들로 태어났다. 아버지는 변호사, 학자를 배출한 잘 나가는 집안에서 태어나 대학까지 나온 뒤, 농촌의 야학교사로 잠깐 활동하다 농촌 처녀인 어머니를 만나게 되었다고 한다. 집안의 반대가 심했지만 결국 두 사람은 1966년에 결혼했고, 이듬해 이주노를 낳았다. 하지만 이주노가 돌이 되던 해 당시 공무원이 되기를 바라던 아버지는 결국 외딴 섬마을 고등학교 교사로 부임했지만, 그 곳에서 결국 화병으로 사망했다고 한다. 젊은 나이에 홀몸이 된 어머니는 외판원 일 등을 하면서 힘겹게 살아왔다고 한다.[5]

이른바 장판 갖고 다니면서 춤추던 시절이라 불리던 당시에도 소문난 춤꾼으로 유명했다고 한다. 빠른 67년 생으로서 66년 생들이랑 같이 학교를 다녔다. 소래종합고등학교(현 소래고등학교) 중퇴 이후[6] 박남정, 박철우 등과 함께 한국 비보이 1세대로 분류되며, 당시 국내에 손꼽히는 댄서 중 한명이기도 했다. 서태지와 아이들에서 함께 활동했던 양현석이 그루브를 중시하는 댄스 스타일이라면, 이주노는 브레이킨 등의 파워무브가 인상적인 스타일이다. 이렇듯 댄서로서 서서히 이름을 알리게 되는 80년대 후반부터 각종 비보이 팀은 물론이거니와 인순이와 리듬터치, 김승진과 하얀손, 박남정 등과 써브웨이 등의 유명 가수의 백댄서로서 활동해왔다.
87년, 백댄서로 로봇춤을 추는 이주노(왼쪽). 오른쪽은 박철우, 가수는 이재민이다.[7]

서태지와 아이들에 발탁되기 전인 1991년 '제미니 뉴스'라는 팀에서 활동했다는 기록이 있으나, 이 제미니 뉴스에 대한 정보는 전무한 상태다.[8]



1989년에는 가수 오복이 주축이 된 '오복과 오복성'이라는 그룹에서 활동한 적이 있다.

2.2. 서태지와 아이들 활동

1991년. 양현석과 함께 서태지와 아이들의 안무 담당 멤버로 발탁된 이주노는 인생의 큰 반전을 맞이하게 되었다. 1992년부터 1996년까지 서태지와 아이들로서의 활동을 통해 충분히 대스타의 반열에 올라서게 된 셈이다. 외아들로 태어났으나 아버지를 일찍 여의고 홀어머니를 모시며 궁핍한 삶을 살았던 이주노로서는 자신의 인생에 가장 큰 영예라 볼 수 있다.

팀이 결성될 당시에는 양현석의 추천으로 이주노가 합류하게 되었는데 가장 늦었던 상황이다. [9] 팀 결성 이전에 이주노와 양현석은 백댄서 세계에서 오랫동안 활동하면서 이미 어느 정도 친분이 있었으나, 서태지는 양현석하고만 알고 지낸 사이였다. 그리고 서태지가 가수 데뷔를 위해서 춤을 가르쳐 달라고 부탁하자 양현석이 3인조로 가는 게 좋다면서 여러 댄서들을 소개하고 미팅을 갖았으나 서태지가 확실하게 맘에 들어하지 않는 기색이 보여 고심하던 끝에 선배인 이주노에게 제의를 했다고 알려져있다.

양현석에 비해 앨범 작업의 참여는 저조했으나, 1995년에 발매된 서태지와 아이들 콘서트 앨범('95 다른 하늘이 열리고)의 수록곡 중 그의 솔로곡인 '너희가 소망이 되어'라는 곡을 직접 작사, 작곡했으며, 이는 이상우라는 이름으로 앨범에서 확인할 수 있다. 참고로 본명으로 기재된 사유는 당시 존재했던 사전심의 때문이었다. [10]

그러나 이 시기 나머지 두 멤버와는 약간의 거리가 있었다고 하는데, 예를 들어 지방 행사를 가면 서태지와 양현석 둘이서 같은 방을 쓰고, 이주노는 매니저 최진열[11]과 한 방을 쓰는 식이었다고 한다.[12] 아마도 1967년 생으로 팀 내 최연장자였던 이주노를 1972년 생인 서태지와 1970년 생인 양현석이 대우하기 껄끄러워했던 게 아닐까 하는 추측이 있긴 했지만, 최근 출연한 유튜브 근황올림픽에서 사이가 나쁜것은 아니었지만, 아무래도 나이차이가 있고, 서태지와 양현석의 케미가 좋아, 본인이 자리를 양보하고 매니저와 잤다고 언급했다.

4년이라는 시간을 활동하는 동안의 정황이나 주변 사람들의 증언들을 볼때, 서태지가 양현석은 정말 마음이 맞는 친구로 생각했지만 이주노와는 엄청 친하지도 안 친하지도 않은 관계였던 것으로 보인다. 이게 둘이서 한명을 왕따시킨 것이 아니라 사람을 극도로 가리는 서태지가 음악이나 인생관 등 여러가지 측면에서 양현석과는 말이 잘 통하면서 친구사이가 됐지만, 이주노와는 딱히 공통점을 찾지 못했고 나이차이도 꽤 나는지라 그냥 동료 사이로만 지냈던 걸로 보인다. 나이차가 적지 않게 나는 서태지와 이주노의 간극도 일정한 영향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13][14]

일단 팀 해체의 원인은 이것과 관련이 없다고 이주노가 분명히 못을 박아놨다. 양현석 또한 서태지가 결혼 후 아이를 갖게 된 이후 만나게 된 자리에서 과거와 나누던 대화 내용이 달라지면서 붕 떠버린 느낌이었다고 언급했던 만큼[15], 결과적으로는 세 멤버 모두 각자의 추억으로 남겨두는 것으로 볼 수 있겠다.

서태지 역시 "신해철의 에디션"에 출연해 서태지와 아이들 시절을 회고하면서 셋 간의 사이는 매우 좋았다고 한다. 4년이라는 시간 동안 단 한번도 싸운 적이 없었으며 서로의 영상을 찍어주며 노는걸 즐겼을 정도였다고. 이주노 역시 음악과 관련된 것은 서태지가 다 했고 그가 워낙 잘했기 때문에 그에게 이견을 가진 사람이 없어 싸운 적이 없다고 발언한 바 있다. 링크 시간이 지나며 서로 안 보는 세월이 길어지니 당연히 사이는 예전만큼은 아니겠지만 셋 다 원만하게 지내는건 사실인 듯하다.[16]

2.3. 해체 직후

서태지와 아이들의 해체 후 1996년부터 KBS 2FM에서 '이주노의 FM인기가요'의 DJ로 활약했다. 밤 10시 라디오 프로그램의 최강자였던 MBC ' 별이 빛나는 밤에', 그것도 초인기 DJ 이문세와 경쟁했다. 당시 수도권에서는 별밤의 인기가 단연 독보적이었으나, 지방에서는 별밤을 지역 MC가 진행했기 때문에[17] FM인기가요가 인기가 더 높았다.[18] 2015년 6월 26일 KBS 2FM 50주년 특집으로 다시 진행하기도 했다.

서태지와 아이들의 해체 후 본격적으로 DJ로 활동하다 보니, 매주 일요일 밤에 있었던 신청곡 차트에는 항상 서태지와 아이들의 곡이 올라와 있었다. 당시 KBS에서 심의결과 TV방송금지를 먹었던 시대유감을 두 번이나 기습적으로 틀어주기도 했고, 김준선이 주축이 된 View to의 'High High'를 몇 주에 걸쳐 방송해주기도 하는 등 가끔 이주노 본인의 취향에 맞는 노래를 거는 경우가 있었다.

서태지와 아이들 해체 이후 이주노는 기획자의 길을 걷기로 결심, 1996년에는 혼성댄스 그룹 ' 영턱스클럽'을 발굴 및 육성하면서 인기가수의 반열에 올려놓는데 성공한다. 비슷한 시기 역시 기획자로 전향한 양현석 킵식스가 처참하게 실패하고 있었기 때문에 더 빛났던 성공이다.

한편, 이 시기 이주노 소속사에 연습생으로 김재덕 이재진이 있었는데, DSP 사장 이호연이 찾아와서 이 둘을 픽업해간다. 이 둘은 후에 젝스키스로 데뷔하게 된다.

그러나 영턱스의 인기는 앨범이 거듭될수록 떨어져 3집부터 완연한 쇠락세를 걷기 시작하고, 영턱스에서 탈퇴한 임성은의 솔로 1집 또한 큰 재미를 보지 못했다. 1999년에는 본격 힙합에 눈을 돌려 허니 패밀리를 발굴해내지만 역시 큰 인기를 얻진 못했다. 비슷한 시기 킵식스로 나락을 맛봤던 양현석은 지누션과 원타임의 히트에 힘입어 정상을 향해 치고 오르고 있었다.

이런 상황이 계속되자 2000년에는 개인적으로 친한 사이인 김준선[19]의 프로듀싱 하에 '무제의 귀환'을 타이틀곡으로 하여 다양한 장르의 음악을 담은 솔로 1집 '6 mill Bionic Juno'를 내놓으며 오랜만에 다시금 무대에 올랐다. 그러나... 이 앨범은 시대를 너무 앞서갔다는 평을 받으며 서태지와 아이들 세 멤버 각각의 첫 솔로 앨범 중 제일 실패한 물건이 되어 버렸다.

2001년에는 솔로가수인 김선아[20] 데뷔시켰으나, 반응은 없었으며 역시 실패로 끝나버렸다.[21]

2002년 긴급조치 19호에 까메오로 출연해 자기디스를 시전했다. "서태지와 아이들에서 아이들이었는데 난 언제 어른 되냐?"라는 대사가 있었다.

기획자 및 솔로 가수로서의 실패는 결국 기획사가 문을 닫는 결과를 낳아버렸고 한 때 잘 나가는 가수였던 이주노는 연이은 사업 실패와 사기 등을 겪으며 40억의 빚을 떠안은 신용불량자 신세까지 굴러떨어지게 된다. 이에 뮤지컬[22] 제작이나 배우, 그리고 스타 골든벨 고정 게스트 출연 등 이리 저리 바쁘게 뛰어다니며 2009년 결국 빚을 다 갚긴 갚았다고. 이러니저러니 해도 40억을 다 갚는 것을 보면 그 역시 능력자다. 이후 웨딩홀 및 댄스 아카데미를 경영하며 살림이 안정된 것 같았으나[23] 2011년에는 SBS 플러스에서 '90년대 톱가수들의 재기'라는 컨셉으로 방영된 리얼리티쇼 '컴백쇼 톱10'에 고정 출연하기도 했다. 참고로 같이 출연한 이들은 조진수[24], 김성수, R.ef, 김정남, 구피, 리아, 김현성, 클레오 등 듣기만 해도 절로 아련해지는 이름들이다.

3. 기타 사항

3.1. 가족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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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결혼발표를 했는데 1967년생 당시 45살의 나이로 1990년생 당시 22살 자그마치 23살 연하 여자친구 박미리를 공개하고 혼인신고[25] 부터 하여 화제가 되었다. 장인과의 나이 차이가 불과 4살, 장모와의 나이 차이가 불과 2살로, 거기에 혼전임신 및 과거 박미리는 이주노가 운영하던 엔터의 연습생이었기 때문에 그야말로 도둑 중의 상도둑.[26] 이주노가 서태지와 아이들 1집 활동을 할 때 박미리는 세살이었다. 당시 차마 장모를 보지 못했다고 한다.

2011년 12월, 딸 이재이의 탄생으로 아버지가 됐다. 결혼식은 2012년 9월에 성대하게 올렸으며, 서태지도 이주노 부부에게 축하의 화환을 보냈다고 한다. 방송에서 장모가 만나주지 않는다는 식으로 불쌍함을 자주 어필하며 반성(?)은 커녕 장모를 압박하는 인상을 풍겨 까이는 측면도 있다.[27] [28]

늦게 얻은 딸을 애지중지하는지 방송에서 딸바보 모습을 보였다. 2013년 10월에는 아들 이산희를 낳았다. 가끔 세바퀴 기분 좋은 날 같은 프로에 출연해서 근황 토크를 하기도 하였다.

3.2. 몰락

2012년 결혼이 임박하면서 서태지에 대한 언플이 약간 있었는데, 서태지와 아이들에서 이주노를 뺀 나머지 두 명의 영향력과 존재감이 워낙 대한민국의 연예계에서 절대적이었기 때문에 그냥저냥 묻혔다.[29] 서태지와 있는 친분은 다 과시하는데 정작 연락처는 모른다며 서태지의 부모도 모를 것이라 했다. 하지만 8집 때 서태지의 텔레비전 활동을 보면 알겠지만 의외로 활동 중이지 않을 때 조용히 살면서도 친한 사람들과는 잘 논다고 한다[30]. 서태지와 아이들에서 서태지와 양현석은 실제로 친했고,[31] 그 둘과 이주노의 관계는 한때 같이 일했던 아는 사람 정도인 것으로 보인다. 사실 음악적인 역량이나 보는 눈을 보더라도 양현석, 서태지와 이주노는 천지차이다.[32]

그리고 양현석이 힐링캠프에 나왔을 때 서태지와 아이들 활동 당시에 수익 배분을 공개했는데, 당연히 서태지의 비율이 압도적으로 많았고, 양현석은 이에 대해 작사와 작곡을 서태지가 했으니 서태지가 많이 가지는 게 당연하다며 만족하는 모습을 보인 반면 이주노는 상당히 뒤끝있는 발언을 했다고 한다. 그러나 2014년에 서태지의 평창동 자택에서 부부 동반 모임을 가졌다는 것으로 보아 그렇게 사이가 나쁘다고 보긴 어렵다. #

근황올림픽에 따르면 멤버들의 어머니들끼리 안부를 서로 묻는다고 한다. 멤버만큼은 아니더라도 부모들간에 사이가 좋은 듯하다. 멤버간의 사이가 아직 좋았다면 본인들이 연락했다고 말했을텐데 그런 언급은 딱히 없다.

이와는 별개로 잘 나갔던 서태지와 아이들 시절을 그리워하는 유일한 멤버. 서태지나 양현석이나 서태지와 아이들 재결합 얘기가 나올 때면 "할 만큼 했기 때문에 재결합은 안한다."라고 밝힌 반면[33] 이주노는 재결합을 할 수만 있다면 하고 싶다는 뉘앙스의 발언을 하기도 하여 팬들에게선 쿨하지 못하다고 얘기를 듣고 있다.[34] 게다가 아래 후술하는 여러가지 사건들을 일으켜서 서태지와 아이들이라는 시대의 아이콘에 여러 먹칠을 한 장본인이기에 해당 그룹이 재결합을 꿈꾸지 못하는 데 주요 원인이 되고 있다.

4. 논란 및 사건 사고

주의. 사건·사고 관련 내용을 설명합니다.

사건 사고 관련 서술 규정을 유의하시기 바랍니다.

4.1. 2002년 성추행 사건

2002년 성추행으로 기소유예를 받았다. 피해자와 합의해서 검찰 송치까지 가지 않고 경찰 선에서 끝났는데, 당시만 해도 성범죄는 친고죄였기 때문에 두 사람이 합의할 경우 처벌 및 기소가 불가능했다.

4.2. 최진실 스토킹 사건

배우 최진실에게 일방적으로 구애한 사건. 서태지와 아이들 해체 이후 이주노가 개인 활동을 할 무렵이며, 이주노는 주변 지인들한테 최진실을 좋아한다고 언급하였고 방송관계자들한테 최진실과의 자리를 만들어 달라며 요청했다. 그러나 정작 당사자인 최진실은 이주노와 방송에서조차 만난 적도 없다.[35]

문제는 그 뒤 행동이었다. 최진실과의 만남이 무산되자, 술에 취한 상태로 최진실 집에 찾아가는 바람에 최진실 어머니가 극성 팬인 줄 알고 쫓아냈으며 최진실 집 앞에서 고성방가를 하다가 이웃주민이 놀라 신고를 하여 결국 기사화가 되었다. 그때 기사화된 인터뷰를 보면 위의 내용의 이주노고, 아래의 내용은 최진실인데 이주노의 인터뷰를 보면 상대에 대한 배려가 전혀 없다는 걸 알 수 있다. 관련 인터뷰

4.3. 사기 사건

2015년 8월 31일 사기 혐의로 검찰에 송치됐다. 돈을 꿔서 시작한 돌잔치 사업의 실패와 연예전문 자산운용회사 부회장직에서의 퇴진이 겹쳐서 빈털터리가 됐다고 한다.

2014년 1월에는 지인에게 식당 동업을 제안하며 1주일 안에 갚는 조건으로 1억 원을 빌렸으나 이를 갚지 않아 사기 혐의로 고소됐다. 전화 녹취 파일도 공개됐는데, 정 안 되면 서태지를 만나 무릎을 꿇고서라도 돈을 받아오겠다는 발언으로 파문을 불러왔다. #

2018년 1월, 이주노의 변호인에 의하면 양현석이 이주노의 빚을 갚아 주었다고 한다.

이주노가 어려운 사정에 처한 와중에도 일절 도움을 주지 않는 서태지를 보며 너무 박정한 것 같다고 느끼는 이들도 있었으나, 결과적으로 위의 녹취 발언으로 인해 그나마 과거 서태지와 아이들 시절부터 지지해오던 팬들 마저도 외면하게 만드는 상황을 스스로 초래하게 된 꼴이었다. 냉정히 생각해보면 추문과 관련해 이주노와 엮이지 않고 또 이번에 도와주면 나중에 같은 문제가 발생했을 때 이주노가 또다시 손을 벌리지 않으리란 보장이 없어 그를 도와주지 않는 서태지의 선택은 이래저래 옳았다고 봐야한다. 어찌됐든 성인이라면 본인이 한 짓에 대한 책임은 스스로 지는 게 맞으니.

4.4. 2016년 성추행 사건

‘서태지와 아이들’ 이주노 또 성추행 혐의

2016년에 클럽에서 여성 2명의 가슴을 만지고 하체를 밀착하는 성추행을 하다가 말리는 클럽 사장의 뺨까지 때렸다고 한다. 2002년에도 성추행으로 기소유예를 받은 적이 있어서 이번 사건이 사실이라면 연예계에서 퇴출당할 것으로 보인다. 결국 7월 11일 검찰에 송치되었고 10월 14일 불구속 기소되었다. #

2017년 5월 24일, 사기와 성추행 혐의로 징역 2년과 신상정보공개명령을 구형받았으며 # 재판부는 2017년 6월 30일 오전 서울중앙지방법원 서관 526호법정에서 사기 및 강제추행 혐의로 기소된 이주노에 대해 징역 1년 6개월 및 40시간 성폭력 치료 프로그램 이수 해당기사, 그리고 10년의 신상정보등록명령을 선고했다. 법원 "1년6개월 실형 선고" 그나마 피해자와 합의 가능성이 있다는 이유로 법정구속은 면했다.

2018년 1월 18일 서울중앙지방법원 제1형사부 주관으로 열린 2심 재판에서 1심 판결보다 낮은 형량인 징역 1년 2개월에 집행유예 2년, 사회봉사 120시간, 신상정보등록 10년을 선고받았다. #

한편 해당 사건으로 인하여 배우자 박미리는 2015년에 얻을 수도 있었던 셋째를 유산하였다.

4.5. 특수폭행 사건

2022년 9월 서울 용산구의 한 주점에서 컵으로 주점 주인을 폭행하고 맥주잔을 던져 깨뜨리는 등 난동을 부린 혐의로 벌금 100만 원에 약식 기소됐다. #

5. 근황

2020년 3월 4일에 BERRYSTORE[36]의 부사장으로 취임했다. 이주노 부사장은 "BERRY를 통해 다양한 분야의 연예인들을 함께 건강한 기부문화를 조성하고 싶다."라는 의사를 전했다. #

그러나 상술한 성추행 사건 탓에 이마저도 완전한 재기라고 보기는 힘들 것으로 보인다.[37] 최근에는 비트코인 관련 업종에 몸 담고 있으며, 관련 유튜브에 출연하였다. #

하지만 올라온지 1년도 넘은 영상인데도 조회수가 저조하며, 그마저도 영상 제목에 문화대통령이라고 올려놔서 몇몇 누리꾼들의 빈축을 사고 있다.[38] 그리고 그 서태지와 아이들의 멤버였던 양현석마저 버닝썬 게이트에 연루되어 현재는 제작자로만 활동 중이다. 서태지만이 연예 활동을 이어왔으나 2018년 이후로는 방송에 모습을 보이지 않고 가끔씩만 근황을 알리고 있다.

최근엔 근황올림픽 채널에 출연해서 자신의 최근 모습들에 대해 담담히 밝히는 모습을 보였다. # 본인 왈, 이젠 그냥 회사원이며 회사 열심히 다닌다는 말을 남겼다. 그래도 왕년의 스타이기도 했고 수수한 모습을 보여줘 과거의 구설수에도 불구하고 어느 정도 동정표를 얻기도 했으나 이 영상이 공개된 후(2022년 8월 22일) 불과 며칠만에 2022년 9월에 주점 주인 폭행으로 기소되면서 재기는 영영 불가능하게 되었다(...). 무속인이자 배우였던 정호근이 진행하는 유튜브 채널 심야신당에서 "서태지와 아이들이 노년이 되면 언젠가 한 자리에 모일 수 있을 것이다"라고 말한 것이 11월 경임을 생각하면 이 그룹의 재결합이 앞으로도 영영 불가능해진 건 본인의 탓도 엄청 크다. 할 수 있는 사람들은 할 마음이 없고, 할 마음이 있는 사람은 할 수 없는 상황이니 재결합이 될 리가(...)

6. 관련 문서



[1] 경주 이씨 39세손 相○ 항렬이다. 페이커와 같은 항렬. [2] 그 쪽은 1963년생으로 부산광역시 출신이다. [3] 그리고 가수 이상우의 히트곡 중 하나인 '그녀를 만나는 곳 100미터 전'의 안무를 가르쳐 주었다. [4] 하지만 아이러니 하게도 함께 활동했던 양현석 버닝썬 게이트라는 초대형 사고에 YG엔터테인먼트가 연루되면서 법정 판결과는 별개로 (안 좋은 의미에서) 상당한 파급력이 발생되다 보니 상대적으로 묻힌 셈이 되었다. [5] 훗날 어머니는 새아버지와 결혼하게 된다. 하지만 둘 사이에 아이는 없다고 한다. [6] 무단결석 누적으로 제적이 맞으나, 담임선생님의 도움으로 졸업장은 받았다. TV는 사랑을 싣고에서 나온 장면이다. [7] 80년대 당시 국내에 드물던 독특한 전자음악과 춤을 선보였던 가수로, 양동근 리메이크 골목길의 원곡 가수다. 한참 뒤에 비트볼 레코드에서 앨범을 재발매해 인디 음악 팬들에게 소소한 인기를 끌기도 했다. [8] 80년대 중반 잠시 관심을 끌었던 '골목길'이라는 노래를 발표한 적이 있는 이재민이라는 뮤지션의 프로젝트였다는 정도로만 언급되고 있다. 참고로 '골목길' 발표 당시 백댄서 중에 박철우가 있다. [9] 그로 인해 서태지와 아이들 1집 상에서 그의 비중이 작은 편이다. 합류 시점에 이미 앨범이 완성되가던 상황이었다고. [10] 서태지의 경우 사전심의번호가 1~2집은 서태지란 명의로 되어 있는데 3집~4집은 정현철로 되어 있다. 이주노도 이상우라는 본명으로 사전심의를 받았으며 심의번호가 당시 앨범에 기재되어 있다. 이후 4집에서 서태지가 시대유감 가사심의에 반발하며 가사를 아예 빼버렸고, 이것이 당시 정태춘, 박은옥 부부가 진행하던 사전심의 폐지운동에 불을 붙여서 마침내 1996년 사전심의제도가 폐지되게 된다. [11] 1980년대 이태원 클럽의 유명 DJ로 이수만이 SM기획을 만들면서 가장 먼저 영입했던 두명 중의 하나이다. (나머지 한명은 작곡가 홍종화) 당시 이수만이 한국에서 블랙뮤직, 댄스뮤직을 할 수 있는 사람을 찾아 달라고 부탁하자, 최진열이 이미 클럽무대에서 춤꾼으로 이름을 날리고 있던 이주노와 현진영을 추천했는데, 이주노는 이수만이 마음에 들어하지 않았고, 현진영을 선택했다고 한다. 현진영 1집은 이수만과 홍종화가 음악을 만들고 현진영이 와와 1기 멤버인 강원래, 구준엽과 안무를 짜고, 최진열이 매니지먼트를 하는 형태로 활동했다. 하지만 현진영이 대마초로 잡혀가면서 모든게 무너졌고, 그 얼마뒤에 서태지의 제안을 받게 된 이주노가 최진열에게 도와달라고 하면서 결국 서태지와 아이들의 매니지먼트를 맡게 된다. 서태지와 아이들 1집은 리믹스DJ였던 유대영이 제작하고, 서태지가 음악을 만들고, 양현석&이주노가 의상과 안무를 책임지며, 최진열이 매니지먼트를 담당하는 체계였다. [12] MBC에서 방영한 서태지와 아이들 1집 시절 다큐를 보면 그날 일정이 모두 마무리 되자, 이주노는 자기 승용차를 몰고 혼자서 퇴근하고 (차가 없던) 서태지와 양현석은 매니저가 차로 집으로 데려다 주는 장면이 나오기도 했다. [13] 헤비메탈을 전면에 내세운 3집 발표후에 서태지와 아이들이 모 라디오프로에 출연했을때 이런 일화가 있다. DJ가 양현석과 이주노한테 "헤비메탈 사실 생소하지 않냐? 좋아하나?"는 내용의 질문을 하자 양현석은 평소에 메탈도 즐겨듣는다면서 메탈리카, 메가데스 등등 수많은 밴드와 노래에 관한 자신의 감상평을 신나게 풀어냈다. 옆에서 서태지도 맞장구치고 말이다. 반면에 이주노는 "전 잘 모르고 우리 음반의 그런 요소들을 좋아해요."라고 짦게 이야기하고 끝. 방송 내내 서태지와 양현석만 메탈음악에 관해서 이야기하고, 이주노는 꿔다 논 보릿자루 행 이런 것을 보면 서태지와 양현석은 평소에도 음악에 관한 대화나 사적인 교류도 많이하고 서로 취향도 맞았던 걸로 보인다. [14] 팀 해체 이후 서태지는 양현석과는 개인적인 연락을 유지하고 콘서트에 게스트로 부르기도 했다. 양현석은 서태지가 9집 앨범으로 컴백했을 때 개인적으로 찾아가 시간을 가졌고 서태지 역시 양현석에 대해 친근하게 양군으로 부르며 언급 해주는 등, 과거처럼 붙어다닐 정도의 절친함까진 아니지만 여전히 나름의 친분을 보여준다. 대외적으로는 교류가 많지 않아 보였던 이주노는 결혼식에 서태지를 초대했고, 이주노 부부는 서태지의 집에서 서태지 부부와 식사를 나눴다고 말했다. 주로 가족 이야기를 했다고 한다. [15] 당시 양현석은 김종서(가수)를 포함해서 셋이 만난 상황이었는데 서태지와 김종서가 나누는 대화가 어디 슈퍼에 무슨 야채나 즉석밥이 싸다라는 일상적인 대화였다고. [16] 후술할 사건에서도 양현석이 채무를 다 갚아줬다. 아무리 관계가 소원해지더라도, 설령 양현석이 이미지 세탁을 위해서였다 하더라도 끈끈한 정이 없었다면 절대 나올수 없는 행동이다. [17] 별밤의 전국방송화는 2014년에 완료됐다. [18] 당시에는 밤 10시에 지방에서도 2FM을 릴레이하던 시기였다(2001년 가을 개편 후 사실상 1FM화됐다). 물론 일부 지역에는 지역방송을 하기도 했는데 음악FM 주파수가 지역마다 많아서 다른 지역 주파수로 우회해서 들을 수 있었다. 지방에서 공개방송을 하기도 하였는데, 예를 들면 지금은 KBS 2FM이 나오지 않는 경상북도 안동시 지역을 찾아가 공개방송을 열었을 정도다. FM인기가요는 2001년 KBS 제2라디오로 이전했다가, 폐지되어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19] 연세대 철학과 3학년 때 1990년 KBS 대학가요축제에서 입상한 후 1992년에 데뷔하여 "아라비안 나이트", "마마보이" 등의 실험적인 곡으로 유명했던 가수. 방위병으로 복무한 후 컬트, 뷰투 등의 밴드로 활동하다가 현재는 프로듀서 및 음악감독으로 주로 활동하며 간간히 곡을 발표하는 중이다. 김준선은 2016년 9월 4일 복면가왕에 가을 전어는 며느리를 남기고라는 이름으로 출연해 1라운드 듀엣전에서 뮤지컬곡 대결을 벌였으나, 내가 가만히 있으니까 가마니로 보이니에게 34:65로 밀려 1라운드에서 탈락했다. [20] 배우 김선아와는 동명이인. 원래는 걸그룹으로 데뷔를 하려고 했는데 걸그룹 자체가 엎어지면서 솔로로 데뷔했다. 이 앨범을 끝으로 이주노의 소속사에서도 나갔으며, 가수활동 대신 뮤지컬로 전향하여 활동하고 있다. [21] 이후 부인 박미리와 같이 나온 방송에서 걸그룹을 준비하고 있다며, 연습실에서 여자 연습생 2명이 공개되었으나, 이후 아무소식이 없는거 봐서는 연습생들도 나간거로 보인다. [22] 주로 논버벌 퍼포먼스라 하여 대사없이 동작과 율동만으로 이끌어나가는 뮤지컬을 맡았다. [23] 그 이전에 팝핀 현준, 허니패밀리 출신의 MC주라 등과 Asian이란 프로젝트를 기획했으나, 역시 보기 좋게 말아먹었다. 양현석이 자신의 솔로로 흑역사를 생성했어도(그래도 '악마의 연기'는 서태지 빨로 가요프로 10위권 내에는 들었고. 음반을 22만장 팔아 YG 패밀리의 활동 자금을 마련했다.) YG패밀리라는 거대 프로젝트를 성공시킨 것을 보면 눈물이 앞을 가릴 뿐이다. [24] 과거 ZAM 멤버. [25] 혼전임신 이었고 그해에 출산한것으로 보아 최소 21세 이전부터 교제한것으로 추정 [26] 이로서 태지보이스이 모든 멤버가 연예계 종사자 또는 지망생과 이어졌는데. 양현석은 소속사 가수와 결혼, 이주노는 소속사 연습생과 결혼, 서태지는 두번의 결혼 중 첫번째는 일반인 아내가 연예인이 되었고 두번째 결혼은 연예인이 아내가 되었다. 셋 다 배우자들과의 나이가 크지만 이주노는 엄청 크다. [27] 게다가 아래 항목에 적혀져 있는 성추행 사건 때문에 이젠 장모와의 관계가 좋아질 경우는 제로에 가까워졌다. [28] 장모는 단순히 사위의 나이가 많아서 싫어한다는 게 아니라 사위가 딸이 아니라 자신과의 나이 차이가 더 좁으니 딸의 부부 평화를 위해 일부러 기피 할 가능성을 점차 봐야한다. [29] YG는 국내 3대 연예기획사 중 하나를 운영하는 곳인데다 신인 가수가 나오는 때마다 대박을 내고, 서태지는 컴백만 하면 모든 기획사와 평론가의 주목을 받고 비록 9집의 성과는 예상했던 것에 비해 낮았지만, 성공하면 성공했지 망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다사다난했던 개인사와 이에 대한 대중의 비판을 이겨냈고, 공연 측면에서는 방탄소년단 등 후배들과의 훌륭한 콜라보, 소규모 클럽 공연, 펜타포트 참여 등을 통해 자신의 커리어 하이를 찍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서태지가 컴백할 때 기획사나 평론가들이 그를 주목한다는 건 서태지만큼 파격적인 시도를 하는 뮤지션이 얼마 없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30] 서태지 또한 사적으로도 만남을 자주 가지는 인물로 신해철, 김종서(가수), 양현석을 꼽았다. [31] 실제로 양현석은 힐링캠프에 출연해 자신의 가장 친한 친구로 서태지를 뽑았다. 7집 다큐에서도 한국에서 일본으로 서태지에게 선물로 도착한 택배(추억의 불량식품이 그 내용물) 또한 양현석이 보내준 거라고 한다. [32] 물론 영턱스클럽 등을 히트시켰으니 이주노도 음악적으로 역량이 전무한 사람이라고는 할 수 없다. 다만 하필 서태지와 양현석이 둘 다 한국 음악사에 한 획을 그은 거물들이라(...). [33] 서태지는 방송에서 그 시절은 추억으로 남겨두는 것이 좋은 것 같다고 여러차례 말했으며, 양현석 역시 안 뭉치는 것이 팬들의 좋은 추억을 간직하게 해주는 것이라고 말하며 재결합에 대해 단호히 거절의사를 밝혀왔다. 두 사람은 이주노와 달리 그룹 해체 이후 가수로서, 제작자로서 완벽히 자리를 잡았고 서태지와 아이들의 그늘에서 벗어나 개인으로서도 입지가 매우 탄탄하기 때문에 그룹 시절에 대한 미련이 크게 없는 것이 당연할 일일지도 모른다. [34] 물론 이주노가 원해서 해체한 것도 아니었고, 그리워하는 게 당연할 수 있다. [35] 물론, 최진실이 너무 바쁜 사람이라 시간내기도 어려웠을 것이다. [36] 이 회사는 유튜버 유정호와도 연관이 있는 곳이다. 해당 문서 참조. [37] 결혼 발표 후 가족들을 공개하며 방송에 출연하였으나, 성추행 및 사기 사건 이후로 이마저도 다 끊겼다. [38] 당장에 서태지 본인도 '문화대통령' 수식어를 사용하는 것도 굉장히 조심스러워하고 애초에 서태지 본인이 만든 수식어도 아니다. 더군다나 출연했던 채널의 관련 유튜버가 논란이 되면서 현재는 영상마저 비공개가 된 상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