랑고바르드 국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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랑고바르드 19대 국왕 Ansprand | 안스프란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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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호 | 한국어 | 안스프란트 |
라틴어 | Ansprand | |
생몰 년도 | 미상 ~ 712년 | |
재위 기간 | 712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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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랑고바르드 왕국 19대 국왕.2. 행적
아스티 공작으로, 랑고바르드 왕국 15대 국왕 쿠닝페르트의 열렬한 추종자였다. 700년 임종을 눈앞에 둔 쿠닝페르트는 그에게 아들 리우페르트를 보좌해달라고 부탁했다. 그 후 리우페르트가 왕위에 올랐지만, 토리노 공작 라긴페르트가 반란을 일으켜 파비아로 진격했다. 701년 초, 라긴페르트는 노바라 인근에서 안스프란트와 베르가모 공작 로타리트를 격파하고 파비아에 입성한 뒤 리우페르트를 폐위했다.701년 말 라긴페르트가 사망한 뒤 아들 아리페르트 2세가 왕위에 올랐다. 그는 이 때를 틈타 감옥에서 탈출한 리우페르트를 왕으로 추대하고 파비아로 진격해 아리페르트 2세를 폐위하고 리우페르트를 복위했다. 그러나 아리페르트 2세는 코모 섬으로 피신한 뒤 추종자들을 끌어모아 반격에 나섰다. 이어진 전투에서 패배한 리우페르트는 감옥에 갇힌 뒤 702년경 목욕 중 익사했고, 그는 본거지로 도주했다가 다시 바이에른으로 도피했다. 그의 가족은 대부분 체포되어 신체 절단형을 받았지만, 막내아들 리우프란트만이 가까스로 탈출하여 아버지와 합류했다.
712년 초, 바이에른에서 용병대를 모집한 뒤 랑고바르드 왕국으로 진격했다. 그해 3월, 그의 군대는 아리페르트 2세의 군대와 해질녘까지 맞붙었으나 승패를 가리지 못했다. 바이에른 용병대는 막대한 손실에 동요해 고향으로 돌아가는 것을 심각하게 고려했다. 이때 아리페르트 2세가 승패가 판가름나지 않았는데도 파비아로 철수해 버렸고, 이를 비겁한 행동으로 여긴 병사들이 뿔뿔이 흩어지면서 승기를 잡았다. 아리페르트 2세는 프랑크 왕국으로 망명하고자 파비아에서 달아났지만, 티키누스 강을 건너던 중 등에 짊어지던 보물에 짓눌리는 바람에 익사했다.
그 후 파비아에 입성한 그는 왕위에 올랐으나 3개월 후 병사했다. 임종 전에 모든 공작을 불러모아 아들 리우프란트를 왕으로 받들겠다는 맹세를 받아낸 뒤 눈을 감았다. 사후 파비아의 성 아드리아노 교회에 안장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