遼 요 추존 황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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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 추존 황제 야율돌욕 | 耶律突欲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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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란국 초대 국왕 인황왕 | 人皇王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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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호 | 의종(義宗) | |
시호 | 문헌흠의황제(文獻欽義皇帝) | |
연호 | 감로(甘露, 926~930년) | |
성 | 거란어 | 야율(耶律) [1] |
휘 | 거란어 | 돌욕(突欲) [2] |
중국어 | 배(倍) | |
귀화 후 이름 | 이찬화(李贊華) | |
생몰 기간 | 899년 ~ 937년 1월 7일 (37세) | |
재위 기간 | 926년 2월 ~ 930년 윤 11월 (4년 7개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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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야율돌욕은 요나라 태조 야율아보기의 장남이자 태종 야율요골의 형이다. 아버지 요태조에 의해 태자로 책봉되었고 926년 발해 멸망 당시에도 아버지, 동생과 함께 종군했으며 이후 동란국의 왕으로 책봉되었다. 왕이 되었을 때의 봉호는 인황왕(人皇王)이었다. 이후 동생 야율요골과의 권력 다툼에서 밀리며 황제에 오르지 못했고 신변의 위협을 느껴 동란왕의 직위를 버리고 후당으로 귀순했다. 후당으로 귀순한 이후엔 이찬화라는 중국식 이름을 하사받았는데 936년에 후당에서 정변이 일어나 그에 휘말려 암살되었다.이후 그의 운구는 요나라로 돌아왔는데 그의 아들 요세종이 직접 변경에서 호위해서 모셔왔다고 한다. 그리고 황제로 추숭되어 의종이라는 묘호를 받고 문헌흠의황제라는 시호를 받았는데 그 뜻은 "책을 무척 사랑한 황제"라는 뜻이다. 실제로 야율돌욕은 굉장한 다독가였다고 한다. 그의 능은 현릉(顯陵)으로 불리며 현 랴오닝성 진저우시의 이우뤼산(醫巫閭山, 의무려산)[3]에 그 능이 있다고 한다.
2. 행적
< 요사>에 따르면 본래 야율돌욕은 성품이 부드러웠으며 사냥을 싫어하고 독서를 매우 좋아했다고 한다. 그래서 의무려산 꼭대기에 집을 한 채 지었는데 바다가 보이는 곳이라 하여 망해당(望海堂)이라고 명명하고 그곳에 무려 수만 권의 책을 비치했다고 한다. 이런 야율돌욕의 성품은 유목민족이었던 거란족과는 맞지 않았지만 한족 문화에 심취해 있던 아버지 요태조는[4] 독서를 좋아하는 야율돌욕을 특히 총애하여 태자로 삼았고 발해가 멸망한 이후엔 동란국의 국왕으로 앉혔다. 그가 이렇게 한 이유는 야율돌욕이 다음 보위에 오르는데 초석이 되게 하려고 한 것이었다. 즉, 한마디로 야율돌욕은 차기 황제 1순위라는 걸 공식적으로 선포한 것이었다.[5]그러나 아버지 요태조가 발해를 멸망시키고 개선하는 길에 갑자기 죽으면서 상황이 급작스럽게 바뀌었다. 어머니 순흠황후 술률평은 요태조와 달리 야율돌욕의 동생 야율요골을 총애하였다. 그 이유는 야율요골은 유목민족인 거란족 출신답게 성품이 호방했으며 사냥을 좋아하고 전투를 잘 하는 사람이었는데 야율돌욕은 앞서 말했듯이 좀 성품이 유약했으며 사냥을 싫어하고 독서를 좋아하며 한족 문화를 숭상하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순흠황후는 야율돌욕이 황제가 되면 거란족의 전통이 흔들린다고 판단하여 야율요골이 황제가 되도록 힘을 썼고 결국 야율돌욕은 황제가 되지 못했다.
이후 황제의 자리에 오른 야율요골은 형이 반란을 일으킬지도 모른다고 판단한 것인지 928년에 동란국을 천복성[6]에서 동경도[7]로 천도하게 했다. 이에 야율돌욕은 신변의 위협을 느꼈고 결국 930년에 후당으로 귀순하게 된다. 후당의 명종은 야율돌욕의 귀순을 받아들였으며 그에게 국성인 이씨 성을 하사하고 찬화라는 이름을 내렸다. 그리하여 그는 이찬화라는 이름으로 후당의 장수가 되어 회화절도사(懷化節度使), 단주관찰사(瑞州), 신주관찰사(慎州觀察使) 등을 역임했다.
그러나 당시 중원은 5대 10국이라는 혼란기에 빠져 있었고 결국 936년에 후당에서 정변이 일어나 멸망하게 되는데 그 때 이찬화 즉, 야율돌욕 역시 이종가에게 피살당하고 말았다. 이후 그의 시신은 아들 야율올욕이 수습하여 직접 호위하며 요나라로 모셔왔다고 하며 그가 책 수만 권을 비치했을 정도로 좋아했던 의무려산에 능을 조성하고 장사지냈다고 한다. 이후 야율올욕이 황제가 되자 의종으로 추숭되었다. 여기서 야율올욕이 바로 요나라의 제3대 황제가 되는 세종이다.[8]
3. 둘러보기
요사(遼史)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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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율아보기 | 야율요골 | 야율올욕 | |
6·7권 「목종기(穆宗紀)」 | 8·9권 「경종기(景宗紀)」 | 10·11·12·13·14·15·16·17권 「성종기(成宗紀)」 | |
야율술률 | 야율명의 | 야율문수노 | |
18·19·20권 「흥종기(興宗紀)」 | 21·22·23·24·25·26권 「도종기(道宗紀)」 | 27·28·29·30권 「천조제기(天祚帝紀)」 | |
야율지골 | 야율사랄 | 야율아과 · 야율순 · 야율아리 · 야율대석 | |
※ 31권 ~ 62권은 志에 해당. 63권 ~ 70권은 表에 해당.
요사 문서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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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yaruud 야루드 라는 발음에가까움.
[2]
책에 따라 도욕(圖欲)이라고 표기하는 경우도 있다.
[3]
고수전쟁,
고당전쟁의 지명으로도 종종 등장하는 유명한 산이다. 현재에도
만주의 3대 명산 중 하나로 통한다고 한다.
[4]
거란족 귀족 중에 이상할 정도로 소(蕭)씨가 많은 이유는
한고제와
소하에게 매우 큰 감명을 받은 요태조가 황실은 유(劉)씨로, 다른 부족들은 소씨로 죄다 개성시키려 했었기 때문이다. 당연히 엄청난 반발이 일어났고 황성은 다시 야율씨로 돌렸으나 요태조의 "비록 난 유방은 아니지만 적어도 소하를 거느리고 싶다."(...)는 고집으로 소씨는 그대로 남게 된 것.
[5]
야율돌욕이 당연히 적장자이니만큼 이 부분이 의아하게 느껴질 수도 있는데 유목민족은 장자상속제가 전통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즉 유력한 형제가 언제든지 그 자리를 노릴 수 있었다.
[6]
옛 발해의 수도
상경용천부.
[7]
옛
요동성으로 현 랴오닝성
랴오양시.
[8]
세종은 황위에 오를 때 자신의 아버지를 몰아낸 할머니 순흠황후와 삼남인 야율이호의 세력을 제압하고 나서 순흠황후를 할아버지인 야율아보기의 능묘에 가두어버리는 것으로 복수한다. 그러나 황족 야율옥질의 중재로 노기를 거둔 후 그녀와 야율이호를 조주로 유배보내는 선에서 마무리를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