랑고바르드 국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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랑고바르드 12대 국왕 Garibald | 가리발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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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호 | 한국어 | 가리발트 |
라틴어 | Garibald | |
생몰 년도 | 미상 ~ 미상 | |
재위 기간 | 671년(3개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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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랑고바르드 왕국 12대 국왕.2. 행적
랑고바르드 왕국 11대 국왕 그리말트와 10대 왕 고데페르트의 누이 테오도타의 아들로, 671년 아버지가 사망한 후 왕위를 물려받았다. 그러나 그는 나이가 너무 어렸기 때문에[1], 귀족들은 그를 왕으로 모시는 것보다는 성인을 세우는 게 낫다고 여겼다. 이리하여 재위 3개월 만에 그리말트에게 축출된 뒤 프랑크 왕국에 망명했던 페르타리트를 왕위에 세우기로 결의했다. 그가 폐위된 후의 삶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없지만, 잠재적인 왕위 경쟁자를 두려워한 페르타리트에게 살해되었을 가능성이 높다.가리발트는 랑고바르드 왕국의 마지막 아리우스파 기독교도 군주이기도 했다. 그의 뒤를 이어 즉위한 페르타리트가 로마 가톨릭을 국교로 삼으면서, 아리우스파는 랑고바르드에서 빠르게 세력을 잃고 소멸해 갔다.
후세의 가리발디 가문은 가리발트 왕의 후손을 자칭했다.
[1]
그리말트와 테오도타는 662년에 결혼했기 때문에, 최대한으로 잡아도 9살 이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