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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1-03 17:41:16

여호와의 증인/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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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관2. 상세
2.1. '조직' 그 자체에 대한 믿음2.2. 예수 그리스도가 인자인 동시에 성자 하느님이심을 부정함: 반삼위일체2.3. 십자가가 아니라 형주2.4. 종말론(아마겟돈)2.5. 지옥 부정2.6. 국기경배 거부와 집총 거부2.7. 수혈 거부2.8. 동교 결혼2.9. 생일기념 거부2.10. '두 가지 부류의 구원'교리2.11. 중앙장로회의 신격화 혹은 우상화
3. 상습적 교리번복에 대한 합리화 시도와 그에 대한 비판

1. 개관

여호와의 증인 교리의 가장 큰 특징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교리를 수정하고 보완한다는 점이다. 교리실패와 수정에 대해서 이의를 제기한 사람들은 '조직논리'를 앞세워 제명 처분을 가하는 등 교단 내에서는 이를 암묵적, 제도적으로 박해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1975년 종말론 당시에도 반대하거나 의문을 가지는 사람들에게 무한한 철퇴를 가했다. 그렇다고 특정연대 예상실패 후 그 사람들에게 사과를 하고 복권시켜준 것도 아니다. 증인들은 '조직논리'를 지나치게 중요시한다. 어느 종교나 집단-조직논리는 큰 의미를 가지기 마련이지만, 증인조직은 이런 부분이 유독 심하다. 중앙장로회에서 내려온 교리들이 비성경적인 황당한 것일지라도 거기에 절대 불만을 표출할 수 없으며 무조건적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1919년에 임명되었다고 여겨지는 '충성되고 지혜있는 종'인 중앙장로회(구 통치체)로부터 나오는 말들은 곧 하늘의 왕인 그리스도로부터 나오는 인도와 동일시되기 때문이다. 조직의 지침은 성경내용과 사실상 동일한, 혹은 그 이상의 권위를 가지고 있다. 이런 종교 특성상 구조적으로 결코 개방적일 수가 없다. 기존 기독교에서도 공통적으로 가르치는 '도덕률'과 관련된 교리들의 경우를 제외한 다른 핵심 교리들은 시대를 거치며 파기되거나 점차 첨가, 변경되어 왔는데, 기본적으로 "의로운 자들의 길은 밝은 빛과도 같으니, 점점 밝아져 마침내 날이 굳게 선다."는 잠언 4:18의 내용에 따라 진리는 '점점 밝아지는 것'이기에 계속 수정이 가해져도 문제없다고 주장한다. 즉, 중앙장로회(통치체)에 의한 교리의 자의적인 해석이 얼마든지 가능하다는 것이다.

여호와의 증인의 전반적인 교리 내용에 대한 기사. # 다만 해당 내용은 여호와의 증인에서 배포하는 자료를 근거로 하여 일방적이지만, 그들이 '무엇을 믿는지'에 대해 간략히 알아볼 수 있게 정리되어 있으므로 참조할 만하다.

워치타워 성서책자 협회의 지도층인 '중앙장로회(구 통치체, 2022년 현재 8명으로 구성)'가 1919년 이후로 그리스도에 의해 '진리전달의 유일한 통로'로 임명받아 성령에 의해 인도받고 있다고 믿으며, 오직 여호와의 증인이라는 '조직' 내에 있어야만 마지막 날에 구원받을 수 있다고 믿는다.[1]

성경의 해석에 있어서는 문맥에 따라 사실적 내용과 비유적/상징적 내용을 구분하여 적용하고 있으며, 그 근간은 유대교와 거의 동일하다. 단, 그 해석을 하는 워치타워 중앙장로회의 결정에 대해서는 전세계 모든 신도가 동일한 믿음을 따른다. 해당 내용이 성경적으로 문제가 있다고 하더라도 그에 대한 반박은 곧 '조직'에 대한 위협으로 배교적 행위가 되며 그 주장을 철회하지 않는 경우 제명당한다. 비성경적이고 설득력이 떨어지는 교리 해석에 반대하다가 조직에서 제명된 사례들은 실로 차고 넘친다. '이는 이단자, 혹은 제명된 사람들이 본인들의 명예와 분풀이를 위해 하는 거짓된 주장'이라는 실드가 있지만, 실례가 있는 데다가 상식적으로 집총 거부를 해서 차라리 감옥을 갈 만큼 경직된 교리와 이에 맹목적으로 충성하는 교인들이 그럴 것이라고는 납득하기 힘들다.

2. 상세

2.1. '조직' 그 자체에 대한 믿음

회중의 머리는 그리스도이며, 그리스도의 머리는 하느님이라는 표현을 사용하여 언뜻 '하느님의 영감받은 말씀'인 성경을 교리의 최고권위로 여기는 듯 주장하지만, 실제로는 성경 위에 '조직'이라는 최상위 '절대개념'이 자리잡고 있다. 즉, 중앙장로회(구 통치체)로부터 내려온 어떠한 교리가 성경적 근거가 없는 엉터리라 할지라도 이는 '조직'의 가르침이므로 절대 불만을 표출해서는 안 되며, 이를 어길 시 '조직의 연합과 평화'를 해치는 행위로 간주되어 가차없이 소위 '배교자'로 지목되어 쫓겨남과 동시에 사실상의 '멸망선고'를 받게 된다는 것이다. 이는 다음과 같은 실제 사례에서 잘 드러나고 있다. 워치타워 협회의 법률고문과 부회장을 역임(1942~1945)했던 헤이든 코빙턴의 1954년 스코틀랜드 법정[2]에서의 주장이다.
질문자: 여호와의 증인은 주의 재림이 1874년에[3] 이루어졌다는 가르침을 증인 구성원들이 믿어왔다는 사실을 공표했었다. 그러한가?
코빙턴: 그건 실패로 끝난 잘못된 예언이기 때문에 그 주장은 실패한 잘못된 주장이었다.
질문자: 모든 여호와의 증인들이 그걸(1874년 임재주장) 믿어야만 했었지 않나?
코빙턴: 그렇다. 우리는 통일된 믿음을 가져야만 한다는 걸 당신은 이해할 것이다.
질문자: 방금 전으로 돌아가보자. 그 실패한 예언은 공표되었지 않나?
코빙턴: 그 말에 동의한다.
질문자: 여호와의 증인들은 그걸 받아들어야만 했었지 않나?
코빙턴: 그렇다.
질문자: 만약 증인 중 하나가 그 예언이 틀렸다고 생각하고 그 사실을 말했다면 아마도 그는 제명되었을까?
코빙턴: 그렇다. 우리의 목적은 통일된 믿음이다.
질문자: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통일되어야 하나?
코빙턴: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통일되어야 한다.
질문자: 이 통일이라는 게, 거짓 예언을 강제적으로 받아들이게 하는 행동에 근거한 통일인가?
코빙턴: 그것은 진실로 여겨진다.
이는 오늘날에도 전혀 달라지지 않은 주장이다. 거짓교리, 잘못된 예언 등으로 점철되어 있다는 다른 기독교 교파를 공격할 때의 잣대는 전혀 찾아볼 수 없다. 그 무엇으로도 흔들려서는 안 되는 조직이라는 개념은 여호와의 증인에게는 절대선이며 동시에 다른 모든 개념을 시녀로 전락시켜 버리고 있다. 또다른 예에서도 이것이 노골적으로 드러나고 있다.
당신은 이 조직이 하느님의 인도를 받는 조직이라는 것을 믿는가?
이 질문은 '조직'의 어떠한 가르침에 동의하지 않아 장로회 등으로부터 심문당할 때 가장 흔히 접하는 추궁질문이다. 일반적으로 기독교라면 '당신은 그리스도의 구원을 믿는가?', '그리스도가 하느님의 아들이며 그 분 외에는 구원이 없다는 것을 믿는가?'라는 식의 질문이 들어가야 정상이다. 하지만 여호와의 증인에게는 '조직' 그 자체가 모든 것 위에 있는(심지어 성경일지라도) 절대적 최상위 개념이기 때문에 저런 식의 질문으로 심문하는 것이다. 심문받는 사람이 조직의 해당 가르침이 비성경적이라는 것을 설명해도 아무 소용이 없다. '조직'을 거스르고 통일성을 해치려 하는 순간, 이미 게헨나행 특급열차 표를 끊은 것이나 마찬가지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어느 때부터인가 증인 조직은 '영적 낙원'이라는 표현을 자주 사용하며 강조하기 시작했다. 소위 '연합'되어 있는 조직의 모습과 그 '평화'스러움이 실로 낙원과도 같다는 말인데, 이는 실제의 낙원이 아무리 기다려도 오지 않는 현 상황과 맞물려, '이 번영하는 조직 자체가 낙원인데, 굳이 다른 어딘가에서 낙원을 찾을 필요가 있는가'라는 불만 다스리기용 메세지로도 해석될 여지가 충분하다. 물론 그 '영적 낙원'에 비유되는 '조직 개념'이, 오랜 세월동안 이어져 온 수많은 거짓 오류와 잘못들을 애써 가리고 그에 대한 반작용들을 강제로 억눌러가며 열심히 다듬어 만들어놓은 모래성같은 것이라는 걸 자각하는 증인 신자들은 거의 없다. '조직이 제공한 것이라면 무언가 성경에 어긋나는 것 같더라도 뭐가 특별한 것이 있겠지'라는 심리를 성공적으로 정착시켰기에 아직도 기원전 607년 유대왕국 멸망교리, 1914년 그리스도 임재교리, 1919년 유일참조직 및 충실하고 지혜있는 종 선택교리, 겹세대 교리 등을 굳게 신봉하는 것이다.

2.2. 예수 그리스도가 인자인 동시에 성자 하느님이심을 부정함: 반삼위일체

여호와의 증인은 예수 그리스도가 성자 하느님이신 삼위일체론을 부정하며, 성 삼위를 인정하지 않는다. 여호와의 증인이 이단시되는 가장 큰 이유이다. 그런데 흔히 잘못 알고 있는 사람들이 많기에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그리스도의 '신성'을 부인하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과 그리스도가 같은 위격이라는 것을 부정하는 것이다. 좀 더 정확히는, 여호와의 증인은 예수가 하느님과 동일하다고 보지 않고 하느님의 아들로서 독립된 인격체라고 가르친다. 여호와의 증인은 예수가 하느님임을 부정하기에 기성 기독교계에 큰 논란을 일으키게 하였다. 대표적인 예로, 예수가 마태오 복음서나 데살로니가 전서 등 예수가 천사들을 이끌고 재림하실 거라는 것을, 억지로 다니엘서랑 일치시켜 예수는 하느님의 첫 피조물인 천사장 미카엘이라고 주장한다.[4] 기독교의 주류 종파에선 예수가 인간의 육을 갖춘 하느님의 일면 내지는 자체이며, 미카엘은 그냥 천사장이고 대천사일 뿐이다.[5] [6]

즉 여기서 예수 그리스도의 위치가 이단적인데, 여호와의 증인이 성자 하느님 개념을 부정하는 것은 성자 로마 제국 시절 열린 니케아 공의회에서 황제와 알렉산더파와 아타니시우스파 주교들 사이의 합의로 만들어진 인위적 개념이라고 간주하고 있어서라고 주장을 한다. 실제로 니케아 공의회 직후에는 삼위일체파가 헤게모니를 잡았으나 이후 콘스탄티우스 2세 시대에는 다시 아리우스파가 세력을 잡는 등, 니케아 공의회 이후 수십 년간 기독교 헤게모니를 둘러싸고 황제권력과 얽힌 파괴적인 혼란(정적숙청 및 폭력 등)이 지속되었기에, 보는 시각에 따라서 이 점이 얼핏 여호와의 증인의 주장에 힘을 실어주는 것으로 보이기도 한다. 아무튼 결국 아타나시우스파(삼위일체 파)의 승리로 귀결되었기에, 비삼위일체 주장은 오늘날에는 이단으로 취급받는다.

2.3. 십자가가 아니라 형주

십자가를 받아들이지 않는다고 해서 그리스도 대속의 의미 그 자체를 부인하는 게 아니라 예수가 처형된 도구가 2개의 나무로 이루어진 십자가가 아닌, 오직 1개의 나무로 이루어진 단순한 기둥이라는 것. 즉 예수는 십자가에서 죽지 않았다고 주장한다. 그 이유는 '십자가'에 해당하는 그리스어 단어 중 하나인 스타우로스는 고전 그리스어에서 주로 곧은 기둥 즉 장대를 의미하며, 또 다른 단어 크실론은 단순히 "목재나 나무 기둥"이라는 의미이기 때문이다.[7] "3, 4세기에 나온 십자가 무덤이나 유물들은 뭐라고 반박할 거냐"고 묻는다면 증인 측에서는 '인류 문명 초기의 고대 이집트의 신들을 묘사한 그림이나 조각, 상형 문자, 콥트 교회, 또는 힌두교 불교인에게서도 감마 형태의 십자가(크룩스 감마타) 등의 십자가를 볼 수 있지 않냐, 이러한 이교의 형상적인 관습이나 형태가 그리스도교에 스며들어가서 십자가를 숭배하게 된 것이다' 라고 주장한다.[8] 그런데 엄밀히 말하면 십자가도 땅에 세우는 일종의 말뚝인 데다가, 당시 유대를 지배하던 로마 제국의 법률상 반역자[9]에게 시행될 극형이라면 십자가형이었음이 역사적으로 확인되므로 그 시점이 중요하다고 볼 수 있다.[10]

2.4. 종말론(아마겟돈)

이들은 초대회장 러셀의 '1914년 세상의 제도종말' 주장에서 보이듯이 종말론을 적극적으로 수용하여 그리스도의 재림이 임박한 것으로 믿고 있다. 그리고 시점이 틀렸다고 판명되면 자체적으로 변경해왔다. 즉 바꿔 말하면 특정 시점에 세상제도의 끝이 온다고 주장한 뒤에, 그 시점에 종말이 오지 않으면 태도를 바꿔 '종말이 언젠가는 오지만 당장은 아니었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여타 종말론적 종교들의 특성을 그대로 보이고 있다고 해도 무방하다. 현재는 (기독교가 세계 종말의 시점을 아무도 모르는 것으로 규정한 것과 마찬가지로) 정확히 언제 종말이 올 것인지는 아무도 모르며, 확실한 여러 징후가 있은 후에 종말이 올 것이라고 규정하고 있다.

이들의 교리에 따르면 '하늘왕국'에서 예수와 함께 땅을 통치할 전망을 가진 사람은 '적은무리'로 불리며 그 수는 정확히 14만 4,000명. 이는 이스라엘 12지파에서 비롯된 숫자이다. 민족이 유대인이냐 아니냐는 전혀 관련이 없다. 이 14만 4,000명이 하늘에서 그리스도와 함께 공동 왕노릇하며 지상을 다스리는 역할을 하며, 나머지 '큰 무리'는 낙원으로 회복된 지상에서 산다고 여긴다. 물론 14만 4,000명에는 러셀 이후의 증인만 포함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 이후, 즉 1세기 이후에 존재해 왔던, '인간적 철학에 의한 배교'에 휩쓸리지 않고 진정한 믿음을 유지한 충실한 그리스도인 역시 포함된다고 한다. 천년왕국[11] 시기가 도래해 (구약시대를 포함해) 예전에 죽었던 충실한 사람들이 부활되고 점차 땅을 낙원으로 만들어 나간다고 한다. 천년이 다 차게되면 무저갱에 갇혀있던 마귀가 일시적으로 풀려나서 마지막 시험을 가하고 이 최종시험을 이긴 사람들은 아담과 같은 완전성으로 돌아가 영원히 살게 된다는 것이다.

1914년 당시의 사건 이후에도 여호와의 증인들은 1975년[12] 종말론에 확신을 가졌었는데, 증인 지도부가 훗날 주장한 것과는 달리, 지속적으로 출판물에서 강조해 왔기에 당연히 일부 신자가 아닌 전세계의 여호와의 증인들이 그렇게 믿었으며, 세상 제도의 종말과 '임박한' 지상낙원에 대한 급박한 기대감으로 인해 자신들의 삶의 양식까지 변경해 가며 행동했다는 것이다.

1975년에 대한 기대가 허무하게 지나간 후[13]에는 1988 서울 올림픽, 소련-동유럽 공산주의 진영의 붕괴 등을 거치며 바야흐로 '평안하다 안전하다'[14]라고 여길 법한 전 세계적 평화무드로 접어드는 것이 아니냐는 전망이 있었고, 이에 따라 1990년을 전후한 시점에는 '아마겟돈이 지평선에 보이기 시작한다', '지금은 마라톤 주자가 마지막 결승선 앞 100미터 구간에 다다른 상황' 등등의 기대섞인 표현들이 널리 퍼져나가며 또다시 종말이 올 것이라며 기대감을 가졌으나[15] 이 역시 보기 좋게 빗나가고 이후 시간이 흐른 현재는 특정문구나 (직접이든 간접이든) 특정시점을 강조하지는 않지만 다니엘서의 '북방왕과 남방왕'에 관한 구절들을 인용하여 러시아-중국 동맹 vs 미국의 구도[16]하에서 곧 끝이 닥쳐올 것이라 믿고있다.

참고로 종말론에 대해서 첨언하자면 1975년과 관련한 예측실패 이후로 여호와의 증인의 종말론은 '직접적 시기'를 정하지 않는 것으로 변경되었다. 하지만 성경에 나오는 마지막 때에 대한 징조인 '기근과 범죄, 전쟁, 지진'등을 닥쳐올 종말의 징후로 보고 열심히 전도하고 있다. 그들의 교리에 따르면, '세상의 끝'이란 물질적인 지구 자체의 종말이 아니라 지상에 있는 악한 자들이 멸절된다는 의미의 아마겟돈이라고 한다.

2.5. 지옥 부정

여호와의 증인은 성경을 인용하여 현재 기독교계에서 말하는 천국과 지옥교리, 소위 예수천국 불신지옥이 이교에서 비롯된 잘못된 교리라고 주장한다. 사랑의 하느님이 자신의 피조물들에게 영원한 고통을 줄 리가 없다는 것.[17] 그래서 죽은 사람은 딱히 지옥 같은 곳에 가는 것이 아니라 그냥 무(無)로 돌아가며[18], 아마겟돈 때 그리스도에게 심판을 받고 염소로 분류될 악한 자들 역시 지옥이 아닌 무로 돌아간다고 한다.[19] 이러한 교리에 대해 비판하는 쪽에서는, 성경에 기록된 것처럼 누가복음에서 부자와 나사로의 죽음을 묘사한 내용을 들어 지옥이 존재한다고 주장한다.

2.6. 국기경배 거부와 집총 거부

이들은 자신들이 하느님의 왕국의 백성이기에 '너희들은 세상의 일부가 아니'라는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지키려고 한다. 흔히 증인들이 국가, 세상단체 등을 '마귀의 창조물'이라고 여겨 '국가 자체를 거부'한다고 알려져 있는데, 이는 증인에 관해 어설프게 아는 사람들의 일방적 견해로, 완전히 잘못된 것이다. 세상적 집단 자체들이 사탄이 빚은 창조물이란 것이 아니라, 그러한 조직들 배후에서 '사탄의 악한 영'이 영향을 미쳐 이들이 자신의 의도대로 세상을 악한 방향으로 움직이게 한다는 것.

기본적으로 성경의 가르침대로 '위에있는 권세'(국가권력, 최고통치자)에 복종한다. 단, 국기에 대한 경례, 군대복무 등 국가 혹은 국가의 상징물에 숭배적 헌신으로 여겨질 수 있는 행위 혹은 살인하지 말라는 성경적 대전제에 어긋나는 일체의 행동은 거부한다. 즉, 기본적으로는 국가의 지시에 복종하되, 성경적 원칙이라고 생각되는 부분과 국가의 강제력 혹은 의무가 부딪힐 때는 '사람보다 하느님의 말씀'을 더 따라야 한다는 이유로 이를 거부하는 것이다. 이 때 가장 자주 인용되는 문구가 "신의 것은 신에게, 카이사르의 것은 카이사르에게."이다. 한국의 인터넷에서는 여호와의 증인들이 국가 자체를 사탄으로 여겨 복종을 일체거부한다는 잘못된 정보가 사실처럼 돌아다니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진짜 그러했다면 아마 전세계적으로 난리가 났을 것이다.

이사야 2장 4절의 "무리가 그 칼을 쳐서 보습(=농기구)을 만들고 그 창을 쳐서 낫을 만들 것이며 '이 나라와 저 나라'가 다시는 칼을 들고 서로 치지 아니하며 다시는 전쟁을 연습치 아니하리라" 란 성경 구절, 혹은 "같은 그리스도교를 믿는 사람들끼리 어찌 서로 죽일 수 있나"란 논리를 내세워 국가 간의 전쟁을 경멸한다. 사실 집총거부의 경우 많은 선진국들의 역사에서 보듯이 재세례파 등 종교적 소수자들을 배려[20]하기 위해 대체복무제를 도입하거나, 아예 모병제로 전환했다. 국제 사회에서 양심적 병역거부를 인정하고 있지만[21] 한국에서는 보수주의자들, 예비역 남성들을 중심으로 여호와의 증인을 대단히 부정적으로 보는 여론이 형성되어 있다.

때문에 여호와의 증인들은 제2차 세계 대전 시절 나치 독일 일본 제국 치하에서 전쟁에 협력하기를 거부하였다. 그 결과 상당수의 신자들이 수용소나 교도소에 끌려가 고문, 집단 학살당했고, 2차대전 종전 후 서구, 특히 독일에서 병역 거부가 정당화되는 데 기여했다. 또한 의도치 않게 한국 독립운동사에 한 획을 긋기도 했다(등대사 사건[22]). 마찬가지로 아프리카 독재 국가나 중국 등의 후진국에서도 탄압받는다. 집총 거부와 같은 맥락으로 집단학살, 인종차별, 인권유린 등의 폭력에 동의하지 않는다. 이 점은 진보주의자들 사이에서 긍정적으로 평가받고 있다. 최소한 세속 국가에서 살면서 비폭력주의를 고수하고 있다. 물론 구약 성서 시대의 전쟁의 경우(예를 들어 예리코의 전투)는 긍정적으로 평가한다.[23]

여호와의 증인은 정치적으로 어느 특정 집단 편에도 서지 않고, 무엇보다 정부 당국자들 입장에서 여호와의 증인은 정부에게 실질적으로 위협이 되지 않기 때문에 그 나라가 신정 국가가 아닌 이상 반국가적인 면은 별로 신경 쓰지 않고 있다. 물론 한국 정부의 경우 병역거부 난민 발생과 유엔의 거듭된 시정 권고에도 불구하고 비교적 최근까지 병역거부자들을 처벌해왔으므로, 한국의 여호와의 증인 신도들은 교도소 수감과 출소 이후의 사회적 불이익을 고스란히 안고 살아가야 한다.

심지어 전쟁을 다루는 파괴적인 것들도 보면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이유에서 폭력성 짙은 게임들을 가까이 하지 않기를 권장하며, 폭력성 짙은 영화나 기타 영상물들을 보는 것도 주의하도록 계속 권고한다. 즐기는 와중에 부지불식간에 생각속에 저러한 요소들이 긍정적 혹은 아무것도 아닌 것 마냥 자리잡을 수 있다고 보기 때문에 경계하는 것. [24]

2.7. 수혈 거부

Q. 성서가 금하는 것에는 인간의 피도 포함되는가?
그렇다. 초기 그리스도인들은 그렇게 이해하였다. 사도행전 15:29에서는 "피[를] ... 계속 멀리"하라고 교훈한다. 그것은 동물의 피만 멀리하라는 뜻이 아니다. (비교 레위 17:10. 그 구절에서는 "어떤 피든지" 먹는 것을 금하였다.) 테르툴리아누스(초기 그리스도인의 믿음을 변호하는 글을 쓴 사람)는 이와 같이 말하였다. "'피'에 대한 금지령을 인간의 피에 대해 더욱 적용되는 (금지령)이라고 우리는 이해한다."—「니케아 이전의 교부들」 4권, 86면.
Q. 수혈은 과연 피를 먹는 것과 동일한가?
병원에서는, 환자가 음식을 입으로 먹을 수 없을 때, 그에게 정맥 주사로 양분을 공급한다. 그러면 입 안으로는 피를 전혀 넣지 않지만 수혈로 피를 받아들이는 사람은 과연 “피[를] ... 계속 멀리"하라는 명령에 순종하고 있는 것인가? (행 15:29) 비유를 든다면, 의사로부터 알코올을 삼가야 한다는 말을 들은 사람을 생각해 보자. 만일 그가 알코올을 마시지는 않지만 정맥으로 직접 주입한다면 그 지시를 따르는 것인가?
반론1
'의사'의 알코올 자제 지시와 성경에서 '피를 멀리하라'는 구절이 동일선상에서 비교될 수 있는지 문제된다.
의사의 알코올 자제 지시는 명백한 '의료적 목적성'을 띄고 있기 때문에, 입으로 하는 알코올 섭취와 정맥으로의 알코올 주입이 신체에 동일한 효과를 낸다는 점에서 알코올 자제 지시가 정맥으로의 투여 금지를 포괄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다만, 성경에서의 '피를 멀리하라'라는 레위기의 내용은 종교적 정결성을 그 목적으로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사람의 목숨을 살리는 용도의 수혈 역시 동일하게 정결성을 해한다고 볼 만한 명백한 논리적 구성이 없는 한 피를 멀리하라는 율법이 사람의 목숨을 살리는 수혈이라는 치료 행위의 금지를 포괄한다고 볼 수 없다.
반론2. 치료 목적과 율법상의 목적은 다르지 않은가?
성경에서 술도 멀리하라고 말하고 있지만, 알콜솜으로 사람을 소독하는 것이나 알콜이 들어간 구강소독제로 구강을 청소하는 것을 금지하는 기독교 종파는 없다. 성경에 포도주를 멀리하라는 구절(민수기 6:3, 신명기 32:33 등)이 등장하지만, 동시에 예수님께서 직접 말씀하신 이야기에서 '포도주로 상처를 소독하는 내용'(누가복음 10)도 등장한다.
누가복음 6장에서 예수님도 율법상 안식일에 누군가를 치료하는 것이 금지되어 있지만, 손 마른 자를 치료했다. 이에 율법주의자들의 비난을 하자 '안식일에 사람을 살리는 것과 멸하는 것 중에 무엇을 해야 하는가'라고 반문한다.
반론3. 다른 정결 규정
성경 레위기에는 를 멀리하라는 구절 말고도 여러 가지 정결 예식과 규정이 등장한다. 예컨대 전염병에 걸린 자와 접촉하게 될 경우 마을에서 7일간 벗어날 것, 생리하는 여성과 접촉할 시 정결 예식 및 마을로부터 떨어질 것을 규정하고 있다. 이에 대해 '여호와의 증인'은 오로지 수혈의 금지에만 집중하여 목숨을 잃어가면서도, 다른 율법의 정결 예식과 규정에 대해서는 이토록 집중하고 있지는 않다.
반론3에 대한 반론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여호와의 증인이 피를 멀리하는 성경적 근거로 제시하는 것이 레위기라고 알고 있고 항상 레위기만 언급한다. 하지만 정확히 보자면 잘못된 것이다. 애초에 피를 먹는 것에 대한 금기는 창세기 9장 4절에 나와 있다. 이는 모세율법보다 훨씬 오래된 명령이이며, 특정 민족만이 아니라 모든 인간에게 적용되는 보편적 명령이다. 증인들은 (신약시대 이후의 율법폐지로 인해 그 이행에 대해 이견이 갈릴 수 있는) 레위기의 내용보다는, 명백한 창세기의 내용을 근거로 삼는다. 따라서 반론3에 있는 '다른 율법에 관한 집중'문제는 논점을 벗어난 것이라 할 수 있다. 증인들 역시 모세율법은 신약시대에 들어서며 폐지된 것이라 믿는다.

이들은 창세기에 9장에 나와있는 '피를 먹지말라'는 명령을 '피를 아예 받아들이지 말라' 로 해석하여 수혈을 금지하고, 녹용이나 순대 등 동물의 피가 들어간 음식을 먹는 것도 금지하고 있다.[25] 그로 인해 무수혈 수술, 수혈 금지 등의 문제를 야기하게 되었다.

일부 신자들이 무수혈 치료가 수혈 치료보다 부작용이 적은 점을 들어 수혈 치료가 안 좋다는 식으로 주장하기도 하는데, 이는 대단히 위험할 수 있는 주장이다. 무수혈 치료가 이루어지는 수술은 주로 심장 질환 계통의 수술로, 많은 준비와 철저한 계획 후 이루어진다. 하지만 많은 수혈 치료가 교통사고 등의 응급 상황에서 이루어지며, 1분 1초를 다투는 상황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부작용 운운하는 일부 발언이 얼마나 위험하고 억지스러운 주장인지 알 수 있다. 수혈 치료보다 무수혈 치료가 효율적이라면 이미 현장에서 의사들이 먼저 주 치료법으로 채택했을 것이란 걸 잊지 말자.

본인의 수혈만 거부하면 혼자 죽고 말 일이라 볼 수도 있다. 이에 대해 수혈 거부 의사를 인정한 의사에 대해 법적 책임을 물을 수 없다는 대법 2009도14407 판결도 있다.

2.8. 동교 결혼

쉽게 말해서 여호와의 증인은 여호와의 증인을 믿는 정식 신자와만 결혼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아내는 남편이 살아 있는 동안 남편에게 매여 있습니다. 그러나 남편이 죽어 잠들면 원하는 사람과 결혼할 자유가 있습니다. 하지만 주 안에서만 해야 합니다. 고린도 전서7:39
그리스도인 회중에서는, 자동적으로 결혼의 띠가 끊어지게 되는 죽음을 제외하고, 결혼의 띠가 끊어지게 되는 유일한 근거는 '음행'이다. 죄를 범한 사람은 음행을 통해 불륜의 상대와 한 몸이 된 것이다. 따라서 무죄한 쪽에서는 원한다면 이것을 근거로 결혼 관계를 끊을 수 있으며, 그런 다음 재혼할 수 있다. (마 5:32; 로 7:2, 3) 그리스어 성경에서는, '음행'(그리스어, 포르네이아)의 경우에 이처럼 이혼을 허용하지만, 그리스도인들에게 배우자가 신자이든 신자가 아니든 별거도 하지 말라고 교훈하며, 만일 별거하게 된다면 다른 누구와도 성관계를 갖지 말라고 명령한다.—고첫 7:10, 11; 마 19:9.

여호와의 증인 신자인 가족이 여호와의 증인신자가 아닌 사람과 결혼하게 된다면 그 결혼식에 참석할 수 없다. 교묘하게 알려지지 않은 문제점이다. 만약 당신이 장로이거나 파이오니아 이거나 무언가 특권을 가진 상태로 여호와의 증인과 그렇지 않은 사람의 결혼식에 참석했다는 것이 알려지게 되면, 혹은 그 결혼을 승인한다는 어떤 행동을 하게 되면 가진 특권을 전부 박탈당한다. 자녀들이 증인으로 침례를 받았고 그 이후에 증인이 아닌 사람과 결혼하게 된다면 결혼식에 참석하지 않는 부모들도 있다! 자신의 종교적 안위가 자녀의 결혼식을 행복하게 하는것 보다 중요하게 생각한다.

역으로 본인이 남과 자신을 비교하는 이성을 만나기 싫다면 이 교리가 굉장히 바람직할 수 있다.

2.9. 생일기념 거부

성경적 근거가 없는 교리 중 하나이다. 물론 증인들은 몇몇 성경적 사례(?)[26]를 근거로 제시한다.
1. ( 창세기에서) 요셉과 함께 감옥에 갇혀있던 '빵 굽는' 신하는 이후 요셉의 꿈 해몽대로 처형되었는데, 이 날은 파라오 생일이었다.
2. ( 마태복음, 마가복음에서) 침례자(혹은 세례자) 요한은 헤로디아의 청을 들은 헤롯 안티파스 왕의 명령으로 처형되었는데, 이 날은 헤롯의 생일이었다.
3. 예수 그리스도 최후의 만찬을 베풀며 자신의 죽음을 계속 기념하라고 명령했지만, 자신의 생일을 기념하라고 한 적은 없다.

1, 2번에 대해서 보자면, 어디까지나 생일잔칫날 처형을 명했던 당사자를 비난할 수는 있어도 생일 그 자체는 아무런 잘못이 없다. 만약 파라오나 헤롯의 결혼기념일날 처형이 일어났다 해도, 결혼기념일을 지키는 것 자체는 아무런 문제가 없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물론 생일기념 때 케이크에 초를 꽂아놓고 소원을 비는 등의 행위는 기독교적이 아닌 이교적 혹은 미신적 모습이라 할 수 있으므로 배격할 수 있겠으나, 생일기념 그 자체를 터부시하는 것은 명백한 과잉해석이고 비성경적이라 할 수 있다.

3번의 경우 역시 지나친 해석이라 할 수 있다. 그리스도가 자신의 생일을 기념하지 말라고 한 적 또한 없다. 물론 성탄절이 사실 그리스도의 생일날이 아니며, 그 근원 역시 태양신과 관련된 숭배기일에 있기에 성탄절은 거부한다고 해도 이상할 것은 없지만, 일반 개인의 생일기념까지 금하는 근거로 삼을 수는 없다. 성경에 명확히 나와있지 않은 부분들에 대한 행동을 개개인의 양심에 맡기지 않고 일률적으로 금기시하는 것은 너무나도 자의적이고 지나친 교리라고 볼 수 있다.

참고로 '개역개정판'의 욥기 1장 4절에는 욥의 자녀들이 각자 '자기 생일'에 잔치를 베풀고 즐겼다고 되어 있는데, 이 중 '자기 생일'이란 부분은 개역개정판을 편찬한 측에서 임의로 집어넣은 것으로 보인다. 현대어성경 등의 해당 부분에는 생일이란 표현이 등장하지 않는다. 욥의 아들들이 '차례로 돌아가면서' 잔치를 베풀고 놀았다는 내용으로 보아, 이는 생일잔치가 아니라 다른 순회적 잔치(돌아가며 거하게 베푸는)였을 수도 있다. 물론 이러한 내용이 생일기념을 터부시해야 한다는 근거가 되지는 못함은 분명하다.

2.10. '두 가지 부류의 구원'교리

구원받는 여호와의 증인에는 두 부류가 있으며, 각각 서로 다른 구원의 희망을 가지고 있다는 교리이다.

한 부류는 '적은무리'이며, 이들은 죽은 후 하늘로 올라가 아마겟돈 이후에 왕인 그리스도와 함께 하늘왕국을 상속받고 왕 겸 제사장으로서 이 땅을 다스릴 희망을 가지고 있다고 말한다. 다른 한 부류는 '큰무리'인데, 이들은 하늘이 아니라 땅에서 영원히 살 희망을 가지고 있다고 믿는다. 적은무리의 숫자는 요한계시록에서 나오는 바를 문자적으로 해석해 정확히 14만 4천명이라고 한다. 그 외 나머지는 모두 큰무리에 속한다. 증인역사 초기 수십년 간에는 이런 두 가지 무리의 구분이 없었으나, 1935년 이후 이러한 교리가 정립되었다.[27]
이교철학 및 배교적 영향에 오염되지 않고 깨끗하게 충실한 믿음을 유지했던 서기 1세기 그리스도인들 + 점차 급속도로 오염되어 간 기독교 속에서 그나마 초기의 신앙을 지키며 남아있던 2세기 이후의 극소수[28]의 참그리스도인들 + 1870년대 이후의 여호와의 증인들 중 (큰무리를 제외한) 선택된 자 = 적은무리 14만 4천명.
이 '적은무리'들은 성경의 최후의 만찬 부분에 나와있는 바와 같이 그리스도의 몸과 피로 인한 '새 계약'의 당사자들이며, 따라서 하늘왕국을 상속받아 그리스도와 더불어 왕노릇할 희망이 있다. 그렇기에 증인들의 연례행사인 '주의 만찬'날에 표상물(무교병과 포도주)를 직접 섭취한다. 하지만 하늘희망이 없는 절대다수의 큰무리들은 이를 먹지는 못하고 단지 서로 돌려가며 눈으로 보기만 한다. 이 교리가 등장한 1935년을 기점으로 기존의 적은무리를 모으는 일은 끝났으며 이후 전 세계로부터 본격적으로 큰 무리가 모아지기 시작했고 적은무리의 숫자는 계속 줄어들어 왔다고 가르친다. 실제로 이후 오랜시간 동안 표상물을 섭취하는 '적은무리'의 수는 지속적으로 줄어들어 왔고, 이는 이 교리의 정확성을 증명하는 것으로 여겨졌다. 적은무리가 지상에서 완전히 사라지기 전에 고대하는 아마겟돈이 올 것으로 생각했으므로 이들의 지속적 감소는 신자들의 끝에 대한 희망을 증폭시키기에 충분했다.

그런데 이들의 수가 8천명 대까지 떨어진 2005년 경부터 이전에는 볼 수 없었던 현상이 나타난다. 이 시기를 기점으로 표상물 섭취자 즉, 적은무리로 간주되는 사람들의 숫자가 폭증하기 시작한 것이다.[29] 급기야 2019년에는 2만 명을 돌파해 버린다. 이는 증인교리에 있어서 심각한 문제이다. 오랫동안 증인들은 표상물 섭취자를 적은무리와 동일시해왔고[30], 이를 '이 세대'와 관련된 교리와 연관지어서 세상의 끝이 얼마나 가까이 다가왔는가를 간접적으로 파악할 수 있는 바로미터로 생각해왔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들이 이제 폭증했으니 혼란이 올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이런 당혹스런 현상에 대해 증인조직은 제대로 된 해명을 내놓지 못하고 있으며[31] 도리어 이에 대한 불만을 갖지 말 것을 요구하고 있는데, 비양심적이게도 1990년대 중반 파수대에 잠깐 언급되었던 해명내용[32] 을 거의 그대로 복사해서 2010년대 후반의 파수대 내용에 붙여넣는 등, 시대착오적인 모습을 보임과 동시에 제대로된 해명의 의지도 보이지 않고 있다.

또다른 문제는 2021년 현재시점의 중앙장로회 멤버들이 모두 1935년 이후에 태어난 사람들이란 점이다. 중앙장로회 멤버들은 예로부터 전원 하늘희망을 가진 적은무리라 자처해 왔고 모든 신도들에게 그렇게 받아들여지고 있다. 현재 8명의 멤버들 중 최연장자 '새뮤얼 허드'(1999년 이후로 멤버)는 1935년생이며 최연소 멤버는 아직 50대에 불과하다. 이들이 왜 큰무리가 아니라 적은무리인가에 대해 제대로 된 설명이 이루어진 적은 없다. 그저 기존 적은무리들에 이탈자(배교 등으로 인한)들이 발생했고 그 자리를 메운 사람들 중 일부가 현 중앙장로회 멤버가 아니겠냐는 궁색한 말들만이 돌고있을 뿐이다. 러더퍼드의 개인적 주장을 핵심교리의 반열에 올려놓고 그 모순이 드러나고 있는 현재에 와서도 아직도 러더퍼드의 잘못된 유산과 결별하지 못하는 증인조직이 스스로 초래한 당혹스러운 현실이라고 밖에 볼 수 없다.

애초에 적은무리의 수를 14만 4천으로 못박은 것 자체가 무리수라고 할 수 있다. 1세기 기독교인 전체 + 2세기 이후의 극소수 잔존 '참기독교인' + 러셀시대 이후부터 1935년경까지의 증인들을 모두 합치면 이미 14만 4천명을 넘어서고도 남을 것이다. 또한 하늘의 희망과 땅의 희망을 구분하는 기준이 단순히 '선착순'이 되어버리는 것이기에, 공정함과 형평성이 전혀 존재하지 않는다. 1935년 이전에 태어난 덕택에 하늘희망을 받고, 그 이후에 태어났다는 이유로 땅의희망에 머물러야 한다는 교리가 과연 어느 정도의 설득력을 가질지는 의문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14만 4천이라는 표현은 요한 계시록 7장 4~5절과 14장의 여러 구절에서 등장하는데, 특히 7장 5절에는 그 14만 4천을 이루는 세부적인 수치가 제시된다. 르우벤 지파에서 베냐민 지파에 이르는 12개 지파에서 각각 12,000명씩 해서 총 14만 4천이다. 그런데 증인들은 총 합인 14만 4천은 완전히 문자적으로 해석하면서 정작 그 세부사항인 12,000명 부분은 문자적으로 해석하기는커녕 그냥 언급도 하지 않고 무시해 버리는데, 이 말은 즉, 그 부분은 그냥 상징적 표현으로 취급한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12,000이라는 '상징수'가 12번 더해진 14만 4천이라는 수를 '문자적 수'로 해석하는 것인데, 아무리 보아도 이치에 맞지 않다. 어떻게 상징수가 더해져서 문자적 수가 만들어진다는 말인가.

증인들은 적은무리와 큰무리의 구분을 정당화하기 위해 다음의 성경구절을 이용한다.
1. 나에게는 이 우리에 속하지 않은 다른 양들도 있습니다. 나는 그들도 인도해야 합니다. 그래서 한 목자 아래 한 무리가 될 것입니다. (요한복음 10:16, 신세계역)
이 구절에서 기존에 '이 우리'에 속해있던 양들은 '적은무리', 속하지 않은 다른 양들이 바로 '큰무리'라는 것이다. 하지만 이 구절에서 나오는 '우리'의 뜻은 기존의 '모세율법'을 뜻한다는 보는 것이 정설이다. 즉 해당 성구는 '모세율법에 속하지 않은 비유대인들(다른 양들, 대표적인 예로 고넬료)도 인도해서 기존 유대인 출신 그리스도인과 더불어 하나의 무리로 조화를 이루게 할 것'이라고 해석하는 것이 정확하다. 신약시대의 새 계약 하에서는 유대인과 비유대인 모두 그 계약의 대상이 되어 하나의 희망을 가지게 되는 것이다.
2. 적은 무리여,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여러분의 아버지께서 여러분에게 왕국을 주는 것을 승인하셨습니다. (누가복음 12:32, 신세계역)
이 부분은 그저 그리스도가 자신의 제자들을 적은 무리라고 지칭한 것일 뿐이다. 저 구절 어디에도 적은 무리와 구분되는 다른 집단의 존재가 암시되어 있지 않다. 또한 '좁은 길'을 걸어갈 충실한 숭배자들은 그 수가 많지 않을 것이라는 것이 이미 성경에 기록되어 있기 때문에, 진실하고 충실한 그리스도인들을 구태여 두 부류로 나누지 않고 전체를 일컬어 '적은 무리'라고 지칭해도 문제될 것이 없다고 할 수 있다. 애초에 (위선자, 가짜 그리스도인을 제외한) 진짜 그리스도인들은 세상의 총 인구에 비하면 '적은 수'가 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2.11. 중앙장로회의 신격화 혹은 우상화

이전까지 없던 현상인데, 중앙장로회 혹은 통치체라고 불리는 집단지도자들은 JW방송이라는 시스템을 개편하면서 얼굴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이전까지 통치체의 얼굴과 이름을 아는 사람들은 '여호와의증인 왕국선포자'책을 읽은 사람들이거나 MTS(과거 증인 남자들에게 하던 교육시스템)출신들이었다. 간혹 파수대에 통치체 성원이 새로임명되면 그들의 인생을 적은 일대기를 싣어 주기는 했지만 그걸 유심히 보는 사람도 적었고 기억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위 문단에서 언급한 조직에 대한 절대신뢰와도 관련이 깊은데, 그들은 자신들의 얼굴을 드러내며 900만에 가까운 사람들에게 영향력을 행사하지만 잘못될 경우에 전혀 지켜주지 않는다.

머리직분으로 대표되는 시스템을 악용해 그들의 말은 온전히 신뢰할것을 강요한다. 일반적으로 밖에서 보는 시선으로는 이해하기 어려운 일인데 들어와서 당해보면 곡소리가 난다. 아래의 매커니즘을 따라가다 보면 나도 모르게 장로의 눈치를 보고 중장회의 눈치를 보게 된다.

머리직분 시스템을 통해 중앙장로회는 신이 되었으며 그들의 말을 아무도 거스를수 없게 되었다. 겹세대론이 처음등장했던 2010년대 초반에 그 분위기가 아주 두드러졌는데, 말도안되는 개소리 인걸 알면서도 서로 중앙장로회는 끝이 가까운걸 몸으로 직접느낀다느니 뻘소리를 하며 서로의 믿음을 강화해 주기 바빴다.

3. 상습적 교리번복에 대한 합리화 시도와 그에 대한 비판

여호와의 증인은 그들의 가장 큰 교리적 기둥인 1914년 교리만은 끝까지 고수[33]하기 위해 이를 뒷받침하는 교리들을 계속해서 만들어내고 필요하다면 반복적으로 수정하는 것도 마다하지 않는다. 또한 일찍히 1874년 임재설을 시작으로 이후 1914년 아마겟돈설 주장, 1925년 아마겟돈설 및 구약의 충실한 자들 부활주장, 1920년대의 '지금 살아있는 수 백만명이 결코 죽지 않을 것이다' 주장, 1975년 세상의 종말설 주장 등 화려한 실패전적을 보유하고 있다. 2020년인 현재에도 '겹세대론' 등 여러가지 비성경적인 주장을 '조직논리'를 앞세워 성경 가르침과 사실상 동격으로 두고 굳게 신봉하고 있다.

140년이 넘는 시간동안 상기한 여러 교리들의 성립과 소멸 사이사이마다 수많은 수정이 가해졌고, 이는 앞으로도 변함없이 계속될 것이다. 왜냐하면 시간은 점점 흐르고 있고, 그들은 '중앙장로회 1919년 임명'교리를 앞으로도 절대 포기할 수 없기 때문이다. 시간의 경과 때문에 기존 교리가 실패로 돌아간다면 다시 수정할 것이라는 것.

아킬레스건처럼 되어버린 상습적 교리번복에 대한 비판에 대응해 증인들은 이렇게 항변한다.

1. 잠언 4장 18절을 이용한 궤변
그러나 의로운 자의 길은 아침의 밝은 빛과도 같으니, 한낮에 이르기까지 점점 밝아진다. (잠언 4:18, 신세계역)
증인들이 전가의 보도처럼 사용하는 성구. 사실 저 성구는 어떤 교리적 가르침의 오류가 시간이 흐를수록 바로잡혀 결국 실체적 진리에 수렴하는 것과는 아무 상관없는 구절이다. 또한 '아침의 빛'을 처음 보았다고 간주되는 러셀시대 이후, 결정적 교리 면에서 그들이 점점 밝아지기는 했는가를 따져보면 그렇지 않다는 걸 알 수 있다. 대표적 예로 비성경적 교리의 대표주자인 '겹세대론'을 들 수 있으며, 또한 2005년 이후 갑작스레 대폭증해버린 표상물 섭취자 수의 증가로 인해 이제는 꼬여버려 궁색한 처지에 놓인 '적은무리-큰무리 교리' 역시 이에 해당한다. 정말 점점 밝아지는 진리가 그들 가운데 있다면, 저러한 잘못된 교리들은 그리스도의 인도 하에 서둘러 폐기되었어야 마땅하다. 하지만 중앙장로회는 예전에도 그랬듯 결코 그럴 생각이 없는 것으로 보인다. 왜냐하면 그들 권위의 근간인 '1919년 임명' 교리를 끝까지 고수하기 위해 버텨야 하기 때문이다.

2. 과학적 견해도 시대에 따라 변한다. 교리변경도 마찬가지이며 따라서 아무 문제없다.

완전히 잘못된 비유다. 증인조직의 교리변경이 어떻게 이루어져 왔는가를 안다면 결코 그렇게 말할 수 없을 것이다. 과학적 견해의 변경은 새로운 가설제시에서 출발해 이를 입증하기 위한 상세한 근거제시 및 전세계적 토론과정 그리고 검증과정들을 반드시 거친다. 그 과정에서 조금의 오류가 발생한다면 결코 인정받지 못한다. 반면 증인의 교리는 결코 그런 식으로 만들어지지 않았다. 중앙장로회가 성립되기 이전시대(러더퍼드 시대- 노어시대 초기)에는 러셀-러더퍼드의 생각이 즉 교리 그 자체가 되었다. 특히 러더퍼드 시대에 들어 강력한 중앙 집권적 권위가 형성되면서 이에 대해 '감히' 이의를 제기하는 건 점점 있을 수 없는 일이 되었다. 1935년 이후 '큰무리'와 구분된 적은무리들 역시[34], 교리형성에 있어 영향력을 행사하지 못했다. 오직 협회장과 그 곁의 극소수의 인물들의 견해가 교리화되었다. 과학이론 정립과는 거리가 먼 이러한 방식 때문에, 그렇게 많은 아마겟돈 예언실패와 기타 교리적 오류들로 점철될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노어시대로 깊숙히 들어섰지만 이러한 경향은 절대 변하지 않았다. 도리어 노어시대에는 '프레데릭 프렌즈'[35]라는, 증인조직의 독보적 이론가가 대두되어 핵심교리 형성에 지대한 영향력을 행사했다. 1966년부터 시작된 '1975년 세상의 끝' 주장이 바로 프렌즈로부터 시작된 것이다. 결과적으로는 대실패로 끝난 이 개인적 망상은 당시엔 정말로 확고한 주장이 되어 전 세계 수많은 증인들의 삶의 양식을 좌지우지했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1914년으로부터 점점 멀어지게 되면서 '이 세대' 교리가 흔들리게 되자 급해진 조직은 '세대'의 끝 시점을 연장하고 또 연장하게 되는데, 이 과정에서 소수 상층부를 제외한 신도들의 이의제기는 결코 용납되지 않았다. 심지어 이 무리한 교리변경에 대해 중앙장로회(당시 통치체) 내부에서조차 의견일치가 안 되어 여러 타협안 제시가 오갔을 정도로 상황은 촌극 그 자체였다.

2020년 현재 오늘날에도 바뀐 건 아무것도 없다. 파수대 '연구'라고 말하지만 실제로는 '연구'의 사전적 뜻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 단순 주입만이 이루어지고 있다. 관심자들에게 이루어지는 개인연구 또한 동일하다. 러셀시대 극초기 소규모 모임시절에는 그나마 구성원 전체의 토의를 통한 결과도출이란 기본적 과정을 거치려고 했었다. 하지만 지금은 교리에 대한 모든 최종권한이 극소수의 중앙장로회로 넘어갔으며 이들의 생각이 곧 성경말씀과 사실상 동등한 권위를 부여받게 되었다. 그래서 '겹세대론'과 같은 희대의 엉터리 교리가 2010년에 등장했음에도 신자들은 아무런 이의제기를 못 하고 무기력하게 가만히 있게 돼버린 것이다.

과학적 이론정립의 철저한 과정을 이들 증인조직에 그대로 적용한다면 조직이 남아나지 않고 완전히 붕괴될 것이다. 과학적 견해가 변할 수 있듯이, 증인교리가 합리적으로 변할 수 있다는 것을 진정으로 인정했다면 '레이먼드 프렌즈'[36]와 같은 사례는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다.

3. 진리를 찾고자 하는 열정이 너무 깊어서 그랬을 뿐인데 무엇이 문제인가?

실제로 과거의 빗나간 연대예언 결과를 받아들자 보였던 변명이다. 이런 변명이 용납되려면 증인 외에 전 세계에 있는 수많은 연대예언 실패사례가 다 정당화되어야 한다. 한국에선 그 유명했던 1992년 다미선교회의 사례가 있다. 증인들은 당연히 이들의 '거짓예언'이 실패로 돌아갔다는 이유로 이들을 모두 거짓 그리스도교로 규정한다. 그러나 돌이켜보면 다미선교회도 구원받고자 하는 열망, 열정이 너무나 커서 그런 일을 벌였다고 할 수 있다. 또한 증인 외의 다른 전 세계의 재림교파들 역시 특정 연도를 유별나게 중요시하며 터무니없는 확신을 가졌던 적이 있다. 대표적으로 1844년 미국에서 일어난 '대실망 사건'(Great Disappointment)이 있다. 재림파의 선구자인 윌리엄 밀러가 예언한 예수 재림이 실패로 돌아간 유명한 사건이다. 따지고 보면 이들 또한 세상의 끝을 보고 구원을 얻고자 하는 그 열정이 너무 깊어서 과도한 추측과 근거없는 예언을 남발했던 것인데, 증인들은 이들 역시 거짓종교로 치부한다. 하지만 결국 '열정'이라는 면에서 증인들이 이들과 크게 다른 부분은 없다고 할 수 있다. 즉, 타 종교들에게 들이댄 잣대를 가지고 증인 스스로를 판단한다면 그들 역시 거짓종교가 되어 버리는 것이다.

또한 이들은 과거 사건들을 단순히 '열정에 의한 헤프닝' 정도로 의미축소를 하려고 한다. 그저 '기대할 수 있을 정도'라고만 제시했을 뿐이었는데 일부 신자들이 오버해서 필요 이상으로 연대를 맹신하고 막나가는 행태를 보였다는 태도를 아직도 견지하고 있다. 하지만 그들은 그 당시에 항상 '확신적', '의심의 여지가 없는'. '하느님의 시간표' 등등 매우 확정적이고 최종적인 의미의 수많은 표현으로 그 연대들을 정당화하고 거듭 강조해 왔다. 따라서 해당 연대들에 끝이 오는 것은 의심할 필요가 없는 당연한 사실인 것마냥 전파되었었다. 그렇기에 예언이 빗나가게 되자 수많은 신자들이 등을 돌리게 된 것인데, 통치체 등의 지도부는 2020년 지금까지 그 어떠한 과거사에 대한 사과도 하지 않고 있고, 모든 것이 '잘못 이해하고 성급했던' 일부 신자들 때문에 벌어졌던 일시적 해프닝 정도로 여기고 있다. 당시 재산을 처분하고 직장을 그만두고, 병원치료를 아마겟돈 이후로 미루고, 고등교육(대학 이상)을 포기하는 등, 협회의 확신적 설레발에 넘어갔다가 이루 말 할 수 없는 심리적 물질적 피해를 입은 사람들에게 협회가 보인 인간적인 배려는 지금껏 아무것도 없다. 오히려 그 사람들을 '걸려 넘어진, 믿음이 부족했던 배교자'로 취급하고 있을 뿐.

현재 증인조직이 주장하는 겹세대, 북방왕-남방왕 예언들이 또 빗나가게[37][38][39] 되면 그들은 또다시 '열정이 커서 그랬을 뿐'이라 변명을 시도할 것임은 자명하다. 하지만 단지 '열정'이었다는 이유로 이 모든 것들을 합리화할 수 없는 건 당연한 것이라 할 수 있다.

4. 인간이 불완전하기에 때론 실수도 할 수 있는 것이지, 뭐가 문제인가?

(예시)
1. 최근에 요한반열[40]은 번쩍이는 번개를 본 것 만큼이나 분명하게 세상의 일들을 분별하게 되었다. 오랜 숙고끝에 왕이신 그리스도의 인도에 따라 우리는 **는 ***이며 앞으로 ***할 것이라는 것을 확신한다. 이는 그리스도의 인도를 받는유일한 통로인 중앙장로회의 해석이므로 이에 의문을 가진다면 구원의 자격이 없는 것이며 조직에서 배척할 것.
2. (엉터리였음이 드러난 후) 중앙장로회도 사람일 뿐이다. 사람은 누구나 불완전하다. 모든 면에서 완전하고 정확한 말만 할 수 있는 사람이 세상에 어디 있는가? 우리의 책임은 없다. 이전 해석을 믿지 않아 조직에서 배척된 사람들에 대한 복귀조치는 고려하지 않는다. 그들은 여호와와 그분의 아들 그리스도에 따르지 않는 배교자일 뿐이다. (이후 1과 2의 무한반복)

이것이 그들의 전형적인 패턴이다. 불완전하다고 둘러대는 것은 즉, 그 '예언'과 잘못된 해석들의 근원이 그리스도의 인도가 아니라 '불완전한 인간'에 불과한 자신들의 망상이었다는 걸 인정하는 것 밖에 되지 않는다. 한창 주장할 때는 '거짓말할 수 없는' 그리스도의 인도라고 확신에 찬 어투로 말하다가 나중에는 '사실 그게 아니었다'고 시인하는 것이나 마찬가지. 그들이 그리스도가 선택한 '유일한 통로'가 아니라는 것이 분명히 드러난다.

5. 기상청 예보도 오류가 많이 발생한다. 증인조직의 오류가 뭐가 잘못된 것인가.

위의 2번과 대동소이하다. 기상청의 오류가 빈번한 것은 사실이나, 그들은 최소 최신의 기상학 이론과 고성능의 슈퍼컴퓨터 등을 동원해 최대한 그 시점에서 가능한 믿을 만한 결과물을 도출하려고 노력한다. 반면 증인조직의 교리들은 어떠한가. 교리를 정립한 당대에 동원할 수 있는 모든 합리적 성경근거와 많은 기독교 관련자들의 견해를 취합해서 최대한 오류의 여지를 제거하고 믿을 만한 결과를 도출하려고 노력했는가. 그렇지 않았다는 것은 그 동안 일어난 많은 예언실패가 증명해 준다. 기상예보는 많은 실패 속에서도 실패의 원인을 분석하여 점점 적중확률을 높여가지만, 증인조직의 교리는 계속 실패로 드러나고 있다. 2번에서 언급했듯이, 교리결정이 매우 폐쇄적이고 독단적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결코 기상예보의 과정과는 비교할 수 없는 것이다.


일찍이 러셀은 1914년 세상의 끝에 대한 예언이 빗나가자 패닉 상태에 빠졌으며 결국엔 자신의 오류를 철저히 인정하기보단 정당화하는 쪽을 택했다. 그는 이러한 실패를 두고 '그리스도가 자신의 계획을 파기하고 끝을 오지않게 한 것은, 앞으로 더욱 더 전파에 매진하고 더욱 충성을 다해 믿음을 유지하도록 하기 위한 일종의 축복'으로 받아들였다. 일종의 '정신승리'를 택한 그는 동료 신도들에게 사과하지 않았다. 훗날 말년의 러더퍼드 또한 여러 예언실패 등에 대해 '바보같은 짓을 했다'고 인정하는 모습을 잠깐 보이긴 했다. 그러나 그 역시 신도들에게 결코 사과하지 않았다. 이후 1975년 예언이 불발되었음에도 조직은 결코 사과하지 않았다. 2009년의 서울 국제대회에서 중앙장로회의 '게리트 뢰시'가 사과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으나, 그는 어디까지나 마지못해 당시 그 예언행위를 했다는 것 자체를 인정했을 뿐[41]이며 그의 멘트 어디에도 그 잘못된 교리로 인해 인생이 꼬여버린 피해자들에 대한 사과가 담겨있지 않다. 더구나 게리트 뢰시는 뻔뻔하게도 그러한 '마지못한 인정'에 대해 '이것은 조직이 정직하다는 걸 증명해주는 하나의 증거가 아닌가?'라고 정당화했다. 무려 34년(!)동안 버티고 있다가 그제서야 조금 고개를 끄덕인 것이 '정직'한 것이라고 판단할 사람들이 세상에 몇 있겠는가.

이러한 태도들을 보면 여호와의 증인이라는 조직의 거듭된 실패는 정당화될 수 없으며, 그들은 '조직논리'를 앞세워 화석화된 독단적 결정을 남발하는, 그저그런 재림파 개신교 계열의 한 일파일 뿐이라는 걸 알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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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교리 부분이기에 정확하게 첨언하자면, 인간의 영, 혼, 육 혹은 영과 육을 믿는 다른 기독교 일파와 달리 여호와의 증인들은 인간의 영을 믿지 않고 육(=영혼)만을 믿는다. 즉 인간과 동물들은 영혼만 있으며 따라서 인간이 죽음을 맞이하게 되면 전도서와 창세기의 성구를 근거로 영혼이 죽어 '지옥'행이 아닌 '흙'으로 되어 아무것도 모른다고 가르친다. 아마겟돈(=대심판, 멸망) 후에 여호와의 증인들만이 지상낙원에서 영원히 살고 증인들 중에서도 선택받은 일부(144,000명)는 적은 무리로 예수와 함께 하늘을 통치한다고 믿는다. 영은 어디 있느냐 궁금할 사람들을 위해 덧붙이자면 하느님과 천사들, 예수(=천사장 미가엘), 사탄과 그의 추종 세력인 타락천사(악귀)만을 영을 가진 고등한 인격체로 간주한다. 이렇듯 여호와의 증인은 아마겟돈 후에 자신들이 부활되어 지상낙원에 사는 것을 믿고 또한 이를 기반으로 전도한다. [2] 증인 '조직'이 유일한 구원의 통로라는 것을 받아들이지 않아 제명된 사람과 관련된 재판이었다. [3] 초기 협회장 러셀 시대에는 그리스도의 임재가 1874년에 이루어지고 40년 후인 1914년에 세상 전체가 아마겟돈으로 심판받는다고 가르쳤다. 여지없이 빗나간 이후 후임 협회장 러더퍼드 시대에 이르러 1914년 임재교리로 변경되었고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다. [4] 예수가 하늘을 떠나기 전과 하늘로 돌아간 후에 미카엘이라는 이름이 그에게 적용되었다는 근거를 간략히 살펴보자면, 미카엘은 '수석 천사' 즉 '우두머리 천사'를 의미하는 '천사장'이라고 언급된 유일한 존재이다. 성서에서 이 용어는 단수로만 나온다. 이것은 하느님이 천사 무리의 수석, 즉 우두머리로 하나만을 지정하셨음을 의미하는 것 같다. 데살로니가 전서 4:16에서, 부활된 예수 그리스도의 음성은 천사장의 음성으로 묘사되어 있는데, 이는 사실상 바로 예수가 천사장임을 시사한다는 것이다. [5] 이 또한 예수가 미카엘과 같았을 때 부정되는 부분인데, 미카엘이라는 이름은 "누가 하느님과 같은가?"라고 묻는 의미로서, 그 이름 자체가 하느님과 같은 자 즉 동등한 자가 없다는 사실과 미카엘이 하느님의 위대한 옹호자 혹은 입증자라는 사실을 시사하기 때문이다. [6] 여호와의 증인은 이 부분을 오히려 비틀어, 예수 = 미카엘을 주장함으로서 예수는 하느님과 동일한 인격체 혹은 성자 하느님이 아닌 하느님의 아들로서 다른 천사들과 비슷하게 독립된 하나의 인격체(혹은 영) 이라고 주장한다. [7] 심지어 「가톨릭 백과사전」에서조차 "아무튼, 십자가는 원래 끝이 뾰족한 수직 장대 하나로 되어 있었음이 분명하다.(!!)"라고 기술하고 있다. [8] 따라서 '예수가 십자가에서 죽었나요, 기둥에서 죽었나요?'라는 질문만으로도 기독교인과 여호와의 증인을 구분할 수 있다. [9] 본래는 반로마 테러리스트이자 살인마인 바라바가 받을 형벌이었다. [10] 물론 십자가가 흡혈귀를 쫓는다던가 하는 주술적 상징이 된 적도 있지만 그건 중세 이후의 민간신앙일 뿐, 로마 시대 비기독교인에겐 십자가는 재수 없는 극형의 상징이었을 뿐이다. 로마 제국에서 십자가형도 존재했으나, 기록을 살펴보면 타 지방의 이교서 유사한 행위가 나타난다. [11] 마치 이단들만의 교리인 것처럼 잘못 알려진 기독교의 천년왕국설에 대해서 설명하자면, 천년왕국이 세워질 것이라는 것 자체는 요한묵시록 20장의 기록에 따라 모든 기독교 종파들이 이를 인정하고 있다. 가톨릭 정교회 등 소위 보편교회에서는 "천상과 지상에 존재하는 그리스도교 '교회'가 영적으로 실현된 천년왕국"임을 선언했으며(에페소 공의회, 431년), 이후 장로회 보수파와 감리회 일부 등 전통적 개신교 종파들의 상당수도 이를 따르고 있다. 오순절주의 종파나 성결교회 등 몇몇 개신교 종파에서는 천년왕국이 아직 도래하지 않았으며, 장차 예수 재림과 심판 때에 세워질 것이라고 보기도 한다(전천년주의설). 그러나 여호와의 증인처럼 14만 4,000명만이 구원받는다는 주장은 하지 않는다는 게 차이점. [12] 당시 여호와의 증인 교리정립에 큰 영향력을 행사하던 '프레데릭 프렌즈'(훗날의 제4대 협회장)의 작품으로, 이 '예언'은 1966년부터 등장했다. 1975년을 꼽았던 이유는, 그 해가 증인들의 연대표에 의하면 인간창조 후 정확히 6천 년이 지나고 새로운 천 년이 시작되는 해였기 때문이다. 증인들은 아담창조를 기원전 4026년으로 본다. 인간창조 후 6천 년을 휴식한 하느님이 이제 새로운 천 년을 맞이하여 세상을 새롭게 할 것이라는 것. [13] 이 실패의 후유증으로 잠시 전세계 증인들의 수가 유의미하게 줄어들었다가 몇 년 후에야 복구되었다. [14] 증인들은 데살로니가 전서 5장 3절에 의거해, 아마겟돈이 오기 직전에 '평안하다 안전하다'라는 세상적 선언이 있을 것이라고 믿고 있다. 그 평화선언 후에 급작스럽게 도둑과 같이 끝이 올 것이라는 것. [15] 이 시기에 활동했던 증인들에게는 굉장히 또렷하게 남아있는 기억이다. 지평선, 결승선 등의 성급한 표현 자체를 출판물들에 자주 사용해 이러한 기대를 마구 불러일으킨 당사자는 이번에도 역시 증인 지도부였다. [16] 러시아-중국 동맹이 북방왕, 미국이 남방왕. 어떠한 이유로 북방왕의 힘이 남방왕을 압도하여 전 세계를 휩쓰는 일이 발생할 것인데 바로 그것이 세상제도 멸망의 전주곡이라는 것. [17] 여증은 이것을 '부모가 자식을 훈육할 때 자식의 손을 뜨거운 난로 위에 올려두는 경우가 있는가' 라고 반문한다. [18] 이게 무슨 말이냐면, 사람이 죽은 이후 별개의 영혼이 남지 않는다는 뜻이다. 즉, 영혼 존재를 부정한다는 것인데 증인들은 사람 그 자체가 영혼이라고 생각한다. 사람이 죽으면 그 영혼이 죽는다는 것이다. [19] 그래서 이들이 사용하는 신세계역 성경에서는 '영벌'이란 표현 대신 '영원한 멸망'이란 표현을 사용하며, '불못'도 잠언 10장 7절과 연관시켜서 비유적으로 해석한다. [20] 한국에서 병역거부자에 대한 인식이 바닥인 것과 다르게 서구 지식층 사이에서는 역사적인 이유로 종교적 병역거부자들이 국가에 배신당하곤 하던 불쌍한 사람들이라는 이미지가 강하다. [21] 유엔에서 여러 차례 양심적 병역거부자 처벌을 중단할 것을 한국 정부에 요구한 바 있다. 독일, 캐나다, 프랑스, 호주의 경우 한국 출신 병역거부자들을 난민으로 받아들이기까지 했다. [22] 1939년 6월 조선에서 체포된 여호와의 증인은 38명이었는데, 당시 교세가 미약했던 여호와의 증인 거의 전원이 체포됐던 것과 마찬가지이다. 이 중 5명은 옥사했고, 해방이 되어서야 옥문을 나선 사람은 33명이었다. 그들은 모두 평신도들이었다. 일제강점기에 여호와의 증인들이 일제의 전쟁 수행에 협력하지 않고 총을 들기를 거부하여 옥고를 치른 것이 이른바 등대사(燈臺社) 사건이다. 이 일을 두고 여호와의 증인들은 종교적 믿음을 지키다 보니 그렇게 된 것이라 말하지만, 정부가 편찬한 독립운동사 서적에는 등대사 사건이 항일 운동의 하나로 기록돼 있다. 국사편찬위원회가 펴낸 <한민족독립운동사자료집>의 별집은 일제강점기에 투옥된 독립운동가들의 신상기록카드를 모아놓았는데, 여기에는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투옥된 여호와의 증인들의 사진이 첨부된 신상기록카드가 여러 장 수록됐다. 출처 : "한홍구의 역사 이야기 - '여호와의 증인 앞에서 부끄럽다', 한겨레 21" 에서 발췌. [23] 이 점은 종교적 병역거부를 주장하는 상당수 다른 기독교 종파들도 마찬가지인데, 극단적인 사례로는 재세례파의 경우 병역 거부가 받아들여지지 않자 무장 봉기를 벌였던 적도 있었다. [24] 때문에 양심적 병역 거부로 인한 대체 복무가 정식으로 시행되기 직전 단계에서, 이 대체복무자를 선정하기 위한 '양심' 의 기준을 놓고 고심하던 법무부와 병무청에서 이 부분을 물고 늘어져 대체복무 신청자가 스타크래프트, 리그 오브 레전드, 서든어택, 오버워치 등의 게임들을 플레이했는지 여부를 게임 회사들에 공문을 보내 확인하려 하기도 했다. [25] 그러나 여호와의 증인이 운영하는 순대집이나 곱창집이라면, 순대 혹은 곱창에 피 빼는 작업을 잘 해놨겠지라며 생각하고 안심하며 먹는 여호와의 증인이 존재한다. 물론, 고기의 피를 100%를 빼는 방법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여호와의 증인들 논리대로라면 고기에 일절 입을 대지 않는 것이 교리를 지키는 행위이며, 고기를 먹는 여호와의 증인은 전부 사실상 여호와의 교리를 어기며 살아가고 있다는 뜻이 된다. 물론 이런 견해에 대해서 반박은 얼마든지 할 수 있다. 저런 주장대로라면 모세율법 하의 고대 유대인들 역시 그 당시 기술로 피를 완벽하게 제거하진 못했으므로 전부 율법을 어긴 셈이 되어 신의 처벌을 면치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즉, 피를 멀리하라는 명령은 마지막 한 방울, 마지막 피의 성분까지 싹 다 제거해야만 한다는 '불가능한' 명령이 아니라, 피의 신성함을 인지하고 최대한 할수있는 데까지 피를 제거함으로써 신에 대한 존중심과 충성심을 나타내야 한다는 명령으로 볼 수 있는 여지가 충분하다. [26] 성경적 사례랍시고 아래에 열거된 내용들을 제기하기는 하나, 전혀 근거로 삼을 수 없는 성구들에 불과하다. [27] 물론 그 연도가 1935년이 된 배경에는 그 어떠한 성경적 근거도 찾아볼 수 없는데, 모든 것이 그저 제2대 협회장 러더퍼드 개인의 생각일 뿐이었다. 당시 대회에서 러더퍼드는 연설도중 많은 청중들에게 하늘이 아니라 이 땅에 희망을 두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자리에서 일어서 볼 것을 요구했으며 이에 (뭔가 감동을 받은듯한) 청중들 중 꽤 많은 수가 반응해 일어남으로써 이 교리는 '순식간에' 진리인 양 확정되었다. 일어선 사람들이 실제로 어떤 영적인도에 의해 자신들이 큰무리로 확정되었다는 걸 스스로 신비스럽게 깨닫고 반응했다기보단 단순히 '고양된 집단심리'와 '대회현장의 열기'에 도취돼서 그랬을 가능성이 농후하다. 우스꽝스럽게도 정말 이게 다이다. 교리의 핵심부분 중 하나가 이런 식으로 어처구니없이 결정되고 말았다는 것 자체가 이미 증인 교리 오류와 실패의 역사를 대표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더더욱 협회장 러더퍼드의 화려한 예언 실패사(史)를 보면, 저 교리역시 신뢰를 받지 못함이 당연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28] 사실상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로 여긴다. [29] 증인들은 매년 주의 만찬 기념식의 표상물 섭취자 숫자를 정확하게 집계한다. [30] 물론 정신적인 문제 혹은 착각 등의 문제로 자격없는 사람이 표상물을 먹는 일부의 사례는 예외 [31] 증인조직에서는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는 무자격자들의 소행으로 애써 변명하지만 그렇게 보기엔 증가폭이 비정상적으로 크며, 그런 '비정상적'인 사람들은 오랜 옛날에도 있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기존 적은무리들 중 배교자(혹은 이탈자)가 발생해서 그 공백을 메운 것이라 변명도 하지만, 배교자가 발생했다면 딱 그만큼의 숫자만 복원되어야 할 텐데 이미 그 숫자를 완전히 넘어버려 적은무리의 총 합 자체가 폭증한 상태이기에 이 또한 설득력이 없다. 또한 조직에서는 하느님이 14만 4천명 중 일부를 일부러 비워뒀다가, 마지막에 가까이 다가간 지금 갑자기 몰아서 한꺼번에 적은무리를 뽑은 것일수도 있다는 주장도 하지만 근거가 없는 정말 터무니없는 주장일 뿐이다. [32] 90년대 중반에는 아직 표상물 섭취자 수가 8천명대에서 정체되며 소폭의 증감을 반복하던, 그렇게 큰 문제는 없어보이던 시기였는데 당시 일부의 (착각, 정신적 문제 등의) 무자격 표상물 섭취자로 인한 소폭의 증가를 설명하기 위해 파수대에 해명을 몇 줄 정도 한 적이 있었다. 당연히 이미 대폭증 이후 10년이 넘게 경과한 2010년대 후반 시점에서는 상황에 안맞는 시대착오적인 미비한 변명에 불과했지만 증인조직은 아랑곳하지 않고 20여 년 전의 해명내용을 그대로 붙여넣기하고 말았다. [33] 사실 1914년 교리는 1919년 교리를 합리화하기 위한 도구적 연대에 불과하다. 가장 중요하고 절실한 것은, 중앙장로회가 1919년에 충성되고 지혜있는 종으로 임명받았다는 점을 굳건히 합리화해서 증인조직 지배에 대한 권위를 계속 유지하는 것이다. 바티칸 교황청이 베드로 수위사도설을 바탕으로 교황의 지배권을 주장하듯, 중앙장로회 역시 최고권위의 근거가 필요했던 것. [34] 협회 상층부의 지배적 적은무리들 극소수를 제외한 나머지 적은무리들을 말한다. [35] 이후 워치타워 제4대 협회장 역임 [36] 프레데릭 프렌즈의 조카이자 前 중앙장로회(통치체) 성원. 1914년 교리 및 기원전 607년 유대왕국 멸망교리 등에 의문을 품었으며 이로인해 조직에서 쫓겨났다. [37] 이들이 북방왕으로 지목한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자 이 사건을 다니엘서 11장 40~45절의 성취로 기대한 이들은 이 침공에 대한 예언적 기대를 고조시키는 모습을 보였다. 사실 이미 2010년대 후반에 증인 조직이 러시아에서 공식 금지되고 러시아-중국이 점차 밀월관계로 접어들며 합동 군사훈련을 시행하던 당시부터 러시아와 그 동맹국들을 북방왕으로 공식 확정하고 설파해왔었다. 러-우 전쟁 초기에 러시아가 시도했던 전격전이 성과를 거두지 못해 우크라이나 북부에서 철수하고 서구 중심의 유래없는 반러제재 폭탄이 쏟아지고 루블화 가치가 급락하자 러시아에 대한 비관적 예상들이 많아졌으며, 러시아의 실패와 함께 이 예언 역시 실패로 끝날 것 처럼 여겨졌다. 하지만 이후 전격전에서 장기 소모전으로 대전략을 변경한 결과, 우크라이나와 이를 지원하는 서구 국가들의 인적-물적 자원들을 끊임없이 소진시키는 등 꽤 성공적인 진전을 이루기 시작했으며, 이는 2022년 가을의 우크라이나 반격과 그 성과에도 불구하고 근본적으로 바뀌지 않았는데, 러-우전의 스탈린그라드 전투라 불릴 정도로 큰 상징성을 부여받는 바흐무트(아르테모프스크) 전투에서 우크라이나 측의 엄청난 인적-물적 자원 소모에도 불구하고 끝내 우크라이나 군이 패퇴하고 2023년 5월에 바흐무트가 함락되고 말았다. 기존에 보유했던 소련제 무기-장비들이 고갈되고 파괴된 우크라이나는 새로이 대거 지원받은 나토제 무기-장비와 나토에서 훈련받은 주력병력을 총결집하여 6월부터 남부 및 남동부 전선에서 소위 '대반격'을 실시하여 지난 가을의 성과를 재현해 보려고 했으나, 철통같이 준비된 러시아군의 1차 방어선조차 제대로 뚫지 못하고 막대한 병력-장비를 상실하며 처참한 실패를 맛보고 있다. [38] 또한 러시아를 금방이라도 완전히 무너뜨릴 것 같았던 제재폭탄은 서구의 의도와는 전혀 다르게, 러시아를 끝장내기는 커녕 오히려 서구 국가들 자신에게 인플레이션 악화 등의 부메랑으로 돌아와 서구 경제를 망가뜨리기 시작했으며 루블화 역시 일시적 하락을 멈추고 도로 반등해버렸다. 러시아산 원유-가스 수입 금지제재는 인도-중국으로의 수출이라는 대안이 등장하며 힘을 잃었고, 이를 막기 위한 회심의 추가 제재였던 원유가격 상한제 역시 전혀 효과를 보지 못하여 실패로 돌아가는 양상이 되었다. 여기에 더하여 전쟁 자체가 미국-서구가 애초에 의도하지 않았던 트리거 혹은 촉매제 역할을 하여, 이후 그 나비효과로 세계 각 지역에서 중요한 변화들이 일어나기 시작했는데, 미국 패권유지에 치명적일 '탈달러화'의 움직임이 곳곳에서 일어나기 시작했으며, 견원지간이었던 사우디와 이란이 중국의 중재로 전격 화해하고 그동안 이란이 지원하던 예멘 반군이 사우디에 대한 공격을 중단하는 빅 이벤트가 발생하여 미국의 숙적 중국의 국제적 위상이 크게 올라갔으며, 이어서 미국이 그 동안 악의 축으로 규정하던 친러국가 '시리아'를 아랍 연맹이 전격적으로 받아들이고 화해하는 사건이 일어나버렸다. 오랫동안 중동지역에 분열-전쟁을 조장하면서 이를 통해 이득을 취해 오던 미국의 '분리해서 지배하는' 대전략이 완전히 꼬이고 힘이 빠지게 되었으며, 러시아-중국의 영향력이 중동에서 확대되고 있다. [39] 여기에 사우디 빈 살만에 대한 바이든의 석유 증산요청도 깔끔하게 무시당하면서 사우디 역시 기존과는 다르게 미국에게 더 이상 고분고분하지 않을 것임을 천명하고 있다. 이러한 전체적인 양상을 종합적으로 보자면, 소련붕괴 이후 미국이 단독으로 누려왔던 단극적 지배체제를 앞으로도 계속 유지하기 위하여 NATO의 동진전략, 그리고 2014년 이후로 그들의 PMC로서 철저히 준비해 왔던 우크라이나를 미국 대신 러시아를 찌르는 대리군으로 이용하여 눈엣가시였던 러시아를 완전히 무너뜨리려 했으나, 러시아는 무너지지 않고 있으며 도리어 이 전쟁이 예상치 못한 트리거가 되어 러시아-중국은 전보다 더 친밀해지는 정도를 넘어 동반자 관계로 격상되기에 이르었으며 이들을 중심으로 한 BRICS(브라질, 러시아, 인도, 중국, 남아프리카 공화국)체제가 G7 중심 서구체제의 대항마로서의 위상을 높이고 있는데, 북미-유럽-오세아니아-일본-한국 정도를 제외한 나머지 세계가 점차 서구 중심의 해게모니에 등을 돌리고 다극화 세계체제를 지향하게 되었으며, 중동-북아프리카의 아랍권 국가들, 동남아시아, 라틴 아메리카의 여러 국가들이 BRICS 신규 가입을 희망하며 BRICS의 확장판인 BRICS+의 형성을 예고하고 있다. 이렇게 미국-서구의 힘이 점차 빠지고 서구의 의도에 완전히 반하는 양상으로 흘러가고 있기에 이 국제적 상황을 만회하기 위해 미국을 포함한 서구는 비관 여론의 점진적 확대에도 불구하고 이미 너무 깊숙이 들어와 발을 뺄 수가 없게 된 우크라이나 전쟁에 대한 지원을 어떻게든 계속 유지하며 그 수위를 높이는 한편, NATO체제의 아시아 확장을 시도하여 기존의 대만 외에도 한국-일본을 반중 전선에 노골적으로 깊숙히 끌어들이는 등, 아시아판 러-우 전쟁이 벌어질 가능성을 점점 높이고 있다. 물론 이러한 양상에도 불구하고 어떤 식으로든 이 세계적 격변의 양상이 증인조직의 예언과 맞지 않게 흘러간다면 증인조직이 이제껏 해 왔던 것처럼 또다시 말바꿈을 시도할 가능성은 충분히 있다. [40] 통치체=중앙장로회가 스스로를 일컫는 표현 [41] 1975년 불발 이후에도 오랫동안 조직은 그들이 이 연대에 대해 그토록 확신적으로 강조해왔다는 점을 인정하지 않아왔다. 도리어 조급한 일부 신자들의 개인적 일탈인 양, 그 책임을 일반 신도들에게 전가하며 애써 그 예언실패의 의미와 파장을 축소하는 일관된 모습을 보여왔다. 그러다가 무려 34년이나 지난 2009년에 마지못해 고개를 조금 끄덕이게 되었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