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color=black> 예명 | さだまさし|사다 마사시 |
본명 | 佐田雅志|사다 마사시 |
출신지 | 1952년 4월 10일, 일본 나가사키현 나가사키시 |
직업 | 싱어송라이터 |
활동기간 |
그레이프 시절 1972년~1976년 솔로 데뷔 이후 1976년~현재 |
혼인여부 | 기혼 |
가족 |
아버지 사다 마사토, 어머니 사다 키요코 남동생 사다 시게리[1], 여동생 사다 레이코 아들 사다 타이리쿠, 딸 사다 에무 사위 기타야마 요이치 |
공식 홈페이지 | 공식 홈페이지 |
1. 개요
일본의 가수, 싱어송라이터.2. 생애
1952년 4월 10일 (일본) 출생으로 나가사키현 나가사키시가 고향이다.군인이었다가 목재공을 한 아버지와 아버지 전우의 여동생였던 어머니 사이에서 2남 1녀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남동생은 일본의 전직 축구선수 사다 시게리, 여동생은 가수 사다 레이코(REIKO)이다.
3살때부터 바이올린을 배우기 시작하여, 매번 학생음악콩쿨 서부지구대회에서 입상할 정도의 능숙함을 보였다. 한편, 아버지의 사업이 실패하여, 일가는 호화저택을 잃고 작은 집으로 이사하게 된다.
그레이프 해산 이후 솔로 활동을 하기 시작한다. 精霊流し(쇼로나가시)[3]가 전국적인 히트를 기록, 일약 전국구스타가 되었다. 솔로로 나서고 부터도, 雨やどり(비긋기),関白宣言(관백선언),道化師のソネット(피에로의 소네트),防人の詩(사키모리의 노래),北の国から( 북쪽 고향에서)등을 히트시킨다. 그 사이 야마구치 모모에에게 秋桜(코스모스)라는 노래를 제공해준다. 원래는 시집 못가는 여동생 사다 레이코를 위해서 썼고, 어머니와 딸의 이야기인데, 나중에 야마구치 모모에가 결혼을 하면서 사다 마사시에게 이제 이 노래의 진정한 의미를 깨달았다고 전한다. 타니무라 신지가 제공한 모모에의 또 다른 히트곡 いい日旅立ち과 비교하자면 사실 야마구치 모모에가 가희가 된 시작점이 秋桜고 いい日旅立ち는 그 완성형이라고 부른다. 참고로 이 노래를 만든 사다 마사시의 바램과는 달리 사다 레이코는 2007년까지 독신이었다고 한다(...)
원래 집안 자체가 부자였고, 사다 마사시 또한 특출한 재능을 가졌기에 20대 초중반부터 자신의 섬을 보유했다고 한다. [4] 나가사키에 위치한 우타지마(詩島)라는 섬인데, 이 섬은 아직까지도 자신의 아내와 자기가 관리하고 있다고 한다. 훗날에 사다 마사시 본인이 직접 아사히 TV의 대개조 극적 비포 애프터에 이 섬에 있는 별장의 리폼을 의뢰, 2017년 4월 2일에 방송되었다.
하지만 20대 후반에 중국의 장강에 대해서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 <장강(長江, 1981)>를 직접 제작, 감독하면서 큰 빚을 진다. 그 액수가 무려 29억 엔, 이후 수십년간 불어난 이자를 합쳐 총 35억엔 가량을 상환했다고 한다. 한국 돈으로 대충 300억 원이 넘는다. 그로 인해서 3000회 이상의 공연을 열어 노래를 부르고 또 불러서 30년이 지난 2010년에서야 돈을 갚았다고 한다. 2023년 현재 시점에도 왕성한 활동은 여전해 무려 4500회 이상의 솔로 콘서트를 열었는데 이는 일본 최고 기록이라고. 그래서 많은 히트곡들이 있음에도 일본 연예인 재산 순위에서는 찾아볼 수가 없다. 그 엄청난 빚을 다 갚기는 했지만 그 댓가가 너무커 목을 크게 상했다고 한다. 그로 인해서 전성기의 그 미성이 전혀 나오지가 않는다. 목소리의 깊이가 더 깊어지고 가창력에 변함없는 타니무라 신지와는 전혀 틀렸다. 그래도 이 다큐멘터리를 찍으면서 베이징에서 공연을 가져 2차대전 후 중국에서 처음 콘서트를 연 가수라는 타이틀을 얻었다. 그리고 <장강>도 중국에서 25부작 TV 시리즈로 재편집 되어 <장강을 말하다(话说长江, 1983)>라는 제목으로 방영되면서 큰 인기를 끌었다. 시간이 지나 잊혀진 일본에 비해 중국에서는 아직도 고전 다큐멘터리로 기억하는 사람들이 많다. 헛되이 돈만 날린 것은 아닌 셈.
작사 실력도 탁월해 작사상도 받았으며 개인 소설까지도 있으며, 그의 소설이 영화화되기도 했다. 그 대표적인 소설이 고독사로 이건 자신이 간염에 걸렸때 그런 걱정을 많이 했었고, 주변이웃 중에서 그걸 겪어서 이러한 소설을 적기도 했다. 영화감독으로 활동하긴 했지만 위에 말한거처럼 감독 시절은 저러한 엄청난 흑역사가 있어서 감독을 하지 않는다고 한다.
말솜씨가 너무 좋아서 라디오 DJ로도 활동하며 나레이션으로 활동이며,
작곡 실력도 쇼프로그램에서 뽐냈는데, 불과 15분만에 노래를 만들어낼 만큼의 엄청난 재능을 뽑내고 있다. 秋桜(코스모스)라는 곡이 99년 세기의 노래에서 9위로 랭크되며 PTA 선정에서도 왜 꼽히는지 보여주는 대표 예다.
자신의 딸과 아이들도 탁월한 실력을 보이고 있는데, 아들 사다 타이리쿠는 아버지의 바이올린 실력을 이어받아 바이올리스트로 활동하고 있다.
딸인 사다 에무는 피아니스트로 활동하며 이따금 음악방송의 패널로서 활동하기도 한다.
현재는 NHK의 심야 토크콘서트 프로그램인 <오늘밤도 생방송으로 사다 마사시(今夜も生でさだまさし)>의 주요 진행자로서 전국을 돌아다니는 중이다. 쇼후쿠테 츠루베와 함께 츠루베의 가족에게 건배[5]의 전신인 '놀라운 일본 사다,츠루베의 부딪히는 실전 2인 여행'에 출연하기도 했다.[6]
슈퍼 마리오 월드의 보스성 스테이지의 음악이 사다 마사시로 들린다며 니코동에 보스성이 나오면 사-다-마-사-시-탄막이 깔린다.
한국과의 인연으론 가수 양희은과의 협업이 알려져 있다. 1952년생 동갑내기이자 비슷한 시기 포크 뮤지션으로 활동한 이력이 있는 묘한 공통점을 가진 이들이나 특별히 관계는 없다가 2003년 함께 人生の贈り物~他に望むものはない~(한국명 인생의 선물)이란 곡을 작업하게 되는데 작사는 양희은이, 작곡은 사다 마사시가 맡는 식으로 만들어져 지금도 사다 마사시의 대표곡 중 하나로 꼽힌다.
3. 디스코그래피
공연 횟수 만큼이나 수 많은 작품을 남겼다. 특히 매년 1장의 앨범을 내는 수준의 다작을 했다.3.1. 정규 앨범
사다 마사시 단독 명의
[1]
※ 무려 일본 축구 해외파 1호다.
[2]
법학부에 입학하긴 했어도, 거의 대학에 가지않았다고 한다
[3]
수난사고로 사망한 사촌형을 기리는 노래로 1974년도 일본 레코드 대상 작사상을 수상함.
[4]
어릴 때부터 로빈슨 크루소를 좋아해서 섬에 관심있어 하던 때 지인이 섬이 매물로 나왔는데 구입할 생각이 없냐고 물었고 고민 없이 구입했다고 한다. 다만 구입대금은 노래가 잘 팔려서 인세로 구입했다고 티비 프로에서 밝혔다.
[5]
오프닝 및 엔딩이 사다마사시의 'birthday'라는 곡이다.
[6]
애초에 사다마사시가 호스트였고 츠루베는 파트너로 출연했지만, 사다마사시의 바쁜 스케줄로 인해 츠루베에게 속편을 맡기고 하차하였다. 또한 츠루베와의 친분관계도 두터운 편이기도 하다.
[7]
앤솔로지(アンソロジィ)로 읽는다.
[8]
가득한 행복(たくさんのしあわせ)으로 읽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