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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2-21 18:16:59

야마토급 전함/평가

파일:상위 문서 아이콘.svg   상위 문서: 야마토급 전함
1. 개요2. 자국 군함들과의 비교
2.1. 일본군 전함2.2. 항공모함
3. 타국 주력함과의 전과 비교
3.1. 영국 해군
3.1.1. 영국 전함3.1.2. 항공모함
3.2. 미국 해군3.3. 독일 해군3.4. 소련 해군3.5. 그 외에
4. 야마토는 태생적인 실패작이었던가?
4.1. 필요하긴 했다4.2. 야마토를 제대로 써보려면 필요한 것들4.3. 현실은 시궁창
5. 야마토의 설계도면6. 일본인들의 야마토에 관한 인식

1. 개요

야마토급 전함에 대한 평가를 서술한 문서. 야마토급 전함은 카탈로그상 전투력은 매우 우수했으며 일부는 선진적이라 볼 만한 영역도 있었지만, 사실 중대한 문제가 있었다.

이래서는 높은 평가를 받을 수가 없다. 무엇보다도 명색이 전함, 그것도 세계 최강의 전함이라는 것이 백주대낮에 구축함 한 척이 무섭다고 꼬리를 말고 도망친다는 것이 말이 안 된다. 극단적으로는 군함도 아니고 유조선이었던 SS 오하이오보다도 형편없는 전공을 남겼다.[1]

사상으로는 일본군하면 해군, 그리고 '야마토'하면 그 해군의 상징이었던 만큼, 당시 피해를 입었던 동아시아 주변국들은 야마토란 이름 자체와 그를 이용하는 행위를 일본 극우와 연결지어 해석하기도 한다. 그런데 정작 당시 일본 해군에서 가장 유명한 전함은 나가토라는 게 함정. 실제로 당시 일본 제국 내에서 야마토와 그 자매함의 수병들을 제외하고는 해군 일부 고위층 인사들만 알고 있었을 정도로 존재가 감춰졌으며, 가장 유명하고 당대 일본의 국민들로부터 일본의 자랑이라고 사랑받던 전함들은 나가토급 전함의 두 자매함 나가토, 무츠였다.

2. 자국 군함들과의 비교

구축함이나 순양함들까지 견주기에는 여백이 좁으므로 전함과 항공모함만 썼다.

2.1. 일본군 전함

2.2. 항공모함

일본군 항공모함 중에서도 전과가 없는 함들이 많이 있기는 해도, 최소한 주력 항공모함들은 야마토와는 비교도 안 되는 전공을 올렸다.

3. 타국 주력함과의 전과 비교

이 문단에서는 같은 2차 세계대전 참전국들 중 유의미한 해군력을 보유했던 국가들의 전함과 항공모함과 비교한다.

3.1. 영국 해군

3.1.1. 영국 전함

영국 해군의 전함들은 전쟁 기간 내내 쉴 시간도 없이 활약했다.[3]

킹 조지 5세급 전함이나 퀸 엘리자베스급 전함은 대서양, 태평양을 오가며 여기 저기서 활약을 했다. 킹 조지 5세급의 듀크 오브 요크는 수송선단을 호위하던 도중 독일 전함 샤른호르스트를 노스 케이프 해전에서 격침시켰고 퀸 엘리자베스급 워스파이트는 제2차 세계 대전에서 영국 해군 최고의 수훈함이다. 넬슨급 전함도 기대치보단 못하지만, 비스마르크 추격전에서 활약하는 등 다양한 전장에 참가했다. 넬슨급의 경우에는 군축조약의 굴레 때문에 한정된 배수량에서 공격과 방어를 채우느라고 주행분야에 투자를 할 수 없는 나머지 주행력이 한심스러워서 빌빌거리던 전함이지만 끝까지 조국을 위해 싸웠고 그 결과 너무 부려먹어서 전쟁이 끝났을 때는 기관부가 파열 직전에 이를 지경이었다. 그나마 리벤지급 전함이 별 활약은 없었지만 리벤지급은 1917년에 나온 전함으로 공고급 순양전함과 차이가 몇 년 안 나는 노령함이고 공고급 순양전함과는 달리 대규모 개장을 받질 못해서 2차대전 때는 이미 2선급 전력이었다. 비교를 한다면 리벤지급보다 더 오래됐지만 활약을 펼친 퀸 엘리자베스급과 비교를 해야 할 것이다. 다만 라밀리즈의 경우 노르망디 상륙작전에서 활약을 한 적이 있다.

순양전함으로 가면 리나운급 순양전함은 비스마르크 추격전에도 참여한 바 있으며, 리나운은 샤른호르스트와 그나이제나우의 기습에 수송선단을 지켜낸 바 있다. 어드미럴급 순양전함은 두말 할 것 없이, 모두가 잘 아는 그 순양전함 HMS 후드다. 물론 후드는 제대로 뭘 해보기도 전에 재수없게 탄약고가 털려서 죽어버린 탓에 이렇다할 전과는 없지만 장기간 영국 해군의 상징 그 자체였고 평시에 빠른 속도를 이용해서 영국 해군의 전략적 배치에 도움을 준 바 있고 최후의 해전도 전함과의 정면승부에서 침몰한 것이었으며 해당 함의 복수를 위해 거의 모든 영국 해군 군함들이 자기들 하던 임무마저 내팽개치고 후드를 격침시킨 비스마르크 단 한 척을 때려잡기 위해 집결할 정도였다. 심지어 영국 총리조차 그놈을 때려잡기 위해서라면 모든 수단을 동원하라고까지 했을 정도.

그나마 야마토급과 비슷한 함생을 살다 간 배가 뱅가드로, 뱅가드는 취역하고 나니 이미 전쟁은 끝났고, 경제는 엉망인지라 실전에 나서지도 못한 채 왕실 요트라는 전함으로선 불명예스러운 별명을 얻기도 했다. 성능은 구형 15인치 포라는 부족한 공격력과 KGV보다 1인치 준 장갑, 길어진 선체로 인해 방어력이 뛰어나다 보긴 어려운 등 좋다고 보긴 어려웠으며, 함생은 앞서 서술되다 시피 왕실 요트라는 전함으로선 좋다보기에는 어려운 별명이 붙고 어영부영 살다가 1959년에 매각 후 해체되는 함선이라... 물론 뱅가드의 경우에는 애초에 전선에 투입될만한 전쟁 자체가 없었으니 비교하기 적절한 대상은 아니다. 뱅가드가 성과가 아주 없는 건 아닌데, 전후 국왕 일가를 태우고 해외를 순방하며 국왕 일가가 정치, 외교 일정을 소화하는 동안 합동 군사훈련을 하거나 저물어가는 영국 해군의 마지막 위용을 보여주는 외교적 성과를 거두었다.

사실 영국 전함들의 활약은 야마토와 비교할 수준이 아니다. 노르웨이에서 독일 수상함대 절반 가까이를 박살내고 추축국 해군의 악몽으로 군림한 워스파이트를 제쳐두고라도, 다른 전함들도 수많은 임무를 수행하며 성실하게 전공을 쌓았으니 구축함에게 쫓겨난 야마토와는 수준이 다르다.

그나마 일본군의 삽질과 비교될 만한 사례는 비스마르크 추격전의 결정타가 함재기의 뇌격이었음에도 말레이 해전에 프린스 오브 웨일스와 리펄스를 항공 호위없이 파견했다가 말아먹은 것 정도. 그나마 이것도 원래는 프린스 오브 웨일스, 리펄스와 같이 파견 예정이었던 일러스트리어스급 항공모함 인도미터블이 훈련 중 좌초사고를 일으키는 바람에 그걸 수리하느라 지연된 동안에 말레이 해전이 벌어져서 프린스 오브 웨일스와 리펄스가 침몰한 것이라 변명거리는 있다. 그와 별개로 영국이 일본의 전력을 만만하게 보고 방심했던 것은 까일만한 이유가 맞다.

3.1.2. 항공모함

영국 해군은 독일 해군을 압도하고 있었지만 그렇다고 항공모함이 한가하게 놀 시간 따위는 없었다. 비스마르크 추격전에서 활약한 아크로열, 장갑갑판 덕분에 추축국의 맹공을 당하고도 버텨내면서 활약한 일러스트리어스급 항공모함 4척, 1944년 8월에 1번함이 취역했기에 전투에 참가할 기회가 많지 않았는데도 티르피츠 공격을 포함해 부지런히 뛴 임플래커블급 항공모함 2척, 항공정비모함이라는 특이한 경항공모함으로 태어나 1943년부터 인도양에 파견되어 부지런히 뛴 유니콘급 항공모함 모두 조국을 위해 바다를 달렸다.

물론 영국 항공모함들이 모두 맹활약하지는 못했다. 영국군 최초로 아일랜드형 항모가 된 이글급 항공모함은 고장 때문에 타란토 공습에 참전하지 못한 데다 몰타로 항공기를 실어나르던 중 U보트에게 격침되었고, 처음부터 항공모함으로 설계되어 건조를 시작한 최초의 항모인 허미즈급 항공모함은 실론 해전에서 격침당했고, 세계 최초로 함수부터 함미까지 평갑판을 장비한 아거스급 항공모함도 화려한 전과는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이들 모두 자기 임무를 열심히 수행했으므로 야마토 따위와는 비교할 수 없다.

U보트에 맞서서 대서양의 수송로를 지킨 호위항공모함들도 빠뜨릴 수 없다. 미국에서 빌려온 보그급 호위항공모함들이 주로 이쪽으로 투입되었으며, 영국제 호위항모들도 수송선들을 지키기 위해 사투를 벌였다. 낡은 배고 신품이고 가릴 경황이 없었다.

무엇보다도, 세계 최초의 항공모함 퓨리어스에 대해서도 언급해야 할 것이다. 원래 커레이저스급 대형 경순양함 3번함으로 태어난 이 배는 18인치 함포 2문을 탑재하였으며, 포의 구경은 457mm로 야마토의 18.1인치(460mm)포보다 작았지만 야마토의 포탄보다 더 무거운 포탄을 사용했다. 그러나 영국은 이 배를 대형 경순양함이 아닌 항공모함으로 완성시켰고, 제 1차 세계대전 때부터 함재기를 이착함시킨 데다 항공모함 역사상 최초로 적 육상기지를 공습했다. 퓨리어스보다 늦게 태어난 일본 최초의 항공모함 호쇼가 제 2차 세계대전에서 훈련함으로만 뛰었던 것과 달리, 퓨리어스는 제 2차 세계대전에서도 전장에 뛰어들었으며 몰타 항공전에서 영국이 승리하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 이후에도 횃불작전에 참가하고 티르피츠 공격에 참가하는 등, 수훈함으로 부르기에 부족하지 않은 삶을 살았다. 똑같이 18인치 포를 달아봤던 배였지만, 야마토와는 비교할 수도 없는 훌륭한 군함이었다. 무엇보다도 퓨리어스의 후손인 항공모함들은 21세기에도 세계의 바다를 지배하고 있지만, 현대 해군에 전함이라는 함종은 남아있지 않다.

3.2. 미국 해군

3.2.1. 구형 전함 및 표준형 전함

와이오밍급 전함 아칸소는 노르망디 상륙작전을 비롯한 유럽전선에서 화력지원 임무를 수행하는 등 활발한 활약을 펼쳤고, 태평양에선 오키나와 전투 등에도 활동을 했다. 뉴욕급 전함도 태평양과 대서양을 오가며 화력지원을 했고, 네바다급 전함은 진주만 공습에 대파하는 피해를 입어 네바다만 살아남았지만, 마찬가지로 태평양과 대서양에서 화력지원으로 할일을 했고, 펜실베이니아급 전함 펜실베이니아는 태평양에서 일본군의 후소급 전함 야마시로를 다른 전함들과 함께 다구리쳐서 격침시키며 자매의 복수를 했다.

뉴멕시코급 전함은 속도 문제로 호위항모와 함께 다니며 섬에 짱박힌 일본군들을 포격하는 활동을 했으며 덕분에 일명 '수영장 제조기'. 란 별명을 얻었다. 그 이유는 포격한 곳에 수영장만 한 구덩이가 생긴다고 해서 붙은 것. 테네시급 전함 테네시, 캘리포니아 대개장을 받아 더욱 강해지고는 펜실베이니아등 다른 전함들과 함께 야마시로를 격침시키고 이오지마, 오키나와 등지에서 활동을 했다. 콜로라도급 전함도 더욱 강해져서 야마시로 격침에 함께 했으며, 이오지마 등지에서 활동했다.

3.2.2. 고속전함

3.2.3. 항공모함

미국은 2차대전 당시에 경항공모함과 호위항공모함까지 합쳐서 항공모함만 100척이 넘으므로 전부 언급할 수가 없지만, Enterprise vs Japan으로 유명한 요크타운급 항공모함 2번 함 CV-6 USS 엔터프라이즈는 반드시 언급해야 할 것이다. 태평양 전쟁에서 가장 힘겨웠던 시기[6] 과달카날 전역에서, 엔터프라이즈는 일본군의 공격으로 큰 피해를 입으면서도 악착같이 버티면서 끝내 승리를 이끌어냈다. 함께 싸울 항공모함들이 잇달아 격침되고, 새러토가는 수리 중이라 홀로 전선에 남았는데도 끝까지 싸워서 이긴 것이다. 이후 나온 에식스급 항공모함 24척이 일본 해군을 파멸로 몰아넣었지만, 이들이 나올 때까지 전선에서 버텨준 엔터프라이즈의 공로는 길이 기억될 것이다. 세계최초의 핵추진 항공모함인 CVN-65에 엔터프라이즈라는 이름이 붙은 것이 그것을 증명한다.

3.3. 독일 해군

해군력이 취약한 독일군의 비스마르크급 전함도 성능 면에서 문제가 넘쳐나지만 그래도 연합국에게 실질적인 위협이 되었다. 성능이 좀 나쁘다고 하더라도 수상전에서 전함을 잡으려면 어쨌든 이쪽도 전함을 끌고 와야 한다. 게다가 영국 전함들은 비스마르크보다 전부 느리다는점 때문에 비스마르크가 대양으로 나와서 설치기 시작하면 영국 입장에서는 대단히 곤란해질 수 있다.

게다가 1번함 비스마르크는 어쨌든 적인 영국 해군과 제대로 전투를 벌여서 영국의 자존심을 격침시키고, 신예전함을 중파로 두들겨패서 패퇴시키는 괜찮은 전과를 세웠다. 물론 후드를 날려버린 건 럭키샷이었다고 하지만 프린스 오브 웨일스의 경우 비스마르크와 프린츠 오이겐에게 문자 그대로 얻어터졌다. 이렇게 되니 영국의 자존심을 무참히 바다에 침몰시켰고 결국 자존심이 박살나서 아주 분노게이지가 폭발해버린 영국군이 동원 가능한 대부분의 함선과 항공기들을 불러다가 전함 1척을 잡으려고 모든 화력을 쏟아부었는데 비스마르크는 그걸 다 쳐맞고도 견디는 저력을 보여주었다. 심지어 연료가 떨어져서 일부 전함이 되돌아가기까지 했던 것이다. 추격전이 끝나갈 즈음 몇 시간 동안 다구리당하고 고철신세가 되었지만 어찌되었든 계속 떠있었던 건 덤.[7] 비스마르크가 성능 면에서 문제가 많았다고는 하지만 어쨌건 적국의 자랑인 전함 1척을 격침시키고 신예 전함 1척을 두들겨 팼던 공적도 세웠으니 적 전함 격침은 고사하고 구축함에게 도망친 야마토보다는 높이 쳐줄 만하다. 또한 함대함 포격전으로 전과를 세우고 포격전에 의해 함생을 마감해 전함으로서는 명예로운 함생을 살았다고 볼 수 있다.

다른 자매함 티르피츠는 전적도 없었고 더 이상 전함을 잃을 수 없다는 판단하에 노르웨이에 은신하고 있었지만 그래도 비스마르크급 전함 1척이 북해 인근에 존재하는 것 만으로도 영국과 소련의 속을 벅벅 긁어놓았다. 이는 비스마르크급 전함의 스펙에 대해서 과대 평가가 이루어 지고 있었던 점도 한몫 했다. 비스마르크는 당시에 매우 강력한 성능을 가진 전함이라고 인식되고 있었는데, 그 동형함이 한척 더 남아있다는 사실 자체로 이미 연합군 해군에게는 위협요소가 되었던 것이다. 심지어 티르피츠가 등판했다는 루머를 흘리는 것만으로도 연합국은 혼란의 도가니에 빠져들 정도였다. 미국도 속을 많이 썩어 진주만 공습으로 태평양 함대 전함 전력이 싸그리 날아간 상황에서도 신예 전함인 노스캐롤라이나급 전함이 대서양 방면에 우선 배치될 정도로 티르피츠는 연합국의 어그로를 있는 대로 끌었다. 여기서 항공모함 세력이며 전함 세력이며 전부 다 독일과는 비교도 안 될 해군력 2위의 일본 해군 앞에서 주력 함대를 날려먹은 판에 영국도 있는데 굳이 대서양 방면에 신예 전함들이 배치된 것에 이상함을 느낄 수도 있다. 하지만 대서양 쪽은 영국이 여러 번 삽질하며 이래저래 흔들린 것도 있고, 잠깐 놓치면 크릭스마리네가 곧장 미국 동부 해안으로 들어온다. 반면 일본은 일본 본토와 미국 본토의 사이에 지구 절반을 잡아먹는 태평양이 자리잡고, 미국 서부에 도달하려면 꼭 점령해야 하는 하와이는 미 해군 없이도 일본 해군 전체를 상대로 버텨낼 정도로 요새화가 완료되어 있었다. 추가로 둘리틀 특공대와 미드웨이 해전으로 반격도 먹였으니 시간을 약간 벌었던 것도 이유중 하나다. 특히 소련 입장에서는 독소전쟁 때문에 미국의 랜드리스 물자가 절실했는데. 북해로 물자를 나를 때 이 티르피츠 때문에 호위함대가 빈약해져서 수송대가 유보트의 먹이가 되는 일이 빈번했다. 대표적인 경우가 PQ-17 선단 사건으로, 티르피츠가 노르웨이의 정박지를 떠났다는 보고가 올라오자 호위함대가 이를 잡으려고 수송선단을 버리고 몰려갔고 이 틈을 노린 유보트와 독일공군의 공격에 선단은 매우 큰 피해를 입은 사건이다.

또한 비스마르크 추격전 당시에는 비스마르크 한척이 끝이었지만 독일해군도 바보가 아니라서 이후에는 전함급 함선에는 구축함과 항공세력을 위시한 호위세력을 꼭 붙여주었고 이전과 같은 압도적 우세로 난타하는 것이 불가능해져 더욱 애를 먹었다. 영국해협 돌파작전 당시에도 공군과 해군 구축함이 호위하였고 PQ-17선단 사건 당시에도 "티르피츠가 공격에 나섰다"는 보고에 호위 구축함들이 포함되었던 것이 이를 증명한다. 샤른호르스트가 분전한 노스케이프 해전 때도 독일 구축함 4척이 전함을 호위하기도 했다.

독일 잠수함들이 호송선단을 이 잡듯이 조지는 식으로 대응하자 미국과 영국은 대부분의 물자를 지구 반바퀴를 돌아서 이란이나 일본의 눈치가 보이는 블라디보스토크로 날라야 했다. 하지만 이렇게 우회하는 보급로에는 문제가 많았다. 블라디보스토크 방면의 경우는 소련과 일본은 1945년 8월까지 불가침 조약을 유지하는 상황이라 소련 선박을 미국으로 보내 랜드리스 물자를 가져왔다. 그러나 물자의 원산지인 미국은 일본과 전쟁 중이었고 소련은 일본의 동맹국인 독일과 피터지게 싸우는 중이라 엄청나게 눈치보이고 신경쓰이는 보급로였다. 그리고 물자를 항구에 도착시킨다고 끝이 아니다. 시베리아 횡단철도가 있긴 하지만 그 광활한 소련 영토의 동부의 끝단에서 서부의 끝단으로 물자를 수송해야한다. 전선에선 당장 필요한데, 수송에는 몇 주가 걸리니 소련 입장에선 미쳐돌아버린다. 이란 방면의 경우에는 항구도 시원치않고 철도도 제대로 정비가 안 돼있어서 거리는 좀 짧지만 실제적인 보급능력은 블라디보스토크보다 못했다.

이리하여 티르피츠를 제거할 필요가 계속 제기되었으나 실행이 쉽지 않았다. 침몰시킬 때도 항공모함과 폭격기 등 온갖 방법으로 반년 넘게 공격을 시도하고 결국 육상의 벙커파괴용인 톨보이까지 투하한 끝에 겨우 겨우 격침시킬 정도로 티르피츠는 눈에 가시같은 존재였다. 존재 자체가 상당한 위협인 셈 이었다.

반면 야마토는 일본 해군의 상징인 만큼 엄청난 어그로를 끈 최우선 타겟이었긴 했지만 티르피츠 같은 전략적 가치를 보여주지도 못했다. 티르피츠처럼 수송선단이나 상륙작전에 영향을 주지도 못했고, 기껏해야 미 해군 항모전대의 전후 가치를 어필하기 위한 제물로서의 역할만 했을 뿐이었다. 물론 티르피츠와는 다르게 야마토는 활동 해도 이미 미 해군 항공모함이 수비하고 있는 영역이고, 수비를 돌파한다 쳐도 또 하와이가 남는데, 하와이에서 날아드는 미 육군의 항공기 공격을 함재기 막기도 버거운 야마토의 방공능력으로 버텨야한다는 약점이 존재하나 그걸 감안하더라도 활동만 제대로 했으면 적 공격을 유인해서 그 동안 각지에 있는 일본군 보급을 원활하게 하는데 도움을 주었을 것이다. 그걸 일본군 수뇌부가 안해서 문제지.

결국 비스마르크급은 전공을 세우거나, 연합군의 보급을 방해하는 전략적 가치를 지녔었지만 야마토급은 전락적 가치조차 없어서 평가가 바닥을 칠 수밖에 없다.

샤른호르스트급 전함인 샤른호르스트와 그나이제나우도 성능으로 치면 문제가 많았고 상대도 상대였던 만큼 상황이 열악했기도 했지만 노르웨이 침공 때도 참여했고 이때 항공모함 글로리어스를 격침시킴으로서 전함으로 항공모함을 격침시킨 첫 사례의 주인공이기도 했으며 해당 사례는 야마토가 사마르 해전에서 태피3의 구축함들의 용맹한 항전에 꽁지 빠지게 내뺐던 것과 무척이나 비교되는 사례이다. 또한 케르베로스 작전으로 백주 대낮에 도버해협을 돌파해 영국해군의 자존심을 완전히 무너뜨렸고 뇌격하러 온 소드피쉬를 독일 공군과 협동하여 전부 격추해버리고 빌헬름스하펜으로 돌아가는데 성공했다. 그리고 그 후에도 통상파괴작전으로 5만 톤에 달하는 격침 전과를 올리기도 하는 등 나름대로 할 수 있는 한의 활동을 한 편이다. 영국의 눈치를 보면서도 할 수 있는 한에선 최대한 제 할일은 한 셈이다.

도이칠란트급 장갑함은 조약에 묶인채로 최대한의 화력을 끌어내어 1만 톤이란 배수량 안에서 전함급 화력인 11인치 3연장포를 장착하는데 성공해 전 세계에 충격을 주었다. 덕분에 방어는 내다버려서 순양함간의 포격전도 위험한 물건이지만, 통상파괴전이나 화력지원 등을 담당하며 크릭스마리네의 자존심을 다시 세워준 물건이란 걸로 충분히 할 일을 했다.

독일해군에 관심이 있는 편이 아닌 이상 아는 이가 드문편인 전드레드노트급 전함 도이칠란트급 전함 슐레스비히-홀스타인은 1차대전 때의 노인이던 만큼 비스마르크급이나 샤른호르스트급 같은 활약은 없었지만, 1939년, 폴란드 단치히 항의 요새를 포격함으로써 2차대전의 시작을 알리는 첫 포성을 터트린 전함이며, 이후 몇 차례 더 포격임무에 투입되거나, 쇄빙, 기뢰부설 등으로 시간을 보냈다. 전드레드노트급이라는 한계를 생각해도 매일 항구에만 처박혀 있던 야마토급보단 확실히 나았다.

3.4. 소련 해군

해군력이 취약하기로 유명한 소련군의 구식 전함인 강구트급 전함 마라도 나름대로 전과를 올렸다. 마라의 경우 러시아 발트함대의 모항인 크론슈타트 내부에 정박한 상태에서 자매함과 함께 포격 지원에 참여했다. 이전에도 폭탄 몇발을 맞긴 했으나 전함의 맷집에 그정도는 끄떡없는 수준이었고 더군다나 크론슈타트 항구는 수많은 대공포로 무장한 상태였기에 어지간한 폭격은 이도 안들어갔다. 결국 독일군은 슈투카 에이스 한스 울리히 루델을 호출했다. 루델의 활약으로 기어이 항공폭탄이 1번 주포탑에 명중, 탄약고 유폭으로 배의 3분의 1에 해당하는 함수부터 전방 함교에 달하는 부분이 통째로 박살나는 큰 피해를 받으며 사실상 폐함이 됐지만, 항구 내부라 수심이 낮은 지역인 덕분에 어떻게든 다 가라앉지는 않고 착저. 보통 군함이라면 이 시점에서 함생을 끝마쳤겠지만 마라는 심지어 3분의 1이 박살난 그 상태로도 응급복구를 실시해 더 이상의 침수를 막고 살아있는 주포탑들을 근성으로 가동시켜 육군 포병 관측반의 좌표에 따라 포격지원을 해주며 레닌그라드가 독일군의 손에 떨어지지 않도록 보호해줬다.

착저라고 하니 별 피해를 안입은듯한 인상을 주는데 실제로 전함 마라는 루프트바페의 맹공으로 함체의 3분의 1이 박살나고 주포탑 4기중 1기가 완파되고 다른 1기가 가동중지돼서 화력의 50%를 상실하는 막장 상황에서도 오직 조국을 수호한다는 근성 하나로 레닌그라드가 해방되기 전까지 인민의 적들에게 2천여 발 가까이 되는 인민의 불벼락을 선사해주었다. 나름대로라고 표현하기는 했지만 마라는 적의 맹공을 말없이 버텨내며 적들이 물러나는 시점까지 포격을 멈추지 않은 전함으로서 자신의 역할을 가장 훌륭히 수행한 셈이다. 오죽하면 2차 세계대전 최고의 수훈함을 꼽을 때 엔터프라이즈와 동급에 놓는 학자들이 있는 게 아니다.

그렇기에 레닌그라드의 수호신이라는 별명까지 얻은 마라인데 야마토 따위랑은 비교할 수조차 없다. 가성비나 전략적 차원에서 보면 바닥도 없이 비참해진다. 항목 들어가서 보면 알겠지만 강구트급은 슈퍼 드레드노트급도 아니라 카이저마리네 카이저급 전함 같은 초기형 드레드노트급으로[8], 러시아 혁명, 적백내전, 대숙청 같은 정신나간 파란을 겪으며 해군을 새로 만들 여력이 없었던 소련 당국이 어쩔 수 없이 당시 기준으로도 노인 학대를 한 셈인데 이를 운용한 붉은 함대 장병들의 근성 덕분에 뽕을 뽑으며 분투를 한 것이다. 야마토는 어쨋든 당대 일본이 동원 가능한 최신 기술, 물자를 총동원해서 뽑은 최신예품이었지만 마라는 2차대전 기준으로도 현대사의 생증인, 살아 있는 박물관급이었다는 점을 고려하면 둘을 직접 비교하는 거 자체가 미안해진다.

크게 조명되지는 않지만, 다른 소련군 군함들도 나름대로 조국을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마라와 동형함인 옥차브리스카야 레볼루치야는 마라와 함께 크론슈타트에서 포격을 날려댔고, 마찬가지로 동형함인 파리쥐스카야 코뮤나도 세바스토폴을 방어하는 임무에 투입되어 독일군과 루마니아군을 향해 포격을 했었으며, 이후 케르치 반도 상륙작전에도 지원에 나섰다.

결과적으로 앞서 서술된 것처럼, 강구트급 전함 자매들은 일본 해군보다도 더 열악한 상황이었음에도 야마토 따위에 비교하는 자체가 모욕일 정도로 커다란 공을 세웠다.

3.5. 그 외에

이탈리아군의 리토리오급 전함 비토리오 베네토는 활약은 못했어도 여기 저기 영국 해군을 방해하는 작전에 돌아다녔고, 리토리오는 타란토 공습에서 소드피시의 항공어뢰 3발에 착저하는 망신을 당하기도 했지만, 함대를 이끌고 약간의 손상만 입고 아군 함대의 사상자가 하나도 없이 적 순양함과 구축함 여럿을 손상 입히기도 했다.

프랑스군의 리슐리외급 전함은 워낙 순식간에 프랑스가 독일에게 털려 미국으로 도주한 바 있지만 네이밍 쉽인 리슐리외는 태평양 전선의 영국 동양함대의 일원으로서 말레이반도 탈환전에 화력 지원을 하고 일본의 항복 조인식에도 참석했으며 이후 인도차이나 전쟁에도 참전한 바 있다. 동형함 장 바르는 미완성 상태에서 항구에 정박해서 회피 불가능인 상황에서도 주포 구경 380mm(약 15인치) 4연장 주포탑 1기만 가지고 자신보다 화력이 센 미 해군의 사우스다코타급 전함 메사추세츠의 406mm(16인치) 3연장 주포탑 3기와 포격을 주고받으며 논란은 있지만 순양함 오거스타를 협차사격으로 위협해서 물리친 전공은 세운 바 있다.

결국 야마토급 전함의 문제는 사용자가 일본군이라는 점으로 집약된다. 이론상으로는 위에서 언급한 비스마르크급 전함이나 강구트급보다 월등한 스펙을 갖고 있었지만, 지나친 신비주의 컨셉 탓에 같은 추축국 진형의 전함인 비스마르크급 리토리오급처럼 존재감으로 상대방을 압박하지도 못했고, 실전에 나갈 일부터가 드물었기에 실전에서 그 스펙이 제대로 발휘되는지도 알지 못했다. 그리고 막상 출전하자 구축함한테 패배하고, 자기 주포로 대공포 사수들을 박살내는 희대의 삽질만 했다. 일본이 아닌 다른 나라의 전함이었다면 일이 이 지경이 되기 전에 손을 썼을 것이고, 야마토는 스펙에 걸맞은 활약을 갖게 되었을 것이다. 적이 세계 최강 미 해군이라는 약점은 '일본군 소속'이라는 문제에 비하면 별 것도 아니었다. 이런 식이라면 비스마르크급 전함이나 강구트 급 전함이 태평양전쟁 중에 일본 연합함대의 소속 전함이었으면 똑같이 비참한 꼴을 당했을 것이며 반대로 야마토급 전함들이 저 위의 사례에 해당되었다면 더 좋은 성과를 거두었을 것이다. 결국 만들어서 쓴 자들이 어떤 부류였는지가 가장 큰 문제였던 셈.

4. 야마토는 태생적인 실패작이었던가?

요약하자면, 야마토는 진정한 의미의 해상 결전병기였지만, 시대도, 주인도 잘못 만난 비운의 함이라고 할 수 있겠다. 하지만 사실 결국 만든 건 일본이었기에 주인을 잘못 만났다는 표현은 맞지 않을 수도 있다. 초대형 전함에 미쳐 있었고 그나마 기술력도 어느 정도 받쳐주었던 일본이기에 세상에 탄생이라도 할 수 있었고 또 일본이어서 이러한 생을 살다가 가버린 것이다.[9]

4.1. 필요하긴 했다

여기까지만 보면 그저 시대를 역행하는 구 일본군의 숱한 실패 사례들 중 하나로 보이지만, 이는 철저히 결과 해석일 뿐이다. 야마토가 기획되고 취역할 때만 해도 전함 대신 항공모함이 함대결전의 주역이 될 거라고는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기 때문. 동시대 여러 해군국들도 막 전간기 '해군의 휴일'이 끝나면서 신형전함을 다수 건조하고 있었다. 참조 일본군이 신형 전함을 건조 중이라는 불확실한 정보만 입수한 미국이 선택한 대항 수단 역시 똑같은 전함인 노스캐롤라이나급 전함이었다는 걸 볼 때 최소한 당시로서는 결코 시대착오성 선택이 아니었다. 총톤수와 건함능력에서 미국에게 압도적 열세를 보이는 일본이, 개함우월주의에 입각하여 개별 함정의 전투력을 극대화하자는 선택을 한 것은 당시로서는 나쁜 선택이 아니었다.

어떻게 보면 현재의 한국 세종대왕급 이지스함이 타국 이지스함들보다 크고 과무장을 한 것도 이런 맥락으로 볼수 있다. 충분한 숫자를 갖추긴 힘드니 소수인 강력한 함정을 보유하자는 식이다. 티거 전차가 이 같은 사실을 어느 정도 입증해준다. 나치 독일이 티거 전차를 적극으로 생산해 투입한 것 역시 소련이나 미국처럼 적당한 성능인 전차를 대량생산해봤자 그 정도로는 연합국의 물량에 대응하기 곤란하니 차라리 매우 강력한 전차를 만들어 투입하는 것이 더 유리하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었다. 그리고 이는 적절한 판단이었다.

또한 7척 항공모함과 5척 경항공모함에서 출격한 377기[10]의 함재기 중 117기[11]가 2시간 가까이 어뢰와 폭탄을 쏟아부은 끝에 가라앉힐 수 있었던 6만 톤짜리 철 덩어리였다. 즉 상대가 미국측, 운용이 일본측만 아니었다면 충분히 활약할 가능성은 있었다.

물론 미국의 전쟁수행 역량이 고작 초대형 전함 몇 척 갖고 어떻게 해 볼 수준을 한참 넘는다는 점을 예상하지 못한 것부터 상당한 과실임에는 부정의 여지가 없다. 물론 아주 인식이 없는 것은 아니어서 야마모토 이소로쿠가 고노에 수상에게 말한 것과 같이, 개전 전에는 '1년이나 1년 반은 백중지세일 수 있으나 2년이나 3년이 되면 장담할 수 없다'라는 인식은 있었다. 준비가 너무 안 된 연합군 상대로 초전에 기대 이상의 성공을 거뒀다가 그걸 잊어버린 게 문제.

하지만 야마토는 분명 대단한 함선이였고, 지금도 아이오와급과 함께, 전함의 상징과도 같다. 구축함의 주포를 능가하는 수많은 부포와 18.1인치짜리 거대한 주포. 그리고 자신의 주포도 견뎌내는 전함 특유의 장갑과 크기까지 말 그대로 전함의 극으로서, 만일 일본군이 적극적으로 내보냈다면 함생이 달라졌을 것이다. 당시 최고 위력인 주포와 장갑을 둘렀다는 것은 그만큼 무시무시한 능력을 가졌다는 것이므로. 물론 꼭 잘 싸우라는 법은 없고, 현실처럼 구축함한테 쫓기거나 한심하게 침몰할 수도 있다. 그렇다고 해도 지금보다는 평가가 나아졌을 것이다.

이에 더해서 2차 대전은 해전의 패러다임이 바뀌었던 시기였고 일본 또한 전간기 때는 나름대로 항공전력을 중시한다면서 이리저리 머리를 굴렸다는 것이다. 그러나 결국 함대결전을 위한 보조 수단이라는 생각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해서 군축조약 파기 후의 건함계획은 다시 거함거포주의에 의거한 함대결전에 맞게 만들었다. 1944년쯤 가면 뭔가 잘못되었다는 걸 깨달았는지 항공모함 위주로 재편하기는 하는데 그 시점서 이미 항공전력은 큰 타격을 입었고 얼마 안가서 완전히 소멸하고 만다. 일본 해군은 진주만 공습에서 재미를 본 것과 똑같은 방법으로 미드웨이 해전부터 지옥을 맛보기 시작했고[12], 야마토 자매들 또한 그 와중에 1척씩 침몰한다. 물론 야마토급의 건조시기는 여전히 해전의 패러다임이 거함거포주의인 시점이라 변명의 여지는 조금 있다.

4.2. 야마토를 제대로 써보려면 필요한 것들

어떻게든 만들기로 결정했다면, 써먹기 위해 준비할 게 많다. 그 일부를 소개한다.

하지만 일본 제국은 이 문단에 적혀 있는 것들을 하나도 실행하지 않고, 일부 항목과 정반대되는 일을 하기도 했다.

4.3. 현실은 시궁창

위 문단에 나온 내용을 일본이 그대로 실천했다면 나름대로 활약할 수 있었을 것이지만, 일본은 정확히 반대로 했다. 일본군, 일본군/문제점, 일본군/무기체계 항목에서 공통적으로 지적하는 게 보급문제인데, 결전병기라는 야마토조차 피해가지 못했다. 애초에 일본 해군이 진주만 공습을 한 원인도 중일전쟁을 한답시고 중국 대륙으로 들어가는 일본군을 보다못한 미국이 석유 등 전쟁 투입용 자원에 대한 금수 조치를 한 것이다. 일본은 자원도 없이 전쟁을 일으킨 것이다.

이런 무개념 때문에 일본군에겐 야마토를 제대로 운용할 능력이 아예 없었다. 예를 들어 포격전을 몇 번만 하면 포신 수명이 다 돼서 갈아끼워야 하는데, 일본군엔 예비포신이 없다. 야마토를 전선에 내세우려면 충분한 연료를 공급해줘야 마음대로 움직일 수 있는데, 일본군엔 연료도 없다. 일본 본토에서 최전방까지의 거리가 너무 먼 데다, 일본군 특유의 거지 같은 보급능력 때문에 야마토가 일본해군 고관대작들의 5성급 수상 호텔 겸 주유소로 쓰일 지경이니 답이 없다. 보급이 안 되니 훈련도 제대로 할 수가 없고, 전투는 더더욱 할 수가 없다. 일본군이 야마토를 출격시키고 싶어도 기름이 없다. 처음부터 활약이 불가능했던 것이다. 결국 야마토는 후방에서 호텔 노릇이나 하다가 미군 구축함에게 쫓겨 도주하는 현실을 맞이해야 했다.

그래서 결론은 야마토 정도인 전함을 운용하려면 충분한 보급과 정비능력이 있어야 하는데 일본군엔 그런 거 없다. 아무리 강력한 전함이라도 군수지원이 안 된다면 그냥 고철일 뿐이다. 일본군이 야마토를 제대로 운용하고 싶었다면 군수지원능력을 키워야 했지만 일본군은 그러지 못했고 결과는 궤멸로 이어진다.

위에 언급된 운용조건을 지킬 수 있는 나라가 하나 있다. 문제는 그게 일본의 적국인 미국이라는 점. 그런데도 미국은 야마토 같은 전함을 만들지 않았다. 자원과 기술력이 충분한데도 말이다. 미국은 야마토 같은 전함을 만들 바에는 항공모함을 100척 더 찍는 게 낫다고 봤던 것이다. 미국이 18인치 포를 단 전함을 만들 수 있는데도 포기한 것도, 16인치 포 탑재 전함만으로 충분하다고 봤기 때문이다.

결국 일본 제국이 야마토를 만든 건 세계 최대의 삽질이 맞다. 운용할 능력도, 방침도 없는 주제에 괜히 만들어놓고 함대결전을 운운하며 오랜시간 전장에 투입조차 하지 않았다가 겨우 투입했더니 구축함에 발리고 튀어버리는 추태를 보이며 이후 그대로 용궁에 가버렸기 때문에 두고두고 웃음거리가 된 것이다.

5. 야마토의 설계도면

설계도면이 그대로 남아서 연구자들과 애호가들에게 다대한 참고를 제공하는 비스마르크와는 달리, 야마토급은 일본이 패전후 관계된 일체의 자료를 완전히 폐기하는 바람에 설계에 참가한 사람들의 기억에만 의존해서 자료를 복구해야만 했다는 낭설이 떠도는데, 그럴 리가 있나? 야마토급의 설계도는 꽤 많은 양이 남아있다. 물론 군의 것은 폐기되었지만 건조업체 것은 대부분 남아있었고, 특히 무사시를 건조한 미쓰비시와 시나노 하청 건조를 맡은 카와사키는 미군 조사관이 오자마자 줬다. 당연히 전범 면죄 거래지만 말이다. 그런데 맥아더가 준 건 자이바츠(재벌) 해체였다. 이미 때가 늦은 격.

물론 일본군의 공식자료가 없어지는 바람에 불완전한 자료로 야마토급 전함을 조사하느라고 어려움이 있었고 특히 야마토가 마지막으로 출격하던 시기의 최종개장사양의 경우에는 도면에도 반영되지 않거나 도면에는 간략한 구조물 수준으로만 표시된 경우가 있어서 아직 확실하게 못밝혀낸 사소한 부분들이 있다. 예를 들자면 96식 25mm 고각기총은 야마토에는 2연장 기총좌가 설치되지 않은 것이 공식적인 기록이지만 침몰한 잔해에서 2연장 기총좌가 발견되는 등의 것이 있다.

어찌되었든 남아있는 자료 및 생존자의 증언등을 통해 분석이 많이 되어 있다. 야마토 자신의 것뿐만 아니라 무사시 및 시나노급의 설계도는 더 많이 남아있고, 이를 통해 구조 분석 또한 많이 진행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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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마토의 장갑구조 (출처 : WARSHIP MAGAZINE 1987)

도면상 나타나는 장갑 구조 등을 보면 세계 최고 수준의 "초전함(超戰艦)"으로 불릴 수도 있었다. 다만, 위에 언급된 카탈로그에 나타나지 않는 각종 문제점과 저조한 활약상 때문에 주로 까이는 것. 그러므로 제대로 된 국가에서 야마토급 전함을 건조하고, 상식적인 지휘부가 이 배를 운용했다면 적어도 이 정도로 까이지는 않았을 것이다. 어찌 보면 일본군 전투기 에이스들 같은 억울한 처지다.

6. 일본인들의 야마토에 관한 인식

파일:attachment/야마토급 전함/yamato.jpg

히로시마현 동남쪽에 있는 구레 항에는 야마토 뮤지엄(大和ミュージアム)이 있다. 정식명칭은 "구레시 해사역사과학관"(呉市海事歴史科学館). 참고로 이곳에서 맞은편에는 퇴역한 ' 유우시오급 잠수함이 간판이면서 옥외전시한 "해상자위대 구레 사료관"(海上自衛隊呉史料館. 애칭: 철고래관(てつくじら館))이 있다. 이곳 야마토 뮤지엄에는 입장료(일반: 500엔(약 6000원), 고등학생: 300엔(약 4000원), 초•중학생: 200엔(약 3000원))를 내야 하는 반면, 그쪽은 무료이다.

여기에 위에 언급된 1/10 야마토 모형이 전시되어 있으며 갑판의 경우 실제 나무를 가공하여 제작하는 등 현존하는 가장 정확한 야마토 모형으로 평가되고 있다. 그리고 레고블럭으로 만든 구조물 중 세계 최대의 구조물도 야마토급 전함의 스케일 모형이다. 다만 이쪽은 '전쟁병기를 구현한 기록은 레고 관련 기록으로 남기고 싶지 않다'는 레고 본사 측의 입장 표명으로 인해 기네스북 등재는 하지 못했다.

지금으로선 야마토가 일본 해군의 상징적인 존재처럼 보이는 게 사실이다. 구 일본군 해군 기지가 있었던 지방의 해양박물관에는 1/10 사이즈의 거대 모형이 당당히 만들어져 있고, 전함 야마토란 이름으로 우주전함 야마토를 위시한 온갖 문화/오락 상품이 밑도 끝도 없이 나오고, 흥행하고, 또 나오고 있다. 일단 외관이 굉장히 특징적이기도 하고. 이것이 단순히 한때 '세계최대의 군함'을 굴렸다는 자부심에서 나오는 것인지, 아니면 일부의 주장처럼 현재 일본이 정신 못차린 걸 상징하는 것인지는 완전하게 알 수 없는 일이지만….

실제로 야마토가 전시되어 있는 박물관에서 1/10 야마토함을 보게 되면 선미와 선교 부분에 욱일기가 장식되어있으며, 기프트샵에서도 욱일기가 그려진 텀블러나 지갑 등을 볼 수 있다. 그러나 이것은 일본의 악행를 상징할 목적으로 사용한 것인지 고증 목적으로 욱일기를 사용한 것인지를 따져야할 문제이지 욱일기를 사용했다고 하더라도 그게 반드시 군국주의를 미화한다고 단정할 수 없다. 욱일기는 일본의 악행을 상징하기도 하지만 동시에 일제 초창기 군대부터 태평양 전쟁기와 현재 자위대를 포괄하는 상징으로도 볼 수 있기 때문. 순수하게 정치적 목적으로만 쓰인 하켄크로이츠와는 이야기가 좀 다르다.

하여튼 여기까지만 보면 야마토라는 군함이 일본 국민들에게 체제 선전의 일환일지언정 여러모로 사랑 받고 관심을 받았던 군함인 것처럼 보이고, 각종 일본의 가상매체에서 일본 전함의 대표격으로 다루어지는 것도 자연스러워 보인다.

하지만...

위에서 말했듯이 일본 군부는 종전까지 야마토라는 세계 최대 전함의 존재를 숨기는 데 성공했다! 야마토의 정식 배치는 진주만 공습 이후이며, 단 한 번도 관함식 등의 행사를 통해 일반에 공개된 적이 없다. 야마토에 대한 사진도 영상도 관련 보도도 일절 없었다. 이는 (일본 해군 관계자를 제외한) 모든 일본인들이 종전까지 자국에 이런 전함이 있다는 사실조차 전혀 몰랐다는 뜻이다. 존재 자체는 소문을 통해 어느 정도 알려져 있었지만, 자세한 제원은 두 함의 수병들조차 정확히 모를 정도로 일급 기밀이었다. 사실 이 전함은 내막을 제대로 알고나면 자랑보다는 치욕에 더 가까우니 일본 군부와 정부로서는 이 전함을 국민에게 공개하고 싶었을 리가 없다.

야마토가 알려진 것은 전함이 침몰하고 일본이 패전하여 2차 세계 대전이 끝나고 미국에 의해 이런 저런 자료가 공개된 것과 애니메이션 우주전함 야마토의 탓이 크다. 우주전함 야마토 당시에만 해도 이 전함을 아는 사람이 단 하나도 없었다고 한다.. 마츠모토 레이지는 하필 야마토를 선정한 이유에 대해서는 "그게 가장 큰 배였고 관계자를 알아서 도면 같은 자료를 얻을 수 있었다." 라고 밝히고 있다. 니시자키 요시노부는 "더 강하고 전과를 올린 전함도 많은데 왜 하필 침몰한 야마토냐?" 라는 질문에 "이 작품은 비극이기 때문에 침몰된 불쌍한 배를 쓴 것이다." 라고 답변한 바 있다. 그러니까 유명한 비극의 주인공이기에 가져다 쓴 것.

이 점을 생각하면 야마토가 일본 제국 해군의 상징적 존재로 여겨졌다거나, 일본 제국 신민들의 자부심이었다거나, 폭넓게 사랑을 받았다거나 하는 지금의 인식은 완전히 허황된 것일 수밖에 없다. 애초에 그런 전함이 있는지도 모르는데 긍정이든 부정이든 인식이 있을리가 있나. 결국 야마토는 전쟁 관련 저술가들이나 각종 매체의 재포장을 통한 국가 레벨의 '야마토 신성화 작업[14]' 프로파간다를 통해 마치 대단한 무언가가 있었던 듯 묘사되었을 뿐, 현실에선 일본이란 국가의 기형성을 보여주는 함선일 뿐더러 기껏 만들어놓은 전함을 함대결전을 위해 실전에 투입하지 않다가 그대로 용궁에 가버린 처참한 실적 덕에 인지도도 없었다. 위에서도 여러 번 언급된 바 있지만, 이것은 그 당시의 일본 내의 군함들 중에서 전함들에 대한 인지도만 봐도 나가토급 전함의 자매함들의 인지도가 야마토보다 더 높았다는 사실만 봐도 알 수 있다. 당시 일본 제국에서는 나가토와 무츠는 일본의 자랑이라고까지 했을 정도로 야마토에 비해 넘사벽으로 인지도가 높았다.

일본 제국 신민들의 사랑을 한 몸에 받았던 전함, 국내외적으로 일본 해군을 상징했던 전함, 일본 해군의 가장 잘 알려진 전함은 야마토 따위가 아니라 일본 해군 최초의 16인치 드레드노트급 전함이자 야마토급이 취역할 때까지 오래도록 연합함대 기함 노릇을 했던 나가토이다. 니시자키 요시노부도 "왜 우주전함 나가토로 안 했습니까?" 라는 얘기를 지겹게 들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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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페데탈 작전에서 폭탄 일곱 발과 어뢰 한 발, 자기가 격추시킨 슈투카 한 대를 얻어맞고 두 번이나 퇴함 판정을 받았는데도 (예인되긴 했지만) 몰타에 도착해서 만 톤이 넘는 연료를 전달해 연합군의 몰타 항공전 최종 승리에 크게 기여했다. [2] 엔터프라이즈가 과달카날 해전에서 설욕하지만. [3] 다만 야마모토 이소로쿠, 겐다 미노루, 체스터 니미츠, 윌리엄 홀시 등에 의해 정규화된 항공모함 전술이 유럽 전선에서는 아직 확립되지 않아서, 유럽 쪽 해전에서는 전함이 여전히 주력이었다는 건 감안해줘야 한다. 애초에 독일의 크릭스마리네는 해군력이 강하지 못했으므로 유럽 쪽 해전은 대부분 이탈리아 왕립 해군이 맡아야 해서... [4] 물론 야마토급과 아이오와급이 직접 마주쳐서 싸워본 적이 없기 때문에 당시 스펙 기준으로 어느 쪽이 더 강한지에 대해서는 밀덕들 사이에서 아직도 설전이 오가고 있다. 2차대전 해군 버전의 AK-47 VS M16과 같다고 볼 수 있을 정도. [5] 간단한 일대일 대응으로는 무장 수준에서 더 강한 야마토가 우세하지만, 게임이나 가상 시나리오와 달리 실제 해전에서는 공격력뿐 아니라 방어력과 전투 지속능력이 중요하기 때문에 아이오와가 우세할 수 있다. [6] 미군만 힘겨웠던 시기라고 하기엔 문제가 있긴 한데, 저 당시 실상을 보면 일본군 역시 힘들기는 마찬가지였다. 그 악명 높은, 협력 안 되는 육군 해군이라는 사실상 두 개의 나라라서... [7] 다만 야마토나 무사시가 비스마르크처럼 최후에 전함 대 전함간의 포격전을 벌였다면, 7만톤이라는 무지막지한 배수량과 덩치빨로 현실 역사보단 훨씬 오래 견뎠을 지도 모르는 일이다. 비스마르크는 야마토나 무사시처럼 항공어뢰를 무자비하게 얻어맞지도 않았다. 하지만 야마토와 무사시는 전함이나 순양함을 상대로 포격전을 벌이지 못했다 [8] 물론 건조 당시 기준으로는 굉장히 모험적인 기술이었던 3연장 포탑이 장착되는 등 초기형 드레드노트급 치고는 매우 선진적인 설계를 지닌 전함이긴 했지만 2차 세계 대전 기준으로는 아주 오래된 전함에 지나지 않았다. 이 전함과 비슷한 시대에 건조된 아이언 듀크급 전함은 이미 훈련함으로 돌려져 일선에서 물러난 상황이었다. [9] 다만 일본만이 이런 크기와 스펙의 전함을 만들 수 있었던 건 아니다. 미국도 야마토급과 비슷한 스펙인 몬태나급 전함을 만들려고 계획하고 있었고 실제로 거의 만들기 직전까지 갔었다. [10] 혹은 367기, 적 함대 상공에 도달하여 공격에 참여한 함재기는 309기. [11] 전투기 15기, 전폭기 5기, 급강하 폭격기 37기 뇌격기 60기였다고 한다. [12] 둘리틀 특공대는 1회성 작전이었고 상징성 의미가 강했으므로 패스 [13] 사족이지만 실제로 야마모토 이소로쿠에게 "바닷물과 해초로 석유를 만들 수 있다"고 해서 연구비를 받은 뒤 꿀꺽하고 소련으로 토낀 사기꾼이 있었다고 한다.(...) [14] 사실 야마토의 함명 유래가 야마토 번이 아닌 고대국가 야마토로 착각되는 건 이 영향이 가장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