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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 정보 | ||
저자 |
역대기 사가[2] 느헤미야[3] |
|
기록 연대 |
B.C. 3세기경(최종편집)[4] B.C. 400년경[5] |
|
분량 | 13장 | |
주요인물 | 느헤미야 |
[clearfix]
1. 개요
엘룰월 이십오일, 오십이일 간에 걸친 성 수축 공사가 끝났다. 이 소식은 우리의 모든 원수들의 귀에 들어갔고, 우리 주위에 살던 뭇 민족들은 이 일을 눈으로 보고 매우 놀랐다. 그들은 그제야 이 일을 이룩하신 이가 다름 아닌 우리 하느님이심을 알게 되었다.
느헤미야 6장 15~16절 ( 공동번역 성서)
느헤미야 6장 15~16절 ( 공동번역 성서)
성경의 16번째 권이자 해당 책의 등장인물.
느헤미야는 아케메네스 왕조 페르시아 왕 아르타크세르크세스 1세의 헌작관이었던 유대인이다.[6] 그가 기록했다고 전해지는 구약성경의 책을 가리키기도 한다.
느헤미야는 하갈랴(하가랴/하칼야)의 아들로 기록되어 있으며, '느헤미야(נחמיה)'라는 이름은 " 주님께 위로받는다."는 의미이다. 나훔이라는 이름과도 관련이 있다.
느헤미야 1장에 '나'라는 1인칭 주어가 나오는 것으로 보아 느헤미야 본인이 기록했다고 전해진다. 다만, 본서 후반부의 족보와 종교 운동이 에즈라와 관련된 것으로 보아, 에즈라가 일부 또는 전체를 기록했다는 견해도 있으며, 70인역도 본서의 저자를 에즈라라 보았다.
성서주석학적으로는 역대기 계통 사가가 편집한 것으로 본다.
2. 내용
페르시아 왕중왕 앞에서 술 담당 관리로 있던 중 형제에게 고국 예루살렘의 처참한 광경을 전해들은 느헤미야는 근심하다가 왕에게 은혜를 입게 해달라고 기도를 한 후 왕에게 술을 진상하는데, 암울한 표정을 숨기지 못한다.[7] 이에 왕이 슬픈 기색을 보인 느헤미야를 벌하기보다 무슨 일이길래 표정이 어둡느냐 물어보자[8] 느헤미야는 자신이 목이 잘릴 수 있었음을 알고 두려워하면서도[9] 자신의 조국의 수도가 처한 곤경을 얘기하며 자신이 가서 성을 재건하게 해달라고 한다. 다행히 기도가 통했는지 왕은 그를 유다 총독으로 임명하고, 장교들과 기병부대를 호위로 붙여주고, 자재들도 지원해주기까지 한다.느헤미야는 성전을 복원의 초석이 될 예루살렘 성 복원을 하면서, 누가 성벽을 복원하는지 일일이 언급하는데 이후 왠지 자신의 업적을 칭송하는 듯한 내용들이 이어진다. 이 와중에 착공하자마자 정적들이 나타나 훼방하는 등,[10] 온갖 해괴망측한 사건들이 일어나며 성벽 복구는 질질 끌리게 된다.
열심히 성을 다시 쌓는 와중에, 예전 앗수르의 침략으로 인해 생겨난, 이민족과의 북이스라엘인들 사이의 혼혈족인 사마리아인이 예루살렘 성벽 재건에 합류하고 싶다는 의사를 보이지만 느헤미야는 거절하는데, 이후 사마리아인 총독 산발랏과 아랍인 부족장 게셈,[11] 해당 지역 유지 도비야가 "성을 쌓는 것은 황제에 대한 반역행위"라며 성벽 재건을 방해한다.
느헤미야는 "우리는 키루스 황제의 명령에 따라 정당하게 공사를 하는 중이니 당신들이 참견할 바가 아니다"라며 맞장을 뜨고, 산발랏 일동은 그 후에도 끈질기게 느헤미야를 방해하려 한다. 편지를 보내 끌어들여 몰래 죽이려 드는가 하면, "성을 쌓는 건 왕이 되려는 속셈 아니냐? 황제한테 알려지면 난리날 테니 나랑 만나서 상의하자"는 등의 매도도 하고, 심지어는 느헤미야의 심복에게 뇌물을 주어 느헤미야로 하여금 범죄를 저지르게 해 명예를 훼손시키려는 시도도 한다.
거기다 외부적으로만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었으니, 성벽 공사를 하는 인부들이 관리들에게 저당을 잡히거나, 빚을 갚지 못해 자식들을 노예로 빼앗기거나 하는 등의 착취 행위가 있었다는 사실이 밝혀진다. 설마했던 내부 부패까지 일어나자 마침내 분노한 느헤미야는 공습경보에 해당하는 나팔을 불어 관리들을 소집한 뒤 "난 백성들한테 부담주지 않으려고 총독이 당연히 받아야 하는 월급도 안 받고 일하고 있는데, 너희들은 70년 만에 돌아온 동포들을 등쳐먹냐?"며 호통을 쳤고, 겁먹은 관리들은 빚, 저당잡은 밭, 집 등을 모두 반환하고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겠다는 맹세를 한다.
우여곡절 끝에 성벽은 성공적으로 완공되었고, 백성들이 에스라와 느헤미야를 필두로 둘로 갈라져 행진하며 봉헌식을 거행한다.
여기까지 보면 해피엔딩 같지만... 이후 유대인들이 계속 율법을 어기는 모습을 나열하며[12] 이에 분노하는 느헤미야의 모습을 보여준다. 느헤미야는 이방인과 결혼한 유대인들을 때리고 머리채를 쥐어뜯기까지 한다. 느헤미야의 마지막은 하느님께 자신은 최선을 다했다며 기억해달라고 한탄하며 끝난다.
3. 설명
느헤미야가 사마리아인들에게 적대적인 태도를 취했다는 것에 대해 "유대민족 순혈주의"로 보는 시각도 있으나[13] 이는 다분히 현대의 사고로만 바라보는, 대단히 편향적인 관점이다. 바빌론 유수에서 돌아온 유대인들은 주로 종교, 정치 엘리트들로서 예후드 지역[14]에 머무르면서 에스라를 통해 종교개혁을 진행했다. 그러면서 느헤미야 시대에 성벽을 재건하고 있었는데, 사마리아 족속은 혼혈이기에 이스라엘 민족으로 받아들여지지 못했는데다 그들이 갖고있던 북이스라엘 왕국의 전통도 유수에 합류한 엘리트들에 비하면 별볼일 없었고, 결정적으로 먼저 멸망했기 때문에 "저주받은 동족"이란 모멸 속에 그냥 버려진 것이다. 그리고 그당시 해당 지역에서는 바빌로니아 유수에서 끌려가지 않고 유대 지역에 계속 잔류한 이들도 있었는데 이들과의 갈등이 나타나지 않은 것을 보면, 이들이 바빌론 유수에서 돌아온 동족을 지지한 게 거의 분명하다. 보면 "사마리아인 = 잔류한 진짜 이스라엘인 VS 돌아온 유대인들 = 실제로는 페르시아적 전통에 젖은 유대 전통에서 멀어진 이들" 같은 식의 이상한 오해가 있는데 이런 오해는 고쳐져야 함이 마땅하다.느헤미야는 생각하는 바와는 달리 상당한 현실주의자였다. 느헤미야의 전임자라고 할 수 있는 에즈라는 이방민족과 통혼한 유대인 가정들을 강제로 이혼시키고, 그 사이에서 나온 혼혈아들을 강제로 부친들과 생이별시켜서 그 당대에도 가정 파괴범으로 유대인들에게조차 욕을 먹고 있었다.
느헤미야는 이런 현실을 감안하여, 이미 혼인한 가정의 현 상태는 인정하고 그 사이에서 나온 아이들은 반드시 히브리어 교육을 시킬 것을 권장하는 선에서 끝낸다. 물론 일종의 인민재판 비슷한 것을 열어 지도층들을 사람들 다 보는 앞에서 구타했던 것처럼, 비록 자기 울분을 못 이기고 폭발하긴 했어도 실제로 이혼 조치를 취하진 않았다. 의외로 현실 정치가로서 자기 절제가 충분했음을 엿볼 수 있다.
오히려 이 대목에서 '유대인'이 혈통적인 범위가 아니라 매우 종교적인 범위가 될 단초가 보인다는 것을 주목해야 한다. 에즈라 때까지만 해도 혈통을 매우 중시했지만 느헤미야는 그렇지 않았다.[15] 이 경향이 굳어지는 것은 훗날의 마카베오 시대. 유일신교로 국민을 단결시키는 이 아이디어는 얄궂게도 기독교를 통해 로마에서 실천된다.
페르시아사 연구자들이 밝혀낸 바에 의하면, 유대 총독 혹은 유대 태수 자리는 대단히 어려운 자리로서 보통은 3~4년을 넘기기 힘들었다고 한다.
당시 유대에 대한 세금 부과액도 오히려 신바빌로니아 시절보다 높았으면 높았지 결코 낮지 않았다. 그런데도 느헤미야는 무려 8년 동안 유대 태수로 재직하면서 달성하고자 하는 과업은 모두 달성했고, 모든 정적의 어려운 공격들을 물리치며 성공적으로 경력을 마감했다. 유대 태수를 지낸 후엔 어떻게 되었는진 알 길이 없으나, 내내 성공한 정치가이자 행정가였으니 적어도 비참하게 생을 실패로 마감하지 않은 것만은 분명하다.
다만 이 과정에서 성서무오설을 신봉하는 이들에겐 불편할 사실이 하나 밝혀졌으니, 도비야가 실은 암몬인이 아닌 유대인이었다는 사실이다. 하지만 정황상 느헤미야가 그걸 몰라서 도비야를 시종일관 암몬인으로 적었을 개연성은 적다. 도비야 같은 경우 순전히 자기 영향력이 줄어들 수 있다는 소인배적인 심성으로 당시 유대 지역에 이주해있던 암몬인들을 비롯한 외국인들과 연합하여 사사건건 느헤미야의 사업을 훼방놓았고, 느헤미야의 목숨까지 위태로울 모함을 자행했다. 그런 억울하고 분한 일을 유대 태수 재임 기간 내내 오랫동안 겪었으니 적어도 느헤미야의 입장에선 도비야는 온전한 유대인이 아니라 암몬인으로 격하되어 불려도 마땅한 존재였을 것이다. 이후 도비야는 수천 년 동안 성경 독자들에게 암몬인으로 인식되며 비난 받았으니, 느헤미야의 억울함은 다소 풀린 편이다.
[16]
4. 기타
영어권에서 현대 남성 이름으로 쓰이는 니어마이아(Nehemiah)의 유래다. 그다지 인기있는 이름을 가진 선지자는 아니지만 은퇴한 미식축구 선수 니어마이아 브로턴(Nehemiah Broughton)이 바로 이 이름을 가졌었다.느헤미야기를 에즈라기 제2권으로 지칭하는 견해도 있다.
[1]
약칭은 네에미아(Nehemia).
[2]
성서 주석학적 견해
[3]
전통적 견해
[4]
에리히 쳉어Erich Zenger 등의 《구약성경 개론》Einleitung in das Alte Testament 한국어판 (분도출판사 2012)1013쪽
[5]
전통적 견해
[6]
헌작관(헌작 시종, 술 관원)은 왕이나 황제에게 진상하는 술을 관리하는 최측근 인사이자, 언제든지 황제에게 술을 따를 수 있어야 하므로 항상 왕의 얼굴을 가장 가까이서 보는 명예로운 관직으로 꼽혔다. 따라서 헌작관은 왕이나 황제가 가장 신뢰하는 사람 중 하나라는 의미가 있다. 왼쪽 어깨에는 황제의 입을 닦을 화려한 긴 천을 걸치고, 오른손에는 대추야자 나뭇가지로 만든 부채, 왼손에는 술을 따를 술병을 항상 구비하고 있으며, 황제에게 첫 술을 내기 전, 항상 자신의 손바닥에 술을 조금 따라 먼저 시음하는 것으로 먼저 독이 있는지 없는지를 확인한 뒤에 술을 따랐다고 한다. 왕은 항상 독살의 위협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자신의 음식을 관리하는 관리라면 당연히 신뢰할 수 있는 최측근이었다. 또한
신성 로마 제국의
선제후였던
보헤미아 국왕의 제국내의 지위가 아르키핀체르나(Archi-Pincerna) 또는 에르츠문트솅크(Erzmundschenk)였는데 직역하면 황제에게 술 올리는 자란 의미이다. 이후 이 개념이 확장되어서 제국의 연회를 주관하는 역할로 변하였다.
[7]
고대 페르시아에서는 이게 사형에 처해질 만한 행동이었다고 한다. 당시 술 관원은 왕의 얼굴을 내관보다도 가까이에서 마주 대하며 모시는 동경의 대상이자 명예로운 직책이었는데, 왕의 기분을 좋게 만들어야 하는 술 관원이 왕에게 미소를 띄지 않고 어두운 표정을 보이는 것은 술을 즐기는 왕의 기분을 망치는 심각한 불경죄에 해당하는 것이었다고.
[8]
"아픈 것도 아닌데 왜그리 표정이 어두우냐? 필시 무슨 걱정거리가 있음일터, 무엇이냐?"
[9]
왕이 내게 이르시되 네가 병이 없거늘 어찌하여 얼굴에 수심이 있느냐 이는 필연 네 마음에 근심이 있음이로다 하더라 그 때에 내가 크게 두려워하여(느헤미야2:2)
[10]
이때 성벽을 복구하면서 언제 적들이 훼방을 놓을지 몰라 일꾼들은 제각기 무장하고 교대로 공사에 임한다.
[11]
성경상에서는 유일하게 행적이 기록된 아랍인이다.
[12]
시간상으로 성벽완공 이전이나 의도적으로 후반부에 배치되었다.
[13]
이러한 시각에서 보는 입장은
사마리아인 항목 참조.
[14]
예루살렘을 중심으로 남쪽 헤브론까지의 도시들의 집합 지역이다. 본래 남유다 왕국이 있던 지역.
[15]
본래는 종교적인 범위가 맞는다고 하는데, 적어도 이 시기엔 그렇지 않았다.
모세오경에 외국인이
유대교로 개종한 경우
유대인으로 취급했다고 하지만 그런 경우는 매우 드물었으며, 개종해도 자손 몇 대까진 온전한 국민 취급을 받기가 매우 힘들었다. 이방인과의 결혼을 금지한 것은 이방인이 자기 종교를 유지한 상태에서 혼합되는 것을 막기 위함이라고 보는데 이 관점도 오류다. 느헤미야는 치사하게 외국인 처나 며느리에게 개종을 강요하진 않았다.
[16]
굳이 기독교인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상식 있는 현대인의 입장에서 볼 때 도비야는 어떤 의미에선 매국노고, 호의적으로 봐줘도 결국은 소인배란 비난을 피하긴 어려운 인물 맞긴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