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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1-15 22:07:55

트루휘그당

파일:트루휘그당 로고.png
True Whig Party (TWP)
슬로건
<colbgcolor=#f5f5f5,#2d2f34><colcolor=#004B13> 한글 명칭 <colbgcolor=#fff,#1f2023>트루휘그당
등록일 1869년
당명 변경 1980년 4월
주소
라이베리아 몽세라도 몬로비아
이념 흑인 보수주의
정치적 스펙트럼 우익
당 색
진한 녹색 (#004B13)
노랑 (#ECEB4F)

[clearfix]
1. 개요2. 역사3. 성향

1. 개요

라이베리아에 존재했던 정당. 약칭은 TWP이다.

1869년 창당되어 1878년부터 1980년까지 장기집권하다가 해체되었는데, 무려 102년을 집권하여 일단은 세계에서 가장 오랫동안 집권한 정당이었다.[1]

2. 역사

1869년 라이베리아 농촌 지역을 기반으로 창당됐다. 당의 구성원과 지지층은 아메리코 라이베리안(Americo-Liberian)이라 불리는 미국 출신 해방노예들이었으며, 창당된 그 해 선거에서 에드워드 제임스 로이가 기존의 여당이었던 공화당을 꺾고 제5대 대통령에 당선되면서 집권당이 됐다.

당시 공화당은 조셉 젠킨스 로버츠와 같은 흑백혼혈 이주민의 지지를 받고 있었고, TWP는 상대적으로 검은 피부의 주민들에게 인기를 끌었다. 그러나 1878년 선거에서 앤서니 가디너(Anthony Gardinor)가 당선된 것을 계기로 TWP는 1980년까지 102년 동안 라이베리아를 통치하게 됐고, 그에 따라 공화당은 지지 기반을 잃어 1890년 자진 해산하여, 한 세기 가량 이어진 TWP 일당 독주 체제의 서막을 알렸다.

TWP 장기집권 기간에도 공식적으로 야당이 불법화된 적은 없었다느니 사실상 유일한 합법 정당이었다느니 말들이 다르긴 하지만, 여하튼 깔끔하진 못해서 이시기 TWP 정권은 재산에 따른 투표권 제한[2], 부정선거 논란, 그리고 원주민에 비해 상대적으로 우월한 경제적, 문화적 입지를 바탕으로 아메리코 라이베이안 그룹의 이익을 대변하는거 아니냔 비판이 있었고, 이는 원주민 출신 군인 새뮤얼 케니언 도 1980년 쿠데타를 일으켜 TWP 일당 통치를 전복할 때까지 이어졌다. 이시기 TWP 대통령 중 대표적인 인물들로는 찰스 D. B. 킹(Charles. D.B. King)[3], 윌리엄 터브먼, 윌리엄 톨버트 등이 있다.

윌리엄 톨버트는 터브먼 사후 부통령에서 대통령직을 승계했고, 터브먼 시기의 반공, 외자 유치 정책에서 탈피해 친아프리카, 일부 자유주의적 개혁을 추진했다. 대표적으로 대통령의 임기를 최장 8년까지로 제한한 개헌이 있었다.[4] 이 시기 야당이 새로 창당되고 동구권, 중국 공산권 국가와 수교를 맺었으며, 토착 원주민 출신을 내각에 기용하는 변화가 일어났다. 그러나 족벌주의 야당 탄압, 경제 침체 등으로 지지를 잃어가던 톨버트 정권은 쌀값 인상을 계기로 촉발된 폭동, 그리고 그 과정에서 일어난 유혈 진압으로 라이베리아 국민의 신뢰를 상실했다.

그러던 와중 1980년 4월 새뮤얼 케니언 도가 이끄는 원주민 군인들이 쿠데타를 일으켜 TWP 정권을 전복했고, 102년에 이르는 트루휘그당 치세는 막을 내리게 된다.

3. 성향

당 이름 자체가 미국 휘그당의 영향을 받아[5] 휘그주의 철학을 상당히 모방한 것으로 보이며, 흑인 보수주의 성향을 띠고 있었다.

20세기 초까지만 해도 보호무역을 지지했으나, 20세기 중반 윌리엄 터브먼 집권 이후 몬로비아 자유무역 항구로 개방하고 외자를 유치하는 등 개방경제로 전환했다.

지지층 절대 다수가 미국 해방노예 출신 아메리코 라이베리안이었기에 원주민보단 그들의 이익을 좀 더 대변했고, 외교적으로도 친미 성향이 강했다. 1970년대 이전까진 서아프리카의 대표적인 반공주의 정당 중 하나기도 했다.

그러나 1960년대 미국에서 흑인 민권이 이슈가 되었고, 아프리카 국가들이 잇따라 독립하여 노선 변화의 필요성이 생겼다. 그런 가운데 1971년 윌리엄 톨버트 대통령 취임 이후 공산권 국가와 수교하고 토착 원주민들의 참정권을 확대하는 등 노선 변화를 시도했으나, 이는 전통적인 지지층의 반감을 불러오기도 했다.


[1] 트루휘그당보다 먼저 우루과이 콜로라도당 1865년부터 1958년까지 93년을 집권하는 기록을 세웠으나, 우루과이 국민당에게 정권을 빼앗기며 100년이 넘는 집권 기록을 세우진 못했다. 이후에는 소련 공산당( 1922년 ~ 1991년 집권)과 멕시코 제도혁명당( 1929년 ~ 2000년 집권)이 각각 69년, 71년을 집권하며 트루휘그당의 기록에 도전했으나, 전자는 8월 쿠데타 실패, 후자는 대선 패배로 인해 실각하여 기록 달성에 실패했다. 선진국 정당 중에서는 아이슬란드 독립당 진보당이 1909년부터 집권하여 2009년까지 거의 100년 동안 집권했으나, 중간에 정권이 교체된 시기가 상당수 존재하여 실질적으로는 100년이 채 되지 못한다. 현재 집권하고 있는 정당 중에서는 베트남 공산당( 1945년 집권)과 조선로동당( 1948년 집권), 중국공산당 ( 1949년 집권)이 일당독재로 트루휘그당의 기록에 도전하고 있는데, 해당 정당들이 2047년, 2050년, 2051년까지 정권을 유지하는데 성공하면 트루휘그당과 타이기록을 이루게 된다. 실제로 저때까지 정권이 유지될 가능성이 높아보이지만, 정상적인 선거를 통한 집권은 아니긴 하다. 물론 트루휘그당도 후술되어있듯 참정권 제한, 부정선거 논란 등이 있지만, 일단은 명목상 선거가 치러졌다. [2] 당시 라이베리아 헌법 부동산을 가진 국민에게만 투표권을 부여했다. 그런데 토착 원주민이 살던 전통 오두막은 부동산으로 인정하지 않아 사실상 아메리코 라이베리안만이 참정권을 행사할 수 있었고, 그 수는 전체 라이베리아 인구의 1% 남짓 했다. [3] 대통령 선거에서 부정선거를 통해 지지율 1560%(...)를 기록한 적이 있으며, 라이베리아 주민들을 스페인령 기니(오늘날의 적도 기니)에 계약노동자(사실상 노예였다)로 속아넘겼다 탄핵당한 바 있다. 참고자료. [4] 이전까지 라이베리아 헌법은 1950년대 이전 미국처럼 대통령 임기의 제한을 두지 않았고, 때문에 윌리엄 터브먼은 아메리코 라이베리안의 지지를 등에 업고 27년간 대통령직을 이어갔다. [5] 트루휘그당이 창당된 1869년이란 시기상 공화당의 영향도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 이미 당시 미국에서 휘그당은 몰락했고, 노예제 반대파들이 주축이 된 공화당(좀 더 정확하겐 공화당 급진파)이 집권하던 시기기 때문. 참고로 민주당은 이때만 해도 노예제를 옹호하던 남부민주당 세력이 활개를 치던 시절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