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 전미선수권에 시니어로 처음 출전하여 은메달을 따면서, 일시적으로 세계선수권 출전권을 얻었다. 당시
ISU의 연령 제한 규정에는 허술한 점이 있었기 때문에, 코헨은 주니어 세계선수권에서 메달을 딴다면 시니어 세계선수권에 출전할 수 있었다.[2] 그러나
2000 주니어 세계선수권에서 6위에 그쳤다.
그랑프리 시리즈가 신채점제로 시행된 첫 시즌이였는데,
2003 스케이트 아메리카 우승 당시 기록한 쇼트 66.46점, 프리 130.89점, 총점 197.35점은 신채점제 첫 대회에서의 여자 싱글 최고점인 관계로 모두 세계신기록으로 기록되었다.
2003 스케이트 캐나다에서는 쇼트 프로그램에서 자신의 기록을 경신하며 71.12점을 기록, 여자 싱글 최초로 쇼트 70점을 돌파하였다. 총점은 197.60점을 기록해 역시 자신의 기록을 경신한 세계신기록을 세웠다. 이 대회에서도 우승한 것은 물론
2003 트로피 랄리크에서도 총점 197점대로 우승하였다.
신채점제가 적용되는 첫 올림픽이었지만, 구채점제 시대 선수와 시니어 갓 데뷔한 신인의 메달 경쟁이 이뤄진 대회였다. 메달권에 진입할 수 있는 선수들은 많았으나, 구채점제에서 신채점제로 넘어가는 과도기 시절에 데뷔한 선수들이 각자 저마다의 이유와 역대 최악의 빙질로 제 기량을 보이지 못했다. 해당 시즌에 맞게 겨우 연령을 충족시킨 선수들도 소수 있었지만, 사실상 구채점제 시대 노장 선수들 간의 메달 쟁취전이 이루어졌다. 노장 올림픽이자
2002 솔트레이크시티 동계올림픽에 출전한 선수들끼리 리벤치매치한 셈
대망의 올림픽에서 본인의 명작 중 하나인 다크 아이즈를 클린하며 66.73점으로 쇼트 1위에 올랐다. 쇼트 66.70점으로 2위였던
이리나 슬루츠카야[4]와 금메달 자리를 놓고 경쟁하게 되었는데, 프리 웜업 당시 또 다른 우승 후보였던
아라카와 시즈카의 진로를 대놓고 방해하는 장면이 포착되었다. 이것은 부메랑이 되어 돌아왔다. 프리 경기에서는 처음부터 트리플 러츠에서 넘어지는 실수를 범했다.[5] 그녀가 만약 프리도 클린했다면 당시 프리 프로그램인
로미오와 줄리엣도 명작이 되었을 수도 있었으나. 그러나 프리 프로그램은 실수 때문에 빛을 보지 못했다. 오히려 비점프 요소를 강화하고, 큰 실수 없이 경기를 펼친
아라카와 시즈카에게 밀려 은메달을 획득했다.
2010 밴쿠버 동계올림픽 출전을 기약하며 복귀를 선언했다. 이 시즌에는 유독
김연아를 제외하고 뛰어난 두각을 보이는 선수가 없었다. 대표적으로
아사다 마오는 올림픽 직전까지 부진을 면하지 못했고,
카롤리나 코스트너는 무릎 부상과 컨시 문제로 흔들리고 있었다.
스즈키 아키코와
안도 미키는 각각 회전수와 비점프 요소에서 약점을 가지고 있었다. 위협이 될 만한 선수가 워낙 없다보니, 본인의 기량을 충분히 보여주면 메달 획득도 노려볼만 했을것이다. 본래 코헨은 그랑프리 시리즈에 참가할것이라 밝혔으나 2010 전미선수권에 처음으로 출전해 모습을 보였다. 쇼트 프로그램에서는 트리플 러츠+더블 토룹 컴비네이션 점프가 명백히 투풋 랜딩이었지만 2위를 차지[6]했다. 그러나 프리 스케이팅에서는 공백기가 길었던 탓[7]에 좋지 못한 경기력을 보여주면서 프리에서 4위를 기록했다. 최종 4위로 올림픽 대표에 선발되지 못했으며, 이 대회를 끝으로 진짜 은퇴했다.
기계체조 선수 출신이어서 유연성이 매우 뛰어났다. 시그니쳐 기술로는 현재 사라진 스파이럴 시퀸스 동작이 있으며, 팔과 다리가 길어 단연 돋보였다.[8] 이와 더불어 동시에 뛰어난 스피너로서 유연성을 돋보이는 여러 스핀 기술들을 선보였다. 대표작으로는 말라게냐(2002~04 시즌 쇼트 프로그램),
백조의 호수(2003-04 시즌 프리 프로그램), 다크 아이즈(2005-06 시즌 쇼트 프로그램)가 있다. 특히 말라게냐는 인생작을 넘어 구채점제에서 손꼽히는 명작 중 하나이다. 음악에 딱딱 맞아 떨어지는 안무와 힘찬 스파이럴 시퀸스가 화룡점정을 찍으며 이내 마지막 스핀에서 바로 이어지는 엔딩 포즈와 음악의 싱크로율도 완벽했다.
다만 점프 컨시가 좋지 못했으며 전반적인 점프의 질 역시 좋지 않았다. 러츠의 엣지가 롱엣지였으며 도입 속도와 비거리 역시 좋지 않은 편이었다.[9] 그리고 점프에서 투풋 랜딩을 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긴 공백기 후에 복귀전이였던 2010 전미선수권에서는 사실상 거의 모든 점프가 투풋 랜딩이었다. 뿐만 아니라 예술성 측면에서 높은 평가를 받은 것과 별개로 엣지 컨트롤 능력이 뛰어나지는 못했다. 그녀의 스텝은 빠르고 현란하지만 엣지가 얕아 복잡한 궤적을 그리기 어려웠다. 스파이럴에서도 레벨을 놓치는 경우가 많았는데, 그 이유 중 하나가 엣지 체인지라는 요건을 달성하지 못해서였다.
구채점제 시대에는 흡입력이 대단했던
미셸 콴과
이리나 슬루츠카야에게 밀렸고, 신채점제에도 비점프 요소가 훌륭했던
아라카와 시즈카에게도 종종 밀렸다. 그녀가 스핀이나 스파이럴에는 강한 선수였지만 구채점제에 익숙한 선수들이 그러하듯, 스핀이나 스파이럴에서의 레벨을 얻는 것에 대한 이해도가 부족해 비점프 요소 레벨을 놓치는 일이 빈번했다. 따라서 점프 실수라도 하면 그대로 점수에서 밀릴 수 밖에 없었다. 또한
2002-03 그랑프리 파이널 금메달이 코헨의 유일한 A급 국제대회 금메달이다.
2003년 이전에는 자국 내에서
미셸 콴에게 밀렸고[10], 그나마 그녀가 메달을 얻기 시작한 2002-03 시즌 이후부터는
아라카와 시즈카에게 밀려
콩라인을 탈출하지 못했다. 미여싱답게 컨시가 좋지 못해 허구한 날 밥상을 걷어찼다. 그래도 현재
미국 여자 싱글의 상황을 보면 코헨이 그나마 양반이다.[11]
사샤의 성 ‘코헨’은 흔한 유대계 성씨 중 하나이며, 어머니가
우크라이나
오데사 출신 유대인 이민자이다. 때문에 러시아어에 능통하다. 잠시 사샤의 코치를 맡았던
타티야나 타라소바의 인터뷰에 따르면 자신은 러시아어를, 사샤는 영어를 말하며 서로 대화했지만 의사소통에는 문제가 없었다.
같은 유대계이자 이름도 같은 헐리우드 배우
사샤 바론 코헨이 있으나 둘은 당연히 남남이다.[12] 그러나 본인들도 이 이름에 대한 유머를 잘 인지하는지 사샤 바론 코헨은 자신의
트위터 계정 프로필 사진에 사샤 코헨의 사진을 넣는 장난을 쳤다.
2016년 만 27세의 나이로 안타깝게 사망한 배우
안톤 옐친의 부모님이 사샤의 첫 피겨 스케이팅 코치였다.
[1]
Alexandra를 줄여서 Sasha라고 부른다.
[2]
현재 시니어 나이 규정에 따른다면 일어날 수 없는 일이다. 2022년 현재 규정은 당 해 7월 1일 기준 만 17세가 넘어야 한다. 이 시기 코헨은 만 14세였다.
[3]
이 시즌 파이널 진출자는 상위 두 대회 결과를 반영했다.
[4]
2005 세계선수권에서 적지 않은 나이였음에도 불구하고 트리플 러츠-트리플 룹 콤비네이션 점프를 성공시키며 우승했다.
[5]
이 올림픽은 최악의 빙질로 악명이 높았다. 그녀 뿐만 아니라, 프리 대부분의 선수들이 넘어지는 실수를 했는데, 그녀의 경쟁자였던
이리나 슬루츠카야도 트리플 룹 점프에서 넘어지는 실수를 범했다. 그리고
아라카와 시즈카도 평소 잘 뛰었던 3-3 컴비네이션 점프를 하나도 뛰지 못했고, 트리플 룹을 더블로 처리하기도 했다. 즉, 각 선수들의 컨시나 실력 보다는 경기장의 빙질이 제일 문제였던 것이었다. 룹 점프는 특히 빙질의 영향을 많이 받는 점프이며, 선수들 사이에서 룹 점프 실수가 제법 나온 것과 아이스 댄스 선수들도 상당수 넘어졌다는 점이 증거라 할 수 있다.
[6]
점프는 아무래도 나이가 있다보니 정확하진 않았으나 워낙 스핀과 스파이럴에서 좋은 모습을 보여준 선수이고 무엇보다 빙판 장악력이 엄청나 당시 관중들의 기립박수를 받았다. 무엇보다도 당시 그녀의 나이가 26살로 전성기를 한참 지난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좋은 연기를 보여줬다는데 높은 평가가 있었을 것이다.
[7]
이 부분은 해설진도 중계 중 언급한 내용이다.
[8]
Y 스파이럴 - 펜 스파이럴, 샬롯 스파이럴이 그녀의 트레이드 마크였다.
[9]
구채점제와 신채점제를 불문하고 꽤 많은 선수들이 러츠와 플립 엣지의 구분이 잘 안되었다.
[10]
구채점기에서 코헨은 콴을 이기는 것이 힘들었는데 비슷한 점프 구성을 클린하더라도 스케이팅 스피드, 엣지 컨트롤 능력의 차이로 인해 구성점에서 코헨이 불리했다.
[11]
코헨 이후 올림픽 메달리스트가 전무한데, 그레이시 골드는 고질적인 컨시 문제로 인해 메이져 대회 메달조차도 따지 못했다.
[12]
이쪽은 코헨이 아니라 ‘바론 코헨’이 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