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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베리아 공화국 제19대 대통령 윌리엄 바카나랏 샤드락 터브먼 William Vacanarat Shadrach Tubman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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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0D1635><colcolor=#ffffff> 출생 | 1895년 11월 29일 | ||
라이베리아 하퍼 | |||
사망 | 1971년 7월 23일 (향년 75세) | ||
영국 런던 | |||
재임기간 | 제19대 대통령 | ||
1944년 1월 3일 ~ 1971년 7월 23일 | |||
약력 | 메릴랜드 주 상원의원 | ||
1923년 ~ 1931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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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0D1635> 배우자 |
<colcolor=#373a3c,#ddd>마사 알레사 로다 프랫-터브먼 앙투아네트 루이스 패드모어 터브먼 (1948년 결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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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당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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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라이베리아의 19대 대통령으로, 1944년 ~ 1971년까지 라이베리아 대통령을 역임했다.2. 생애
윌리엄 터브먼은 20세기 초까지 보호무역이 주를 이루던 라이베리아를, 재임 이후 몬로비아를 자유무역 항구로 개방하고 외자를 유치하는 등 개방경제로 전환하려 했다.또 라이베리아에 살던 토착 원주민들과 본인이 속하기도 한 트루휘그당의 기존 주요 지지층이던 아메리카 대륙 출신 라이베리안들의 갈등, 사회경제적 격차를[1] 줄이기 위해 노력했으며, 참정권을 원주민들에게 부여하였고, 그 영향으로 원주민들이 본격적으로 라이베리아 사람이라는 자각을 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는 임기를 늘리는 개헌을 하는 등 장기집권을 꾀했고, 그의 전 동맹자이자 나중에 정치적 반대자가 된 S. David Coleman과 그의 아들 John을 탄압하였고, 부정선거 역시 여전하였기 때문에 정적 제거에 있어 비판받기도 했다.
터브먼이 집권하기 직전까지 라이베리아는 명색이 독립국가였음에도 식민지였던 영국령 가나보다 가난한 나라로 전락했을 정도로 낙후되었다. 그러나 터브먼이 경제개발을 위해 개방정책을 펴고, 미국으로부터 원조를 많이 받아내면서 그 돈으로 경제성장을 이룩했으며 집권기간 라이베리아는 경제적으로 크게 성장하였다. 1950년대에는 연 11%의 경제성장률을 달성하였고, 1960년대에는 성장세가 둔화되어 1960년대 말에는 한국에게 따라잡혔지만, 그 이후보다는 확실히 부유하기는 했다. 그래서 '현대 라이베리아의 아버지'라는 일각의 평가도 받는 모양.
임기 도중 1971년 75세의 나이에 고령으로 사망했고, 당시 부통령이었던 윌리엄 톨버트가 대통령직을 승계했다.[2]
3. 기타
라이베리아 20달러 지폐의 인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