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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4-14 16:51:24

캐서린 미들턴

캐서린 왕세손비에서 넘어옴
<colbgcolor=#E6E3E2><colcolor=#000> 웨일스 공비
캐서린 미들턴
Catherine, Princess of Wales
파일:캐서린 미들턴_2024년.jpg
이름 캐서린 엘리자베스 미들턴
(Catherine Elizabeth Middleton)
출생 1982년 1월 9일 ([age(1982-01-09)]세)
잉글랜드 버크셔 레딩 왕립 버크셔 병원
신체 175.2cm
학력 세인트 앤드루스 스쿨 (졸업)
다운하우스 스쿨 (전학)
말보로 칼리지 (졸업)
세인트 앤드루스 대학교 ( 미술사 / 학사)
배우자 웨일스 공 윌리엄 (2011년 결혼)
자녀 장남 조지, 장녀 샬럿, 차남 루이
아버지 마이클 미들턴
어머니 캐럴 골드스미스
형제 여동생 피파, 남동생 제임스
종교 성공회
링크
파일:X Corp 아이콘(블랙).svg | 파일:인스타그램 아이콘.svg | 파일:유튜브 아이콘.svg
서명 파일:캐서린 미들턴 서명.svg

1. 개요2. 작위3. 친정4. 생애
4.1. 어린 시절4.2. 윌리엄 왕자와의 교제4.3. 결혼4.4. 결혼 이후
5. 논란 및 사건사고
5.1. 출산 직후의 모습
6. 가족관계
6.1. 조상6.2. 자녀
7. 대중매체 등장8. 여담9. 둘러보기

[clearfix]

1. 개요

영국 왕세자비. 윌리엄 왕세자의 배우자다. 350년 만에 영국 왕실에 입성한 평민 출신 직계 배우자[1]이자 차기 왕비로 즉위할 인물이다.

윌리엄 왕세자와의 사이에서 세 자녀 조지, 샬럿, 루이를 두고 있다. 애칭은 케이트.

2. 작위

파일:Coat_of_arms_of_Catherine,_Princess_of_Wales.svg.png 파일:1280px-Royal_Monogram_of_Catherine,_Duchess_of_Cambridge.svg.png
문장 모노그램
웨일스 공비, 체스터 백작부인, 콘월 공작 부인, 로스시 공작부인, 케임브리지 공작 부인, 캐릭 백작부인, 렌프루 남작부인, 아일스의 레이디, 스코틀랜드의 공비, 엘리자베스 2세 여왕 왕실 훈장의 수훈자, 빅토리아 여왕 훈장의 데임 그랜드 크로스이신 전하
Her Royal Highness The Princess of Wales and Countess of Chester, Duchess of Cornwall, Duchess of Rothesay, Duchess of Cambridge, Countess of Carrick, Baroness of Renfrew, Lady of the Isles, Princess of Scotland, Recipient of the Royal Family Order of Queen Elizabeth II, Dame Grand Cross of the Royal Victorian Order
공식 칭호

보유하고 있는 군 명예 직함은 다음과 같다.
[ 펼치기 · 접기 ]
* 캐나다 육군 명예 레인저 (2011년 7월 5일~)

3. 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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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생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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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wcolor=#000> 유년기 (1985년) 청년기 현재 (2023년)

4.1. 어린 시절

파일:20230210_075922.jpg
파일:Kate with Carole.jpg
1982년 1월 9일, 마이클 미들턴과 캐럴 미들턴의 장녀로 레딩 로열 버크셔 병원에서 태어났고, 1982년 6월 20일 브래드필드의 세인트 앤드루 교회에서 성공회 유아세례를 받았다. 약 1년 반이 지난 1983년 9월 3일에는 여동생 피파가 태어났다. 1987년에는 남동생 제임스가 태어나며 두 동생을 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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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6년 요르단에서
줄곧 자신이 태어났던 버크셔에서 살다가, 1984년 5월에 부모의 일로 요르단의 수도 암만으로 이주해 2년 반 동안 생활했다. 그곳에서 캐서린은 3살때부터 영어유치원에 다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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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인트 앤드류스 스쿨 재학 시절
1988년, 버크셔로 돌아온 후 곧바로 세인트 앤드루스 스쿨에 입학했다. 졸업 후 여학교인 다운하우스 스쿨에 입학했는데, 다니는동안 마른 체형과 너무 유순한 성격 때문에 집단 따돌림을 심하게 당했다. 따돌림이 얼마나 심했느냐면, 습진이 발병하고 낯빛이 창백하게 변했을 정도라고 한다. 결국 두 학기만 다니고 말보로 칼리지로 전학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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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보로 칼리지 재학 시절
전학 뒤 스포츠에 재능이 있어서 필드 하키팀에서 주장을 맡으며 친구들에게 인기도 많아지고 성격도 많이 밝아졌다. 또한 동창 캐슬린 솔라리는 "케이트는 늘 아주 다정하고 온화했다. 모두를 공평하게 대했다. 팍했고 아주 단정했다. 늘 옳은 일을 했고 운동도 잘했다. 가장 똑똑한 아이는 아니었지만 굉장히 열심히 노력했다."라고 했다. #

4.2. 윌리엄 왕자와의 교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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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생 때의 윌리엄과 캐서린
그 후 캐서린은 에든버러 대학교에 합격했으나, 어머니 캐럴의 조언으로 세인트 앤드루스 대학교에 진학했다. 윌리엄과 캐서린은 같은 기숙사에서 만나 친해졌다. 다만 당시 윌리엄과 캐서린은 친구 사이였을 뿐이고, 캐서린에게는 루퍼트[6]라는 남자친구가 따로 있었다.

2002년, 세인트 앤드루스 대학교에 열린 자선 패션쇼에서 캐서린은 워킹 모델에 지원해 자신의 매력을 뽐냈다. 패션쇼에서 캐서린이 입은 옷은 당시 패션을 전공하고 있던 대학 동기인 샬럿 토드의 작품인데, 원래 치마로 만든 것이었으나 캐서린이 드레스처럼 입은 것이라고 한다.[7] 윌리엄은 검은 시스루 드레스를 입고 워킹모델로 선 캐서린을 보고 “She's Hot!”이라고 외쳤고, 캐서린에게 호감을 느꼈다. 그 후 캐서린은 윌리엄 및 친구 4명과 함께 같은 아파트에서 동거하다가 윌리엄과 친한 친구 사이가 되었다. 두 사람의 관계는 급속도로 발전하였고, 2003년부터 윌리엄과 캐서린은 캠퍼스 커플이 되었다. 처음에 윌리엄 측에서는 연애를 부정했으나, 1년 후 스키여행에 동반한 모습이 찍히며 공식 연인으로 알려지게 된다.

그러나 2004년 한 번 헤어졌다가 재결합한 뒤, 2007년 4월에 다시 결별하게 되었다. 이별의 원인은 캐서린에 대한 언론의 지나친 관심과, 윌리엄이 군 훈련 차 도싯으로 떠나게 되면서 두 사람의 관계가 소원해졌기 때문이었다.

헤어진 지 두 달 뒤인 2007년 6월 경 윌리엄과 캐서린은 재결합했지만, 당시 캐서린의 이미지는 영 별로였다. 명문대 학위까지 가지고 있었음에도 30세가 될 때까지 정식으로 직업 한 번 가지지 않는 등 제대로 된 사회활동을 거의 하지 않고, 20대를 윌리엄과의 연애로만 보내며 그의 청혼만을 기다렸기 때문이다. 웨일스 공 윌리엄의 아내이자 그 유명한 다이애나 스펜서의 큰며느리가 될 여성이 ‘신분상승 욕구를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평민 출신’이라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 언론은, 캐서린에 대한 부정적인 기사를 내보냈다. 그래서 언론에서 그녀에게 붙여준 별명이 그 유명한 Waity Katie(기다리는 케이티), Lazy Katie(게으른 케이티)이다.[8] 다만 캐서린의 재산을 생각하면, 직업이 없어도 평생 놀고 먹을 수 있었다.

하지만 캐서린이 직업을 갖지 못한 가장 큰 원인은 파파라치 때문이기도 했다. # 졸업 후로 만나면 만나는 대로, 헤어지면 헤어지는 대로, 본인부터 가족들, 지인들까지 온갖 도청, 스토킹, 파파라치에 시달렸기 때문. 2005년부터 2006년까지 캐서린의 전화는 155번 해킹당했다. 전 왕실 대변인 디키 아비터는 “언론에서의 캐서린의 대우는 결혼 초기 다이애나 비에게 한 짓과 유사하다.”고 말하기도 했다. 대학 졸업 후 패션 체인 Jigsaw에서 액세서리 바이어로 1년 정도 아르바이트를 하다 파파라치에 시달려 그만두고, 이탈리아의 유명 사진작가 밑에서 조수로 일하다 곧 얼마 안 가 그만두었다. 그 뒤론 부모님의 회사에서 사진 보조 등을 하며 지냈다. 본인도 변호사에게 이에 대한 불만을 호소하기도 했고, 찰스 왕세자 윌리엄 왕세손까지 나서 파파라치들에게도 수차례 경고했으나 멈추지 않아 결국 데일리 미러와 합의를 보아 언론불만위원회(PCC)에서 경고가 뒤따랐다. 2007년 7월 ‘문화ㆍ미디어 및 스포츠 선택 위원회’는 “캐서린은 파파라치에 의한 ‘분명하고 지속적인 괴롭힘’의 희생자”라고 밝혔다. #[9]

4.3. 결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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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혼사진
2010년 11월 16일, 윌리엄 왕세손과의 약혼을 공식적으로 발표했다. 케냐 여행 중 윌리엄이 청혼했고, 이 때 캐서린의 손가락에 끼워준 사파이어 반지는 바로 그의 어머니 다이애나 비의 약혼반지였다. 캐서린은 영국 왕실 전통의 웨일스산 으로 만든 결혼반지와 겹쳐 끼다가[10] 첫째 조지 왕자 출산 후 윌리엄으로부터 ‘영원한 사랑’을 뜻하는 아누슈카의 이터니티 링을 선물받아 현재는 총 3개의 반지를 겹쳐 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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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사진
2011년 4월 29일, 14년 전에 다이애나 비를 떠나보냈던 웨스트민스터 성당에서 성대한 결혼식을 거행했다. 영국에서 오랜만에 열리는 로열 웨딩인데다 그 결혼의 신랑이 다이애나의 장남이기 때문에, 결혼식 일정이 정해지자 전 세계적으로 상당한 주목을 받았다.[11] 차차기 국왕의 결혼식이니만큼 상당한 예산이 투입됐지만, 식이 성공회 감사성찬례 식으로 엄숙히 치러지기도 했고 대부분 경비 비용으로 사용되어 화려함은 덜하다는 평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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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혼 소식이 알려진 후 각종 명품브랜드에서 웨딩드레스 스케치를 제출했고, 캐서린이 대학 시절부터 애용해 온 영국산 브랜드 알렉산더 맥퀸이 낙점되었다. 웨딩드레스는 맥퀸의 수석디자이너 사라 버튼이 디자인했으며, 가격은 25만 파운드(약 3억 7천만원) 정도라고 한다. 착용한 드레스부터 특별 제작한 귀걸이까지 캐서린의 친정 미들턴 가에서 모든 비용을 부담했다. 드레스와 구두에는 잉글랜드를 뜻하는 장미, 아일랜드를 뜻하는 토끼풀, 스코틀랜드를 뜻하는 엉겅퀴를 수놓았으며, 상체 부분의 프랑스 레이스 일부를 제외하면 모두 영국제이다. 모든 것을 수작업으로 하다 보니, 오염을 막기 위해 재봉사들이 3시간마다 손을 씻고 실을 갈아야 했다고 한다. 이 드레스는 1956년 그레이스 켈리가 입었던 웨딩드레스와 비슷하다는 의견도 있다. #

티아라 조지 6세 엘리자베스 보우스라이언을 위해 구입한 까르띠에의 헤일로 스크롤 티아라로, 영국식 전통 결혼식에서 신부가 가지고 올리는 Something Old, Something New, Something Borrowed, Something Blue 중 ‘빌려온 것’에 해당한다. 오래된 것은 드레스의 레이스, 새로운 것은 귀걸이, 파란 것은 드레스 안감에 수놓은 파란 리본이라고 한다. 메이크업은 결혼식 직전의 몇 주 동안 바비브라운 메이크업 아티스트에게 메이크업을 배워서, 결혼식 당일에 자신이 직접 신부 화장을 했다.

4.4. 결혼 이후

부부 사이는 무난해 보인다. 결혼한 지 [age(2011-04-29)]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겉으로 크게 드러나는 불화설이나 갈등 없이 윌리엄 왕세자와 좋은 금슬을 보여주고 있다. 결혼 전에는 부정적이었던 이미지도 크게 개선되어 현재는 높은 인기를 유지하고 있다. 2022년에 시행된 설문조사에서는 캐서린의 호감도가 72%로 왕실 일원들 중 가장 높게 나타나기도 했다. #

결혼 후 아동과 정신 건강, 예술, 스포츠에 관한 자선 활동을 활발하게 하고 있다.

4.4.1. 왕세자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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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9월 8일, 시할머니 엘리자베스 2세가 사망함에 따라 시아버지 찰스 3세가 국왕으로 즉위하게 되었다. 남편 웨일스 공 윌리엄은 국왕의 장남으로서 콘월 공작과 로스시 공작 작위를 받게 되었으며, 이에 따라 캐서린 미들턴도 맏며느리로서 콘월 공작 부인과 로스시 공작 부인의 작위를 받게 되었다.

5. 논란 및 사건사고

5.1. 출산 직후의 모습

영국 왕실은 앤 공주의 출산 때 부터 궁이 아닌 병원에서 아이를 출산하고 있고, 부모가 갓난아기를 안고 퇴원하는 모습을 공개하는 것이 새로운 전통이다. 3명의 아이를 낳는 동안, 캐서린은 늘 출산 직후 말끔한 모습으로 등장하여 화제가 되었다. 그나마 첫째 조지 왕자를 낳았을 때는 출산 다음 날에 퇴원했고, 다소 부스스한 머리에 여전히 불러있는 배를 감추지 않은 모습이었다. 그러나 둘째 샬럿 공주 때는 출산 10시간 만에, 셋째 루이 왕자때는 출산 7시간 만에 퇴원했다. 또한 멋지게 꾸민 헤어스타일에 풀 메이크업을 하고 부기 하나 없는 채, 화사한 원피스를 입고 높은 하이힐을 신고 있었다.

캐서린에게는 출산 때마다 수십 명의 인력이 붙는데, 전속 미용사, 메이크업 아티스트, 스타일리스트, 마사지사, 홍보 전문가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들은 출산 직후부터 투입되어, 캐서린을 평소와 조금도 다르지 않은 아름답고 생생한 모습으로 꾸며준다고 한다. 서구의 언론 매체들은 출산 직후임에도 완벽하게 꾸미고 나온 캐서린의 모습에 대하여 “비현실적인 여성상을 조장한다”, “출산과 산후 회복은 간단한 일이라는 잘못된 선입견을 심어줄 수 있다”, “왕실의 행복한 모습을 보여주어야 하는 왕족의 임무는 알지만, 출산 후 자연스러운 모습을 보여주어도 좋았을 것이다”, “특수계층을 통해 출산을 이상화할수록, 평범한 여성들은 무력감을 느낀다”는 등의 지적을 했다.

6. 가족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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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가족사진

6.1. 조상

본인 부모 조부모 증조부모
웨일스 공비 캐서린
(Catherine,
Princess of Wales)
<colbgcolor=#fff3e4,#331c00> 마이클 미들턴
(Micheal Middleton)
<colbgcolor=#ffffe4,#323300> 피터 미들턴
(Peter Middleton)
리처드 미들턴
(Rechard Middleton)
올리브 럽튼
(Olive Lupton)
발레리 글래스버로우
(Valerie Glassborow)
프레데릭 글래스버로우
(Frederick Glassborow)
콘스탄스 로비슨
(Constance Robison)
캐럴 골드스미스
(Carole Goldsmith)
로날드 골드스미스
(Ronald Goldsmith)
스티븐 골드스미스
(Stephen Goldsmith)
에디스 챈들러
(Edith Chandler)
도로시 해리슨
(Dorothy Harrison)
토마스 해리슨
(Thomas Harrison)
엘리자베스 템플
(Elizabeth Temple)

6.2. 자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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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어머니의 날 기념 사진
자녀 이름 출생
1남 웨일스의 조지 공자
(Prince George of Wales)
2013년 7월 22일 ([age(2013-07-22)]세)
1녀 웨일스의 샬럿 공녀
(Princess Charlotte of Wales)
2015년 5월 2일 ([age(2015-05-02)]세)
2남 웨일스의 루이 공자
(Prince Louis of Wales)
2018년 4월 23일 ([age(2018-04-23)]세)

2011년 말 캐서린이 땅콩 알레르기가 없음에도 땅콩크림을 거부하여 임신했다는 추측이 있었는데[12], 2012년 12월 4일에 첫째 임신을 발표했다.[13] 2013년 7월 7월 22일 조지가 태어났다. 2014년 9월 초에는 둘째를 가졌다고 발표했으며, 2015년 5월 2일, 딸 샬럿이 태어났다. 2년이 지난 2017년 9월 4일, “캐서린이 셋째 아이를 임신 중이다”라는 영국 왕실의 공식적인 발표가 있었고, 2018년 4월 23일 차남 루이가 태어났다.

7. 대중매체 등장

8. 여담

파일:05OTRDUCHESSVOGUE-WEB1-superJumbo.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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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캐서린 전의 마지막 평민 출신 직계 배우자는 제임스 2세의 아내 앤 하이드였으나, 왕비가 되기 전에 사망했다. [2] 결혼하면서 작위를 받았다. [3] 찰스 3세가 즉위하자 윌리엄이 장남으로서 콘월 공작위를 자동으로 받게되어 콘월 공작부인이 되었다. [4] 찰스 3세가 대국민담화를 통해 윌리엄의 웨일스 공 서임을 공식화하면서 정식 왕세자비인 웨일스 공비가 되었고, 이때부터 웨일스 공비를 공식 칭호로 사용하고 있다. 다만 웨일스 공비 칭호 사용을 공식적으로 허가하는 칙허장은 2023년 2월 13일이 되어서야 발행되었다. [5] 이전까지 앤드루 왕자가 보유하고 있던 직함이었다. [6] 2001년 경 캐서린과 반년 정도 사귀다 헤어졌다. 후에 윌리엄과 캐서린의 결혼식에 참석하기도 했다. [7] 제작비는 30파운드(약 45,875원)였고, 2011년 윌리엄과 캐서린의 결혼이 발표되면서 옷의 가격은 급상승했고, 최종적으로 78,000파운드(약 1억 1,927만원)에 낙찰되었다. # [8] ‘웨이티’, ‘레이지’, 캐서린의 애칭인 ‘케이티’ 셋 다 ‘에이이’ 발음이 난다는 것을 이용한 말장난. [9] 2010년, 2009년에 크리스마스에 캐서린의 사진을 촬영하고 독일 언론사의 기사에 실은 사진작가와 두 에이전시에 개인정보 침해 소송을 제기해 승소했고, 공개 사과와 손해 배상금, 법적 비용을 받아내기도 했다. 받은 돈은 자선단체에 기부하겠다고 밝혔다. # [10] 서양에서 기혼 여성은 약혼반지와 웨딩밴드를 함께 끼고, 기혼 남성은 웨딩밴드만 끼는 것이 일반적이다. 다만 윌리엄은 개인적인 선호 문제로 합의 하에 웨딩밴드는 끼지 않고 어머니 다이애나 비가 선물한 오메가 씨마스터 시계만 착용한다. [11] 다만 결혼식이 열린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오사마 빈 라덴 파키스탄 아보타바드의 은신처에서 네이비 씰에 의하여 사살되는 사건이 일어나는 바람에 오랫동안 화제가 되지 못했다. [12] 서양에서는 ‘임신 중에 땅콩을 먹으면 아기에게 땅콩 알레르기가 생길 위험이 있다’는 미신으로 임신부의 땅콩 섭취를 꺼린다. [13] 오스트레일리아의 한 라디오 방송에서 엘리자베스 2세를 사칭해 담당 간호사에게 캐서린의 개인정보를 캐내어 방송해 버렸고, 간호사는 죄책감에 자살까지 하고 말았다. 그 때문에 마음껏 기뻐하지 못하기도 했다. [14] 다이애나 비의 옷을 여러 번 디자인했던 브랜드이다. 다이애나가 사망한 후 매장될 때에도 캐서린 워커의 드레스를 입혔다. [15] 장남 조지 왕자를 출산했을 때는 다이애나가 윌리엄을 낳고 입었던 땡땡이 무늬 원피스와 비슷한 옷을 입었고, 마찬가지로 차남 루이 왕자를 낳았을 때도 다이애나가 해리 왕자를 낳고 입었던 빨간 원피스를 연상케 하는 옷을 입었다. 또 해리 왕자의 아들 아치의 세례식에서는, 다이애나가 해리의 세례식에서 착용했던 귀걸이를 다시 착용하였다. [16] 카밀라 파커 보울스도 대학을 다니긴 했지만 학위를 취득한 것은 아니다. [17] 다이애나 왕세자비는 임신 중에 입덧이 심했다. 하지만 찰스 3세는 아내에게 무심했고 그동안 영국 왕실의 여자들은 입덧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왕실 내에서 입덧으로 인한 고통을 이해해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어서, 다이애나는 몸이 좋지 않은 와중에도 행사에 참석하는 등 홀로 고생해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