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ir.pe (일반/어두운 화면)
최근 수정 시각 : 2024-12-17 21:20:59

리처드 도킨스/비판 및 논란

1. 개요2. 무신론 주장과 그에 대한 비판
2.1. 주장2.2. 비판
2.2.1. 종교계에서의 비판2.2.2. 과학계에서의 비판2.2.3. 종교의 유해성에 대한 비판2.2.4. 도킨스의 무신론에 대하여2.2.5. 도킨스의 주장은 유익한가?2.2.6. 주장의 극단성 및 종교인들에 대한 광역 디스 문제
2.3. 굴드와의 논쟁2.4. 윌리엄 레인 크레이그와의 논쟁 회피
3. 논란
3.1. 트위터 관련 논란
3.1.1. 무슬림 노벨상 수상 횟수 논란3.1.2. 다운증후군 태아 낙태 논란3.1.3. 잘못된 예시들3.1.4. 에로틱 비디오3.1.5. 무슬림 학생 체포 논란3.1.6. 이슬람 혐오 발언 찬동3.1.7. 아프리카 학생 비판3.1.8. 페미니즘 비판과 뇌졸중3.1.9. 우생학 논란3.1.10. 트랜스젠더 비하 논란3.1.11. 알제리•대만 여성 국가대표 선수에 대한 남성몰이

[clearfix]

1. 개요

리처드 도킨스에 대한 비판 및 논란 문서.

2. 무신론 주장과 그에 대한 비판

본업은 생물학자이지만 도킨스는 무신론자로 훨씬 더 유명하다. 이전까지는 과학관련 교양서적에서 무신론을 틈틈이 언급을 하는 수준이었지만, 특정시점부터 '만들어진 신' 같은 무신론 관련 책까지 내가면서 무신론 운동의 선봉장을 자처하고 있다.

대체로 무신론자들은 종교에 대해 시니컬한 반응을 보일 뿐, 직접 종교에 관한 논쟁에 나서서 적극적으로 무신론을 설파하는 경우는 흔치 않다. 그러나 리처드 도킨스는 TED talk에서 "전투적 무신론"을 주창하면서 무신론을 적극적으로 선포할 것을 주장하였으며, 다들 알다시피 이를 직접 실천하였다.[1]

2.1. 주장

무신론, 그것도 전투적 무신론의 대표주자로 알려진 도킨스이지만, 무신론에 지극히 가까운 불가지론자라고도 하지만[2] 엄밀하게 따지면 도킨스는 무신론자가 맞다. 도킨스의 여러 저작에 나타난 무신론 및 종교 비판의 내용은 다음의 4가지 요점으로 정리할 수 있다.

첫째, 전통적인 유신론은 신비롭고 정교한 생명 현상을 보면서 설계자인 신을 유추하게 하였지만, 다윈주의가 제공하는 설명은 그러한 설계자가 불필요하거나 불가능하게 만든다. 우주는 '신'이라는 가설 없이도 과학에 의해 충분히 설명될 수 있으며, 만약에 과학으로 설명할 수 없는 현상이 있더라도 이를 설명하기 위해 '신'이라는 더 복잡한 개념을 꺼내드는 것은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한다. 시계를 설명하기 위해 시계공을 만들어낸다면, 시계공은 시계보다 더 복잡하고, 설명하기 어려울 수밖에 없다.[3]

둘째, 종교는 증거가 아닌 신념에 근거하여 존속하는데, 이는 엄격한 증거에 토대를 둔 과학 정신과 상반된다. 진리는 신념에 의해서가 아니라 증거에 의해서 입증되어야 하며, 과학이 옳다면 종교는 폐기되어야 마땅하다.

셋째, 종교는 시대적, 문화적 편견에 사로잡혀 세계에 대해 빈약하고 제한적인 모습 밖에 설명하지 못하는 반면, 과학이 설명하는 세계는 보편적이며 장엄하며 제한이 없다.

넷째, 종교는 결국 악에 이른다. 그것은 마치 악성 바이러스와 같이 인간의 마음을 전염시켜서 서로 미워하게 하고 전쟁을 일으켜 인류를 살상에 이르게 한다. 종교에 의해서 많은 전쟁이 일어났고, 지금도 ISIS와 같은 이슬람 근본주의자들은 많은 인명을 희생시키고 있다. 그리고 모든 종교가 현대의 도덕 윤리에 부합하는 것은 아니라서, 이슬람 같은 종교가 득세한 곳에서는 다른 나라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인권 유린 사태가 많이 벌어진다. 만약에 종교가 도덕적인 가치를 내세운다 할지라도, 천국에 가기 위해 선한 일을 하는 종교인들보다는 그것이 선하기 때문에 선한 일을 하는 무신론자들이 더 도덕적이다.

2.2. 비판

2.2.1. 종교계에서의 비판

가장 큰 문제는 도킨스는 진화생물학자이며 신학, 종교학에서는 문외한이라는 점이다. 스스로도 창조설을 비판하므로 창조설 지지자들과와의 논쟁이 가장 격렬하다. 무신론vs 유신론도 절대 마르지 않는 논쟁거리 중 하나. 이런 논쟁에 있어서는 도킨스의 주장이 다른 무신론자나 불가지론자들과 크게 다를 것이 없고, 양쪽에서 나올 논지는 대충 다 나온 상황이기에, 이런 논쟁에 관심이 있다면 각 항목을 참조하자.

당연히 종교계에서는 도킨스에 관한 많은 비판이 쏟아진다. 기본적으로 종교학과 신학에 바탕을 둔 학자들에게 비판받는다. 과학의 영역이 아닌 곳에서 머무는 종교인들에게 과학으로 싸움을 거는 건 창조 과학이 과학에 하는 짓과 다를 게 무엇이며, 종교나 다름없는 과학적 '확신'을 가지고 공격하고 부정하려는 모습은 자신이 그토록 비판하는 근본주의 기독교에서 하는 짓이랑 다름없는 게 아니냐며 우려하는 석학들이 있다.

도킨스의 신학 지식의 빈약함에 대해, 무언가 엄청나게 심오한 철학 탐구서를 쓰려고 한 게 아니라 매우 흔히 그리고 널리 쓰이는 신을 지지하는 주장들을 논파하고, 스스로의 신앙에 대해 갈등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어필하고자 하는 게 목표였다고 옹호하는 의견도 있다.

과학자이자 신학자인 알리스터 맥그래스[4] 도킨스의 망상: 만들어진 신이 외면한 진리, 도킨스의 신 등 여러 책을 펴내며 도킨스의 여러 허점들을 공격한바 있다. 여기서 한 가지 재미있는 사실은, 알리스터 맥그래스 본인은 젊은 시절에는 무신론자였으나 기독교인이 된 ' 진화론을 수용한 창조론 지지자 '라는 사실이다. 도킨스와는 정반대의 길을 걸어온 셈이다. 알리스터 맥그래스가 그간 써 온 과학vs종교 관련 책들이 이러한 이유로 국내 기독교 출판계에서 번역을 꺼렸는데, 만들어진 신, 이기적 유전자 출판이후 도킨스의 망상, 도킨스의 신을 번역하기 시작했다는 점은 좀 재미있는 부분.

2.2.2. 과학계에서의 비판

도킨스는 지나치게 근본주의에만 집착한다. 하지만 근본주의자가 아닌 종교인도 다수 존재한다. 근본주의는 다른 문제이다.

도킨스는 거의 또 다른 종류의 근본주의자가 되어있다. 과학적 이해의 발전이 일부 종교적 동기를 저하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이 종교와 과학의 양립이 불가능함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수천 년 전부터 통용되었던 종교적 동기가 약화되었을 따름이다. 이것이 종교와 관련된 문제를 종결짓는 것은 아니며 확신을 가진 사람은 근본주의만 버린다면 신자로 남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제 과학과 종교의 관계를 다루는 과거의 토론에서 보인 모습을 버리고 더욱 신중해져야 한다.
피터 힉스[5] 힉스의 리처드 도킨스 비판

도킨스는 과학을 무기로 삼고 모든 과학이론이 자신을 지지하며 과학자들 또한 자신과 같은 관점을 가지는 게 당연하다는 식으로 말하지만, 과학과 종교의 관계 항목을 참고해도 알 수 있듯이 과학자들이라고 해서 무신론자들만 있는 건 당연히 아니다. 종교가 과학과 무관하다고 보거나 별 관심없는 경우도 있고, 호의적인 경우도 얼마든지 찾아볼 수 있으며 유신론자[6]도 많다. 무신론자라고 해도 그냥 본인이 안 믿을 뿐이지 도킨스처럼 종교를 못 잡아먹어서 안달인 과학자는 오히려 소수이다.

이론물리학자 피터 힉스는 El Mundo지와의 인터뷰에서 도킨스의 타협 없고 부정적인 종교관을 거론하며, 도킨스가 또 다른 종류의 근본주의자이고 종교인을 대하는 그의 방식이 창피하다는 의견을 피력했다.

또한, 그는 동료 과학자 중 종교인도 많다면서 "나는 종교인이 아니지만, 이는 성장배경에서 비롯된 부분이 크고, 과학과 종교를 조화시키는 것에 어려움을 느낀 탓은 아니다"고 말했다.

도킨스의 고향인 영국 과학계도 도킨스에게 비판적인 것으로 드러났다.

영국에서 무작위 표본으로 채택된 1,581명의 과학자 중 137명에게 심층면접도 실시했는데 면접을 진행하던 실험자가 도킨스에 대한 언급을 전혀 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137명 중 48명이 자발적으로 도킨스에 대한 의견을 밝혔다고 한다.

이 48명 중 무려 80%가 도킨스가 과학과 과학자들의 입장을 왜곡하고 있다는 비판적인 의견을 밝혔다. 도킨스에 대한 비판적인 의견을 밝힌 이들의 주된 의견은 종교에 대한 도킨스의 태도가 과도하게 비판적이라는 것이었는데 자신이 무종교인임을 밝힌 한 과학자는 도킨스를 두고 "근본주의 무신론자"라며 "그는 과학의 범위를 훨씬 넘어서는 것을 증거로 활용하기도 한다. ...나는 학생들이 학교에서 배운 과학을 자신의 삶에서 응용하기를 바라며 그러기 위해서는 과학의 한계에 대해서 명확히 알아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면접에 참여한 다른 이는 그의 업적을 두고 "사실상 성전"이라며 "종교인을 고립시키기 위한 의도를 가지고 고안된 것처럼 보인다"는 의견을 밝히기도 했다. 자신이 무종교인이라고 밝힌 다른 물리학자는 도킨스의 방식은 지나치게 강하다며 "과학자로서의 바람직한 태도는 개방적인 자세이며 나는 다른 이들의 종교적인 신념에 열려있다. ...우리는 과학의 범위를 벗어난 대상을 거부할 위치에 있지 않다. ...과학자로서 열려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과학과 종교 중 어느 한쪽이 다른 쪽을 정복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둘 사이의 거리는 꽤나 머니까."라고 말했다.

철학자 마이클 루스는 "내가 도킨스와 같은 무신론자라는 게 부끄러울 지경"이라며 신랄하게 깠다.

2.2.3. 종교의 유해성에 대한 비판

상술했듯이 도킨스가 다른 온건한 무신론자나 불가지론자들과 다른 점은 종교가 유해하다는 주장이다. 보통 무신론자들은 신의 존재성을 의심하고 종교 그 자체에 대해서는 별 다른 말이 없는 게 일반적인데 도킨스는 아예 종교 그 자체를 비판 내지는 극심한 비난을 한다. 도킨스가 종교의 이름으로 일어난 전쟁이나 테러 등을 근거로 든다면 반대의 주장을 하는 사람들은 당연히 종교의 순기능을 논증한다. 현재에도 도킨스가 그토록 비판하는 천주교, 개신교, 불교 등 다양한 종교계로 인해 상당한 수의 복지가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 사실이고, 우리나라만 하더라도 연세대학교 등을 포함해 선교사들이 세운 학교나 병원이 수도 없이 많다. 물론 전도를 하겠다는 의도가 끼어 있다곤 해도, 그래도 이들의 헌신적인 행위 자체는 평가절하될 수 없다. 도킨스는 그런 종교인들은 종교가 없었더라도 선한 삶을 살았을 것이라고 하지만, 종교가 선행의 유일한 동기는 아니나 하나의 동기가 될 수 있음은 틀림이 없다. 물론 종교가 사람에게 위안과 안정감을 준다는 순기능은 도킨스도 인정하였다. '꼭 그런 걸로 위안을 얻어야 합니까?'라고 딴지를 걸지만.

이 부분에 대해 도킨스뿐만 아니라 다른 반종교주의자들의 주장은 쉽게 말해 종교가 없었으면 근본주의, 극단주의 과격파 종교인들도 없지 않았겠느냐라는 것이다. 물론, 일부 근본주의자들의 횡포가 종교적 동기에 의한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러나 '개인의 자유가 존중되는 현대 사회에서 남의 자유를 침해하지 않는 이상, 단순히 극단적인 부류가 존재한다고 해서 신앙활동 자체를 비난하는 것은 또다른 극단주의일 수 있다. 또한 종교가 아니더라 해도, 결국 사람이 이념이란 것을 가지고 모이는 이상 종교성과는 무관하게 어떤 영역에서든 극단적인 분파는 발생한다는 것을 생각면, 종교란 것이 없어진다고 극단주의가 세상에서 줄어들 것이라 기대하는 건 상당히 비현실적인 주장일 수 밖에 없다.

가령 도킨스는 탈레반이 종교적 명분으로 바미얀 석불을 파괴했을 때 무신론자라면 허황된 신앙을 위해 저런 반달리즘을 저지르지 않는다고 주장했지만, 조선시대에 인격신과 내세 등의 관념을 단순히 안믿는 정도가 아니라 혹세무민하는 미신으로 보았던 과격파 유생들은 오히려 그런 신념에 의거해 허황된 신앙을 배척한다는 명분으로 석불들을 부수고 다녔다.[7] 심지어 인류역사상 최대의 반달리즘으로 꼽히는 문화대혁명은 철저한 무신론 내지는 반신론에 기반했다. 홍위병들은 무신론을 내세우며 교회, 절, 사당 등 수많은 종교적 문화유산들을 신나게 박살내고 다녔다. 소련을 비롯한 공산주의 국가들에서 종교계를 대하는 태도는 이슬람권에서 딤미들을 대하는 태도와 크게 다르지 않아서 정부의 변덕에 따라 종교시설을 폐쇄하고 성직자들을 굴라그와 정신병원 등에 가두기 일쑤였으며, 한국전쟁기 인민군은 후퇴시에 성직자들을 반드시 학살대상에 포함했는데, 이 또한 종교는 악이라는 반종교주의적 도그마도 맹목적인 폭력의 동기가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사람이 신 없이도 정의 그 자체의 이름만으로 자신을 희생할 수 있는만큼, 정의 그 자체의 이름만으로 타인 또한 희생시킬 수 있음은 근현대사의 많은 참사들을 통해서 확인할 수 있다.

한편 도킨스는 자신이 예시로 든 "종교분쟁" 중 많은 수가 종교의 교리적 측면보다는 서로 다른 정체성 자체에서 비롯됨을 기꺼이 인정하는 동시에, 종교가 없었으면 그런 정체성의 차이 자체도 없었을 것이라고 주장하지만, 막상 그 분쟁들의 배경을 따져보면 그조차도 성립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그가 자주 예시로 드는 팔레스타인, 북아일랜드, 스리랑카 등의 경우, 원래 단일했던 집단이 종교 때문에 갈라선 것이 아니라 애초에 다른 지역에 살던 이질적인 집단의 유입으로 한 공간을 두 정체성 집단이 공유하는 상황이 되었다가, 이후 해당지역의 향방을 두고 상이한 지향점을 가진 두 집단 간 분쟁으로 확산된 경우에 가깝다.[8]

애초에 다른 경로로 형성된 집단들이 다른 정체성과 다른 신앙을 가지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인데 이런 다른 정체성 때문에 하나로 통합이 안되어 싸운다며 문제의 원흉으로 지목하는 것은 지극히 편의주의적인 발상이고 시간을 거스른 책임전가이다. 또한 단일한 집단의 분열을 막기 위한 노력은 당연히 필요하지만, 원래부터 이질적이었던 집단이 정체성을 유지하려 통합에 저항하는 것을 그와 같은 선상에서 볼 수도 없는 노릇이다.

그리고 종교적인 보답(윤회나 천국 등)을 위해 선행을 하는 것이 그냥 선행을 하는 것보다 못한 것이냐에 대해서도 도덕적 논쟁이 불거진다.[9] 결과론적 윤리를 주장하는 사람이라면 두 행위가 아무런 차이가 없다고 주장할 것이고, 의무론적 윤리를 주장하는 사람이라면 도킨스의 주장에 동의하게 될 것이다. 사실 애초에 그리스도교는 깊게 파고 들어가면 딱히 선행을 강조하는 종교가 아니기도 하고[10], 불교도 대중적인 의미의 선행을 추구하는 종교가 아니다.

2.2.4. 도킨스의 무신론에 대하여

우리가 흔히 유신론vs 무신론이라 부르는 논쟁은 사실 유신론에 가까운 불가지론vs 무신론에 가까운 불가지론에 가깝다. 과거에는 과학이나 철학, 아니면 수학(!) 같은 분야에서 신의 존재를 증명 혹은 반증하려는 시도가 있었지만 당연히 모두 좌절되었고, 지금 같은 시대에 공개 토론에서 그런 주장을 펼쳤다가는 뼈도 못 추린다.

항목에서 볼 수 있듯이, 불가지론은 대상이 '완벽하게 증명되거나 반증될 수 없다' 라는 사실만 인정하면, 아주 넓은 스펙트럼의 주장을 포괄한다. 그 한쪽 극단에는 판구조론, 진화론, 빅뱅 이론같은, 원론적으로 100% 완벽하게 증명될 수는 없으나 증거가 충분히 확보되어 사실상 확정적으로 받아들여지는 가설들이 있고, 그 반대쪽 극단에는 러셀의 찻주전자, 날아다니는 스파게티 괴물 같은 반증'만' 불가능한 가설들이 있다. 도킨스의 주장은 '신'이라는 가설이 후자의 가설들과 동급이라는 것이며, 반대쪽에 선 사람들은 이 가설이 수많은 사람들의 경험과 여러 과학적 근거들로 지지될 수 있는, 판구조론 같은 '그럴 듯한' 가설이라고 주장한다.

예를 들어 도킨스는 만들어진 신 등의 저작에서 그렇게 복잡해보이는 것들이 자연선택으로 인해 만들어질 수 있다는 점을 든다. 진화론은 구태여 신과 같은 존재가 없어도 복잡한 세상이 생겨날 수 있다는 증거며 설계자가 반드시 있다는 것을 반박한다는 것이다. 확률적으로 약화되고 있다고 말했지만 동시에 신이 없다고 단정하는 것은 증명할 수 없고 믿음에 가깝다고, 본인은 무신론에 가까운 불가지론자라고 말한 적이 있다.

따라서 도킨스가 불가지론의 탈을 쓴 무신론자라거나, 신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과학적으로 증명하려 한다거나, 하는 비판은 엄밀히 말하자면 잘못된 것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아주 무의미한 것은 아닌데, 단순히 신을 믿어서는 안 된다. 라는 당위적 주장과 극단화된 가치판단, 즉 정신머리가 똑바로 박힌 사람이라면 신을 믿지 않는 것이 합리적이다. 라는 주장이 도킨스의 실제 화법에서는 큰 차이가 나지 않기 때문이다.[11] 도킨스의 '무신론에 가까운 불가지론자' 발언은 어디까지나 신이 없다는 게 과학적으로 확실히 밝혀진 적이 없으니 그 점을 견지하기 위한 것일 뿐,[12] 그는 진화론을 분명히 무신론의 근거로 삼으면서 이성적-과학적인 사람이라면 당연히 무신론을 견지해야 한다는 주장을 펴고 있다. 스티븐 제이 굴드나 데이비드 슬롯 윌슨 같은 과학자들이 진화론이 대체 무신론과 뭔 상관인데? 되물으며 도킨스와 논쟁을 벌인 것이 그 이유다.

2.2.5. 도킨스의 주장은 유익한가?

히친스와 해리스 같은 세속주의자들은 종교적인 광신자들과 다를 게 없으며 심지어 다른 종교보다도 훨씬 위험하다.
놈 촘스키
과학의 메타포는 발견을 위한 여정이지 전쟁이 아니다. 그런데 신무신론자들의 책을 읽어보면 굉장히 적은 발견과 허수아비를 쌓아놓은 전쟁터를 보게된다.
조너선 하이트
도킨스는 기독교가 과학과 대립되는 우주관을 제시한다고 잘못 생각한다. 철학자 대니얼 데닛이 저서 「주문을 깨다」에서 그랬듯이 도킨스도 기독교 신앙이 세상을 그럴듯하게 설명하는 야바위 이론이라고 여긴다. 이런 점에서 도킨스는, 소설을 서툴게 짜깁기한 사회학이라고 생각하는 탓에 소설이라는 형식의 취지를 이해 못하는 사람과 비슷하다. 막스 베버의 사회학 책을 읽으면 그만인데 로베르트 무질의 소설과 힘들게 씨름할 이유가 뭐냐는 식이다.
테리 이글턴 [13]

그의 주장이 사실인지 거짓인지의 여부를 떠나서, 공리주의에 입각하여 종교인들을 광역 디스하고 무신론을 전파하는 그의 행보가 과연 유익한가에 대한 비판이 있다. 여기서 핵심이 되는 것은 종교가 그의 주장대로 우리 사회에 유해한지, 혹은 그의 주장과 달리 유익한 점이 더 많은지 여부이다. 만약에 종교가 우리에게 실보다 득이 되는 점이 많다면, 그의 언행은 쉽사리 정당화될 수 없다. 물론 종교가 실제로 유해하다고 해도 그의 언행에 즉각적으로 정당성이 부여되는 것은 아니다.

리처드 도킨스가 만들어진 신을 출판했다고 해서 그것으로 사회를 좀 더 자신이 원하는 대로 바꾸진 못한 게 아니냐는 지적이 있다. 종교인들의 감정을 건드려서 자기 이미지는 나빠졌지만 그의 논리에 논파되어 마음을 바꾸는 경우는 많지 않았다는 것이다. 다만 들리는 말에 의하면 사상을 명백히 밝히지 못했던 무신론자들로부터의 호응이 강했으며, 무신론과 유신론의 중간지대에 위치한 사람들이 무신론으로 돌아서도록 하는데에는 영향력이 있었다고 한다. 본인도 만들어진 신에서 애초 목적이 그것이었다고 밝혔다.

리처드 도킨스의 문제는 도킨스 개인뿐만이 아니라 그 추종자 또는 영향을 받은 사람들이 불러일으키는 문제까지 확장된다. 유신론-종교가 논란의 영역이고, 문제를 일으킨다면, 반대로 무신론-추종자들 또한 문제를 일으키기 쉽다. 논리적인 근거 없이 일방적으로 기독교 및 종교 일반을 비하하고 무시하는 태도가 이에 해당한다.

이 때문에 종교와 관련이 없는 사람, 심지어 무신론자마저 도킨스의 무신론을 비판하기도 한다. 위에 인용한 사람은 모두 무신론자이거나 종교와 직접 관련되지 않았다. 무신론자가 무신론자를 그의 무신론 때문에 격하게 비난하는 상황에서 도킨스의 무신론이 그가 비난하는 종교와 같은 해악을 끼치는 것은 아닌지에 대해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2.2.6. 주장의 극단성 및 종교인들에 대한 광역 디스 문제

도킨스는 무신론자들은 대체로 합리적이고 이성적이며, 종교인들은 그렇지 않다는 뉘앙스의 주장을 굉장히 자주 한다. 당연히 직접적으로 이런 말을 하지는 않지만, 그의 의도가 여기에 있다는 것은 그의 말마따나 정신머리가 똑바로 박혀있다면(…) 누구나 눈치챌 수 있다. 일단 만들어진 신의 첫머리부터 '소수가 미치면 정신병자이지만, 다수가 미치면 종교가 된다는 발언을 인용하고 있다. 그리고 지능지수가 높을수록, 그리고 교육 수준이 높을수록, 간단히 말해서 선진국일수록 종교를 믿는 비율은 극적으로 낮아진다는 통계가 있긴 하지만 상관관계와 인과관계를 혼동하면 안된다!'이 통계는 어디까지나 상관관계만을 보여줄 뿐 그걸 잘못 해석해서는 안 된다. 이 경우 지능지수가 낮고 교육수준이 낮아서, 도킨스가 생각하는 것처럼 '멍청해서' 종교를 믿게 되는 건지, 아니면 그런 처지에 있는 사람들이 '힘들고 지쳐서 삶의 버팀목으로 종교를 찾게 되는 건지'는 자세히 따져봐야 하는 문제인 것이다.

도킨스는 그의 저작 곳곳에서 '신앙은 망상이며 그것도 유해한 망상이다.' 식의 발언을 하거나 선한 종교인도 테러리즘을 야기한다고 하는 등 종교 자체를 공격하는 노선을 보이고 있다. 종교에 대해서 집단적인 망상이라고 주장하기 시작한 것은 도킨스가 아니며 단지 테러리즘을 지지하게 만들 '가능성'이 있다고 까는 거라는 옹호도 있지만, 시작 발언을 한 사람만 비판받아야 할 이유는 없으며 테러리즘과 별 연관없이 멀쩡히 신앙생활을 하는 종교인들이 이런 부당한 모욕을 들어야 할 이유는 없다. 특정국가 국민이면 누구나 범죄를 저지를 가능성이 있으니 범죄 안 저지르고 얌전히 사는 사람들도 같이 욕을 먹어야 한다는 것과 뭐가 다른가? 즉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를 범하는 것이다.

도킨스와 비슷한 노선을 걷는 신무신론자 중에서도 대니얼 대닛 같은 사람은 자신의 기존 연구에 치중하고 무신론은 어디까지나 '덤'인 것에 비해, 도킨스는 위에서 마이클 루스의 비판 발언에서 볼 수 있듯이 '대중적인 청중을 위해 과학에 대해 쓰는 것으로부터 기독교(종교)를 전방위적으로 공격하는 것으로 급선회하고' 있다.

2.3. 굴드와의 논쟁

또한 도킨스는 미국의 고생물학자인 스티븐 제이 굴드와의 대립으로 유명하다. 유전자 선택론[14], 단속평형설, 종교와 과학간의 경계 짓기 등의 문제로 많은 논쟁을 벌인 바 있다. 대표적으로 굴드의 NOMA(서로 겹치지 않는 세력권 nonoverlapping magisteria) 이론을 리처드 도킨스가 만들어진 신에서 논박하기도 했다. 다만 NOMA자체는 다른 과학자나 과학철학자에게도 비판받았다. 자세한 건 항목 참조.

도킨스의 주장을 쉽게 설명하자면, 굴드가 주장하는 NOMA는 종교계가 과학의 공격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회피 수단에 지나지 않으며 정작 과학을 공격할 때는 이걸 지키지도 않고 마음대로 벗어나는, 어디까지나 과학 진영에 불리하기만 한 개념이라는 것이다. 다만 여기에 대해, '굴드가 주장한 NOMA는 오히려 종교가 과학의 영역을 침입하지 못하게 하는 방어용의 개념'이라는 반론도 있다.

이것을 두고 창조과학을 주장하는 개신교인들이 진화론자 사이에도 진화론에 대해 의견일치를 보이지 않고 있다고 떠들어대지만 이 둘은 진화론이 사실이라는 것을 기본으로 깔고 각론 수준에서 티격태격 하는 것이다. 일부 기독교인 중에는 리처드 도킨스와 스티븐 제이 굴드 간의, 어찌보면 극렬하다고까지 할 수 있는 대립을 진화론자간의 분열로 보는 경우가 있다. 물론 이는 말도 안 되는 착각으로, 실제로는 둘을 과학계 안에서의 논쟁을 바탕으로 과학의 발전에 기여하는 것에 거부감이 없는 사람들이라 봐야 할 것이다. 창조과학 지지자들을 까는 것은 굴드도 도킨스 못지 않다. 도킨스의 '악마의 사도'를 보면 창조과학 지지자들에 대응하여 굴드와 공동연합전선을 펼치자는 내용의 서신을 주고받은 일도 있다. 정확히는, 과학자들에게 공개 토론이나 대담을 요청하는 창조과학 지지자들을 거부하자는 공동 선언문을 발표하자는 내용이었다. 이전에 굴드는 창조과학 지지자들과 논쟁하러 다니는 도킨스에게 창조과학 지지자들이 생물학자들과 토론하려고 드는 것은 진지한 토론을 원해서가 아니라 그냥 과학자와 같은 자리에서 토론했다는 일종의 권위와 명성을 얻기 위해서'라는 충고를 해주며 만류한 적이 있다. 도킨스는 그 충고를 진지하게 받아들였고, 이걸 아예 모든 과학자들이 참고할 수 있도록 어딘가에 둘의 이름으로 발표하자고 굴드에게 제안했다. 이에 굴드도 흔쾌히 수락하였다. 그러나 그 당시 중병에 걸려 있던 굴드가 사망하여 공동전선은 이루어지지 못했다.

2.4. 윌리엄 레인 크레이그와의 논쟁 회피

기독교 진영에서는 자신들의 입장을 대표하는 변증가 윌리엄 레인 크레이그와의 논쟁을 리처드 도킨스이 회피한다고 비난한다. 윌리엄 레인 크레이그는 크리스토퍼 히친스, 샘 해리스와 같은 신무신론 지지자들과의 공개토론으로 유명한 사람이거니와, 토론에 강한 모습을 보이는 유신론자이기에, 신무신론의 대표자나 다름없는 리처드 도킨스와의 1:1 토론을 기대하는 사람들이 상당히 많았다. 다만 이부분에서 착각하지 말아야 할 것이, 리처드 도킨스는 이미 크레이그와 1:1은 아니지만 토론과 비슷한 포맷으로 대담을 한 적이 있다. 크레이그를 포함한 패널들이 자신의 주장을 관중 상대로 말하고 그에 대해 도킨스를 포함한 다른 패널들이 거기에 대한 반박과 주장을 말하는 식으로 한 적이 있다. 비록 얼굴을 마주보고 하는 토론은 아니었으나 이런 식으로 관중을 보고 말하는 토론 방식은 많다. 유튜브에서 영상을 찾아보면 이미 크레이그와 도킨스는 한 무대에 서서 서로의 주장에 대해 날선 비판을 하는 것을 볼 수 있다. 따라서 도킨스가 크레이그와의 토론을 한번도 하지 않았다는 소리는 일단 거짓이긴 하나, 윌리엄 레인 크레이그의 1:1 토론 제안을 리처드 도킨스가 매번 거절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크레이그와 1:1 토론을 하지 않았지만 매번 도킨스는 윌리엄 레인 크레이그는 창조론자다, 나는 그의 홍보에 도움이 되고 싶지 않다는 이유를 대면서 토론을 회피한다. 그 이유가 합리적이지 않다고 생각한 옥스포드 철학박사이자 같은 무신론자인 다니얼 케임이 도킨스에게 이제와서 크레이그와의 토론을 회피할 이유는 없다는 일침을 날린다. 이에 도킨스는 크레이그의 신학이 사악하다면서 다른 이유를 내놓았다. 그 과정에서 크레이그의 신학을 "우연히 알게 됐다."라고 말했는데, 알고 보니 한참 전에 이미 크레이그의 신학에 대해 논했던 도킨스의 글이 발견되었다. 기독교 진영에서는 도킨스가 거짓말을 했다고 비난. 그리고 크레이그의 신학을 사악하다고 말한 근거 자체도 말의 맥락을 무시하고 곡해하는 트집 잡기에 가깝다고 주장한다.

윌리엄 레인 크레이그의 지지자들 뿐만 아니라 무신론 진영에서도 이것은 리처드 도킨스의 변명에 불과하다는 비판 여론이 상당히 많았었고, 도킨스는 크레이그보다 훨씬 수준이나 네임밸류가 떨어지는 사람과도 토론을 잘만 해왔다. 근데 이제와서 유신론자의 대표격인 크레이그와의 토론을 회피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 비판의 요지이다. 자세한 과정은 링크 참조.

위의 내용은 실질적으로 아우구스티누스로부터 시작되는 중세 철학의 모든 사유들을 통째로 무시해버리는 이설과 하등 다를 게 없다. 예를 들면 유출설(emanationism)이라는 형이상학설이 있다. 내용인즉슨 우주는 '하나' 에서 생겨나 필연적으로 '하나' 로 귀결된다. 즉 모든 유출은 궁극적으로 '하나' 에서 발생된다는 것이다. '하나' 는 쉽게 정의내릴 수 있는 무언가가 아니기 때문에 우리에게 있어서 전혀 와 닿지 않으나, 어떻게든 설명하자면 '하나' 는 모든 존재를 뛰어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뿐만이 아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도 아우구스티누스는 유신론에 대응된다고 말한다. 이븐 시나, 알 가잘리, 이븐 루시드. 등등 여러 중세 철학자들의 사유는 아직까지도 현대 철학계에서 수명을 이어가고 있다. 그러니까 유신론과 무신론의 논쟁은 어느 한쪽의 승리로 매듭지어지지 않았다는 말이다. 각자의 편에 속한 철학자들은 지금 이 시간에도 꾸준히 유신론적 논증, 무신론적 논증을 개발하고 있다.

도킨스는 이 점을 철학적 언어를 써서 반박했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다. 크레이그는 철학자이고, 철학자의 언어를 써서 말한다. 대담 형식도 이와 같다. 만약 리처드 도킨스가 대응한다면 철학자의 언어를 써서 대응해야 하는데, 도킨스는 이 부분에 있어서 자신의 철학적 역량이 크레이그와 비교해서 크게 뒤떨어진다는 사실을 깨닫고 크레이그와의 대담을 회피했다고 볼 수도 있다. 김용옥도 자신있게 말하듯, 철학자의 말빨은 다른 사람들보다 뛰어난 경우가 많으니 언쟁에서 이기기 어렵다. 각자의 관점에 따라 도킨스가 사상의 질이 아닌 말빨의 강력함으로 패배하는 시나리오를 피했다고도, 혹은 비겁하게 변명을 늘어 놓고 도망친다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3. 논란

3.1. 트위터 관련 논란

대중친화적인 서적들을 펴내며 활발하게 대중과 소통하는 사람답게, 트위터 계정을 만들고 하루에도 엄청난 분량의 트윗을 올리며 사람들과 의견을 나누고 있다. 하지만 여러 발언들을 쏟아내어 논란이 되기도 하였다.

이 때문에 도킨스가 과학자들 중 트윗질 끝판왕이라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았으나 사이언스에서 심심풀이로 h 인덱스 따라쟁이 K-index라는 스탯으로 과학자들의 잉여력 트윗영향력 순위를 발표 했는데 놀랍게도 도킨스는 무려 3위밖에 하지 못했다. 더 충격과 공포인 건 물리/천문학 계열 과학자들이 1,2,5,6Top10 안에 네 명이나 포진되어 있기에 다른 랭커들이 대단한 게 아니라 도킨스가 고군분투 한 셈. 1위는 닐 디그래스 타이슨으로 집계되었다.그럼 납득된다

3.1.1. 무슬림 노벨상 수상 횟수 논란

파일:attachment/Dawkins.jpg

때는 2013년 8월 8일, 평소와 같이 트위터에 종교 관련 트윗을 올렸는데, 이 발언이 문제가 되었다. 내용은“무슬림이 연금술과 대수학을 만들어냈다고 하는데 (중세) 암흑시기에 거둔 업적은 의심할 바가 없지만, 그 이후에는?”“전 세계의 무슬림이 배출한 노벨상 수상자가 영국 케임브리지대 트리니티 칼리지 출신 수상자보다 적다. 그래도 (무슬림이) 중세 시대에는 위대한 성과를 올렸다”

우선 평화상과 문학상을 제외하면 강대국 중심의 수상이 심하다며 비판받는 노벨상을 기준으로 전혀 다른 특성을 갖고 있는 종교 집단과 연구 기관을 비교하는 것에 문제가 있다. 애초에 과학 연구 시설, 자금 문제, 홍보 등 여러가지 문제로 강대국 출신 인물들이 유리 할 수밖에 없는 것이 노벨상이고 인프라 수준 차이도 크다. 유대인과 강대국 중심의 관점을 떠나서라도 노벨상 그 자체의 중립성은 최근에도 문제가 되어 왔다. 2008년에 불거진 노벨상 로비 의혹 냉정하게 보자면, 노벨상은 엄정하게 과학을 평가하는 잣대라고 볼 수는 없다. 이전 노벨상 수상자들이 이후 노벨상 수상자를 지정하기 때문이다. 유대인이 22%에 이르고, 트리니티 칼리지처럼 한번 노벨상을 수상한 학교에서 계속 노벨상 수상자가 나오는 것은 너무도 당연하다. 자신이 지도한 사람, 자신이 친한 사람을 뽑는 게 사람이기 때문. 노벨상 또한 지식인,과학자들의 '소셜 클럽' 중 하나인 것이다. 많은 이들이 이런 의미에서 노벨상을 비판한다. 지나치게 정치적으로 변해서 객관적으로 최고의 과학인을 뽑는다는 초기의 신념에 위배되기 때문이라고. 물론 많은 과학적 발견이 이런 기존 과학자와의 소통, 관계에서 나오는 것도 사실이다. 어쩌면 학계도 사람이 하는 것이기에 기득권, 정치 등에서는 비슷할지도 모른다. 참고로 가디언이 위키피디아를 인용한 바에 따르면 현재까지 트리니티 칼리지는 노벨상 수상자 32명을 배출했고, 노벨상을 받은 무슬림은 10명이다.

리차드 도킨스는 홈페이지를 통하여 이 논란들을 반론한 적이 있다. #

이런 도킨스의 발언이 인종차별주의자나 다름 없다고 비판하는 자들도 있다. 과거에 식민지로 얼룩이 졌던 영국 역사이기에 영국은 인종차별에 대해 매우 민감하다. 그러면서도 인종차별이 알게 모르게 꽤 보이는 나라이기도 하지만. 도킨스는 “ 이슬람은 종교이지 인종이 아니다”며 “다른 사람의 의견을 비판할 수는 있다. 하지만 단지 흥미로운 팩트를 거론했다고 해서 (비판하는가)?”라는 반응을 보였다. 무슬림을 거론한 이유가 다수의 무슬림들 및 그들 과학의 위대함에 대한 자랑을 자주 들었기 때문이라 반박했다. 하지만 종교는 인종과 다른 영역이긴 해도 동시에 정당한 이유 없이는 차별해서는 안되는 영역이다. '혐오 발언'에 성별과 인종과 더불어 종교가 포함되어 있는 게 괜히 그런 게 아니다.

“무신론으론 별 반응을 모으지 못하니까 이번에는 이슬람 신자냐 트롤링”란 힐난도 많다. 그런데 애초에 도킨스는 이슬람 신자 뿐만이 아니라 모든 종교에 대해 광범위하게 어그로를 끌어왔다. 사실 이전에도 종교인들 입장에선 자극적으로 들릴 만한 발언을 수차례 했었다. 도킨스의 종교에 대한 공개적 공격적 행보는 20년 전까지도 올라간다. 다른 종교에 대해선 더 직설적으로 말한 적도 있고, 사이언톨로지에 관해서 반농담 반진담 식으로 말을 한적도 있다. 도킨스는 예전부터 이슬람쪽과 마찰을 빚어왔는데 유독 기독교와의 마찰이 심해보이는 것은 보통 (구미권에서 절대다수인)기독교와의 대립이 자주 수면 위로 올라오기 때문이다. 탈레반같은 이슬람 극단주의는 허구한날 씹히고 부르카도 자신의 저서에서 비판하기도 했다. 결정적으로 본인이 나온 다큐멘터리에서 무슬림과의 대화 도중에 정말로 둘이 열받아서 티격태격하며, 결국 무슬림 대화자에게 당신이 이슬람권에서도 (서구처럼)무신론을 설파하고 다닌다면 절대 가만있지 않겠다는 소리를 듣기도 했다.

3.1.2. 다운증후군 태아 낙태 논란

이 문서는
이 문단은
토론을 통해 낙태 찬성을 강간범에 대한 처벌 반대와 동일시한 부분을 삭제하기로 합의되었습니다. 합의된 부분을 토론 없이 수정할 시 편집권 남용으로 간주되어 제재될 수 있습니다.
아래 토론들로 합의된 편집방침이 적용됩니다. 합의된 부분을 토론 없이 수정할 시 편집권 남용으로 간주되어 제재될 수 있습니다.
[ 내용 펼치기 · 접기 ]
||<table width=100%><table bordercolor=#ffffff,#1f2023><bgcolor=#ffffff,#1f2023><(> 토론 - 낙태 찬성을 강간범에 대한 처벌 반대와 동일시한 부분을 삭제하기
토론 - 합의사항2
토론 - 합의사항3
토론 - 합의사항4
토론 - 합의사항5
토론 - 합의사항6
토론 - 합의사항7
토론 - 합의사항8
토론 - 합의사항9
토론 - 합의사항10
토론 - 합의사항11
토론 - 합의사항12
토론 - 합의사항13
토론 - 합의사항14
토론 - 합의사항15
토론 - 합의사항16
토론 - 합의사항17
토론 - 합의사항18
토론 - 합의사항19
토론 - 합의사항20
토론 - 합의사항21
토론 - 합의사항22
토론 - 합의사항23
토론 - 합의사항24
토론 - 합의사항25
토론 - 합의사항26
토론 - 합의사항27
토론 - 합의사항28
토론 - 합의사항29
토론 - 합의사항30
토론 - 합의사항31
토론 - 합의사항32
토론 - 합의사항33
토론 - 합의사항34
토론 - 합의사항35
토론 - 합의사항36
토론 - 합의사항37
토론 - 합의사항38
토론 - 합의사항39
토론 - 합의사항40
토론 - 합의사항41
토론 - 합의사항42
토론 - 합의사항43
토론 - 합의사항44
토론 - 합의사항45
토론 - 합의사항46
토론 - 합의사항47
토론 - 합의사항48
토론 - 합의사항49
토론 - 합의사항50
||


이번에는 다운 증후군을 가진 아이를 임신했다는 여성의 말에 낙태하고 다시 임신하라.는 트윗을 달아 논란이 일고 있다. # 이 트윗 또한 자신의 생각을 홈페이지로 해명하였다. #

도킨스가 트위터를 좀 더 길게 쓸 수 있다면 이렇게 했을 거라고 하였다.
제가 만약 140자 이상을 쓸 수 있었다면 그 여성 분에게 이런 답을 하려고 했습니다.
“분명히 선택은 당신의 것입니다. 제 의견이 도움이 될지 모르겠습니다만, 저라면 낙태할 것입니다. 당신이 아이를 절실히 원한다면 다시 임신을 시도하는 건 어떨까요. 낙태를 하느냐, 다운 증후군 아이를 세상에 내놓느냐 중 택일하라면 도덕적이고 현명한 선택은 낙태라고 생각합니다. 사실, 미국, 특히 유럽에서 임산부 대부분은 낙태를 선택합니다. 개인적으로 저는 한발 더 나가서, 만약 당신의 도덕성이 저와 마찬가지로, 행복의 합을 크게 하고 고통을 줄여야 한다는 바람에 기초하고 있다면, 임신 초기 낙태 기회를 버리고 다운 증후군 출산을 강행하는 건 비도덕적일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제 생각이 논쟁을 일으킬 수 있고, 더 논의가 필요함을 인정합니다. 어쨌든, 당신은 아마도 평생 아기를 키우듯 성인 자녀를 돌봐야 하는 상황에 맞닥뜨리게 될 것입니다. 아이는 아마도 수명이 짧겠지만, 만약 그 아이가 당신보다 오래 살게 될 경우, 당신이 죽고 나면 누가 그 애를 돌볼 건지 걱정해야 되겠지요. 이 경우 다수가 낙태를 선택한 건 놀랍지 않습니다. 그렇긴 해도 여전히 선택은 전적으로 당신의 것이며, 전 당신이나 다른 누구에게 제 견해를 강요하려고 시도할 생각은 전혀 없습니다.”

하지만 남에게 자신의 입장을 강요할 생각이 없었다면 그냥 “나라면 그런 경우에 낙태하겠다”라는 말만 했어야 했고, 만약 “그런 경우에 낙태하지 않는 것은 부도덕하다”라는 이야기까지 하고 싶었다면 처음부터 일관된 논리와 근거를 댔어야 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비록 뒤에 가서 해명을 했지만 140자 제한 때문에 못했다는 것은 '말실수 해놓고 핑계대는' 것처럼 보일 수 있다는 비판 또한 있다.

3.1.3. 잘못된 예시들

파일:external/i.dailymail.co.uk/article-2709730-201A24D300000578-969_634x438.jpg

2014년 7월에는 트위터로 "가벼운 아동 성애는 나쁘다. 폭력적인 아동 성애는 더 나쁘다. 이것을 가벼운 아동 성애를 지지하는 것으로 생각한다면 어떻게 사고해야 하는지를 배우고 오라"는 글을 올렸다.

이에 대해 아동 성범죄 피해자 협회의 피터 손더스 사무국장으로부터 "더 가볍거나 더 심각한 아동성애란 없다"라고 지적받았다.

또한 "데이트 강간은 나쁘다. 칼을 든 괴한의 강간은 더 나쁘다. 이것을 데이트 강간을 지지하는 것으로 생각한다면 어떻게 사고해야 하는지를 배우고 오라"는 글도 올렸는데 이에 대해 "더 나쁘거나 가벼운 강간은 없다"라는 지적을 받았다.

물론 도킨스가 범죄의 무게를 저울질하려 했던 의도가 아니며 논리의 방법에 대해 얘기하는 것이었지만 예시가 부적절했다는 것.

도킨스는 아동 성폭력 피해에 관해 2013년 The Times와의 인터뷰에서 본인도 어린 시절 교사가 자신의 바지 안에 손을 집어넣는 성추행을 겪었지만 트라우마로 남지 않았고 아동에 대한 '가벼운 손길(just mild touching up)'과 강간이나 살인이 동반된 아동 성폭력은 구별되어야 한다고 말해 비난을 받은 적 있다.

3.1.4. 에로틱 비디오

파일:external/homoeconomicusnet.files.wordpress.com/img_2425.jpg

2015년 1월엔 '신정국가(즉 아랍권의 이슬람 국가들)에 에로틱 비디오(즉 야동)를 보낼 좋은 아이디어가 없을까? 폭력적이고 여성 비하적인 포르노 말고 서로 사랑하며 여성을 존중하는 걸로'라는 트윗을 올렸다.

본인도 이건 좀 아니라고 생각했는지 해당 트윗은 몇 분 만에 지워졌다. 하지만 팔로워가 100만 명이 넘는 계정이다 보니 캡쳐가 되었고 많은 언론을 통해 기사화되었다. 망신

트위터에서 논란이 워낙 자주 일어나다보니 더 가디언'지에서 다룬 기사 에서는 도킨스와 입장을 같이 하는 다니엘 데넷, 로렌스 크라우스 등이 트위터 막말을 비롯한 도킨스의 처신이 그의 업적을 스스로 깎아 먹는 것은 아닌지 우려하고 있으며트인낭은 믿음입니다 크라우스의 경우에는 도킨스에게 직접적으로 "그러지 말아 달라"고 요청했다는 소식을 전하기도 했다.

3.1.5. 무슬림 학생 체포 논란

2015년 9월, 무슬림 학생이 억울하게 체포된 건에 대해 안 좋은 말을 남겨서 논란이 일고 있다. 일단 사건 내용을 간단히 요약하면 한 14세의 무슬림 학생이 자기가 직접 조립해서 만든 시계를 자랑하려고 학교에 가져갔는데 사람들이 폭탄처럼 보인다고 신고를 해서 학생이 잡혀간 사건이다. 학생은 자신이 시계를 자랑했는데 폭탄 같아 보일 수 있다고 우려한 것에 대해 폭탄이 아니라 시계라고 분명히 밝혔었고 경찰이 왔을 때도 자신은 시계를 만들었을 뿐이라고 이야기했지만 경찰은 다른 학생들이 보는 앞에서 수갑을 채워 연행했으며 학교 측은 이 학생에게 정학을 내렸다.

이후 이 학생이 만든 게 정말 시계였음이 밝혀지자 경찰당국은 공식적으로 학생에게 사과를 남겼고 오바마 대통령을 포함해 사회 각계 인사들이 이 학생을 독려했으며 MIT나 NASA 등에서는 초청견학을 제안하기도 하였다.

문제는 이러한 사건을 접한 도킨스가 뜬금없이 "이 아이는 시계를 만든 게 아니라 그냥 분해한 것 뿐 발명도 뭣도 아닙니다"라는 독설을 날린 것이다. 이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논점을 잘못 잡은 것 같다, 왜 그런 독설을 하느냐며 비판했고, 누군가가 도킨스에게 "그럼 이 아이의 동기가 뭐하고 생각하세요"라고 물어보자 도킨스는 또 뜬금없이 "모르죠. 뭐, 체포되고 싶었던 게 아닐까요? 경찰이 그의 손에 놀아난 건지도. 어쨌거나 백악관에 초대를 받았고 크라우드 펀딩도 받았으니까요."라는 트윗을 남겼다. 사건의 설명에서도 나온 것처럼 이 사건은 학생이 분명히 시계라는 것을 밝혔음에도 불구하고 경찰에 의해 대놓고 수갑까지 채워지는 과잉 대응이 문제였던 것이다. 억울하게 입은 피해를 보상받은 사람을 관심종자쯤으로 여겼다는 건지 뭔지... #

그해 11월에 또 무슬림 학생과 다에쉬를 비교하는 부적절한 발언을 하여 논란을 빚었다. 도킨스는 '시계소년'의 변호인들이 미국 텍사스 어빙 시와 어빙 교육청에 1500만달러(약 174억원)에 달하는 손해배상을 요구했다는 소식을 듣고 트위터를 통해 "다들 아흐메다 모하메드(해당 무슬림 학생)이 어린아이일 뿐이라고 하는데 사기를 치고도 1500만 달러를 요구할만한 나이의 아이"라고 비난하며, 다에쉬의 명령을 받고 포로의 목을 자른 어린 소년의 영상을 올리고 "그럼 이 아이는 몇 살이죠?"라는 질문을 던졌다. 어린아이여도 포로의 목을 자르는 끔찍한 범죄행위를 저지를 수 있으니, 일부러 이슈를 끌고 사기를 치는 식의 행위도 얼마든지 가능하다는 논리인데...

문제는 모하메드가 정말 돈을 목적으로 사기를 쳤는지는 근거 없는 도킨스의 추측에 불과하다는 점이다. 지금까지 확실히 드러난 사실은 미성년자 학생이 시계를 만들었고, 남들이 보는 앞에서 수갑이 채워지는 등 과잉 대응을 당했으며 그에 대한 피해 보상을 요구했다는 것뿐이다. 금액은 부모나 변호사의 의견일 수도 있고 말이다. 사실 그럴 가능성이 높다 그럼에도 명확한 근거도 없이 피해자 입장인 학생을 사기꾼이니 일부러 그랬다느니 비하하고 있으니 당연히 반응이 안 좋을 수밖에 없다. 그런데 도킨스는 반박하는 사람들에게 "내 말을 잘못 해석하는 우둔한 사람들(numpties)", "지금쯤이면 트위터의 평균 IQ 수준을 알았어야 했다"라며 적반하장으로 나왔다.

이 사건에 대해 자꾸 "폭탄이라고 의심 받을 수밖에 없는 모양새였다", "의심 받을만 했다"고 도킨스 같은 부류를 옹호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애초에 모든 혐오 발언, 증오 범죄들은 그런 '가해자들의 의심'에서 나온다. 모하메드가 일부러 어그로를 끌었을 가능성은 물론 있다. 하지만 위에서 말했듯이 지금까지 확실히 드러난 사실은 미성년자 학생이 시계를 만들었고, 남들이 보는 앞에서 수갑이 채워지는 등, 억울한 일을 당했으며 그에 대한 피해 보상을 요구했다는 것뿐이다. 의심은 의심의 영역으로 남아야지 그것이 '팩트'의 영역까지 넘어와서 수갑을 채우고 경찰서로 끌고 가는 데까지 이르면 추는 한쪽으로 기울 수 밖에 없는 것이다. 모하메드가 풀려난후 미국 각지의 기업, 유명인들이 그를 위로하고 각종 선물을 보낸 게 괜히 그런 것일까? 또한 그 의심이 이른바 소수인종에 대한 혐오증의 표출이었다는 지적도 있다. 시계가 폭탄이라 의심했다면, 경찰이 아니라 폭발물 처리반을 불렀어야 했기 때문이다. 애초에 무죄추정의 원칙이 왜 생겼는지부터 생각해보자.

3.1.6. 이슬람 혐오 발언 찬동

2015년 12월 미국 대선 주자 도널드 트럼프의 무슬림의 미국 입국을 막겠다는 발언이 전 세계적으로 어그로를 끌자 영국에서는 데이비드 캐머런 총리와 보리스 존슨 런던시장은 비판 성명을 냈으며 해리포터 시리즈의 저자 J. K. 롤링은 ' 볼드모트도 이보다 나쁘진 않을 것'이란 트윗을 올렸다.

또한 인터넷에서도 도널드의 영국 입국을 막자는 청원이 온라인에서 40만 건에 이르렀다.

리처드 도킨스는 해당 내용이 담긴 트윗을 리트윗했다가 급하게 실수였다고 글을 올리고 "그의 관점은 끔찍한 것이지만, 표현의 자유는 중요하다"라며 도널드 트럼프의 표현의 자유를 존중한다고 밝혔다. 해당 트윗 이에 대해서는 '표현의 자유와 증오발언은 다르다' 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덧붙여 " 퇴행적인 좌파는 이슬람의 여성과 동성애 혐오에 대해서는 눈을 감는다"면서 "어리석게도 이슬람을 인종으로 존중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자신은 표현의 자유를 존중할 뿐 트럼프의 정책에 반대한다고 후에 밝혔는데 그 이유는 '이슬람이 악하다고 해서 모든 무슬림이 악하지는 않기 때문'이라고 했다.

3.1.7. 아프리카 학생 비판

2015년 12월 30일엔 옥스퍼드 대학의 아프리카 유학생이 로즈 장학금을 받으면서 샤를리 엡도 테러 이후엔 프랑스 국기를 나치기에 비유했다고 트위터에 언급하면서 관련 기사를 링크했다. 참고로 로즈 장학금은 아프리카의 식민지화에 기여한 세실 로즈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며, 로즈 장학금을 받은 이 학생은 트윗 자체에는 언급이 없지만 인용된 기사에 소개되었듯이 옥스퍼드 대학의 세실 로즈의 동상의 철거를 주장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해당 트윗

이에 대해 한 누리꾼이 세실 로즈가 편협한 사람이며, 프랑스 제국주의에 대해 언급을 하면서 그 학생이 사실을 말했던 것이라 지적하자 도킨스는 그 학생은 과거와 현재를 구별할 수 없다는 식으로 답변을 했다.
그러나 이는 간단히 언급될 문제가 아닌 게, 세실 로즈 문서와 프랑스 식민제국, 알제리 전쟁에 관련된 문서를 읽어보면 알 수 있듯이, 아프리카인들이 영국과 프랑스의 제국주의에 대해 부정적으로 볼 수 있으며, 이들 나라가 아프리카에 제대로 된 사과와 배상을 하지 않았기에 과거 일이라고 간단히 얘기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특히 아프리카에서 태어나고 자란 도킨스가 이런 정서에 대해 잘 모르거나 알고도 이해를 하려 하지 않는다면 더욱 더 비판을 받을 수 있다. 실제로 문제의 트윗을 보면 아프리카 출신으로 보이는 사람도 도킨스의 트윗에 반발하는 트윗을 남긴 것을 볼 수 있다. 차라리 이 학생 개인의 처신만 비판하면 될 일을, 제국주의 역사를 겪은 피지배 민족 출신 사람의 불만의 근원에 대해서까지 제국주의 지배 당사국의 백인인 그가 비판을 했다고 보여질 수 있는 모습을 보이고 말았다. 정작 도킨스의 트위터 프로필 사진에 입은 티셔츠 안에 We Are All Africans라고 써진 것이 아이러니다.
도킨스는 종교의 과거는 그렇게 비판하면서 종교의 광기를 넘어선 조국의 악행은 옹호하고 있다. 물론 그 사람 이름으로 장학금을 받으면서 그 사람의 동상을 철거하라고 그러고, 비극적인 사건이 일어난 상황에서 눈치 없이 그 나라의 과거의 잘못을 언급하며 국기를 부정적으로 언급한다면, 위선적이거나 때와 장소를 모르고 눈치와 배려가 없다면서 그에 대한 비판이 충분히 있을 수 있을 수는 있다. 그러나 과연 과거의 어두운 역사의 지적에 대해 과거와 현재를 구별할 수 없다는 말 한마디로 가볍게 일축할 수 있을까? 더구나 아프리카는 아직도 제국주의 열강의 식민지배에 의한 부정적인 영향(내정간섭, 이간질과 인위적 국경으로 인한 종족분쟁 등)을 직접적이든 간접적이든 현재진행형으로 받고 있는데 말이다.

결과만 말하자면 옥스퍼드 대학은 세실 로즈의 동상 철거 요구를 거부했다.
참고로 동물행동학자인 만큼, 사자 세실이 사냥당해 죽은 사건이 일어났을 때, 이에 대해 트윗들을 올린 적이 있다. 그러나 이 사자가 문제는 아니겠지만, 세실의 이름 자체가 도킨스와 로즈의 출신 대학인 옥스퍼드 대학이 현지인에 대한 배려도 없이 로즈의 이름을 따서 지은 것과, 백인들이 사자만 추모하고 아프리카인들의 힘든 현실에는 외면하고 있으며, 비슷한 무렵에 총에 맞아 죽은 비백인들도 외면 하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되기도 했다. 다만 위 사건과 엮여서 비판을 받는거지, 추모 자체로 잘못한 일은 아니다. 예를 들면, 견주가 자기가 사는 아파트에 불이 났을 때 애완견을 걱정했다고 해도, 이게 다른 입주자들을 외면하거나 무시한 건 아니다.

3.1.8. 페미니즘 비판과 뇌졸중

파일:external/wp.production.patheos.com/DawkinsTweet.png


리처드 도킨스 박사는 기존에도 자신의 저서에서 "남학생들보다 여학생들이 학문적으로 도움이 되는 것이 사실이다. 학문에 여성들이 더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으며 앞으로도 더 많은 관심을 가지길 바란다." 같은 어조의 글을 올리며 스스로 페미니스트임을 주장해왔다. 하지만 2016년 1월 26일 "나를 포함한 대부분의 페미니스트들에게는 해당되지 않지만, 소수는 유해하다"라는 내용의 트윗과 함께 페미니스트를 이슬람 근본주의자에 빗대 희화화하는 동영상을 올려서 논란이 일었고, 이로 인해 5월에 뉴욕에서 참가하기로 되어있던 NECSS(Northeast Conference on Science and Skepticism) 주최의 회담에서 보이콧을 당해 참가 취소 통보를 받았다.

파일:external/pbs.twimg.com/CaB6zbDUkAA3MPX.jpg

이에 도킨스는 사람들이 풍자를 이해하지 못하며 진실에서 눈을 돌린다는 투의 트윗을 올렸고, 이에 호응하는 지지자가 올린 페미니스트들이 처형당하는 이슬람 여성보다 벌거벗은 여성의 그림이 들어간 티셔츠에 기분 나빠한다는 사진을 리트윗했다. 한 트위터리안이 도킨스의 주장은 페미니즘에 대한 과도한 일반화가 아니냐고 이야기하자 자신의 주장은 "모든" 페미니스트가 아니라 "몇몇(SOME)" 페미니스트에 대한 이야기라고 답했다.

파일:external/i4.mirror.co.uk/Church-of-Englands-tweet-wishing-Richard-Dawkins-well.jpg

도킨스는 이로 인한 스트레스로 고혈압이 도져 뇌출혈에 의한 뇌졸중 증상을 보여 병원 신세를 지게 되었다. 그가 쓰러졌다는 보도가 올라오자 영국 성공회 공식 트위터 계정에서 그의 쾌유를 빌자는 트윗이 올라왔으나, '그대로 죽으면 불신자의 말로, 회복하면 신의 은총이라고 할 것' 이라는 도킨스 추종자들의 트롤링 논쟁이 쏟아졌다. 또한 도킨스는 무신론자이기에 신에게 기도하지 않는 게 그를 위하는 것이라는 의견도 이어졌다.

도킨스를 보이콧한 NECSS 회담에도 도킨스 추종자들의 비난이 쏟아졌고 결국 NECSS 측에서 도킨스를 재초청하고 홈페이지에 사과문을 올렸다.

뇌졸중 증상이 심하지 않아 금방 퇴원했고 본인의 쾌유를 빌어준 사람들에게 감사하다는 트윗을 올렸다. (Many of you have written to wish me well, and I thank you!)

이 사건이 도킨스 본인에게도 충격이 컸는지 하루에도 수십건의 트윗을 올리던 입원 전과 달리 비교적 글이 드문드문 올라오고 있다. 고령이기도 하고.

3.1.9. 우생학 논란

관련 트윗
우생학에 관련된 발언으로 시끄러워진 적이 있다. 원문과 번역은 다음과 같다.
"It’s one thing to deplore eugenics on ideological, political, moral grounds. It’s quite another to conclude that it wouldn’t work in practice. Of course it would. It works for cows, horses, pigs, dogs & roses. Why on earth wouldn’t it work for humans? Facts ignore ideology. For those determined to miss the point, I deplore the idea of a eugenic policy. I simply said deploring it doesn’t mean it wouldn’t work. Just as we breed cows to yield more milk, we could breed humans to run faster or jump higher. But heaven forbid that we should do it. A eugenic policy would be bad. I’m combating the illogical step from “X would be bad” to “So X is impossible”. It would work in the same sense as it works for cows. Let’s fight it on moral grounds. Deny obvious scientific facts & we lose – or at best derail – the argument."
"우생학을 이념적, 정치적, 도덕적 관점에서 부정하는 것과, 우생학이 현실 세계에서 실제로 작동할 수 없다고 보는 것은 별개 문제다. 당연히 작동할 수 있다. 젖소, 말, 돼지나 장미를 봐라. 사람에게라고 이게 안된다는 법 있나? 팩트는 이념을 무시한다. (= 이념과 상관 없이 팩트는 작동한다.)"

"요점을 놓치기로 작정한 사람들이 많이 보이는데, 나는 정책으로서의 우생학은 부정한다. 내가 말한건 그걸 부정한다고 해서 그게 작동 불가능하다는 건 아니라는 것이다. 우유를 더 많이 생산하기 위해 소를 육종하는 것처럼, 더 빨리 그리고 높이 뛸 수 있도록 사람도 육종이 가능하다. 하지만 그렇게 하면 안 되는 거지."

"우생학 정책은 나쁘다. 내가 지금 싸우고자 하는 것은 "무언가가 나쁘기 때문에 그것은 불가능하다" 라고 이야기 하는 비논리적인 사고의 전개다. 젖소에게 작동하는 것처럼 사람에게도 당연히 작동할 거다. 도덕적인 측면에서 이야기 하자. 명백한 과학적 팩트를 부정하는 것은 우리가 논쟁에서 지거나 최소한 논점에서 이탈하는 것이다."
해당 발언들은 트위터 이전에 1997년 옥스퍼드 앰네스티 강연에서 도킨스가 이미 말한 바 있는 내용이다.

더 자세한 내용은 최근 국내에 출판된 리처드 도킨스의 에세이집 『 영혼을 위한 과학』에 실린 강연 원고에서 참조할 수 있는데, 가축과 곡식의 품종 개량 등을 보았을 때 인간에게 인위적인 육종을 시행한다는 우생학 이론의 "과학적" 여부는 사실이지만, 그것을 옳다고 보는 것은 다른 문제라는 뜻이다. 절대로 우생학을 지지한다고 표명한 것이 아니며, 오히려 우생학이 과학적 근거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우생학에 대해 사회적, 윤리적 토론과 교육으로 사람들이 우생학을 지지하는 것을 방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해봤자 안된다고 우길 게 아니라 나쁘니까 하지 말라고 해야 우생학을 방지할 수 있다)

한 마디로 도덕적 당위 때문에 객관적 사실을 부정하는 '도덕주의의 오류'를 비판한 것이며, 사실상 논란거리조차 아닌 당연하고 원론적인 발언이다.

그는 이를 설명하면서 가치 판단과 과학적 팩트에 관한 예시를 하나 더 언급했는데, 프롤레타리아 독재가 도래하리라는 역사학 학설이 있다고 가정했을 때, 누군가가 그 학설을 지지한다고 해서 그 사람이 프롤레타리아 독재가 옳다고 믿는 근본주의적인 마르크스주의자는 아니라고 말했다. 역사의 힘이 프롤레타리아 독재를 언젠가 이룩하리라는 마르크스주의 학자인 동시에, 그러한 일이 발생하는 것을 최대한 늦추기 위해 보수 우파에 투표하는 자본가일 수 있거나, 반대로 정치적으로 열렬한 마르크스주의자로써 프롤레타리아 독재의 도래를 위해 노력하지만, 그렇게 열심히 노력하는 이유는 프롤레타리아 독재가 도래하리라는 학설을 전혀 믿지 않기 때문에, 가능한 모든 도움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서 일 수 있다고 비유했다.

그런 비유를 통해, 리처드 도킨스는 "우생학이 도덕적으로 옳지 않다는 점은 내가 나서서 설득할 필요도 없으며", "이런 가치 판단이 우생학을 그만둘 정당한 이유가 된다는 점에는 왈가왈부할 게 전혀 없으나" 그렇다고 해서 "이런 가치 판단이 인간의 우생학은 불가능하다는 과학적으로 잘못된 믿음으로 바뀌어서는 안 된다"라고 언급했다.

3.1.10. 트랜스젠더 비하 논란

레이첼 돌레잘 사건과 트랜스젠더를 비교하는 글을 트위터에 올려서 # 미국 휴머니스트협회(AHA)에서 수상한 상을 취소당했다. AHA는 도킨스의 트윗을 과학을 빙자하여 소수자를 모욕했다고 판단했다고 한다. #

도킨스 발언의 부적절성 여부에 대한 논란과 별개로, AHA의 결정도 이상한 결정으로 비판받았는데, 이제까지 휴머니스트협회의 상을 수상한 이들 중엔 반유대주의 음모론자나 정말로 우생학 지지자인 마거릿 생어 등 훨씬 문제적인 이력을 가진 인물들이 버젓이 있기 때문이다. 도킨스는 단순히 '이게 왜 비교될 수 없는지 논의해 보자'는 차원의 질문을 SNS에 올렸음에도 불구하고 단칼에 수상을 취소당했다. # 또한 이는 과도한 정치적 올바름(PC주의) 및 표현의 자유 측면에서도 논란이 되었다. 서울신문, 가디언

3.1.11. 알제리•대만 여성 국가대표 선수에 대한 남성몰이

2024 파리 올림픽에서는 아예 시스젠더 여성인 알제리의 여성 국가대표 선수 이만 칼리프를 MtF 트랜스젠더에 빗대어 비난했는데[15] 알제리는 서방의 자유주의 성향과 전혀 무관한 성향의 국가이며 리처드 도킨스가 비판했던 세력과의 유사점은 거의 없다. 알제리인들은 자국의 국가대표 선수에 대한 남성몰이를 알제리라는 국가에 대한 공격으로 인식하며, 미국과 유럽에서 발생한 성 정체성 논쟁의 대부분을 외래 문화라고 인식하고 있다.[16]

대만 여성 국가대표 선수인 린위팅에 대한 남성몰이도 근거가 부족한데 서구 자유주의 진영의 페미니즘과 적대적인 중국에선 정작 성별논란이 전혀 없는 선수다. IBA에서 증거없이 남성몰이 당한 이후인 2023 항저우 아시안 게임 에서도 여자 복싱 선수의 자격이 인정받았으며, 대만의 첫 번째 복싱 금메달 선수가 되었다.[17] 중국공산당이 '대만 남성'을 여성으로 판정할 이유가 전혀 없으며 정치적 자유와 민주주의 지수 러시아보다 낮은 게 중국이다.


[1] 여담이지만, 도킨스로 대표되는 전투적 무신론은 기존 종교들의 포교, 선교, 전도와 매우 상당한 유사성을 보인다. 타 사회운동과 다를 바가 없다는 의견도 있는데, 종교도 넓게 보면 사회운동에 포함이 된다. 이러한 점들 때문에 전투적 무신론을 일종의 종교단체로 보는 시각도 있는 모양. 아예, 전투적 무신론자들을 향해서, "무신론교를 믿는 무신론교 신자들."이라고 부르거나 종교와 유신론을 욕하지만 정작 누구보다도 종교인 같이 행동한다고 공격하기도 한다. [2] 자신의 책 "만들어진 신 - The God Delusion"에서 스스로 그렇게 언급하였다. [3] 이와 관련된 내용을 담은 책이 눈먼 시계공이다. [4] 현재 옥스퍼드 대학 과학과 종교 강좌 석좌교수로, 옥스퍼드 대학에서 과학(분자생물학)과 문학(역사학), 케임브리지 대학에서 신학까지 박사학위가 세 개나 되는 특이 경력자이다. [5] 힉스 보손의 발견으로 유명한 이론물리학자. 참고로 이 사람도 무신론자이다. [6] 혹은 그가 대표적으로 까는 기독교인. 기독교인이면서 동시에, 과학자인 사람도 당연히 있다. 대표적인 예로, 그와 같은 영국의 과학대선배인 마이클 패러데이와 그가 종사하는 진화생물학계의 거물급 학자였던 테오도시 도브잔스키가 있다. [7] 사실 따지고 보면 유일신 종교들의 다신교 배척 또한 근본적으로는, (본인들이 생각하기에 )우주의 궁극적 원인으로서 존재할 수밖에 없는 단일한 절대자를 제외한 온갖 신들은 "만들어진 신"들이기에 그런 피조물에 대한 숭배는 헛되다는 논리이며, 해당 논리를 모든 종류의 신앙에 대한 것으로 확장한 무신론, 그 중에서도 반종교주의자들이 종교를 보는 시선과 상당부분 스탠스가 겹친다. 따라서 도킨스의 생각과 달리, 종교와 신앙 일반을 쓸데 없는 낭비로 보는 반종교 무신론자의 반달리즘도 논리상으론 충분히 상정 가능한 것이었고 실제 역사에서 적잖은 사례들이 있었다. [8] 특히 팔레스타인 분쟁은 팔레스타인, 시오니즘 등의 문서를 보면 알 수 있듯 일반적으로 연상되는 이슬람 대 유대교 구도와는 전혀 다른 배경에서 진행되었다. 원래부터 범아랍주의, 아랍사회주의를 비롯한 레반트 지역의 민족주의 자체가 기독교, 알라위 등 비무슬림들의 참여가 활발하였는데, 가령 팔레스타인 위임통치령 시절 아랍인 봉기에서 영향력을 행사하던 대표적인 반시오니즘 성향 일간지 팔라스틴은 1911년 기독교도인 알이사 가문에 의해 창간되었다. 또한 6, 70년대를 강타한 팔레스타인발 국제 테러리즘을 유행시킨 것은 이슬람주의자가 아닌 극좌 활동가들이였고, 그 시조격 되는 지도자는 기독교인이었다. 팔레스타인 테러리스트 중에 기독교인들은 수두룩했고, 심지어 레일라 할레드 같은 무종교인도 있었다. 한편 시오니즘의 경우 그 주창자부터 이후 까지 줄줄이 무신론, 무종교였고, 70년대 이후의 우경화를 주도한 수정 시오니즘 또한 그 교조는 무종교인이었다. 물론 예나 지금이나 유대인과 아랍인 사회에 있어서 유대교와 이슬람이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사실이고, 분쟁 초창기부터 이르군, 레히 같은 수정 시오니즘 성향 조직과 아민 알 후세이니 같은 이슬람주의적 색채를 가진 아랍계 과격파들은 늘 있어왔지만, 그들 뿐 아니라 비 유대교 유대인과 비 무슬림 아랍인들까지 민족 정체성에 따라 피아를 구분하며 유혈 충돌에 주도적으로 참여했던 것은 애초에 언어적, 문화적 교점이 전혀 없었던 유럽 출신 유대계 이주민들과 팔레스타인 아랍계 선주민들 사이의 근본적인 이질성이 원인이라는 얘기. [9] 사실 "종교인들은 모두 신의 총애와 천국에 대한 욕망이나 지옥에 대한 공포와 같은 원초적 동기로 선행을 하고, 비종교인들은 그게 옳은 일이기에 선행을 한다"는 주장 자체가 종교인들에 대한 대표적인 편견 중 하나이고, 문제가 있는 논리기도 하다. [10] 행위구원론은 이미 아우구스티누스 시절부터 이단으로 정죄되었다. 선행을 권장하긴 하지만 선행만으로 구원받을 수 없다는 것이 그리스도교의 기본적인 교리다. 다시 말해 구원받기 위해 선행하는 것이 아닌, 그리스도의 자비와 희생에 빚진 죄인으로서 마땅히 선행해야 한다는 쪽에 가깝다. [11] 신을 믿는 사람들을 어리석다고 비난한다고 보기에 충분하다. [12] 조금 더 노골적으로는 무신론의 반증 불가능성과 그로 인한 반작용을 회피하기 위함일 뿐 [13] 아일랜드계 영국인 문화비평가이자 마르크스주의 문학비평가. 독실한 가톨릭 신자이다. 문화란 무엇인가, 신의 죽음 그리고 문화, 신을 옹호하다: 마르크스주의자의 무신론 비판, 문학이론입문, 문학을 읽는다는 것은, 유물론, 반대자의 초상: 지젝에서 베컴까지 삐딱하게 읽는 서구 지성사, 유머란 무엇인가, 발터 벤야민 또는 혁명적 비평을 향하여, 낯선 사람들과의 불화: 윤리학 연구, 비평가의 임무, 민족주의ㆍ식민주의ㆍ문학(공저) 등등 문학비평, 문화비평, 문학이론 분야를 넘나들며 셀 수 없이 많은 책을 쓴 다작가이기도 하다. [14] 유전자 결정론과 흔히 혼동되고 이 문서에서도 유전자 결정론이라고 잘못 적혀있었으나 둘은 완전히 다른 것이다. 유전자 결정론은 인간의 행동을 모두 유전자가 결정한다는 것이고, 유전자 선택론은 자연선택의 단위가 유전자라는 것이다. 유전자 선택론자이면서 유전자 결정론자일 수도 있지만, 그 반대도 얼마든지 가능하다. [15] Two men, masquerading as women, are being allowed to box against real women in the Olympics. 오전 2:50 · 2024년 7월 30일 [16] Algerians rally behind gold medal hopeful Imane Khelif amid gender misconceptions, CBC, Aug 07, 2024 [17] " Taiwan backs boxer Lin Yu-ting amid Olympic gender row - Focus Taiwan". Focus Taiwan - CNA English News. 2024-08-03.

파일:CC-white.svg 이 문서의 내용 중 전체 또는 일부는
문서의 r1291
, 번 문단
에서 가져왔습니다. 이전 역사 보러 가기
파일:CC-white.svg 이 문서의 내용 중 전체 또는 일부는 다른 문서에서 가져왔습니다.
[ 펼치기 · 접기 ]
문서의 r1291 ( 이전 역사)
문서의 r ( 이전 역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