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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쿠바 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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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 쿠바
1. 개요2. 역사적 관계
2.1. 현대 이전2.2. 20세기2.3. 21세기
3. 문화 교류4. 교통 교류5. 대사관6. 관련 문서

[clearfix]

1. 개요

스페인 쿠바에 관련된 문서이다. 스페인은 19세기 말 미국-스페인 전쟁 이전까지 쿠바를 지배하였고 쿠바는 독립 전후로 많은 스페인인들의 유입되면서 모든 면에서 스페인의 영향을 받았다.

스페인의 수많은 중남미 식민지 중에서도 현대 쿠바가 된 섬, 즉 당시 스페인 지명으론 후아나 섬은 스페인 정복도 거의 첫빠따로 가장 먼저했고, 상실한것도 19세기 끝자락에 가서야 잃었다. 따라서 다른 중남미 국가들과 비교해도 쿠바는 스페인 본토의 문화와 이민으로 엮인 사회적 영향력이 강한 편이다.

2. 역사적 관계

2.1. 현대 이전

크리스토퍼 콜럼버스가 쿠바를 발견한 이후, 스페인은 쿠바를 거점으로 삼고 중남미를 정복하기 시작했다. 스페인의 지배하에서 쿠바에 살던 타이노인들은 멸족되었다.

16세기 아즈텍 제국과 잉카 제국을 멸망시킨 에르난 코르테스 프란시스코 피사로 모두 쿠바의 스페인 식민지에 최초 거점을 두고 일을 시작했으며, 멕시코와 남미가 정복되기 전까지 쿠바는 아메리카에 있는 스페인 식민지 경영의 거점이자 정치/경제적 중심지였다. 그러나 두 지역이 개발되기 시작하면서 쿠바는 단번에 중심지 자리를 뺏기게 된다.

쿠바 총독령 누에바에스파냐로 편입되었다가, 쿠바 도독령으로 계승되었다. 쿠바는 당시 국제 상품이었던 설탕의 주 생산지였기 때문에 부유하였고 그 지리적 이점 때문에 스페인에서도 쿠바를 중요하게 생각하였다. 그러나 스페인의 식민지 정책은 쿠바 내 흑인 노예들에게 매우 가혹하였음은 물론 쿠바에 정착한 스페인인 후손들의 권리도 제한하였기 때문에 18세기 때는 잦은 반란이 일어났다.

18세기 중기가 되면 스페인 제국은 무너지기 시작했고 재정을 충당하기 위해 부유한 식민지이었던 쿠바에게 세금을 더 많이 충당하였다. 쿠바인들 역시 스페인의 통치가 점점 악회되자 스페인에서 분리 독립을 원하였으며 미국의 지원을 받은 쿠바 독립 게릴라들은 미국과의 자발적인 합방을 원하였다.[1]

1868년부터 1878년까지 벌어진 10년 전쟁으로 산혼조약을 체결하고 자치령임을 인정받는 건 성공했으나 이후에도 식민지 당국이 눈가리고 아웅식의 처사로 일관하자 결국 1895년에 쿠바 독립 전쟁이 시작되었다.[2]
1776년 미국 독립전쟁, 1804년 아이티를 시작으로 아메리카 대륙 국가들이 줄줄이 독립해 나갈 때도 푸에르토리코와 함께 최후까지 스페인 식민지로 남아 있었다. 쿠바 도독령 내 크리올 페닌술라르가 스페인으로부터 독립하는 것에 회의적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스페인은 시간이 지날 수록 통치력이 미약해지고 있었고, 미국은 독립 이후 국가적 확장이 시작되면서 일찌감치 쿠바 섬을 노리고 있었다. 쿠바의 전략적 중요성과 경제성을 일찌감치 깨달은 것이다. 게다가 쿠바는 독립세력이 스페인과 10년 전쟁을 치르고 있었다. 이후에 미국은 스페인과 전쟁에서 승리해서 쿠바를 지배했다. 이때 스페인이 본국의 함대를 쿠바와 필리핀으로 보내려고 했으나 영국이 화해를 중재하자 곧 포기하고 미국에 영토를 내줘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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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20세기

쿠바는 미국의 지배를 잠시 받다가 스페인과 공식 수교했다. 한동안은 스페인 독립 이후에도 계속 스페인으로부터 이민을 받았다. 하지만 쿠바가 혁명으로 공산주의 국가가 되자 주로 스페인계를 중심으로 한 쿠바인들 상당수가 미국으로 망명했다. 물론 쿠바인들 중에 스페인으로도 돌아간 사람도 많았다. 당시 스페인에 파시스트 정권인 프랑코 정권이 집권 중이었기 때문에 공산주의 국가인 쿠바와 사이가 굉장히 나빴을 것 같지만 그 정도는 아니었고 관계를 유지했다.[3] 물론 나빠진 건 사실이라 주쿠바 스페인 대사를 철수시키고 쿠바가 스페인 반정부 인사들을 지원하기도 했다. 하지만 미국이 쿠바에 대한 금수조치를 선언했을 때 라틴아메리카와 유럽 친미 국가들이 따랐으나 스페인은 쿠바와 교류를 계속하기로 결정하였다. 1974년엔 다시 주쿠바 스페인 대사를 배치했으며 프란시스코 프랑코가 사망하자 쿠바는 애도를 표하기도 했다. 이후 스페인이 민주화되자 어정쩡한 관계도 회복되었다.

2.3. 21세기

스페인의 영향으로 쿠바는 스페인어가 공용어이고 천주교도 퍼져 있다. 그리고 정치체제의 차이가 있고 일부 갈등이 존재하지만, 교류가 많은 편이고 양국은 이베로-아메리카 공동체, 라틴 연합에 가입되어 있다. 그리고 현대이전에 쿠바에 수많은 스페인인들이 이주했고 쿠바 혁명당시에 미국으로 쿠바출신의 스페인계 후손들이 이주하면서 스페인계 미국인의 일부로 살아가고 있다.

2018년 11월 22일에 페드로 산체스 총리는 30년만에 쿠바를 방문했고, 관계개선에 나섰다. #

2019년 11월 12일에 쿠바의 브루노 로드리게스 외무장관과 스페인의 호세프 보렐 폰넬레스 외무장관이 미겔 디아스카넬 국가 평의회 의장, 아바나 건립 500주년을 기념해서 쿠바를 방문한 스페인의 펠리페 6세 국왕의 입회하에 쿠바와 스페인간의 협력을 확대하는 합의안에 서명했다. #

2021년 7월 13일에 쿠바의 반정부시위를 취재한 스페인 기자가 쿠바 당국에 의해 체포되자 스페인측은 석방을 촉구했다. #

3. 문화 교류

쿠바는 스페인의 지배 당시, 스페인의 영향을 강하게 받았다. 스페인어는 전술했다시피 쿠바의 공용어이고 천주교도 스페인에 의해 전파되었다. 식민지 시절 쿠바의 종교는 공식적으로는 가톨릭이었지만, 쿠바인 인구 대부분은 산테리아교라고 하여 서아프리카 토속신앙과 가톨릭이 습합된 형태의 이중신앙을 믿었다. 산테리아교는 발생 배경이나 형태가 부두교와 상당부분 유사한데, 당시 스페인인들은 명목상으로 흑인 노예들을 가톨릭으로 개종시켰으나, 흑인들에게 구체적으로 성경 읽는 법이나 기독교 교리를 가르쳐준 것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천주교는 혁명 이후에 쿠바에서 탄압받았지만, 이후에는 조금씩 자유로워졌다. 다른 한편으로 스페인 가톨릭 문화와 서아프리카 요루바 문화의 퓨전이라 할 수도 있는, 한 때 쿠바인 인구 대다수가 믿던 산테리아교는 쿠바 혁명 이후 공교육 보급과 문맹률 감소 등에 힘입어 교세가 크게 위축되었다. 애초에 산테리아교는 체계적인 교리나 조직체계를 갖춘 종교가 아니라, 노예제도의 모순 하에서 생겨난 종교로 문맹률이 감소하면 필연적으로 교세가 위축될 수밖에 없었다.
쿠바에서 쓰이는 스페인어는 스페인 본토와 다른 표현이나 어휘가 쓰이는 경우가 많이 있고 발음도 스페인 본토와 다른 경우도 있다.

4. 교통 교류

양국을 잇는 항공노선이 존재한다. 스페인 항공사들이 쿠바를 잇는 항공노선으로 자주 왕래하고 있다.

5. 대사관

아바나시에 주 쿠바 스페인 대사관, 마드리드에 주 스페인 쿠바 대사관이 존재한다.

6. 관련 문서



[1] 하지만 쿠바의 혁명가인 호세 마르티는 쿠바 독립을 요구하였다. [2] 이때 쿠바 독립전쟁의 지도자로 있다가 전투 도중에 죽음을 맞이한 인물이 호세 마르티다. 현재 아바나 국제공항의 이름이기도 하다. 현재는 독립 영웅으로 평가받는다. [3] 개인적으로 프랑코와 피델 카스트로가 서로 배짱이 큰 스트롱맨이라 호감을 가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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