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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8-12 14:01:29

알 무크타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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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아부 바크르, 우마르, 우스만, 알리 등 이 4명만 정통 칼리파로 인정받으나 하산도 잠깐동안 칼리파 자리에 있었기 때문에 포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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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바스 왕조 제27대 칼리파
알 무크타디
المقتدي
<colbgcolor=#000000><colcolor=#FFF,#FFF> 이름 아부 알 카심 아브드 알라 이븐 무함마드 이븐 알 카임
أبو القاسم عبد الله بن محمد بن القائم
출생 1056년
아바스 왕조 바그다드
사망 1094년 2월 3일 (향년 37~38세)
아바스 왕조 바그다드
재위 기간 아바스 칼리파
1075년 4월 2일 ~ 1094년 2월 3일 (19년)
전임자 알 카임
후임자 알 무스타지르
별명 알 무크타디(المقتدي: 신의 명령을 따르는 자)
부모 아버지 : 무함마드
어머니 : 우르주완
종교 이슬람 수니파
1. 개요2. 생애3. 여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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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아바스 왕조 제27대 칼리파.

셀주크 제국의 보호 하에서 즉위한 두번째 칼리파이다. 부친 알 카임과 아르메니아인 후궁 사이에서 태어났고, 본며은 무함마드 다키라트이다. 1075년 알 카임이 44년간의 긴 치세를 마치고 사망하자 칼리파에 오른 그는 1055년생 동년배인 술탄 말리크샤 1세와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였다. 셀주크 제국이 강성해짐에 따라 메카 메디나의 아미르들이 카이로의 파티마 칼리파 대신 그를 인정하였고, 알 무크타디는 형식적으로나마 셀주크 조의 주군으로 인정받았다. 말리크샤는 자신의 딸 마흐 이 물크 카툰을 그와 결혼시켰고, 부부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 자파르를 술탄 겸 칼리파로 만들려 하였다.

하지만 마흐 이 물크가 아들과 이스파한 궁정으로 돌아가버리며 이는 실패하였다. 실망한 말리크샤는 알 무크타디에게 퇴위하고 바스라로 은퇴할 것을 종용하였다. 이에 알 무크타디가 거부하자 말리크샤는 직접 시행하기 위해 친히 바그다드에 당도하였다. 하지만 재상 타즈 알 물크의 계책으로 15일의 말미가 주어졌고, 그동안 말리크샤는 1092년 말엽 친 칼리파 세력에 의해 암살되었다. 위기를 넘긴 알 무크타디는 약 1년 3개월 후 사망하였다. 셀주크 왕녀 외의 부인 사이에서 태어난 알 무스타지르가 계승하였다.

2. 생애

1056년 바그다드에서 아바스 왕조 제26대 칼리파 알 카임의 아들 무함마드 디키라트와 아르메니아인 여노예 우르주완의 아들로 출생했다. 1075년 4월 2일 알 카임이 임종을 맞이했을 때, 무함마드 디키라트는 이미 죽었기에 그가 칼리파에 올랐고, 파흐르 다울라 이븐 자이르가 궁정 재산 관리를 맡았다. 알 카임은 숨을 거두기 전에 그에게 파흐르 등 바누 자히르 가문을 끝까지 유지하라고 권고했다.

1077년 바게하드에서 한발리파 강사인 아부 나스르 이븐 알 우스타드 아비 알 카심 알 쿠샤예리가 니자미야 시에서 연설하고자 도시에 도착했을 때, 한발리파와 아슈아리파 간의 폭동이 일어났다. 이때 셀주크 제국의 고관이자 법학자인 니잠 알 물크의 아들 무야드 알 물크가 폭동에 휘말려 중상을 입었다. 니잠은 이에 분노해 파흐르가 사건의 배후에 있다고 비난했다.

1078년, 니잠 알 물크는 파흐르를 해임하고 한발리파 인사들을 체포하기 위해 고하르 아인을 바그다드 궁정에 보냈다. 그해 7월 23일 바그다드에 도착한 고하르 아인은 8월 14일 그를 찾아가서 파흐르를 해임하라고 권고했다. 그는 처음에는 주저했지만, 따르지 않으면 왕궁을 공격하겠다는 위협에 굴복하여 파흐르를 사임시킨 뒤 가택 연금에 처했다. 한편, 아미드 알 다울라는 니잠 알 물크의 행동을 전해듣고 이스파한으로 가서 니잠과 만나 사촌의 석방을 간청했고, 니잠은 고심 끝에 그러기로 하고 자신의 손녀와 아므드의 결혼을 성사시켰다. 그 후 여전히 연금 중이던 파흐르를 다시 고관으로 임명하라고 권고했고, 알 무크타디는 받아들였다.

1081년, 그는 셀주크 제국 술탄 말리크샤 1세의 딸 마흐 이 물크 카툰과의 결혼을 이루기 위해 파흐르를 이스파한에 보냈다. 그러나 말리크샤 1세는 아들 다우드의 요절에 슬퍼하고 있어서 협상에 응하지 않았다. 이에 파흐르는 니잠과 함께 공주의 양어머니인 투르칸 카툰에게 부탁했다. 그녀는 가즈니 왕조에서 10만 디나르를 줄 테니 공주를 자기들한테 보내달라는 제안을 받은 상태였기에, 칼리파한테 딸을 주고 싶어하지 않았다. 하지만 알 카임의 미망인 아르슬란 카툰이 "칼리파와 결혼하는 게 더 영예로우며 그에게 더 많은 돈을 요구해서는 안 된다"라고 조언하자, 투르칸 카툰은 결혼에 동의했지만 50,000디나르를 추가로 지불하고, 현재 아내와 후궁들을 포기하고, 다른 여자들과 성관계를 맺지 않는 조건을 내걸었다. 바그다드 궁정은 셀주크 제국의 보호를 받기 위해 결혼 동맹을 반드시 맺어야 했기에 이 조건을 수락했고, 결혼은 성사되었다.

1083년, 그는 바그다드 궁정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던 바누 자히르 가문을 공직에서 해임했다. 그가 할아버지의 유언을 어기고 그들을 해임시킨 이유는 불분명하다. 알 자우지에 따르면, 그는 그들이 허가없이 호라산으로 가자 의심을 품고 이스파한에 서신을 보내 바누 자히르 해임을 요청했다고 한다. 이븐 알 아티르에 따르면, 셀주크 제국 측이 그들의 해임을 강력히 권고했다고 한다. 이후 바누 자히르 가문의 경쟁자였던 아부 파흐트 알 무자파르가 고관 자리를 계승했다.

그는 말리크샤 1세의 보호를 받으며 이라크에서 안정적인 통치를 이어갔고, 셀주크 제국에 의해 파티마 왕조의 지배로부터 해방된 아라비아의 메카 메디나의 에미르들은 아바스 칼리파의 영적 관할권을 인정했다. 말리크샤는 자신의 딸과 그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 자파르를 술탄 겸 칼리파로 만들려 했다. 그러나 마흐 이 물크가 알 무크타디와 가정 불화를 빛다가 1089년 5월 29일 아들과 함께 호라산으로 가버렸고, 얼마 안 가 사망했다. 이에 화가 난 말리크샤는 1092년 국정에 대한 칼리파의 간섭을 비판하며 바스라로 은퇴하라고 명령했다. 알 무크타디가 은퇴를 거부하자, 말리크샤는 직접 시행하기 위해 친히 바그다드에 당도하였다. 하지만 재상 타즈 알 물크가 개입해 15일간의 말미를 얻어냈다. 얼마 후 말리크샤가 돌연 암살당하면서, 그는 칼리파 직위를 보전할 수 있었다.

그 후 재상 타즈 알 물크가 이스파한으로 가서 마흐무드 1세를 술탄으로 지명했다. 마흐무드는 아직 어린 아이였고, 마흐무드의 어머니 테르켄 카툰이 섭정하려 했다. 그녀는 바그다드에 사절을 보내 자신이 섭정하는 걸 용인해달라고 부탁했다. 그는 처음엔 여자가 통치자가 되는 건 있을 수 없다며 반대했지만, 상당한 로비를 받은 고관들이 강력히 권하자, 칙령을 발표할 때 그녀가 아닌 마흐무드의 이름으로 할 것이며 자신이 임명한 고관의 도움을 받는 조건으로 수락했다. 한편 그와 마흐 이 물크의 아들 자파르는 1092년 10월 바그다드로 돌아왔지만 1093년 6월 21일에 아버지보다 먼저 죽었다.

1094년 2월 3일 바그다드에서 사망했다. 사후에 이집트 출신 여노예 타이프 알 아프와에게서 낳은 16살 아들 알 무스타지르가 새 칼리파로 등극했다.

3. 여담

알 무크타디의 치세에 바그다드에서는 쿠르드계 여성 하디스 학자 파크르 앗 니사(슈흐다 알바그다디야)가 활약했다. 알 무크타디는 그녀에게 토지를 하사하여 학술에 전념토록 후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