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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카모토 하야토/선수 경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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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문서
<colbgcolor=#000><colcolor=#fe5a1d> 모기업 관련 정보 모기업 파일:요미우리 신문 로고.svg 요미우리 신문
일본시리즈 우승
★★★★★★★★★★
★★★★★★★★★★
★★
1951 · 1952 · 1953 · 1955 · 1961 · 1963 · 1965 · 1966 · 1967 · 1968 · 1969 · 1970 · 1971 · 1972 · 1973
1981 · 1989 · 1994 · 2000 · 2002 · 2009 · 2012
리그 우승
(47회)
1936 추계 · 1937 춘계 · 1938 추계 · 1939 · 1940 · 1941 · 1942 · 1943 · 1949 · 1951 · 1952 · 1953 · 1955
1956 · 1957 · 1958 · 1959 · 1961 · 1963 · 1965 · 1966 · 1967 · 1968 · 1969 · 1970 · 1971 · 1972 · 1973
1976 · 1977 · 1981 · 1983 · 1987 · 1989 · 1990 · 1994 · 1996 · 2000 · 2002 · 2007 · 2008 · 2009 · 2012
2013 · 2014 · 2019 · 2020
클라이맥스 시리즈 2007 · 2008 · 2009 · 2010 · 2011 · 2012 · 2013 · 2014 · 2015 · 2016 · 2018 · 2019 · 2021 · 2024
시즌별 요약 2011 · 2016 · 2017 · 2018 · 2019 · 2020 · 2021 · 2022 · 2023 · 2024
현역 선수 경력 사카모토 하야토/선수 경력 · 토고 쇼세이/선수 경력 · 마루 요시히로/선수 경력
경기장 1군 도쿄 돔 · 2군 요미우리 자이언츠 구장 · 지방 홈구장 선 마린 스타디움 미야자키 | 과거 고라쿠엔 스타디움
홈 중계 채널 파일:닛폰 테레비 로고.svg 닛폰 테레비
주요 인물 감독 아베 신노스케 · 선수회장 오시로 타쿠미 · 주장 오카모토 카즈마
구단 상세 정보 역사 · 선수단 및 등번호 · 역대 선수 · 응원가 · 과거 응원가 · 유니폼 · 순혈주의 · 여담 · 전통의 일전 · 10.8 결전
도쿄 시리즈 · 2022년 센트럴 리그 3위
틀 문서
코칭스태프 투수 포수 내야수 외야수 육성 선수 역대 감독 영구 결번 역대 1라운드 지명 선수
역대 개막전 선발 투수 | 역대 4번 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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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아마추어 시절2. 프로 입단 후
2.1. 2007 시즌2.2. 2008 시즌2.3. 2009 시즌2.4. 2010 시즌2.5. 2011 시즌2.6. 2012 시즌2.7. 2013 시즌2.8. 2014 시즌2.9. 2015 시즌2.10. 2016 시즌2.11. 2017 시즌2.12. 2018 시즌2.13. 2019 시즌2.14. 2020 시즌2.15. 2021 시즌2.16. 2022 시즌2.17. 2023 시즌2.18. 2024 시즌
3. 연도별 기록

1. 아마추어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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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左. 사카모토 하야토 / 右. 다나카 마사히로

초등학교 때 투수와 유격수를 병행하며 야구를 시작했는데, 이 시기에 다나카 마사히로가 사카모토의 동급생이었다[1]. 같은 팀에서 뛰며 사카모토가 투수, 다나카가 포수로서 배터리를 이루면서 활약하기도 했다. 고교 시절부터 공수 겸비 유격수로 평가받으며 2006년 드래프트에서 요미우리 자이언츠에 1위 지명받으며 입단했다. 원래 요미우리는 1순위로 도노우에 나오미치[2] 등 다른 선수를 점찍었으나, 추첨에서 실패해 사카모토를 뽑게 되었다. 이때 사카모토를 강력하게 추천한 사람이 바로 당시 도호쿠, 홋카이도 지역 스카우터 오오모리 타케시[3].

2. 프로 입단 후

2.1. 2007 시즌

데뷔 초에는 주로 2군에서 플레이하며 기량을 쌓다가 7월에 전격적으로 콜업되었다. 9월 6일 주니치 드래곤즈전에서는 연장전까지 가는 경기에서 대타로 출장, 첫 안타를 결승 타점으로 연결시키며 수훈선수 인터뷰를 하기도 했다.

2.2. 2008 시즌

파일:sakamoto04.png
2008년, 스프링 캠프에서 좋은 평가를 받으며 개막전에서 8번 2루수로 출장, 마쓰이 히데키 이후 처음으로 10대 선수로서 개막전 라인업에 들어가게 되었다.
그런데 사카모토로써는 이 경기가 천운이었던지, 주전 유격수였던 니오카 토모히로가 개막전부터 부상을 당하게 되며 그 다음 경기부터 주전 유격수 자리에 무혈입성하게 되었다. 거기다 니오카가 아나운서 야마모토 모나와 불륜 사건까지 저지르게 되며[4] 사카모토는 시범경기부터 올스타전, 클라이맥스 시리즈, 일본시리즈까지 전 경기에 출장하는 위업을 달성했다. 하지만 팀은 2008년 일본시리즈에서 사이타마 세이부 라이온즈에 3승 4패로 패배. 그러나 이 패배한 7차전에서 홈런을 때리며 10대 선수로는 기요하라 가즈히로 이후 22년만에 홈런을 친 선수로 기록되었다.

2.3. 2009 시즌

2009년, 시즌 초반에 안타를 마구 때려내며 4경기 연속 수훈 선수로 선정되는 등 엄청난 활약을 펼치다가, 7월에 허리 통증을 호소하며 잠시 슬럼프에 빠지게 된다. 하지만 2009시즌 팀의 리그 우승과 7년만의 일본시리즈 우승에 공헌하였고, 센트럴리그 베스트 나인에 선정되었다. 데뷔 첫 끝내기 홈런과 선두타자 홈런을 친 것도 2009시즌.

2.4. 2010 시즌

2010년, 1번 타자로 풀타임 출장하였고, 31홈런이라는 무시무시한 성적을 기록하며 요미우리 자이언츠 유격수 역사상 처음으로 30홈런, 그리고 고교 4년차 이내 타자 중 30홈런을 기록한 8번째 선수가 된다. 후반기에 부진한 것은 아쉬운 대목. 이 성적을 바탕으로 연봉 1억엔을 돌파하게 된다.

2.5. 2011 시즌

2011년, 동일본 대지진의 여파로 도쿄돔에서의 시합이 크게 줄고, 새로이 도입된 통일구의 영향으로 타율, 장타력 모두 10년 시즌에 비해 크게 저하되었고 여기에 그동안 지적된 불안한 수비가 나아지긴 커녕 더 심해져서 이례적으로 선발멤버에서 제외되기도 하였다.

2.6. 2012 시즌

2012년, 11년 시즌의 부진한 모습에서 탈피, 20번의 맹타상 (한시합에서 3안타 이상을 쳤을 때 주는 개인상) 과 리그 최다안타 (173개), 개인 최다도루 (16도루, 도루성공률 .941) 등 자신의 각종 기록들을 갱신하며 소속팀 요미우리 자이언츠의 리그우승, 일본시리즈 우승에 크게 공헌하였다. 시즌 후 2013 WBC 일본 국가대표로 선발되었다. 하지만 13년 시즌에는 다소 부진하였다.

2.7. 2013 시즌

2013년, 타격 성적은 다소 정체되었으나 도리어 리그 굴지의 강타선을 자랑하던 요미우리 타자들이 단체로 부진하면서 팀 내 입지는 더욱 올라갔다(...).

2.8. 2014 시즌

파일:sakamoto05.png
이 해 시즌 통산 100홈런, 1000안타, 100도루를 기록한다.

2.9. 2015 시즌

처음으로 4번에 배치된 것도 2015년.[5] 2015년, 요미우리 자이언츠의 제 19대 주장을 맡는다.

2.10. 2016 시즌

파일:sakamoto06.png
2016년, 리그 최악의 득점력을 자랑하는 수준으로까지 몰락한 타선을 거의 혼자 멱살잡고 하드캐리하는 중이다. 6월 5일 종료시점에서 .347/.429/.637 OPS 1.065, 12홈런 35타점의 빼어난 성적을 자랑하며 센트럴리그 타율 선두를 달리고 있었다. 그러나 6월 히로시마 도요 카프 핵타선이 살아나고 사카모토 본인이 부진에 빠지며 7월 15일 현재 .322/.417/.561의 기록으로 타격 랭킹 4위를 달리고 있다. 최종적으로는 다른 라이벌들의 페이스가 떨어진 사이에 사카모토가 타격 페이스를 끌어올리며 .344/.433/.555 23홈런 75타점 13도루의 성적으로 올 라운드 플레이어의 모습을 보여주었고, WAR 역시 야마다 테츠토를 제치고 센트럴리그 최고로 올라섰고 전체 리그로 따져도 1위에 해당한다.[6] 커리어 첫 수위타자 타이틀을 차지했고, 데뷔 이후 최초로 삼진보다 볼넷을 더 많이 얻어내었다. 유격수로서 기록한 .433의 출루율은 일본프로야구 유격수 역대 최고 기록이고, OPS 역시 30-30을 달성했을 때의 마쓰이 가즈오에 이은 유격수 역대 2위이다. 그리고 토리타니 타카시가 공수에서 완전히 몰락하며 드디어 골든글러브를 차지했다.

2.11. 2017 시즌

2017년, 여전히 토종 선발 원투펀치인 스가노 도모유키 타구치 카즈토, 외국인 에이스 마일스 마이콜라스가 잘 던져도 팀이 승리를 챙기지 못할 정도로 답이 없는 요미우리 타선을 이끌고 있는 중으로 2015년 프리미어 12에서 이나바 아츠노리 코치의 가르침을 받고 타격자세를 바꾼 것이 도움이 된 듯. 7월 9일엔 1500안타를 기록했는데, 만 30세 이전에 1500안타를 기록한 선수는 에노모토 키하치, 장훈을 포함해 사카모토까지 단 5명뿐이다. 사카모토는 그중에서 2번째라 어린 나이에 달성. 해외로 눈을 돌리지않고 앞으로 10시즌동안 지금과 같은 활약을 보인다면 장훈과 이치로를 제외하곤 그 누구도 닿지 못한 3000안타에 접근할 수 있다. 시즌 최종 성적은 .291 .372 .430 15홈런 61타점 14도루. 골든글러브를 2년 연속 수상했지만 베스트나인은 리그 우승팀 히로시마 도요 카프의 주전 유격수이자 최고출루율-도루왕 타이틀을 차지한 타나카 코스케에게 넘겨줬다.

2.12. 2018 시즌

2018년, 주로 1번타자로 출장. 3할 5푼대의 타율, 9할대의 OPS로 여전히 리그 최강의 유격수이며 간만에 등장한 후배 강타자인 오카모토 카즈마와 함께 타선을 이끌었다. 하지만 양다이강, 알렉스 게레로등 타선을 받쳐줘야 할 대형 영입들이 죄다 먹튀화하며 여전히 이 둘만 타격하고 있다.(...) 옆구리 부상으로 도중에 이탈하면서 109경기밖에 출장하지 못한 것은 아쉬운 점이지만 커리어 하이가 되는 타율이자 규정타석을 넘긴 타자 중 2위인 .345의 타율, 출/장 .423/.537 OPS .962 18홈런 67타점으로 베스트나인에 여유롭게 선정되었다. 유격수로서 .340 이상을 두 번 기록하는 것은 NPB 사상 최초이다. 다만 골든글러브는 전경기 풀이닝 출장+수비율이 더 높은 리그 우승팀 주전 유격수 다나카 고스케에게 6표라는 간발의 차로 빼앗겼다.

본인의 활약은 뛰어나지만 본의 아니게 팀 노쇠화의 상징처럼 취급되고 있다. 위에 농담처럼 적어놨지만 주장임에도 불구하고 실제로 1군 주전급 내에서는 아직도 막내취급으로 요미우리 팬들이 팀의 노쇠화를 개탄할 때 "아직도 사카모토가 라인업에서 가장 젊은 선수다.", "사카모토 이후로 주전급이 나오지 않고 있다." 등등으로 이 선수를 기준으로 언급하고 있다. 현재 요미우리의 상태를 보면 지금이야 어떻게든 버티고 있지만 이 선수가 고참이 될 때 즈음이면 진짜 팀이 몰락할 가능성이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위기감이 점점 커지고 있다. 2018년에는 염원의 우타거포 1루수 오카모토 카즈마나 수비 하나만큼은 키쿠치 료스케에 비벼볼 수 있는 2루수 요시카와 나오키가 등장했지만 여전히 내외야 다른 포지션들은 먹튀삘 충만한 대형 영입 + 쵸노, 카메이, 아베 등 프랜차이즈 늙다리과 그들과의 주전 경쟁을 못 이기는 쩌리들feat. 통산 OPS 5할대의 주전 포수 고바야시 세이지로 구성되어 있어 세대교체는 여전히 가능성으로만 남아있다.

그 해 12월 연봉 5억엔에 다년 계약을 맺으며 평생 요미우리 선수로 남을 가능성이 높아졌다. 연봉 5억엔은 유격수로서 야구계 역대 최고 연봉이며 팀내에서도 야수 1위, 전체 2위의 고액 연봉이다. 리그 전체 기준으로는 3위.

2.13. 2019 시즌


2019년에는 FA 영입된 마루 요시히로가 3번을 치며 2번 타순에 고정되어 강한 2번타자 역할을 맡게 되었다.

5월 1일 주니치 드래곤즈전에서 야마이 다이스케로부터 시즌 8호 홈런이자, 새 연호 레이와 1호 홈런을 기록해 사카모토의 홈런 배트와 홈런 볼이 야구 전당박물관에 전시 되었다.

5월 5일엔 시즌 10호 홈런을 쏘아올리며 31경기만에 10홈런을 기록하는 좋은 페이스를 유지하고 있다. 이런 추세라면 개인 커리어하이였던 2010시즌의 31홈런을 넘볼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5월 10일, 개막전부터 34경기 연속 출루로 구단 신기록을 달성했다.[7]

5월 12일, 첫 타석에서 가볍게 안타를 때려내며 센트럴리그의 개막전 이후 36경기 연속 출루 신기록을 갱신했다.

5월 29일, 한신 타이거즈전에서 통산 200호 홈런을 기록하며, 현재 센트럴리그 홈런 1위타자이다.[8] 시즌을 50경기 정도 소화한 시점에서 본인의 뛰어난 활약에도 불구하고 팀 성적은 센트럴리그 3위로 크게 나아지지 못하고 있다. 여러 이유가 있지만 작년엔 오카모토 카즈마와 함께 둘이서만 타격다운 타격을 했다면 이번시즌엔 마루 요시히로 외엔 사카모토를 뒷받침해주는 타자가 없다.(...)

6월 5일, 라쿠텐전에서 시즌 20호 홈런을 쏘아올려 센트럴리그 홈런1위를 기록중이다. 80경기를 소화한 전반기 최종성적은 .303/.383/.566 OPS .949 25홈런 63타점. 6월에 부진하며 성적이 많이 내려갔지만 여전히 중심타자로는 흠잡을 곳 없는 성적이다. 특히 전반기에만 25홈런을 기록하면서 시즌 40홈런 가능성도 적지 않다. 다만 센트럴리그 최고를 자랑하던 수비지표는 DeltaGraphs 기준 -를 찍으며 상당히 내려가있다. 특히 수비범위 지표가 꽤 하락한 상태. 8월 9일, 102경기만에 시즌 30호 홈런을 기록했다. 해당시점의 타격성적은 .311/.391/.569 OPS .960 30홈런 75타점. 그리고 바로 다음 날에 31호 홈런을 쏘아올리며 자신의 커리어하이와 타이를 이뤘다.

결국 2014년 이후 5년만의 전 경기 출장을 하며 .312/.396/.575 OPS .971 40홈런 94타점이라는 어마무시한 기록을 남기고 커리어하이를 찍었다.

하지만 클라이맥스 시리즈에서 정규시즌 40홈런 타자답지 않게 4경기동안 홈런 없이 16타수 4안타 2타점에 그치면서 부진한 성적을 보이더니, 급기야 일본시리즈에선 4경기 13타수에서 단 1안타에 그치면서 준우승의 원흉이 되고 말았다. 물론 요미우리 타선이 전반적으로 일본시리즈에서 부진했지만 그나마 하위타선의 분전으로 나름 자기 앞으로 분위기를 반전시킬 기회가 왔음에도 그걸 모두 말아먹으면서(...) 최악의 시즌 마무리를 하고 말았다. 그나마 4차전에서는 볼넷을 세 타석 연속 얻어내며 분전했으나, 승부처였던 7회말 결정적인 1사 1, 2루 찬스에서는 무력하게 삼구삼진당했고, 9회말 2사에서 앞선 주자가 출루했음에도 불구하고 모리 유이토 상대로 풀카운트 승부 끝에 헛스윙 삼진아웃 당하며 경기의 마지막 타자가 되었다. 이 활약 덕분에 요미우리는 무려 29년만에 일본시리즈 스윕패를 당했다.

그래도 정규시즌의 엄청난 활약을 바탕으로, 11월 26일 2019년 센트럴 리그 MVP를 수상했다. 유효표 299표 중 1위표로 261표를 독점해 2위 야마구치 슌과 압도적인 격차를 벌렸다. # 요미우리 선수로서는 2014년 스가노 도모유키 이후 5년만, 야수로서는 2012년 아베 신노스케 이후 7년만이다.

2.14. 2020 시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양성 판정이 났다. 같은 팀원 중에 감염되었다 회복되었다는 환자가 있다는 것을 볼 때 같은 팀 동료에게 감염되었을 가능성이 높으며, 회복 중에 양성 판정이 났다. 그 다음날에 음성 판정을 받은 뒤, 몇 차례 추가 검사를 통해 최종 음성 판정을 받고 퇴원했다.

2020년엔 7월에 26타석 무안타를 기록하는 등 여름에 크게 부진했으나 8월 12일에는 도쿄 야쿠르트 스왈로스를 상대로 멀티홈런을 기록하는 등 하반기에 그럭저럭 반등하며 타율 0.289, 19홈런 65타점 0.879의 OPS를 기록했다. 9월 9일 나고야 돔에서 진행된 주니치 드래곤스와의 경기에서는 1경기 3홈런을 기록했고. 2020년 11월 8일 도쿄돔에서 진행된 도쿄 야쿠르트 스왈로스와의 경기에서 야쿠르트 선발투수 알버트 수아레즈를 상대로 첫 타석부터 2루타를 쳐내 통산 2000안타의 대기록을 달성하였다. 안타를 친 후 상대팀 선수인 야마다 테츠토에게도 꽃다발을 받았다. '요미우리 간판' 사카모토, 日역대 우타자 최연소 2000안타 달성 또 그 다음 타석에서는 시즌 19호 홈런을 백스크린 홈런으로 쳐내었고 단타도 하나 쳐내며 3루타를 뺀 사이클링 히트도 달성하였다.


그러나 재팬시리즈에서는 14타수 3안타 7삼진으로 크게 부진하며 팀은 2년 연속 스윕패를 당했다.

그 외에, 이 해에 아이돌 하시모토 칸나와 열애설이 터졌다.

2.15. 2021 시즌

2021년 시즌 초반 헤드 퍼스트 슬라이딩 도중 손가락 골절상을 당해 1달 가량을 날렸지만 복귀 이후 역대 65번째로 개인 통산 250홈런을 기록하는 등 준수한 타격을 보였고 2020 도쿄 올림픽 야구 대표팀에 선발되었다. 올림픽에선 도미니카 공화국전 끝내기 안타 포함 준결승전까지 매 경기 타점을 기록해 일본의 금메달에 기여한다.

하지만 정규시즌 종료 후 치러진 클라이맥스 시리즈에서는 부진한 타격을 보였고 팀은 퍼스트 스테이지는 통과했지만 파이널에서 야쿠르트에 막히며 패퇴했다.

2.16. 2022 시즌

2022년도 타격은 작년과 비슷한 페이스를 보이고 있으나 수비에서는 비판을 받고 있는데, 6월 시점에서 벌써 악송구로 6실책으로 수비에서 불안불안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그 외 6월 급작스레 기사가 떴는데, 2018년 캬바쿠라에 가서 술에 취해서 여자를 물어뜯어서(...) 구단 차원에서 합의금 550만엔 가량을 주고 조용히 덮었다는 기사가 뜬금없이 떴다.

하반기에는 또 여성과의 추문이 터졌는데, 섹스파트너 관계로 지내던 여성이 라인 스크린샷을 폭로한 것. 애널섹스를 좋아하며, 노콘을 좋아해서 항상 여성에게 사후피임약을 사먹이는데, 여성이 임신하자 낙태할 것을 종용하는 내용의 메시지가 공개되며 여론의 질타를 맞고 있다. 예전에도 꽃뱀에게 당한 적이 있다, 하시모토 칸나와의 결별 이유도 여자가 관계되어 있다, 국가대표로 대만에 갔을 때도 비슷하게 여자 문제로 골머리를 앓은 적이 있다고 하는 등 여자 문제로 소문이 많던 선수인데 완전히 쐐기를 박았다는 평가.

부상으로 장기간 이탈하기도 했었고 이런 추문이 거듭되니 멘탈도 안정될 리가 없는지 성적은 2할7푼에 5홈런으로 상당히 부진하다. 결국 데뷔 시즌인 2007년 이후 처음으로 규정타석에 도달하지 못하는 것이 확정되었다.

시즌 종료 후 11년만에 마무리캠프에 참여하는 등 본인도 문제를 어느 정도 인식하는 듯하다. 성적 부진과 숱한 논란으로 비판을 받아 주장도 9년만에 내려놓고, 오카모토 카즈마가 새로 주장에 취임했다.

2.17. 2023 시즌

개막부터 최악의 성적을 이어나가고 있다. 주니치와의 개막시리즈에서 10타수 무안타 4삼진으로 침묵한 데 이어서 4월 4일, 요코하마와의 1차전에서도 타선이 폭발하는 동안 혼자서 5타수 무안타로 침묵했다.[9] 나란히 주니치의 마운드에 틀어막힌 루이스 브린슨8번 타순으로 출장하여 5타수 5안타(1홈런) 6타점의 맹공을 퍼부은 탓에 더욱 대비가 된 것은 덤. 결국 하루 결장하며 다시 마음잡고 출장했지만, 4월 6일에도 3타수 무안타로 그치며 18타수 무안타로 기록을 늘렸다.

4월 8일 히로시마 도요 카프전 선발로 출장했지만, 20타수 무안타로 늘리고 송구 실책까지 저질러 대량 실점의 불씨를 만드는 등 역적으로 몰리기 직전이었지만, 23타석 만에 시즌 첫 안타를 홈런으로 장식했고 다음 타석에서도 안타를 기록하며 타율을 1할대(...)로 끌어올렸다.

4월 18일 나가사키 빅 N 스타디움에서 열린 요코하마전에서 대타로 출장하며 55번째로 통산 2,000경기 출장을 달성하였고, 5월 31일 조조 마린 스타디움에서 열린 롯데전에 출장하며 NPB 사상 첫 유격수로 통산 2,000경기 출장을 달성하였다.

6월 16일 라쿠텐전에서는 사카이 토모히토를 상대로 9회말 5:3으로 뒤진 무사 2,3루 상황에서 끝내기 역전 쓰리런 홈런을 때리며 통산 6번째 끝내기 홈런을 기록했다.

그래도 클래스는 어디 안가는지 교류전이 지난 시점에서는 .270/.344/.468에 OPS .813, 60안타 10홈런 25볼넷 41삼진 2도루 28타점 21득점으로 스탯을 끌어올렸다. 하지만, 6월 23일 카프전 1차전 선두타자 내야안타로 출루한 이후, 발이 삐어 통증을 호소하는 바람에 대주자로 교체되었다. 경기 이후, 정밀검사에서 전치 1개월 이상의 근육 파열 판정을 받게 됨으로써 쿄진은 A클래스 생존을 위한 치열한 순위싸움의 경쟁에 빨간 불이 켜지고 말았다.

이후 7월 28일 주니치전에 복귀하여 복귀전부터 3안타를 때리며 통산 181번째 맹타상을 수상, 노무라 카츠야를 제치고 통산 맹타상 단독 4위에 올랐다.

8월 2일 야쿠르트전에서는 타카하시 케이지를 상대로 1회 솔로 홈런, 2회 투런 홈런을 기록하며 연타석 홈런을 기록했다.

9월 1일 요코하마전에서는 아즈마 카츠키로부터 2루타를 치며 통산 441번째 2루타를 기록, 카네모토 토모아키를 제치고 통산 2루타 단독 4위에 올랐다.[10]

9월 7일 도쿄 야쿠르트 스왈로즈전에서는 프로 데뷔 2081경기만에 처음으로 3루수로 선발 출전했다.

9월 24일, 클라이맥스 시리즈 마지막 한 자리(3위)를 두고 싸우고 있는 요코하마 DeNA 베이스타즈와의 경기에서 5회 선제 투런 홈런, 9회 쐐기 쓰리런 홈런을 기록하면서 팀의 승리를 이끌었다.

2.18. 2024 시즌

아베 신노스케 감독이 사카모토를 3루수로 카도와키 마코토를 유격수로 오카모토 카즈마를 1루수로 기용 할 것이라고 말했다.

4월 24일 도쿄돔 주니치 드레곤즈와의 경기에서 3번 3루수로 선발출장하여 6회말 2사 1,2루에서 선발 야나기 유야를 상대로 2구째를 완벽히 걷어올려 시즌 3호 홈런을 쳐냈다. 이후 쿄진의 불펜진이 경기를 완벽히 틀어막으며 이 홈런이 결승타가 되었다. 최종 성적은 3타수 1안타 1홈런 3타점 1득점

하지만, 이후 부진으로 2할 3푼대까지 떨어졌고 이 때문에 6월 25일 경기가 끝나고 2군으로 내려갔다. 프로 선수 경력 처음으로 부진으로 인해 2군으로 내려간 경우로, 본격적으로 주전 자지를 차치한 프로 2년차 이후 17년만이다.

그래도 다시 1군으로 올라오긴 했으나 최종 성적은 109경기 94안타 7홈런 34타점 .238/.286/.327 OPS .613을 기록. 2022년을 뛰어넘는 커리어 로우 시즌을 만들어버렸다.

3. 연도별 기록

파일:NPB 로고.svg 사카모토 하야토의 역대 NPB 기록
<rowcolor=#fe5a1d> 연도 소속 경기 타석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득점 타점 도루 볼넷 삼진 타율 출루율 장타율 OPS WAR
2007


4 3 1 0 0 0 1 2 0 0 0 .333 .333 .333 .667 0.0
2008 144 567 134 24 1 8 59 43 10 28 98 .257 .297 .353 .660 1.3
2009 141 640 178 33 1 18 87 62 5 44 101 .306 .357 .466 .823 6.2
2010 144 676 171 35 4 31 107 85 14 47 83 .281 .332 .504 .836 5.4
2011 144 624 149 27 2 16 69 59 8 37 91 .262 .313 .401 .714 6.6
2012 144 619 173 35 3 14 87 69 16 39 90 .311 .359 .456 .815 9.1
2013 144 620 147 33 1 12 73 54 24 55 87 .265 .334 .394 .728 5.4
2014 144 616 152 29 0 16 82 61 23 55 88 .279 .344 .420 .764 5.7
2015 130 558 129 21 3 12 50 68 10 65 79 .269 .353 .401 .754 7.5
2016 137 576 168 28 3 23 96 75 13 81 67 .344 .433 .555 .988 9.4
2017 142 614 157 30 0 15 82 61 14 68 85 .291 .372 .430 .802 6.4
2018 109 502 152 27 2 18 87 67 9 61 83 .345 .424 .537 .962 6.5
2019 143 639 173 26 0 40 103 94 5 77 123 .312 .396 .575 .971 7.5
2020 115 479 119 28 1 19 64 65 4 62 85 .289 .379 .500 .880 5.3
2021 117 487 115 26 0 19 53 46 2 58 90 .271 .359 .467 .826 4.4
2022 83 352 87 14 0 5 35 33 2 45 65 .286 .378 .382 .760 2.9
2023 116 455 116 29 0 22 46 60 2 45 84 .288 .361 .524 .885 4.4
NPB 통산
(17시즌)
2101 9027 2321 445 22 288 1181 1004 162 867 1399 .291 .361 .460 .821 94.0
파일:NPB 로고.svg 사카모토 하야토의 역대 NPB 포스트시즌 기록
<rowcolor=#fe5a1d> 연도 G PA H 2B 3B HR R RBI SB BB SO AVG OBP SLG OPS 결과
2008


11 38 6 1 0 1 2 3 0 2 5 .171 .237 .286 .523 JS 패배
2009 10 43 8 2 0 0 2 3 0 6 5 .222 .326 .278 .603 JS 우승
2010 4 17 5 0 0 1 1 1 0 2 2 .333 .412 .533 .945 CS2 탈락
2011 3 14 2 1 0 0 0 0 0 1 1 .167 .231 .250 .481 CS1 탈락
2012 12 52 8 4 0 0 6 3 1 3 8 .292 .327 .375 .702 JS 우승
2013 9 38 7 3 0 1 2 2 0 2 13 .200 .234 .371 .615 JS 패배
2014 4 17 2 1 0 1 1 1 0 1 4 .133 .235 .400 .635 CS2 탈락
2015 7 30 6 1 0 1 3 2 0 6 6 .250 .400 .417 .817 CS2 탈락
2016 3 14 6 1 0 2 4 2 0 2 3 .500 .571 1.083 1.655 CS1 탈락
2018 5 21 5 1 0 1 2 1 0 4 8 .294 .429 .529 .958 CS2 탈락
2019 8 34 5 1 0 0 3 2 1 5 7 .172 .294 .207 .501 JS 패배
2020 4 16 3 1 0 0 0 1 0 2 7 .214 .313 .286 .598 JS 패배
2021 5 20 2 0 0 0 2 1 0 1 2 .118 .200 .118 .318 CS2 탈락
NPB 통산
(13시즌)
82 340 69 16 0 8 29 24 2 36 70 .232 .291 .367 .686 JS 2승 4패
5CS2
2CS1



[1] 일본 야구계에서 88년생 스타에는 이외에도 마에다 켄타, 야나기타 유키, 아키야마 쇼고 등이 있다. 이들은 ' 마쓰자카 다이스케 세대'를 잇는 일본야구 사상 최고의 황금세대로 평가받는다.하지만 한때 이들 중 최고 스타였던 사이토 유키는... 당시 대학 타자 중 최대어였던 이시미네 쇼타도... [2] 1971~85년 주니치에서 뛴 투수 도노우에 테라시의 아들. 추첨 끝에 결국 주니치에 지명되어 3년 전 주니치에 먼저 지명된 형 타케히로와 함께 아버지의 팀에서 뛰게 되었다. 하지만 타케히로는 왼손 거포의 포텐을 10년간 터트리지 못한 끝에 2014년 주니치에서 방출되고 2016년 요미우리를 끝으로 선수생활을 마감했고, 나오미치도 고교 시절의 기대를 충족시키지 못해 아라키 마사히로, 이바타 히로카즈, 모리노 마사히코 등 주니치 왕조 시절의 기라성같은 노장들을 밀어내지 못했으며 나중엔 타카하시 슈헤이, 쿄다 요타, 아베 토시키 같은 뒷세대들이 치고 올라오며 결국 내야 유틸리티 요원으로 주로 쓰이고 있다. 도노우에가 내야의 코어로 성장하지 못하며 주니치의 세대교체가 제대로 꼬인 것을 보면, 요미우리의 원래 계획과는 다르게 흘러갔지만 결과적으로 사카모토를 데려간 것이 훨씬 좋은 선택이 된 셈. 그렇다고 딱히 요미우리가 세대교체를 잘 한것도 아니니 사카모토 못 잡았으면... [3] 1988년 드래프트 1위의 거물 대졸 타자 유망주였고 같은 해 은퇴한 프랜차이즈 스타 나카하타 키요시의 등번호를 물려줄 정도의 기대주였으나 2군 본즈 노릇만 하다가 킨테츠로 트레이드된 뒤 은퇴했다. 하필 드래프트 동기들에 노모 히데오, 후루타 아츠야, 마에다 토모노리, 신조 츠요시 등 스타로 성장한 선수들이 많아 더욱 대비되었다. 야구 외에는 AKB48 멤버 오오모리 미유의 아버지로도 잘 알려져있다. [4] 선수의 사생활에 제약을 많이 가하는 편인 요미우리로써는 이런 사건을 저지른 니오카를 그냥 냅둘수 없었고, 시즌이 끝나자 니오카는 닛폰햄 파이터즈로 쫓겨나듯 트레이드되었다.정확히 말하면 요미우리 자이언츠 항목에도 나와있듯이 후배 선수를 괴롭혔단 사실까지 들키면서 문책성으로 트레이드 된것. 굳이 교진이 아니라 어느 구단이라도 쫓겨날만 했다. [5] 4번타자 계보를 신성시하는 요미우리의 특성상 '제 82대 4번 타자'로 기록되었다 [6] 9.5 [7] 이 날, 사카모토는 3안타 4타점이라는 엄청난 빠따를 보여준다(요즘 기세로는 나오면 치는수준) 이 경기에서, 요미우리는 야쿠르트 스왈로즈를 상대로 팀 23안타로 19점을 내는 엄청난 화력쇼를 펼쳤다. [8] 사카모토는 통산 1호 홈런(만루홈런)이 한신전이었으며, 통산 100호 홈런도 한신전, 통산 1500안타도 한신전, 통산 200호 홈런도 한신전에서 .. 모두 한신 상대로 기록중이다. [9] 사실, 마지막 타석에서는 좌측으로 날카로운 타구를 날렸지만, 야속하게도 3루수 미야자키 토시로의 글러브 속으로 들어가버렸다. [10] 이 부문 1위는 주니치의 타츠나미 감독의 487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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