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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8-12 12:54:51

무함마드 알 마흐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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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아부 바크르, 우마르, 우스만, 알리 등 이 4명만 정통 칼리파로 인정받으나 하산도 잠깐동안 칼리파 자리에 있었기 때문에 포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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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바스 왕조 제3대 칼리파
알 마흐디
ٱلْـمَـهْـدِي
파일:Abbasid_Dinar_-_Al_Mahdi_-_167_AH_(783_AD).jpg
<colbgcolor=#000000><colcolor=#FFF,#FFF> 이름 아부 아브드 알라 무함마드 이븐 아브드 알라 알 만수르
أبو عبد الله محمد بن عبد الله المنصور
출생 744/ 745년
우마이야 왕조 알 후메이마
사망 785년 7월 25일 (향년 40~41세)
아바스 왕조
재위 기간 아바스 칼리파
775년 10월 6일 ~ 785년 7월 24일 (10년)
전임자 알 만수르
후임자 알 하디
부모 아버지 : 알 만수르
종교 이슬람 수니파
1. 개요2. 생애

[clearfix]

1. 개요

아바스 왕조 제3대 칼리파. 시아파와의 화해를 도모하고 바그다드의 번영을 이끌었으며, 동로마 제국과의 전쟁에서 우세한 위치를 차지했다.

2. 생애

744년 또는 745년 호라산 일대에서 출생했다. 아버지는 아바스 왕조 2대 칼리파 압둘라 알 만수르이고, 어머니는 예멘을 다스렸던 바누 히미야르 부족의 일원인 만수르 알 히미야리의 딸 아르와 빈트 만수르 알 히미야르이다. 10살 때 칼리파에 오른 아버지가 가정교사로 뽑은 하마스 학자 알 무파달 아브드 다비의 지도 아래 아랍어 문법과 시를 공부했다. 무파달은 왕자를 위해 66명의 최고의 아랍 시인들의 시 모음집인 <알 무파달리야트>를 편찬했다. 동시대 기록에 따르면, 그는 잘생겼고 날씬했으며, 긴 곱슬머리를 가졌다고 한다. 또한 쾌락을 추구했고 시와 음악을 무척 좋아했고, 사냥에 많은 시간을 바쳤다고 한다.

758년, 아버지에 의해 호라산 총독으로 선임되었다. 그의 수석 고문은 바르마크 가문 출신의 야히야 이븐 칼리드가 맡았는데, 그는 평생 알 마흐디의 충실한 동반자가 되었다. 768년 이란에서 돌아와 바그다드 건설에 참여하여 루사파 동쪽에 자신의 궁전을 지었다. 772년 바그다드 북쪽에 또다른 신도시 건설에 참여했다.

알 만수르는 당초 칼리파로 즉위할 때 이복형 이브라힘의 아들이자 자신의 조카인 이사 이븐 무사를 후계자로 삼기로 약속했다. 이사 이븐 무사는 763년 이브라힘의 반란 진압에 혁혁한 공을 세웠고, 이라크 서남부에 궁전을 세우는 등 위세를 떨쳤다. 그러나 알 만수르는 아들을 후계자로 세울 계획을 품고, 파르스 총독 할리드를 시켜 이사를 뒷조사하게 했다. 할리드는 부정부패를 저지른 혐의로 이사를 고발했고, 이사는 알 마흐디에게 쿠파 총독 자리를 내놓고 은거했다. 이리하여 후계자로 공인된 그는 775년 10월 6일 아버지가 메카 순례를 가던 중에 병사하자 칼리파로 등극했다.

알 마흐디는 칼리파가 된 직후 이란인 아부 우바이달라 무아위야를 와지르로 임명하고 사산 왕조의 화려한 의식과 궁정 관습을 도입했다. 그는 궁정 깊숙한 곳에 자리를 잡고 시녀들의 보살핌을 받았으며, 신하들은 칼리파에게 의견을 개진할 때 직접 만나지 못하고 환관을 통해 전달해야 했다. 무야위야는 권력을 잡은 뒤 조세 개혁을 추진해 농민에 대한 고정세금이 연간 수확량과 시장의 가격 변동을 고려한 비례 과세 체계로 대체되었다.

780년, 알 마흐디는 무야위야를 야쿱 이븐 다우드로 교체했다. 야쿱은 시아파 인사로, 지난날 압둘라 알 만수르를 상대로 발발한 시아파 반란에 참여했다가 체포되어 감옥에 수감되어 있었다. 그는 야쿱을 와지르로 선임해 앞으로는 시아파를 탄압하지 않겠다는 뜻을 드러냈다. 이후 시아파는 예전과는 달리 당국의 가혹한 박해에 시달리지 않고 자유를 어느정도 누릴 수 있었다. '알 마흐디(المهدي: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은 자)'는 자신들을 복권시켜준 것에 감명받은 시아파가 붙여준 별칭이다. 다만 야쿱은 783년에 물러났고 아히야 이븐 칼리드가 와지르에 선임되었다. 이후 바르마크 가문이 와지르를 독점하면서 강력한 권세를 누렸다.

그는 고대 이란 전통을 선호했지만 이슬람교 지도자로서도 열정을 쏟아부었다. 이슬람교를 각지에 전파하는 데 힘을 기울였으며, 종종 모스크에서 직접 설교했다. 고위 관리를 위해 모스크의 울타리 구역을 없앴고, 메카와 메디나의 모스크를 재건했으며, 루사파와 바스라에 새 모스크를 세웠다. 또한 마니교를 신봉하는 것으로 의심되는 이란인들을 탄압했다. 이에 '쿠람딘'으로 일컬어진 이교 집단이 776년 북부 이란에서 알 무카나의 지도하에 반란을 일으켜 783년까지 항전했지만 끝내 토벌되었다. 또한 시아파에 대한 온건 정책에도 불구하고 785년 히자즈에서 시아파가 반란을 일으켰다. 하지만 민중의 지지를 받지 못했기에 순식간에 진압되었다.

778년, 동로마 제국 황제 레온 4세가 아나톨리아 주둔 군대에 시리아를 침공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동로마군은 즉시 출동해 타우루스 산맥을 넘어 무슬림 분견대를 격파하고 시리아에 거주하던 수많은 그리스도교도들을 트라키아에 강제 이주했다. 그는 이에 보복하고자 779년 아시아 테마에 공격을 가했으나 격퇴되었다.

780년, 그는 하룬 알 라시드에게 10만에 달하는 병력을 맡겨 콘스탄티노폴리스로 진군하게 했다. 물론 당시 17살이었던 하룬이 군대를 직접 지휘하지는 않았고 아히야 이븐 칼리드가 실권을 행사했다. 무슬림 군대는 대대적인 공세를 개시했고, 782년 아르메니아 장군 타차테스의 항복을 받아냈다. 당시 어린 콘스탄티노스 6세를 대신하여 통치하던 이리니 황태후는 아바스 왕조의 압박을 모면하기 위해 향후 3년간 매년 7만 디나르를 바치고 칼리파에 경의를 표하는 협약을 맺었다.

그러나 그의 치세에 북아프리카에 대한 통제력이 약화되었고, 카와리즈파는 777년 타헤타를 수도로 삼고 루스탐 왕국을 건국했다. 한편, 779년과 781년에 아들 하룬과 함께 인도로의 해군 원정대를 조직하여 구자라트까지 항해하게 했다.

785년 7월 24일, 알 마흐디는 돌연 사망했다. 그가 사망한 경위에 대해 두 가지 기록이 전해진다. 한 기록에 따르면, 그를 모시던 하사나라는 첩이 마흐디가 가까이 하는 또다른 첩을 질투해, 그녀를 독살하고자 배에 독을 넣은 뒤 하인을 통해 배가 담긴 접시를 보냈다. 그런데 그는 그 접시를 가로채서 주저없이 배를 먹었고, 얼마 지나지 않아 복통을 호소하다 사망했다고 한다.

또다른 기록에 따르면, 그는 당초 장남 알 하디를 후계자로 정했지만 아내 알 카이주란이 차남 하룬 알 라시드를 후계자로 세우라고 강력히 권하자 하룬 알 라시드를 후계자로 삼기로 했다. 이후 알 하디가 동생을 위해 후계자 지위를 포기하도록 설득하기 위해 알 하디가 반란군 토벌 임무를 수행하고 있던 요르단으로 갔으나 그곳에서 사냥 사고로 사망했다고 한다. 어느 쪽이 사실인지는 분명하지 않지만, 그의 죽음이 심상치 않다는 것만은 분명하다. 알 하디는 아버지의 사망 소식을 듣고 곧바로 바그다드로 향하여 20일만에 도착한 뒤 새 칼리파로 선임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