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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9-18 14:12:01

상국

상방에서 넘어옴
1. 개요2. 역사3. 목록
3.1. 춘추전국시대3.2. 한대 이후

1. 개요

相國

전근대에 재상, 집정 대신의 지위 또는 그 지위에 있는 사람을 가리키는 미칭이다.

원래 고대 중국 관료제에서 신하의 신분으로 올라갈 수 있는 최고의 벼슬이었다. 승상과 상국을 따로 두기도 해서 재상과 항상 동의어는 아니다.

2. 역사

본래 상방(相邦)이라는 이름으로 전국시대 진나라 등의 나라에 있었던 관직이다. 한고제 유방(劉邦)이 황제가 되면서 방(邦)을 피휘하여 상국으로 개칭된다. 황제의 옆에서도 을 들고 무장을 할 수 있었다고 한다. 소하, 조참, 여산 이후로 거의 영구결번 취급으로 변하면서 지위를 얻은 사례가 드물다. 한나라 이후에 금기는 없어졌고 명예직인 건 여전했지만, 개국공신 가운데서도 필두가 되거나 개국왕이 될 정도로 커다란 공적이나 권력이 있어야만 얻을 수 있다는 상징성은 여전했다.

정사 삼국지에서는 동탁 헌제를 무력으로 위협하여 이 지위를 얻어냈다. 사마소 사마염도 이 자리를 거쳤는데 역시 권신으로서 황제를 무력으로 위협하여 얻어낸 지위다. 그래서 황제가 확실하게 자의로 임명한 상국은 사실상 소하, 조참, 제갈량,[1] 왕도 정도다. 이들 모두 이의를 제기할 수 없는, 개국공신 가운데 으뜸이었다는 공통점이 있다.

승상은 본래 상국(상방)의 차관 정도의 지위였으나,[2] 상국의 권위가 너무 높아 상국을 임명하지 않고 승상이 권한을 대행하면서 실질적으로 승상=상국이 되었다고 본다. 후한 말기와 위진남북조시대에는 권력자가 난립하여 상국 임명이 남발되었다. 이후 실질적인 벼슬의 의미는 상실하고 단순히 재상을 가리키는 미칭이 되었다. 왕조 교체기에 찬탈의 사전 단계로써나 국가 체제가 정립되지 않은 상태에서 벼슬의 이름으로 쓰이는 경우도 있었지만 드물었고, 모두 일시적인 것이었다.

실제로 상국이 된 인물들의 면면을 살펴보면 단순한 실세를 넘어선 사실상의 황제 대행으로, 근현대 대통령제 국가의 대통령 권한대행이나 실세 국무총리 정도로 볼 수 있다. 의원내각제 이원집정부제 국가로 비교하면 다수당의 총리라고도 할 수 있다. 다만, 현대 사회와 다르게 전제군주제 시절에는 상국의 인사권과 행정권에도 미치는 영향도 컸을테니 더더욱 실권이 강하다고 할 수 있다.

앞뒤를 뒤집으면 국상(國相)이 되며, 이는 군국제 실시 지역의 각 제후국의 총리였다. 하지만 실제로는 군현제 실시 지역의 태수와 다를 바 없었다. 오초칠국의 난 이후 상(相)으로 격하되었다.

한국사를 통틀어서 상국이라는 이름의 직명은 따로 없었다. 대신 상국을 지칭하는 의미로 고구려 초기 국상과 말기의 대막리지, 신라 태대각간이 있었다. 고려에서는 재신(宰臣)의 미칭이었다. 이규보의 문집 이름이 《 동국이상국집》인 것도 그 때문이다. 무신정권의 최고 집권자 중 하나였던 최충헌은 은문상국(恩門相國), 최이는 청하상국(淸河相國)으로 불렸다.

일본에서는 태정대신의 별칭으로 쓰였다. 에도 시대에는 도쿠가와 이에야스처럼 쇼군이 쇼군직을 아들에게 물려주고 생전에 태정대신에 취임하거나 사후 태정대신으로 추증된 경우가 많아 쇼군의 별칭으로도 쓰였다.

3. 목록

3.1. 춘추전국시대

이 시기는 상방이다. 이 시기에는 특별한 지위가 아닌 그냥 국가의 재상을 뜻했으며, 초(楚)는 타국의 상방에 대응하는 영윤이란 지위가 따로 있었다.

3.2. 한대 이후


[1] 정사 삼국지의 저자인 진수가 제갈량을 평할 때 "제갈량은 상국이 되어..."로 시작했다. 다만 《후한서 백관지》와 《진서 직관지》에 따르면 상국이란 나라의 재상을 일컫는데, 이는 곧 승상과 같은 직위이자 다른 이름으로 보는 시각이 많다. 《계한보신찬》에는 제갈량이 선제 유비의 유명을 받아 재상이 되었다고 나오는데, 이 시기 제갈량은 이미 촉한의 승상이었으므로 명목상 내지 명예직으로 한 단계 더 윗 자리인 상국에 올랐다고 보는 시각 또한 있다. [2] 승(丞)에는 '돕는다'는 뜻이 있다. [3] 장량의 조부. [4] 장량의 부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