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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7-17 17:55:36

70인역

파일:bible-1297745_960_720.png 성경의 필사본과 번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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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어 Μετάφραση των Εβδομήκοντα
그리스 숫자 Ο΄
라틴어 Septuaginta
로마 숫자 LXX
영어 Septuagint
한국어 칠십인역(七十人譯)

1. 개요2. 역사3. 참고 문헌4. 관련 문서

1. 개요

παρακέκλησθε οὖν μετ' εὐνοίας καὶ προσοχῆς τὴν ἀνάγνωσιν ποιεῖσθαι καὶ συγγνώμην ἔχειν ἐφ' οἷς ἂν δοκῶμεν τῶν κατὰ τὴν ἑρμηνείαν πεφιλοπονημένων τισὶν τῶν λέξεων ἀδυναμεῖν οὐ γὰρ ἰσοδυναμεῖ γὰρ τῷ ὀγδόῳ καὶ τριακοστῷ ἔτει ἐπὶ τοῦ Εὐεργέτου βασιλέως παραγενηθεὶς εἰς Αἴγυπτον καὶ συγχρονίσας εὑρὼν οὐ μικρᾶς παιδείας ἀφόμοιον ἀναγκαιότατον ἐθέμην καὶ αὐτός τινα προσενέγκασθαι σπουδὴν καὶ φιλοπονίαν τοῦ μεθερμηνεῦσαι τήνδε τὴν βίβλον πολλὴν ἀγρυπνίαν καὶ ἐπιστήμην προσενεγκάμενος ἐν τῷ διαστήματι τοῦ χρόνου πρὸς τὸ ἐπὶ πέρας ἀγαγόντα τὸ βιβλίον ἐκδόσθαι καὶ τοῖς ἐν τῇ παροικίᾳ βουλομένοις φιλομαθεῖν προκατασκευαζομένους τὰ ἤθη ἐννόμως βιοτεύειν( 칠십인역)
그러므로 여러분은 호의를 가지고 이 글을 주의 깊게 읽어 주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우리가 정성껏 번역하였지만 어떤 표현들은 제대로 옮길 수 없었다고 여겨지니 이를 양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히브리 말 표현들을 다른 말로는 똑같이 옮길 수 없습니다. 이 글들뿐 아니라 율법서조차도 그리고 예언서와 나머지 글들도 원문과는 적지 않은 차이가 있습니다. 에우에르게테스 임금(Εὐεργέτου βασιλέως) 통치 38년에[1] 저는 이집트에 가 얼마 동안 머물면서, 적지 않은 교훈이 담긴 이 책의 사본을 발견하고, 정성껏 열심히 이 글을 반드시 번역해야겠다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동안 이 책을 완성하여 내놓기까지 잠도 제대로 못 자며 온갖 지식을 다 기울였습니다. 저는 이국 땅에 살면서 배우기를 즐기고, 율법에 맞는 생활 습관을 익히고자 하는 이들을 위하여 이 책을 펴냅니다.( 한국천주교주교회의 성경)
-집회서 머리말 15-35절
가장 오래된 그리스어 구약성경. 히브리 성경 코이네 그리스어로 번역한 책들과, 처음부터 코이네 그리스어로 쓰여진 책들로 이루어져 있다. 약칭은 로마 숫자에서 유래한 LXX.

2. 역사

아리스테아스의 편지에 따르면 본국에서 초청 온 72명의 유대인들이 알렉산드리아에서 구약 성경을 고대 그리스어로 번역한 것으로 전해진다. 현존하는 이 편지의 필사본들은 주로 11-17세기의 것이지만, 이 번역본의 저작 시기는 아무리 늦어도 기원후 1세기를 넘지 않는다. 왜냐하면 플라비우스 요세푸스가 《유다 고대사》에 이 글을 일부만 제외하고 그대로 싣고 있기 때문이다. 후에 70인역 성경의 권위가 사람들 사이에서 높아지는 과정에서 70인역의 번역 과정이 예언자 모세 야훼로부터 율법을 수여받는 과정에 비유되어 권위를 지니게 되었다. 아리스테아스 편지에 72명이 번역에 참여하였다는 언급에 따라 Septuaginta(칠십, 교회 라틴어 발음으로 '셉투아진타')로 불리게 되었다.

하지만 실제로 70인역을 문헌 분석으로 살펴보면 편지의 내용과 달리 70인역은 일정한 계획하에 이뤄진 번역이 아니라 다양한 기간 동안 다양한 지역과 역사적 배경에서 번역된 문헌이다. 말하자면 성경 번역 모음집이라는 소리. 처음 번역된 것은 토라뿐이었으며, 토라 이외의 분량은 이후 100년에 걸쳐 번역이 이루어졌다. 이러한 번역의 필요성은 당시의 유대인들 사이에서는 히브리어는 점점 사멸해갔기에 히브리어 경전의 번역 필요성이 대두되었기 때문이다. 이후 히브리어를 모어로 쓰는 시오니스트 정착민 2세대가 등장하는 20세기 초가 되어서야 히브리어는 사어에서 부활한다.

현존하는 칠십인역 본문들은 카이게 개정본, 안티오키아 본문, 오리게네스의 헥사플라 등 서로 다른 본문 전통을 반영하며, 원 칠십인역이 그대로 전해진 것은 아니다. 이 점 때문에 반가톨릭 성향이 짙은 킹 제임스 성경 유일주의자들은 70인역을 부정하며, 성경 변개의 상징이라고까지 했다. 그러나 이건 어떻게 봐도 극단적인 주장이고,[2] 완전한 성경의 형태로도 기원후 3~4세기까지, 단편으로는 기원전 2세기까지 거슬러올라가는 칠십인역의 고대 필사본들은 사해문서를 빼면, 구약 성경의 본문 비평에서 가장 무게 있는 자료이다. 게다가 사해문서의 발견으로 칠십인역의 위상은 한층 더 높아졌다. 왜냐하면 사해 부근 쿰란과 유다 광야에서 발견된 구약성경 필사본들 가운데는 마소라 본문보다 칠십인역에 더 가까운 것들이 더러 있기 때문이다. 이는 2세기 이후 히브리어 본문이 마소라 본문으로 굳어지기 전에 존재하던 또 다른 형태의 고대 히브리어 본문도 칠십인역이 보존하고 있다는 말이기도 하다. 반면 마소라 본문은 가장 오래된 수사본이 820-850년경 필사된 것이다. 따라서 마소라와는 우열을 가리기 힘든 본문 전통을 반영했을 뿐만 아니라, 연대적으로 매우 오래된 칠십인역 필사본은, 히브리어와 일부 아람어로 되어 있다는 장점을 지닌 마소라 본문과 함께 서로 상호보완적인 관계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70인역을 구약의 원전으로 삼는 정교회에 비해서, 가톨릭과 개신교는 상대적으로 마소라를 선호하는 경향[3]이 있지만,[4] 그럼에도 불구하고 칠십인역을 비롯한 고대 번역본들과 쿰란사본으로 마소라를 보완한다.

한편으로는 가톨릭과 개신교에서 정경으로 인정하는 구약성서 권수가 차이가 나는 원인이다. 70인역에 존재하지만 마소라 본문에는 없는 토빗기, 유딧기, 마카베오기 상/하, 바룩서, 지혜서, 집회서, 그리고 다니엘서 에스델의 일부 구절을 가톨릭에서는 구약성서로 사용하나, 개신교 측에서는 해당되는 책들의 히브리어 본문이 발견되지 않았다는 표면적 이유로 구약성서로 채택하지 않았다.[5]

먼 훗날 발견된 사해문서에서 해당 책들(마카베오기 하권과 에스델 제외)의 히브리어 본문이 발견되어 그러한 주장의 일부 근거는 상실되었고, 오늘날에는 개신교 안에서도 (정경으로 인정하지는 않을지어정) '읽어보면 유익한 책' 정도의 시선은 늘어나고 있다. 오히려 이쪽이 고전적인 프로테스탄트 관점에 가깝다. 프로테스탄트 개혁자들은 이 책들을 '유익한 책' 정도로는 여겼고, 18세기 말까지 모든 전승의 개신교 성경에도 이 책들이 실려있었다.

3. 참고 문헌

70인역 본문
70인역 본문 (독일성서공회)
70인역 (그리스어 위키백과)

4. 관련 문서


[1] 에우에르게테스(Εὐεργέτης, Euergetes)는 그리스어로 '후원자'라는 뜻인데, 이집트 프톨레마이오스 왕조의 그리스인 파라오 프톨레마이오스 3세(재위: 기원전 246-기원전 221)와 프톨레마이오스 8세(재위: 기원전 169년 ~ 기원전 164년)가 받았던 호칭이기도 하다. 하지만 프톨레마이오스 3세나 프톨레마이오스 8세 모두 재위 기간이 30년을 채우지 못했으므로 '통치 38년'이라는 말과는 맞지 않는다. 실제 역사에 비추어 보면 70인역을 의뢰한 것은 프톨레마이오스 3세의 아버지인 프톨레마이오스 2세 필라델포스(Πτολεμαῖος Φιλάδελφος, 재위 기원전 283년~기원전 246년)이다. [2] 당장 마소라 본문만 하더라도 최초의 원문이 그대로 전해져온 게 아니라, 복잡한 본문 역사를 거쳤다. [3] 정교회 번역은 70인역을 중시하는 경향이 있고, 가톨릭과 개신교는 마소라를 바탕본문(Urtext)으로 하되 쿰란 문헌 및 고대 번역(70인역, 시리아어 성경, 옛 라틴어 성경, 불가타 등)으로 보완하는 경향이 있다. [4] 히에로니무스 불가타에서 원-마소라를 원문으로 채택했다. [5] 조금 더 깊이있게 들어가자면, 현재 가톨릭에서 사용하는 73권의 정경 목록은 AD 397년의 카르타고 공의회에서 발견되며, 개별 교부의 저작 중에선 당장 아우구스티누스의 《그리스도교 교양》De doctrina christiana II,8,13만 하더라도 제2경전이 포함된 정경 목록을 명시적으로 적고 있다.("Tobias .. et Iudith et Machabaerum libri duo ...") "5세기 초의 공의회들은 구약 경전을 정할 때 아우구스티누스의 입장을 받아들였다. 이들 공의회들은 지역적인 것이었지만, 이 목록들에 만장일치가 있었다는 사실은 이들이 서방 교회의 관례를 대변하는 것임을 보여준다."(교황청 성서위원회, 《그리스도교 성경 안의 유다 민족과 그 성서》Le peuple juif et ses Saintes Écritures dans la Bible chrétienne 18항)
다만 근대 그리스도교의 경우 "정경 목록이 몇 권이냐?"라는 질문의 대답이 실질적으로 "가톨릭이냐 개신교냐"를 가르는 정체성의 표현(73권이라 말하면 가톨릭, 66권이라 말하면 개신교) 노릇을 하는 반면, 고대 그리스도교는 그렇지가 않았다. 곧 정경 목록에서 소수설(예: 오늘날의 개신교에 가까운 정경 목록을 주장한 히에로니무스)은 이단적인 문제라기 보다는 말 그대로 학술적인 소수설로 취급되었다. 곧 정경 목록이 정체성 문제가 된 것은 개신교의 출현이라는 근대 서방의 특수한 역사적 경험과 얽혀있는 것이며, 바로 그렇기에 오늘날에도 정교회는 다소 엄밀하지 못한 정경 목록을 사용한다. 곧 대체로 개신교보다 넓은 정경 목록을 사용하되, 이를 정통과 이단을 가르는 문제로는 접근하지 않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