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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1-24 09:05:03

류중일/지도자 경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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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류중일의 지도자 경력을 정리한 문서.

2. 삼성 라이온즈 코치 시절

선수 은퇴 후 자신의 트레이드 마크였던 1번 대신 코치 시절부터는 75번(2000년~2016년)을 달았다.[1] 코치시절에는 수비와 주루 코치로 3루 코치박스를 맡았었다. 또한 김응용이 감독을 맡던 시절에는 기존 코치진 중 유일하게 김응용에게 인정받은 코치였다. 일화로 스프링 캠프에서 날씨 문제로 투수진 불펜피칭을 정시에 맞춰서 시키도록 코치들이 지시했는데 김응용이 소리를 지르며 불펜 투수들이 왜 미리 몸을 안푸냐고 화를 내자 다른 코치들이 허둥지둥대며 당장 준비시키겠다고 법석을 피우는 와중에 류중일이 혼자 김응용에게 가서 날씨 문제로 일부러 정시에 나오도록 지시했다고 이유를 설명했고 김응용 감독이 바로 화를 풀고는 대신 늦지 않게 준비시키라는 소리만 듣고 끝난 적도 있었으며, 뒤에서 설명하겠지만 김응용 감독이 수비훈련 방식을 뜯어고치라고 하자 한밤중에 김응용의 숙소에 직접 찾아서 1:1로 김응용과 말싸움을 벌인 끝에 김응용이 포기하고 류중일 감독에게 수비 훈련에 대한 전권을 맡긴 적도 있었다. 물론 류중일은 한때 유격수였던 만큼 수비코치로서 능력은 뛰어났고 그 능력을 인정받아 국가대표팀에서도 여러번 수비코치로 차출되기도 했다. 지도자 연수를 밟은 것은 아니지만 삼성 수비코치 시절 LA 다저스의 수비 교범을 구해서 직접 번역할 정도로 공부를 열심히 하는 코치였고, 그때 번역한 매뉴얼은 다른 팀에서 구해서 봤을 정도라 사실 지금은 전 구단이 보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수비코치로서 위기도 있었는데, 2009년 시즌을 앞두고 특별한 이유 없이 팀 쇄신 차원으로 2군 코치로 보직이 바뀐 적이 있었다. 이에 류중일은 자신이 인정을 못 받는다는 생각에 삼성을 떠나려 했다가 구단과 선배 코치들의 만류로 남았다. 그러다 팀이 5위로 추락하자 그 해 9월 다시 1군 코치직으로 복귀했다.

허구연 해설위원의 말에 따르면 삼성 라이온즈의 2010년대 초반 수비 시스템은 류중일이 코치시절에 만든 것이라고 한다. 앞서 말한 LA 다저스 수비교범을 기본으로 한국 사정에 맞게 변형시킨 것이다. 허구연 해설위원이 삼성 라이온즈 경기 해설을 하면 상대방이 번트시 100%, 75%, 50% 쉬프트라고 들을 수 있는데 이는 페이크 번트 앤 슬래쉬의 확률여부를 판단하여 그 상황에 맞는 번트 대비 쉬프트를 보여주는데 이는 다른 구단에는 보기 힘든 쉬프트이고 손발이 많이 맞아야 할 수 있는 쉬프트이다. 2017년 시즌 초반 이런 쉬프트 경험이 없는 김호 코치가 내야 수비 담당을 맡자 삼성의 수비가 크게 흔들렸고 류중일의 코치시절 수비를 했었던 박진만 코치가 2군에서 1군 수비코치로 와서 류중일 감독의 시스템을 다시 적용하여 수비를 안정시켰을 정도다

그 외에는 주루코치로서도 좋은 평가를 받았다. 단, 주루코치로서는 팬들간 호불호가 갈렸다. 충분히 홈으로 선수를 돌릴 법도 했는데 3루에서 멈추게 하거나, 홈에서 횡사할 게 뻔한데도 홈으로 돌리거나 하는 일이 종종 있었다. 좋은 평가를 바탕으로 대표팀의 수비, 주루코치도 여러 번 맡았다. 2009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2010 광저우 아시안 게임 대표팀 코치로도 뽑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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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한국시리즈에서 SK에 팀이 시리즈 스윕을 당할 위기에 처하자, 선동열 감독과 대조적으로 분노한 모습이 보인다.
이 사진은 감독 선임 이후 4년간 호성적을 거두면서 '진정한 삼빠 아재' '얼마나 답답했을까'등의 이야기와 함께 재평가를 받고 있다. 물론 이 때 감독 선임을 예상하진 않았겠지만, 두 사람의 모습이 묘하게 대조적이다. 이후 시리즈 스코어가 3-0이라 할지라도, 1경기만 더 지면 시리즈가 끝난다 할지라도 야구에서 지레 포기하고 저렇게 웃을 이유가 없다는 건 2013년 한국시리즈에서 류중일 감독이 다시 증명했다. 1, 2차전을 다 날리고 시리즈 스코어 3-1까지 몰렸을 때, 선발이고 불펜이고 모조리 다 집어넣어 진정한 '벌떼야구'를 실현하면서 반전을 이뤄낸 것이다. 3:0이라도, '1경기만 잡자'는 생각으로 전력을 다해 3:1을 만들면 실낱같은 희망이 생긴다. 거기서 쥐어짜서 3:2를 만들면 분위기가 달라진다. 야구는 흐름의 스포츠이므로, 5차전까지 최선을 다해 3대2를 만들 수 있다면 '야구 몰라요'가 되는 것이다.[2] 선동열은 이걸 몰랐고, 그냥 일방적으로 경기를 '던졌다'. 삼성 팬들은 준우승해서 기분이 나쁜 게 결코 아니었다.

2007년 오키나와에서 벌어진 연습경기에서 이만수 SK 와이번스 코치와 서로 얘기를 나누며 둘이 서로 우정을 나누는 것을 다시 한번 보여줬다. 부연설명을 하자면 이만수는 삼성 구단과의 사이가 껄끄러운 뿐이지 삼성 출신 옛 동료들과의 관계가 껄끄러운 건 아니었다. 같은 팀에 소속되어 있던 선후배로서 선수시절 웬만한 개인적인 원한이 없다면 새삼스러울 것도 없다. 이만수의 경우 삼성에 더 이상 감정이 없던 탓인지 김재하 단장과 악수를 나누기도 했다. 또한 삼성이 2010 올스타전 레전드 올스타를 선정했을 때에는 올드 멤버들을 초청하기도 했으며 대구시민야구장의 마지막 경기에서는 삼성이 이만수를 시포로 선정하기도 했다.[3] 이로서 과거의 악연은 사실상 청산된 셈이었다.

3. 삼성 라이온즈 감독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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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 2011 시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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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KBO 골든글러브 시상식에서

선동열 감독이 경질당하면서 후임 감독으로 선임, 2011년 1월 5일에 감독으로 취임했다. 이제 막 감독 생활을 시작하게 된 터라 많은 팬들이 걱정하였으나, 초보 감독임에도 대단한 활약을 하고 성적을 시즌 1위까지 올려 SK 와이번스 김성근 前 감독의 야신, 한화 이글스 한대화 前 감독의 야왕에 이어 '야통(야구 대통령)'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그리고 한국시리즈 우승을 달성하여 '야통왕'까지 등극하였다. 이어서 아시아 시리즈까지 제패하는 등 취임 첫 해에 그 어떤 대한민국 프로야구 팀 감독도 달성하지 못한 우승 트리플 크라운/야구을 달성하는 업적을 만들어냈다.

3.2. 2012 시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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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으로 데뷔하자마자 3관왕을 석권한 임팩트 때문에 강력한 우승 후보팀을 이끄는 감독으로 찬양받았으나, 초반에는 한동안 6~7위에서 놀 정도로 부진[4]하여 답 안 나오는 믿음의 야구, 이해할 수 없는 투수운용, 교체 & 컨디션 고려 전혀 안 한 것처럼 보일 만큼 이해하기 힘든 타순으로 팬들에게 욕을 바가지로 얻어먹었다. 돌중일, 관중일[5][6], 관中一, 관중 1 등 모욕적인 별명이 무지막지하게 늘어났었다. 또한 간디 중일, 류간디[7]로도 불렸다. 허나 2012년 여름에 삼성이 엄청난 폭발력으로 1위를 탈환하고 굳히자 이런 식의 조롱은 순식간에 사라졌다.

2012년 10월 1일 2년 연속으로 페넌트 레이스 우승을 차지하고, 11월 1일 역시 2년 연속으로 한국시리즈 우승까지 차지하면서 무능하다고 까이는 일은 거의 없어졌다.

3.3. 2013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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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WBC 대표팀 출정식에서

2012년 시즌 우승팀 감독 자격으로 2013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대한민국 국가대표 감독을 맡게 되었다. 류현진, 추신수 등이 메이저리그 팀 이적으로 적응기가 필요했던 상황이라 국대에서 빠지며 최약의 대표팀이라는 평가를 받긴 했지만, 일단은 나름대로 선수들을 강훈련시키며 대회를 준비했다.[8]

2013년 3월 2일 대만 타이중 국제야구장에서 열린 네덜란드와의 B조 본선 1라운드 경기에서 부적절한 투수운용과 미숙한 경기운영등의 이유로 충격의 0:5 영봉패를 당하면서, 감독 자질 논란에 또 불이 붙고 말았다. 결국 타이중 참사라는 이름으로 1라운드 탈락을 당하면서 실컷 욕을 먹었다.[9] 거기다가 예전 나가기 전 인터뷰를 보여주며 그 말대로 돌아오지 말라고 하고 있다. 1라운드는 올라가지 않겠나 라는 생각을 한다. 2라운드 못 올라가면 한국에 못 들어온다.

이미 대다수 야구팬들은 가루가 되도록 씹어대고 있고, 그를 옹호하는 것은 극히 일부 삼성 라이온즈 팬들 뿐이며 나머지 일부팬들도 비판과 실망했다. 네이버 스포츠의 타이중 참사 관련 기사에도 베플은 대개 류중일 감독의 책임을 강조하는 글들이다.

김재박 감독과도 비교되었다. 공교롭게도 둘 모두 유격수 출신 감독에, 소속팀을 우승으로 이끌었지만 팀빨이라는 소리를 들었으며, 국제전에서 크게 죽을 쑨 이후 평가가 급락했다. 그리고 2016년 삼성은 김재박이 2005년 전년도 우승한 현대를 7위까지 떨어지게된 상황과 비슷한 그림이 그려지고있다. 이 타이중 참사로 인해 지금까지 쌓아왔던 좋은 이미지를 다 깎아먹고 역적 소리를 듣게 되었으며[10], 결과적으로 야구팬이나 본인 모두에게 2013 WBC 국대 감독 커리어는 흑역사로 남고 말았다.[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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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국제공항으로 귀국 당시

이렇게 고개숙여 사과하는 모습을 보여서 어느 정도 까임은 덜해졌다. 그리고 양아들이라고 불릴정도로 류중일 감독이 좋아하던 김상수가 페북질을 하다가 된통 까이다 보니 류중일에게 몰리던 비난과 비판도 좀 줄어든 편이었다.

그러나 WBC 직후 박희수, 최정, 정대현, 강민호, 윤석민 같은 경쟁팀 주축 선수들의 부상 소식이 전해져 오면서 팬들은 류중일 감독을 거의 원쑤 보듯이 하는 상태.[12]

2017년 3월 6일, 고척스카이돔에서 열린 2017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A조 1라운드 경기에서 대한민국 대표팀이 대부분 마이너리거로 구성된 이스라엘팀에 2:1로 패하면서 재평가되고 있다. 2023년 3월 9일 일본 도쿄돔에서 시작된 B조 1라운드 호주전에서 대표팀이 8:7 졸전 끝 패배를 겪으면서 또 다시 한번 소환 되었다. 거기다가 이강철 감독이 2023년에 보여준 역량과 비교하면 류중일은 그나마 쉴드 쳐줄만 하다는 평이다.

3.4. 2013 시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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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 국가대표 감독 선임 방식, 원점부터 재검토라는 기사가 나왔지만 달라진 거 없이 결국 2013년 12월 KBO 이사회에서 2014 아시안 게임 국대 감독으로 류중일을 선임했다. 병역문제가 걸려있는 국제대회가 늘 그렇듯 선수선발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나왔으나 결과적으로는 우승했다.

3.5. 2014 시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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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 2015 시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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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즌 내내 탈도 많고 위기도 많았지만 KBO 리그 최초 5년 연속 페넌트레이스 우승 달성이라는 대업적을 세웠다.

그러나 한국시리즈를 앞두고 감독 인생 최대의 위기가 찾아온다.

3.7. 2016 시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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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의 삼성 선수단이 전성기 때의 모습이 아닌데다 주전 선수들을 뒷받침해줄 1.5군급 선수가 부족한 상황에 연이은 부상자 속출까지 겹치면서 어려움을 겪고 있다. 여기서 상황이 더 나아질 만한 부분도 보이지 않기 때문에[13], 팬들 사이에서 재계약 여부에 대해 논쟁이 심심찮게 붙을 정도다.[14]

6월에는 절대 제대로 된 운영을 했다고 볼 순 없지만 후반기 31승 30패를 기록하며 외국인 선수가 죄다 먹튀화되고 부상선수도 많이 속출하고 투수진이 완전히 망가진 팀 치고는 나쁘지 않은 성적을 거두기도 했다.

3.7.1. 계약 만료

9위로 떨어진 책임은 감독탓도 있지만 감독 외적인 부분이 더 크다는 의견이 많았었고 10월 14일 삼성구단을 잘 아는 야구인의 입을 빌려 재계약 유력이라는 기사가 떴다. 그러나 이후에 구단이 류감독과 재계약을 하지 않고 김한수 타격코치를 감독직에 올리면서, 감독직에서 물러나 기술고문 자격으로 잔류하게 되었다.[15]

팬들이 예상하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

3.8. 2017년

여전히 휴대폰 벨소리를 삼성 라이온즈 테마곡으로 해 놓았다는 인터뷰 기사가 났다. 팬들의 반응은 말이 필요 없을 것이다.

앞으로는 기술자문으로서 부상 방지 및 MLB NPB의 훈련 시스템을 공부하고 싶다고 한다.

2017년 1월 중순 4박 6일 일정으로 베트남으로 가서 야구 클리닉을 열고 재능기부를 했다. 마침 염경엽이 넥센 팬들을 뒤통수치고 떠났다는 발표가 나면서 삼성 팬들은 류중일에게 더 감사하고 있다. 2월 초부터 15일간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의 스프링캠프에서 단기연수를 한다. 비록 감독직에서는 물러났다지만 프런트와의 관계는 여전히 원만한지 구단에서 연수를 지원한다. 7월경 외국인 스카우트가 미국 마이너리그 선수들을 둘러볼 때도 같이 갈 계획이라고. 한편 소프트뱅크 스프링캠프에서 릭 밴덴헐크를 다시 만났다고 한다. 기술자문을 맡으면서 중간중간 라이온즈 파크에 직관오는 모습이 종종 잡힌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통합 4연패. 정규리그 5연패 감독인 만큼 기회가 곧 주어질 가능성이 높다. 당장 선동열도 국대감독으로 기회를 받았으니 2017년 10월 3일, 2018시즌 LG 트윈스의 감독으로 부임한다는 기사가 뜨면서 30년간 몸담아온 삼성 라이온즈 떠나게 되었다. 그런데 기사를 읽어보면 원래 5일 발표 예정이었던 것이 기자가 엠바고를 깬 것 같다. 이게 문제가 되는 이유는 이 기사가 발표된 날이 이승엽의 은퇴식 당일이고, 류중일이 여기에 참석하기로 되어있었기 때문이다. 자칫하면 축하받아야 할 선수에게 몰려야 될 스포트라이트가 다른 사람에게로 분산될 수 있기에 구단의 공식 발표는 나오지 않고 있다.

4. LG 트윈스 감독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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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3일 사직에서 열린 LG 트윈스의 시즌 최종전이 끝난 후, 감독 선임이 공식 발표되었다. 3년 21억원에 계약했으며, 양상문 감독은 최종전을 마친 후 단장으로 선임됐다. 이 날 이승엽의 은퇴식에 참석할 예정이었으나, 감독 선임으로 인해 불참하고 따로 만나서 인사하는 정도로 마무리하게 되었다.

LG의 2017년 상황이 팀 방어율 1위, 팀 타율 7위로 류중일 감독이 부임했던 2010년 삼성의 팀 방어율 2위 팀 타율 5위였다는 점은 비슷하다. 왕조 시기의 삼성처럼[18] 답이 없는 LG 타선을 바꿔 줄 것으로 기대된다. 그리고 팀 장타력과 홈런이 10위인 LG 타자들을 잠실구장 핸디캡을 이겨 내고 장타력까지 개선해 준다면 LG팬들은 더 바랄 것이 없을 것이다. 그러나 삼성시절에도 거포 홀대성향이 짙다는 얘기가 있으나, 삼성 재임시절 삼성의 중심타선은 최형우와 박석민 그리고 채태인이 자리를 이미 잡고 있었으며, 2군에서 올려서 쓸 거포 유망주 자체가 거의 없었다. 모상기 조영훈이 있었지만 이미 유망주라고 하기에는 나이와 2군에서 보낸 시간이 적지 않았으며, 모상기는 힘 외에는 정말 아무 툴도 없는 전형적인 2군 거포, 조영훈은 몇 년동안 기회를 주어도 발전하지 않는 타격과 부실한 1루 수비 탓에 백업 외에는 활용도가 극히 제한되던 선수였다. 결국 이승엽이 돌아오고 한동안 해메던 채태인이 부활하자 자리가 없어진 둘은 팀을 떠나게 되었다. 오히려 모상기가 1군에서 잘 맞을 때에는 기회를 준 적이 있으며, 팬들이 모두 포기했고 발도 느려 기대할 툴이 방망이밖에 없던 우동균에게 끝까지 기회를 준 것을 생각하면 적어도 거포를 홀대한 적은 없다.

이는 수비 중시 성향과 맞물려 와전된 듯 하다. 게다가 LG에는 홀대할 거포도 없다. 그리고 류중일의 성향상 수비를 중시하는 만큼, 내야수들의 수비력 향상도 기대하는 사람들이 많다. 오지환, 최재원 등 수비가 되는 선수들이 군 복무로 잠시 팀을 떠나기 때문에 이들을 대체할 유망주들의 수비력 강화가 시급해진 것도 류중일의 선임에 영향을 끼친 것으로 보인다.

여담으로 타이중 참사 이후 모 사이트에 올라왔던 드립이 5년만에 성지가 되었으며 공교롭게도 LG의 비밀번호는 저 글이 올라온 뒤 시작된 2013 시즌에 끊어졌다. LG에서의 성적 여하에 따라 삼성시절 본인의 능력으로 4연패를 달성한 명장이 될 것인지, 아니면 단순히 좋은 선수와 구단의 넉넉한 지원을 배경으로 가마만 탄 운장인지가 결정될 가능성이 높다. 김재박 때와는 또 상황이 다른 게 김재박이 LG를 맡았을 때는 금지어가 3년동안 구단을 완전히 말아먹고 구단 사상 최초의 최하위를 기록한 직후였으나 류중일이 이어받은 팀은 그래도 최근 5년간 플레이오프에 3번 진출한 경험을 가지고 있고 본인이 팀을 맡기 직전 해에도 시즌 막판까지 포스트시즌 경쟁을 했으며 허울만 좋은 스탯이라고 해도 팀 ERA 1위를 찍은 팀이다. 김재박에게는 팀이 거의 회생 불가능 수준이라 불릴 정도로 워낙 망가져 있어서 어쩔 수 없었다라고 변명의 여지도 있지만 류중일은 임기 중 최소 포스트시즌은 진출해야 그나마 본전이라도 건질 것이다.

4.1. 2018 시즌

전임 양상문과 달리 고정라인업 운용과 FA 김현수 효과를 보며 수많은 LG의 야수들이 대거 포텐을 터뜨려 전반기를 상위권에서 보냈지만 후반기 고정라인업 고집과 투수 혹사로 인한 부상자가 속출해 후반기 최악의 성적을 찍었고 그리고 그 무엇보다 같은 서울 라이벌팀 두산 베어스에게 1승 15패라는 그야말로 구단 역사상 최악의 성적으로 호구를 잡혀 8위로 몰락하며 엄청난 비판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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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 2019 시즌

지난 시즌의 부진을 딛고 팀을 포스트시즌으로 이끌었다. 타선의 파워가 작년에 비해 약해졌다는 것이 흠이지만, 투수진은 반등에 성공하였고, 수비와 주루로 공격에서의 약점도 보완하며 승차와 승률은 2013 시즌 다음으로 좋았고, 구단 역사상 최다승 2위인 79승을 달성했다.

참고로, 79승은 LG 트윈스 창단 이후 21세기 최다승이다.[19]

하지만, KIA와 삼성의 몰락과 원래 약체인 한화의 역대급 추락 그리고 15년만에 최하위를 기록한 롯데 등의 반사효과를 누리기도 하였다. 사실상 6위~10위가 시즌 시작 후 1개월만에 결정되었던 터라 운도 좀 따랐던 시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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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 2020 시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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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개 구단의 모든 감독 자리가 확정되면서 전 구단 감독 중 최고령 감독이 되었다.[20]

그리고 류중일 감독의 임기 마지막 시즌이다. LG의 마지막 우승을 이끈 이광환 감독 이후 25년 만의 LG 감독 재계약이 걸려 있으므로 이번 시즌이 가장 중요하다.[21] 게다가 전력도 우승을 노릴 만한 최강의 전력이라는 평인데, 이런 전력을 놓고도 만약 포스트시즌 진출에 실패하거나 포스트시즌을 갔다 해도 포스트시즌에서의 성적이 영 좋지 않다면 재계약을 하지 않을 가능성이 매우 높기 때문에 최소 포스트시즌이라도 진출해야 하며, 또한 포스트시즌에서는 무조건 호성적을 내야 한다.

두 시즌 연속 포스트시즌 진출에는 일단 성공했지만, 시즌 최후반 치열한 2~5위 싸움을 하다 2경기를 남겨놓고[22] 시즌 내내 문제를 보였던 운영 문제가 제대로 터져 2위에서 4위로 굴러떨어지는 모습을 보였다. 안 그래도 좋지 않던 여론이 들끓었고 결국 와일드카드 1차전은 승리했으나, 준플레이오프에서 두산에게 2전 2패로 스윕당하며 2020시즌을 마무리했다.

역대 LG 감독 중 재임 3년간 가장 전폭적인 지원을 받고도 계약기간 3년 동안 기록한 정규시즌 성적이 8-4-4에 불과하고 포스트시즌에서도 2년 연속으로 준플레이오프 조차 통과하지 못했기에[23] 재계약도 어려워진 상태였다. 하지만 결국 준플레이오프 탈락 직후 구단에게 사의를 표명하고 나섰지만 재계약도 불발되어 실패하여 3년만에 LG 트윈스에서 쓸쓸하게 물러나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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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2021년

결국 서울 생활을 정리하고 고향으로 돌아가 모교인 경북고에서 인스트럭터로 활동할 예정이라고 한다.
6월 26일 라팍에서 LG와의 경기를 관전했다.[24]

6. 대한민국 야구 국가대표팀 전임 감독

그렇게 야인생활을 지내다가 2022 항저우 아시안 게임을 앞두고 대표팀 감독에 선임되며 다시 현장으로 복귀했다. 삼성왕조 시절 좋은 단기전 운영(정규시즌 5연패, 한국시리즈 4연패 달성)을 보여준 적도 있지만, 2013 WBC와 LG시절 포스트시즌 등 좋지 않은 모습을 보여준 적이 있었기 때문에 우려하는 시선도 존재한다.

그런데 2022년 5월 6일, 아시안 게임 연기가 발표되면서 류중일 개인의 상황이 상당히 묘해졌다. 아시안 게임까지만 대표팀을 지휘하는 단기 계약이었으나 정작 대회가 1년 연기되며 국가대표 감독으로서 제일 먼저 맞이하는 대회가 2023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이 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감독직을 WBC부터 지휘해야 하는지 여부에 대한 논의가 필요해졌다.

이후 계약 조항에 아시안 게임 대회 연기 시 계약 해지 조건이 있었음이 알려지면서 WBC 사령탑은 전면 재선임에 들어가게 되었다. # 단, 수당 지급만 중단할 뿐 아시안 게임 감독직은 그대로 유지하며, 재선임이 사실상 유력한 것으로 알려졌다.

2022년 7월 21일, KBO가 KT 이강철 감독을 WBC 대한민국 대표팀 감독으로 선임하게 되면서 류중일 감독은 항저우 아시안 게임 대회부터 지휘봉을 잡게 되었다.[25] 원래는 한국 대표팀이 스스로 선수단 구성에 연령 제한을 걸어두면서 기존 대표팀에 비해 전력 구성의 한계가 커진지라 역설적으로 감독의 성적 부담이 덜해졌어야 했지만, 2023 WBC에서 이강철 감독이 거하게 깽판을 치는 바람에 오히려 야구팬들의 신뢰를 되찾기 위해 매경기 압도적인 경기력을 보여야 하는 부담감을 안게 되었다.

항저우 아시안 게임에서의 경기 내용과 평가는 류중일호/2022 항저우 아시안 게임 문서 참고.

아시안 게임에서는 특유의 보수적이면서도 안정적인 운영으로 나쁘지 않은 모습을 보여주었고 전력에 비해서 좋은 경기력으로 금메달을 따내며 국가대표 선수들의 병역특례에 성공했다. 특히 윤동희 대체 카드 발탁, 문동주 결승전 등판 등의 결단이 결과적으로 대성공을 거두면서 류중일 본인도 LG 시절의 좋지 못한 평가를 어느 정도 반전시켰다.

이 성과에 힘입어 곧 있을 APBC 대회 감독 역시 그대로 맡을 예정이며, APBC 대회에서도 유의미한 결과를 낼 경우 전임 감독으로 선임되어 국가대표 감독으로 자리잡거나 다시 프로야구 감독으로 감독 커리어를 이어나갈 길이 열렸다.

다만 APBC에서 호주, 대만을 상대로는 승리했으나 한일전에서는 조별예선에서는 1:2, 결승에서는 승부치기 끝에 3:4로 역전패당하는 아쉬움을 겪었다. 물론 일본 국대에서는 사회인 야구가 아니라 NPB 주전 선수들이, 그것도 리그내에서 상위권에 속하는 선수들이 나왔던만큼 1점차 패배는 졌잘싸라는 의견이 많다.[26]

이후 아시안게임과 APBC 두 대회에서의 좋은 성과를 바탕으로 2024 WBSC 프리미어 12에서도 대표팀 지휘봉을 잡게 되었다. 자세한 건 류중일호/2024년 항목 참조.

프리미어 12 시작 전부터 외야수 골글 가능성이 매우 높은 삼성의 간판타자 구자욱의 무릎 부상과, 토종 선발 평균자책점 1, 2위를 다퉜던 원태인, 손주영이 모두 어깨와 팔꿈치 부상으로 낙마하며 국대에 적신호가 켜졌다. 1선발은 곽빈이 맡을 가능성이 매우 크며[27], 의 발탁 가능성도 무시할 순 없다.[28] 그런데 데려온 선발 베테랑이 겨우 평자 3점대의 오른손 피네스 피처다. 더불어서 왼손 선발투수가 거의 없는 상황에서 오른손 투수만 데려온다고 까였다. 게다가 류중일 감독하면 빠지지 않는 쓸놈쓸 기질까지 아낌없이 드러내면서 그야말로 야구 팬들에게 분노의 타자를 열심히 두드리도록 만들었다(....)

결과적으로 대한민국 대표팀은 사상 첫 슈퍼 라운드 진출 실패라는 결과를 가져왔고, 결국 여기서도 올드스쿨 방식[29]의 평가를 뒤집지 못하면서 향후 지도자 경력에 빨간불이 켜지고 말았다. 예전이었다면 감독과 몇 선수만 두고서 팬들이 집중적으로 비판이 향했겠지만, 팬들의 야구 지식이 평균적으로 상당히 높아지면서 감독뿐만 아니라 현재 시스템 자체에 문제가 있다는 인식이 강하다. 시스템 전체적으로 하나부터 열까지 개혁하고 개선해야 할 필요성이 있다고 강하게 얘기가 나오고 있는 와중이지만, 지금까지 자신들이 잘못되었다면서 하나부터 열까지 싹 바뀌는 자기 개혁이 제대로 이뤄질 가능성보다는 몇 사람한테 총대 메게 하는 형식으로 갈 확률이 높지 않겠냐는 의심의 눈초리도 상당한 만큼 류중일 감독의 거취와 함께 KBO 및 전력강화위원회의 미래까지도 참 여러모로 혼란의 도가니인 상황이다.

7. 역대 감독 성적

역대 감독 전적
연도 소속팀 경기수 승률 정규리그 포스트시즌
2011 삼성 133 79 50 4 .612 1위 우승
2012 133 80 51 2 .611 1위 우승
2013 128 75 51 2 .595 1위 우승[30]
2014 128 78 47 3 .624 1위 우승[31]
2015 144 88 56 0 .611 1위 준우승
2016 144 65 78 1 .455 9위 -
<rowcolor=#373a3c> 삼성 통산
(6시즌)
810 465 333 12 .583 우승 4회
준우승 1회
연도 경기 승률 정규리그 포스트시즌
2018 LG 144 68 75 1 .476 8위 -
2019 144 79 64 1 .552 4위 4위
2020 144 79 61 4 .564 4위 4위
<rowcolor=#373a3c> LG 통산
(3시즌)
432 226 200 6 .531
<rowcolor=#373a3c> KBO 통산
(9시즌)
1242 691 533 18 .565 우승 4회
준우승 1회

8. 평가

파일:상세 내용 아이콘.svg   자세한 내용은 류중일/평가 문서
번 문단을
부분을
참고하십시오.


[1] LG시절에도 이 번호를 썼다. [2] 경기는 삼성쪽으로 기울고를 생각하면 된다. 해당 문서를 보면 알겠지만 컨디션이 좋지 않았던 김희걸, 각각 전날 선발과 다음 날 선발로 예정된 윤성환, 장원삼을 제외한 9명의 투수를 투입했다. 한마디로 최소 인원만 남기고 모두 투입한 셈이다. 여기서 특기할 점은 다음날 선발인 장원삼도 올리지 않았다는 점인데 이는 마지막 발악이 아니라, 못해도 다음경기까지는 갈것을 생각하고 투수를 투입했다는 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 [3]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1980년대를 대표하는 스타 1명, 1990년대를 대표하는 스타 한명, 2000년대를 대표하는 스타 1명을 각각 뽑아서 시포, 시투, 시타를 맡겼는데 1980년대를 대표하는 선수로는 이만수를, 1990년대를 대표하는 선수로는 박충식을, 마지막으로 2000년대를 대표하는 스타는 양준혁을 선정했다, 추억을 되살리려는 의도도 있었겠지만 강제은퇴 당한 이만수와 말년에 트레이드 당했던 박충식을 시민구장의 마지막 시구자로 선정함으로서 과거 레전드들과의 악연을 완전히 청산하겠다는 의미로도 해석할 수 있다. 거기에 구단 측에서 특별석을 마련해준 삼성 OB 모임에는 김시진도 참석을 했었다. 물론 김시진과의 관계는 선동열의 다음 감독으로 김시진을 섭외하려 했을 정도로 이미 풀어진 상황이었다. [4] 그런데 1위와의 게임 차는 얼마 나지 않는 치열한 페넌트레이스였기 때문에 중반 이후 1위로 올라서는 게 이상하지는 않았다. [5] 관중마냥 가만히 앉아 경기를 지켜볼때 주로 쓴다. [6] 그런데 15시즌은 비디오 판독 성공률이 꽤 높다고 한다. 참고 근데 이건 경기 분위기를 바꾸기위한 판독 요청보다 진짜 오심이라고 생각할때만 사용해서 그렇다. [7] 심판에게 어필을 잘 안 해서 붙은 별명이라고 한다. [8] 류현진이 빠지게 되는 과정에서 은근슬쩍 류현진에게 참가하라는 것 같은 압박성 발언을 했다는 논란이 한동안 오갔다. 추신수 또한 괘씸죄 때문인지 필요 이상으로 엄청 까인 감이 있었다. 정작 일본 메이저리거들의 불참에 대해서는 관대한 여론이 있었다는 것이 아이러니였다. [9] 사실 다음 야구 게시판이나 아고라 쪽에 올라오는 야구 관련 의견은 특정 팀의 의견을 참고한다면 모를까, 전체 네티즌의 의견을 대변하는 용도로서는 바람직 하지 않다. 일단 아고라 자체가 아무나 기분내키는 대로 청원을 남발하는 곳인데다가 미디어다음 문서를 보면 알겠지만 다음 관련 커뮤니티는 선동열 경질을 이유로 호사방 네티즌들이 친 삼성 라이온즈 성향 네티즌들을 축출하다시피한 상황이다. 따라서 다음 커뮤니티에 올라오는 의견 대부분은 야구팬들의 의견이라 보기엔 무리가 많고, 별 의미 없다고 보는것이 맞다. [10] 2012 시즌에서도 초반에 삼성이 부진했을 때, 돌중일, 관중일이라 부르며 이미지를 점점 깎아먹일 조짐이 보였지만 어찌됐건 우승을 거두며 이런 조롱은 줄어들었다. 이 때는 설령 비난이 쏟아진다 해도 류중일을 실드쳐줄 팀팬들이 있었고, 그저 삼성의 막강 전력을 질투하는 이들의 징징거림으로 치부하면 그만이었다. [11] 실제로 2012년 시즌과 2013년 시즌 두 시즌 모두 통합 우승을 달성 했으나 2012년에 비해 2013년의 류중일에 대한 평가가 매우 박해졌다. 김성근도, 김응용도 달성하지 못한 3년 연속 통합우승이라는 대기록을 세웠지만 이 타이중 참사 한방으로 인해 명장 소리를 제대로 듣지 못하게 되었다. [12] 불행하게도 여기에 언급된 모두 2013 시즌 가을야구 진출에 실패했다. [13] 그나마 구자욱 정도만이 향후 삼성의 프랜차이즈 스타 후보로 자리잡고 있다. 내년에 최형우, 차우찬을 잡을 FA머니가 있을지는 의문이며 이 두 선수마저 일본, 메이저리그 또는 타 구단으로 간다면 더더욱 암울해질 전망이다. [14] 이번 시즌이 끝나고 재계약하지 못할 경우, 그나마 좋은 시나리오는 김응용처럼 삼성 구단의 요직을 맡거나 본인이 계속 맡고 싶어하던 경북고 야구부의 감독으로 부임하는 것이다. 프런트로 부임하는 것도 생각해 볼 수 있으나, 구단이 제일기획 산하로 편입된 이후의 삼성은 더 이상 예전의 삼성이 아니라서 바뀐 환경에서 적응해나갈 수 있을지도 미지수다. [15] 보통 고문직은 경질 후 남은 계약 기간 동안은 그간의 공을 생각하여 잔여 연봉을 지급하기 위해 형식적으로 주는 직책인데, 류중일의 경우에는 계약이 만료되었는데도 기술 고문의 직책으로 원 소속 팀에 잔류한 특이 케이스다. [16] 작년부터 언급될만한 시나리오였다. [17] 참고로 류중일 취임직전해 삼성라이온즈 2군은 10시즌 퓨처스리그 남부리그 우승팀이었다. [18] 2011~2015년까지 팀 타율은 2014년 3할을 찍는 등 최상위권에 들었고, 팀 장타율, 출루율, OPS에서도 최상위권을 유지했다. [19] 94년에 81승 다음으로 많은 승이다. [20] 2011년 삼성 라이온즈의 감독직에 올랐을 때는 반대로 최연소 감독이었다. [21] 일단 1년차와 2년차엔 이광환과 류중일의 행보는 비슷했다. 둘 다 타 팀 감독 출신에 1년차엔 전임보다 못한 성적, 2년차엔 4위로 가을야구라는 공통점이 있다. [22] 심지어 그 두 경기의 상대 팀은 2020 시즌 LG가 각각 11승 5패, 13승 3패라는 압도적인 우세를 보였던 한화 이글스 SK 와이번스였기에 비난이 더욱 컸다. [23] 류중일 부임 이전 5년간 LG는 10대 김기태 시절과 11대 양상문 시절을 보면 12대 류중일 재임 시기와 비교도 안되는 지원 속에서도 포스트시즌에 3번 갔고 그중 한번은 플레이오프 직행, 그 2번 모두 준플레이오프를 넘어 페넌트레이스 2위와 격돌하는 플레이오프 진출까지 이뤄냈다. [24] 삼성과 LG 감독을 둘 다 했어서 그런지 이날 KBS N SPORTS 해설진은 류중일 감독이 어느 팀을 응원하러 온 건지 궁금해하는 멘트를 날렸다. 해설진은 삼성을 응원하러 왔을 거라고 했는데, 삼성 감독 시절의 명성을 생각해보면 해설진의 멘트처럼 삼성을 응원하러 왔을 것으로 예상된다. [25] 예전 관례에 따라 직전 시즌 리그 우승/준우승 팀의 사령탑인 이강철 감독과 김태형 감독이 WBC 감독직 선임 1,2순위였으며 류중일 감독은 3순위였다고 한다. # [26] 야마모토 요시노부, 사사키 로키, 요시다 마사타카 등 메이저리거급 선수들이 우후죽순 나오는 현 시점 일본 야구 팜과 2023 WBC에서의 참패로 인하여 일본 야구 국대와 맞붙으면 무조건 박살난다는 것이 현 시점 야구 팬덤의 일반적 인식이었으나 마지막까지 대등한 싸움을 했다는 점에서 격려하는 반응을 받고 있다. 물론 그래도 한일전이었던데다 그동안 NPB 출신 선수들이 나오는 일본 야구 국대에게 계속 지기만 했던 것을 돌려줄 기회를 날려서 아쉽다는 의견 역시 만만치 않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아쉬움 차원에서의 의견이기에 이런 견해를 가진 사람들 역시 대표팀이 기대 이상의 대선전을 해냈다는 것에는 동의하는 편이다. [27] 곽빈은 와일드카드 결정전 1차전에서 1이닝 4실점이라는 참사를 낸 새가슴이라 팬들 사이에서 우려가 많다. [28] 김광현은 국가대표 은퇴를 공식적으로 선언하였다. [29] 특히 대만전과 일본전에서 이해하기 힘든 선발 선정이나 경기 운영을 보이며 평가가 많이 깎이고 말았다. [30] KBO 최초 3년 연속 통합우승 [31] KBO 최초 4년 연속 통합우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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