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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6-25 13:58:04

가스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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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상세

1. 개요

gas chamber

문자 그대로 기계실, 전기실처럼 건물에서 사용하는 가스에 관한 조작을 하는 장소를 가리킬 수도 있지만 보통은 독성 가스로 사형수를 처형하는 방, 특히 1940년대 나치 독일 전쟁범죄를 상징하는 시설들 중 하나로서의 의미가 매우 강하다.

2. 상세

히틀러는 반유대주의를 앞세운 극우민족주의로 1933년 정권을 잡은 다음 유대인을 체계적으로 탄압했다. 그러다 2차대전이 시작되자 유대인 절멸 계획을 세워 유대인들을 수백만명 단위로 대량 살해했다. 이 때 유대인 대량 살해에 사용된 것이 가스실이었기 때문에 가스실은 나치의 전쟁범죄와 인종청소를 상징하는 이미지가 되었다.

히틀러는 독일에서 유대인을 없애겠다는 극단적 반유대주의를 처음부터 주장했었다. 하지만 처음부터 유대인을 다 죽여 없애려고 했던 것은 아니었다. 전쟁 전 나치의 정책은 유대인들을 가혹하게 탄압해서 스스로 독일을 떠나도록 하는 것이었다. 1940년 5월 프랑스 침공으로 본격적인 2차대전이 시작된 후에는 유럽의 유대인들을 수용소와 게토에 모아뒀다가 인도양의 마다가스카르 섬으로 추방하는 것으로 바뀐다.[1] 영국 점령 실패로 바닷길이 막혀 마다가스카르 추방이 불가능해지자 1941년 6월 소련과 전쟁을 시작하면서는 전쟁을 빨리 끝낸 후 유대인들과 동유럽인들을 모두 시베리아로 보내 노동력으로 쓰다 죽이겠다는 새로운 계획이 되었다.[2] 하지만 1941년 11월 모스크바 공방전, 1941년 12월 진주만 공습으로 전쟁이 길어지자 1942년 1월 반제 회의에서 유대인을 당장 모두 죽여 없애기로 결정하고 우리가 아는 가스실 대량살해가 시작되었다.

대량학살 계획인 라인하르트 계획에 따라 트레블링카 절멸수용소, 베우제츠 절멸수용소, 소비보르 절멸수용소 등 사람을 대량으로 죽이기 위한 목적밖에 없는 살인공장들을 새로 만들고, 기존의 아우슈비츠-비르케나우 강제수용소도 절멸수용소로 개조했다. 그리곤 유럽 전역에서 유대인들을 기차로 실어와 도착하는 즉시 가스실에 넣어 살해했다. 절멸수용소들은 도착한 유대인들을 최대한 빨리 모두 죽이는게 목적이라 분류작업 같은건 하지 않았다.

폴란드 게토에 수용되어 있던 유대인들은 화물기차로 실어왔지만 그 외 지역의 유대인들은 여객기차로 절멸수용소에 도착했다. 기차역은 환승역처럼 꾸며놓고 다음 기차 환승 전에 씻으라거나, 공장처럼 꾸며놓고 앞으로의 노동에 대해 짧은 연설 후 "샤워실"로 안내했다. 100미터 정도 걸어서 밖에서 보이지 않는 샤워실 건물에 도착하면 단체로 옷을 벗고 짐을 정리한 뒤 샤워실에 들어가야 했고, 그러면 벽이나 천장에 달린 샤워기에서 물 대신 매연 치클론 B 등의 가스가 나왔다.

수십분간 끔찍한 고통 속에 질식사한 수천구의 시신들은 유대인들 중에 선발한 존더코만도들이 치우고 청소했다. 존더코만도들은 오래 일해 아는게 많아졌다거나 노동력이 떨어지면 살해되고 새로 도착한 유대인들 중에 다시 선발됐다.

이렇게 "효율적"인 대량살인이 계속되자 트레블링카에서는 15개월만에 80~90만명, 베우제츠에서는 9개월간 43만명의 유대인이 살해되었다.

이렇게 사람을 효율적으로 학살하는 살인공장을 짓고는 공장에서 물건을 대량생산 하는것마냥 산업적으로 살인이 벌어졌다는 점과 사람들의 저항을 줄이려고 사용한 여러 속임수들이 사람들에게 큰 충격을 주었기 때문에 가스실이 지금과 같은 상징적 의미를 가지게 되었다.

이렇게 포로들을 잔혹하게 죽여 버린 뒤 포로들의 금니나 그 외 몸 안에 숨겨둔 귀금속을 빼내 나치 독일의 군인들에게 하사품으로 증정했으며 포로들의 시신들은 당연히 화장장에 보내서 소각시켰다. 심지어 포로들의 시신들을 불에 태워서 나오는 기름으로 비누를 만들었다는 풍문도 있는데 사실 비누 관련 이야기는 연합국에서 만들어냈다고 한다.

의외로 현대 사회에도 아직 가스형이 존재하는데 미국의 5개 주가 사형 집행 방식 중 하나로 가스형을 규정하고 있다. 사형/국가별 현황/미국 문서로.

동물보호소에서 보호 기간이 끝난 동물들을 살처분할 때도 쓰이는데 안락사는 비용도 많이 들고 결국 대량 살처분에 효율적인 방법으로 가스실을 선택하는 것이다.

폭스바겐은 21세기에도 디젤게이트의 일환으로 이 짓을 하다가 발각되어 파문을 겪기도 했다.(...) 기사


[1] 마다가스카르 계획 [2] 동방총괄계획(Generalplan Ost). 동유럽인들까지 대부분 학살해버리고 빈 땅에 독일인을 이주시켜 레벤스라움을 만들겠다는 계획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