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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2-29 01:28:11

노이에란트 전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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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전 6~10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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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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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이에란트 전역
Reuenthal Rebellion
날짜
우주력 800년, 신제국력 2년 표준력 10월 ??일 ~ 12월 16일
장소
은하제국령 노이에란트
교전 당사자 파일:lion02_s.png 은하제국 로엔그람 왕조 파일:lion02_s.png 파일:lion02_s.png 은하제국 노이에란트 총독부 파일:lion02_s.png
지휘관 볼프강 미터마이어
프리츠 요제프 비텐펠트
아우구스트 자무엘 바렌
에르네스트 메크링거
칼 에두아르트 바이어라인
오스카 폰 로이엔탈
한스 에두아르트 베르겐그륀
알프레트 그릴파르처
브루노 폰 크납슈타인
알렉산더 바르트하우저†
디터스도르프
존넨펠스
쉴러†
병력 은하제국군
미터마이어 함대
함선 4만 2770척, 장병 460만 8900명
메크링거 함대
함선 1만 1900척, 장병 불명
노이에란트 치안군
함선 3만 5800척 이상, 장병 550만 명
피해 규모 피해규모불명 전력의 90% 상실[1]
결과
은하제국군의 승리, 반란 주모자 사망
노이에란트 총독부 해체
1. 개요2. 주요 인물3. 배경4. 전개
4.1. 우르바시 반란4.2. 로엔그람 왕조의 첫 번째 반역자4.3. 토벌군의 출발4.4. 란테마리오에서 격돌하다4.5. 내전의 끝
5. 결과 및 영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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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하영웅전설의 에피소드
응웬 킴 호아 광장 사건 노이에란트 전역 하이네센 동란

1. 개요


은하영웅전설의 사건. 노이에란트 총독 오스카 폰 로이엔탈 원수가 카이저 라인하르트 폰 로엔그람 곁에 있는 간신 파울 폰 오베르슈타인 하이드리히 랑을 숙청한다고 선언하며 제국 정부에 반기를 든 사건이다. 로엔그람 왕조 건국 이후 처음으로 발생한 대규모 반란이며 작중에서는 노이에란트 전역, 로이엔탈 원수 반역 사건, 행성 하이네센 동란, 2년 병란 등 수많은 명칭으로도 불린다.

2. 주요 인물

3. 배경

파일:상세 내용 아이콘.svg   자세한 내용은 로이엔탈 원수 탄핵사건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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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하십시오.
로이엔탈이 반란을 일으킨 근본적인 원인은 오스카 폰 로이엔탈이 품은 야심과 이를 견제하는 파울 폰 오베르슈타인, 그리고 로이엔탈에게 원한을 품고 그를 실각시키려는 하이드리히 랑과 로이엔탈이 반역하도록 유도하여 신 제국의 분열을 기도한 아드리안 루빈스키 지구교 때문이다. 이 문제는 3년 전 립슈타트 전역으로부터 시작되었다.

본래 로이엔탈은 골덴바움 왕조에 반감을 품고 있었다. 그러나 로이엔탈은 왕조를 뒤엎을 기개를 가지지 못했기에 감히 제국을 무너뜨릴 생각을 하지 못했다. 그러나 라인하르트는 기꺼이 제국을 무너뜨리고 새로운 체제를 수립하려고 했고, 로이엔탈은 라인하르트의 기개에 감탄하며 기꺼이 그의 부하가 되었다.

그런데 립슈타트 전역이 끝난 날, 라인하르트는 클라우스 폰 리히텐라데 일족 숙청을 명하며 로이엔탈에게 "나를 쓰러뜨릴 만한 자신과 각오가 있다면 언제든 도전해도 상관없다"고 말했다. 로이엔탈은 농담이 과하다고 대답했지만 마음속으로 전율을 느꼈고, 이후 라인하르트에게 도전할 생각을 품게 된다.

시간이 흘러가면서 로이엔탈은 점점 불온한 생각을 품기 시작했다. 제8차 이제르론 공방전 직후에는 볼프강 미터마이어 앞에서 칼 구스타프 켐프의 예를 들어 라인하르트는 부하를 소모품으로 생각한다고 말하기도 했고, 로이엔탈이 제1차 라그나뢰크 작전 직전에는 라인하르트가 자신의 위에 설 자격이 있는지 증명하지 못한다면 타도할 생각을 품은 적도 있었으며 버밀리온 성역 회전에는 잠시나마 반전공세에 나서지 않을 생각까지 했다.

이런 로이엔탈의 야심은 주변인에게 경계의 대상이 되었다. 미터마이어의 부하 칼 에두아르트 바이어라인은 '적진이니 경계한다'는 명목으로 제1급 임전태세를 갖추어 로이엔탈이 힐데가르트 폰 마린도르프의 제안을 거절하면 즉시 공격하려 했으며 오베르슈타인은 로이엔탈을 "맹금"이라고 평하면서[2] 가까운 곳에 묶어놔야 한다고 하이네센 주재 고등판무관 임명을 반대한 적이 있었다.[3]

미터마이어와 한스 에두아르트 베르겐그륀 등 로이엔탈과 친분이 있는 사람들은 그의 야심을 억제하고 만류하려 했지만, 로이엔탈은 듣지 않았고 이따금 자신의 야심을 드러내는 말을 꺼냈다. 이런 로이엔탈의 야심은 신 제국의 몰락을 바라는 아드리안 루빈스키 지구교, 로이엔탈에게 사적인 원한을 품은 하이드리히 랑의 표적이 되었고 그들은 로이엔탈과 카이저 사이를 이간질하기 위해 온갖 음모를 꾸몄다.

그러나 라인하르트는 로이엔탈을 신뢰했다. 하이드리히 랑은 로이엔탈이 숙청당한 리히텐라데 일족인 엘프리데 폰 콜라우슈를 숨기고 있었다고 로이엔탈을 고발했지만 라인하르트는 로이엔탈을 내치기는 커녕 신 제국의 부제(副帝)나 다름없는 노이에란트 총독에 임명했다. 로이엔탈은 이로써 광대한 노이에란트( 구 동맹령)를 황제의 대리인으로 다스리게 되었으며, 무려 3만 5천 척에 달하는 함대를 '노이에란트 치안군'이라 하여 자기 산하에 두면서 무력 면에서도 라인하르트 다음가는 수준으로 자리매김했다.

하지만 로이엔탈은 일련의 사건을 거치며 자신을 끌어내리려는 오베르슈타인과 랑에 반감을 품었다. 그리고 전투광 성향이 있는 로이엔탈에게 평화로운 세상은 정말 견디기 힘든 것이었다. 그리고 음모가들은 포기하지 않고 계속 모략과 음모를 꾸며 로이엔탈의 반역을 유도했다.

4. 전개

4.1. 우르바시 반란

파일:상세 내용 아이콘.svg   자세한 내용은 우르바시 사건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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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이엔탈 원수가 반역을 준비하고 있다는 소문이 제도 페잔 시내에 돌았다. 그러나 라인하르트는 그러한 소문들은 전부 믿지 않았고, 로이엔탈에 대해 떠도는 불온한 소문들을 불식시키고자 로이엔탈의 청을 받아들여 노이에란트를 순방했다. 항해 도중, 라인하르트 일행은 보급과 휴식을 위해 과거 제1차 라그나뢰크 작전 당시 은하제국 원정함대의 전초기지로 사용된 우르바시 행성에 잠시 머무르게 되었다.

그런데 우르바시에 주둔한 치안군 병력들이 돌연 반란을 일으켰고, 라인하르트는 반란군에게 쫓겨 허겁지겁 우르바시를 떠나는 신세가 되었다. 그리고 황제의 탈출을 돕기 위해 코르넬리우스 루츠 제독이 뒤에 남아 추격자들을 저지하다가 전사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사태를 보고받은 로이엔탈은 즉시 알프레트 그릴파르처 제독을 우르바시를 파견하여 반란을 진압하고 치안을 회복했지만, 이미 루츠는 죽었다. 그리고 그릴파르처는 이 반란이 지구교의 사주로 일어났다는 증거를 입수했지만,[4]이 일로 로이엔탈 원수가 반란을 일으킨다면 반란에 동참하는 척 하면서 배신하여 '화려한 무훈'을 세워 출세하겠다는 탐욕스러운 이유로 정보를 은폐했다.

한편, 로이엔탈에게는 이 상황을 타개할 방법이 없었다. 오베르슈타인과 하이드리히 랑의 모략 때문에 의심을 받았던 시기에서 얼마 지나지 않았는데도 불구하고 자신을 믿고 직접 소수의 수행원만을 이끌고 나선 황제가 노이에란트 초입, 그것도 이미 제국군의 기지로 쓰이던 우르바시 행성에서 일어난 반란에 휘말렸고, 행성 탈출 후 실종되기까지 한 데다 사건의 주모자와 배후자를 알 수 없게 된 상황에서 자신이 다시금 반역자로 내몰렸다는 사실에, 로이엔탈은 해명을 포기해 버렸다.
"들은 대로일세, 베르겐그륀. 나는 로엔그람 왕조 최초의 반역자가 된 모양이야."
"하오나 총독 각하, 분명 전례 없는 불상사라고는 하나, 각하와는 아무런 관계도 없는 일인 만큼 폐하께 사정을 설명하신다면......."
"해결이 될 리가 있나!"
로이엔탈은 내뱉었다. 자기 자신의 운명조차 내팽개친 듯한 태도였다. 그는 무고했다. 무고한 자가 왜, 필사적으로, 또한 비굴하게 변명을 해야만 한단 말인가. 말도 안 된다. 그런 생각이 밀물처럼 흉곽을 채웠다. 겨우 그것을 위해 오늘날까지 황제 밑에서 싸웠단 말인가.
다나카 요시키, 은하영웅전설 9권 <회천편>, 김완, 이타카(2011), p.173[5]

로이엔탈은 냉정한 성격과 큰 야심을 품은 인물로 이미 오래전부터 '2인자 무용론'을 주창하던 오베르슈타인의 견제를 받아 왔으며, 최근에는 오베르슈타인의 의도적인 묵인과 방조에 힘입어 하이드리히 랑과 같은 소인배들이 그를 모함하고 있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로이엔탈은 얼마 지나지 않은 과거에 이어 또 다시 반역자로 몰려 버린 자신의 처지에 절망했고, 본인이 우르바시의 반란 및 루츠 제독의 사망에 관련된 바 없음을 증명할 어떠한 물증도, 정황도 찾아낼 수 없었다. 이렇게 차츰차츰 목을 조여오듯 자신을 옥죄는 상황을 타개하지 못한 압박감에 본래 품어왔던 스스로의 야심이 더해지며, '은하제국 노이에란트 총독' 로이엔탈은 결국 반란을 일으키고 말았다.

4.2. 로엔그람 왕조의 첫 번째 반역자

로이엔탈 원수가 반란을 일으켰다는 소식은 은하제국을 충격에 몰아넣었다. 그의 둘도 없는 친구인 미터마이어 원수는 보고를 받은 자리에서 크게 분노하며 부하를 질책했으나 로이엔탈의 행동은 의심의 여지가 없었고, 미터마이어는 명령을 내려 실종된 황제의 행방을 찾는 데 전력을 다하도록 했다.

황제 라인하르트와 그의 기함 브륀힐트는 3주간의 도주 끝에 페잔 인근에서 제국 함대에 구조되었다. 갑작스레 휘말린 반란과 루츠의 사망, 그에 이어진 도주에 가까운 급박한 항해로 자존심에 큰 상처를 입고 간신히 돌아온 라인하르트는, 다급히 브륀힐트로 찾아와 자신을 알현한 미터마이어에게 '신영토 반란 토벌 함대'의 사령관을 맡겼다. 하지만 황제는 이내 "로이엔탈과 경의 관계를 잘 아니, 이번만큼은 경에게 명령을 거부할 권리를 주겠다"는 말을 덧붙이며 직접 함대를 이끌고 출전할 의사를 내비쳤고, 이에 미터마이어는
"잠시 기다려 주십시오, 폐하. (중략)오늘날까지 제가 세운 모든 무훈을 걸고서, 폐하께서 결심을 바꾸어 주시기를 바랍니다. 통촉하여 주시옵소서. (중략) 감히 아뢰옵건데, 로이엔탈은 폐하께 등을 돌린 것이 아닙니다. 그의 충성심과 공적은 소관과는 비교할 수 없는 바, 부디 그에게 변명할 기회를 주시옵소서."
다나카 요시키, 은하영웅전설 9권 <회천편>, 김완, 이타카(2011), p.194

라고 간청했지만 라인하르트는 이에 차갑게 대꾸했다.
"기회라고! 짐이 루츠의 헌신 덕에 우르바시를 탈출하고 바렌에게 구조를 받을 때까지 얼마나 많은 시일이 있었는지 아는가? 로이엔탈이 결백을 주장할 마음이 있었다면 백 번은 할 수 있었을 것이다."
다나카 요시키, 은하영웅전설 9권 <회천편>, 김완, 이타카(2011), p.194~195

이 말을 들은 미터마이어는 " 지난번 로이엔탈이 중상모략을 당했을 때는 로이엔탈을 믿어 미동도 하지 않으셨잖습니까?"라며 변명했으나 오히려 라인하르트는 "루츠가 죽은 것도 누군가의 중상모략인가?" 라고 일갈하며 마시던 포도주 잔을 벽에 내던졌다. 궁정과 군부에 퍼진 온갖 모략과 좋지 못한 소문에도 로이엔탈을 믿고 최소 인원만을 데려갔던 노이에란트에서 반란에 휘말려 등을 보이고 달아나야 했던 굴욕감, 자기를 대신해 싸우다 죽은 루츠의 희생과 그에 대한 죄책감으로 인해 자존심 강한 라인하르트가 마음에 깊은 상처를 받았다는 것을 느끼며, 미터마이어는 황제의 분노를 뼈저리게 이해할 수 있었다.

그럼에도 미터마이어는 친구인 로이엔탈을 필사적으로 변호했으나 라인하르트는 "짐이 원해서 로이엔탈 원수를 치려는 줄 아느냐!”라고 일갈했고, 이어 "왜 여태 로이엔탈은 해명 한 마디도 없고, 하다 못해 루츠의 죽음에 대한 조문조차 없는 것인가!"라고 격노했다. 라인하르트의 말처럼 로이엔탈의 행동은 무엇으로도 변명할 수 없는 것이었지만, 미터마이어는 오베르슈타인과 랑의 모함 때문에 로이엔탈이 해명하지 못하는 것이라 주장하며 오베르슈타인을 형식적으로나마 경질하고 아니, 오베르슈타인이 이 결정에 불만을 가질 수 있으니 자신의 원수직과 우주함대 사령장관직을 같이 내놓겠다고도 했다.그런 다음에, 로이엔탈에게 화해의 의사를 표해달라 간청하였다. 그러나 라인하르트는 '황제인 자신이 거기까지 양보하는 것이 이치에 맞느냐, 옥좌에 있는 건 나냐 로이엔탈이냐'라고 격분하며 반박했고, 이미 로이엔탈이 반란 의사를 표시한 상황에서 오베르슈타인이 경질되고 미터마이어까지 사임해 버리면 현존하는 세 원수와 이들이 맡은 제국군의 중추가 통째로 사라져 버리기 때문에 일언지하에 미터마이어의 요청을 거부하였다.

미터마이어는 미치고 팔짝 뛸 노릇이겠지만, 사실 미터마이어의 요청은 황제 개인의 자존심 문제가 아니라도 도저히 들어줄 수 없을 만큼 지나친 것이었다. 골덴바움 왕조도 마찬가지였지만 특히 로엔그람 왕조는 기존에 황제의 권력을 어느 정도 대신하며 체제 유지를 도왔던 문벌귀족들을 일소한 뒤, 라인하르트라는 한 걸출한 황제의 독보적인 카리스마와 지도력으로 권력을 완전히 집중한 전제왕정이다. 전제국가가 아니라 그 어떤 사회체제였다고 해도 고위장성이자 정치가가 '잘못한 것도 없는데 내가 왜 사과하냐?'며 시위하며 뻗대는 건 절대 옹호의 여지가 없건만, 어떤 이유가 됐건 황제에게 저항을 하는 시점에서 100% 반역인 전제왕정에서 아무리 개국공신이라지만 로이엔탈의 행동은 이미 대화 좀 해서 없던 셈 칠 수 있는 수위를 한참 넘어선 것이었다. 하물며 황제에게 총부리를 겨눈[6] 신하를 상대로, 황제 쪽이 자기 대신들까지 잘라가며 먼저 숙이고 드는 제스처를 취하는 건 관용이 아니라 엄청난 굴욕이다. 라인하르트 말마따나 황제가 타협할 수 있는 범위가 아니다. 실제였다면 목숨은 붙여 주겠다는 말조차 엄청난 관용이었을 터인데.... 안 그래도 왕조 초기 체제의 기강을 잡아야 하는 시절에 이렇게 황제의 권위를 스스로 깎아내리는 짓을 한다면, 앞서 설명했다시피 황제 한 명에게 권력이 집중되는 로엔그람 왕조는 제대로 자라기도 전에 뿌리부터 흔들린다.[7]

거기다 이런 구구한 정치적 논리까지 가지 않아도 미터마이어의 말은 도의적으로도 비판의 소지가 많다. 해당 사건에서 라인하르트는 별 잘못도 없이 죽을 뻔한 피해자인데, 어찌됐든 해당 사건을 수습해야 할, 그리고 사전 대비 의무를 충실히 실행하지 못한 책임자가[8] 형식상의 사과 하나 없이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는 건 라인하르트가 황제가 아니라 일개 시민이었어도 열불 터질 일이다. 그런데 옆에서 친구가 한다는 말이, 피해자인 자기한테 '네가 먼저 좀 사과하고 그래' 라고 하는 격이니, 인간적으로 쌍욕이나 안 나오면 다행이다(...). 한마디로 미터마이어의 요청은 어느 모로 생각해도 개인적인 감정에 휘둘린 궤변일 뿐이다.평생 정도(正道)를 걸은 미터마이어도 소울메이트 문제 앞에선 어쩔 수 없던 모양이다.

그리고 '무고한 자가 왜 변명을 해야 하는가'라는 로이엔탈의 입장 역시 비판의 소지가 있다. 물론 반역 시도에 대해서는 무고하지만 그와 별개로 업무상 책임을 다하지 못했다는 것은 로이엔탈의 명백한 과오이기 때문이다. 라인하르트는 로이엔탈을 믿고, 로이엔탈이 반란을 일으킬 것이라는 소문을 불식시켜주기 위해 로이엔탈의 요청을 받아들여 별다른 전력도 거느리지 않은 채 로이엔탈이 책임지는 영역을 순방했다. 그렇다면 그 순방 과정에서 라인하르트의 안전은 당연히 로이엔탈의 책임이며, 그 안전을 보장하지 못하고 라인하르트를 위험에 노출시킨 것은 변명의 여지가 없는 로이엔탈의 과오인 것이다. 물론 우르바시 주둔군이 반란을 일으킨 원인이 로이엔탈이 아니라 지구교의 음모에 있던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자신이 책임지는 영토(노이에란트)에서 주둔군의 기강을 유지하여 그러한 음모를 막아내는 것은 로이엔탈의 책임이다.

또한 진짜 책임은 자신의 사욕을 위해 진실을 숨기고 음모를 꾸민 그릴파르처에게 있지 않으냐고 하는데, 하필 그 그릴파르처를 기용한 책임은 로이엔탈에게 있다.(즉, 그릴파르처의 책임과는 다른 층위에서 로이엔탈에게도 책임이 있다.) 물론 자신이 예측할 수 있는 영역 바깥에서 일어난 문제에 대해서 책임져야 한다는 것은 충분히 억울할 수 있는 일이다. 하지만 예상 외의 사태가 발생하더라도 가능한 한 대처할 수 있도록 미리 준비해두는 것은 책임자의 의무이다. 그러므로 로이엔탈이 정말 억울하다 하더라도 이는 '자기 책임을 다하지는 못하였으나, 어쩔 수 없는 사정이 있었기에 전적으로 자기 잘못은 아니다'라는 의미에서 억울할 일이지 '아무 잘못이 없는데 책임지라니 억울하다'라고 주장할 문제는 아니다. 게다가 '결백한 자가 왜 자신의 무고함을 구차하게 변명하려 하느냐'라고 억울해하기에는 로이엔탈이 받은 의심이 아무 이유없는 누명도 아니었다. 충분히 반역을 의심받을만한 이유가 있는 상황이었고, 또 그 이유의 상당부분은 자신의 과오에서 비롯되었던 것이다. 따라서 자신이 짓지도 않은 죄에 대해 변명하는 것이 정 싫다면, 그 대신 자신의 실수나 실패에 대해서는 해명하고 사과하는 방법으로라도 대화의 물꼬를 틀 수는 있었던 것.

다만 개인적인 감정이 크게 작용한 점도 있지만 이대로 제국군과 노이에란트 치안군이 정면으로 격돌한다면 여기에서 발생될 피해는 막대하다. 아무리 막강한 국력의 은하제국이라도 해도 자유행성동맹과의 오랜 전쟁, 문벌대귀족들과의 내전, 동맹 토벌과 양 웬리와의 결전 등을 거치며 엄청난 숫자의 함선과 장병들을 잃었는데 전쟁이 끝난지 몇 년이나 되었다고 또다시 내전이 벌어지는 꼴을 염려한 점도 있을 것이다. 게다가 노이에란트 총독부의 군사력은 은하제국 본국의 군사력과 비교해 보면 그 규모는 작아도 1개 함대분의 병력도 안 남은 양 웬리 함대와 비교하면 그 군세가 5배에 달하여 사실상 우주에서 2번째로 강력한 군사력을 가지고 있다 할 수 있으니 로이엔탈이 전면전으로 나왔기 망정이지 장기전으로 계획했다면 제국군의 피해가 극심했을 것이다. 그렇다고 쳐도 로이엔탈을 이대로 아무 일도 없던듯이 용서할 수도 없었고 또 그렇게 한다고 쳐도 로이엔탈이 순순히 받아들였을지는 의문이지만. 상술했듯 이미 로이엔탈은 모함에서 벗어난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또 모함을 당해 절망감에 빠져 있었다. 전에도 같은 일이 있었고 이 모양이 되었는데 이번에도 그 꼴이 나지 않으리란 법이 없다고 여긴다면 쉽사리 결정내리지 못할 것이다.

결국 미터마이어는 토벌 함대 사령관직을 수락할 수 밖에 없었고, 황제 라인하르트는 페잔으로 귀환하였다. 한편 노이에란트 총독 오스카 폰 로이엔탈 원수는 제국 정부 앞으로 한 장의 문서를 발송하였다.
『군무상서 오베르슈타인과 내무차관 랑이 국정을 농단하고 카이저를 무시한 채 무단으로 숙청을 행하고 있으므로, 자신은 이를 간과할 수 없는 바, 필요하다면 무력으로 그들을 배제하리라.』
다나카 요시키, 은하영웅전설 9권 <회천편>, 김완, 이타카(2011), p.217

라인하르트는 황제로서 지금까지 큰 탈 없이 제국을 통치해왔기 때문에 로이엔탈은 부득이하게 간신의 죄를 탄핵하게 된 것이었으나, 오베르슈타인이나 랑 따위에게 자신이 농락당했다는 말에 라인하르트는 '아무리 반역을 정당화시키기 위해서라지만 이렇게까지 나를 깎아내리느냐'며 크게 불쾌해했고 이를 본 미터마이어는 어떤 말도 덧붙일 수 없게 되었다.

그러나 라인하르트는 힐데가르트를 통해 '루츠가 랑의 모략(니콜라스 볼텍을 페잔 폭탄테러사건의 주범으로 몰았으며, 그를 죽이고 자살로 위장한 사실)을 밝혀냈다'는 이야기를 전해 듣고 크게 놀랐으며, '짐이 간신배의 체면을 살려주려다 충신들의 불안과 불만을 샀다'며 깊이 후회하고 체포령을 내려 랑을 가두었다. 이 문서 자체가 하도 충격적이라 문서를 본 라인하르트의 반응은 "프로이라인이 지시해 만든 것인가?"였다.[9] 아무튼 로이엔탈이 (겉으로나마) 내세운 명분은 맞아떨어진 셈, 애초 로이엔탈도 그걸 아주 모르지는 않았을 것이지만.

4.3. 토벌군의 출발

황제의 지시로 토벌군 사령관을 맡게 된 미터마이어는 일생의 친우 로이엔탈에게 칼을 겨누게 된 자신의 신세를 한탄했으나, 황제와 로이엔탈이 직접 맞붙어 황제의 신변에 문제라도 생겼다간 이제 첫 발을 뗀 로엔그람 왕조가 무너질 수도 있다는 것을 생각하며 마음을 정리한 뒤, 바렌과 비텐펠트 두 제독에게 원정군에 합류할 것을 지시했다.

로이엔탈은 파울 폰 오베르슈타인 하이드리히 랑을 간신으로 지목하고, 이들을 제거한다는 명분을 내세워 노이에란트 치안군을 자신의 휘하에 두었다. 제국령의 거의 절반을 차지하는 노이에란트에 주둔한 병력이 모두 로이엔탈의 손에 있었던 만큼, 반란군의 규모는 어마어마한 수준이었다. 하지만 반란의 명분이 부족하여 제국군 내에 호응이 뒤따르지 않았고, 로이엔탈 휘하의 장병들도 '우린 왜 황제 폐하와 싸우는 거지? 그럼 우리도 반란군이 아닌가?'/'폐하와 싸우는 게 아니라 폐하 주위의 간신들을 처단하는 거야.'/'그래도 군무상서란 사람은 사리사욕 챙기는 작자는 아니던데.'라고 수군거릴 정도였다.물론 상대가 군무상서도 카이저도 아닌 질풍 볼프라는 것에 다들 침묵 로이엔탈 자신도 상황이 어려워지자 준비도 없이 급하게 반란을 일으킨 것이라, 세세한 부분까지 신경 쓸 여유가 없었다. 조금 이상해 보이겠지만 덕분에 서로가 쓸데없이 죽일 이유는 없음을 알았기에, 한번 대세가 기울어지자 한쪽에서 대거 투항하였기 때문에 제국을 양분한 반란치고 사상자가 크지 않았다. 애당초 로이엔탈이 라인하르트로부터 독립하려고 일으킨 반란도 아니었으니.

로이엔탈이 반역을 선언하자 그의 부하들은 여러가지 심정으로 반역에 동참했다. 사열부총감 한스 에두아르트 베르겐그륀 대장은 반역이 아니라 황제께 해명을 해야 한다고 진언했지만 로이엔탈이 받아들이지 않자 반역에 동참하였고, 알프레트 그릴파르처 대장은 반역이 성공하면 군무상서와 제국원수에 서임된다는 조건으로 반역에 동참하였다. 하지만 그의 속내는 로이엔탈을 도우는 척 하면서 결정적인 순간에 배신하여, 반란을 진압한 거대한 공적을 세워 영달하기 위함이었다. 브루노 폰 크납슈타인 대장은 로이엔탈이 반역을 선언하자 관사에 연금되었지만 그릴파르처의 꼬드김에 넘어가 반역을 지지하였다.

반면 민사장관 율리우스 엘스하이머는 반역에 가담하지 않겠다는 뜻을 밝혔다. 공적으로는 황제의 신하이면서 사적으로는 로이엔탈이 코르넬리우스 루츠의 죽음에 책임이 있기 때문이었다. 로이엔탈은 그의 용기를 인정하여 관사에서 나오지 않고, 적대행위를 꾀하지 않으며 해치지 안했다고 약속하며 귀가시켰다. 그리고 엘스하이머가 반역에 동참하지 않았으며, 황제에 대한 충성심은 의심의 여지가 없으니 선처를 바란다는 문서를 작성하여 엘스하이머에게 주었다. 고등참사관 욥 트뤼니히트는 애초부터 '기생충'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포섭의 대상이 아니었고, 로이엔탈은 트뤼니히트를 호출하여 바로 감옥에 가둬버렸다.

로이엔탈은 거병에 앞서 이제르론 공화정부를 회유하여 페잔에서 토벌군을 상대하는 사이 제국군 별동대가 이제르론 회랑을 통과하여 배후를 치는 사태를 피하려고 했다. 제국군 역시 이제르론 공화정부가 로이엔탈과 결탁하여 회랑을 봉쇄하고, 더 나아가 로이엔탈의 움직임에 발맞춰 제국 본토를 공격하는 사태를 우려하였다. 그러나 라인하르트는 이번 사태의 대응에 따라 양 웬리의 후계자의 기량을 가늠할 수 있겠다며 흥미로운 반응을 보였고 만약 로이엔탈에 붙는다면 먼저 로이엔탈을 박살낸 뒤 공화정부를 격멸하겠다고 냉철하게 결론내렸다.

로이엔탈은 출병에 앞서 엘 파실 혁명군의 참모장이었던 무라이 퇴역중장을 사절로 이제르론 요새에 파견하였다. 로이엔탈은 제국군의 회랑 통과를 저지해 준다면 구 동맹령의 지배권을 양도하고, 더 나아가 그들이 증오하는 욥 트뤼니히트의 신병도 넘기겠다고 약속했다. 이제르론 혁명군 사령관 율리안 민츠와 혁명군 간부들은 트뤼니히트의 신병을 넘기겠다는 제안에 흔들리는 모습을 보였지만 로이엔탈의 반란에 동참해봤자 돌아오는 건 역사의 퇴보이자 무질서의 쟁란이라는 것밖에 없다고 판단하여 로이엔탈의 제안을 거부하였다. 그리고 에르네스트 메크링거 상급대장의 함대의 회랑 통과를 허락했으며, 메크링거는 통신으로 감사를 표한 뒤 양 웬리 제독에 경의를 표하는 의미에서 이제르론 요새에 대함경례를 실시하였다.

4.4. 란테마리오에서 격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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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력 800년, 신제국력 2년 12월 노이에란트 치안군과 은하제국군은 란테마리오 성역에서 마주쳤다. 초반에는 미터마이어 함대보다 2배 이상 많았던 노이에란트 치안군이 우세했으나, 아우구스트 자무엘 바렌 함대와 슈바르츠 란첸라이터가 합류하면서 전황이 교착상태가 되었다. 미터마이어와 로이엔탈은 상대를 향해 몇 차례 공세를 시도했지만 양측 지휘관의 역량이 비슷하여 큰 효과를 거두지 못했다. 로이엔탈 군에서는 브루노 폰 크납슈타인 대장이 전사했고, 제국군 쪽에서는 레머 중장을 비롯한 4명의 장성이 전사했으며 바렌은 의수가 부서지는 부상을 입었다.

그런 상황에서 이제르론 공화정부 에르네스트 메크링거 함대의 회랑 통과를 허용하면서 전세는 제국군에게 유리해졌다. 로이엔탈은 하이네센이 제국군에게 점령당할 것을 우려하여 란테마리오 성역에서 철수했다. 제국군은 후퇴하는 치안군을 추격했고 몇 차례 교전이 벌어졌는데, 교전 도중 알프레트 그릴파르처 함대가 배신하면서 치안군은 자중지란에 빠졌다가 그대로 무너졌다. 난전 도중 날아온 포탄이 치안군 총기함 트리스탄을 중파시키고 로이엔탈에게 중상을 입혔으며, 로이엔탈은 더 이상 전투속행이 불가능해져 먼저 바라트 성계로 도주했다.

로이엔탈이 철수하자 아슬아슬하게 버티던 노이에란트 치안군은 완전히 사기가 꺾여 부오기하고 말았다. 로이엔탈을 따라 하이네센으로 돌아간 10%의 병사를 제외하고는 모두 죽거나 제국군에게 투항했으며, 얼마나 투항병이 많았던지 투항병의 물결로 제국군의 진격이 늦춰질 정도였다. 미터마이어는 폴커 악셀 폰 부로에게 투항한 병력 관리를 맡기고 자신은 내전을 올해 안에 매듭짓기 위해 로이엔탈을 추격했다. 한편 배신 때렸다가 오히려 거센 반격을 맞고 꼴사납게 된 알프레트 그릴파르처 대장도 바렌에게 항복했지만 관대한 처분은 커녕 에르네스트 메크링거의 질책만 들을 뿐이었다.

4.5. 내전의 끝

로이엔탈을 따라 하이네센으로 철수한 치안군 병력은 함정 4580척에 장병 65만 8900명 뿐이었다. 출발했을 때 병력 중 하이네센으로 귀환한 1할 남짓한 병력을 제외하고 반수는 전사, 반수는 포로 또는 투항했다. 거기에다 트리스탄 워프를 할 때마다 격렬한 진동을 일으켜 로이엔탈의 상처를 터트렸고, 이 때문에 로이엔탈은 한때 과다출혈로 의식을 잃었을 정도였다. 누가봐도 참패였고 반란의 실패는 명약관화했지만, 아직도 로이엔탈에 대한 충성심을 버리지 않은 장병 4천 명이 노이에란트 총독부 청사를 경비하고 있었다. 질서정연하게 패잔병을 지휘하여 총독부로 복귀한 로이엔탈은 민사장관 율리우스 엘스하이머에게 뒷일을 부탁했고, 동맹을 집어삼켰듯 언젠가 제국도 갉아먹을 욥 트뤼니히트를 황제를 모욕했다는 이유로 손수 총살했다.

치료를 거부하고 죽어가는 로이엔탈에게 엘프리데 폰 콜라우슈가 나타나 자신이 낳은 아기를 보여주었다. 로이엔탈은 그녀에게 미터마이어에게 아기를 맡겨달라고 부탁했지만 엘프리데는 아기를 로이엔탈의 당번병 하인리히 람베르츠에게 맡기고 홀연히 사라졌다. 로이엔탈은 총독부 청사에서 미터마이어를 기다렸지만, 끝내 미터마이어를 보지 못하고 우주력 800년 12월 16일 16시 51분 유언을 남기고 사망했다. 그로부터 두 시간 뒤 미터마이어를 비롯한 제국군이 하이네센에 착륙했으며, 일부 치안군 병력이 미터마이어 일행에게 총구를 겨누었지만 존넨펠스 중장이 호통을 쳐서 총구를 거두게 만들었다. 그리고 미터마이어 일행이 총독부 집무실에 죽어 있는 로이엔탈의 시신을 확인하는 것을 끝으로 노이에란트 전역은 막을 내렸다.

5. 결과 및 영향

내전이 끝나자 미터마이어는 남아 있는 치안군 장병들에게 카이저께 관대한 조치를 부탁드릴 테니 섣부른 짓은 하지 말라고 포고했고, 대다수의 장병들은 이에 따랐다. 그러나 사열총감 한스 에두아르트 베르겐그륀 대장은 지크프리트 키르히아이스 상급대장에 이어 또 존경하는 상관을 떠나보낸 것에 좌절하여 황제를 통렬하게 비판하고 자결했다.

미터마이어는 이미 황제로부터 전후처리를 승인받은 바에 따라 철군을 준비했다. 바렌 상급대장은 하이네센에 남아 노이에란트의 치안을 관리하게 되었으며, 미터마이어는 비텐펠트와 함께 페잔으로 귀환하여 황제에 반란 진압을 보고할 예정이었다. 이는 지나치게 많은 병력이 하이네센에 주둔했다가 민심을 진정시키는 것에 역효과를 줄 지도 모른다는 우려에 따른 조치였으나, 미터마이어 개인으로서는 친구가 죽은 별을 하루라도 빨리 벗어나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라인하르트는 샤텐부르크 공역에서 페잔으로 귀환하던 도중 로이엔탈과 트뤼니히트의 부고를 접했다. 그리고 부고를 받은 날 반란으로 박탈되었던 로이엔탈의 원수 칭호를 다시 복원시켰다.[10] 그에 따라 로이엔탈을 따라 반란을 일으키고 전사 또는 자살한 치안군 장병들의 계급도 박탈하지 않았다. 반면 라인하르트와 로이엔탈을 배신한 알프레트 그릴파르처에게는 대장 계급을 박탈하고 자결을 명했다. 그의 공범이었던 브루노 폰 크납슈타인 대장은 배신하기도 전에 전사해서 아무도 그의 배신 사실을 몰랐기에 계급 박탈을 모면했다.

한편, 이 반란을 부추긴 자들에게도 처벌이 기다리고 있었다. 니콜라스 볼텍 페잔 대리총독 모살사건으로 체포된 내무차관 겸 내국안전보장국장 하이드리히 랑 울리히 케슬러 상급대장의 심문에도 입을 열지 않았으나, 로이엔탈 원수의 부고가 들려오자 기뻐날뛰더니 자백하기 시작했다. 그의 자백에 따르면 랑은 조금의 사심도 없는 카이저의 충신으로 페잔 전 란데스헤르 아드리안 루빈스키의 음모에 말려들었을 뿐이니 루빈스키가 먼저 처벌을 받아야 하며, 나아가 군무상서 파울 폰 오베르슈타인 원수도 책임을 져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케슬러는 오베르슈타인은 불문에 붙인 뒤 루빈스키의 은거지를 급습했으나 루빈스키는 이미 랑이 체포된 직후 도망친 뒤였다. 랑은 이후 사형을 선고받아 복역하다가 호랑가시나무관 습격사건 도중 처형당했다.[11]

이제르론 공화정부는 이 내란에서 제국 정부에 협조했기 때문에 제국 정부에서도 우주력 800년이 끝날 때까지 공화정부를 토벌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들의 수호관계는 새해 벽두부터 터진 하이네센 동란으로 깨지게 된다.

지구교 아드리안 루빈스키는 로이엔탈 원수가 반란을 일으키도록 유도하는 데 성공했지만 예상과 달리 제국의 통치력은 굳건하였다. 거기에다 우르바시에 반란을 일으킨 병사들에게 지구교 관련 물품이 발견되어 지구교가 배후임이 밝혀졌지만 알프레트 그릴파르처가 일신의 영달을 위해 이 증거를 숨기면서 잠시나마 들키지 않았다. 이 계획을 짠 드 빌리에는 이 작전의 성공 이후 가짜 총대주교를 내세워 지구교단을 장악한다.

이렇게 우주를 들썩이게 만들었음에도 의외로 구 동맹령 즉 노이에란트의 주민들에게는 큰 불편이 없었는데 당초 로이엔탈이 전쟁으로 민중들에게 불편이 가지 않도록 미리 손을 쓴데다가 전략 자체도 동맹령을 기반삼아 농성을 하는 장기전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여담으로 이전 라인하르트 폰 로엔그람 2차 암살미수사건의 후일담에서 카이저인 라인하르트가 잠시 정신줄을 놓은 탓에 프리츠 요제프 비텐펠트 상급대장을 고전 발레 공연에 끌고 가는 최대의 인선 미스를 저지른 적이 있었는데 이를 두고 나이트하르트 뮐러" 차라리 전쟁이나 내란이 터지는 편이 낫다."는 망언을 한 적이 있었는데 하필이면 노이에란트 전역이라는 희대의 내란 중 하나가 터지면서 그때 자신이 그런 망언을 내뱉지 말았어야 했다고 후회하는 모습을 보인다.

[1] 상실한 병력의 절반은 전사, 절반은 투항자 또는 포로가 되었으며 소수의 행방불명자도 발생했다. [2] 이 발언에는 후세의 창작이라는 설도 있다. [3] 공식적인 반대 사유는 로이엔탈이 본국에서 제국군을 통괄해야 한다는 이유였다. [4] 지구교의 상징물을 지닌 병사들이 색출되었고, 실종된 기지 사령관 알프레트 알로이스 빈클러 중장이 최근 마약 중독 증상을 보였다는 군의관의 기록이 발견되었다. [5] OVA에서는 더욱 분개하여 무고한 자신이 어째서 필사적으로 무고함을 빌어야하냐며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6] 사실 당시 기준으로 아직 이 단계는 아니었으나, 라인하르트로서는 이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었고 로이엔탈도 어떤 반응이나 제스처를 취하지 않은 탓에 사실상 암묵적 인정으로 받아들여질 수밖에 없었다. [7] 그나마 라인하르트가 미터마이어와 로이엔탈의 관계를 알고 있었고 발언을 좀 잘못했다고 사람 목 날려버리는 스타일이 아니기 망정이지 골덴바움 왕조 시절이라면 로이엔탈이 아니라 미터마이어의 목이 먼저 날아갔을 것이다. [8] 물론 로이엔탈로서는 조금 억울할만한게 일단 로이엔탈은 사건의 해결을 위해 노력은 했다. 하지만 하필이면 그걸 맡은 이가 알프레트 그릴파르처였다는 것이다... 그릴파르처가 손을 써놓은 탓에 로이엔탈은 자기가 안 한 것은 맞지만 그렇다고 자기가 안 했다는 증거도 내놓을 수 없으니 도의적 책임은 있을지언정 진짜 책임을 져야 하는건 그릴파르처다. 로이엔탈의 문제는 그런 와중에서 싹싹 빌기는 커녕 반역을 시도한 것이다. [9] 라인하르트로서는 달리 생각할게 없었다. 주변에 랑에 대해서 경고하는 사람은 힐데가르트 뿐으로 루츠나 케슬러는 랑의 뒷조사를 했지만 그래서인지는 몰라도 일단은 아무 말 안 했고 다른 장군들은 랑에 대해 불만을 가지면서도 아무 말 안 했다. [10] 라인하르트는 그 이유를 이렇게 밝혔다. "로이엔탈을 총독으로 임명하였던 것은 잘못이었을지 모르나, 원수로 임명한 것은 잘못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11] 더 일찍 처형될 예정이었으나 때마침 라인하르트가 힐데가르트 폰 마린도르프와의 결혼식 때문에 잠시 미뤄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