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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산강 및 섬진강 수계 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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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암댐 전라남도 순천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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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천명 | 영산강 |
목적 | 농업용수 |
유역면적 | 3,371㎢ |
형식 | BM/CE |
관리기관 | 한국농어촌공사 |
높이 | 19.5m |
길이 | 4,350m |
체적 | 2,532,000㎥ |
계획홍수위 | EL 1.38m |
상시만수위 | EL -1.35m |
종저수용량 | 253,218,000㎥ |
유효저수용량 | 180,900,000㎥ |
저수면적 | 34.6㎢ |
연간용수공급량 | 282,090,000㎥ |
연간용수공급량 | 282,090,00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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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전라남도 목포시와 영암군 삼호읍 사이 영산강 하구에 위치하고 있는 하굿둑. 영산강 하류부 저지대의 농지는 갈수기 및 밀물에 염수피해를 많이 입었던 지역으로, 영산강하굿둑을 건설하여 총 저수용량 253백만㎥, 면적 34.6㎢의 담수호가 개발되었으며, 55㎢의 간척지를 얻게 되었다. 담수호에서는 16개의 펌프시설을 이용하여 227㎢의 농경지에 용수를 공급하고 있다.격하전 국도 2호선이 영산강하굿둑의 위를 지나갔으나, 상류 쪽에 무영대교가 건설된 이후로는 국도 2호선 구간이 그 쪽으로 이전하였다. 왕복 6차선 구간이며 대불산업단지와 현대삼호중공업에 출퇴근하는 노동자들에게 중요한 통로이다. 목포대교가 개통되기 전까지는 영암군 삼호읍과 목포시를 이어주는 거의 유일한 길이였으므로 상습 정체구간이기도 했다.
1978년에 고건 당시 전남도지사의 주도로 착공해 1981년 12월에 완공되었는데, 당시 하굿둑 양단의 지명이 무안군 삼향면 옥암리와 영암군 삼호면 나불리였기 때문에 30여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포털사이트 검색등을 통해서 연결되는 백과사전 등 자료에 양단의 주소가 저렇게 표기된 자료를 지금도 찾아볼 수 있다. 이후 1987년 옥암리가 목포시에 편입되며 목포시 옥암동이 되었고, 이 편입으로 영산강하굿둑과 직접적인 접점은 없어졌지만 여하튼 무안군 삼향면은 2011년 삼향읍으로 승격되었고, 영암 쪽은 2003년 삼호면이 삼호읍으로 승격되어 현재 양단의 주소는 목포시 옥암동과 영암군 삼호읍 나불리이다.
덤으로 위에서 언급한 구 국도2호선 6차선 도로는 하굿둑 축조 당시 2차로로 건설되었다. 하굿둑이 생기기 전만하더라도 목포에서 현재의 영암군 삼호읍까지 육로로 이동하려면 저 멀리 나주 땅을 경유하거나 배를 타는 방법밖에 없었는데 육로로 단숨에 넘어 다닐 수 있게 되었으니, 이 2차로 도로의 개통이 목포 - 영암 간 교류 뿐만 아니라 해남, 진도, 강진, 장흥 등 인접 시 군에서 목포권으로 교류하는데 획기적인 계기가 된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또한 이 도로의 개통으로 삼호읍 등 서영암 지역이 목포 생활권으로 편입되는 계기가 된 것이다.
이 2차로 도로의 흔적은 4대강 정비 사업 이전부터 존재하던 영암 쪽 8개의 수문 위 도로에 남아 있는데, 2차로 시절에는 목포 쪽에서 영암 쪽으로 넘어갈 때는 2차로로 된 둑길을 지난 후 살짝 오른 쪽으로 꺾어져서 수문위를 직접 지나서 영암 쪽으로 빠지는 식이었고, 90년대 초중반까지만 해도 이렇게 다녔는데, 이후에 이 도로가 6차로로 확장되면서 둑길 부분은 그대로 확장되었지만, 수문 위 도로는 폐쇄되고 새로 지어진 현재의 삼호대교를 통해 삼호읍으로 직진하는 식으로 변경된 것이다. 역시 20년 전 이야기지만 백과사전 등에서 영산강하굿둑 항목을 검색하면 2차로 시절 사진을 종종 볼 수 있다.
2010년대는 4대강 정비 사업으로 홍수 시 영산강 물을 바다로 빨리 배출할 수 있도록 목포방향으로 5개의 수문이 추가되고, 교량구간이 길어졌다. 덕분에 공사가 진행되는 몇 년 동안은 서울 양화대교마냥 상류 쪽에 건설된 임시도로로 급커브해서 우회해야 하는 상태로 지내야 하였다.
여튼 이 하굿둑은 목포와 영암 지역을 연결하는 중요한 연결로의 역할을 하면서 본연의 기능인 영산강과 서해 사이를 단절하는 역할 또한 충실히 하고 있어서, 이 하굿둑 서쪽은 하당 평화광장 앞은 바다이고, 동쪽인 남악신도시의 수변공원 앞 쪽은 강이라는 정체성을 확립해주었는데, 2023년 현재의 관점에서 목포시나 인근 군 지역 주민들에게는 당연한 소리겠지만 불과 몇 십년 전인 1970년대까지만 해도 당시의 무안군 삼향면[1]이나 일로면[2] 주민들이 바닷물이 드나드는 영산강에서 재첩 같은 해산물을 채취하고, 조수 간만의 차이를 이용해 한참 더 내륙인 나주시까지 홍어잡이 배가 드나들며 영산포가 항구도시로서의 기능을 하였던 점을 생각하면 수 천년 역사 중 하구둑 서쪽은 바다, 동쪽은 강이라는 개념이 생긴 것이 매우 짧은 기간이라는 점을 느낄 수 있다. 목포대교의 개통으로 통행량 분산 효과를 얻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