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bgcolor=#ddd><colcolor=#000> 김옥희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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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 1949년 12월 2일 ([age(1949-12-02)]세) |
강원도 원산시 | |
국적 |
[[북한| ]][[틀:국기| ]][[틀:국기| ]] |
현직 | 조선예술영화촬영소 배우 |
학력 | 조선예술영화촬영소 배우양성반 |
주요 서훈 | 공훈배우, 인민배우 |
활동 | 1967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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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북한의 영화배우.1960년대 후반 등장하여 1970년대에 주요 여배우로 활약했고, 1980~90년대까지도 중년 여배우로서 북한 영화계에서 많은 활동을 한 여배우이다.
2. 생애
1976년 '대지에 뿌리내린다'에서(27세) |
1966년 조선예술영화촬영소 배우 양성반에 입학해 이듬해인 1967년 1기생으로 졸업했다.
그리고 바로 그 해에 '내가 찾은 길' 이라는 영화로 데뷔했다.
1969년작, 북한의 5대 혁명가극의 영화화인 혁명영화 '피바다'에서 광주의 첩 역할을 맡아 열연했고 이때 연출가들의 눈에 띄었다고 한다.
1971년 처녀리발사에서 첫 주인공 역을 맡았고, 1970년대부터 많은 작품에 출연하며 주요 배우로 활동했다.
1991년 '효녀' 촬영 시기에 창작인원이 모인 곳에 나타난 지역 간부가 김정화가 아닌 김옥희를 주인공으로 착각한 일도 있었다고 한다.
이후 김정일의 지시로 만들어진 다부작 예술영화 '민족과 운명' 최현덕편에서 주연을 맡으면서 1992년 민족과 운명 제작진, 출연진들에 대한 표창에서 박기주, 리익승 등과 함께 인민배우 칭호를 받았다.
3. 출연작
- 내가 찾은 길(1967)
- 피바다(1969) - 광주의 첩 역
- 처녀리발사(1970) - 김윤희 역
- 압연공들(1972) - 창옥 역
- 처녀지배인(1973) - 은심 역
- 기사들(1974)
- 우리 농장 녀기사(1975) - 선영 역
- 대지에 뿌리내린다(1976) - 영순 역
- 누리에 붙는 불(1977) - 봉임 역
- 우리 처가집문제(1980) - 김복희 역
- 열네번째 겨울(1980) - 혜신 역
- 사랑의 노래(1982) - 한설순 역
- 등대(1983) - 섬월 역
- 곧은 길(1983) - 정화 역
- 은비녀(1985) - 선금 역
- 봄날의 눈석이(1986) - 순절 역
- 어머니의 마음(1986) - 순애 역
- 한 건축가에 대한 이야기(1987) - 정훈의 부인 역
- 민족의 태양 2부(1988) - 서예순 역
- 나의 행복(1988)[1] - 리시은 역
- 심장에 남는 사람(1989) - 원숙희 역
- 효녀(1991) - 최금란 역
- 님을 위한 교향시(1991) - 전옥주 역
- 민족과 운명 최현덕편(1992) - 순녀 역
- 민족과 운명 차홍기편(1992) - 순녀 역
- 민족과 운명 허정순편(1994) - 순녀 역
- 녀인의 손(1995) - 수련 역
- 둘째딸(1998) - 최금란 역
- 법동농민(1999) - 한씨 역
- 자강도 사람들(2000) - 선희 역
4. 여담
- 김룡린과 호흡을 자주 맞추었다. 처녀지배인에서 책임비서와 지배인 사이, 봄날의 눈석이에서 부부, 어머니의 마음에서 지인, 심장에 남는 사람에선 오누이를 맡았으며 김룡린이 좌담회에서 밝힌 바에 의하면, 봄날의 눈석이 촬영 당시 관객들이 자신들의 부부 연기를 보고 처녀지배인 때의 모습을 떠올리면 어떻게 하나 하고 깊이 고민했다고 한다.
- 김정일의 처조카 이한영의 증언에 의하면 북한군 인민무력부장 오진우한테 자주 성상납을 했다고 한다. 오진우는 나이 차이가 딸뻘인 여배우과 추잡한 짓을 즐겼다고 한다. #
[1]
인민상계관작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