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의 관현악단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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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시립교향악단 | |
창단 | 1982년 |
공연장 | 수원SK아트리움 |
상임 지휘자 | 최희준 |
음악감독 | 최희준 |
홈페이지 |
한자: 水原市立交響樂團
영어: Suwon Philharmonic Orchest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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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한국의 수원시를 본거지로 하는 관현악단.2. 연혁
1982년에 19명의 상근 단원과 29명의 비상근 단원을 합친 48명 규모의 악단으로 출발했고, 첫 연주회는 그 해 5월에 초대 상임 지휘자로 부임한 송태옥이 이끌었다. 송태옥은 고전에서 초기 낭만에 이르는 기본 연주곡들을 중심으로 악단을 조련했고, 악단의 상근 단원 비율을 조금씩 높여 상설 관현악단의 기틀을 다졌다. 동시에 수원 외에 안성시, 의정부시, 성남시 등 경기도 내의 다른 도시들에서도 비정기적으로 공연하면서 도내 유력 관현악단으로 부각되기도 했다.송태옥이 퇴임한 뒤에는 대전시립교향악단을 창단하고 초대 상임 지휘자를 역임한 정두영이 부임했고, 이 시기 부터는 서울이나 부산 등 대도시에서 초청 공연을 가지고 청소년 음악회나 협주곡의 밤 등 여러 기획 공연이 활성화되기 시작했다. 하지만 정두영은 자신이 재직 중이던 대전침례신학대학교에서 상임 지휘자 겸직 활동을 좋게 보지 않았기 때문인지 1989년에 물러났고, 후임으로 재미교포 지휘자인 김몽필이 영입되었다.
김몽필은 취임 직후 오디션을 통해 단원들을 추가 모집하고 서울에 새로 지어진 예술의 전당 콘서트홀의 개관 공연에 초청되어 공연하기도 했지만, 몇 개월 지나지 않아 단원들과의 불화로 인해 1년도 채우지 못하고 사임하고 말았다. 악단 측에서는 급히 전임 상임 지휘자였던 정두영을 재초빙했지만, 정두영도 1990년 한 해만 활동하고 다시 대전시향으로 이임했다. 1991년에는 상임 지휘자 없이 객원 체제로 운영되었다.
창단 10주년인 1992년 금난새가 제4대 상임 지휘자로 취임하면서 수원시향은 전환기를 맞이 하게 되었다. 금난새는 오랜기간 KBS 교향악단의 전임지휘자직에 있었는데 KBS가 계속 상임지휘자 임명을 미루자 결국 KBS와 결별하고 수원시향으로 옮겨가는 것을 택했다. 대중적인 인지도를 가지고 있던 금난새를 영입하면서 존재감 없었던 수원시향이 인지도를 크게 높이는 계기가 되었고 아울러 단원 충원 등 악단의 기량 향상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금난새는 대중 친화적인 이미지로 부임 초기부터 많은 기대를 모았고, 콘서트 형식의 오페라 공연이나 모차르트의 바이올린 협주곡 다섯 곡과 베토벤의 피아노 협주곡 다섯 곡을 여섯 시간에 걸쳐 공연하는 마라톤 콘서트, 야외 음악회, 시의 경제 활동에서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삼성그룹 계열사의 후원으로 진행되는 특별 음악회 등의 독특한 기획 공연을 펼쳐 화제가 되었다.
하지만 금난새도 1990년대 후반 들어 단원들과 심한 불화를 겪기 시작했고, 수원시청 측에서도 금난새가 계약 외의 외부 활동에 지나치게 치중하고 공금 유용 혐의도 있다는 부정적인 여론이 나오자 1999년에 사퇴했다. 이후 약 2년 동안은 역시 상임 지휘자 공석 상태로 활동했고, 2001년에 창단 초기 때부터 정기적으로 악단을 객원 지휘한 박은성이 부임했다.
박은성은 엄격한 연습을 통해 해이해진 합주력을 다잡는 동시에 독일계 낭만주의 레퍼토리의 연주력 강화에 힘썼고, 특히 악단 악장이자 한국에서 보기 드문 톤마이스터[1] 과정을 수료한 정남일의 도움으로 여러 장의 음반을 만들기도 했다.
2007년에 박은성이 코리안 심포니 오케스트라로 옮겨간 뒤에는 이듬해 피아니스트 김대진이 제6대 상임 지휘자로 부임하였는데 당시 김대진은 지휘자로서는 경력이 일천하였기 때문에 우려와 비판을 받기도 했다. 2012년 악단이 창단 30주년을 맞았고, 창단 기념 전국 순회 공연이 진행되었다. 이후 김대진은 9년간 재임하다가 2017년 5월 사임하여 현재 상임지휘자 자리가 공석인 상황이다.
2019년 전주시립교향악단의 상임 지휘자 였던 최희준이 상임지휘자 및 음악감독으로 부임하였다.
3. 역대 상임 지휘자
- 송태옥 (재임 기간 1982-1985)
- 정두영 (재임 기간 1986-1989, 1990)
- 김몽필 (재임 기간 1989)
- 금난새 (재임 기간 1992-1999)
- 박은성 (재임 기간 2001-2007)
- 김대진 (재임 기간 2008-2017)
- 최희준 (재임 기간 2019-)
부지휘자로는 지휘자 강석희, 정주영 등이 거쳐갔고, 2019년부터 숙명여대, 빈 국립음대를 졸업한 신은혜가 부지휘자로 활동하고 있다.
4. 특징
부천 필하모닉 오케스트라나 경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같은 도내 경쟁 악단들이 많이 생긴 탓에 초기 만큼의 독보적인 위치는 아니지만, 여전히 수도권 지역에서는 지명도가 매우 높은 관현악단 중 하나로 손꼽히고 있다. 다만 1980년대 후반과 1990년대 후반에 지휘자와 악단 혹은 시청과 관계가 악화되어 지휘자들이 불명예 퇴진하거나 급히 교체되는 등의 흑역사가 있었고, 이 때문에 악단 이미지가 좀 안좋아지기도 했다.일단 박은성 재임기 부터는 지휘자와 관련된 잡음은 덜한 편이며, 특히 그 동안 비교적 소홀히 했던 음반 녹음 등의 분야에 적극적으로 진출하는 모습을 보여주면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2004년에 시작한 브루크너의 교향곡 연주는 비록 박은성이 코심에 가면서 중단되었지만, 분당요한성당에서 스튜디오 녹음한 4번을 비롯해 교향악축제의 실황인 6번과 8번까지 세 곡의 음반을 내놓는 등 한국 관현악단으로서는 상당히 부담스러운 후기 낭만 레퍼토리를 적극적으로 다루는 모습을 보여주었다.[2][3]
박은성 후임으로 들어온 김대진은 부임 당시만 해도 주로 피아니스트로 유명한 인물이었고 지휘 쪽에서는 뉴비였기 때문에 다소 비판적인 여론도 있었지만, 이후에도 큰 잡음 없이 계속 투잡을 뛰고 있는 중이다. 부임 초기부터 베토벤 교향곡 전곡 연주회를 개최했는데, 이 때 실황도 정남일에 의해 녹음되어 음반으로 발매될 예정이었지만, 정남일이 교통사고로 급서하였고, 그 과정에서 발생한 차량 화재로 마스터 음원이 저장된 노트북이 손상되어 무산되었다.
대신 2011년에 2번과 5번 두 곡을 고양 아람누리 아람극장에서 스튜디오 녹음했고, 소니 뮤직 엔터테인먼트 한국 지사에서 악단 최초의 상업용 음반으로 출반했다. 비교적 진중한 템포를 취하던 박은성과 달리 시대연주의 영향을 받아 전체적으로 템포가 빠르고 날렵한 인상의 해석을 보여주고 있어서 화제가 되기도 했다. 2013년에는 베토벤 교향곡 전곡 연주회에 이어 차이콥스키의 번호 붙은 교향곡 전곡(1~6번)의 연주회를 수원과 서울( 예술의 전당 기획 연주회)에서 개최했는데, 서울 공연 실황과 공연 직전 리허설을 편집해 2014년 2월에 소니 뮤직 엔터테인먼트 한국 지사에서 CD 다섯 장짜리 세트로 발매하면서 한국 관현악단 최초로 차이콥스키 교향곡 전곡 녹음 기록을 세웠다. 이후에도 매년 한 작곡가를 선정해서 교향곡 전곡 연주회로 꾸미는 전통을 이어가고 있다. 2015년에는 본거지 SK아트리움에서 진행한 시벨리우스의 교향곡 전곡 연주회의 실황과 무대 리허설을 녹음/편집해 이듬해에 마찬가지로 소니 한국 지사에서 CD 네 장의 세트 음반으로 발매하면서 한국 관현악단 최초로 시벨리우스 교향곡 전곡 녹음 기록을 세웠다.[4] 2014년에는 리하르트 슈트라우스[5], 2015년은 장 시벨리우스였고, 2016년부터 구스타프 말러[6]를 몇년에 걸쳐 할 예정이다.
해외 공연도 금난새와 박은성 재임기에 부정기적으로 개최하기 시작했는데, 1995년 3월에 행한 미국 순회 공연이 첫 번째로 기록되고 있다. 같은 해 10~11월에는 영국과 스페인에서도 공연했고, 태국과 일본, 인도네시아, 대만 등 여타 아시아 국가들에서도 연주회를 개최한 바 있다. 2003년 10월에는 아시아 지역 관현악단들이 한데 모여 연주하는 음악제인 아시아 오케스트라 위크에 한국 대표로 참가해 오사카에서 공연하기도 했고, 2004년 5월에는 독일의 에켈스하우젠(Eckelshausen) 음악제 참가를 겸해 프랑크푸르트와 마인츠 등지에서 순회 공연을 개최했다. 김대진도 2009년에 악단을 이끌고 뉴욕의 카네기홀에서 공연하고 2014년 2월에는 빈과 부다페스트, 프라하, 뮌헨 네 개 도시 순회 공연을 개최하는 등, 지방 시향으로서는 상당히 다양한 해외 공연 경력을 갖고 있다.
주요 공연장은 초기에 수원시민회관을 사용하고 있었지만, 관현악 공연에 적합하지 않은 규모와 음향 상태 때문에 경기도문화의전당이 완공되면서 해당 공연장의 행복한대극장을 주요 공연장으로 삼았다. 이외에도 소규모 공연의 경우 청소년문화센터 온누리아트홀도 대관해 사용하고 있다. 다만 두 공연장 모두 악단 상주 공연장은 아니었고, 사무실과 연습실 등 행정 시설은 수원제1야외음악당 건물을 사용했다. 합창이 붙는 작품의 공연 때는 같은 시립예술단 소속인 수원시립합창단과 자주 협연하고 있다.
2013년 12월 수원시립합창단과 함께 장안구 정자동의 옛 선경인더스트리 공장 부지에 아파트 건축을 위한 허가를 받으며 수원시에 기부채납을 조건으로 건축한 SK아트리움으로 상주 공연장과 행정 부서를 모두 옮겼다. 경기도문화의전당은 아무래도 수원시 소관이 아닌 경기도 소관이다 보니 경기 필 등 도립 예술 단체들과 공연 일정을 공유할 경우 이래저래 문제가 되기 때문이기도 했고, 정기적인 공연 무대로 사용하기 어려운 야외 공연장을 상주 시설로 삼는 것에 대한 불편과 불만 사항도 꾸준히 제기되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그래서 애초에 건축과정에서부터 악단 측에서 음향이나 공간 배치 등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도록 조치해서 다목적 공연장 치고는 음향 상태가 꽤 괜찮은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그리고 2014년 3월에 SK아트리움이 공식 개관하자 거의 모든 공연을 이 곳에서 개최하고 있다.
[1]
독일어로 Tonmeister. 녹음 작업 때 소리의 전체적인 균형을 맞춰주는 녹음 엔지니어를 뜻한다. 그때문에 대부분의 바이올리니트스들은 음대 관현악과 교수로 재직하는 것과 달리 그는 음대가 없는
동아방송예술대학교에서 음향제작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었다.
[2]
다만 정남일이 제작한 게누인(Genuin) 레이블의 저 음반들은 시중에 유통되고 있지는 못하고 있다. 관련 법규 문제 때문이라고 하는데, 수원시립예술단 유료 회원들에게 가입 특전 비매품 정도로만 제공되고 있다.
[3]
2007년 11월, 교향곡 5번 공연에서는 어떤 사정이 있었는지 3악장 스케르초 이후의 트리오를 하지 않았다.
[4]
사실 1~7번 완주는 2008~10년에
제주도립교향악단이 당시 상임 지휘자 이동호의 지휘로 한 것이 최초였지만, 녹음은 하지 않아서 전곡 녹음 기록으로는 한국 최초가 되었다.
[5]
슈트라우스가 교향곡을 거의 작곡하지는 않았고, 주요 작품이 교향시이므로 엄밀히 따지면 교향곡 전곡 연주는 아니었다. 하지만 하반기에 열린 네 번의 정기연주회 때 모든 연주곡을 슈트라우스로만 채웠으므로 실제로는 전곡 연주와 별반 차이는 없었다.
[6]
다만 말러 시리즈를 바로 시작하지는 않고, 10월 13일에 말러 교향곡 1번으로 스타트를 끊을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