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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1-18 05:30:32

수헤일 알 하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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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006600><colcolor=gold> 시리아 육군 제25특수임무사단장
수헤일 알하산
سُهَيْلُ سَلْمَانَ الْحَسَنِ
파일:external/pbs.twimg.com/CPSuYGyUkAEFUXx.jpg
출생 1970년 6월 10일 ([age(1970-06-10)]세)
시리아 라타키아주 자블레
국적
[[시리아|]][[틀:국기|]][[틀:국기|]]
직업 군인
복무 시리아 육군
계급 소장

1. 개요2. 생애3. 제25특수임무사단(타이거 부대)4. 활약상
4.1. 주요 전역
4.1.1. 2013년4.1.2. 2014년4.1.3. 2015년4.1.4. 2016년4.1.5. 2017년4.1.6. 2018년4.1.7. 2019년4.1.8. 2020년
5. 매체에서의 등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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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시리아 군인으로 " 타이거 대령"이라는 별명으로 유명하다. 1970년 라타키아 주 해안도시인 자블레(Jableh)에서 태어났다. 라타키아 주 해안 지역은 알라위파 다수 거주 지역으로, 그 또한 알라위파이다. 시리아 내전에서 연전연승을 거두는 정부측의 훌륭한 야전 지휘관으로 알려져 있으며, 바샤르 알 아사드 대통령의 압도적인 신임을 받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2015년 12월 소장으로 진급하였다.

2. 생애

1991년 시리아 홈스 육군사관학교[1] 중위 계급으로 졸업하였고, 시리아 육군 부대의 공수 훈련을 전담하여 여기에서 성과와 두각을 드러내면서 시리아 공군 정보사령부[2]에 배치되었다. 2005~2006년간 이라크의 혼란을 틈타 증가하는 알카에다의 활동을 제압하는 임무를 수행하였으며, 시리아 내 알카에다에 직접 가입[3]하여 이라크-시리아 국경지대로 침투하는 알카에다 조직원들을 효과적으로 격퇴시키고, 시리아 알카에다 조직을 와해시킨 데 공을 세운 것으로 알려져 있다. 2011년 수헤일 알 하산 대령은 시리아 육군의 특수부대(Qawat Al-Khassa)의 지휘관으로 전보되었으며, 2013년까지 라타키아 외곽 지대에 주둔해 있었다. 이후 자신의 특수부대를 중심으로 정규전에 적합한 기동 전투단 형태로 확대 개편, 이것을 호랑이 부대(Qawat Al-Nimr)가 된다. 2013년 8월 이들리브 주의 마을인 아리하가 반군들에게 함락되자, 이에 대한 탈환 작전을 지휘하면서 처음으로 시리아 내전의 무대에 모습을 드러내었다. 이상은 아랍언론 al-Masdar NEWS에서 보도된 내용이다.

2014년 봄에 시리아 국영 SANA통신의 보도를 통해 처음으로 매스미디어에 노출되었으며, 그가 세운 전공이 알려지면서 정부군에서는 공화국수비대 제104공수여단을 이끄는 드루즈파 출신의 잇샴 자헤라딘 소장과 더불어 정부군의 영웅이자 아이콘으로 추앙받고 있다. 이후 프랑스의 르 몽드 지를 비롯한 여러 서구권 매스미디어에서도 언급되면서 유명해졌다. 롬멜이나 몽고메리와 같은 전쟁 영웅들처럼 수헤일 알 하산 소장도 자신을 드러내는 개성을 가지고 있으며, 이전에는 최상단 이미지와 같은 마른 얼굴에 스냅백 타입의 군모를 착용했지만, 2015년 이들리드 패배 이후 잠적했다가 다시 나타난 뒤부터는 살이 붙은 얼굴에 턱수염을 기르고 선글라스를 쓰기 시작했다. 참고로 턱수염에는 마스카라 떡칠을 하고 있어서 상당히 기묘하게 보인다.[4][5]

수많은 전공으로 2014년에 이미 준장 진급 인사명령이 있었지만, 야전에서 부하들과 함께 싸우고 싶다는 이유로 거절했다고 한다. 2015년 10월 4일부터 진행되어 11월 13일 종결된 알레포 동부 쿠웨이르 군사공항 구원 작전을 성공시키면서 기존의 준장 진급안까지 포함되어 11월 25일 소장으로 특진했다. 이후 소장 권한에 맞게 타이거 사단으로 확대 개편, 휘하에 타이거 여단, 치타 여단[6]을 데리고 팔미라를 탈환하였고, IS가 재점령한 사헤르 가스 유전에 대한 공세를 감행하였다. 2016년 7월에는 사막의 매 여단은 라카 원정군으로 차출되었다가 패전 이후 휴식하는 중이고, 타이거 부대는 알레포 북부 셰이크 나자르 공업도시로 이동하여 알레포 도심지 반군 지역에 대한 포위 기동을 개시했다. 7월 7일 요충지인 말라 농장을 점령하고 유일한 도심 반군 지역의 보급로인 알 카스틸로 고속도로를 차단하였으며, 2016년 9월에는 한 번 뚫렸던 알레포 남부 포위망을 복구하고 하마 지방의 반군 공세를 격퇴하는 등 종횡무진 활약했다.

지휘 스타일은 야전에서의 직접 지휘와 기동전으로 요약된다. 다른 지휘관들이 고전적인 전선 정면에서의 진퇴를 반복하는 데 비해 기동전으로 주요 고지를 공격하여 점령한 후, 적이 이를 탈환하기 위해 반격을 시도하면 바로 물러나서 적에게 고지를 내주고 포격과 공습으로 적에게 막대한 출혈을 강요한 다음 다시 재점령하는 과정을 반복하며 적을 크게 소모시켜, 결국 적이 공세 역량을 완전히 상실하게 만드는 전법을 주로 사용한다. 기동전 범주에 포함되는 모든 전법을 자유자재로 구사하며 SNS나 언론을 이용한 기만 전술에도 상당히 능하다. 가령 2016년 9월 하마 전선에 파병될 때 제4기갑사단과 타이거 부대 예비대를 투입한다고 선전하고는 본대를 이끌고 오거나, 하마 전선에 잔류한다고 선전하고는 갑자기 알레포에 나타나 공격을 지휘하는 식이다. 국제 사회의 관심을 끌기 위해 SNS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시리아 내전의 여러 세력들의 허점을 찌르는 활용법이다.

잇샴 자헤라딘과 더불어 야전에서 직접 지휘하는 만큼 사망설이 상당히 많이 뜨는 사람이기도 하다. 2015년 6월 이들리브 참패 때 경호원이 사살되고 장기간 모습을 드러내지 않으면서 사망설이나 중상설이 돌았으며, 2015년 11월 16일경 하마 지역에서 천막에 박격포탄이 떨어져 사망했다는 기사가 있었으나 그의 측근이 사망한 것으로 확인되었다. 2016년 1월 18일 쿠웨이르 군사공항에서 그가 탑승한 헬리콥터가 반군의 맨패즈에 격추당했다는 기사가 떴으나 역시 생존한 것으로 확인되었다. 이 때 건재를 과시하는 사진이 떴으나 피부가 마치 마네킹처럼 반질반질하고 굉장히 어색한 악수 포즈를 부자연스럽게 취하여 마네킹으로 조작했다는 의혹이 일었다. 2016년 알레포 동부 IS 포위 및 열병합 발전소 탈환 작전에서 모자와 선글라스를 벗고 맨얼굴로 야전 지휘를 하는 모습이 보도되면서 생존이 확인되었다. 마네킹 같은 피부 질감과 부자연스러운 포즈는 동영상에서도 그대로 드러나면서 조작이 아니라 원래 피부가 그렇다는 것으로 확인(...)되었다. 2016년 8월 남부 알레포 전역에서도 오른손을 다쳐 9월 현재까지도 붕대를 감고 다니고 있으며, 8월에는 반군의 공격으로 경호원 2명이 사살당해 타이거 소장이 죽었다는 소식이 떴으나 건재하였다. 9월 하마 전선에서도 착륙하던 시리아 정부군의 가젤 헬리콥터가 TOW 미사일에 격추당하면서 타이거 소장이 탑승한 헬리콥터라는 루머가 돌았으나, 실제로는 다른 여단장이 탑승한 것으로 밝혀지기도 했다(탑승자는 전원 사망). 실제 사망 루머는 여기에 기록된 것보다 훨씬 많다.

상단 이미지에서도 확인할 수 있지만, 건장한 남성들이 그에게 여성스럽게 복종하는 모습을 보이거나 키스하는 사진이 돌아서 게이 의혹이 있었다. 하지만 사실은 아랍 부족장의 권위를 나타내는 퍼포먼스라고 한다. 남성조차 복종시키는 강한 남성이라는 극도로 마초적인 이미지를 나타내는 것이라고 하며, 전통적인 이미지를 적극 활용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3. 제25특수임무사단(타이거 부대)[7]


시리아 특수부대의 아버지 알리 하이다르(علي حيدر) 소장은 90년대 중반 러시아 스페츠나츠의 개념을 시리아로 이식하여 제14, 15특수전 사단을 창설한다. 특수전 사단이라고 하나 흔히 생각하는 특수전 부대가 아닌 스페츠나츠와 동일한 군의 선봉에 서는 경보병 사단이었으며, 타이거 부대의 호랑이 마크는 원래 시리아 특수전사단의 부대 마크였고, 타이거 부대도 라타키아에 주둔하던 경보병 여단에 지나지 않았다. 타이거 부대라고 불린 것도 시리아 병력 편제에 대한 지식이 없는 상황에서 부대 마크만 보고 잘못 알려진 것에 가깝다. 처음에는 사령관인 수헤일 알 하산 대령의 주특기에 따라 내전 하에서 병력의 훈련을 도맡았다. 하지만 2013년 이들리브 근방 아리하 시가 함락당하면서 직접 출진하여 전투에 나섰으며, 시리아 정부군이 거의 와해된 상황에서 이러한 최정예부대의 전투력이 매우 높다는 점이 증명되어 이리저리 굴려지는(...) 처지가 되었다. 이런 여단급 정예 제대가 커다란 성과를 거두자 마찬가지로 정예병력에 실력이 검증된 대령이 지휘하는 유사 부대를 몇 개 더 창설하였는데, 그 중 유명한 것이 모하메드 알 자베르 대령이 지휘하는 사막의 매 여단(Liwa Suqur al-Sahara)이다.[8]

아사드 대통령이 자신처럼 젋고 실력으로 두각을 나타낸 데다 알라위파이기까지 한 타이거 소장을 절대적으로 신임하여 부대 편성에는 전 시리아군에서 최고의 인재만 선발할 수 있도록 재량권을 주었으며, 부대의 확장에는 아사드 대통령의 인척이자 시리아 경제 권한을 장악했다고 알려진 시리아텔(SyriaTEL)의 회장 라미 마클루프가 자금을 지원했다. 주로 4기갑사단, 11기갑사단 내에서 병력을 충원하였고, 특히 배신의 우려가 적은 알라위파 병사들을 우선 충원하였기에 병력의 질은 시리아 정부군 중에서도 최정예부대에 해당되었다.

하지만 2015년 5월 이들리브에서 패전하면서 이런 정예 기간 병력들을 상당수 잃어버렸고,[9] 이후로는 장교진 포함 1000명의 기간 병력을 중심으로 휘하에 정예 민병대들을 충원받아 지휘하는 테스크포스 형태로 작전하고 있다. 알리 타하 그룹, 리와 알 쿠드스 그룹 등을 비롯 알려진 것만 15개 민병대가 있다고 알려져 있으며, 작전 지역에 따라 해당 지역의 부족 민병대나 기독교 민병대들의 지원을 받기도 한다. 러시아 스페츠나츠 파견대가 타이거 소장의 직접 호위와 물자 보급 등의 여러 도움을 주고 있다. 이란제 통신차량이 목격된 것으로 보아 이란의 지원도 받는 모양.

2019년 이들리브 새벽 작전부터는 러시아제 군용 드론을 직접 통제하면서 상공 감시를 수행하고, 러시아 공군 및 직할 포병과 연계하여 데이터링크를 통해 정밀 타격을 수행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이를 통해 민가나 농장에 숨어들며 공습을 회피하려는 반군 증원 병력을 찾아내어 타격하는 것을 독립언론 ANNA뉴스 다큐멘터리를 통해 그대로 공개하기도 했다.[10] 한편 러시아 T-90 전차의 야간 전투 능력을 이용 다량의 야시경과 열영상 조준경을 운용하면서 낮에는 전투를 거부하고 밤에만 야간 작전으로 전투해서, 택티컬 교육을 체계적으로 받은 중앙아시아 계열 반군들의 전투력을 단숨에 무력화하고 제압하는 기상천외한 전술을 선보이기도 했다. 러시아제 열영상 조준경으로 무장한 저격부대를 운용하기도 했다.

시리아 내전이 8년째 이어지면서 수출입이 봉쇄당하고 자금이 동결된 시리아 정부가 군대의 유지 비용을 대기 어렵기 때문에, 대다수의 부대와 민병대가 정부의 묵인 하에 지역 이권에 개입하거나 검문소를 설치하고 통행료를 받는 것처럼 타이거 부대는 하마 주에서 광범위한 경제적 이권에 개입하고 있으며, 이를 통해 부대 운영 비용을 자체적으로 조달한다. 타이거 소장은 작전 능력과 더불어 하마 주에 존재하는 수많은 이익 집단들의 이권 문제를 중재하고 합의를 도출하는 데에 더욱 특별한 능력을 보여준다고 알려져 있다. 이런 이유로 반정부 측에서는 수헤일 알 하산 소장을 사실상 군벌 지도자로 보기도 한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이권을 두고 광범위한 납치, 감금, 고문에 대한 의혹이 루머 형태로 제기된다는 것이다. 사막의 매 여단과는 사이가 좋지 않다는 루머가 있는데, 2016년 3월 팔미라 해방전 당시 타이거 부대가 사막의 매 여단에 오발을 하여 사망자가 발생한 적이 있다. 이것이 단순 오발이 아니라 경제 이권을 두고 대립하던 차에 본때를 보여준 것이라는 의혹이 있었으며, 사막의 매 여단은 이에 대해 엄중하게 항의한 적이 있었다. 사막의 매 여단도 이런 체제로 부대를 유지하는 것은 동일하며, 시리아의 반군 정부군 민병대 모두가 이러한 체제로 유지비를 벌고 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초반, 일시적으로 러시아 측에게 불리한 형세로 이어지자 타이거 부대원들에게 고액 금액을 불러 용병으로 일부 투입된다는 소식이 나왔다. 애초에 타이거 부대는 부대운영비를 자급자족하는 군벌에 가까운 형태라서 돈을 벌기 위해 러시아의 용병제안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인 것으로 보인다.

4. 활약상

시리아 정부군의 장군으로서 정부측과 반정부측, 그리고 동서방 양쪽에서 온갖 과대평가와 폄하를 받고 있지만, 타이거 대령이 과거의 명장들처럼 유독 주목 받고 있는 군사적 지도자라는 건 사실이다. 어찌 보면 시리아 정부가 내전 종식을 위한 구국의 영웅을 만들어내고 있는 것으로 볼 수도 있으며, 이 경우 타이거 대령은 내전 종식 이후(어쩌면 아사드조차도 넘을 정도로) 엄청난 정치적 입지를 가지게 될 수도 있다.

최근에는 지휘관의 공훈보다는 이름 없는 일선의 하급 장병들을 띄우는 경향이 있긴 하지만, 역사상 전쟁 영웅은 쉽게 국민들의 지지를 등에 업고 정계에 진출할 수 있었다.[11] 현재 시리아 정부군은 여러 반군 그룹과 일진일퇴를 걸치며 지지부진한 상태에서, 수헤일 알하산의 부대만이 연속된 공세 작전을 통해 반군을 몰아내고 정부의 입지를 다지고 있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또한 수헤일 알 하산은 현재로써는 서방의 전범 재판에 걸릴 만한 일에 가담하거나 연루된 이력이 없기 때문에, 만일 내전이 종식되기만 한다면 그는 바샤르 알 아사드 대신 시리아 정계의 명목상 내지 실질적인 실세로 진출하게 되고 이것이 서방 강대국들, 특히 러시아와의 관계 개선을 노리는 터키 및 미국과의 협상이나 내전으로 악화된 시리아 - 서방 국가들과의 외교 관계 개선에 이득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 다만 시리아 반군측에서 반대하고 있기 때문에 그가 시리아 정부측 시민과 반군측 시민 양쪽에서 모두 받아들여지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어차피 양측은 어느 한쪽이 쓰러지기 전에는 끝나지 않을, 더 이상 뒤가 없는 싸움을 지속하고 있다.

4.1. 주요 전역

4.1.1. 2013년

4.1.2. 2014년


4.1.3. 2015년



4.1.4. 2016년







알레포 전투를 요약한 동영상

4.1.5. 2017년




4.1.6. 2018년



4.1.7. 2019년


4.1.8. 2020년

5. 매체에서의 등장

러시아산 RTS 게임인 Syrian Warfare의 DLC인 Return to Palmyra에서 그와 그의 부대가 등장한다. 확장팩 이름에서 보듯이 팔미라 탈환 전투를 다루고 있다.
[1] 일부 문서에서는 시리아 공군사관학교를 졸업했다고 알려지기도 했다. 여러 문건에서 혼란이 좀 있는 모양. [2] 공군 정보사령부는 전임 대통령 하페즈 알 아사드가 쿠데타를 일으키기 전 공군에 복무한 경력 탓에 정권이 심혈을 기울여 육성한 최고의 첩보 부대로, 여기에 들어간 것 자체가 최고의 인재라는 것을 반증한다. [3] 당시 타이거뿐만 아니라 다수의 시리아 공군정보국 요원들이 알카에다 내부에서 지하디스트로 활동하며 정보를 수집했으며, 이렇게 얻어진 정보는 미국과의 관계 개선을 꾀한 바샤르 알 아사드 대통령의 의중으로 미국에 실시간 전달되기도 했다. 개중에는 알카에다 소속으로 지하디스트 활동을 하다 2007년 이라크 산자르에서 미군에게 사살당해 정체가 드러난 정보부 요원도 있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대 알카에다 정보 활동은 나중에 시리아 반군이 이슬람 원리주의자가 주류가 되면서 아사드가 이슬람 원리주의자들과 공조하여 민주 시민 세력을 오염시켰다는 허황된 음모론의 기반이 되었다. [4] 기이한 스타일이라고 생각할 수 있으나, 사실 중동 젋은이들의 수염 스타일리쉬 기법 중 하나이다. 숱이 부족한 부분에 마스카라를 발라서 맨살 때문에 어색해 보이지 않게 하는 것. 하지만 수헤일은 턱수염 숱이 부족한 편이며, 이 때문에 턱수염을 무슨 매직을 칠해서 한 것처럼 보일 때가 많다. 그래서인지 2018년 잠시 턱수염을 밀어버리고 옛날 스타일로 돌아간 적이 있었으나, 한 달도 안 되어 다시 턱수염 마스카라 떡칠로 돌아갔다. 수헤일 8단 변신. [5] 이들리브 패배 당시 얼굴에 부상을 입었다는 루머를 지지하는 측에서는 수헤일이 잠적 기간 동안 고강도의 성형수술을 받았으며, 갑작스런 턱수염은 그 흉터를 가리기 위함이라는 말도 한다. 실제로 2015년 수헤일은 볼살이 이상할 정도로 부풀어 있었고 코 위치도 미묘하게 틀려서 대역설, 가짜설이 설득력을 얻을 정도였다. [6] 팀3, 팀6 두 개 부대로 구성된 특수전 여단으로 알려져 있다. [7] 2019년 알 마스다르 신문 기사를 통해 제25특수임무사단이라는 단대호를 받았음이 확인되었다. [8] 다만 사막의 매 여단은 민병대이며, 2018년에는 해체된 상태다. 이곳은 밀수꾼이었던 모하메드 알 자베르 예비역 대령이 자신의 조직을 모태로 창설한 탓에 병력들도 약탈 등에 큰 관심을 둔 자들이었고, 이들의 전투력 때문에 사령부도 적당한 약탈은 눈감아 주었으나, 2016년 알레포 서부 전역에서 정부에 충성하는 부촌 신 알레포 지역의 가정집에서 고급 가전제품을 털어 나오는 것이 정부측 기자에 의해 폭로되면서 커다란 비난을 받았다. 이로 인해 분노한 총참모부가 이들을 라타키아로 전환 배치했으나 이들은 반쯤 태업을 하다시피 했으며, 결국 부대가 해체 명령을 받고 사령관 모하메드 자베르는 새 사업을 알아본다는 핑계로 러시아로 추방, 잔여 병력은 시리아 해병대로 배속되었다. [9] 이들을 공격 한 부대들 중 하나는 알 누스라 전선이 있다. 이들은 알카에다와 결별한 이후 이렇다 할 패전이나 몰락을 겪지도 않았으며, 숱한 실전경험과 신식장비들을 바탕으로 제25특수임무사단 뿐만 아니라 중동 최강을 논할 때 항상 거론 되는 이란군의 정규 공수사단 까지 격파할 정도의 기량을 갖추고 있어, 서아시아 반군 중 최강으로 평가 받고 있다. 현재는 국가체제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중. ISIS와는 적대적인 관계이며 비교적 관용적인 이념을 보이고는 있으나, 이들도 어디까지나 테러리스트이며 이슬람 극단주의를 표방 하며 민주주의를 적대하는 무장단체다. [10] 시리아 정부군의 작전에 대해 민간인을 고의로 살해하고 공습한다는 선전이 서방측을 중심으로 이뤄지기 때문에, 민감한 작전 영상을 공개해서라도 반군 병력이 민가를 징발해서 기동하며 그것을 공습했다는 증거를 보여주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ANNA뉴스는 2013년부터 시리아 정부의 허가를 받아 4기갑사단 등의 전차에 액션캠을 장착하고 여러 작전 실황을 다큐로 정리해서 유튜브 채널에 업로드했는데, 서방의 선전을 반박하고자 하는 시리아 정부의 의지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11] 멀리 갈 것도 없이 세계 초강국 미국도 전직 대통령인 율리시스 그랜트 드와이트 아이젠하워가 육군 장군 출신이었고, 한때는 더글러스 맥아더 콜린 파월도 대권을 바라본 적이 있었다. 나폴레옹 전쟁의 영웅 중 한 명인 웰링턴 공작은 이후 영국의 수상이 되었으며, 프랑스에서 나폴레옹 혁명 직후 터진 전쟁의 영웅으로 부상하여 황제의 자리에 올랐고, 샤를 드 골 역시 자유 프랑스의 해방자라는 인기를 등에 업고 프랑스 제5공화국 정권 초대 대통령이 되었다. 나이지리아의 올루세군 오바산조 전 대통령과 무하마드 부하리 현 대통령 역시 비아프라 전쟁에 참전한 해군/육군 출신 장교였으며, 시리아의 옆나라인 터키의 초대 대통령이었던 무스타파 케말 역시 오스만 제국군의 장교 출신이었다. [12] NDF, 친 아사드 민병대. [13] 시리아에 거주하는 팔레스타인 난민들로 구성된 여단 조직이며, 이란 혁명수비대 산하 특수부대 알 쿠드스 여단과는 다르다. [14] 이전에는 서구권 언론에서는 시리아 정부군을 바샤르 알 아사드 대통령의 사병으로 간주하고 비하하는 의미에서 'Assad's Army'로 지칭하였으나, 팔미라 탈환 이후로 '정당한 시리아의 군대'라는 뜻으로 'Syrian army' 또는 'Syrian Arab Army'라는 정식 명칭을 쓰기 시작하는 빈도가 높아졌다. [15] 수도는 다마스쿠스였지만 인구나 경제 규모는 알레포가 훨씬 컸다. [16] 바샤르 알 아사드 대통령의 동생인 마헤르 알 아사드가 지휘하는 수도방위사단으로, 공화국수비대 개편 이전에는 공화국수비대에 속한 사단이었다. 최신 장비와 최정예 병력을 보급받아 막강한 전투력을 자랑하였으며, 민주화 운동과 내전 시기 무력 진압의 최선봉에 서서 반군을 압살하고 특히 2012년 7월 반군의 다마스쿠스 대공세에서 미친 대격전을 벌여 수도를 회복한 전적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장기간의 전투와 특히 남부 다라 지방의 전투에서 손실이 막심하여 괴멸되기도 했으며, 현재는 시가전에 보다 적합한 보병과 장갑차 위주의 기계화사단으로 재편되어 있다. [17] 타이거 부대측은 고장이 발생하여 작전에 막대한 지장을 줄 지경이 되자 어쩔 수 없이 유기하였다고 한다. 이 전차는 이슬람 전선 휘하의 파벌인 "누르 알 딘 알 젠키 운동"에서 노획했다가 알 카에다 소속 알 누스라 전선에 T-72와 돈을 받고 팔아넘겼다. [18] 전 화력을 투사하여 200여 명 사살이라는 것은 상당히 없어보이지만, 시리아 내전은 병력의 숫자가 적고 거리 대비 병력 밀도가 낮아 대규모 전역에서도 60명이 사망하면 심각한 참패에 해당된다. 그런데 하루만에 200명을 사살했다는 것 자체가 엄청난 대승/대패에 해당된다고 보면 된다. [19] 이브라힘 유세프는 1979년 알레포 남부의 알 라무시 포병학교에서 수니파의 봉기를 외치며 생도 83명을 학살한 무슬림 형제단 출신 테러 살인마이다. 알레포 도심에 포위된 반군 조직 누르 알딘 알 젠키 운동의 사령관이 하필 이 이브라힘 유세프의 아들인 야세르 유세프이다. 이슬람 과격파에게는 매우 상징이 큰 이름이다. 남부 알레포 공세를 이브라힘 유세프 작전으로 명명한 것은 4차 공세 때부터였다. [20] 상당히 어이없는 실책을 저질렀다. 알레포 전선에서의 방어시설 구축을 소홀히 하여 알 라무시 육군포병학교에서 방어진지라곤 정문의 일부 병력과 기지를 감싼 벽돌벽이 전부로, 벽돌벽을 무너트리고 돌입하자 사실상 무주공산 상태여서 불과 수십 명의 반군에게 돌입을 허용했고, 기관총좌 하나도 만들어놓지 않았다고 한다. 전투 초반 알 히크마 학교에 자폭차량 돌입을 허용한 것도 같은 실책 때문이라고 한다. [21] 이들은 터키군의 지원 하에 터키 영토를 통해 빙 돌아오는 수법을 쓴다. [22] 시리아 내전이 시작된 후 반군이 알레포에서 처음으로 점령한 곳이다. [23] 4년에 걸쳐 알레포를 장악했던 반군이 이토록 쉽게 붕괴된 이유는, 결국 포위망을 뚫지 못하고 장기간 반군 병력을 만 명 가까이 손실했으며, 무엇보다 식량이 떨어졌고, 또 시리아 내전 특성상 소수의 병력이 대규모의 화력을 투사하여 전투하는 방식인데 보급을 받지 못하여 화력을 이용한 방어가 불가능해진 것이 이유이다. 전선에는 최대한의 물자와 병력을 내보내 방어하지만 선이 한 곳이라도 뚫리면 중심을 방어할 능력이 없어져 크게 무너지는 것. [24] 알 라이 지역 자체는 유프라테스 방패에 탈환되었다. [25] 정확히는 외곽 지역으로, 일명 서부 지역, 병원 지역으로 불리는 곳이다. 터키군 14명이 하루만에 여기서 사망하는 참패를 겪기도 했다. [26] 난관인 타데프 시를 눈앞에 두고 있었지만, 데이르 하페르 공세를 진행하면서 바로 점령하지 않았다. [27] 터키 에르도안 정부는 알 밥을 거쳐 데이르 하페르를 지나 IS 수도 라카를 점령하고, 데이르에르조르까지 점령하여 유프라테스 강 유역을 모조리 영유하겠다는 황당무계한 계획을 발표하였다. 타이거 부대의 기동은 복잡한 정치적 협상과 더불어 터키의 유프라테스 작전군의 기동을 차단하기 위한 포석에 해당된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28] 하지만 시리아 인권관측소(SOHR)의 보도에 따르면 협상을 거부한 IS 대원들이 알 밥 시내의 반정도에 흩어져 숨어있기 때문에 안정화에는 좀 더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29] AFP 발표에 따름. 시리아 친정부 언론측에서는 ISIS 잔당이 잔존하는 전황도를 공개하였으며, 포위망 내부의 40여 개 마을은 7월 5일 완전히 점령하였다고 발표되었다. [30] 알 누스라 전선 시절부터의 사령관인 아부 무함마드 알 줄라니는 그 자신이 이라크 알 카에다 생활을 오래 해왔음에도 시리아 토종 단체인 알 누스라가 알 카에다에 충성을 맹세했다는 이유만으로 경원시되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 무엇보다 다른 반군들이 터키나 미국의 지원을 받는데 가장 뛰어난 전투력을 갖춘 자신들이 지원에서 밀려난다는 것도 마음에 들어하지 않았다. 그래서 알 카에다 물을 빼고 토종 이슬람 반군으로 이미지 변신을 꾀하고, 내부 알 카에다 세력들을 설득하여 이뤄낸 것이 2016년 7월 알 카에다 탈퇴 및 파타 알 샴 전선으로의 단체명 변경이었다. 하지만 이 노력에도 불구하고 알 카에다 색채를 빼지 못했으며, 2017년 1월 이들리브 이슬람 반군 간의 헤게모니 쟁탈전 때 아이러니하게도 알 카에다 정체성 때문에 아흐라르 알 샴을 비롯한 여러 이슬람 반군에서 인재들이 몰려오기도 했다. 하지만 2017년 1차 하마 전역 이후 계속된 패배 끝에 결국 타 반군과의 화해를 방해한다는 이유로 친 알 카에다 인사를 체포했으나, 내부 반발이 너무 심해서 도로 석방하였다. 하지만 이 사건 이후 알 카에다 계열은 타흐리르 알 샴을 탈퇴하고 자이쉬 알 바디야, 준드 알 말라힘이라는 단체를 따로 만들었으며, 이들은 알 카에다로부터 시리아 공식 지부로 인정받았다. 타흐리르 알 샴은 이런 좌충우돌 끝에 터키와의 협력을 비로소 가능케 할 수 있었던 것이었다. [31] 하지만 반군이 철로를 죄다 뜯어서 터키에 고철로 팔아버리는 바람에 당장 열차 수송이 재개되는 것이 불가능하게 되었다(...) [32] 2월 9일자 지도이기는 하나 최후 전황과 차이가 없다. [33] 자이쉬 알 이슬람의 작전 때문만은 아니었다. 당시 이들리브에서 5000명의 병력을 잃고 IS에게 돈줄인 유전지대를 모조리 빼앗기고 탄약 재고량도 한계를 보이면서 정부는 한계에 다다르고 있었다. 이 절망적인 상황은 러시아의 참전으로 비로소 해소된다. 자이쉬 알 이슬람의 선전은 정부의 위기에 잘 편승한 것이 크다. [34] 이때 칸 셰이쿤 지역을 거점으로 삼던 반군 조직 자이쉬 알 이자는 2000여 명의 조직원을 보유하고 있었으나 친정부 SNS에 의해 대다수가 사망하고 500여 명밖에 남지 않았고 결국 해체를 결정했다는 이야기가 있었으나, 실제로는 대부분의 병력을 온존하고 탈출에 성공했다는 반군측의 주장도 있었다. 하지만 이후 11월부터 벌어진 정부군의 마라트 알 누만 공세에서 아무런 역할을 하지 못한 것이나, 이들리브 새벽 작전에서 정부군에 대항해 여러 작전에 참여해 손실을 입은 것을 돌아보면 해체하지 않은 건 확실하나 상당한 손실을 입은 것은 분명해 보인다. [35] 이 때 현장에서 취재하는 친정부 독립언론 ANNA뉴스에 의해 한국인 주민등록증이 발견되면서 한국인이 타흐리르 알 샴에 가입한 것이냐는 충격이 확산되었다가, 대한민국 외교부의 발표로 10년 전 분실된 신분증일 뿐 당사자는 지금도 잘 살고 있다는 확인이 이뤄지면서 짧은 해프닝으로 끝나게 되었다. [36] 터키 지원 반군의 한 달 월급은 300달러, 한국 돈으로 30만원 정도다. 인터뷰에 응한 리비아 파견 반군은 거액의 월급을 거론하며 "리비아가 좋다"(...)는 발언을 하기도 했다. 대의를 따르는 의용군이 아닌 용병화된 반군의 실체를 잘 보여주는 사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