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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학준 (2013~201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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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윤석 (201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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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저 모건 Nyjer Morgan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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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명 |
나이저 제미드 모건 Nyjer Jamid Morgan |
출생 | 1980년 7월 2일 ([age(1980-07-02)]세) |
캘리포니아 주 샌프란시스코 | |
국적 |
[[미국| ]][[틀:국기| ]][[틀:국기| ]] |
학력 | 왈라왈라 커뮤니티 칼리지 |
신체 | 178cm, 81kg |
포지션 | 외야수 |
투타 | 좌사좌타 |
프로 입단 |
2002년 드래프트 33라운드 (전체 973번, PIT) |
소속팀 |
피츠버그 파이러츠 (2007~2009) 워싱턴 내셔널스 (2009~2010) 밀워키 브루어스 (2011~2012) 요코하마 DeNA 베이스타즈 (2013) 클리블랜드 인디언스 (2014) 한화 이글스 (2015) 페리코스 데 푸에블라 (2016) 아세레로스 데 몽클로바 (2017) |
응원가 |
등장시:
이정현 - 와 타격시: 이선희 - J에게 요코하마 시절 - 구단 자작곡[3] |
[clearfix]
1. 개요
前 한화 이글스 소속의 외국인 선수.2014년 준수한 활약을 했던 펠릭스 피에와의 재계약 협상이 불발된 이후 한화에서 발빠르게 영입한 좌투좌타의 외야수였다.
2. 선수 경력
2.1. 메이저리그 1기 시절
어린 시절 봤던 동계 올림픽에서 아이스하키에 매료되어, 학창 시절에는 캐나다의 여러 팀에서 아이스하키 선수로 뛰었다. 그러다 대학에 진학하며 야구로 전향하였고 2002년 피츠버그의 지명을 받는다. 늦게 야구로 전향해서 그런지 지명 이후 대단히 낮은 900위권대의 유망주 순위를 받았다.긴 마이너 리그 시절을 보낸 후 2007년 9월 피츠버그 파이러츠에서 데뷔한 이후 2009년부터 주전으로 자리잡은 뒤 트레이드로 워싱턴 내셔널스로 이적, 두 팀 합계 120경기 0.307의 타율과 42도루를 기록하였다.[4] [5]
2010년 136경기 타율 0.253, 34도루를 기록한 이후 2011년 밀워키 브루어스로 이적하여 119경기 0.304의 타율을 기록하며 팀의 PS 진출에 공헌했다.
2011년 NLDS 5차전, 팀을 NLCS로 진출시키는 끝내기 안타.
그러나 2012년 122경기 0.239의 타율을 찍으며 시원하게 망했다. 본인의 부진도 이유지만 카를로스 고메즈, 아오키 노리치카 등의 선수가 외야에서 새롭게 떠오르면서 입지가 급격하게 좁아졌고 결국 2013년에는 브루어스를 떠나게 된다.
2.2. 요코하마 DeNA 베이스타즈
2013시즌을 앞두고 일본프로야구 팀 요코하마 디엔에이 베이스타즈에 입단하였다.
개막 후 한달여간은 부진한 모습을 보였으나 2군에 내려가 타격감을 조율한 뒤 서서히 좋은 모습을 보여주기 시작했고, 투고타저의 NPB에서 108경기 타율 0.294, 11홈런 50타점의 나쁘지 않은 성적을 기록하였다.
또한 특유의 호쾌한 성격으로 트러블 없이 팀에 잘 융화되는 모습을 보이며 선수들과 팬들 사이에서도 많은 인기를 누렸다.
구단에서는 재계약을 하려고 했으나 어깨가 약하다는 점 때문에 모건이 원하는 금액을 제시하지 않았고, 결국 협상이 결렬되어 1년만에 퇴단했다.
2.3. 메이저리그 2기 시절
한화 입단 직전 시즌인 클리블랜드 인디언스 시절 타격 모습.
시즌 후 클리블랜드 인디언스에 입단하여 메이저리그에 복귀하였다. 2014시즌 초반 3할이 넘는 고타율을 기록하며 순항하는 듯 했으나, 무릎 부상으로 결국 많은 경기를 뛰지 못하고 방출당했다.
메이저리그 통산 기록은 598경기 타율 0.282 550안타 136타점 12홈런 도루 120개로 한국 진출 선수 가운데에는 상급의 커리어다.[6]
2.4. 한화 이글스
목동 개막전에서 KBO 첫안타를 2루타로 장식하고 선보인 T-플러시(T-Plush)[7] |
2014년 12월 12일 한화 이글스와 계약금 15만 달러에 연봉 55만 달러 총액 70만 달러의 계약을 맺었다.
2.4.1. 2015 시즌
투수도 아닌 외국인 야수가 겨우 10경기에 출전해서 느닷없이 2군으로 강등되어 방출당한 황당한 사례로 남았다. 2할 7푼[8]이라는 나쁘지 않은 타율과 출루율 4할에 볼/삼진 개수가 8개로 똑같은데도 선구안이 안 좋다는 이유로 퇴출되었다는 것이 납득이 되지 않는 점. 실력을 평가하기에는 출장 수가 너무 적었으며[9] 돈주고 외국에서 데리고 온 선수를 굳이 그렇게 빨리 퇴출시켜야 할 정도로 못한 것도 아니었다.4월 8일 LG전에서 도루실패 뒤 덕아웃으로 돌아와 T 세레머니를 했는데, 그것을 굉장히 마음에 들어하지 않는 김성근 감독의 표정이 카메라에 잡혔다. 따라서 그냥 김성근 감독에게 찍힌 것이 아닌가 하는 추측이 있다. 애시당초 1군에서 죽쑤고 있지도 않았는데 내려간 2군 연습경기에서는 맹타를 휘둘렀으나, 결국 1군 콜업이 되지 않았으며 5월 6일 방출되었다. 두산 베어스의 잭 루츠에 이은 2번째 외국인 방출 사례. 대체 선수로는 제이크 폭스가 오게 되었다.
어쨌든 못해서 보냈다고 그가 떠난 중견수 자리에 더 못하는 송주호를 기용한건 모순. 송주호는 121경기에[10] 출장하며 -1.10의(...) sWAR를 기록했다.
자세한 내용은 나이저 모건/2015년 문서 참고하십시오.
2.5. 방출 이후
# 11월 18일, 요코하마로 복귀한다는 기사가 떴는데 정작 해외에서는 2013년에 요코하마와 계약한 내용 말고는 전혀 찾아볼 수 없다.2016시즌을 앞두고 멕시칸 리그의 페리코스 데 푸에블라와 계약을 맺었다.
끝내기 홈런을 기록한 듯하다. 영상
2016년 성적은 101경기에서 타출장 .306/.402/.474에 11홈런 58타점 22도루로 좋았다. 홈런 팀 4위, 도루 팀 1위, OPS 팀 3위로 성공적인 시즌을 마쳤다.
2017년 멕시칸 리그의 아세레로스 데 몽클로바로 트레이드되었다. 그러나 꼴랑 3경기만 나오는 등 좋지 못하다. 2018년에는 멕시칸 리그 출전 기록이 없다. 이후 밀러 파크에서 열린 밀워키 브루어스와 콜로라도 로키스의 2018 내셔널 리그 디비전 시리즈 1차전의 시구자로 오랜만에 브루어스의 팬들에게 모습을 드러내기도 했다.
2019년 6월 과거 일본에서 뛰었던 팀인 요코하마와 세이부와의 교류전 기간에 요코하마 스타디움에 초대되어 팬서비스 이벤트를 가졌다.
이후 사실상 은퇴한 듯하다.
2023년 10월 4일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와의 NLWC 2차전 시구자로 초청됐다. # 은퇴 후 살 찐 모습과 함께 어김없이 T 세레모니를 보여줬다.
3. 플레이 스타일
메이저리그에서는 컨택 좋고 발 빠른 전형적인 리드오프, 외야 전 포지션을 커버할 수 있는 수비력을 갖췄었다. 그러나 나이가 문제.2012년부터 수비력이 떨어지더니 NPB를 다녀온 이후 2014년엔 모든 수비 스탯이 크게 하락하는 모습을 보여주었기에 수비력에 대해서는 좋은 평가를 주기 어렵고, 여기에 더해 어깨도 좋지 못한 편. 그러나 펠릭스 피에의 메이저리그 수비 스탯은 모건보다 몇 배는 더 형편없었다는 점에서 평가는 시즌이 끝나고 나서야 가능하다. 일본프로야구에서는 홈런이 증가하면서 미약하나마 장타 툴을 갖추었다고 평가받았다. 다만 2014년 운동 선수에게 최악의 부상 중 하나인 무릎 후면 십자인대 파열 부상을 당했었는데, 이 부상이 주루 툴과 타격 메커니즘 그리고 수비범위에 어떠한 영향을 미칠지 두고 봐야 할 것이다.
그러나 이런 평범해 보이는 스타일의 모건을 돋보이게 하는 것은...
4. 기행
부정적인 의미의 멘탈갑이자 악동으로 대표되는 성격이다. 대표적인 일화를 뽑자면- 워싱턴 내셔널스 시절 야유를 보낸 관중에게 공을 던지며 7경기 출장 정지됐다.
-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전을 필두로 상대 포수를 고의적으로 건드는 등 고의적인 바디체킹을 여러 번 했다. 한번은 홈으로 들어오면서 공도 안 갖고 있고 홈 플레이트 앞에 서 있던 포수를 건드리기도 했다. 단 이때 아웃 처리가 된 건 팀 동료와 접촉했기 때문이었다. 홈에 들어오고 난 선수끼리의 충돌은 상관 없다.
- 기어코 플로리다 말린스전에서 홈에서 고의적으로 충돌해 상대 포수를 시즌아웃시키고 다음 경기에서 보복의 의미로 첫 타석에 사구를 맞았는데 그거에 화가 났는지 점수가 크게 난 상황에서 도루를 했고(다만, 10점차로 내셔널즈가 '지는' 상황이었고 이닝도 그리 늦지 않았기에 이걸 가지고 보복구를 던진 말린스 쪽이 욕먹을 껀덕지가 다소간 있다.) 그것으로 인해 크리스 볼스테드가[11] 몸 뒤쪽으로 공을 던져 도발하자 이에 주먹을 날려 출장 정지됐다. 단 이때 상황을 보자면 모건 입장에서는 본전도 못 챙긴 상황으로, 볼스테드에게 덤비러 달려들자 볼스테드는 자신있다는 듯 글러브를 쿨하게 벗어던지고 싸울 테세를 취했고, 모건은 선빵을 날렸으나 볼스테드를 맞추지도 못했으며 그 뒤 달려든 1루수 개비 산체스[12]의 클로스라인에 맞고 실신KO 거기에 볼스테드에게 파운딩을 맞는 상황에서 난투극 상황이 돼서 위기를 벗어났다. 상식적으로 208cm, 120kg 넘는 거구인 볼스테드가 모건을 못 당해낼 리도 없고 성질 있다고 싸움까지 잘하라는 법은 없기도 하다. 오히려 양측에서 가만 놔뒀다면 모건이 볼스테드에게 사지분해당할 수도 있었던 상황이라 보면 된다. 재미있게도 모건이 한국야구에 올 때 볼스테드는 방출 후 마이너계약을 맺으며 서로 엇갈렸다.[13]
- 수비 도중에 자기 글러브에 맞고 타구가 홈런이 된 줄 알고 화가 난 나머지 글러브를 내팽겨쳤다. 그 결과 인사이드 파크 호텔 한 채가 건립되었다. 이때 호텔을 세운 사람은 아담 존스이다.
- 원정 경기에서 공수교대 도중 덕아웃으로 돌아가는 중에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팬에게 엿과 주먹감자를 먹였다.
- 파울타구를 상대팀 관중 때문에 잡지 못하자 그 관중을 글러브로 밀어버렸다.
- 밀워키 브루어스 시절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전에서 삼진을 당하자 씹는 담배를 투수쪽으로 던지는 모션을 보여줬고, 당시 투수였고 과한 세레모니로 인해 화가 진작에 났던 크리스 카펜터가 본인에게 뭐라 하자 충돌했다. 그리고 그 후에 트위터로 그 싸움을 말리던 알버트 푸홀스를 알베르타[14] 푸홀스라고 놀리고 당시 포스트 시즌 진출 확률이 실낱 같았던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를 포스트 시즌에도 못 나가는 팀이라고 디스까지 했다.그리고 그 후 카즈는 대오각성을 해 포스트시즌에 진출했고 NLCS에서 밀워키를 4:2로 패버린후 WS에서 텍사스를 4:3으로 제압하고 패권을 차지하게 된다.
- 2011년 NLDS에서 승리하자 기쁜 나머지 라이언 브론 인터뷰 도중에 끼어들어 F-word를 시전했다.
- 포스트시즌에서 다시 만난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의 에이스 크리스 카펜터에게 대놓고 싫다고 말했다.
- 이 위의 있는 모든 행동을 자신의 다른 인격인 토니 플러시가 했다고 본인이 말했다.
그러나 일본에서 T-플러시 세레머니를 선보이며 팀에 잘 융화되었던 적도 있는 만큼 한화 입장에서는 모건의 멘탈 관리가 가장 중요하다고 할 수 있었다. 한화 팬들 중에서는 영입확정 공식 보도가 뜨자마자 벌써 한밭구장의 명물인 ' 보문산 호루라기', 혹은 김성근 감독과 모건의 일대 격돌을 걱정하는 이들도 생긴 상황이었다. 이에 대해 김성근 감독은 전지훈련 출국 전 인터뷰에서 '모건이 만약 난동을 부리면 퇴출시키겠다'는 메시지를 남겼다.
다행스러운(?) 점은 미국 시절에 그 유명했던 똘기에 비해서 싸움을 잘하지는 못하는 편. 일단 볼스테드와 개비 산체스에게 얻어터진 일화를 굳이 들지 않더라도 체격이 작고 마른 편이고 완력이 강한편이 못되는 데다 타이론 우즈, 펠릭스 호세처럼 타고난 완력과 터지면 상대선수에게 확실하게 보복폭행하고 난동 부리는 스타일은 아니라는 점이다. 즉 모건은 미국 시절에 싸움을 잘해서라기 보다는 어그로 끌기를 좋아했던 거라고 보면 된다.
5. 이모저모
모건 속의 또 하나의 자아 T-플러시(T-Plush) 제스처.
"That's the entertainer," Morgan said. "I've always told people that we play on the biggest stage. In baseball, everybody's watching you. When you're batting, everybody is watching you and when you make a play everybody is watching you. I figured, we're entertainers, we play on a big stage, and every entertainer has a stage name. My stage name is Tony Plush."
모건 왈 "중요한 건 엔터테이너가 되는 거예요. 나는 항상 사람들에게 우린 가장 큰 무대에서 뛰고 있다고 말합니다. 모두가 바라보는 야구에서 말이죠. 타격을 하거나 어떤 플레이를 하든 모두가 당신을 보고 있죠. 난 우리(선수) 모두가 큰 스테이지에서 뛰는 엔터테이너라고 생각해요. 모든 엔터테이너는 무대용 이름이 있죠? 내 예명은 토니 플러시입니다."
모건 왈 "중요한 건 엔터테이너가 되는 거예요. 나는 항상 사람들에게 우린 가장 큰 무대에서 뛰고 있다고 말합니다. 모두가 바라보는 야구에서 말이죠. 타격을 하거나 어떤 플레이를 하든 모두가 당신을 보고 있죠. 난 우리(선수) 모두가 큰 스테이지에서 뛰는 엔터테이너라고 생각해요. 모든 엔터테이너는 무대용 이름이 있죠? 내 예명은 토니 플러시입니다."
어쨌든 이렇게 확고한 자신만의 직업윤리를 갖고 있는지라 선수 자신이 활약한 다음에 보여주는 쇼맨십 하나는 화려하다. 모건의 선수 시절 사진을 구글링하다 보면 절반 정도는 팔을 한껏 벌리며 포효하거나[15] , 아니면 위의 T플러시 세리머니를 찍은 사진을 셀 수 없이 찾을 수 있다. 그만큼 야구계 불문율을 씹어먹는 멘탈킹스러운 모습 때문에 상대 팀과 선수들에게 굉장히 어그로를 많이 쌓았다. 특히 상기에 언급된 브루어스 시절의 언행으로 인해 카디널스 팬 중에는 아직도 싫어하는 사람들이 꽤 있다. 2013년 미국의 한 스포츠 웹진에서 조사한 가장 싫어하는 야구선수 베스트 10에서 모건은 5위에 랭크되었는데, 1, 2, 4위가 모두 약물 때문에 그렇다는 걸 감안하면 순수하게 개같은 성격으로만 뽑힌 자들 중에선 2위다. 1위는 더 설명할 필요가 없는 마스크 쓴 어그로의 제왕. 선정된 사진은 위에 언급되었던 관중을 글러브로 미는 사진...
한화 캠프에 합류하자마자 T-플러시 제스처로 인사하기도 했다.
일본인 볼보이들과도 T-플러시
19세 때 캐나다에서 얻은 딸이 있는데, 프로야구를 시작하며 미국 전역을 떠돌며 야구를 해야 했기에 양육권을 포기해야만 했던 아픈 기억이 있다.
이름 때문에 모건과 건모를 바꾸어서 국내야구 갤러리 등에서 칰 건모라고 불리기도 한다.
4월 2일 경기에서 건강에 좋다고 들어서인지, 홍삼즙을 멋모르고 마셨다가 쓴 맛을 느끼는 표정이 유명해졌다. 아마도 외국인이라서 홍삼의 맛이 익숙하지 않았던 듯하다. 방송 영상
한편 모건의 대체용병인 제이크 폭스가 부상으로 장기간 결장하게 되자 한화 이글스 갤러리에서는 "김성근 감독이 모건도 폭스만큼 기다려줬다면 3할 정도 쳤겠다" 라는 여론이 일어나고 있는데, 폭스를 기다린 건 용병 교체 한도가 다 돼서 어쩔 수 없이 기다려야 하기 때문으로, 모건과는 상황이 다르다.
한편, 2017년 김경언이 나이저 모건의 응원가를 물려받았다. 하지만 김경언도 17시즌 후 방출되었다.
국내에서는 그동안 알려진 기행에 비해서 별 사고도 치지 않았고 퇴출 당시 성적도 그리 나쁜 것도 아니었는데 희한할 정도로 평가가 바닥을 기는 용병 타자이다. 모건보다 더 처참한 성적을 기록하거나 기행이나 안 좋은 멘탈을 보인 외국인 선수들은 수두룩하지만 모건은 이상할 만큼 T발놈이라는 부정적인 별명과 함께 최악의 용병을 꼽을 때 빠짐없이 들어가는 편이다. 과거 기행이 만들어낸 프레임과 노리타들의 평가절하, 일부 야구 팬들의 좁은 식견이 한 몫했던 걸로 보인다. 그나마 현재는 한화의 성적이 여전히 좋지 않은데다 모건보다 더 성적이 안좋은 용병들도 나온지라 한시즌 정도는 보고 갔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도 나오고 있다.
6. 연도별 주요 성적
역대 기록 | ||||||||||||||
연도 | 소속팀 | 경기 | 타수 | 타율 | 안타 | 2루타 | 3루타 | 홈런 | 타점 | 득점 | 도루 | 볼넷 | 장타율 | 출루율 |
2002 | PIT | MLB 기록 없음 | ||||||||||||
2003 | ||||||||||||||
2004 | ||||||||||||||
2005 | ||||||||||||||
2006 | ||||||||||||||
2007 | 28 | 107 | .299 | 32 | 3 | 4 | 1 | 7 | 15 | 7 | 9 | .430 | .359 | |
2008 | 58 | 160 | .294 | 47 | 13 | 0 | 0 | 7 | 26 | 9 | 10 | .375 | .345 | |
2009 | PIT / WSH | 120 | 469 | .307 | 144 | 15 | 7 | 3 | 39 | 74 | 42 | 40 | .388 | .369 |
2010 | WSH | 136 | 509 | .253 | 129 | 17 | 7 | 0 | 24 | 60 | 34 | 40 | .314 | .319 |
2011 | MIL | 119 | 378 | .304 | 115 | 20 | 6 | 4 | 37 | 61 | 13 | 19 | .421 | .357 |
2012 | 122 | 289 | .239 | 69 | 5 | 3 | 3 | 16 | 44 | 12 | 20 | .308 | .302 | |
연도 | 소속팀 | 경기수 | 타수 | 타율 | 안타 | 2루타 | 3루타 | 홈런 | 타점 | 득점 | 도루 | 볼넷 | 장타율 | 출루율 |
2013 | 요코하마 | 108 | 371 | .294 | 109 | 15 | 2 | 11 | 50 | 57 | 3 | 27 | .434 | .361 |
연도 | 소속팀 | 경기 | 타수 | 타율 | 안타 | 2루타 | 3루타 | 홈런 | 타점 | 득점 | 도루 | 볼넷 | 장타율 | 출루율 |
2014 | CLE | 15 | 41 | .341 | 14 | 1 | 0 | 1 | 6 | 8 | 3 | 7 | .439 | .429 |
연도 | 소속팀 | 경기 | 타수 | 타율 | 안타 | 2루타 | 3루타 | 홈런 | 타점 | 득점 | 도루 | 볼넷 | 장타율 | 출루율 |
2015 | 한화 | 10 | 33 | .273 | 9 | 2 | 0 | 0 | 5 | 2 | 1 | 4 | .333 | .405 |
<colbgcolor=#ffff88>
MLB 통산 (7시즌) |
598 | 1953 | .282 | 550 | 74 | 27 | 12 | 136 | 288 | 120 | 145 | .366 | .343 | |
NPB 통산 (1시즌) |
108 | 371 | .294 | 109 | 15 | 2 | 11 | 50 | 57 | 3 | 27 | .434 | .361 | |
KBO 통산 (1시즌) |
10 | 33 | .273 | 9 | 2 | 0 | 0 | 5 | 2 | 1 | 4 | .333 | .405 |
7. 관련 문서
[1]
T! 나이저 모~건~ (토니 플러쉬!) T! 나이저 모~건~(토니 플러쉬!) T! 승리를 위하여~ 오오오~ 오오오오~ x2
[2]
모건이 방출된 이후엔
김경언이 이 응원가를 물려받았다. 하지만 김경언도 그해 방출되면서 이 응원가의 주인공은 그해 방출된다는 저주가 생겼다.
[3]
ゴーゴーゴーモルガン ゴーゴーゴーモルガン ゴーゴーゴーモルガン ナイジャー・モーガン (고고고 모건 고고고 모건 고고고 모건 나이저 모건)
[4]
이 해에 규정타석 3할(내셔널리그 10위)를 기록했으며 도루는 내셔널리그 전체 2위를 기록했다. 사실상 커리어하이 시즌.
[5]
유망주 랭킹 900위대 선수가 메이저리그에 승격을 하는 일도 희박한데 주전으로 자리까지 잡을 정도이니 인간 승리라고 할만하다.
[6]
한국에 오기 전에도 이미 600만 달러 정도를 벌어놨을 만큼 금전적으로도 궁하지도 않은 선수였다.
[7]
팬들의 T-플러시는 응원가 율동이다.
[8]
용병에게 기대하는 타율보단 좀 낮지만 고작 10경기, 42타석으로 표본이 너무 적다.
[9]
내로라하는 일류타자들마저 첫 10경기 정도는 처참한 스탯을 찍다가 평균으로 회귀하는 건 흔하다.
[10]
모건의 경기수의 12배, 타석수의 거의 4배
[11]
2014년
두산 베어스에서 7월까지 있다가 방출된 그 선수 맞다.
[12]
2015년 동시기에 모건은 한국으로 산체스는 일본 라쿠텐으로 입단 했지만 산체스도 일본에서는 부진한 성적을 기록하고 시즌 이후 방출 되었다.
[13]
공교롭게도 그 날 싸움이 난 세 명 모두 메이저에서는 실패하여 아시아에 진출했던 선수들이다.그리고 세 명 모두 통산 600-800만 달러를 벌어서 용병들 중에서는 나름대로 잘나갔던 선수이기도 하다
[14]
알버트를 여성형으로 바꿔 부른 것. 쉽게 말해 계집애 같다고 깐 것이다.
[15]
이는 'beast mode'라고 하여, (당시 모건이 뛰었던) 2011년 밀워키 브루어스 선수들 사이에서 유행했던 팀 세레머니다. 당시 팀의 주축 선수들이던
라이언 브론,
프린스 필더,
리키 윅스 등이 같은 포즈를 취하고 있는 사진을 많이 찾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