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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 해저터널 Korea–Japan Undersea Tunnel 韓日トンネル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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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3월 논의 노선도 기준[1] | |
<colbgcolor=#003764><colcolor=#fff> 분류 | 고속철도(여객), 화물철도(물류) |
거리 |
한일연구회 B안 기준 = 총 288km[2] (해저 128km) 부산연구원 C-1안 기준 = 총 222km (해저 147k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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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한반도와 일본 열도를 잇는 철도 전용 해저터널 구상.2. 역사
2.1. 초기 구상
1917년, 일본 육군 참모본부의 고이소 구니아키[3]가 최초로 구상을 제안했다. 공사비 8억엔, 공사기간 21년, 철도 터널로 구상했다.1930년대, '대동아 종관철도' 구상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일본, 한국, 만주(선양), 북중국(베이징), 남중국(난징), 베트남(하노이), 태국(방콕), 말레이반도(싱가포르)까지 철도 연결을 구상했다.
1935년, 일본 내무성 토목국 도로과가 공사비 10억엔, 공사기간 25년, 도로 터널로 구상했다.
1938년 2월, 일본 철도성의 '중앙아시아 횡단철도 계획'의 일부로 제안되었다. 이는 가상 적국인 러시아의 시베리아 횡단철도를 대체하자는 주장이었다. 이에 일본 체신성이 대한해협의 해저 지질조사를 계획했다.
1939년, 일본 철도성의 '유라시아 횡단 철도 계획'의 일부로 제안되었다. 이는 같은 추축국인 나치 독일과 연결하며, 태평양 전쟁으로 위험해진 해로를 대신해 육로로 교역길을 대체하자는 주장이었다.
1941년, 쓰시마섬에서 지질조사가 진행되어, 규슈 방향으로 600m 시험 굴착이 이뤄졌다. 5월엔 '동아시아 교통학회'가 설립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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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2년 3월 구상된 대동아종관철도 |
1942년
- 3월, 전문지 '과학주의공업'이 대동아종관철도 구상을 발표했다. 한일 해저터널이 포함되었다.
- 8월, 국무회의에서 '대동아 건설 심의회'가 설립되고, 남만주철도주식회사(만철) 주관으로 '대동아종관철도'를 정식 계획하고, 건설 예비작업을 했다. 한일 해저터널이 포함되었다.
1943년, 일본 제국이 물자-인력이 부족해지자 대동아종관철도 건설 계획을 취소하고, 해당 토지계획 조직을 일본 내무성으로 재배치했다.
1949년, 일본 철도성이 도쿄~시모노세키 간 신칸센 건설 기준 책정시 부대적으로 한일 해저터널도 건설을 제안했다.
2.2. 1980년대
1981년 11월, 한국 통일교의 문선명 총재가 서울에서 열린 '제10회 과학의 통일에 대한 국제회의'에서 세계인을 묶어 경제문화교류를 촉진하자는 취지에서 '국제평화고속도로(국제하이웨이)' 구상을 제안하고, 그 기점을 한일 해저터널로 삼아 논의를 재개했다. 이 회의에 참석한 니시호리 에이사부로 교토대 교수가 구상에 감명을 받고 일본에 귀국해 담론을 펴기 시작한다.1982년
- 2월 9일, 일본 '세계평화교수아카데미'가 '총괄위원회'를 조직하고 연구를 개시했다.
- 4월, 통일교 일본지부 측이 '국제하이웨이건설사업단(IHCC)'을 설립하고 #, 육상의 보오링조사, 해저의 초음파탐사를 했다.
- 연말, '제11회 과학의 통일에 대한 국제회의'에서 이토 카죠 교수가 건설사업단의 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구상을 발표했다. 공사기간을 25년으로 추정했다.
1983년
- 5월 24일, 일본 홋카이도대학 사사 야스오 명예교수가 '일한터널연구회'를 설립했다.
- 7월, 국제하이웨이건설사업단 측이 육상부 보오링조사, 해저부 초음파탐사 등을 실시했다.
1986년
- 10월, 일본 국제하이웨이건설사업단 측의 한일해저터널 파일럿(예비조사) 터널 기공식이 가라쓰시에서 열렸다.[4] 1기 공사로 1986년 10월부터 1987년 9월까지 210m를 팠다.
- 10월, 한국 측에서 '국제하이웨이연구회 부산지부'를 설립했다.
1988년
- 한일연구회-일한연구회가 3개 노선, 7개 공법을 제시했다. 2000년 12월 대한터널협회지의 소개
- 5월, 일본 국제하이웨이건설사업단 측이 파일럿 터널 2기 공사로 1988년 5월부터 1991년 3월까지 410m까지 팠다.
- 10월, 한국 측이 '재단법인 아세아기술협력회'를 세워 거제도에서 보오링 조사를 실시했다.
2.3. 1990년대
1990년 5월, 한국 노태우 대통령이 방일 당시 제안했다.1991년 1월, 일본 가이후 도시키 총리가 긍정적으로 화답했다.
1992년 3월, 한국 측도 '한일터널 기술연구회'를 설립했다.
1994년 5월, 영국과 프랑스 사이를 잇는 채널 터널이 성공리에 완성되자, 한국과 일본 사이에서 담론이 일었다.
1996년 3월, 한국 건설교통부에 한일연구회 측이 '국제하이웨이 구상과 한일터널 프로젝트 추진현황'을 보고한다.
1999년
- 1월, 대한토목학회 회장 등 14명 일행이 일본 측 현장견학 및 일한연구회 사업설명회를 참석했다.
- 3월, 대통령 비서실 요청으로 한일연구회가 사업추진현황 및 활동현황을 보고했다.
- 9월, 김대중 대통령이 일본 순방에서 언급했다.
2.4. 2000년대
2000년- 5월, KBS가 "세계는 지금 철도 르네상스" 프로그램으로 한일 해저터널을 기획 취재했다.
- 5월, 한일연구회-일한연구회 회장단이 도쿄에서 만나, 각국 입장정리, 기술적 과제, 거버넌스 등을 논의했다.
- 8월, KBS 9시 톱뉴스로 "대통령의 일본방문 의제로 선정되었다는 것은 잘못된 것"이라며 보도했다.
- 8월, 중앙일보 국제판에 '일본판 철의 실크로드 러시아 직통 노선 추진' 보도 - 한일 해저터널 대비 사업비가 10% 수준에 불과하고, 유럽 물동량이 일본으로 가서 부산항이 위축될 것으로 예상했다.
- 10월, 모리 요시로 일본 총리가 서울에서 열린 아시아 유럽 정상회의(ASEM)에서 "한일 해저터널을 만들어 ASEM 철도라 이름을 붙이자"고 언급했다.
2002년
- 6월, 건설교통부가 한국교통연구원에 '한일 해저터널의 필요성 연구'를 의뢰했다.
- 9월, 노자와 다이조 자민당 의원 등 5명의 일본 대표단이 거제도를 찾아 김혁규 경상남도지사와 구상을 논의했다.
- 9월, 러시아 외무차관도 한일 해저터널 구상이 미래에는 가능할 것이라고 언급했다.
2003년
- 2월, 노무현 대통령이 방일 당시 제안했다.
- 9월, 건설교통부의 의뢰에 한국교통연구원은 일한터널연구회가 제시했던 3개 노선을 검토한 결과 건설비를 20조원으로 잡더라도 비용대비편익(B/C)가 0.4~0.5에 불과해 '타당성이 없다'고 발표했다. #
- 일본 자민당이 한일해저터널 건설을 100년동안 이뤄야 할 3대 국가과제로 선정했다.
- 아소 다로가 의장으로 있는 '꿈 실현 21세기 의회'의 '국가 만들기 꿈 실현 검토 위원회', 규슈 출신 의원들을 중심으로 한 '한일해저터널 추진의원연맹' 등이 이를 검토했다. 하지만 두 위원회는 2010년대 이후 활동을 사실상 중단했다.
2004년 2월, 정동영 열린우리당 의장이 추진 명분이 있다고 언급했다.
2006년
- 10월, 일본 국제하이웨이건설사업단 측이 파일럿 터널 3기 공사로 547m까지 팠다.
- 11월, 김대중 대통령이 UN ESCAP 교통장관회의에서 언급했다.
2007년
- 1월, 고건 전 총리가 대선공약으로 검토했다.
- 4월, 아리이 히로유키 일본 신당 간사장이 '한일터널을 짓자는 한국 전 대통령들의 제안을 지지' 언급했다.
- 4월, 허남식 부산광역시장이 공식적으로 타당성 여부를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2008년
- 1월, 한일터널연구회가 사단법인으로 설립되었다.
- 2월, 후쿠다 야스오 일본 총리도 구상에 대해 언급했다. #
- 6월, 부산발전연구원이 태스크포스(TF)를 만들었고 한 차례 세미나를 실시했다.
- 10월, 박삼구 금호그룹회장이 한일경제인회의에서 공동연구를 제안했다.
- 10월, 정정길 대통령실장이 사업타당성조사를 긍정적으로 검토한다고 발언했다.
2009년
- 1월 8일, 일본 통일교 주도의 '국제하이웨이 건설사업단'이 '재단법인 국제하이웨이재단'으로 새로 설립되었다.
- 2월 17일, 한일터널연구회/일한터널연구회 두 단체는 건설 플랜을 짜기 위한 공동위원회를 구성키로 합의했다. 단층 때문에 부산보다 거제 연결이 유리하다고 판단했다. #
- 10월, 하토야마 유키오 일본 총리가 서울 방문 때 구상을 논의했고, 양국 조사단이 2010년 1월 합동위원회를 구성하겠다고 발표했다.
- 12월, 한일협력위( 남덕우 전 총리, 나카소네 전 총리)가 "한일 해저터널이 장기적으로 동북아 통합에 기여해 적극적으로 검토에 의견 일치" 공동성명을 발표했다.
- 12월, 부산발전연구원이 한일연구회의 C노선의 대안노선인 C-1, C-2노선을 제안했다. 하단 목차 참고.
2.5. 2010년대
2010년- 12월, 통일교가 김인호 전 청와대 경제수석이 이사장으로 있던 사단법인 '시장경제연구원'에 '한일터널 건설의 타당성과 효과적 추진방향에 대한 연구' 과제를 의뢰한 결과, 67조~96조원의 사업비가 들 것으로 예상했다. #1, #2, #3
2011년
2013년
- 3월 28일, 쓰시마 시 의회가 일본 정부에 한일해저터널 조기건설을 촉구하는 안을 통과시켰다.
- 11월, 투르키예의 보스포루스 해협 터널 건설에 대해,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도쿄에서 이스탄불까지 신칸센이 달리는 꿈을 같이 꾸지 않겠습니까"라고 축사를 보냈다.
2014년
- 8월 29일, 박삼구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이 한일해저터널을 주장했다. #
- 9월 11일, 통일교 측이 쓰시마섬 이쓰하라마치에 새로 터널을 파고, '한일해저터널 조사 사갱'으로 이름붙여 기공식을 열었다. #
2016년
- 3월 31일, 부산광역시는 5억원 가량의 용역비를 확보해 사업을 검토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
- 7월 15일, 부산광역시의회에서 부산발전연구원 최치국 박사를 불러 질의했다. "공사비는 들쑥날쑥합니다마는 환율에 따라서 다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래서 한 75조에서 100조", "일본 측에는 많은 조사가 이루어졌는데 우리 한국 측에는 조사가 되어 있지 않습니다. 조사에 필요한 돈이 약 100억", "파급효과(편익)이 가장 큰 곳은 우리 부산", "편익을 산정하는 데는 통행량의 영향을 많이 받는데 통행량 부분이 너무 가정이 많아", "일본측은 시공성을 중시해 연구회B안, 우리측은 수요중심지연결을 중시해 가덕도안", " 채널 터널 뚫을 때 영국이 이득을 볼 것으로 예상했으나 실제론 프랑스가 이득 봐" 등을 말했다. #
2017년
- 1월 11일, 부산광역시가 기초연구용역을 시행하기로 했다. # 계획보다 지연되어 2017년 9월 ~ 2018년 11월까지 시행되었으며, 9천만원을 투입했다.
- 11월 28일, 일본측 인사들의 '일한터널 추진 전국 회의'가 도쿄에서 열렸다.
2019년
2.6. 2020년대
2021년- 2월 1일, 김종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한일 해저터널을 검토해보자는 의견을 내자 큰 파장이 일었다.[5] #
- 국민의힘 반응
- 홍준표 의원은 오전 페이스북으로 "어제 오늘 나온 공약이 아니다", "더불어민주당이 이걸 두고 일본에 더 이익이 많느니, 토착왜구니 하고 또 반일 프레임을 짜는 것을 보니 참 못된 사람들이라는 생각이 든다", "바야흐로 세계는 하나로 가고 있는데 언제까지 철 지난 민족 감정에 사로잡혀 좁은 우리 속을 벗어나지 말아야 하느냐" 등을 말했다. #
- 김희국 의원은 "이명박 정부 당시 국토교통부 차관을 역임하면서 한일 해저터널에 대해 조사한 결과 한국의 이익이 적고, 자금이 많이 드는데다, 국방상으로는 자위대의 한반도 침략 루트로 악용될 가능성이 있다" 등을 말했다. #
- 더불어민주당 반응
- 박인영 부산시장 예비후보는 "일본만 이롭게 하는 한일 해저터널 공약, 국민의힘은 친일당인가" 등을 말했다. #
- 최인호 수석대변인은 오전 서면 논평으로 "일본 이익이 더 클 수 있다는 점에서 추진력을 얻지 못한 친일적 의제" 등을 말했다. #
- 홍익표 정책위의장은 오전 라디오 인터뷰로 "우리가 얻는 수익이 5라면 일본이 얻는 수익은 500 이상" 등을 말했다. #
- 양기대 의원은 "대륙 철도 출발점을 헌납하는 매국행위" 등을 말했다. #
- 김승원 의원은 "환태평양 물류거점을 규슈에 뺏길 수 있다" 등을 말했다. #
- 김진애[6] 의원은 "일본 항만 경쟁력 유지를 위한 전략인데 왜 하냐" 등을 말했다.
- 2월 11일, MBC가 발표한 여론조사에서 찬성 30.8% 반대 53.2%가 나왔다. 더불어민주당 지지층은 찬성 16.4% 반대 73.2%, 국민의힘 지지층은 찬성 46.6% 반대 34.1%가 나왔다. #
- 4월 6일, 안병민 한반도경제협력원 원장은 "경제성 없지만, 동북아 경제권 차원서 장기 검토해야" 등을 말했다. #
- 7월 7일, '유라시아 큰길 비전발표회'가 열렸다. 김태호, 홍준표 국민의힘 의원이 축사했다. 박진희 한국해양대학교 교수가 편익과 비용을 발표했다. #
- 10월 19일, 원희룡 국민의힘 대선경선후보가 한일해저터널을 하이퍼루프로 짓겠다고 공약했다. 최종 후보에 선발되지 않았다. #
- 11월 20일, 통일교 주최로 가평에서 연례 포럼이 열렸다. #
- 짐 로저스는 "한국과 일본은 물론 세계에 큰 변화를 가져올 사업", "도쿄에서 런던까지 선박을 이용했을 때 걸리는 시간보다 운송시간이 적어도 2~3주 단축될 것" 등을 말했다.
- 안병민 한반도경제협력원 원장은 "아직도 일제강점기 침략 수단 내지 위험한 통로라는 이미지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남북전쟁으로 분열됐던 미국은 동과 서를 연결하면서 평화와 통합, 번영의 시대를 맞이했다" 등을 말했다.
- 노다 토시야수 일본 세이난학원대학 법학부 교수는 "동북아 정세가 복잡해지면서 일대일로에 대한 인접국의 관심이 감소", "물류가 활발하지 않다면 한일해저터널의 가능성은 낮아질 수 있다" 등을 말했다.
2022년
- 5월 3일, 일본에서 통일교 관련 국제하이웨이재단이라는 단체가 1986년부터 가라쓰에서 계속 파고 있는 터널을 취재하기도 했다. 터널을 파는데 150만엔 정도가 들었으며, 자금문제로 중단했을 뿐, 충분히 기술력은 있으며 총 공사비는 10조엔으로 예상한다고 답했다. 일본 FNN 취재영상(자막없음)
- 10월 20일, 통일교 주최로 가평에서 연례 포럼이 열렸다. 박성열 한일터널연구회 이사는 미국도 사업에 참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관세 전 통일부 차관은 동북아 지역의 평화·번영을 실현하고 평화경제를 실현할 수 있는 정책으로 평가했다. #
2023년
- 1월 13일, 마이니치 신문은 통일교가 한일해저터널을 짓기 위해 14만평의 땅을 매입했다고 주장했다.[7] #
- 2월 27일, 통일교, 신통일한국, 천주평화연합(UPF) 등이 부산에서 한일해저터널 추진을 촉구했다. #
- 4월 10일, 통일교 부설 남산시민대학, UPF 측이 일본 가라쓰시 한일해저터널 공사현장을 방문했다. #
- 9월 5일, 이 사업을 추진을 주장하는 신한일미래포럼의 창립총회가 개최되었다. #
- 10월 4일, 이용흠 사단법인 한일터널연구회 공동대표 겸 신한일미래포럼 준비위원장이 인터뷰를 진행했다. #
2024년
- 1월 17일, 제22대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진주시 을 선거구의 박술용 국민의힘 예비후보가 건설을 공약했다. 공천되지 않았다. #
- 2월 19일, '(사)한일터널연구회'가 정기총회로 '신한일미래포럼'에 흡수통합되기로 하고, 이용흠 이사장 1인 체제로 변경했다. #
- 4월 23일, 양창식 세계피스로드재단이 '2024 한일 피스로드 포럼'을 개최했다. 세이칸 터널을 건설한 다케우치 유우조 공학박사가 참석해, 기본설계가 진행중이라고 밝혔다. 기존 2010년 3월에 부산연구원/일한연구회가 종합한 2개 노선안을, 지형-지질 조사 및 디지털 멀티채널 음파 탐사를 통해 좀 더 다듬었다. 신규퇴적층에 이수식 실드TBM공법으로 건설할 것을 제안하며, 공정-공사비-수요전력-발생토량-환경영향평가가 진행중이라고 밝혔다. 양창식 UPF 세계의장, 박성열 UPF 부산회장, 이승호 한일터널연구원 이사장(상지대 교수, 전 대한토목학회) 등이 이 설계안에 대해 의견을 냈다. #1, #2
- 6월 5일, 원유철 전 미래한국당 대표가 국제대학교 특강에서 한일해저터널, 한중해저터널, 한러열차페리를 하자고 주장했다. #
- 9월 5일, 신한일미래포럼이 창립 1주년 강연을 개최했다. #
- 9월 10일, 원유철 전 미래한국당 대표가 국민대학교 특강에서 6월과 동 내용을 발표했다. #
3. 논쟁거리
자세한 내용은 한일 해저터널/논쟁거리 문서 참고하십시오.4. 제안 노선
1988년, 한일해저터널연구회와 일한터널연구회가 A, B, C 안을 냈다.- 2003년 9월, 한국교통연구원의 검토 결과, 2003년 기준 건설비 20조원이면 비용대비편익(B/C)이 0.4~5 수준이라 타당성이 없다고 판단했다.
2009년 12월, 부산발전연구원[8]이 '한일터널과 동북아 통합교통망 구축을 위한 기초연구' 보고서로, 한일연구회 C안을 보완하는 C-1, C-2안을 냈다. #
- 수요중심지 간에 연결해야 경제성이 있다는 논리로, 한국쪽 종점을 거제가 아닌 부산으로 제시했다. 다만 기존 연구회C안은 해저단층을 지나므로, 살짝 서쪽으로 남형제도를 찍고 가덕도를 연결하는 방식이다. 목도를 연결하는 C-2안도 검토했으나 비용이 높았다.
- 수요중심지 간에 연결해야 경제성이 있다는 논리로, 일본쪽 종점을 카라츠가 아닌 하카타로 제시했다. 다만 이키섬-하카타를 직선연결하면 해저터널 거리가 25km에서 60km로 늘어나므로, 연구회 안대로 카라츠로 해저터널은 뚫되, 운행계통만 하카타를 종점으로 하는 것을 대안으로 거론했다.
- 2010년 3월, 한일연구회와 부산발전연구원이 회의한 결과, 연구회 측은 시공성이 최적인 B안을 선호했고, 부산발전연구원 측은 수요중심지 연결이 최적인 C-1안을 선호했다. 건설기간 10년, 건설비 100조원으로 예상했다. #
- 2011년 1월, 한국교통연구원이 검토 결과, 2010년 기준 건설비 100조원이면 비용대비편익(B/C)이 0.2~3 수준이라 타당성이 없다고 판단했다.
2024년 4월, 세이칸 터널을 건설한 다케우치 유우조 공학박사가 세계피스로드재단의 포럼에 참석해, 기본설계가 진행중이라고 밝혔다. 기존 2010년 3월에 부산연구원/일한연구회가 종합한 2개 노선안을, 지형-지질 조사 및 디지털 멀티채널 음파 탐사를 통해 좀 더 다듬었다. 신규퇴적층에 이수식 실드TBM공법으로 건설할 것을 제안하며, 공정-공사비-수요전력-발생토량-환경영향평가가 진행중이라고 밝혔다. #1, #2
4.1. 1988년, 한일연구회 안
한일해저터널 A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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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거제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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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해저터널 B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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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부선,
경부고속선 부산 도시철도 1호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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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 2009년, 부산연구원 안
한일해저터널 C-1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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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2.6 | 하카타 | 博多 |
¶
JR 큐슈
큐슈 신칸센 ¶ JR 서일본 산요 신칸센, 하카타미나미선 가고시마 본선 (00), 후쿠호쿠유타카선 (00) ¶ 후쿠오카시 교통국 공항선 (K11) |
후쿠오카현 후쿠오카시 하카타구 |
한일해저터널 C-2안 |
|||||
㎞ | 역명 | 환승노선 | 위치 | ||
0.0 | 부산 | 釜山 |
경부선,
경부고속선 부산 도시철도 1호선 |
[[대한민국| ]][[틀:국기| ]][[틀:국기| ]] |
부산광역시 동구 |
- | 쓰시마 | 対馬 |
[[일본| ]][[틀:국기| ]][[틀:국기| ]] |
나가사키현 쓰시마시 | |
- | 이키 | 壱岐 | 나가사키현 이키시 | ||
215 | 하카타 | 博多 |
¶
JR 큐슈
큐슈 신칸센 ¶ JR 서일본 산요 신칸센, 하카타미나미선 가고시마 본선 (00), 후쿠호쿠유타카선 (00) ¶ 후쿠오카시 교통국 공항선 (K11) |
후쿠오카현 후쿠오카시 하카타구 |
5. 여담
- 채널 터널의 해저구간이 세계 최장인 37.9km인데, 한일 해저터널이 지어지면 부산-쓰시마 구간이 60km로 최고기록이 된다. 또한 채널 터널은 영불/불영터널로 나라이름을 붙지 않고 해협 이름을 사용했다. 하지만 한국과 일본 사이의 해협은 국제공인된 이름이 대한해협임에도 '대한 해저터널'이 되기 어렵다. 이는 일본이 "세 구간으로 나눠 부산해협/쓰시마해협/현해탄으로 나눠 부르자"며 명칭 분쟁을 시도하기 때문. 이 때문에 나 먼저 원리에 따라, 대한민국은 '한일' 해저터널, 일본은 日韓トンネル(닛칸톤네루, 일한터널)이라고 부른다.
- 통영 해저터널은 동양 최초의 해저터널이다. 통영 해저터널이 한일 해저터널 계획의 시범타였다는 이야기가 있다. #
- 2016년 출시된 게임 Hearts of Iron IV에서 ' 2차 세계대전에서 추축국이 승리했다'는 대체역사 모드인 The New Order: Last Days of Europe에서는 일본 제국이 건설했다는 설정이 나온다. 군대가 육로를 통해 일본에서 한반도로 넘어갈 수 있게 구현되어 있다.
6. 관련 문서
- 도로 연결
- 한국~일본 - 아시안 하이웨이 1호선 ( 일본 382번 국도 포함)
- 사우디~이집트 - 홍해 대교
- 러시아 - 크림 대교
- 튀르키예 - 차나칼레 1915 대교
[1]
한일연구회가 1988년 3개 안을 제시했다. 부산연구원이 2009년 2개 안을 추가제시했다. 2010년 3월에 두 단체가 5개 안을 함께 검토했다. 한일연구회 측은 시공 최적인 B안을, 부산연구원 측은 수요 최적인 C-1안을 선호한다고 밝혔다. 2024년 4월, 세이칸 터널을 건설한 다케우치 유우조 공학박사 역시 이 두 노선에 대해 기본설계를 진행한다.
[2]
부산역이 아닌 거제역을 종점으로 보면 총 220km.
[3]
이후 1938년 예편하여 대동아성 대신, 1942년 조선총독, 1944년 내각총리대신, 1945년
극동국제군사재판에서 전범 유죄, 1950년 사망.
[4]
해변은 아니고
카라츠역 조금 북단이다.
[5]
이는
2021년 재보궐선거를 앞두고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이
가덕도신공항으로 공세를 하자, 가덕도신공항만으론 경제가 나아질 수 없다는 취지였다.
[6]
당시
열린민주당, 후일 합당
[7]
이 직전
아베 신조 피살 사건으로 일본 내 통일교에 대한 적대적 여론이 일어 통일교에 대한 기획취재가 늘었다.
[8]
2018년 12월 '부산연구원'으로 개칭.
지방연구원 문서 참고.
[9]
연구회 측에서 공개한 지도상 위치로 보아 부산신항선 부산신항역(구 녹산역)의 부지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