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가타 소녀 감금사건 新潟少女監禁事件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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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ddd,#222> 발생 시기 | 1990년 ~ 2000년 |
발생 지역 | 일본 니가타현 |
피해자 | 당시 10세~19세 소녀 1명 |
범인 | 사토 노부유키 (당시 28~37세) |
[Clearfix]
1. 개요
일본의 니가타현에서 발생한 아동 납치 감금 사건.2000년 1월 28일 한 여성이 정신병이 있는 자신의 아들의 폭력을 보건소에 신고하면서 보건소 직원이 방문해 우연히 그 집 2층에 감금된 20대 여성을 발견하여 신고하면서 알려졌다.
2. 사건 내용
1990년 11월 13일 당시 초등학교 4학년이었던 소녀는 산조시에서 하교하던 길에 어느 30대 남성에게 납치당했다. 그는 울면서 저항하는 소녀를 칼로 위협하여 결박한 뒤 차의 트렁크에 태우고 카시와자키시에 있었던 자신의 집에 데려가 2층의 자기 방에 무려 9년 5개월간 감금해 두었다.그런데 같이 살던 어머니는 이를 그동안 전혀 몰랐다고 진술했다. 아들의 상습적인 폭력이 무서워 2층엔 얼씬도 못 했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경찰은 이를 믿지 않고 2층을 샅샅이 뒤졌는데 어머니의 지문이 정말로 전혀(!) 발견되지 않아 그 말이 진실임이 입증되었다고 한다.
불행 중 그나마 다행으로 그는 납치한 소녀에게 성적인 학대는 저지르지 않았으나[1] 처음에는 저항하는 소녀의 복부에 칼을 댄 채 협박하다가 전기충격기를 구입한 뒤 그걸로 위협하면서 구타하였고 발육을 늦추기 위해 식사도 하루 한 끼만 최소한으로 제공했으며 항상 침대에만 있을 것을 지시하고 지키지 않으면 때리는 등 벌을 가했다. 용변조차도 화장실을 쓰지 못하게 하고 방 안에서 비닐 봉투에 처리하게 했다.
이런 생활 탓에 소녀는 어린 나이에도 노인 수준으로 근력이 심하게 저하되었고 골량이 감소했으며 실종 직전에는 46kg이었는데 발견 당시에는 20대였음에도 불구하고 체중은 38kg였으며 두 다리로 걷기조차 힘들어할 정도로 쇠약해진 상태였다. 조금만 늦게 발견되었어도 여고생 콘크리트 살인사건의 재판(再版)이 될 뻔했다.
시간이 흐르면서 주변 상황에 익숙해진 소녀가 반항을 어느 정도 멈추자 범인은 어머니가 없을 때를 골라 그녀를 1층에 내려와 샤워하게 해 주거나, TV를 보게 해 주거나 머리카락을 직접 잘라 주기도 했다고 한다. 더불어 그는 피해자에게 평소에는 라디오 방송을 들으면서 시간을 보내도록 했으며 그의 어머니가 해 오던 방송 녹화를 소녀에게 떠맡겼고 어머니와 마찬가지로 녹화하다가 실수하면 가차없이 폭력을 행사했다. 이 때문에 발견 당시 소녀가 머물던 침대 옆에는 날짜별로 정리된 방송 녹화 비디오 테이프를 수납하는 선반이 잔뜩 있었다.
범인이 피해자를 납치한 이유는 그녀를 키워서 결혼하기 원했기 때문이었다고 한다. 더불어 범인은 이미 백화점에서 브래지어와 여성용 팬티을 훔치는 등 크고 작은 범죄를 저지른 경력이 있던 상습범이었고 폐쇄적인 성격 탓에 학창 시절부터 친구도 거의 없었다고 한다.
범인은 상습적인 구타를 어머니에게도 일삼았는데 이는 나중에 어머니가 보건소 직원을 부르는 원인이 되었다. 신고를 받고 방문한 직원은 우연히 범인의 2층 방에 올라갔다가 겁에 질린 젊은 여성을 발견하면서 깜짝 놀라서, 그녀에게 자초지종을 물은 결과 그녀가 10년 가까이 이 집에 감금된 납치 피해자임을 알게 되어 경찰에 신고했다.
3. 범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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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인 사토 노부유키(佐藤宣行)의 사진 | |
출생 | 1962년 7월 15일 |
사망 | 2017년 (향년 54~55세) |
초등학교에 들어가자 고령의 아버지를 본 주위의 동급생이 "사토 아빠는 할아버지 같다"며 말했는데 거기에 상처받은 사토는 아버지와 서먹한 관계가 되었다. 아버지는 사토가 중학생이었을 때 세상을 떠났다.
어머니와 둘만 남게 된 후부터 그는 어머니를 마치 하인처럼 부리면서 경마의 마권부터 생필품 등의 쇼핑까지 모든 심부름을 시켰다. 게다가 경마 중계나 좋아하는 아이돌이 나오는 가요 프로그램 등 원하는 프로그램을 비디오에 녹화하도록 지시하고 만약 녹화를 실수하거나 방송을 놓치면 가차 없이 어머니에게 폭력을 휘둘렀다.
어릴 때부터 제멋대로 마음껏 자란 사토는 해를 거듭할수록 자신의 욕망을 제어할 수 없는 괴물이 되었고 당연히 정상적인 사회 생활은 불가능했으며 고등학교 졸업 후 취직한 직장에서 근무태도불량으로 3개월만에 잘린 뒤 그대로 집에 칩거하면서 히키코모리가 되었다.
4. 여파
이 사건으로 인해 일본은 물론이고 대한민국을 비롯한 전 세계의 뉴스가 한동안 떠들썩했다. 실제로 피해자와 그녀의 아버지가 10여년 만에 만나던 순간의 모습이 보도되기도 했다.[2]5. 징역
범인인 사토 노부유키는 재판 끝에 당시 단일 범죄 유기징역의 최상한인 징역 15년을 선고받아 복역하게 되었는데 한 소녀의 소중한 10대 시절이 송두리째 날아가 버린 사건인데 피해에 비하면 너무 가벼운 처벌이라는 비판이 많았다. 참고로 피해자 소녀는 감금 당한 동안 자기 이름을 잊어버리지 않으려고 노트에 틈만 나면 적곤 했다고 한다.약 10년동안 제대로 먹지도 움직이지도 못해서 성장은 커녕 20대의 나이에도 38kg로 줄어들고 근육도 노인 수준이라 걷는 것조차 못하게 됐는데도 불구하고 겨우 징역 15년 밖에 나오지 않았지만, 사실 저것도 판사가 어떻게 해서든 형량을 늘리려고 사토가 과거에 저질렀던 경범죄에 대한 형량까지 더한 법정 최고형이었다. 물론 일본도 가중 시에는 25년까지 올릴 수 있었고 강간으로 넘어가면 무기징역도 가능했으나 범인이 강간이나 장애가 남을 정도의 잔혹한 학대를 하지는 않았다는 점을 피해자도 인정했기 때문에 그 이상의 처벌이 불가능했다고 한다.
6. 교도소 출소 이후
범인은 옥중에서도 작업을 게을리하거나, 교도관의 지시를 듣지 않는 등 매우 불성실하게 생활하였으며 아이돌 사진을 수집하다가 걸려 뺏기면서 난동을 부리다가 다른 수형자랑 싸움을 벌여 독방에 수용되기도 하였고 독방에서도 '인권침해' '게바형[3]의 횡포' 라고 외쳐대며 전혀 반성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교도관마저도 재범 위험이 높다며 출소하자마자 시설에 넣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그 외에도 복역중에 2급 장애인 수첩을 취득해 논란이 되기도 하였다.후에 2015년 4월 가석방 됐으나 보행에 도움이 필요할 정도로 살이 빠져 폐인 같은 모습이었다고 한다. 고향 니가타로 돌아가지 않고 지바 현내에서 장애인 복지시설로부터의 지원을 받은 아파트에서 계속 숨어 살다가 2017년 경 병사하였다.[4] 범인의 어머니는 아들의 수감 후 치매가 진행되어 노인 시설에 입원했으며 아들의 복역 중 사망하였다. 사건이 발생한 자택은 어머니 명의로 방치되었다.
7. 비슷한 사례
오쿠다 히데오의 '꿈의 도시'에 비슷한 내용이 나오긴 하는데 납치범이 젊은 오타쿠이자 히키코모리다. 또 피해자가 여고생인 것도 다르며 오래 감금되지는 않고 모종의 사건으로 탈출한다. 그리고 '꿈의 도시'란 소설 자체는 현대 일본의 양상을 한 시골 마을을 통해서 보여주는 것이므로 이런 내용이 주를 이루진 않는다. 다만 오타쿠인 것 말고는 이 사건의 피의자와 비슷하다 못해 똑같다고 볼 수 있으며 오쿠다 히데오의 특성상 실제 사건에서 모티브를 따서 현대 일본의 히키코모리 문제를 살짝 섞은 걸로 보면 될 듯싶다.훗날 기리노 나쓰오의 소설 '잔학기'의 내용이 이와 아주 유사해서 비난이 일기도 했으며 완전한 사육과 비슷한 면도 있어서 혹시 이 사건을 영화가 참고한 것이 아니냐는 의혹도 있었으나 완전한 사육이 더 먼저 만들어졌기 때문에 이 사건과는 상관없는 듯. 그러나 2004년에 만들어진 6편 붉은 살의는 이 사건과 거의 같다.
세계적으로 비슷한 시기에 일어난 유사 사건으로는 오스트리아에서 발생한 나타샤 캄푸쉬 감금사건, 미국에서 발생한 제이시 두가드 감금사건[5]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