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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1-10 11:42:36

개황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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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설명3. 집필4. 개황력의 해설서?5. 기록

1. 개요

開皇曆
삼국유사 가락국기에서 인용된 가야, 정확히는 금관가야에 관한 사서다. 지금까지 알려진 가야계 사서 중 가장 이른 시기에 작성된 책[1]이며 지금은 삼국유사 가락국기에 인용된 부분을 제외하고는 전하지 않는다. 개황록(開皇錄)과 동일한 책으로 추정된다.

2. 설명

개황력의 내용은 삼국유사에 인용된 부분으로 미뤄봐서 금관국의 역사를 신라시대에 살던 후손들의 입장을 반영해 쓴 것으로 보이며, '황실을 열었다'는 개황의 의미처럼 조상들을 매우 높이는 목적으로 작성된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설화성이 짙은 내용으로 가득한 가락국기에 인용됐단 점에서 개황력의 내용도 설화적 성격이 강했을 것이다. 삼국유사보다 앞서 김부식 삼국사기를 쓸 때 개황력을 인용한 흔적이 보이지 않는 것은 이런 설화적 성격이 김부식의 유교적 관점에서 터무니없기( 괴력난신)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3. 집필

남아 있는 기록이 책 제목과 내용 두세 줄이 전부이기 때문에 집필자가 누구인지, 집필 시기는 언제인지에 관해 말이 많다. 가락국의 멸망(532년)부터 개황력이 인용된 가락국기의 집필 시기(1075년 경) 사이의 언젠가 집필된 것만 확실하고, 그 외는 알 길이 전혀 없다. 이에 여러 설이 나왔는데, 그 중 몇 가지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4. 개황력의 해설서?

실전된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양산문화원에서 2008년 발행한 '취서사지'라는 책의 부록에, 개황력의 해설서가 수록되어 있다. 양산문화원이 취서사지를 집필하는 과정에서 1960년대까지 전라도에 개황력의 사본이 있었다는 정보를 확인해 입수하려 했지만 이미 실전된 뒤였고, 밀양에 거주하는 김 모 씨가 해당 사본의 해설서만 소장하고 있었다고 한다. # 하지만 교차검증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진실 여부는 불명이므로, 이런 것도 있다 정도로만 참고하는 것이 좋다. 단편적인 예시로, 이 해설서에 의하면 개황력은 서기 201년에 집필되었다고 하는데, 삼국유사에서는 개황력을 인용하며 가야의 멸망 기록(532년 혹은 562년)을 이야기하는 대목이 해당 개황력 사본에는 존재하지 않는다.(참고로 이 해설서에 의하면, 제목의 開皇은 김수로왕의 연호라고 한다. 원년은 CE42년.)

5. 기록

다음의 두 문장이 개황력에 대해 남아 있는 내용 전부이다. 그나마도 책의 이름이 다르게 기록되어 있다. 가야사와 관련된 문헌 기록이 얼마나 부실한지를 느낄 수 있는 부분.
수로왕(首露王)은 임인(壬寅)년 2월에 알에서 태어났다. 이 달에 즉위하여 158년을 다스렸다. 그로 인하여 금알에서 태어났으므로, 까닭에 성이 김(金)씨이다. 『개황력(開皇曆)』에 실려 있다.
삼국유사 제1권 왕력
≪개황력(開皇曆)≫에는 “성(姓)은 김씨(金氏)이니 대개 시조(始祖)가 금란(金卵)에서 난 까닭에 김을 성으로 삼았다”고 하였다
開皇暦云 “姓金氏, 盖國世祖從金卵而生, 故以金爲姓厼.”
삼국유사 제2권 기이 가락국기 거등왕
≪개황록(開皇錄)≫에 보면, “양(梁)나라 무제(武帝) 중대통(中大通) 4년 임자(532년)에 신라에 항복하였다”고 하였다.
開皇録云, “梁中大通四年壬子降于新羅.”
삼국유사 제2권 기이 가락국기 구해왕


[1] 정확한 집필 시기에 대해서는 여러 설이 있다. 아래의 '집필' 문단 참고. [2] 노란 용은 대개 황제를 상징한다. [3] 혜공왕 대아찬 김융이 반란을 일으켰다가 죽임 당한 일을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