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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0-28 21:32:56

덩크 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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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하십시오.
농구의 득점 방식
필드 골
( 2점, 3점)
자유투
(1점)
덩크 슛
(2점)
파일:lavinedunk.gif
파일:gordondunk.gif
역대 최고의 슬램덩크 콘테스트라고 평가받는 2016 NBA 슬램덩크 콘테스트에서 나온 잭 라빈 애런 고든의 덩크 쇼다운.

1. 개요2. 규정3. 상징성4. 역사5. 장점6. 단점7. 관련 용어8. 덩크와 백보드 파괴9. 기타

[clearfix]

1. 개요

Dunk

농구 슈팅 기술 중 하나. 을 들고 뛰어서 림 위에서 아래로 강하게 내리꽂는 형태의 슛을 말한다. 내리꽂으며 림을 잡아야만 덩크로 알고 있는 경우도 있는데 그렇지 않다. 농구의 랜드마크가 되는 기술.

2. 규정

여기서 중요한 것은 림을 잡는 것이 아니라 슛 방향이 위에서 아래인 것이 중요하다.[1] 하지만 덩크 후 림을 잡는 플레이가 워낙 유명해서, 보통 사람들은 덩크 슛이라고 하면 슛을 내리꽂으며 림을 잡는 걸로 알고 있지만, 애초에 덩크라는 단어는 '담그다(dip)'와 같은 뜻인 일반동사였다.[2] 지금도 패스트 푸드점에서 종종 볼 수 있는 찍먹용 소스나, 던킨도너츠의 dunkin'(실제 발음은 덩큰에 가깝다)이 여기서 나온 것이다. 슛을 골대로 곧바로 내리꽂는 장면이 찍어먹는 것 같다고 덩크라고 불리기 시작한 것이다. 실제로 초창기의 덩크는 현재와 같은 슬램덩크는 없고 살짝 집어넣는 정도였다.

성공하면 2득점이지만, 이론상 3점 라인 밖에서 뛰어 성공시키면 3점으로 인정된다. 하지만 현재까지 3점 덩크슛이 나온 적은 없다. 현재 멀리뛰기 세계기록이 9m가 조금 안되는데, 3점 라인보다 거의 2m가량 길긴 하지만, 멀리뛰기는 오직 앞으로 멀리 가려고 추진력을 거의 다 쓰는 반면 덩크 슛을 성공시키려면 위로도 뛰어야 한다. 당장 3점라인보다 훨씬 가까운 자유투 라인(4.5m)에서 덩크하는 것조차 제대로 해낼 선수들이 그렇게 많지 않다. 사실 성공가능성이 있어도 쓸데없는 체력낭비이며 더 중요한 건 부상위험이 크다.[3] 자유투 라인과 자유투 라인 한 발짝 안에서 하는 덩크의 난이도 차이가 넘사벽이란 걸 생각하면, 3점 라인 밖에서 덩크가 나올 확률은 사실상 없다.[4]

원래 농구에는 실린더 룰이라는 것이 존재하여, 슛을 시도해 공이 수평위치상 림보다 높이 있으면서 림 안에 가상으로 그려지는 원통형 공간(실린더)에 공이 있을때는 어떤 선수도 공에 손을 대서는 안 된다. 수비자가 공을 건드렸을 때는 골텐딩이 선언되어 득점으로 인정되고, 공격자가 공을 건드렸을 때는 바스켓 인터페어가 선언되어 즉시 공격권이 넘어간다. 그러나 덩크 슛의 등장으로 이 실린더 룰은 덩크 시도와 앨리웁 시도에 한해서만은 용인된다는 예외가 생겼다.

3. 상징성

야구의 홈런과 삼진처럼, 농구의 꽃이자 상징이 되어버린 슛으로, 호쾌한 덩크 슛을 보는 것만으로도 농구의 팬이 될 수 있는 플레이다.[5] 이 때문에 거의 모든 리그에서 덩크 슛 경연대회는 올스타전의 필수요소로 자리매김 하고 있다. 웬만한 동영상에 dunk만 쳐도 수많은 덩크 슛 컨테스트 영상이 나올정도. NBA에서 덩크로 가장 이름을 날렸던 선수는 마이클 조던, 도미니크 윌킨스, 빈스 카터, 줄리어스 어빙 등등 NBA에서 손꼽히는 스타플레이어들이다.[6] 이들은 모두 전성기 때 공중에서 예술을 보여줬다.

농구에서 화려함을 상징하는 기술이니만큼 상대적으로 실력이나 스타성이 전국구가 아니었던 선수들도 덩크 한 번으로 엄청난 유명세에 오르기도 하며, 상대적으로 보는 맛이 떨어지는 3점이나 조직적인 전술이 득세하는 현대 농구에선 리그의 인기와 화제성을 견인하고 SNS, 유튜브, 숏폼 등 다양한 매체의 등장으로 오히려 덩크의 가치는 높아졌다고 할 수 있다. 키가 큰 선수일수록 유리하지만, 키가 작은 선수들도 오히려 역동성과 예술성에서 더 어필할 수 있다.

자유투라인 덩크는 70년대를 시작으로 최근에 이르면 덩크 잘 한다는 선수들은 한번쯤은 보여주는 덩크 본좌들의 클래식이라 할 수 있는 기술인데, 실전에서는 체력의 문제나 충돌 및 부상의 위험으로 나오지 않지만 덩크 콘테스트에선 여러 차례 나오고 있다. 단 아슬아슬하게 자유투라인 근처 또는 더 앞을 밟고 도약하는 경우가 대다수이며, 농구선수 마이크 콘리의 아버지이자 올림픽 세단뛰기 금메달리스트인 마이크 콘리 시니어는 1992년 덩크 페스티벌에서 185cm의 키로 자유투라인보다 한발짝 뒤에서 덩크를 성공시키는 위엄을 보여주었다.

1960년대 후반 UCLA의 전설적인 선수인 루 앨신더 때문에 NCAA 농구에서는 덩크가 금지되기도 했다. 그래서 이 시기(67~76년)동안 덩크를 금지당한 룰을 루 앨신더 룰이라고도 불렀다.

4. 역사

농구의 여명기였던 4~50년대에 덩크로 유명해진 선수들은 210cm로 당시에는 초월적인 덩치를 자랑했던 밥 컬랜드[7], NBA 최초의 슈퍼스타 조지 마이칸 등이 있었다. 물론 이들의 덩크는 현재 팬들이 생각하는 호쾌한 덩크와는 거리가 매우 멀었다. 당시 덩크는 그냥 "덩크 샷(dunk shot)"으로 불렸으나 전설적인 LA 레이커스의 아나운서 칙 헌이 특유의 맛깔난 음성으로 "Slaaaaaaaaam dunk!"라고 해설을 한 이후 슬램덩크란 명칭이 널리 퍼지게 된다.

초창기에는 덩크 슛이 수비수를 모독하는 행위로 생각되었기 때문에 수비수들은 덩커들을 거칠게 수비하곤 했다. 보스턴 셀틱스에서 1960~1970년대 선수 생활을 하고 명예의 전당에도 헌액된 새치 샌더스는 "과거에는 (덩크를 하러) 공중에 뜨면 수비수들이 그 밑으로 달려들곤 했죠. 경기에 못 뛰게 하려는 겁니다. 불문율이었죠"라고 회고한 바 있다.

1960년대에 덩크를 득점에 적극적으로 활용한 선수는 윌트 체임벌린이 있다. 그는 216cm에 120kg급이라는 당시는 물론 지금도 상당한 사이즈와 지금까지도 회자되는 사기적인 점프력과 힘을 이용해 제공권을 장악하고 상대 수비 머리위로 덩크를 꽂아넣었는데, 이로 인해 그는 5회 연속을 포함해 총 9번이나 리그에서 야투 성공률 1위를 달렸으며, 심지어 이 중 4번은 득점왕과 동시에 차지했다. 의외로 공격가담이 그리 높지 않은 빌 러셀도 덩크슛을 종종 활용했는데, 이는 당연히 확률이 높은 득점을 위한 것이다.

1960년대까지 빅맨의 효율적인 득점 수단이라는 이미지가 강했던 덩크슛은 1970년대에 "닥터" 줄리어스 어빙과 "스카이워커" 데이비드 톰슨 등 키가 비교적 작은 덩커들이 예술적인 움직임을 선보이면서 화려한 덩크의 시대가 열린다. 톰슨과 어빙이 활약했던 ABA(American Basketball Association)의 영향도 있는데, 신생리그였던 ABA는 인기를 끌기 위해 여러 시도를 했으며 그 중 일부가 NBA도 나중에 받아들이는 3점슛, 슬램덩크 콘테스트 등이다. 여담으로 1976년 덩크 콘테스트에서 어빙은 자유투 라인 덩크를 선보이는데, 50년대에 윌트 체임벌린과 짐 폴라드 등이 자유투 라인 덩크를 했다고 알려진 적은 있지만, 수 많은 관중과 TV중계도 되는 가운데 이 덩크를 보인 건 어빙이 처음이었다.[8][9]

유명한 덩커들은 역대 빅4인 빈스 카터, 도미니크 윌킨스, 마이클 조던, 줄리어스 어빙부터 시작해 최근의 잭 라빈 등을 포함해 대부분 198cm에서 201~203 사이의 선수들이지만, 206cm인 에런 고든이나 조쉬 스미스, 그보다 더해 208cm나 더 큰 장신 덩커들도 명성을 떨쳤다. 1970년대의 "초콜릿 썬더(Chocolate Thunder)" 데릴 도킨스(211cm)[10], 같은 키였던 NBA초대 덩크 콘테스트 챔피언 래리 낸스, 백인임에도 흑인 덩커들을 압도하는 박력과 높이를 자랑한 208cm의 톰 체임버스, 말이 필요없는 다이나믹한 덩커 레인맨 숀 켐프, 슈퍼맨 드와이트 하워드, 마보이 자베일 맥기 등의 장신 덩커들도 덩크 콘테스트와 실전에서 화려한 덩크를 선보였다.

운동능력이 뛰어난 선수들은 흑인이 많기 때문에 정상급 덩커들은 보통 흑인이거나 잭 라빈, 블레이크 그리핀처럼 혼혈 선수들이지만, 위에 언급된 체임버스나 백인으로 최초 자유투라인 덩크를 작렬시키며 덩크슛 대회 우승을 차지한 브렌트 배리, 그 외에 2009년 덩크 콘테스트에서 활약한 루디 페르난데스나 대회에서는 유독 삽질을 많이 했지만 실전에선 멋진 덩크를 선보인 "버드맨" 크리스 앤더슨 등도 있었다.

193cm이하 선수들은 보통 단신 덩커로 취급되는데 위에 언급된 데이빗 톰슨은 193cm로 대표적인 "작은" 덩커이고, 현재 TNT에서 만담을 선보이고 있는 191cm의 케니 스미스도 덩크 콘테스트에서 1점차이로 준우승을 한 뛰어난 덩커였다. 스티브 프랜시스도 같은 키지만 110cm를 상회하는 점프력으로 2000년 덩크 콘테스트에서 카터와 명승부를 펼쳤다. 물론 역대 최고의 단신 덩커는 168cm의 앤쏘니 "스퍼드" 웹으로, 덩크 실력 자체는 스미스나 톰슨, 프랜시스에 못 미쳐도 저 키로 덩크왕에 올랐다는 것 자체가 엄청난 업적이다.[11] 다만 웹이 역대 최단신 덩커는 아니다. 165cm로 웹보다도 더 작았던 얼 보이킨스 역시 시합 중에 덩크를 꽂은 적이 있다.

NBA가 워낙 괴물들의 집합소라 178cm인 선수들도 별 어려움 없이 덩크를 하곤 하기 때문에 NBA선수들 중 덩크를 못하는 선수는 거의 없다고 봐도 될 것이다. 다만 스티브 커처럼 키가 191cm나 되면서도 운동능력이 딸려서 젊을때나 연습때[12] 겨우 덩크하는 선수도 있고, 키가 160cm에 불과한 먹시 보그스는 덩크하는 장면이 찍힌 적은 없으며 덩크가 가능했는지도 불명[13]. 다만 이런 덩크가 가능한 단신 선수들의 일부는 인게임에서는 덩크를 못 하는 선수들도 있어서 단독 속공이라도 무리하지 않고 레이업으로 마무리하는 경우는 많다.[14]

5. 장점

덩크 슛은 단순히 경기 분위기를 띄우는 묘기가 아니라 실제 경기에서 갖는 이점이 상당히 많은 슛 방법이다.

또한 앨리웁 덩크 슛은 실전 덩크 슛 중에서도 그 시각적 효과와 호쾌함이 엄청나며 지면에 깔려있는 상대의 수비벽을 공중 루트로 돌파할수 있는 유효한 공격수단이기도 하다.

사실 엄밀히 말해서 덩크 슛은 고도의 기술이나 전략보다는 단순히 신체적 능력을 이용해 우격다짐으로 밀어넣는 플레이에 가깝지만, 멋있잖아 위에서 말한 이점들이 많고 아예 샤킬 오닐처럼 절대적인 파워와 높이를 가진 선수의 덩크 슛은 시도할 찬스만 잡는다면 그 어떤 수비 기술과 전법으로도 막을 수 없다. 생각해보면 210이 넘는 거구가 한껏 웅크린 후 맘먹고 튀어오르면 막기가 쉽지가 않을 뿐더러 여차하면 수비자 파울이 된다. 이걸 잘 알고있던 오닐은 덩크하면서 다리를 오무려 수비자를 농락했으며 그의 시그니쳐 무브가 되기도 했다.

묘기 수준에 가까운 덩크 슛은 남자의 로망을 자극하기도 한다. 농구라는 스포츠가 신체 피지컬의 영향이 큰 스포츠다 보니 인간의 신체능력과 힘을 폭발시킨다는 점에서 덩크 슛의 매력에 열광할 수 밖에 없다. 실제로 경기 중 나오는 엘리웁 덩크나 인 유어 페이스 덩크는 수십년 세월이 지나도 기억되곤 한다. 실제로 마이클 조던이 91년에 패트릭 유잉 위로 꽂아넣은 덩크는 단순한 원핸드 덩크였음에도 높이와 파워에서 오는 압도적인 박력으로 30년이 지난 지금도 역대 최고의 장면 중 하나로 기억된다. 유잉 위로 덩크하는 조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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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단점

물론 상술한 장점들은 전부 어디까지나 인게임에서 여유롭게 덩크슛을 할수있는 신체조건과 운동능력이 받쳐준다는 전제하에서만 성립된다.

아무리 키가 커도 운동능력이 부족하면 시합중에 덩크를 시도할 찬스를 잡기 힘들고 반대로 키가 작아도 덩크를 할수있는 엄청난 운동능력이 있더라도 수비가 있는 실전에서는 그만큼 풀파워로 점프하면서 림어택을 할 기회가 좀처럼 없는데다가 체력소모가 커서 실제로 전략적인 이점을 얻을수 있을 정도로 인게임 덩크를 구사하기는 무척 어렵다.

물론 타코 폴이나 보반 마랴노비치 같은 규격외의 초특급 장신들은 아예 굳이 힘들여 점프하지 않고 까치발만 들어서도 덩크를 선보일수 있긴 하다. 그러나 이런 초장신 센터들은 운동능력이나 체력적인 부분에서 한계를 보이는 경우가 대부분이라서 팀 동료의 보조없이 혼자 힘으로 상대 수비를 뚫는 능력이 떨어지고 덩크슛의 주된 사용처중 하나인 속공 피니시에도 가담하기 힘들다. 즉 압도적인 높이 덕분에 덩크슛의 이점이 거의 패시브로 달려있는 대신에 그만큼 제약도 커지는 예외 사례라고 봐야 할 것이기 때문에 역설적으로 이런 선수들의 덩크를 보는것도 쉽지는 않다.

즉 일단 시도하기만 하면 매우 장점이 많지만 애초에 시도하는 것자체가 무척 어렵거나 혹은 아예 불가능하다는 것이 덩크 슛의 단점이라고 할수 있다.

더불어 또 다른 단점은 전신의 힘을 순간적으로 폭발시켜야하는만큼 다른 슛보다 (특히 착지 과정에서) 부상위험이 크다는 점이다. 드물지만 아래에 나오듯 백보드라도 부서진다면 부상위험에 더해서 테크니컬 파울까지 추가로 받는다.[27] 또한 버저 비터 상황에서는 득점 인정이 어려운것도 단점이다.[28]

7. 관련 용어

주로 사용하는 손에 따라 원 핸드 덩크와 투 핸드 덩크로 크게 분류되고, 동작에 따라서도 여러 분류가 있다. 발도 한 발로만 뜨느냐, 양발로 동시에 뜨느냐에 따라 명칭이 다르다. 이하 기재된 덩크 외에도 종류는 많고, 여러 조합이 가능하다.

8. 덩크와 백보드 파괴

규격화된 시합에서 쓰이는 농구골대의 백보드는 강화유리로 만들어지며, 이는 웬만한 충격은 버틸 수 있는 재질이다. 문제는 세계에서 가장 강하고 뛰어난 선수들이 뛰는 NBA에서는 그 '웬만한 충격'을 넘어서는 충격을 가할 수 있는 선수들이 여럿 있었다.

최초로 백보드를 파괴한 선수는 나중에 배우로서 유명했던 40년대 보스턴 셀틱스의 선수 '척 코너스'였는데, 흔히 알고 있는 것처럼 덩크가 아닌 때문이었다. 경기를 앞두고 연습 중이던 그가 세트슛을 던졌는데, 당시 직원이 백보드와 림 사이의 충격방지 장치를 넣는 것을 깜빡했기에 백보드가 박살나고 만 것. 즉, 단순한 실수였다.

그러나 60년대, 70년대를 거치며 선수들이 점점 크고 강해지고, 정상적인 백보드를 힘으로 부술 수 있는 선수들이 출몰하게 된다. ABA에서 찰리 헨츠란 선수는 1970년에 열린 ABA 경기에서 백보드를 두개나 부숴먹으며 결국 경기를 취소시켰다.[29]

당시 농구골대는 현재와 같은 충격흡수형이 아니었기에 덩크로 인한 충격이 강화유리에 그대로 전달되어 훨씬 깨지기 쉬웠다. 심지어 빅맨도 아니었던 마이클 조던 역시 1985년에 열린 나이키 친선경기에서 파워덩크로 백보드를 박살낸 적이 있다.

백보드 파괴로 가장 유명한 선수 중 하나는 70년대 최고의 덩커 중 하나였던 "초콜릿 썬더' 데릴 도킨스였다. NBA가 점점 잦아지는 백보드 파괴 건수로 경기 지연 등 골머리를 앓던 시기에 데뷔한 도킨스는 강력한 파워와 운동능력을 자랑했던 선수로, 이 선수의 등장으로 결국 NBA는 현재처럼 충격을 흡수할 수 있는 breakaway rim을 도입하게 된다. 이 골대의 핵심은 지지대인데, 기존처럼 단순히 백보드와 림이 달려있을 뿐 아니라 뒷부분에 지랫대와 스프링이 달려 충격을 흡수한다. NBA선수들이 파워덩크를 하면 골대가 크게 휘청거리는게 이 때문이고, 이 구조 때문에 현대 규격화된 농구시합에서는 골대가 마치 목을 길게 뺀 기린 같은 구조를 갖고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은 신식 골대 때문에 한동안 백보드 파괴는 뜸해졌다. 여기에 혜성처럼 등장한 것이 바로 샤킬 오닐이었다. 오닐은 대부분의 거구 센터들이 250~260파운드 정도였던 시절에 갑자기 나타난 300파운드가 넘는 근육덩어리였고, 이에 걸맞은 무지막지한 파워를 갖고 있었다. 오닐은 루이지애나 주립대학교 시절에 이미 백보드를 여러개 해먹을 정도였고, 드래프트 전 리포터 아마드 라샤드와 가진 장난스러운 1대1에서도 덩크 한방에 바로 백보드를 박살내기도 했다.


샤킬 오닐의 농구대 상품파괴인증쇼 영상. 하술할 NBA 두 공식전 영상도 등장한다.

샤크가 프로에서 최초로 백보드를 부순 것은 뉴져지 네츠와의 경기에서였다. 그의 말도 안되는 파워에 강화유리 뿐 아니라 백보드 전체가 성냥갑처럼 무너지며 오닐이 백보드에 살짝 맞기까지하는 사고가 일어난 것. 당시 백보드는 충격흡수 구조가 적용된 breakaway rim이긴 했지만 충격의 일부가 바로 백보드로 전달될 수 있는 당시 기준으론 구식 모델이었기에 이게 완전히 박살난 것이다.

더 큰 문제는 피닉스 선즈와의 경기에서 일어났다.[30] 피닉스 선즈의 홈구장은 이 시즌에 처음으로 개장한 아메리칸 웨스트 아레나(현 풋프린트 센터)였고, 골대 역시 지지대가 백보드 뒤에 길게 뻗어있어 충격을 지지대로 보내는 신형이었다. 아무리 샤크가 힘이 강해도 이 백보드를 부수는 건 불가능했다. 그리고 샤크는 실제로 백보드를 부수진 못했다. 대신 지지대 전체가 무너지며 주저앉아버렸다. 정확히 말하면 덩크를 하는 순간의 충격이 너무 강해 지지대의 유압시스템이 망가져버리며 더 이상 백보드를 지탱하지 못하고 그 무게 때문에 주저앉아버린 것이다. 최신식 기술조차 무력화시키는 샤크의 위엄이었다. 이후 백보드를 수리할때까지 경기가 지연된다.

이런 사고가 이어지자 결국 NBA는 1993년 9월에 후속 조치를 발표하게 된다. 먼저 리그에서 쓰이는 모든 백보드를 점검하고 안전기준을 올려 골대 자체의 내구성을 강화한 것. 두번째로는 이유없이 림에 매달리는 것을 금지한 것이다.[31] 또한 백보드를 부술 시에 테크니컬 파울을 바로 받도록 하고, 모든 팀들은 구장에 예비 골대를 구비하도록 규정에 명시했다.

이런 조치 덕분에 1993년 이후 백보드 파괴 사태는 아직까지 (2021시즌 종료 기준) 일어나지 않고 있다. 샤킬 오닐 본인도 올랜도 시절보다 무거워진 2006년 올스타전에서 덩크를 한 뒤 장난스럽게 림에 몇초간 매달리며 턱걸이까지 했는데도[32] 골대가 크게 휘청거리기만 할 뿐 멀쩡했다. 위에 언급된 충격흡수 구조 덕분에 강화유리가 아닌 지지대에 충격이 가고, 스프링 구조로 충격을 흡수하며 재질 강화로 최초 충격 정도는 무난히 버틸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샤킬 오닐보다도 훨씬 크고 강한 선수가 나타나면 파괴될 수도 있지만, 점점 리그 페이스가 빨라지고 거구들보다는 운동능력이 뛰어난 빅맨들이 활개를 치는 현 트렌드를 보면 백보드 파괴는 사실상 다시는 일어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33] 다만 여전히 바이올레이션이 존재하는 이유는 선수들이 림에 매달리며 강한 충격을 줄 경우 골대나 림의 각도가 미묘하게 틀어질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KBL 선수도 백보드를 파괴한 사례가 있는데 경기도중이 아닌 덩크콘테스트에서 현주엽이 백보드에 금을 내버린 장면이 유일하다. 비공식적으로는 문경은도 파괴한 전력이 있지만 연습때 파괴되었기에 자료가 남아있지 않아 현주엽이 사실상 유일하다. 외국인 선수를 포함하면 제임스 켈리가 백보드에 금을 내서 10분정도 경기를 지연시킨적이 있다. 백보드는 아니지만 캐디 라렌도 덩크와 동시에 골대 그물을 찢어버린적이 있었다. 라렌은 2024년에도 쓸데없이 골대에 두 번이나 매달리다가 림을 망가트려 경기를 중단시켰다.
파일:백보드 박살낸 현주엽.gif

이후 뜬금없이 한국 예능 학교 다녀오겠습니다에 출연했던 샤킬 오닐이 서인천고에서 촬영을 했을때, 체육관에서 장난삼아 덩크를 했는데, 충격을 이기지 못한 농구대가 지지대체로 쏠려서 넘어갈뻔했다. 당사자인 샤크 역시도 깜짝 놀라고, 자칫하면 대형사고가 날뻔했지만, 다행히 휘청인 농구대가 다시 중심을 잡아 아무렇지 않게 촬영을 마쳤다.
서인천고에서 한 샤킬 오닐의 덩크.

9. 기타

과거 농구대잔치 KBL에서는 흔하게 나오는 장면은 아니었는데, 이를 두고 선수들이 몸을 사린다는 지적도 있다. 월간 루키에선 올스타전에서도 선수들이 덩크 슛을 안 넣으려고 한다는 것을 엄청 비꼰 적도 있다. 하지만 과거에는 현재보다 신장이 작고 웨이트 트레이닝에 대한 인식이 낮았던 탓에 덩크를 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춘 선수의 수가 적어서 덩크를 보기 어려웠다. 오죽했으면 덩크 한 번 했다고 신문 기사에 나올 정도였으니.[34][35] 그나마도 90년대 들어서 현주엽이나 서장훈같이 젊은 대학생 선수들이 가끔 시도하는 편이었다. 농구대잔치 시절에는 정재근, 고려대의 전희철/현주엽, 연세대의 서장훈, 기아의 봉하민 등이 인게임 덩크 구사가 가능한 선수들이었고 이들이 덩크를 시전하면 그날 신문기사에 사진으로 나왔다. 이상민도 덩크가 가능했으나 팀을 위해 박빙의 경기 중에는 덩크를 자제했고 승리가 확정된 후 경기 막바지나 올스타전에서 가끔 보여 주었다.

이른바 아시안 덩크라고 해서 튀어오른 후 공을 바스켓에 놓고 림을 손으로 잡는 행위를 조롱하는 멸칭이 존재한다.

동료가 림 근처로 던진 공을 공중에서 잡아서 바로 덩크로 연결시키는 것을 앨리웁(Alley-oop)이라 부르는데, 슬램덩크에서 아리우프라고 표기된 바람에 당시 농구를 하던 사람들 사이에서는 아리우프가 공식용어인 것처럼 받아들여진 적이 있다.유래는 프랑스어 혹은 서커스 용어라고 한다. #

현재 KBL에서는 국내선수들의 덩크슛이 그리 보기 어려운 장면은 아니게 됐다. 선수들의 평균 신체 조건과 신체능력이 좋아지면서, 2m내외의 선수들은 기회가 되면 과감하게 덩크를 시도하는 경우가 많다. 180cm~190cm 초반대의 가드들 또한 인게임 덩크를 시도하는 선수들이 많이 생겼다. 실제로 현재 프로나 대학선수들의 경기 시작전 연습장면을 보면, 180cm~2m까지 다양한 신장의 선수들이 줄지어 덩크를 하는 모습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물론 외국인선수들과 달리 파워덩크는 잘 나오지는 않는 편이고 림을 잡으며 내려오는 덩크가 주를 이룬다. 덩크를 잘 하지 않던 선수가 덩크를 하는 장면이 나오면 기사가 나오는 것은 현재도 마찬가지다.[36] 현재 국내 탑 덩커로는 하윤기가 꼽히고 있는데 지공 상황에서도 빈틈을 보이면 덩크로 마무리하는 경우가 자주 나온다.

농구를 즐기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해보고 싶을 만큼 멋진 슛이지만, 관리가 부실한 길거리 농구대나 학교에서는 위험하니 주의. 농구대가 쓰러져 사람이 밑에 깔리는 사고가 발생할 수 있다. 샤킬 오닐도 2015년 학교 다녀오겠습니다에 출연했다가 그런 사고를 낼 뻔했다. 2018년에는 덩크 슛은 아니었지만 중학생이 휘어진 림을 바로잡으려다가 농구대가 넘어져 사망하는 안타까운 사고가 발생했다. 이동식 농구대는 중심을 잡아주는 무게추가 무게함에 고정되어 있어야 하는데, 점검 부실 또는 제품의 하자로 무게추가 고정되어 있지 않았던 것으로 추정된다. # 물론 애당초 규정보다 낮은 농구대가 아닌 이상 국내 길거리 농구에서 덩크를 시도할 수 있는 사람 자체가 그리 흔하지는 않겠지만. 게다가 그물이 없는 농구대에서 함부로 투 핸드 덩크를 시도하다간 잘못해서 낭심을 강타하는 경우도 있다.

WKBL에서는 선수들의 덩크 슛 장려를 위해서 2007년 리그부터 덩크슛을 3점으로 인정하는 제도를 도입하였다가 덩크슛 성공자가 없는지 몇 년전 폐지되었다. WKBL에서 최초 성공자는 당시 천안 국민은행 소속 러시아 출신 마리아 스테파노바(27세, 203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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챔피언스리그에서 호날두가 멋진 엘리웁 덩크를 선보였다.
정성룡도 할 수 있다.

NFL에서도 종종 볼 수 있었다. 당연히 정식 룰이 아니고 미국에서는 학창시절 여러 종목을 병행하기도 하는 특성상 농구와 겸업을 하다가 미식축구를 선택한 선수들이 종종 터치다운 셀리브레이션으로 골포스트에 덩크슛을 박기도 했었는데 너무 세게 박아버려 포스트가 휘어진적이 많은 바람에 지금은 덩크슛 셀리브레이션은 금지되었다. 여담이지만 미식축구의 골포스트 높이도 305cm[37]로 농구의 골대 높이와 동일하다.

축구 경기에서 골키퍼가 위에 있는 공을 내리다 자책골을 기록하는 걸 덩크슛이라고 비꼰다.

여고추리반2에서 지어진 장도연의 별명이 덩크다. 멤버들 중 최장신(174cm)이다보니 작중 농구부를 제안받기도 했고 이 때문에 익명 채팅방에도 덩크라는 닉네임으로 참여한것이 시초다. 우연의 일치로 장도연은 여추반이 종영할쯤 정말로 농구 예능인 마녀체력 농구부에 출연하게 되었다.

청소년올림픽에서는 놀랍게도 덩크 콘테스트가 공식 종목이다. 2014년부터 치러지고 있으며 개인전이 아닌 국가 대항전 방식으로 진행된다. 여자부에서는 3점 컨테스트가 정식 종목이다.


[1] 그리핀 정글 덩크 2장면. 이렇게 골대를 잡지 않고 마치 배구선수가 강스파이크하듯 팔을 휘둘러 시원하게 내려찍는 덩크도 엄연한 덩크 슛이며 숀 켐프, 블레이크 그리핀같이 체공력과 공중 바디컨트롤에 능한 운동능력 괴물 덩크 스페셜리스트들이 종종 실전에서 보여준다. 이전에는 이러한 식의 덩크를 '정글 덩크'라 부른다고 서술했지만, 정작 구글에서 검색하면 '메테오 잼'보다도 덩크 내용이 더 안 나오고 운동화 사진만 나오는 걸로 봐서 사실무근. 여담이지만 림을 잡지 않고 하는 덩크인 만큼 정확도는 떨어질 수 있기에 이를 성공시키려면 거의 림이 머리에 닿을 수준의 점프력과 체공력이 필요하므로 일반적인 덩크보다 어렵다. [2] 원래 다른 의미가 있는 일반동사였는데 여기서 파생된 새로운 의미가 훨씬 유명해져 원래 의미를 뛰어넘는 경우는 많다. Gay란 단어 역사 원래는 "즐겁다, 활발하다"란 뜻이었으나 지금은 동성애자란 뜻이 압도적으로 더 유명해 원뜻으로 사영하는 이들은 거의 없다. 덩크도 마찬가지. 미국에서 dunk shot은 구어체에선 거의 쓰지않는 단어기 때문에 dunk라고 하면 99%가 덩크슛을 떠올린다. 참고로 덩크는 덩크샷의 약칭이기 때문에 명사형으로도, 동사형으로도 쓸수 있다. [3] 그냥 덩크만 해도 착지를 잘못하면 부상을 당할 수 있다. 특히나 3점라인에서 한다면 멀리서 날아야 하는 만큼 반동도 더 심해진다. 당장 제자리 덩크와 드라이빙 덩크를 비교해도 제자리 덩크는 반동이 거의 없어서 턱걸이도 가능한데 드라이빙 덩크는 몸이 종잇장 날아가듯 흔들린다. 그 때문에 드라이빙 덩크는 림을 금방 놓는 경우가 많다. 유명한 철인인 마이클 조던이 커리어에서 유일하게 당한 큰 부상이 바로 덩크 후 착지를 잘못해서 당한 것이다. 그런데 젖먹던 힘까지 다 써야 하는 3점라인 덩크를 시도하면 부상당할 확률이 훨씬 높다. 만에 하나 3점 라인 덩크가 가능한 초인이 나와도 덩크 콘테스트에서나 선보이지, 실제 경기에서 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실제로 자유투라인 덩크는 70년에 처음 나왔고 많은 선수들이 덩크 콘테스트에서 했으나, 실전에서 자유투라인을 밟고 한 덩크는 없다. [4] 3점 덩크는 둘째치고 이보다 1미터 정도 안쪽 top of the key 위치에서 인간이 덩크가 가능한지도 떡밥이다. 2006년 덩크 콘테스트에선 조쉬 스미스가 림으로부터 6미터쯤 떨어진 이 곳에 마치 여기서 뛰겠다는 듯 호기롭게 테이프를 붙여놨고, 해설자들도 관중들도 흥분했다. 해설을 하던 케니 스미스는 "저기서 뛰면 난 가겠어(게임 끝이니까)!" 찰스 바클리는 "저건 불가능해", 매직 존슨은 " MJ도 저건 못했는데"라고 각각 반응했다. 그런데 정작 스미스는 테이프와 상관없이 자유투라인에서 뛰어 투핸드 덩크를 해 반응은 "??"였고, 점수도 망하면서 1라운드 탈락했다. 자마리우 문이 2008년 덩크 콘테스트 참가할 당시 티저 비디오에서 마치 자유투라인보다 한발짝 뒤에서 뛰어 덩크를 한 모습을 보여줬는데, 정작 덩콘에선 결승진출에 실패해 이 덩크를 하지 않았기에 진짜다vs낚시다로 의견이 갈린다. 덩콘에서 성공한 덩크 기준으로 가장 멀리서 뛴 덩크는 자유투라인보다 발하나 정도 뒤에서 뛴 스카티 피펜 서지 이바카이다. 잭 라빈은 자유투라인에서 뛰어 비트윈더렉을 했기에 저보다 더 멀리 뛰는게 가능했을 수 있지만 어쨌건 실제 덩콘에선 자유투라인까지만 뛰었다. [5] 다만 홈런이나 삼진과 달리 플레이 자체의 실질적인 영향은 평범한 필드골과 큰 차이가 없다. 슬램덩크에서 북산이 엄청난 앨리웁 덩크를 성공시킨 이후, 관객들의 환호에 전혀 동요되지 않은 상대팀 산왕의 이명헌이 점프슛을 넣고 "같은 2점이다"라고 한게 그 의미. 이 때문에 다른 능력은 평범해도 홈런만 잘 치거나 삼진만 잘 잡는 선수는 쓰임새가 많지만, 덩크만 잘 하는 선수는 딱히 쓸모가 없다. 물론 사기진작, 가장 성공률 높은 득점수단이란 점, 거기에 팬서비스 요소도 있고, 무엇보다 농구를 상징하는 가장 화려한 플레이란 점 때문에 덩크 자체의 가치가 높지 않다는 건 절대 아니다. 어디까지나 플레이 하나의 전술적인 가치만을 봤을때 홈런이나 삼진만큼 크진 않다는 것. [6] 물론 저 중에서 카터가 가장 높이 평가받는 편이지만, 다른 선수들도 덩크의 역사에 있어 빼놓을 수 없는 존재들이라 같이 많이 언급된다. ESPN에서 2005년에 역대 최고 인게임 덩커를 뽑을 때 전문가 의견과 팬 투표 모두 조던이 1위를 차지했지만, 진행하던 패널들은 조던이 톱3엔 들지만 가장 위대한 덩커는 아니라고 의견을 모았다. 이 중 한 패널은 카터를 1위로, 다른 패널은 카터가 1위지만 아주 근소한 차이로 다음이 윌킨스라고 했다. [7] 프로 데뷔를 하지 않고 아마추어 선수로 커리어를 마무리했다. NBA의 전신인 National Basketball League와 Basketball Association of America 둘다 40년대에 생겨난 조직이지만, 당시론 존재 자체가 위태위태했고 연봉도 그리 높지 않았다. 때문에 60년대까지 웬만한 슈퍼스타가 아닌 이상 당연히 부업을 했으며, 4, 50년대까진 아예 프로 데뷔를 하지 않는 선수들도 있었다. [8] 사실 76년 덩크 콘테스트는 어빙, 톰슨, "아이스맨" 조지 거빈 등이 참여해 전설이 된 대회지만 그야말로 화려한 덩크의 초창기였기에 현재 기준으로 보면 덩크들이 매우 썰렁하다. 심지어 톰슨과 어빙조차 주로 경기중에 하던 덩크를 그냥 했는데, 이는 1. 1회인 만큼 지금처럼 화려한 묘기를 한다는 개념이 없기도 했고 2. 기술 발전도 아직 없었으며 3. 당시엔 덩크 자체를 보는 것만으로도 진귀한 볼거리였기 때문이다. 이 중 백미는 218cm에 달하는 센터 아티스 길모어였는데 큰 키와 긴 팔로 별로 화려하지도 않은 덩크를 너무 쉽게 해대는 바람에 최악의 퍼포먼스를 보였다. [9] ABA와 함께 사라진 덩크 콘테스트는 1984년에 부활하는데 34세 노장이 된 초대 덩크 콘테스트 우승자 어빙이 우승은 아쉽게 놓쳤지만 또 한번 자유투라인 덩크를 선보여서 감동을 준다. 그리고 이렇게 부활한 덩콘은 85년부터 시작된 도미닉 윌킨스와 마이클 조던의 혈투를 통해 황금기를 맞고, 90년대에 매너리즘에 빠지며 쇠락하다가 역대 최악의 콘테스트(우승자는 코비 브라이언트)란 오명을 남긴 97년을 끝으로 폐지, 2000년에 빈스 카터의 존재로 화려하게 부활한 이후 쇠락과 부활을 거듭하다가 2016년에 잭 라빈 애런 고든이 비디오 게임에서 튀어나온 듯한 말도 안되는 덩크를 연이어 선보이면서 또 한번의 역대급 대회를 선사하게 된다. [10] NBA에서 사상 최초의 고졸 직행 선수로 폭발적인 운동능력과 장신으로 높은 슛성공률을 자랑했지만 재능에 비해 아쉬운 성장세를 보여 끝내 스타급으론 못 큰 선수이다. 그러나 워낙에 덩크실력이 뛰어나 유명했는데, 플레이면에선 아쉬운 점이 많은 선수로 8시즌 연속 경기당 평균 4개 이상의 파울을 기록했으며, 83-84시즌엔 지금까지 NBA기록으로 남아있는 한 시즌 386파울을 기록했다. 참고로 2위도 도킨스로 전시즌에 기록한 379개 84시즌의 기록은 경기당 평균 4.8개이다. [11] 다만 이 대회에서 준우승한 도미니크 윌킨스는 자신의 패배를 아직까지 인정하지 않는다. 실제로 덩크 자체는 윌킨스가 더 뛰어났지만 단신 어드밴티지로 웹이 우승했다는 평이 많다. 윌킨스는 그 외에도 조던에게 패배한 1988년 덩크 콘테스트도 인정하지 않는다. [12] 영상을 찾아보면 사실 덩크라고 하기도 민망한 수준이다. 동료가 림 근처로 공을 띄워준 것에 힘껏 점프해 겨우 닿아 손을 살짝 댄 수준이다. [13] 스티브 내시도 인게임에서 덩크를 시도한 적도, 성공한 적도 없다. [14] 193cm인 백인 슈터 JJ 레딕은 원스탭으로 투핸드 덩크를 실전에서 하는 수준이지만, 올랜도에서 이 장면이 나왔을때 해설자가 "레딕이 덩크가 가능한지 몰랐는데요"라고 할 정도로 덩크를 안 했다. 저 정도 키와 운동능력이면 와이드오픈도 실패할 확률이 좀 있기 때문에 덩크가 딱 가능하기만 한 단신 선수들은 웬만해선 인게임에서 덩크 대신 레이업으로 마무리한다. 토니 파커 역시 덩크가 가능했지만 오픈 상태에서 림에다 박은 적이 있는만큼, 단신 선수들에게 덩크는 "효율성 높은 득점수단"이 아닌 팬서비스이기 때문에 실전에선 웬만하면 레이업을 많이 한다. [15] 물론 사람이 하는 일이기 때문에 100%는 아니다. 수비자를 제대로 체크하지 못하고 덩크를 시도하다가 굴욕적인 블락을 당하는 경우도 종종 있으며 러셀 웨스트브룩같이 점프력 좋은 선수도 1년에 몇번씩 무리하게 덩크를 시도하다 실패하는 장면이 나온다. [16] 실제로 14-15 시즌 초반에 밀워키 벅스의 포인트가드 브랜든 나이트 브루클린 네츠와의 경기 종료 직전 조 존슨의 공을 극적으로 스틸하고 앞에 아무도 없는 상대 골대에 레이업을 시도했다가 실패한 적이 있다. 영상 보기. [17] 이 슛을 넣기만 하면 경기가 끝나서 영웅이 되는 상황이었는데, NBA가 워낙 속도전환이 빠르고 르브론 제임스, 드웨인 웨이드같이 등 뒤로 몇발짝 넘는 거리도 무지막지한 달리기로 쫓아와(체이스 다운) 떡불낙을 선사하는 괴물들이 득시글대기 때문에 NBA 선수들은 원맨 속공 노마크 레이업 찬스면 아예 덩크를 해버리거나 뒷통수를 조심하는 습관이 있는데, 나이트처럼 몸이 가볍고 피지컬이 떨어지다보니 자기 스피드 컨트롤이 되지 않는 선수라면 되려 속공때 안정적인 전속력 드리블이 잘 안돼서 불안한 경우도 많다. 이 상황에서 나이트도 스틸뒤 볼 컨트롤이 완벽히 안되면서 뒤에서 쫓아온 크리스 험프리스를 완전히 떨어뜨리지 못하면서 자기 몸을 가누지 못하고 점프 타이밍이 흔들리며 레이업을 올렸다가 실패한 것. 이렇듯 레이업은 절대 100%를 보장하는 슛이 아니다. 이런 류의 실수 때문에 농구 코치들이 피지컬과 기본기의 중요성을 항상 강조하는 것이다. [18] 2016 NBA 파이널 7차전에서 클리블랜드로 우승컵을 가져온 르브론 제임스의 체이스다운 블락이 대표적이다. 피폭자는 안드레 이궈달라. [19] 슬램덩크에서 해남과의 지역예선 경기 도중 골밑 슛을 넣지 못하여 고전하는 강백호에게 채치수"골밑에선 덩크만을 노려라" 라고 조언하는 장면이 나온다. 그 뒤에 채치수는 '아마도 그게 들어갈 확률이 가장 높을 거다...!'라고 이유를 독백한다. 그리고 이는 100% 진짜다. 슛 기술이 전혀 없는 초보자라도 점프력만 있다면 넣을수 있으니까. 오죽하면 이정환이 고의로 파울을 하면서까지 저지를 했을까. [20] 맥기는 바보짓이 절정에 달했던 워싱턴 시절 아무도 안 막는 원맨속공 상황에서 자유투라인 덩크를 시도했다가 택도 없이 실패하는 초특급 뻘짓을 한 적이 있다. 사실 천하의 조던도 원맨속공에서 덩크를 날려먹은 적이 있지만, 맥기는 정상적인 플레이가 아니라 쓸데없는 짓을 무리하게 하다가 놓친거라 (자유투 덩크는 덩크 콘테스트같은 이벤트 상황에서도 실패 가능성이 있는 고난도 덩크다) 욕을 배터지게 먹었다. 당시 중계를 보면 해설자들이 순간 말을 잃을 정도. [21] 하승진이 개인 유투브에서 대표팀 시절 미국대표팀과 치렀던 시합을 회고한 영상을 보면 상대팀 선수들이 맘껏 덩크를 때려넣는데 꼼짝도 못하고 지켜만보는 자신의 당시 모습을 보면서 막으려고 해봤자 블로킹은 커녕 앤드원만 내줄게 너무 뻔해서 막을 시도조차 할 수 없었다고 술회한다. 영상을 보면 알겠지만 하승진의 말은 변명이나 핑계 따위가 아니라 실제로 그렇다. [22] 출처 보기. [23] 전술한 체이스다운 블로킹이 이렇게 뒤에서 쫓아와서 찍어버리는 블록 슛이다. NBA처럼 피지컬의 극한을 추구하는 농구 리그에서만 볼 수 있을 정도. 옆에서 막아내는 섀도우 블럭등은 벤 월러스, 케빈 듀란트같이 세로수비와 스피드가 되는 수비수들이 1선 수비가 뚫려서 골밑찬스를 내주자 마자 반대쪽에서 엄청난 스피드로 헬프수비를 달려와 만들어내는 명장면들이다. [24] 만화 슬램덩크에서 강백호가 선보인 "먼저 점프하고 나중에 착지하면서 골밑 슛 블럭하기"가 만화적 과장이라고 생각할 수 있으나, 마이클 조던 같이 초월적인 점프력의 소유자들은 실제로 운동능력에 차이가 있는 선수를 상대로 타이밍을 읽고 덮치는 식으로 여러번 해냈다. 실제로 이는 180CM도 되지 않는 네이트 로빈슨도 했었는데 야오밍이나 샤킬 오닐같은 40~50cm는 더 큰 선수를 블록한 명장면은 샭, 야오의 골밑 슛 시도 타이밍을 읽고 먼저 점프해 우선권을 쥔게 성공한 것. [25] 슬램덩크만 보더라도 채치수나 변덕규가 손쉽게 파리채 블록을 시전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 그런 식의 떡불낙은 상대 센터와의 포스트업 1대1싸움에서 완벽한 몸싸움과 공간압박으로 상대 센터의 제공권을 완전하게 제압하고 나서, 이미 밀린채 피할 곳이 없는 상대 센터가 몸을 돌리면서 어거지로 시도하는 걸 보란듯이 찍어버리는 장면으로 채치수와 상대 센터 기량차가 있으니까 많이 나오는 거지, NBA처럼 포인트가드들조차 근육질 떡대인 곳에서는 아무리 뛰어난 센터라도 달려드는 공격수를 맞붙어서 블록하는 건 매우 어렵다. 페이스업 상태에서는 특히 공격수가 블로커의 팔을 피할수 있기까지 해서... 포스트업일 경우는 그나마 가능성있지만, 현시대 NBA는 완전히 그 의미가 바뀌어서 처음부터 정교한 오프볼 스크린등으로 상대 수비수를 바꾼뒤, 피지컬 우위가 있는 공격수가 선빵을 놓는 포스트업이기 때문에 체급차이가 나는 1대1 상황에서 걸리면 떡대가 더 큰 공격수의 등짝과 엉덩이에 밀리다가 2점을 그냥 헌납당한다. [26] 조던같은 경우는 이렇게 점프했다가 한 손으로 공을 잡은 채로 공중에서 기다렸다가 수비를 피해 한 손 슛을 하는 고난도 더블클러치 플레이를 종종 선보이곤 했다. 91파이널 2차전에서 보인 손 바꾸기 레이업 역시 덩크하려다 샘 퍼킨스의 블럭을 피해 한 것. 다만 이 경우 훗날 조던이 거리 계산을 잘못해 덩크가 무리라고 여겨 레이업을 한 거라고 한 적이 있다. 당연하지만 조던이니까 가능한 거지 웬만한 선수들은 시도할 생각조차 하기 힘든 초고난도 플레이들이다. 또한, 이 경우의 조던도 다른 슛을 시도해 성공한거지 덩크를 성공한 건 아니다. [27] 다만 백보드 파괴 사례는 NBA에선 1993년 샤킬 오닐 사례 이후 리그 전반적으로 백보드 강화가 이뤄져 오닐 이후로 2024년 현재까지 나오지 않고 있으며, 오닐같은 덩어리 센터는 현대 농구에서 뛰기도 힘들고 나오지도 않고 있기 때문에 오닐처럼 힘으로 백보드를 부수는 사례는 사실상 앞으로 나올 확률이 매우 희박하다. 실제로 2022-23시즌 기준 NBA에서 가장 무거운 선수인 보반 마르야노비치(조금 더 무거웠던 타코 폴은 현재 중국에서 뛰고 있다)조차 300파운드가 약간 안되어 오닐보다 훨씬 가볍다. 대학무대로 넓혀보면 몸이 무거운것으로 미국 현지에서는 유명한 선수로 코너 윌리엄스(Connor Williams)가 무려 360파운드인 선수가 있는데 이 선수는 체중으로는 백보드의 파괴가 가능할거라는 소리도 나오지만 이 선수는 덩크를 자주 시도하는 편도 아니다. [28] 아예 선례가 없는건 아니다. 2022년 11월 7일 KT의 캐디 라렌이 KCC와의 홈 경기에서 역전 버저 비터 덩크를 꽂아 팀을 승리로 이끌었다. 물론 이것도 비디오 판독 끝에 겨우겨우 버저비터로 인정 받았기 때문에 만약 인정되지 않았다면 라렌은 역적이 됐을지도 모른다. [29] 전반전에 그가 덩크를 하면서 백보드가 파괴되자 한 시간 딜레이된 끝에 결국 나무 백보드로 대체해 경기를 속행했는데, 양팀의 공격방향이 바뀐 후반에 반대쪽 골대에 덩크를 하면서 멀쩡한 나머지 백보드까지 박살냈다. [30] 샤킬 오닐 항목에도 나와있는 "필드골 6/6 득점:14, 파괴한 백보드:1"이란 장난스런 자막이 바로 이 경기에서 나온 것이다. [31] 사실 위에 언급된 두 케이스 모두 샤크가 림에 매달리지 않고도 골대를 부쉈기 때문에 꼭 샤크 때문에 도입된 규정은 아니다. 또한 덩크를 했는데 밑에 사람이 쓰러져있다든지 해서 안전상 바로 착지할 수 없는 경우 매달려있어도 바이얼레이션이 아니다. 바이얼레이션 시간 기준이 확실하게 있는 것은 아니고 심판의 재량이긴 하지만, 팔을 구부리며 림을 당기는 동작을 할 경우 빼박 파울 처리. [32] 당연히 바이얼레이션이지만 올스타전이기 때문에 불지 않을 것을 알고 한 것이다. [33] NBA역사상 가장 무거웠던 선수는 올리버 밀러였지만 이선수는 딱 봐도 살덩이로 보이는 비만체형이었다. https://www.thesportster.com/nba-heaviest-basketball-players-ranked/ 밀러를 제외하면 히트로 트래이드되기 전에한창 몸이 불었을때 360파운드를 상회했고, 전성기 시절엔 310~20파운드 사이였으며, 가장 가벼운 올랜도 시절조차 300파운드를 넘었던, 그리고 그 몸이 대부분 근육질이었던 샤킬 오닐은 거의 전무후무한 파워를 자랑하는 선수였다. 2022년 기준 NBA에서 가장 무거운 선수는 224cm/290파운드인 보반 마랴노비치, 그리고 229cm/311파운드인 타코 폴이다. 두 선수 모두 키 때문에 몸무게가 많이 나가는 거지, 소위 말하는 '덩어리형' 체형과는 거리가 멀고, 키에 비해 무지막지한 몸무게인 자이언 윌리엄슨은 부상 위험 때문에 다이어트가 필수인 선수이며, 애초에 오닐만큼 거대하진 못하다. 즉 현재는 1990년대, 2000년대에 비해 덩어리 선수들이 오히려 적어졌으며, 리그 트렌드 상 그런 선수들이 뛰기 힘든 환경이라 오닐같은 괴물센터는 안 나올 확률이 높다. [34] 과거 한국농구 수준에서는 인게임에서 덩크 슛을 안정적으로 하려면 신장이 2미터는 되어야 했는데, 그 당시 그 정도의 신장을 가진 선수 자체가 적었다. 더군다나 지금 들으면 웃기는 소리지만 근육을 기르면 슛 감각이 떨어진다고 웨이트 트레이닝을 금지하는 지도자들도 있었다. [35] 이 당시의 한국리그 덩크 콘테스트 역시 덩크를 하는 그 자체에 의미를 둔 편이라 2010년대 이후의 덩크 콘테스트에 비하면 임팩트는 떨어지는 편이다. [36] 20-21시즌에는 김영환 배강률이 각각 기사가 나온 덩크를 한바 있다. 속공시 덩크를 자주 구사하는건 송교창이나 김종규가 유명한 편인데 이 둘이나 외국인선수들처럼 자주 구사하는걸로 유명하면 포토뉴스로 짧게 나오는 수준에 그친다. [37] 120 인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