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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1-27 10:08:19

민족과 운명

1. 개요2. 구성
2.1. 제1부 ~ 제4부: 최현덕 편 (최덕신)2.2. 제5부, 제15부 ~ 제17부: 윤상민 편 (윤이상)2.3. 제6부 ~ 9부: 차홍기 편 (최홍희)2.4. 제10부: 홍영자 편2.5. 제11부 ~ 제13부: 리정모 편 ( 리인모)2.6. 제17부 ~ 제18부: 허정순 편 (허정숙)2.7. 제19부: 위안부 편2.8. 제20부 ~ 제24부: 귀화한 일본인 녀성 편2.9. 제25부 ~ 제34부: 로동계급 편2.10. 제35부 ~ 제41부, 제43부 ~ 제45부: 카프 작가 편2.11. 제45부 ~ 제47부, 제53부 ~ 제55부 (최현)2.12. 제48부 ~ 제58부, 제61부 ~ 제62부: 어제, 오늘 그리고 래일 편2.13. 제59부 ~ 제60부: 농민 편
3. 기타

1. 개요

북한의 다부작 영화이다.

<민족과 운명>은 1991년 5월 23일 김정일이 노래 <내 나라 제일로 좋아>[1]를 가지고 다부작 예술영화를 만들데 대하여 지시함으로써 영화제작이 시작되었다. 뿐만 아니라 김정일이 영화의 주제 및 주인공 설정, 음악까지 직접 챙겼던 영화이다. 영화 제작이 시작되며 아예 영화 준비에 대한 국가기관까지 만들어 지원했다.
노래 "내 나라 제일로 좋아"를
가지고 "다부작예술영화"
민족과 운명을 만들어야 하겠습니다.
-김정일-
이국의 들가에 피여난 꽃도
내 나라 꽃보다 곱지 못했소
돌아보면 세상은 넓고 넓어도
내 사는 내 나라 제일로 좋아
- 가요 「내나라 제일로 좋아」 중에서
민족과 운명의 모티브가 된 '내 나라 제일로 좋아'의 가사의 일부이다.

1991년부터 10부작으로 기획하여 제작이 시작되었다. 처음 제작된 영화는 최덕신을 모델로 한 최현덕 편 4부작이었다. 그러나 계속 편수가 늘어나 2002년에는 100부작 제작이 확정되었다.

그 자체가 다부작 시리즈이면서 각각의 작품 또한 여러 편으로 구성된다. 초기에는 주로 특정 인물을 주인공으로 삼아 그의 인생을 조명하는 방식이었으나, 후에 제작된 작품들은 로동계급 편이나 카프 작가 편 등과 같이 주인공이 여럿이다.

시리즈물이므로 순서대로 제작되나, 때로는 순서가 뒤바뀌기도 한다. 예를 들어 1993년 비전향 장기수인 리인모가 송환되자 그를 주제로 한 작품이 먼저 제작되기도 했다.

이 영화가 다른 북한영화들하고 다른 점은 남한인사들이 등장인물로 대거 등장한다는 것이다. 역대 대한민국 대통령 중에선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이 악역으로 등장하며 그외에도 김대중, 차지철, 김재규 등 한국근대사에서 중요한 정치인들도 나온다. 심지어 북한측이 '반체제 인사'로 취급한 카프계 작가 한설야도 등장했다.

또한 이 영화에서 대한민국이 소재인 편에서는 남한에서 쓰이는 용어들이 많이 나온다. 예를 들어 북한이나 대한민국이라는 단어를 쓴다. 당시 북한이나 대한민국이라는 단어는 북한에서 거의 쓰지 않았는데, 남한 방송에서 북한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라는 표현을 쓰지 않는 거랑 같은 이치다.[2][3] 아마도 현실성을 살리기 위해 남한에서 쓰는 용어를 쓰는 것 같다. 북한 영화가 그렇듯이 딱히 남한 말투를 고증하려 하지 않았지만, 적어도 남한 사람들이 북한의 방송에도 쓰이는 말투로 착각하는 연변 사투리나 진짜 평안도나 황해도 사투리(~네다 등)가 아닌 서울말[4]을 기반으로 한 문화어이기 때문에 엄청나게 다르진 않다.

코카콜라를 비롯한 서구 브랜드가 그대로 노출되는 몇 안 되는 북한 영화이기도 하며, 베사메 무초 등의 외국 노래나 일부 남한 노래[5]도 원어 그대로 잠깐이나마 들려준다. 이후 한동안 북한발 선전매체에서 묘사되는 남한의 모습은 이 영화로부터 영향을 많이 받았다. 바꿔 말하면 2000년대에 접어들어서도 한류 유행 이전까지 북한 주민들의 '남조선' 생활상에 대한 이해 수준은 아무리 최근으로 잡아봤자 1970년대 수준에 머물러 있었다는 이야기다. 이를 두고 이우영 등 일부 북한학 학자들은 이 작품의 제작 의의를 혹시 모를 자본주의의 침투에 대비한 예방접종으로 해석하기도 했다.

남한의 생활상을 다룬 북한산 창작물은 1950~1980년대 남한에서 일본어 학습이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관련 학원이 많이 세워져 있다는 식으로 묘사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이 작품도 예외가 아니다. 이러한 모습은 친불파의 비중이 컸던 남베트남마냥 남한 역시 ' 친일파의 영향을 많이 받은 괴뢰정권'이라는 선전선동의 일환이었다. 같은 맥락에서 이 작품에서는 박정희를 비롯한 고위 인사 앞에서 기모노를 입은 여종업원들이 부채춤 공연을 하는 등의 묘사도 나온다.

이 작품은 현재 국립중앙도서관 5층 통일부 북한자료센터에서 시청할 수 있다. 과거 우리민족끼리 유튜브 채널에서 선전용으로 업로드한 적이 있으나 현재는 우민끼 계정이 폭파되었고, 대신 다른 종북성향 혹은 그냥 북한영화 애호가로 추정되는 계정들이 유튜브에 업로드한 것이 있다. 북한 측에서 운영하는 우리민족끼리, 조선의 오늘 같은 사이트에도 올라가 있고 아예 '조선 영화'라는 사이트가 있는 것으로 보이나 한국에서는 확인하기 어렵다.

2. 구성

여러 편들이 상영금지되고 잘리는 등 정리를 끝마치고 북한이 방송상 내놓은 구성차례는 다음과 같다.
* 제1부 ~ 제4부: 최현덕 편
* 제5부 ~ 제8부: 윤상민 편
* 제9부 ~ 제10부: 차홍기 편
* 제11부 ~ 제13부: 홍영자 편
* 제14부 ~ 제16부: 리정모 편
* 제17부 ~ 제19부: 허정순 편
* 제26부 ~ 제36부: 로동계급 편
* 제46부 ~ 제51부: 최현 편
* 제52부 ~ 제60부: 어제 오늘 그리고 래일 편
* 제61부 ~ 제62부: 농민 편


농민편의 후속작으로 청년영웅편과 총련편이 계획되어 100부작 넘게 제작될 것이란 예측도 있었으나 결국 농민편이 마지막이 되었다. 출처

2.1. 제1부 ~ 제4부: 최현덕 편 (최덕신)

1992년 총 4부작으로 제작된 민족과 운명의 첫 시리즈.
인물원형은 최덕신이다. 광복군 출신으로 해방 후 육군사관학교 교장을 역임하고 중장으로 예편, 외무장관, 서독대사 등을 역임. 그러다 1967년 천도교 교령으로 있을 때 월북해서 북에서 천도교 청우당 중앙위원장을 지냈다. 영화는 최현덕이라는 인물을 통해 민족이 사상이나 정견, 이념보다 더 우선이라는 점을 형상하고 있다.
파일:민족과 운명 최현덕.png
민족과 운명에서 최현덕

특이한 점은 6.25전쟁 당시의 국군 근무 시절의 최덕신이 북한군의 공격으로 패주하는 국군을 독려하여 진지를 사수하는 등 북한 영화에서는 상상할 수도 없는 영웅적 국군상을 묘사하여 학계에서 큰 화제가 된 영화이기도 하다.[6]

최현덕 역을 맡은 배우는 최창수라는 배우로, 북한에서 김룡린, 서경섭과 함께 70~80년대 3대 남배우에 들어갔던 영화배우이다.
그의 대표작으로는 1980년대작 '월미도', '전환의 해', '한 지대장의 이야기', '림꺽정'이며 영화를 촬영할 당시에는 인민배우였다.
최현덕 편이 창작된 1992년에 로력영웅이 되었고 1995년부터 조선예술영화촬영소 배우단장을 역임했다.
2020년 2월 노환으로 사망하였고, 김정은이 2월 10일 빈소에 화환을 보냈다.

최현덕: 최창수
순녀: 김옥희
강훈: 김준식
강훈의 처: 리성심
곽대식: 김룡린
곽대식의 처: 정미숙
고모: 남궁련
차홍기: 박기주
박정희: 김윤홍
김대중: 김광일

2.2. 제5부, 제15부 ~ 제17부: 윤상민 편 (윤이상)

1992년 5부, 1993년 15부부터 17부까지 제작된 총 4부작.
윤상민은 윤이상을 모델로 한 인물이다. 음악을 통한 민족화합을 꾀했던 남한출신 해외동포 음악가가 인생의 후반기에 이르러 사회주의 조국의 품에 안겨서야 비로소 그 뜻을 이룰 수 있었다는 내용이다.
파일:민족과 운명 윤상민.png
민족과 운명에서 윤상민

윤상민 역의 서경섭은 당시 북한에서도 손에 꼽히는 남배우로, 1980년대 성공작들인 '열네번째 겨울', '보증', '자신에게 물어보라' 등에 출연해 이미 이 영화에 출연할 당시에는 인민배우였다.

2023년 4월 후반부터 다시 방영하기 시작했다.

윤상민: 서경섭
수임: 서신향
박정희: 김윤홍
육영수: 최청희

2.3. 제6부 ~ 9부: 차홍기 편 (최홍희)

1992년 제작된 편.
차홍기는 최홍희(국제태권도연맹창시자)를 모델로 한 인물이다. 국제태권도연맹 총재 차홍기가 공산주의에 대한 몰이해로 남한에 넘어가 군단장까지 역임한 뒤 군부독재자 박정희 대통령의 진상을 알아보고 남한을 떠나게 된다는 내용이다. 영화에서는 《목동가》라는 음악을 배경으로 차홍기가 캐나다로 가서 오픈카를 타고 넓은 들을 달리는 장면이 나오는데, 방영 당시 이 장면을 보고 캐나다에 동경을 가진 북한 주민들이 많았다고 한다.[7]

파일:민족과 운명 차홍기.png
영화 속 차홍기의 모습

차홍기 역을 맡은 박기주는 1966년 '최학신의 일가'라는 영화로 데뷔하여 당시엔 공훈배우였다. 이 영화에서 맡은 차홍기 역이 모두가 다 알만큼 주목을 많이 받으면서 1992년 12월 25일에 인민배우 칭호를 받았다.[8]
1995년 8월 15일 사망했고 김정일이 영전에 화환을 보냈다.

2023년 4월에 다시 방영되었다.

2.4. 제10부: 홍영자 편

파일:젊은홍영자.jpg
영화 속 홍영자

차홍기 편에서 직접 이어지는 이야기, 현재 북한의 분류로는 차홍기 편이 두 편, 홍영자 편이 세 편이다. 사실상 차홍기 편과 합쳐 5편이 하나의 스토리이다.

영화는 회상의 방식을 사용하며, 이 편에서의 홍영자는 차홍기가 조직한 국제태권도연맹을 와해시키기 위해 전두환이 한국태권도연맹 부총재의 자리를 줘서 캐나다로 파견, 홍영자는 권력과 음모의 하수인으로서 파견된 처지를 비관하고 회의감을 느낀다.

홍영자는 실존인물이 아닌 가공의 인물로서 박정희 전 대통령의 정부(情婦)로 나온다. 홍영자는 원래 야당 국회의원의 딸이었으나 정치 깡패들에 의해 두들겨맞고 결국 낙향을 하고 만다. 이 과정에서 홍영자의 부친은 독사처럼 남을 짓밟고 권력을 쥐어야만 살아남을수 있다는 마지막 말을 남기고, 홍영자는 군대에 태권도 사범으로 입대한다. 이후 박정희에 눈에 띄어 정부가 되었고 군단장이었던 차홍기를 짝사랑했지만 전편 내용에서 알수 있듯 차홍기는 한국에 환멸을 느끼고 떠나게 되고, 박정희의 정부이자 하수인으로서 권력을 누렸다.

그러나 공식 직책같은것 없이 권력을 누리던 그녀에게도 삶의 위기가 온다. 1969년 3선 개헌 이후 불만이 폭증하는 국회를 당시 중정부장인 김형욱이 총을 들이밀며 밟아뭉개버리자 여론을 의식한 박정희가 김형욱을 중정부장에서 밀어내며 결국 김형욱은 외국으로 떠나고, 이후 차홍기를 만나 당시 중앙정보부의 치부를 드러내는 기자 회견과 책까지 쓰며 반정부 활동을 진행했다.

그러자 박정희는 그를 용서하고 다시 돌아오게 한다고 홍영자와 김재규에게 지시를 하고 홍영자가 직접 데려오게 한다. 홍영자는 그의 후배를 이용하여 김형욱을 납치하려 했으나 실패하자 김형욱의 정부였고 본인의 고향 친구인 은숙을 프랑스로 유인한 다음 은숙을 미끼로 김형욱을 찾아가 파리로 가서 은숙을 만나게 해준다고 말한다.

이후 김형욱과 은숙은 즐거운 데이트를 즐겼지만 홍영자의 계획대로 김형욱은 납치된다. 물론 박정희의 재신임을 전제로 한 납치였기에 이미 홍영자는 은숙이 프랑스로 떠나기 전 "다시 김부장이 여기서 일하게 될테니 원앙꿈이나 꿔라"고 말한 상태였다.

그러나 박정희는 사실 김형욱을 처리하기 위해 지시를 내린거였고, 김형욱을 용서하고 다시 중정부장에 앉히겠다는 말로 홍영자와 김재규까지 속여서 김형욱을 다시 불러온것이었다. 이때 청와대 지하실에서 박정희의 총에 맞아 죽은 뒤 처리되는 김형욱의 모습을 보며 홍영자는 중정부장을 오랫동안 맡아 일해온 심복이 비참하게 숙청되는것을 보고 자신도 언젠간 버려질수 있다는 불안감을 느끼게 되고, 이때부터 은숙의 카페에 가서 술을 잔뜩 퍼마시고 트로트를 부르는 모습도 나온다.[9]

파일:80홍영자.jpg
전두환 시절 홍영자

그 불안대로 박정희가 자신을 버리진 않았지만, 동료처럼 함께 활동하던 김재규가 궁정동에서 박정희를 쏘아 죽이자 홍영자의 권력도 함께 종말을 맞이했다. 10·26 사건을 목도한 홍영자는 이후 낙향했으나 전두환의 부름을 받고 자신과도 손잡고 일해보자는 제안을 받는다. 그러나 그날 바로 참석한 일본 수상 환영 연회에서 전두환이 일본의 동생 노릇을 하겠다며 수상에게 형님이라고 하고 일본 노래를 부르는 모습을 보고 5공에 대한 환멸을 느꼈고, 본격적인 회의감에 빠진다.

비록 전두환의 요청으로 다시 복귀했지만, 그 권위의 차이가 심했다. 이전엔 박정희는 물론, 김형욱과 김재규도 홍영자를 믿고 일했지만, 전두환과 홍영자는 둘이 차홍기 군단에 있을때 척을 졌기 때문에 서로 믿지 못할뿐더러 부여받은 권력도 훨씬 축소된, 말 그대로 영화에서 말하듯 권력의 시녀로 전락한 모습이다.

이후 한국태권도연맹 부총재 직을 받아 차홍기를 포섭하거나 없애치우라는 임무를 받고 캐나다에 왔지만 이미 홍영자는 전두환과 서로 못믿는 사이였고, 전두환이 홍영자를 못믿어 보낸 사범들의 예상대로 그는 이미 차홍기의 품으로 돌아갈 생각을 하고 있었다. 사막 꼭대기에 앉아있는 홍영자에게 사범들은 다가가고, 그들과 결투를 벌이는 과정에서 홍영자는 크게 다치고, 차홍기가 그를 구해주면서 국제태권도연맹 부총재로 역임된다.

당시 홍영자 역을 맡은 오미란은 이 작품으로 다시 한번 인기몰이를 했다. 세련된 외모와 종전 북한에선 볼수 없었던 옷차림은 물론, 여성임에도 보스와 같은 캐릭터에 여성 관객들이 굉장한 신선함을 느낀것. 북한 영화에서는 여성 간부를 그리더라도 당연히 수령의 교시와 당정책을 생각하고 희생적으로 애쓰는 충성스럽고 미소를 띈 밝은 사람으로 그리는데, 홍영자는 이런 느낌이 아닌, 항시 차갑고 매혹적이지만 어딘가 회의감을 느끼고 번민에 휩쌓인 트레이드 마크 같은 홍영자만의 표정과 눈빛을 가졌고, 당연히 이것은 북한 매체에서 그리는 여성 간부나 캐릭터와는 거리가 멀다. 행보 또한 북한 매체에선 보기 힘든 모습. 박정희의 정부라지만 할말은 하고 주눅들지 않으며 언제나 당당하고 주도적인 분위기와 청와대를 증명서를 내밀고 들어가는 모습, 임무를 받고 외국에 나가는 모습, 데리고 다니는 남성들에게 호통도 치고 사람도 납치하는, 권력을 상징하는 행보로 치장한 여성 캐릭터이기에 이런것을 전혀 모르던 북한 주민들에게 강한 인상을 심어준것.

실제로 오미란은 촬영 당시 유럽의 패션 잡지를 보고 의상을 해입었으며 담배까지 배웠다고 하니 배우 자신도 남한의 캐릭터인 홍영자를 통해 북한에서 볼수 없는 이미지를 만들려고 노력한것을 알수 있다.

여담으로 여기서 등장하는 청와대 건물은 실제 평양 외곽에 있는 김 부자 특각 중 하나라고 한다. 즉, 여기서 촬영한 것. 이제 만나러 갑니다에 출연한 바 있는 탈북민 강철이 호위사령부 소속일 때 이 곳에서 근무했다고.

홍영자 역: 오미란
차홍기 역: 박기주
신달래 역: 김정화
정은숙 역: 리설희
박정희 역: 김윤홍
전두환 역: 리문호
리순자(이순자) 역: 김선옥
김형욱 역: 김정운
김재규 역: 리익승

2023년 4월에 다시 방영되었다.

2.5. 제11부 ~ 제13부: 리정모 편 ( 리인모)

1993년 제작된 3부작 영화.
본편의 실제 모델인 리인모[10]는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북송 비전향 장기수이다. 영화는 6.25 당시 지리산 빨치산으로 활동하다 체포되어 34년간 수감생활을 했던 비전향 장기수 이인모의 인생여정을 그리면서 93년 북송된 이후 그의 행적에 대해 김정일 위원장이 크게 치하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파일:민족과 운명 리인모.png

영화 속 리정모 역은 인민배우였던 정운모가 맡았다.

여담으로 이 편에서는 이인모가 '남조선' 감옥에서 혹독한 굶주림과 뭇매로 인해 다리가 불구가 되고 폐인이 되었고 배고픔에 쥐를 잡아먹는 장면을 담았는데, 이를 본 북한 사람들은 '아니, 감옥에서 34년 동안 복역한 사람이 멀쩡히 살아있어?'라는 반응이 대다수였다고 한다. #

2.6. 제17부 ~ 제18부: 허정순 편 (허정숙)

허정순은 허정숙을 원형으로 한 인물이다. 20년대에 독립운동에 나섰던 주인공 허정순이 올바른 영도자를 만나지 못해 곡절많은 인생을 살다가 민족의 영웅 김일성을 만나 비로소 조국도 찾고 혁명도 승리할 수 있었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1970~80년대 많은 인기를 끌었던 공훈배우 김영숙이 허정순 역으로 분해 많은 인기를 얻었다.

2.7. 제19부: 위안부 편

2.8. 제20부 ~ 제24부: 귀화한 일본인 녀성 편

본편은 '종군위안부'문제로 국제사회의 지탄을 받게 된 일본정부가 '북으로 간 일본인 처' 문제를 거론하면서 인권문제를 지적하다 도리어 국제사회의 비난을 받는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북한 영화의 정치선전예술로서의 기능을 다시 한 번 상기시키는 대목이다. 영화에서 북한은 북송자들의 인권문제와 일본인 납치문제에 대한 강경한 입장을 드러내고 있다. 1950년대 말 재일조선인 귀국운동 때 남편을 따라 함께 온 일본인 아내를 주인공으로 설정하였다.

20~22부는 북한에서 상영금지(?!)되었다고 한다. #
주인공 역할을 맡은 홍영희는 아직까지 순탄히 활동하고 있기 때문에 조연 중 누군가 숙청당한것으로 보인다.

2.9. 제25부 ~ 제34부: 로동계급 편

94년에서 95년에 걸쳐 30부가 완성되었고, 95년에 32부와 32부가 제작되었다. 천리마작업반 칭호를 받은 강선제강소의 진응원작업반을 모델로 한 본편에서는 전후 강선제강소(제철소)에는 의용군에 입대했다가 포로가 되어 수용소 생활을 경험한 진응산, 부유한 가정에서 자란 처녀 야금기사 한송옥, 일제강점기 조선제강소를 경영하던 주인의 양녀 제강소창고지기 사옥비 등 다양한 인생을 살아온 이들이 모여든다.

영화를 통해 북한당국은 노동계급의 전형적 가정을 이루고 사는 '쇠물집' 강태관네 일가와 강선의 노동자들이 모여 하나로 단합, 천리마 운동에 박차를 가하고 훌륭히 제강소를 꾸려나가는 모습을 근거로 "쇳물이 하나의 새로운 모양으로 거듭나듯이, 어떤 인생을 살아온 사람이든지 우리 당이 키운 노동계급 품에 안기면, 충신이 될 수밖에 없다"는 이른바 '쇠물철학'을 전달하고자 하였다.

무려 11부작에 걸쳐 쇠물철학과 천리마 운동에 대해 입체적으로 다뤘는데, 스토리에 혼전 임신, 죽음을 앞둔 사랑, 두명의 아내로 인한 혼란 등 긴 이야기만큼 다양한 이야기가 들어가있기 때문에 노동계급을 선전하는 목적이어도 꽤 사랑받는듯 하다.

김정일도 이 영화 제작에 굉장한 신경을 썼는지, 로동계급편 9부는 아예 김정일의 지적으로 다시 제작되었으며 영화가 마무리 되고 출연진들을 접견했고, 영화가 진행되는 시기에도 배우들의 명예 칭호가 두번이나 바뀌어있는 등[11], 상당히 거창하게 공들인 작품이다.

이 영화에서 주역을 맡은 류경애는 1986년 '위대한 품'으로 데뷔해 이 영화가 출세작이 되었다.
로동계급편에서 강옥이 역을 잘 수행해 인기를 끌고 당국의 구미에 맞는 메시지를 잘 전달해 데뷔 12년만인 1998년 공훈배우가 되었다.

또한 남자 주인공을 맡은 유원준은 80대의 나이에도 이 영화에서 크게 열연해서 로력영웅이 되었으며 1998년 6월 30일 사망해 김정일이 영전에 화환을 보냈으며 이것이 유작이 되었다.

강태관: 유원준
강옥: 류경애
진응산: 리지영
엄씨: 한계성
한송옥: 리경희
강준:
강석:
공지순:
진영도: 최광성
도당부위원장: 김룡린
직물공장 당위원장: 강여선

2.10. 제35부 ~ 제41부, 제43부 ~ 제45부: 카프 작가 편

1996년부터 1997년까지 10부작으로 창작된 편
카프 작가편에서는 이찬, 이기영, 한설야 등을 다룬다. 영화에서 주인공 이찬은 이광수의 제자로서 총애를 받으며 스승을 존경하여 반일운동을 위해 일본으로 떠난다. 그러나 카프문인들과의 접촉속에서 존경하던 이광수선생이 ' 민족개조론'을 주장하면서 친일행위를 하고 있음을 알고 그와 결별한 뒤 프롤레타리아 문학운동에 투신하게 된다는 내용이다.

홍영자편에서 달래 역으로 오미란과 열연했던 김정화가 여주인공 '경란'으로 분했고 이후 '어제 오늘 그리고 래일'편에서 주인공 차경심을 맡아 민족과 운명에서 3번이나 주연을 맡았다.

2.11. 제45부 ~ 제47부, 제53부 ~ 제55부 (최현)

1999년부터 2000년까지 총 6부작으로 제작된 편.
항일혁명 1세대인 최현의 6.25전쟁 당시의 활약을 통하여 민족의 운명을 지켜내는 혁명에서 총대의 가치와 무게가 무엇에 의하여 담보되는가 하는 사상적 내용을 형상하고 있다.

이미 차홍기편, 홍영자편에서 주연으로 활약한 오미란이 다시 한번 여주인공을 맡아했다.

2.12. 제48부 ~ 제58부, 제61부 ~ 제62부: 어제, 오늘 그리고 래일 편

2001년부터 2003년까지 총 9부작으로 제작된 편.
북한측 설명 자료에 따르면, 김일성종합대학 출신 여자동창생 3명과 그들 부부의 인생행로를 통하여 혁명적 신념문제가 조국과 민족을 위한 참된 삶을 꽃 피우는 데서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를 철학적으로 깊이 있게 보여준다.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다. 여자동창생 3명(차경심, 송숙, 분희) 중 차경심은 평양시검찰소 검사가 되고 나머지 2명은 결혼을 하는데, 분희는 농업분야 간부 집안에, 송숙은 강직한 과학 연구사 강준하에게 시집을 간다. 강준하는 주체농법을 견지할 수 있는 자급자족식 생물 비료를 개발하고, 그 성과를 담은 논문을 농업위원회에 제출하지만, 모종의 이유로 그 논문은 사라지고 그의 연구 성과는 매장된다. 강준하는 몇 년이 지나 평양시검찰소에 이 사건을 신고하고, 차경심이 담당 검사로 수사를 시작하면서, 농업위원회 부총국장이었던 분희의 남편이 이 사건에 개입되었다는 심증을 얻게 된다. 사실 분희의 남편은 윗선의 비호를 받아 외국에서 화학 비료를 들여오는 과정에서 외화(달러)를 횡령할 계획을 갖고, 강준하의 연구를 무위로 만들었던 것이다. 그런데 그 화학 비료는 북한의 토질과 맞지 않는 것이었는데, 그 윗선이 외부(정황상 미국으로 그려진다)의 사주를 받아 일부러 북한의 농업을 말아먹고 결국에는 조선로동당을 엿먹이기 위해 화학비료 도입을 밀어 붙인 것이다. 한편, 분희의 남편은 비료 수입에 적극적으로 나서 아예 무역회사 부사장으로 전직하고, 이 과정에서 김씨 정권에 충성하던 간부 집안의 가풍은 사라지고 자본주의적 삶을 추구하게 된다. 분희는 그의 남편과 집안이 반동이 되었다며 한탄하고, 그 남편의 여러 범죄를 밝히는 데 직접 나선다.

대한민국의 북한학계에서는 꽤 높이 평가하는 작품으로, 인물들의 성격이 입체적[12]이고 인물관계와 플롯이 북한 영화치고는 꽤나 탄탄하다[13]. 특히, 북한 영화에선 묘사하는 것이 금기시되던 간부 집단에 퍼져 있는 뇌물, 외화, 자본주의 문화가 여과 없이 나타나기 때문에 사회상 연구 측면에서도 중요하게 취급된다. 영상미도 뛰어난 편이다. 일각에선 서관히 사건이 이 영화의 모티프가 되었다고 보기도 한다.

2015년 기준으로 54, 55, 62편은 북한에서 시청이 금지되어 있다. 사유는 ' 역적들과 그 관련자들의 낯짝이 비쳐지는 영화'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즉 출연배우들 중 누군가가 기록말살형을 당했다는 뜻이다.

평화통일 포기와 대적선언 이후인 2024년 11월에 재방영이 시작됐다.

2.13. 제59부 ~ 제60부: 농민 편

2002년에 2부작으로 제작된 편. 식민지 상태에서 억압과 착취 속에 살던 인민들을 땅의 주인, 나라의 주인으로 내세워 준 수령의 크나큰 은덕을 언제나 잊지 않고 조국의 부강번영을 위해 헌신하는 태성할머니 일가와 옥정리 영웅관리위원장 함운장의 투쟁모습을 형상하고 있다.

3. 기타



[1] 해당 곡은 대학가 '북한 바로알기 운동' 시절이던 1992년에 건대노래패연합이 낸 동명의 음반에도 소개 차원으로 실렸다. [2] 북한이 운영했던 유튜브나 우리민족끼리의 영상이나 조선중앙tv를 봐도 알 수 있는데, 우리민족끼리나 조선중앙tv에서는 한국의 뉴스를 많이 인용한다. 물론(?) 저작권료는 내지 않는다. 인용한 남한 뉴스 화면의 자막에서 북한이나 대한민국 단어가 나오면 그 단어들 자체를 모자이크 처리했다. 북한 당국에서 이렇게 필사적으로 감추기 때문에, 일부 탈북자 중에서는 남조선과 대한민국이 다른 나라인 줄 알았던 사람들도 적지 않았다고 한다. [3] 그러나 2024년부터는 본격적으로 북한이 통일정책을 포기함으로써 '괴뢰한국' '대한민국족속' 등으로 대한민국이라는 표현이 직접적으로 언급된다. 물론 '북한' 은 아직도 금기어. [4] 북한 당국은 평양말이라고 주장하지만 거짓말이다. 이걸 남한에서 사실로 받아들이려는 정치적 주장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보니 문화어는 평양말이라 엄청 다른 것이라는 등 모순된 주장이 도는 것이다. 아직도 평양에서는 '기다' 같은 평안도 사투리를 쓰는 사람이 있고 평양 토박이 탈북자도 몇 개의 문화어가 아닌 평안도 사투리 표현을 알고 있다. 심하게는 억양마저 문화어와 차이가 큰 경우도 있다. ( 실제 문화어가 아닌 평안도 사투리를 쓰는 평양 출신 탈북자의 예시) 북한에서는 이 주장을 주민들에게 세뇌시키고 남한에서조차 이걸 믿어버리는 사람들이 있어 탈북민도 방송계에 종사했던 사람이 아니면 잘 모르는 경우도 많다. [5] 그때 그 사람 북한의 공식 매체에서 처음 공개적으로 나온 남한 노래이다. [6] 작중에서 국군 부대중 악질인 호림부대로 언급된다. 호림부대는 전쟁 이전 38선에서의 양측 충돌과정에서 남한이 북한에 침투시켰던 부대로 실제로 인민민주주의 정부 초기 북한에서 이들을 모아놓고 평양 모란봉에서 재판을 열기도 했다. [7] 이들 중 한 명은 실제로 탈북에 성공한 뒤 캐나다로 자동차 여행을 떠났다. # [8] 인민배우는 배우가 오를수 있는 최고의 칭호이다. 공훈배우보다 높다. [9] 이때 은숙은 홍영자가 이성을 놓은 모습을 보고 김형욱이 잘못된걸 직감하고 눈물을 흘린다. [10] 李仁模, 1914~2007. 1952~1959, 1961~1988년까지 도합 34년간 복역했다. [11] 공훈배우나 인민배우 칭호 수여식을 이 작품만으로 2번이나 했다고 예측할수 있다. [12] 가장 대표적으로 차경심의 양아버지인 차금석이 자신의 과거를 밝히는 데 내적 갈등을 겪는다는 점이다. 과거의 북한 매체에선 반역자는 부모자식 가릴 것 없이 처단 대상이고, 자신의 손으로 반동인 부모를 처벌하는 것은 자랑거리로 묘사된다. 하지만 이 영화에선 차금석이 자식으로서의 체면과 당(김씨부자)에 대한 충성심 사이에서 갈등을 겪고, 그것을 극복하는 과정이 그려진다. [13] 북한 영화에선 갈등이 고조되다 김씨부자와 관련된 것(명령서, 전화통화 등)이 갑툭튀하며 대단원되는 경우가 많다. 물론, 이 영화 마지막 부분에서도 '장군님의 은혜'가 나오긴 하나, 복잡한 사건을 정리해주는 역할에 그친다. 이 영화의 주요 플롯은 차경심이라는 일개 검사가 진실을 밝히고자 노력하고, 그 과정에서 지방 신문사 기자로 신분이 격하되는 시련을 겪었다가, 자력으로 극복하는 점에서 일반적인 북한 영화보다 수준이 높다고 평할 수 있다. [14] 일본 이름인 나카무라라고도 불린다 [15] 링크 [16] 작중에서 김형욱을 본인 손으로 죽이기 직전의 장면이다. [17] 출처 [18] 흥미롭게도 김재규의 10.26 사건 미국 배후 설은 남한, 그것도 좌파도 아니고 우파 일각에서도 믿고 있는 설이기도 하다. 박정희가 핵을 만들려고 미국과 대립각을 세우다 죽었다는 내용. 자세한 것은 항목을 참고하자. [19] 예시: '이대로 가면 지각인데 괜찮아?' '괜찮아. 내 뒤에는 미국이 있다.' [20] 한국에서 자주 불리기는 하지만 일제강점기 당시의 노래이다 [21] 사실 북한에서도 그때 그 사람 같은 노래는 별 문제가 안되는게 김정일, 고용희, 김정은 심수봉 팬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