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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3-17 14:58:44

아달랄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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랑고바르드 국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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랑고바르드 5대 국왕
Adaloald | 아달랄트
파일:아달랄트.jpg
제호 한국어 아달랄트
라틴어 Adaloald
생몰 년도 602년 ~ 626년
재위 기간 616년 4월 ~ 626년

1. 개요2. 행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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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랑고바르드 왕국 5대 국왕.

2. 행적

602년 몬차에서 랑고바르드 왕국 4대 국왕 아길루프와 바이에른, 오스트리아, 남 티롤 일대를 지배하고 있던 바이우바리족의 지도자 발데르아다의 딸 테오도리다의 아들로 출생했다. 당시 랑고바르드 왕국 내에서는 랑고바르드 전통 종교, 아리우스파, 가톨릭 간의 세력 다툼이 벌어지고 있었는데, 지배 세력인 랑고바르드족은 대체로 전통 정교 또는 아리우스파를 신봉했지만 피지배층인 라틴인들은 가톨릭을 신봉했다. 그의 아버지 아길루프는 아리우스파를 신봉했고, 테오도리다는 가톨릭을 따랐다. 아길루프는 테오도리다의 지명을 받고 왕위에 오를 수 있었기에, 갓 태어난 아들이 가톨릭 세례를 받게 하자는 그녀의 의견을 따랐다. 그리하여 아달랄트는 603년 4월 7일 트렌토의 주교 세쿤두스에게 가톨릭 의식에 따른 세례성사를 받았다.

604년 2살의 나이로 아버지가 거행한 이탈리아 왕 대관식에서 공동 통치자로 지명되었다. 이때 대관식에 참석한 프랑크 왕국의 사절은 그를 테오데베르트 왕의 딸과 결혼시키는 데 동의하고 영구 평화 협정을 맺었다. 다만 이 결혼식은 차일피일 미뤄지다가 끝내 이뤄지지 못했다. 616년 4월 아길루프가 사망했을 때, 그의 나이는 아직 14살이었기에 어머니 테오도린다가 섭정을 맡았고, 아길루프의 사령관 순다리트가 군사 지휘권을 맡았다. 순다리트는 아달랄트 즉위 직후 라벤나로 쳐들어가 위협을 가한 끝에 라벤나 총독 엘레우테리우스로부터 매년 조공을 바치겠다는 약속을 받아냈다.

테오도리다는 교황 호노리오 1세가 동로마 황제 이라클리오스의 권유에 따라 단의론를 정식 교리로 삼은 것에 반발한 아퀼레리아 주교의 뜻에 따르면서도 랑고바르드 왕국을 장차 가톨릭 국가로 만들려는 의지를 굽히지 않았다. 가톨릭 신앙이 투철했던 서고트 왕국의 군주 시세부트는 아달랄트에게 편지를 보내 테오도리다의 이같은 행적에 찬사를 보내면서 아리우스파를 버리고 가톨릭으로 개종하라고 권고했다.

그러나 아달랄트는 성인이 되었을 때 정신 착란 증세를 보였고, 친 가톨릭 정책에 반감을 품고 있던 아리우스파 귀족들은 이 때를 틈타 반기를 들기로 했다. 626년, 귀족들이 정변을 일으켜 아달랄트와 테오도리다를 라벤나로 쫓아내고 토리노 공작 아리알트를 새 왕으로 세웠다. 아달랄트는 라벤나로 축출된 직후 중독 증세를 보이며 사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