랑고바르드 국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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랑고바르드 6대 국왕 Arioald | 아리알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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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호 | 한국어 | 아리알트 |
라틴어 | Arioald | |
생몰 년도 | 미상 ~ 636년 | |
재위 기간 | 626년 ~ 636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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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랑고바르드 왕국 6대 국왕.2. 행적
토리노 공작이었다는 정보 외에는 왕이 되기 전의 생애에 대해 알려진 바 없다. 파울 부제는 그에 대한 기록이 없다고 주장했는데, 실제로 기록이 없었을 수도 있지만 가톨릭을 받아들이는 듯했던 랑고바르드 왕국을 도로 반 가톨릭 국가로 만든 그에 대해 숨기고 싶었기 때문일 수도 있다. 그는 전임 토리노 공작 아길루프로부터 두터운 신임을 받았고, 아길루프의 딸 군데베르가와 결혼했다.아길루프가 랑고바르드 왕위에 오른 뒤 토리노 공작을 이어받아 무난하게 다스리다가 테오도린다 왕비와 아들 아달랄트가 왕국을 가톨릭화하려 하는 것에 반감을 품고, 626년 아달랄트가 정신 착란 증세를 보이는 것을 근거로 삼고 정변을 일으켜 두 사람을 라벤나로 축출한 뒤 귀족들의 추대를 받고 왕위에 올랐다. 이에 교황 호노리오 1세는 라벤나 총독 이사키오스에게 아달랄트를 복위시켜달라고 청원했다. 그러나 이사키오스는 라벤나 시가 전임 총독의 반란으로 혼란스러운 상황에서 전쟁을 일으키는 건 무리라고 보고, 아리알트의 즉위를 인정했다.
630년 프리울리 공작 타소네가 군데베르가 왕비의 후원을 받고 반란을 일으켰다. 아리알트는 타소네 공작이 일으킨 반란에 고전하다가 이사키오스에게 사람을 보내 타소네 공작을 대신 죽여준다면 매년 바쳐야 하는 공물을 300 두카트에서 200 두카트로 줄여주겠다고 제안했다. 이사키오스는 이에 동의하여 타소네에게 서신을 보내 동맹을 맺고 싶으니 라벤나로 와달라고 청했다. 타소네는 이에 동의해 라벤나로 갔다가 이사키오스의 병사들에게 습격을 받아 죽었다. 아리알트는 이에 만족하여 공물을 줄이겠다는 약속을 지켰다. 또한 군데베르가를 파비아에서 멀리 유배보냈다가 나중에 궁정으로 되돌아오게 하고 직위를 돌려줬다.
그는 수도를 밀라노에서 파비아로 되돌린 뒤 프리울리로 쳐들어온 아바르족을 격퇴했다. 그 외에는 이렇다할 대외 전쟁을 벌이지 않고 조용히 지내다 636년 사망했다. 사후 브레시아 공작 난딩의 아들 로타리가 왕위에 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