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메리카바다가재 American lobste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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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명 |
Homarus americanus H. Milne-Edwards, 1837 |
<colbgcolor=#fc6> 분류 | |
계 | 동물계 Animalia |
문 | 절지동물문 Arthropoda |
강 | 연갑강 Malacostraca |
목 | 십각목 Decapoda |
과 | 가시발새우과 Nephropidae |
속 | Homarus |
종 | 아메리카바다가재 H. americanus |
언어별 명칭 | |
한국어 | 아메리카바다가재, 미국바닷가재[1] |
영어 | American lobster[2], atlantic lobster[3] |
- 9㎏짜리 아메리카바다가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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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가시발새우과의 가재이며, 바닷가재 중에서 가장 잘 알려진 종이다.2. 상세
성체 몸길이 평균 230㎜, 무게 평균 680~910g이다. 갑각은 주황 바탕에 배면이 갈색 혹은 암적색이다. 이마뿔은 완만하게 아래쪽으로 굽어지며 위로 5~7개의 가시가, 아래에 한 개 이상의 가시가 있다.[4] 가슴다리에는 붉은색 가시가 드문드문 있으며 특히 제1집게다리에서 잘 발달해있다.[5] 제1배다리는 생식지이고 이것으로 암수를 구분할 수 있는데, 단단한 것은 수컷이고 유연한 것은 암컷이다.유럽바다가재와 함께 Homarus속의 둘 뿐인 현생종이며 두 종은 교잡이 가능하다. 주로 깊이 4~50m의 얕은 바다의 암초 사이 혹은 진흙질 바닥에 서식하며 서식지의 온도는 2~20℃ 사이이다. 북아메리카 북부 원산이며, 미국의 노스캐롤라이나부터 캐나다 북부의 생피에르 미클롱까지 분포한다. 1999년 이후부터 북해에서도 외래종으로 발견된다.
해양자원보호 정책 덕분에 개체수는 안정적으로 유지되고 있다. 메인주에서는 갑각길이 3¼~5″ 사이의 개체만, 캐나다에서는 갑각길이 82.5mm 이상만 포획할 수 있다. 포란한 암컷은 나중에 알아볼 수 있도록 꼬리에 표시를 한 다음 풀어준다. 미국의 경우 꼬리에 작은 구멍을 내고 캐나다의 경우 끝을 V자로 살짝 자른다.
아메리카바다가재는 모든 절지동물을 통틀어 가장 무거운 종이다. 기네스 세계 기록에 기록된 가장 큰 개체는 1977년 캐나다의 노바스코샤주에서 잡힌 106cm, 20.14㎏짜리 아메리카바다가재다. 가장 오래된 바닷가재는 2008년 캐나다의 뉴펀들랜드에서 잡힌 조지(George). 무게는 약 9㎏였고 당시에 나이가 이미 140살로 추정되었는데, 잡아먹히지 않고 시푸드 레스토랑에 관상용으로 팔려 수족관에서 살다가, 이듬해인 2009년 1월 10일 PETA의 항의로 다시 야생으로 풀려났다.
- 해디(Haddie)라는 이름이 붙여진 솜사탕색 바닷가재.[6]
보통 갈색인 아메리카바다가재에게서 붉은색, 파란색[7], 솜사탕색, 노란색, 반반으로 다른 색 등 매우 희귀하게 다양한 색상의 개체가 나타날 수 있는데 그 확률은 대략 수 천만 분의 일이다. 다만 아메리카바다가재는 어획량이 워낙 많은 관계로 매년 이런 바닷가재들이 하나씩 잡힌다. 특별한 색상의 바닷가재는 아주 진귀한 취급을 받으며, 보통은 먹히지 않고 도로 방생되거나 아쿠아리움에 기증되거나 한다. 색이 특별하다고 해서 맛이 다르지는 않다.
캐나다의 셰디악(Shediac) 마을에는 "The World's Largest Lobster" (세계에서 가장 큰 바닷가재)라는 아메리카바다가재 모양 조각상이 있다.
3. 식재료
자세한 내용은 바닷가재 문서의
식재료
부분을
참고하십시오.4. 역사
17세기 초, 유럽바다가재가 이미 고급 음식 취급을 받고 있을 때에 아메리카바다가재는 정반대의 대우를 받고 있었다. 바닷가재에 친숙하지 않았던 북미 초기 정착민들은 이를 매우 징그럽게 여겼고 바다에서 끊임없이 떠밀려 내려오는 바퀴벌레 취급을 하였다.17세기에 영국인들이 미국과 캐나다에 와서 정착하기 시작했을 때 바닷가에 끊임없이 떠밀려 내려오던 게 바닷가재인지라 공급은 넘쳐났는데, 당시 플리머스(도시)에서는 바닷가재가 0.5m 높이로 쌓인 것이 간혹 보일 정도였다.
익숙하지 않은 생물인만큼 정착민들은 이 생물을 제대로 요리할 줄 몰랐는데, 산 채로 요리하는 게 아니라 죽은 것을 요리했고, 조촐하게도 물에 그냥 삶아먹는 방식이었다. 그리고 그 국물을 버렸다보니 바닷가재의 맛이 없다고 봐야했다. 요즘이야 오븐에서 굽거나, 살짝 데치기만 하거나, 찜기로 쪄내지만, 당시에는 그냥 물에 넣고 푹 삶아 먹었다. 국물은 버리고 살만 발라 먹었는데 맛있는 아미노산이 국물에 그대로 쓸려가니 당연히 맛이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비슷한 사례로 대게도 찜기로 찌지 않고 물에 삶아버리면 맛이 떨어지기 때문에 국내의 모든 대게요리집은 찜기로 대게를 찐다.
가난하고 힘들었던 빈민들과 새 이주민들, 그리고 먹거리를 가릴 수 없던 죄수들에게 바닷가재는 단백질을 얻을 수 있는 가장 흔하고 값싼 방식이었다. 사실, 조리법보다도 바닷가재의 평을 떨어뜨렸던 것은 정착 초기의 고난한 시기에 살고자 질리도록 먹어야 했던 음식이라는 인상, 그리고 그 때문에 비롯된 "빈곤과 퇴보의 징후"라는 악명이었다.
초기 북미 이민자들이 고향에 보내는 편지에 빈곤해서 허구헌 날 바닷가재나 먹고 있다고 푸념하는 내용이라든지 너무 가난해서 먹을 것이 바닷가재밖에 없고 대접할 음식도 바닷가재 뿐이라던가, 집 한구석에 쌓여있는 바닷가재 껍데기라던지 빈곤의 상징으로서의 바닷가재는 당대 문학에서 흔한 클리셰 수준으로 찾아볼 수 있다.
미국의 메인주와 매사추세츠주, 캐나다의 노바스코샤, 뉴브런즈윅, 프린스 에드워드 아일랜드 등 대서양 북부 연안에서는 아메리카 원주민들이 바닷가재를 갈아서 밭에 비료로 뿌리고 낚시 미끼로 달아 사용했다.
이러한 싸구려 음식으로서의 인식이 바뀐 것은 철도와 냉장 기술 덕분이었다. 당시 익힌 바닷가재는 통조림으로 가공하기 좋다는 것이 밝혀지면서 1841년 메인주에서 바닷가재 통조림 공장이 세워졌는데, 천천히 수요를 늘려가자 통조림 공장은 점점 수를 불려 1870년대에는 메인주의 해안을 따라 23개의 통조림 공장이 2백만 개의 바닷가재 통조림을 생산할 수 있었다. 이 시기에 바닷가재 통조림을 파운드당 11센트[8]에 얻을 수 있었다.
이 공장들의 가공 효율은 워낙 높아서 잡혀드는 바닷가재의 크기가 줄어들 정도였는데, 처음 공장에서는 4~5파운드짜리는 작다고 간주되었고 2파운드(약 1㎏)짜리 바닷가재는 가공할 가치도 없다고 여겨졌는데 10년이 지나자 2파운드는커녕 번식기도 못 지냈을 작은 바닷가재들도 받아야 했다.
한두 마리로 통조림을 채울 수 있었던 이전과 달리 열 마리를 들여야 겨우 통조림 하나를 채웠다. 더 많은 마릿수의 바닷가재의 살을 발라야 하게끔 변하여 단가가 크게 늘어나자 통조림 공장들은 하나둘 사업을 철수했다.
그 즈음으로 해서 철도가 개통되자 바닷가재 통조림 역시 철로를 따라 유통되었는데, 이미 뉴잉글랜드와 노바스코샤, 뉴브런즈윅, 프린스 에드워드 아일랜드를 오가는 여행객과 사업가들에게 알려졌다. 내륙에 살면서 바닷가재가 싸구려 음식이라는 인식이 없는 이들에게 바닷가재란 통조림에 담긴 것도 즐길만한 맛을 가졌고, 요리사들은 이내 살아있는 바닷가재는 더욱 맛있음을 알아냈다.
한때 거대했던 크기의 바닷가재와 달리, 2파운드짜리 바닷가재는 레스토랑의 저녁 메뉴에 들기 적합한 크기였다. 산 채로 요리하여 버터, 치즈, 올리브유와 향신료를 더해 화려한 접시에 담자 바닷가재는 고급 음식으로 탈바꿈했다.
운송 과정에서 냉장 기술이 도입되면서부터는 유통 거리가 대폭 늘어나서, 보스턴이나 핼리팩스 같은 해안 도시는 물론 시카고와 위니펙과 같은 내륙 도시에도 바닷가재를 산 채로 유통하는 것이 가능해졌다.
이런 내륙에서는 유통 비용까지 더하여 산지 가격의 10배에 달하는 가격에 팔려서 바닷가재의 고급 요리로서 가진 면모를 더했다. 한편 자원보호도 없이 남획된 바닷가재의 개체수가 줄어들며 어획량은 꾸준히 감소했다. 수요가 가파르게 늘어감에도 공급이 줄어드는 상황이 벌어지자 가격은 폭발적으로 치솟았다.
1889년부터 1898년 사이에 바닷가재의 평균가는 4배로 뛰었으며, 그 이후에도 계속하여 올랐다. 이러한 상승세를 가로막은 것은 1920년대의 막바지에 들이닥친 대공황이었다. 경제 침체로 고급 음식을 즐기는 수요층이 사라지면서 바닷가재는 다시 공장에서 통조림으로 가공되는 신세가 되었다.
이 시기에 바닷가재는 다시 개체수를 일부 회복할 수 있었다. 이후 2차 세계대전을 거치며 다른 음식과 달리 배급이 되지 않던 희소성 덕분에 그 위상이 다시 한 번 올랐고, 시간이 흘러 현재와 같은 위치에 달했다.
5. 사육
사육 정보 | |
크기 | 16 - 100 ㎝ |
식성 | 육식 |
수명 | 50년 |
성향 | 공격적 |
산호 합사 가능 | 예 |
최소 용적 | 550 리터 |
적정 온도 | 10 - 15℃ |
적정 염도 | 1.025 - 1.026 |
적정 PH | 8.2 - 8.4 |
적정 KH | 7 - 10 kdH |
질산염 | 10 ㏙ 미만 |
요리 재료로 인지도가 높은 생물이지만, 이 큼지막한 녀석을 관상용으로 기르는 사람들이 간혹 있다. 애완동물로서의 인지도는 낮은데, 애초에 산호가재나 다른 관상용 갑각류를 두고 크기와 먹는 양 모두 어마어마한 이런 것을 굳이 키울 이유가 없기 때문. 수조 또한 차게 유지해줘야 하므로 냉각기의 전기세까지 장난 없이 들어간다. 그래도 대게나 홍게, 킹크랩에 비하면 키우는 횟수가 많은 편이긴 하다.[9]
한국에서 구하는 것 자체는 매우 쉬운데, 일단 수산시장이나 대형마트만 가도 보이는 게 살아있는 녀석들이다. 튼튼한 개체가 걸리고 관리만 잘해준다면 그럭저럭 잘 산다.[10]
덩치를 고려해 넓은 수조를 마련해 줘야 하고 새 수조가 아니라 몇 달은 묵은 수조여야 한다. 일종의 적응 기간을 거친 후 해수항에 넣어주는 것이 좋다. 바닥재는 모래 혹은 산호사이며 땅을 파는 것을 좋아하니 2㎝ 이상 깊이로 해야 한다. 스키머와 냉각기는 필수적이다.
영역성이므로 수조가 5자 이상급의 거대한 크기라도 되는 게 아닌 이상 2마리 합사는 시도하지 않는 것이 좋다. 전문 아쿠아리움처럼 여러 종의 물고기가 합사 가능할 정도로 대형~초대형 수조가 구비되지 않는 한 가정용 수조는 바닷가재 한 마리 기르기에도 협소하기 때문이다
또한, 다른 생물들과의 합사 역시 시도하지 않는 것[11]이 좋은데, 바닷가재는 식성 폭이 매우 넓기 때문이다. 물고기는 당연히 안 되고, 바닷가에서 발견할 수 있는 게, 고둥, 조개류, 소라게, 새우도 합사하면 그대로 잡아먹힌다. 영상[12] 갯가재 같이 바닷가재보다 작은 갑각류는 먹히지는 않겠지만 혹시 모르니 숨어서 지내게 하는 것이 좋다. 문어의 경우, 합사하면 오히려 바닷가재가 문어에게 먹힐 위험이 있다.[13]
그나마 바닷가재와 합사하는 것이 가능한 생물은 단단한 껍데기를 가진 민꽃게와 오징어, 불가사리, 말미잘이 있다.[14]
사육 시 단독으로 기르는 게 아닌 한 탈피 시기가 다가오면 다른 합사 개체에게 공격당할 위험이 있으므로 격리시키는 것이 낫다. 탈피 직전의 개체는 등갑이 살짝 열린 것으로 확인할 수 있다. 탈피한 개체는 야생에서는 탈피각을 먹어치워 영양을 보충하지만, 사육되는 개체는 영양제나 다른 먹이 등으로 대신 보충해 줄 수도 있다.
[1]
미국에서만 잡히는 것은 아니다.
[2]
"아메리카바닷가재".
[3]
"대서양바닷가재".
[4]
유럽바다가재에게서는 아래쪽 가시가 없으므로 두 종을 쉽게 구분할 수 있는 동정키다.
[5]
유럽바다가재는 가시가 흰색이다.
[6]
해외에선 blue lobster jumpscare이라면서 뜬금없이 이 사진을 넣는 밈이 있다
[7]
보통의 유럽바다가재와는 다른 선명한 파란색.
[8]
현 물가로 2~3달러. 현재 바 하버 브랜드의 바닷가재 통조림은 파운드당 대략 70달러다.
[9]
특히 킹크랩은 랍스터보다 키우기가 더 어렵다.
[10]
그냥 산 채로 주거나 쪄서 준다. 보통은 둘 중에서 선택할 수 있다.
[11]
수조가 넓어도 하지 않는 것이 좋다.
[12]
랍스터가 잡아먹는 장면은 없지만 대신 언급이 있다.
[13]
백그라운드TV의 영상에서 문어를 키우는 수조에 바닷가재를 주었더니 문어가 바닷가재를 단번에 덮쳐서 잡아먹었다.
[14]
오징어는 헤엄쳐다니기 때문에 잡아먹힐 일이 없을 듯하고, 불가사리는 맛도 영양도 없기에 바닷가재에게 먹힐 일이 없을 것이다. 또한, 말미잘은 독이 있기에 바닷가재가 건드리지 못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