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의 구성 | |||||||
{{{#!wiki style="margin:0 -10px -5px; word-break:keep-all" {{{#!wiki style="display: inline-table; min-width:25%; min-height:2em" {{{#!folding [ 구약성경 ] {{{#!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
구약성경 | ||||||
오경 (모세오경) | 창세기 · 출애굽기 (탈출기) · 레위기 · 민수기 · 신명기 | ||||||
역사서 | 여호수아 · 판관기 (사사기) · 룻 · 사무엘 (상 + 하) · 열왕기 (상 + 하) · 역대기 (상 + 하) · 에즈라 (에스라) · 느헤미야 · 에스델 (에스더/에스테르) | ||||||
시가서 | 욥 · 시편 · 잠언 · 전도서 (코헬렛) · 아가 | ||||||
예 언 서 (선지서) |
대예언서 (대선지서) | 이사야 · 예레미야 · 애가 (에레미야애가) · 에제키엘 (에스겔) · 다니엘 | |||||
소예언서 (소선지서/열두 예언서) | 호세아 · 요엘 · 아모스 · 오바디야 (오바댜/오바드야) · 요나 · 미가 (미카) · 나훔 · 하바꾹 (하바쿡/하박국) · 스바니야 (스바냐) · 하깨 (하까이/학개) · 즈가리야 (스가랴/즈카르야) · 말라기 (말라키) | ||||||
{{{#!wiki style="margin:0 -10px -5px; min-height:calc(1.5em + 5px)" {{{#!folding [ 구약의 제2경전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
<colbgcolor=#7f7f7f><colcolor=#fff> 제2경전 | ||||||
가톨릭 · 정교회 | 토비트 (토빗) · 유딧 · 마카베오기 (상 + 하) · 지혜서 · 집회서 · 바룩 · 다니엘 일부 · 에스델 (에스더/에스테르) 일부 | ||||||
정교회 | 에스드라스 1서 · 송시 · 마카베오기 3서 · 므나쎄의 기도 · 시편 151편 | ||||||
테와히도 | 에녹 1서 · 희년서 · 메카비안 1서·2서·3서 · 바룩의 나머지 말 · 요시폰 | ||||||
그 외 | 에스드라스 2서 (Ge) (aM) (SY) (eT) · 마카베오기 4서 (조지아) · 바룩의 편지 (시리아) | }}}}}}}}} |
}}}}}}}}}{{{#!wiki style="display: inline-table; min-width:25%; min-height:2em" {{{#!folding [ 신약성경 ] {{{#!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
신약성경 | |||
복음서 | 마태오 (마태) · 마르코 (마가) · 루가 (누가/루카) · 요한 | ||||||
역사서 | 사도행전 | ||||||
바울로 서간 (바울서신) | 로마 · 고린토 첫째 (고린도전/코린토 첫째) · 고린토 둘째 (고린도후/코린토 둘째) · 갈라디아 (갈라티아) · 에페소 (에베소) · 필립비 (빌립보/필리피) · 골로사이 (골로새/콜로새) · 데살로니카 첫째 (데살로니가전/테살로니카 첫째) · 데살로니카 둘째 (데살로니가후/테살로니카 둘째) · 디모테오 첫째 (디모데전/티모테오 첫째) · 디모테오 둘째 (디모데후/티모테오 둘째) · 디도 (티토) · 히브리 | ||||||
보편서간 (공동서신) | 야고보 · 베드로 첫째 (베드로전) · 베드로 둘째 (베드로후) · 요한 첫째 (요한1) · 요한 둘째 (요한2) · 요한 셋째 (요한3) · 유다 | ||||||
예언서 | 묵시록 (계시록) | ||||||
{{{#!wiki style="margin:0 -10px -5px; min-height:calc(1.5em + 5px)" {{{#!folding [ 테와히도 정교회의 확장된 정경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
<colbgcolor=#7f7f7f><colcolor=#fff> 에리트레아· 에티오피아 테와히도 정교회 | Sinodos (Sirate Tsion · Tizaz · Gitsew · Abtilis) · I Dominos · II Dominos · Clement · Didesqelya | }}}}}}}}} |
성경의 목차 | 위경 및 제안된 문서 |
<rowcolor=#ffffff> ◀ 이전 |
고린토인들에게 보낸 둘째 편지 코린토 신자들에게 보낸 둘째 서간/고린도후서 2코린 / 고후
|
다음 ▶ |
고린토인들에게 보낸 첫째 편지 | 갈라디아인들에게 보낸 편지 | |
|
||
언어별 명칭 | ||
<colbgcolor=#808080><colcolor=#ffffff> 그리스어 | Επιστολὴ πρὸς Κορινθίους | |
라틴어 | Epistula II ad Corinthios | |
영어 | Second Epistle to the Corinthians | |
한자(한국어) |
가톨릭: 코린토 신자들에게 보낸 둘째 서간(코린토二書) 개신교: 고린도後書 |
|
중국어 |
간체자: 格林多后书 정체자: 格林多後書 |
|
일본어 | コリントの信徒への手紙二(コリントのしんとへのてがみに) | |
기본 정보 | ||
저자 | 사도 바울로 | |
기록 연대 | AD 약 56년경 | |
분량 | 13장 | |
수신자 | 코린토 교회 |
바울로 서간 (코르푸스 파울리눔Corpus Paulinum) | ||||
{{{#!wiki style="margin:0 -10px -5px; word-break:keep-all" {{{#!folding [ 펼치기 · 접기 ] |
저자 | 서간 | 기록 연대 | 기록 장소 |
바울로 | 데살로니카인들에게 보낸 첫째 편지 | 50년경 | 고린토 | |
고린토인들에게 보낸 첫째 편지 | 54/55년 즈음 봄 | 에페소 | ||
고린토인들에게 보낸 둘째 편지 | 55/56년 가을 | 마케도니아 | ||
갈라디아인들에게 보낸 편지 | 55년 가을 | 에페소 또는 마케도니아 | ||
로마인들에게 보낸 편지 | 56년 봄 | 고린토 | ||
필립비인들에게 보낸 편지 | 60년경 | 로마 | ||
필레몬에게 보낸 편지 | 61년경 | 로마 | ||
바울로 학파의 일원 ( 디모테오?) | 골로사이인들에게 보낸 편지 | 70년경 | 소아시아 남서부 (아마도 에페소) | |
바울로 학파의 일원 | 에페소인들에게 보낸 편지 | 80–90년 | 소아시아 (에페소?) | |
바울로 학파의 일원 | 데살로니카인들에게 보낸 둘째 편지 | 1세기 말 | 마케도니아 또는 소아시아 | |
바울로 학파의 일원 |
디모테오에게 보낸 첫째 편지 디모테오에게 보낸 둘째 편지 디도에게 보낸 편지 |
100년경 | 에페소 | |
익명 (바울로의 저작으로 오해됨) | 히브리인들에게 보낸 편지 | 80–90년 | 로마 또는 제국의 동쪽 | |
문헌: 우도 슈넬레,『신약정경개론』(대한기독교서회, 2023), "제2장 바울서신", 41–280; "제5장 제2바울서신", 511–638; "제6장 히브리서", 639–666. |
[clearfix]
1. 개요
그러므로 우리는 낙심하지 않습니다. 우리의 외적 인간은 낡아지지만 내적 인간은 나날이 새로워지고 있습니다. 우리는 보이는 것에 눈길을 돌리지 않고 보이지 않는 것에 눈길을 돌립니다. 보이는 것은 잠시뿐이지만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하기 때문입니다.
고린토인들에게 보낸 둘째 편지 4장 16, 18절 ( 공동번역 성서)
고린토인들에게 보낸 둘째 편지 4장 16, 18절 ( 공동번역 성서)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총과 하느님의 사랑과 성령께서 이루어주시는 친교를 여러분 모두가 누리시기를 빕니다.
고린토인들에게 보낸 둘째 편지 13장 13절 ( 공동번역 성서)[1][2]
고린토인들에게 보낸 둘째 편지 13장 13절 ( 공동번역 성서)[1][2]
성경의 54번째/47번째 권.
신약성경의 한 권으로 신약에서 사도 바울로가 쓴 서신 중 3번째로 배치된 서신이다.
개신교에서는 '고린도후서'라고 부르며, 천주교에서는 '코린토 신자들에게 보낸 둘째 서간' 또는 '코린토 2서'라고 부른다.
2. 발단
첫 번째 편지를 보낸 후 코린토인들에게 좋지 못한 소식을 듣자 바울로는 티토를 시켜 다시 편지를 보낸다.[3] 하지만 그 후 감감무소식이자 참지 못해 바울로는 직접 마케도니아로 간다. 거기서 티토를 만나 고린토 교회에 대한 좋은 소식을 듣자 그에 대한 답변으로 기록한 것이 바로 고린토 2서이다.[4] 또한 고린토 2서에서 사도 바울로는 고린토의 성도들에게 교회 내부의 거짓 교사들의 말을 듣지 말라고 경고하며, 자신의 사도로서의 권위에 대해 열혈히 변호한다.3. 구조와 내용
개신교 용어로 적힌 요약에 대한 내용은 성경/신약성경/요약 문서
의
고린도후서 부분을
참고하십시오.- 바울로와 디모테오의 고린토 교회를 향한 인사 (1:1-2)
- 자기 자신을 의지하지 않고 하느님만 의지하도록 하기 위하여 주어진 환난 가운데에서 우리를 위로하고 건지시는 하느님은 찬양 받으실 분이다. (1:3-11)
- 나는 근심 가운데에서 고린토 교회에 방문하지 않으려고, 고린토 교회로 먼저 가려던 계획을 변경하였다. 이것은 내가 육신을 따라 행한 일이 아니고, 하느님의 뜻을 따라 고린토 교회를 아끼는 마음으로 행한 일이다. 내가 이전에 고린토 교회에게 쓴 편지[5]는, 내가 장차 고린토 교회를 방문했을 때 근심하는 일이 없도록 하고, 고린토 교회 교인들에게 고린토 교회를 향한 나의 사랑을 알리기 위하여, 환난 가운데에서 눈물로 쓴 편지이다. (1:12-2:4)
- 모든 고린토 교회 교인들을 근심하게 한 사람을 용서하라. (2:5-11)
- 우리는 모든 장소에서 그리스도의 향기를 나타내고 있고, 하느님의 말씀을 혼탁하게 하지 않으며, 그리스도 안에서 진실한 마음으로 하느님 앞에서 말하고 있다. (2:12-17)
- 우리는 우리들의 뜻이 아닌 하느님의 뜻대로 새 언약의 일꾼이 되었고, 우리의 섬김으로 말미암아 된 현재의 고린토 교인들이 곧 육체의 마음판에 성령으로 쓴 그리스도의 편지가 되어 이것을 보증한다. 율법은 죽이는 것이고 성령은 살리는 것인데, 율법으로 된 언약의 직분에도 큰 영광이 있었다면, 성령의 직분에는 그것보다 더욱 큰 영광이 있고, 이전의 영광은 더 이상 영광스럽지 못하게 되었다. 모세는 장차 없어질 것에 불과한 자신의 얼굴의 영광에 사람들이 주목하지 않게 하기 위하여 얼굴에 수건을 썼으나, 영원한 영광의 직분을 맡은 우리는 그런 일을 하지 않는다. 그러나 오늘날까지 구약성경을 읽는 유대인들의 마음은 수건으로 덮여있다. 그러나 주께로 돌아가면 그 수건이 벗겨지며 영광에 이르러 자유를 누리게 될 것이다. (3:1-3:18)
- 우리는 간교한 일을 행하거나 하느님의 말씀을 혼탁하게 하지 않았기에, 하느님과 모든 사람들의 양심 앞에 우리 스스로를 추천한다. 우리는 그리스도께서 주 되신 것과 그로 인해 우리가 여러분의 종이 된 것을 전파하고 있는데, 이것은 우리에게서 난 것이 아닌 하느님에게서 난 것이다. 우리가 전파하는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들은 사탄으로 인해 마음이 혼미하게 된 사람들이고, 멸망할 사람들이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느님의 영광을 알게 되었고, 예수의 생명을 우리의 죽을 육체에 나타내게 하기 위하여, 온갖 환난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않는다. 우리가 당하는 고난들은 잠깐이나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받을 영광은 영원하기 때문이다. (4:1-18)
- 우리의 육체가 죽게 되면 영원한 몸을 입게 될 것이고, 우리는 이것을 간절히 사모하며 탄식하고 있다. 하느님이 성령으로 이것을 보증해주셨기에 우리는 항상 담대하며, 보이는 것이 아니라 믿음으로 행한다. 모든 사람들은 선악에 대해 보응하는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서게 될 것이므로,[6] 우리는 지금의 몸을 떠나 주와 함께 거하기 위하여, 지금의 몸 안에 있든지 지금의 몸을 떠나 있든지 주를 기쁘시게 하기 위해 힘쓴다. 우리는 주의 두려우심을 알기에 사람들을 권면한다. 우리가 이미 하느님 앞에서 환히 드러난 것처럼 여러분의 양심에도 우리가 환히 드러나기를 바란다. 이것은 우리를 또 다시 추천하기 위한 말은 아니고, 겉으로 보이는 행위로 자신들을 내세우는 사람들의 말에 대답할 거리를 여러분에게 주기 위함이다. (5:1-13)
- 그리스도께서는 살아있는 사람들이 자기 자신이 아닌 그리스도를 위하여 살도록 하기 위해 모든 사람들을 대신하여 죽으셨고, 우리는 더 이상 육신을 따라 그리스도를 아는 사람들이 아니며,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람은 누구든지 새로운 피조물이다. 하느님은 사람들을 그리스도 안에서 하느님과 화목하게 하는 직분을 우리에게 주셨다. 그러므로 우리가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간곡히 부탁하건대 하느님과 화목하라. 하느님은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하느님의 의가 되도록 하기 위하여 죄를 알지도 못하신 분에게 우리 대신 죄를 짊어지게 하셨다. (5:14-21)
- 하느님의 은혜를 헛되이 받지 말고 지금 은혜를 받으라. (6:1-2)
- 우리는 우리의 사역이 비난을 받는 일이 없도록 아무에게도 거리낌이 되지 않으려 노력하고, 온갖 고생을 하지만 그 와중에서도 하느님의 뜻대로 행하며, 비참한 자들 같이 보이나 사실은 행복한 자들이다. 우리의 마음은 넓게 열려있으니 여러분도 그에 대한 보답으로 넓은 마음을 가져달라. (6:3-13)
- 믿지 않는 우상숭배자들과 동역하지 말고, 하느님을 두려워함으로 온전히 거룩함을 이루라. 우리는 아무에게도 부당한 일을 하지 않았고, 우리는 여러분을 정죄하는 마음이 아닌 사랑하는 마음으로 이런 말을 하는 것이니, 여러분은 우리를 받아달라. 우리는 여러분을 자랑스럽게 여기며 신뢰하고 있다. 마케도니아에서 환난을 당하고 있을 때, 디도가 돌아와 고린토 교회 교인들이 회개했다는 소식을 전해주어 나는 매우 기뻤고, 디도도 고린토 교회 교인들의 순종으로 인해 고린토 교회에 더욱 깊은 애정을 가지게 되었다. 저번에 쓴 편지로 여러분을 근심하게 한 것에 대해 예전에는 후회했으나, 그 근심이 죽음에 이르게 하는 세상 근심이 아니라, 구원을 가져오는 회개에 이르게 하는 하느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이었으므로 지금은 도리어 기뻐하고 있다. (6:14-7:16)
- 마케도니아 교회 교인들은 극심한 가난과 시련 가운데에서도, 자진하여 성도들을 섬기기 위한 헌금을 풍성히 모았다.[7] 이들의 열성을 본받아, 여러분도 1년 전부터 여러분이 원해서 해왔던 가난한 성도들을 위한 헌금 모으는 일을 잘 마무리하여 여러분의 사랑의 진실성을 증명해 보이고, 형편 안에서 자원하는 마음으로 헌금을 하라. 부요하신 분이신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을 가난하게 하심으로써 우리를 부요하게 하셨다. 여러분이 다른 성도들의 궁핍을 채워준다면, 훗날 여러분이 궁핍해졌을 때 그들의 넉넉함이 여러분의 궁핍을 채워주어 서로 공평하게 될 것이다. (8:1-15)
- 헌금을 수령하기 위하여 내 동역자인 디도와 신실한 두 형제를 여러분에게 보냈는데, 우리는 다른 사람들에게 비난을 받지 않기 위해 이 거액의 헌금을 다루는 일에 있어 조심하고 있다. 그들을 잘 맞아주어, 여러분의 사랑과 우리의 고린토 교회에 대한 자랑이 사실이라는 것을 그들에게 보여달라. 내가 마케도니아 성도들에게 고린토 교회는 이미 1년 전 부터 헌금이 준비되어 있다고 자랑했었는데, 그 말이 그들을 분발하게 했다. 나는 이 자랑이 헛되지 않도록 하고, 여러분이 헌금을 자발적으로 준비하도록 하기 위하여 이 형제들을 여러분에게 보냈다. (8:16-9:5)
- 기쁜 마음으로 자발적인 헌금을 하라. 이 일로 인해, 여러분은 각자가 심은 대로 열매를 거두게 되어 삶에서 하느님의 은혜가 넘치게 될 것이고, 헌금을 받는 사람들은 감사함으로 하느님에게 영광을 돌리게 될 것이다. (9:6-15)
- 우리가 비록 육신을 입고 살고 있지만 육신이 아닌 하느님의 능력을 따라 살고 있고, 내가 여러분에게 갔을 때 우리가 육신을 따라 행한다고 하는 사람들을 대하는 것처럼 강경한 태도로 여러분을 대하는 일이 없도록 해달라. 만일 스스로가 그리스도께 속해있다고 생각한다면, 우리도 마찬가지로 그리스도께 속해 있다는 것을 기억하라. 주께서 우리에게 주신 권세는 여러분을 무너뜨리기 위한 권세가 아니라 여러분을 세우기 위한 권세이며, 나는 편지로 여러분을 두렵게 하려는 것처럼 보이고 싶지 않다. 어떤 사람들이 내 편지는 무게가 있으나 실제 모습은 시원찮다고 하는데, 실제로는 내가 편지에서 보이는 대로 행동하고 있는 것을 알라. 우리는 자화자찬하는 사람들이 아니며, 하느님이 정해 주신 분량 안에서만 자랑한다. 옳다고 인정받는 사람은 자화자찬하는 사람이 아니라 주께서 칭찬하시는 사람이므로, 자랑하는 사람은 주 안에서 자랑하라. (10:1-18)
- 내가 좀 어리석은 말을 하더라도 나를 용납해달라. 나는 여러분을 순결한 처녀로 한 남편인 그리스도께 드리려고 중매했는데, 여러분이 거짓 복음을 전파하고 있는 거짓 사도들을 용납하고 있어, 나는 여러분이 그리스도에 대한 진실함과 깨끗함에서 떠나 부패할까 두렵다. 사탄도 자신을 빛의 천사로 가장하는데, 그들은 자신을 그리스도의 사도로 가장하는 자들이다. 내가 비록 말에는 능하지 못하나 지식에는 그렇지 않고, 여러분을 섬기기 위하여 스스로를 낮추며 값없이 복음을 전하고 있다. 여러분에 대한 나의 사랑을 하느님이 아신다. (11:1-15)
- 나를 어리석은 사람으로 생각하지 말라. 그러나 그렇게 하지 못하겠다면, 나로 하여금 주의 지시를 따르지 않는 어리석은 사람 같이 육신의 일을 조금 자랑하게 해달라. 여러분이 그런 어리석은 사람들을 잘도 용납하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유대인이며 그리스도의 일꾼 그 이상인데, 사역을 하면서 온갖 고생을 하며 죽을 고비도 여러 번 넘겼다. 또한 이것과 별개로, 나는 날마다 모든 교회들을 위해 염려하고 있는데, 내가 자랑해야 한다면 이러한 나의 약한 것들을 자랑하겠다. (11:16-33)
- 좀 더 자랑하자면, 나는 14년 전에 셋째 하늘에 있는 낙원에 올라가 말로 표현할 수도 없고 말해서도 안되는 것을 들었다. 그러나 사람들이 나를 너무 지나치게 평가할까봐 이 자랑은 이쯤에서 그만두겠다. 내가 받은 계시들이 지극히 크므로, 하느님은 내가 교만해지지 않게 하기 위하여 내 육체에 가시를 주셨고, 세 번이나 이것을 고쳐달라고 간구했으나, 주께서는 주의 은혜가 내게 족하고 주의 능력이 약한 데서 완전하게 된다고 하시며 고쳐주지 않으셨다. 나는 약할 때에 강해지기 때문에 환난 가운데에서도 기뻐한다. 그리스도의 능력이 내게 머물게 하기 위하여 나는 이러한 나의 약한 것들에 대해 자랑하고 싶다. (12:1-12:10)
- 나는 저 거짓 사도들보다 못하지 않으며 여러분에게 인정 받아야 마땅하지만, 여러분은 나를 어리석은 자로 만들었다. 오래 참음과 기적 등의 진정한 사도로서의 표적들이 여러분 가운데에서 나에게 나타났고, 나는 여러분에게 다른 교회들보다 못해준 것이 없으며, 여러분에게 폐를 끼친 적도 없다. 그럼에도 거짓 사도들은 우리가 여러분을 간교한 속임수로 이용했다고 말한다. 나는 이제 세 번째로 여러분에게 가려고 하는데, 여러분에게 폐를 끼치지 않을 것이고, 내 모든 것을 소진하여 여러분을 섬길 것이다. 다만 내가 여러분을 방문했을 때 고린토 교회에 여전히 온갖 문제점들이 난무할까봐 두렵다. (12:11-12:21)
- 내가 이제 세 번째로 여러분을 방문하려고 하는데, 모든 사안은 두세 증인의 증언을 근거로 확정될 것이다. 그리스도께서는 약한 가운데 십자가에 못 박히셨으나 하느님의 능력으로 살아나셨고, 우리도 그리스도 안에서 약하나 하느님의 능력으로 살아나 여러분을 대할 것이다. 그리스도께서는 여러분을 대할 때 강하신 분인데, 여러분이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서 말씀하신다는 증거를 요구하기 때문에, 나는 범죄한 사람들을 그냥 두지 않을 것이다. 스스로가 믿음안에 있는지 자신을 시험해보라.[8] 그리스도께서 자신의 안에 있는지 스스로 알지 못한다면 그 사람은 버림 받은 자인데, 여러분은 우리가 버림받은 자가 아니라는 것을 알라. 이런 말을 하는 것은 우리가 하느님에게 인정받는 사람들이라는 것을 내세우려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비록 그렇게 보이지 않을지라도 여러분으로 하여금 선을 행하게 하려 함이다. 우리는 진리를 위해서만 일하고 있고, 우리가 약할지라도 여러분이 강하다면 우리는 기뻐하며, 우리는 여러분이 어떠한 악도 행하지 않고 온전해지기를 기도한다. 나의 권위는 여러분을 무너뜨리기 위한 것이 아니라 여러분을 세우기 위한 것인데, 내가 여러분을 방문했을 때 이 권위를 따라 여러분을 엄하게 대하는 일이 없도록 이 편지를 쓴다. (13:1-10)
- 마지막 문안 인사와 축도 (13:11-13)
3.1. 바울로의 자랑
그들이 히브리 사람들입니까? 나도 그렇습니다. 그들이 이스라엘 사람들입니까? 나도 그렇습니다. 그들이 아브라함의 후손들입니까? 나도 그렇습니다. 그들이 그리스도의 일꾼들입니까? 미친 사람의 말 같겠지만 사실 나는 그리스도의 일꾼으로서는 그들보다 낫습니다. 나는 그들보다 수고를 더 많이 했고 감옥에도 더 많이 갇혔고 매는 수도 없이 맞았고 죽을 뻔한 일도 여러 번 있습니다. 유다인들에게 사십에서 하나를 감한 매를 다섯 번이나 맞았고, 몽둥이로 맞은 것이 세 번, 돌에 맞아 죽을 뻔한 것이 한 번, 파선을 당한 것이 세 번이고 밤낮 하루를 꼬박 바다에서 표류한 일도 있습니다. 자주 여행을 하면서 강물의 위험, 강도의 위험, 동족의 위험, 이방인의 위험, 도시의 위험, 광야의 위험, 바다의 위험, 가짜 교우의 위험 등 온갖 위험을 다 겪었습니다. 그리고 노동과 고역에 시달렸고 수없는 밤을 뜬눈으로 새웠고 주리고 목말랐으며 여러 번 굶고 추위에 떨며 헐벗은 일도 있었습니다. 이런 일들을 제쳐놓고라도 나는 매일같이 여러 교회들에 대한 걱정에 짓눌려서 고통을 당하고 있습니다. 어떤 교우가 허약해지면 내 마음이 같이 아프지 않겠습니까? 어떤 교우가 죄에 빠지면 내 마음이 애타지 않겠습니까? 내가 구태여 자랑을 해야 한다면 내 약점을 자랑하겠습니다. (중략) 내가 다른 것도 자랑할 마음이 있어서 자랑한다 하더라도 사실대로만 말할 것이기 때문에 내가 어리석은 사람이 될 까닭은 없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이 내게서 보고 듣고 한 것 이상으로 나를 평가하게 될까봐 나는 자랑을 그만하겠습니다.
고린토후서 11장 22-30절,12장 6절 (공동번역성서)
고린토후서 11장 22-30절,12장 6절 (공동번역성서)
바울로는 교만하게 자신들의 행위를 자랑하는 거짓 사도들을 따르는 고린토 교회 교인들이 자신의 말을 듣도록 하려고, 어쩔 수 없이 일반적인 신자들의 믿음에서는 나올 수 없는 수준의 자신의 육체의 행위를 자랑함으로써 거짓 사도들이 겉으로 드러나는 행위로도 자신보다 나을 것이 없음을 알리고 있다. 또한 바울로는 교인들이 자신을 지나치게 높게 생각하여 하느님으로부터 마음이 멀어지는 것을 경계하였기 때문에, 교인들이 자신과 동질감을 느낄 수 있도록 자신의 약점을 자랑하고 싶다고 말했다. 이것을 통해, 어떤 사람의 특별한 믿음의 행위를 사람들에게 간증할 때에는 사람들이 하느님보다 그 사람에게 더 관심을 쏟지 않도록 그 사람이 너무 드러나지 않게 주의해야 하고, 대단한 믿음의 사람을 볼 때도 그 사람에게만 집중하기보다는 그 사람을 통해 일하시는 하느님을 볼 줄 알아야 함을 알 수 있다.
4. 주요 구절들
우리는 우리 자신이 사형 선고를 받은 줄 알았으니, 이는 우리로 자기를 의지하지 말고, 오직 죽은 자를 다시 살리시는 하나님만 의지하게 하심이라. (고린도후서 1장 9절)
우리가 무슨 일이든지 우리에게서 난 것 같이 스스로 만족할 것이 아니니, 우리의 만족은 오직 하나님으로부터 나느니라. (고린도후서 3장 5절)[9]
주는 영이시니, 주의 영이 계신 곳에는 자유가 있느니라. (고린도후서 3장 17절)[10]
이는 우리가 믿음으로 행하고 보는 것으로 행하지 아니함이로라. (고린도후서 5장 7절)
그런즉 우리는 몸으로 있든지 떠나든지 주를 기쁘시게 하는 자가 되기를 힘쓰노라. (고린도후서 5장 9절)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강권하시는도다. 우리가 생각하건대, 한 사람이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었은즉 모든 사람이 죽은 것이라. 그가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으심은, 살아 있는 자들로 하여금 다시는 그들 자신을 위하여 살지 않고 오직 그들을 대신하여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신 이를 위하여 살게 하려 함이라. (고린도후서 5장 14-15절)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고린도후서 5장 17절)
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하신 이를 우리를 대신하여 죄로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그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 (고린도후서 5장 21절)
[1]
가톨릭
미사의
시작 예식에서 쓰이는 인사 중 하나가 바로 여기서 유래했다.
[2]
개신교에서 예배를 마치며 목사가 축도를 할 때 쓰인다.
[3]
이 편지는 코린토 1, 2권에 속하지 않은 별개의 편지이며, 현재는 전해지지 않고 있다.
[4]
그래서 후서는 전서와 달리 서론부터 하느님께 감사한다는 내용이 들어있다.
[5]
고린토 1서가 아니며, 현재 전해지지 않고 있다.
[6]
바울로 서신에는 지옥에 대한 언급이 없다는 주장이 있으나, 죽은 이후에 서게 될 그리스도의 심판대에서 악에 대해 보응 받는다는 말이 사실상 지옥에 대한 언급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7]
고린도전서 3장 21절의 사람을 자랑하지 말라는 말과 모순되는 것 같아 보이나, 바울로는 일반적인 고린도교회 교인들도 필수적으로 해야 하는 다른 사람들의 믿음의 행위를 언급함으로써, 고린도교회 교인들이 하던 일을 마저 잘 할 수 있도록 자극을 주고 있는 것이다.
[8]
억지로 구원의 확신을 가지라는 것이 아니라 정직하게 스스로의 믿음을 점검해보라는 뜻이다. 예를 들어, 자신에게 자랑할 것이 십자가 외에 단 하나라도 있는지 여부로 믿음의 상태를 점검할 수 있다.
[9]
문맥 상 바울에게 사도 직분이 주어진 건 온전히 하나님의 뜻이라는 의미이나, 개역개정판 번역본을 보면 이 구절이 마치 사람은 오직 하나님으로만 만족할 수 있다고 말하는 것 같아 보인다. 공교롭게도 이 구절을 잘못 이해하더라도 하박국 3장 17-18절이 주는 메시지와 동일한 메시지를 읽으며 감동을 받을 수 있다.
[10]
많은 사람들이 기독교는 이런 저런 제약이 너무 많아서 빡빡하다고 생각하나, 기독교의 입장에서는 오히려 스스로를 자유롭다고 여기며 별 생각 없이 죄를 짓는 일반적인 사람들이야말로 죄를 제대로 깨닫지도 못하고 죄에 저항조차 하지 못하여 죄로 인해 고통받는 죄의 노예라고 말한다. 억지 금욕주의는 고통만 유발할 뿐이지만 성령의 능력으로 죄의 성향을 제거하면 죄로부터 해방되어 그 안에서 진정한 자유와 기쁨을 누린다는 것이 기독교에서 주장하는 바이다. 예를 들자면, 사람은 본래 다른 사람의 시선을 의식할 수 밖에 없는 존재이기 때문에 은혜 없이는 다른 사람들이 만들어놓은 냉엄한 판단 기준에 묶여 고통받을 수 밖에 없으나, 성령으로 충만해지면 사람들의 시선이 아닌 사람들의 어리석음이 긍휼한 마음으로 보이기 때문에 사람들이 만들어놓은 기준에 얽매이지 않고 마음의 평안을 얻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