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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인디애나폴리스 콜츠 시절
콜츠에서 그는 들어오자마자 주전 쿼터백으로 자리잡고 NFL 유일한 AP MVP 4회 수상이라는 금자탑을 쌓았으며, 무엇보다 마리노에게 없는 41회 슈퍼볼 우승반지를 콜츠를 우승시키면서 얻었다. 하지만 콜츠는 톰 브래디의 패트리어츠처럼 다 만들어진 팀에 브래디가 뚝 떨어진 팀이 아니라, 전년도에 리그 꼴찌를 해서 페이튼을 뽑고도 페이튼의 팀을 만들고, 나머지 수비를 보강하기 위해 몇년간 더 준비가 필요했던 약체팀이었다. 그래서 98년 데뷔 후 팀을 본궤도에 올리는데도 몇년이 걸렸고, 팀이 완성되고 슈퍼볼 첫 출전까지는 무려 10년이 걸렸으며,한때 이런 비아냥까지 들었을 정도.[1]
98년 데뷔 시즌에는 매닝은 무려 28개의 인터셉션을 던졌다. 이는 훗날 제이미스 윈스턴이 깨기 이전까지는 역대 최다였다. 다만, 이 시즌에도 매닝은 26개의 터치다운을 기록하며 루키 터치다운 신기록을 기록했다.[2] 그리고, 99년도에는 인터셉션을 반으로 줄였고 매닝은 프로볼에 선발되는 등 2년차부터 건실한 활약을 이어간다.
98년과 2001년을 제외하면 모두 플레이오프에 진출했지만 이때의 콜츠는 본인의 능력으로 플레이오프 진출 정도가 잘한 시즌이었고 라이벌인 톰 브래디의 뉴잉글랜드 패트리어츠는 3번의 슈퍼볼 우승을 자랑하는 초 강팀이었다. 당연히 상대가 되지 않았으며[3], 페이튼에게 플레이오프에서 직접 좌절을 안겨준 팀은 샌디에이고 차저스와 뉴욕 제츠 같은 복병 팀들이었고 이들 때문에 뉴잉글랜드와 직접 붙을 기회는 적은 편이었다. 특히나 2008 시즌은 차저스가 8승 8패로 운빨 지구우승을 했는데 이 해에도 차저스한테 졌다...
그래서, 2002년 탬파베이 버커니어스를 지휘하던 덕장 토니 던지를 헤드코치로 영입하여 전력을 키우고, 패트리어츠가 주축 수비수들의 줄이탈로 전력이 약화된 틈을 놓치지 않고 2005년 정규시즌에서 패트리어츠 원정경기에서 처음으로 승리를 거두고, 2006년 플레이오프에서 벤 로슬리스버거가 이끄는 피츠버그 스틸러스에 일격을 당하기도 했지만[4], 다음해인 2007년 패트리어츠를 AFC챔피언쉽에서 꺾으며 슈퍼볼 41에 진출해 그대로 우승해 커리어 10년만에 처음으로 슈퍼볼 우승을 차지했다[5].
슈퍼볼 우승 전까지는 정규시즌에는 강하나 큰 경기에 약한 새가슴 쿼터백의 대명사로도 통했다. 실제로 플레이오프 기록이 정규시즌에 못미친다. 거기다 반대로 큰경기에서 맹활약하며 6번의 슈퍼볼 우승을 차지한 2년 후배 톰 브래디와 비교되어 본인도 스트레스가 상당했을 듯. 이는 2000년대 메이저리그에서 초특급 유격수 자리를 놓고 경쟁하던 알렉스 로드리게스와 데릭 지터와의 관계와 닮아있다.
슈퍼볼 41 우승 이후에는 우승을 위해 쇼미더머니를 시전한 후유증으로 주축 선수들의 노쇠화 및 복병들의 등장으로 어려움을 겪었다. 피츠버그 스틸러스, 뉴욕 제츠,볼티모어 레이븐스 등 만만치 않은 경쟁자들에게 플레이오프에서 패하거나 2010년 3년만에 다시 진출한 슈퍼볼 44에서 드류 브리스가 이끄는 뉴올리언스 세인츠에 일격을 당하는 등 페이튼 역시 반지 하나를 더 추가하기가 어려웠다. 브래디 역시 일라이에게 2008년 슈퍼볼 XLII(42)에서 일격을 당하는 등 두 쿼터백에겐 고난의 시간.
NFL이 파업 직전까지 갔다가 돌아온 2011시즌 5년 9,000만 달러의 새 계약을 맺었다. 기존의 연간 2,000만 달러 이상의 캡스페이스를 줄여서 팀의 샐러리캡 부담을 덜어냈다. 사실상 인디애나폴리스 콜츠에서 뼈를 묻을 것처럼 보였는데.. 그런데 계약하고 나서 악화된 목 부상[6] 때문에 2011년 시즌을 포기해버렸다(…). 덕분에 브렛 파브의 연속경기 선발출전 기록에의 도전도 좌초해버렸다.
덕분에 콜츠도 2011년은 완전 포기하고 시즌 최종성적 2승 14패로 동률인 램스를 제치고 리그 전체 최하위가 되었다. 따라서 2012년 드래프트 1순위는 확정. 2012년 드래프트에는 스탠퍼드 대학교의 앤드류 럭이라는 걸출한 쿼터백이 나오던 해였던 터라 만약 콜츠가 럭을 지명하면 천만 달러 이상의 고액 연봉 쿼터백을 두명이나 보유하게 된 꼴이 되었는데, 만인의 예상대로 콜츠는 럭을 지명했고 때문에 이 둘의 관계가 브렛 파브와 애런 로저스의 관계처럼 되는게 아니냐는 예상이 나왔다.
결국 페이튼 매닝은 자신의 현역 연장을 위해 2012년 3월 7일부로 기자회견을 열고 '콜츠를 떠난다'고 발표했다.
한편, 18번은 브롱코스에서는 페이튼이 입단하기 전에 이미 영구결번으로 되어 있었다. 팀 역사상 최초의 주전 쿼터백인 프랭크 트리퍼카(Frank Tripucka, 1927 - 2013, 재적 1960 - 1963)의 등번호로 프랜차이즈 최초의 주전 쿼터백을 기념하여 영구결번으로 지정한 것이었는데, 페이튼이 브롱코스에 입단한다고 하자 트리퍼카 본인이 자신의 영구결번으로 되어 있는 18번을 사용해도 좋다고 허가를 했고, 페이튼은 콜츠 시절의 등번호를 새 팀, 브롱코스에서도 달 수 있었다. 영구결번 처리된 번호를 부활시킬만큼 페이튼의 역대급 기량과 업적에 대해서는 누구나 다 인정한다는 얘기. [7]
2. 덴버 브롱코스 시절
2.1. 2012 - 2013 시즌: 화려한 부활
그리고 2012년 오랜 공백을 깨고 브롱코스의 주전 쿼터백으로 선발 출장해 팬들 앞에 다시 섰다. 부상 공백과 36세의 나이로 인한 노쇠화의 전조가 보이긴 하지만 여전히 리그 최고의 쿼터백이었던 경험과 카리스마로 브롱코스를 이끌었다. 바이위크 전까지 성적은 3승 3패. 페이튼이 이끄는 브롱코스는 항상 전반에 손발이 맞지 않아 초반 대량실점하며 고전하지만 손발이 맞기 시작하는 후반전만 되면 완전히 다른 팀이 되어 미친듯이 추격해오는 팀이 되었다. 그리고 시즌이 중반을 지나가면서 새 팀에 완전히 적응이 된 듯 왕년의 실력이 어디 가지 않았다는 걸 증명하면서 팀 공격을 이끌고 있었는데, 결국 매직넘버 1을 남긴 13주차 경기에서 승리를 거두면서 7연승으로 가뿐하게 AFC 서부지구 우승 확정. 작년의 쿼터백이 1승만 더 거두면 지구우승을 확정짓는 상황에서 연패 행진으로 마지막 주에 세 팀 간 동률을 허용하고 타이브레이커까지 동원해서 간신히 지구우승을 차지한 것과는 좋은 대조를 이루었다. 전문가들의 반응은 '역시 최고의 쿼터백답다'였다. 결국 11연승으로 시즌을 마치며 브롱코스는 AFC 1번 시드를 거머쥐었다. 최종 성적은 13승 3패. 2012년 매닝은 가장 유력한 MVP 후보중 하나로 거론되기도 했다. 그런데 플레이오프에서는 조 플라코의 볼티모어 레이븐스한테 광탈(...)[8][9] 그래도 한때 은퇴까지 고려했을 정도로 슬럼프가 있었던 지난 세월을 극복하기 위해 끝없는 노력으로 화려하게 재기해서 2012-13시즌 올해의 재기선수(Comeback Player of the Year)로 선정되었다.또한 덴버에 온 만큼 자신이 밀어냈던 테네시 대학교 선배 토드 헬튼을 응원하러 쿠어스필드에 오기도 했다. 헬튼의 은퇴식 때도 가족들을 데리고 구장에 나타나서 선후배간의 관계가 여전히 돈독함을 과시했다.
2.2. 2013 - 2014 시즌: 흑역사급 대참패
그리고 2013시즌 어이없이 플레이오프에서 광탈한 한풀이라도 하듯이 상대 수비진을 미친듯이 폭격하면서 시즌 터치다운과 패싱야드 기록을 갱신하면서 팀을 다시한번 AFC 1번 시드로 이끌더니 플레이오프에서도 그동안 자신을 괴롭혀오던 샌디에이고 차저스와 뉴잉글랜드 패트리어츠를 상대로 완승을 거두면서 팀을 15년만의 슈퍼볼 진출로 이끌었다. 특히 2013시즌의 덴버의 수비진은 매경기 평균 20점에 가까운 실점을 하는 자동문 수준이라 이러한 수비를 공격으로 커버하면서 팀을 이끈 페이튼의 활약이 더욱 빛을 발했다. 커리어 5번째 MVP까지 수상하면서 개인적인 영광은 절정에 달했다.그.러.나.......
2월 2일 (미국시간) 벌어진 슈퍼볼 XLVIII에서 매닝은 생애 최악의 경기를 펼치며, 시애틀 시호크스에게 8 - 43으로 NFL 기록에 남을 대패를 당했다. 35점차의 점수 차이는 1990년 슈퍼볼 XXVI에서 샌프란시스코 포티나이너스가 55 - 10으로 덴버 브롱코스를 대파한[10] 이후 역대 두번째로 큰 점수차.[11] 경기 시작 12초만에[12] 어이없는 스냅 실수로 세이프티 2점을 헌납하면서 불길한 예감을 주더니, 이후 1쿼터 총 전진 야드가 1야드에 그치고, 첫 First down을 2쿼터 후반에 가서야 성공시키는등 시호크스의 철벽 수비에 완벽히 가로막힌데다가, 두 개의 인터셉트까지 당하며 3쿼터 중반까지 0 - 36으로 뒤지는 굴욕을 당하는 등 경기 내용조차 이견이 없는 완벽한 참패.
이로서 매닝은 수퍼볼 우승만 했다면 그 어느 해보다 화려할 수 있었던 2013-14 시즌을 최악의 배드 엔딩으로 마무리하게 되었다.[13] 단순한 패배가 아니라 커리어 전체에서 흑역사로 기록될 수준의 참패였다.
2.3. 2014 - 2015 시즌: 역사를 써내려가다
"Move over Brett Favre, and made roof for the new king!
Peyton Manning! Now has, more Touchdown Passes than any other player, in NFL History!"
509 터치다운 패스 달성 직후 캐스터의 멘트
2014 시즌에서도 건재한 모습을 보여주며
덴버 브롱코스는 6주차까지 5승 1패를 기록, AFC 동부지구 1위를 달리고 있다. 그리고 7주차
샌프란시스코 포티나이너스전에서 개인 통산 509번째 터치다운 패스를 기록,
브렛 파브의 통산 508개의 터치다운 패스 기록을 경신하여 통산 터치다운 패스 부문 1위가 되었다. 뒤이어 다시 한 번 터치다운 패스를 기록하며 매닝의 통산 터치다운 패스는 510개가 되었다. 이 활약에 힘입어 7주차 경기에서 42 - 17로 대승을 거뒀다.
509 TD 패스 달성 현장 영상(Mic'd Up)[14]Peyton Manning! Now has, more Touchdown Passes than any other player, in NFL History!"
509 터치다운 패스 달성 직후 캐스터의 멘트
시즌 최종 16경기 4727야드 패싱과 터치다운 패스 39회로, 불혹을 바라보고 있지만 여전히 리그 정상급 쿼터백임을 몸소 증명해냈다. 팀도 매닝의 활약에 힘입어 디비저널 라운드로 직행하면서 포스트시즌 진출에 성공하였다. 디비저널 라운드에서 맞이한 상대는 본인이 14년간 몸담았던, 그러나 목 부상과 앤드류 럭 지명에 의해 떠나게 된 인디애나폴리스 콜츠였다. 1쿼터에 터치다운 패스를 성공시키며 가볍게 선취점을 따낸 것은 좋았지만, 그 후로 시즌 막판에 보여줬던 불안한 모습이 다시 고개를 들었다. 2차례 색(Sack)과 결정적인 펌블로 공격권을 넘겨주었던데다, 리시버들과의 호흡이 맞지 않아 패스가 이들의 키를 훌쩍 넘기는 장면이 수차례나 발생했다. 결국 13-24로 콜츠에 패배.[15] 사실상 포스트시즌 광탈의 원흉이 되었다. 지역 언론에서도 대차게 까는 상황.
2.4. 2015 - 2016 시즌: 마지막 불꽃, 우승
결국 존 폭스 감독은 경질되었고 현지에서는 "매닝의 복귀가 불투명하다"라는 말까지 나왔다. 하지만 2015년 3월 4일, 400만 달러의 연봉삭감을 감수하면서[16] 2015 - 16 시즌에도 현역으로 뛴다고 발표했다. 단, 2014년 와이드 리시버 에릭 데커와 러닝백 노숀 모레노를 FA로 잃은 데 이어, 2015년 시즌에는 주 타겟 중의 하나이던 타이트엔드 줄리어스 토마스 마저 FA로 잭슨빌 재규어스로 이적함에 따라 페이튼의 공을 받아줄 우수한 공격진들이 유출되고 있는 상황이라 2015년 시즌은 2014년 시즌 이상으로 어려움을 겪을 것으로 보인다.천하의 매닝도 세월의 힘은 이길 수 없는 지 2015 - 16 시즌에는 눈에 보일 정도로 기량이 현저하게 떨어진 모습이다. 브롱코스가 리그 탑급의 수비력을 보여주면서 2015년 11월 8일 현재까지 7전 전승으로 지구 1위를 달리고 있지만 이미 몸상태가 과거처럼 직접 필드를 주무르면서 공격을 지휘할 정도가 못되었기 때문에 헤드코치 개리 쿠비악의 공격콜을 따르는 게임 매니저로 입지가 강등된 상황. 작년에 16경기 15인터셉션을 내준 반면 2015 시즌은 7경기 동안 무려 11개의 인터셉션을 내준 것은 기량이 명백하게 떨어졌다는 것을 보여주는 증거. 그리고 2015년 11월 15일 생애 최악의 경기력 (0.0 레이팅) 을 기록하고 4개의 인터셉션을 내줬다. 더 놀라운 건 이날 패싱 야드 기록 역대 1위로 올라갔지만 이날 이후 지난 시즌 말 문제가 되었던 발목 부상의 재발로 잔여경기 아웃, 덴버 쿼터백은 백업이었던 브록 오스와일러로 교체되었다.
그럼에도 팀은 수비진의 활약으로 페이튼의 부진에도 착실히 승수를 쌓은 덕에 계속 AFC 서부지구의 선두자리를 유지했다. 그리고, 시즌 마지막 샌디에이고 차저스전에서 오스와일러가 이끄는 공격진이 턴오버 5개를 기록하는 눈이 썩는 경기를 보여주자 경기 중반부터 투입되면서 복귀를 알렸다. 투입된 후에는 안정적인 경기운영으로 역전승을 거두고 패트리어츠의 막판 부진을 틈타서 12승 4패로 AFC 전체 1위를 확정지어 1라운드 부전승을 확정지었다.
그 덕에 디비저널 라운드부터는 회복하여 다시 선발 출전하고 있다. 디비전 라운드 피츠버그 스틸러스전에서는 부상결장 이전을 연상시키는 불안한 플레이로 4쿼터 종료 3분전까지 끌려갔으나 수비진의 도움과 막판 분전으로 역전승을 거뒀고, AFC 챔피언십에 진출하여 톰 브래디와의 17번째 대결을 하게 되었다. 매닝의 다음 시즌 복귀가 불투명한 상황이라 이번이 마지막이 될 수도 있다. 패트리어츠가 유리하다는 다수의 예상을 뒤엎고 예전같은 시원시원한 패싱을 선보이진 못했지만 강력한 수비진의 도움을 까먹지 않을 정도의 게임 리딩을 보여주며 브래디와의 어쩌면 마지막이 될 수 있었던 대결을 승리로 장식하고 NFL 역사상 최초로 두 팀을 두 번 이상 슈퍼볼에 진출시킨 최초의 쿼터백이 되었다. 그리고 슈퍼볼 50(Super Bowl 50)에서 24:10으로 승리를 이끌어 사상 최초로 두 팀을 슈퍼볼 우승으로 이끈 쿼터백이 되었다.
그러나 사실 15 - 16 시즌은 평균이하 쿼터백이라고 해도 할 말이 없는 수준이었다. 냉정하게 말해서 철벽 수비진이 없었으면 브롱코스는 올해 우승은 커녕 포스트시즌 진출도 못했을 것이다. 슈퍼볼에서도 OME급 경기력을 보였지만, 특히 4쿼터 펌블, 다행히 팀이 수습 가능선 선에서 끝났고 본 밀러를 위시로한 브롱코스의 철벽 수비진이 MVP 캠 뉴튼을 탈탈 털리면서 우승할 수 있었다.
3. 은퇴
(전략) I finished my Football Race, after 18 years, It's time. God bless all of you, and God bless Football.
페이튼 매닝, 은퇴 선언문의 마지막 문구
슈퍼볼 끝나고 나서
매직 존슨으로부터 "
덴버는 떠나야 하지만 혹시라도 현역 생활을 연장하고 싶은 생각이 있으면, 다음 시즌에
램스로 오라."라고 진지하게 제의를 받았다.[18] 페이튼 매닝, 은퇴 선언문의 마지막 문구
그리고 한국시간 2016년 3월 6일, 대다수의 예상대로 은퇴를 선언했다. FULL 영상 헌정영상 필드에서 항상 평정심을 유지하던 페이튼이었음에도, 현역 생활의 종료에 대한 복합적인 감정 앞에서는 어쩔 수 없었던 것일까. 페이튼은 은퇴를 발표하면서 약간씩 울먹이는 모습도 보였다. 그렇게 내셔널 풋볼 리그, NFL에서 또 한 명의 전설은 미식축구 역사에 영원히 남을 한 획을 긋게 되었다. 브롱코스는 페이튼이 은퇴를 선언하자 그가 사용하던 18번을 다시 영구 결번으로 올렸고, 그렇게 브롱코스의 18번은 프랭크 트리퍼카와 페이튼 매닝의 공동 영구 결번이 되었다.
출장 시즌 | 출장경기 | 패싱 성공율(성공/시도) | 패싱야드 | TD 패스 | 인터셉션[19] | Sack 허용 |
18 | 266 | 65.3%(6125/9380) | 71940 | 539 | 251 | 303 |
위의 표는 페이튼이 18년간의 기나긴 커리어로 남긴 주요 기록이다. NFL 공식 홈페이지에 나온 페이튼의 통산 기록으로 가면 더욱 자세한 것을 볼 수 있다. 저기에 나오지는 않았지만, 페이튼은 플레이오프 경기까지 합쳐 통산 200승을 달성하고 떠났다. 그것도 마지막 200승은 슈퍼볼 우승으로.[20] 마침표를 슈퍼볼 우승으로 찍었으니 유종의 미를 제대로 거둔 셈.
[1]
위 상황은 4년차였던 2001년 시즌 12주차때
샌프란시스코 포티나이너스를 상대로 페이튼 매닝이 인터셉트만 4개를 던지며 21:40으로 대패한뒤, 경기 종료후 당시 인디애나폴리스 헤드 코치인 짐 모라 시니어가 잔뜩 열받은 상태로 인터뷰한 것이다. 내용을 번역하면, 표정부터 썩어있는 상태로 "우선 인터뷰 시작하기 전에 한마디 합시다. 우리 수비수들은 까지 마쇼. OK? 난 상대가 고교팀이건 전문대팀이건 대학팀이건 심지어 NFL팀이건 상관 안해. 우리는 5번이나 턴오버로 공을 뺏겼고 그중 4번은 (페이튼 매닝의) 인터셉트, 한번은
터치 다운까지 먹었고 세번은 전부 터치 다운을 퍼주는 찬스였지. 당신들은 내가 뭘 말하건 까지마쇼, 아무도. 알았소? 그리고 내가봐도 거지같이 못했소. 우리는
게임을 집어던졌고 그냥 방치했다고. 그리고 관광당했지. 내가 봐도 거지같아, 제기랄! (편집이후 기자의 질문에) 뭐...? 뭐? 플↗레이오↘프? 플↘레이오↗프? 지금 날 놀리는 거요? 플↘레이오↗프? 당신 농담해? 플↘레이오↗프? 난 제기랄 당장 이기기나 했으면 좋겠다고, 다음 게임에!" 한편 이 인터뷰의 마지막 대사인 P↗layoff↘? Are You Kidding Me? P↘layoff↗?(플↘레이오↗프? 당신 농담해? 플↘레이오↗프?)는 당시 짐 모라 시니어의 말그대로 썩은 표정과 시니컬한 어투덕에 전미를 강타한 유행어로 20년이 지난 지금도 회자되며, 심지어 쿠어스 맥주같은 광고카피에도 그대로 쓰이던 명대사이자 페이튼 커리어 최대의 흑역사 중 하나.
당시 광고 보기.
[2]
훗날
베이커 메이필드가 27개로 이 기록을 깨고,
저스틴 허버트가 2020년 28개 터치다운을 기록하며 다시 한번 경신.
[3]
수비진이 특히나 부실했다. 수비덕장 던지가 고칠려고 해도 몇년이 걸렸으니....
[4]
그러나 이건 키커 마이크 반더작이 노우드급 엄청난 삽질을 범한게 원인이었다. 그 당시 최고의 키커가 그런 중요할때 이런 범실을 저질렀으니....결국 그는 오프시즌에 방출되었다. 그를 대신한 키커는 역사상 최고의 클러치 키커인 애덤 비나테리
[5]
토니 던지는 그 시즌후에 그전에 있었던 3시즌동안은 우리팀이 훨씬 더 잘뛰어 줬으나, 이번시즌에는 우리가 가장 팀 다웠던 해였다고 말했다. 그 말이 틀린것도 아닌게 콜츠 수비진, 특히 세컨더리진은 던지 감독 부임해 있었을때 그해 유일하게 제대로 해줬기 때문이다.
[6]
위에 언급된 큰형 쿠퍼의 부상 부위와 가까이 있는 쪽이다. 때문에 가족력이라는 설도 있다.
[7]
이와 같은 대우를 받은 케이스로는
제리 라이스가 있는데, 라이스가 현역 커리어 말년
시애틀 시호크스에 입단할 때, 본인의 등번호인 80번은 팀 레전드인 스티브 라전드의 영구결번으로 지정되어 있던 상태였다. 비록 현역 말년이라 기량이 많이 쇠퇴했음에도 불구하고, 라이스가 입단한다고 하자 라전드는 흔쾌히 자신의 번호를 달아도 좋다는 의사를 표시했고 라이스도 고락을 같이한 80번을 은퇴할 때까지 달 수 있었다.
[8]
4쿼터 막판까지 35-28로 이기고 있다가 종료 41초 남기고 조 플라코 - 자코비 존스로 이어지는 70야드 TD를 맞는 바람에(...) 승리를 날려먹었고, 연장전에서
필드 골 맞고 패배했다. 막판 레이븐스의 TD는 2015년 12월에 나온
Top 10 Hail Mary Plays of All Time!에서 10위에 선정된 장면이다.
[9]
레이븐스는 AFC 4번 시드로 시작했다. 그러나 레이븐스의 쿼터백
조 플라코가 그야말로 신들린 플레이를 보여주며 와일드 카드 라운드에서는
앤드류 럭이 이끄는 '페이튼의 직전 시즌까지의 소속팀'
인디애나폴리스 콜츠를, 디비저널 라운드에서 브롱코스를, AFC 챔피언십 게임에서는 무려
톰 브래디와
롭 그롱카우스키가 버티는
뉴잉글랜드 패트리어츠를 때려잡고 올라가더니
콜린 캐퍼닉의
샌프란시스코 포티나이너스까지 잡고
슈퍼볼 XLVII까지 우승해버렸다. 그 레이븐스를 슈퍼볼로 올린
조 플라코는 슈퍼볼 MVP를 수상했다.
[10]
포티나이너스의
조 몬태나에게 당한 관광이었는데, 당시 브롱코스의 쿼터백이 바로
존 엘웨이였다.
[11]
그것도 처음부터 워낙 게임이 일방적으로 흘러서 4쿼터에는 시호크스가 설렁설렁 플레이해서 이 정도였지, 맘먹었다면 최다 점수차 기록 갱신도 그리 어렵지 않았을 것이라는 게 중론. 이로서 덴버 브롱코스는 슈퍼볼 최다 점수차 패배 기록의 1, 2위를 독식(?)하는 불명예를 안게 되었다(...)
[12]
슈퍼볼 사상 최단 기록. 예전은 14초
[13]
실제로 이번 수퍼볼에서 우승했다면
쿼터백 역대 1위도 노려볼만 했다는 게 중론.
[14]
잘 들어보면 페이튼 본인의 플레이 콜 뿐만 아니라, 본인의 내레이션까지 영상에 들어가 있다.
[15]
이렇게 AFC 챔피언십 게임에 올라간 럭의 콜츠는, 하필
톰 브래디와
롭 그롱카우스키의
뉴잉글랜드 패트리어츠를 만나는 바람에... 그리고
슈퍼볼 XLIX는 모두가 아시는 대로.
[16]
정확하게는 삭감이 아니라 옵션으로의 전환이다. 보장액을 400만 달러 깎은 대신, 팀이 슈퍼볼에 진출하면 200만 달러, 슈퍼볼에서 우승하면 추가로 200만 달러를 받는 옵션으로
제50회 슈퍼볼에 진출하면서 삭감된 액수의 절반인 200만 달러는 확보했다. 그리고
슈퍼볼에서의 승리로 나머지 200만 달러도 챙겼다.
[17]
슈퍼볼 50의 우승은 덴버의 수비진들이 압도적으로 활약했고 캠 뉴튼을 박살내놓았다. 매닝은 부진했던지라 두 팀을 우승시킨 쿼터백이라는 타이틀이 과연 타당한가라는 의문도 있다. (하지만 일단 웬만한 매체들은 다 붙여준다. 아무래도 그 쪽이 더 간지가 나니까.) 다만 그 위치에 가기까지의 과정에서의 매닝의 공헌 또한 무시할 수 없다. 특히 2015년 마지막 주 경기인 샌디에이고의 경기에서 오스와일러와 공격진이 5개의 턴오버를 기록하면서 홈필드는 고사하고 하마터면 와일드카드로 밀려날 뻔했던 상황에서 경기 중간에 투입되어 분위기를 잡고 흐름을 바꿔서 역전승을 일궈냄으로써 1번 시드와 슈퍼볼 진출에 중요한 홈필드 어드밴티지를, 그리고 자신의 컨디션 회복 시간까지 확보한 것도 매닝 자신이었고, 뉴잉글랜드와의 AFC 챔피언십 게임에서도 초반에 2개의 터치다운 패스를 성공시키면서 기선을 제압하고 유리한 상황을 만들어 놓은 것도 매닝 자신이었다. 단지 시즌 중의 삽질과 피츠버그와의 플레이오프와 슈퍼볼에서의 활약이 지지부진했다고 페이튼이 덴버의 우승에 공헌이 없었던 것처럼 평가하는 것도 공정하지 못한 평가이다. 무엇보다 2015 -16 시즌의 페이튼이 평가받는 것은 현실을 인정하고 "팀이 우승을 하기 위해서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하는가"에 집중해서 개인의 욕심은 최대한 억제하고 오로지 팀의 승리를 위해서 자신의 스타일까지 바꿨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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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직 존슨 본인은 램스 구단 운영하고는 아무런 연관은 없다. 다만 램스의 LA 이전이 확정되고 나서 1빠로 시즌 티켓 리스트에 이름을 올리며 관심을 표명하기는 했다. 본인 말에 의하면 램스가 세인트루이스로 떠나기 전부터 팬이었다고.
LA 레이커스의 전설인 매직 존슨은 LA 지역의 스포츠 레전드답게 은퇴 후에도 LA의 스포츠팀들에 대한 애정과 투자를 계속하고 있다. 다저스, 레이커스, 스팍스(
여자농구팀), 램스 모두 한 번씩은 매직과 관여된 적이 있다.
킹스는? 하키팀 LA 킹스와는 특별한 접점이 있었던 적은 없지만 킹스 구단에서 플레이오프를 앞두고 홈구장 스테이플 센터앞의 매직 존슨 동상에 킹스 유니폼을 입혀놓은 적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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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스가 상대에게 인터셉트당한 횟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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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200승은 역대 최다승이었는데, 16 - 17시즌에
브래디가 깨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