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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현(1980)/선수 경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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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해태- KIA 타이거즈 1기2. LG 트윈스 시절3. KIA 타이거즈 2기
3.1. 2009 시즌3.2. 2010 시즌3.3. 2011 시즌3.4. 2012 시즌
4. SK 와이번스 시절
4.1. 2013 시즌4.2. 2014 시즌
5. kt wiz 시절
5.1. 2015 시즌5.2. 2015 시즌 후, FA5.3. 2016 시즌
5.3.1. 자위행위 사건으로 임의탈퇴
6. 저니맨 외인구단 시절
6.1. 2017 시즌6.2. 2018 시즌
7. 연도별 성적

1. 해태- KIA 타이거즈 1기

군산상고 출신으로 원래는 이진영과 동기동창이었다. 트레이드 전에 잠깐 한솥밥을 먹은 적이 있었다. 하나 당시 키가 작다는 이유[1]로 인해 1년 유급하여 좌완투수 이승호, 이대수와 같이 졸업하게 되었고, 2000년 드래프트에서 2차 6순위(전체 42번)로 해태 타이거즈에 입단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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풋풋했던 해태 타이거즈 시절.귀엽다

입단 초기에는 크게 두각을 드러내지 못했고, 주로 대타 요원으로 뛰었다. 하지만 그의 인생이 크게 바뀌는 계기가 찾아오게 된다. 2002년 7월 29일, 잠실 LG전 9회초 무사 1루 상황. 기아는 1-3으로 뒤지고 있었고 마운드에는 미국에서 돌아온 마무리 좌완투수 이상훈. 게임이 끝나겠거니 하는 와중에 김성한 감독은 대타로 김상현을 지목했고, 김상현은 좌완투수 이상훈의 초구를 공략, 그대로 좌측 담장을 넘겨버리며 동점을 만들었다. 이 경기 후 당시 LG 트윈스 감독이었던 김성근 감독은 팀에 김상현의 영입을 요청, 마침 좌완 투수가 부족하고 3루에 정성훈이 있어 포지션이 중복된[2] KIA 타이거즈의 사정이 맞아떨어져 양팀은 좌완투수 방동민과 김상현을 맞교환하게 된다.[3]

당시 그 트레이드 소식을 들은 김상현은 상심한 나머지 밤에 소주 두 병을 마시고 취한 상태로 김성한 감독에게 가서 무릎을 꿇고 "제발 타이거즈에 남게 해주세요"라고 읍소했다(…).하지만 씨알도 안 먹혔다는 게 함정

2. LG 트윈스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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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G 트윈스 시절.

2003년부터 본격적으로 LG 트윈스 3루수로 뛰었다. 전반기에는 확실히 좋은 활약을 보였으나, 5월 22일 잠실 현대전에서 내야 뜬공을 놓치는 에러를 저질러서 다 이긴 경기를 날려먹었다. 이에 이광환 감독은 경기가 끝나자마자 아직 관중들이 다 나가지도 않았는데 코치들을 시켜 펑고 연습을 시켰다.[4][5] 그래도 이해 유독 찬스에서 강한 모습을 보였고 여튼 그렇게 자리를 잡으려고 했지만, 팔이 부러져 시즌 아웃을 당하고 말았다.

2004년에도 100게임 넘게 출장했지만, 파워에 비해 정교함이 없고 수비력도 좋지 못해 그저 그런 성적을 내는 데 그쳤다. 결국 2004시즌 종료 후 상무 피닉스 야구단 입대.

상무 입대 후에는 2군리그를 초토화시키며 홈런왕을 차지하였다. LG로 복귀한 2007년에 시즌 초반 최다 2루타 기록은 물론 장타율 5위권 내에 드는 등 좋은 활약을 하며 LG팬들을 기대하게끔 했으나, 시즌 중반부터 꼴아박으며 좋지 못한 시즌을 보냈다.

2008년에도 야수진이 아수라장이 되며 최하위로 추락하는 상황에서도 전혀 주전으로 자리잡지 못하고 1군과 2군을 오가며 있다가 2009년에는 달고있던 번호 7번마저 뺏기고 말았다. 이후 LG의 7번은 오지환이 다시 가져갔다. 여기에 FA가 된 정성훈이 들어오면서 김상현은 사실상 주전 자리에서 밀려났다. 오죽하면 감독이 김상현의 하이파이브를 무시하는 것이 짤방이 되었을까.

여담으로 이 시기에 주전 3루수로 뛰었음에도 불구하고 KIA로 간 이후에 인터뷰에서 LG에선 기회가 적었다라고 말하는 바람에 그에 대한 LG 팬들의 감정은 그다지 좋지 않다.[6] 이는 트레이드 후 4년이 지난 2013년까지도 안 좋아서 LG 트윈스 갤러리에서 한 갤러는 정재복 사인을 받았음 받았지 X곤조 사인은 안 받는다라는 말까지 남겼다.

3. KIA 타이거즈 2기

3.1. 2009 시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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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O 골든글러브 3루수 부문 수상자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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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8월 28일 잠실 두산전에서 데뷔 첫 30홈런을 기록하고 그라운드를 도는 모습.

그렇게 세월을 보내다 2009년 4월 19일, 두 번째 인생의 전환점이 왔다. LG 트윈스에서 투수를 얻기 위해 강철민을 받아오는 대신 내야 유틸리티 플레이어 박기남과 묶여[7] 친정팀인 KIA 타이거즈로 다시 보내진 것이다. [8] 김상현, 박기남 ↔ 강철민 트레이드 참고.

친정팀 기아로 오자마자 5번 3루수로[9] 붙박이 출장하며 심적 안정을 찾아서인지 좋은 타격을 보여주었다. 수비야 뭐 실책 하나 하면 타점 하나 올리면 된다는 마인드로 나서고 있으니까... 결국 엘빠 만화가인 최훈이 (LG에서 돌아온) 김상사라는 별명을 추가시켰다.[10]

특히 4월 26일 만루홈런, 28일 결승타 30일 만루홈런으로 그리고 5월 7일 또 만루홈런을 쳐서 야구팬들을 집중시켰다. 시즌 1,2,3호 홈런이 모두 만루 홈런이라 그 충격은 매우 컸고 KIA팬들은 이용규에 이어 다시 한번 사랑해요 LG를 외치고 있다.[11] 그 이후 부진(?)하다가 계속 홈런을 날리며 5월 15일에 5, 6호 홈런을 날렸다. 한 시즌 만루홈런 4개로 박재홍이 1999년에 기록했던 기록과 타이를 기록했다.

5월 30일에서야 규정 타석을 살짝 넘겼음에도 클리프 브룸바, 로베르토 페타지니에 이어 타점 3위에 랭크되었다. 최희섭의 우산 효과도 있지만, 최희섭을 거르면 피가 거꾸로 솟는다는 자신의 각오가 큰 위력을 발휘한 셈. 시즌 후반부에는 오히려 최희섭이 김상현의 덕을 보기도 했다. 말 그대로 CK포가 서로를 받쳐준 것. 그 후로도 침체기에 빠진 최희섭을 대신해서 팀을 짊어지며 잘 나갔고, 이 때부터 한대화급의 해결사 이미지를 굳혀갔다.

6월 4일, 두산전에서 홍상삼 상대로 8호 홈런을 때려냈는데, 그것도 베트가 부러졌는데도 타구가 펜스를 넘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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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8월달, 우주의 기운이 김상현에게 내려왔다. 8월의 김상현은 월간 최다 홈런 기록을 가지고 있다. 타이를 이루는 선수는 이승엽.


8월 8일, SK전에서 3연타석 홈런으로 5타점을 올리며 홈런 순위 공동 2위, 타점 순위 단독 1위에 올랐다.

8월 16일, 삼성전에서 투런 홈런을 쏘아올리며 브룸바와 홈런 공동 1위 등극!!

8월 21일, SK전에서 홈런 2방을 꽂아넣으며 드디어 홈런 단독 1위에 오르게 되었다.

8월 26일, 한화 전에서 2타점 적시타를 추가, 99경기만에 100타점을 넘겼고 쓰리런 장외 홈런을 날리며 홈런 레이스에서 선두를 굳게 지켜나갔다.



8월 28일, 두산전에서 홈런 2방을 치면서 드디어 30홈런을 달성했다! 시즌 중 가장 먼저 30홈런 고지에 도달한 것이다. 30홈런을 치고 난 뒤 두산 팬의 모습이 화면에 잡혔는데 (영상의 4분 21초) 직접 감상해보자. 저 표정은 정확히 3일 뒤 장성호에게 대타 만루홈런을 맞은 뒤 똑같이 나온다.[12] 여담으로 그 경기를 승리해 기아 타이거즈는 KBO 신기록인 월간 최다승인 20승을 기록하게 된다. 타이 기록은 2015년 5월, NC가 20승 1무 5패를 기록하며 생겼으나 당시 기아 타이거즈는 20승 4패를 기록했기 때문에 월간 최고 승률 기록은 깨지지 않았다. 김상현, 월간 홈런 타점 역대 최고에 도전

9월 18일, 히어로즈와의 경기에서 35호 홈런을 때리며 해태-KIA 국내선수 최다홈런 기록을 갈아치웠다. 종전 기록은 홍현우의 34개.[13]


9월 24일, 히어로즈와의 경기에서 매직넘버 1을 남겨놓고 1회 안타를 때려나며 타점 하나, 1:0에서 투런 홈런(36호 홈런)으로 도망가는 타점을 때려내며 정규시즌 우승의 1등 공신이 되었다. 그리고 경기의 마지막 타구인 강정호의 땅볼을 본인이 처리해 기아 타이거즈의 정규리그 우승을 결정짓는 역할까지 해냈다.

수비도 가끔 에러가 터지기는 하지만 예전보다 상당히 안정되었다는 평가. 하지만 그래도 09시즌 에러 1위다(...).[14]

KIA 타이거즈 2009년 우승의 일등공신. 압도적인 표 차이[15]로 2009년 정규시즌 MVP로 선정되었으며, 역시 압도적인 표 차이로 KBO 골든글러브도 차지하였다.[16] 시즌 중간에 트레이드된 선수가 MVP를 차지한 건 역대 최초이자 2023년 현재까지 유일무이한 사례.

2009년 연봉이 5,400만 원이었는데 연말에 11개의 수상을 하며 벌어들인 상금만 최소 6천만 원이 넘어간다고 한다. 뭐야 이거(...)
2009시즌 최종 성적
경기 안타 2루타 홈런 도루 볼넷 삼진 병살 타점 타율 출루율 장타율 OPS wRC+ sWAR*
121 141 30 36[17] 7 41 103 11 127 0.315[18] 0.379 0.632[19] 1.011[20] 155.4 5.87[21]
2009년 영광의 정규시즌 성적으로, 출루율 정도를 제외하면 거의 모든 지표에서 리그 최상위권 타자였으며, 특히 장타는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 또한 홈런왕과 타점왕을 동시에 차지하며 해태 시절 홍현우가 기록한 국내 선수 최다 홈런, 최다 타점 기록인 34홈런과 111타점도 넘어섰다. 특히 0.403이라는 엄청난 득점권 타율이 증명하듯 클러치 상황에서 매우 강했으며, 0.315의 타율은 팀내 1위의 기록이었다. 오히려 비득점권 타율은 타율/OPS에 비하면 의외로 낮았고, 출루율은 리그 19위로 강점은 절대 아니었다. 그래서 출루율이 0.435로 굉장히 높았던 최희섭과 비교하여 4번 타자보다는 한방을 쳐줄 수 있는 5번 타자감으로 더 적당하다고 보는 사람이 많다. 또 4번에 무시무시한 득점권 타율을 기록하고 있던 최희섭이 있었기 때문인 것도 있고. 실제로 2009년 한국시리즈에서 최희섭의 득점권 타율은 무려 5할일 정도로 득점권에 강했다.

다만 아이러니하게도 성적만 놓고 보면 2009년 리그 최고의 3루수는 바로 김동주였다. 좋지 못한 선구안과 수많은 삼진으로 인해 출루율이 0.380정도로 형성되어 생산성을 깎아먹었으며, 그래서 wRC+가 155정도로, 결코 리그를 정복했다고 말하기에는 어려운 수치이다. 세이버만 놓고 보면 김동주가 홈런은 19홈런으로 좀 적었을지언정, OPS 1.049에 wRC+ 170.9로 비율 스탯에서 우위를 가지지만 그놈의 잔부상 때문에 김상현보다 70타석을 덜 소화해서 sWAR+은 근소하게 김상현이 앞선다. 그래서 실제로는 3루 골글이나 MVP 수상에 있어서 김동주의 지분이 좀 적어진 감이 있지만, 결과적으로 아무도 기대하지 않았던 김상현의 각성으로 기아는 그 김성근의 SK마저 플옵으로 몰아내고 리그 1위를 차지했으며, 12년만의 한국시리즈 우승까지 차지했기에 김상현의 골글과 MVP 수상에 있어 큰 이견을 내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2009년의 김상현과 최희섭 이후로 2023년 현재까지 타이거즈에서 규정타석을 채우며 김상현보다 높은 wRC+를 기록했던 타자는 2020년과 2017년의 최형우, 2016년의 나지완, 그리고 2022년의 나성범이 전부라서 오히려 09 김상현이 팀에서 어느정도의 위치에 있었는지를 알게 해준다. 그야말로 타이거즈 역사에 당당히 이름을 남긴 몬스터 시즌.

2009년 한국시리즈에서는 정규시즌까지는 아니지만 1차전에서 추격의 희생플라이로 타점, 3차전에서 고효준에게 추격의 쓰리런 홈런, 4차전에서도 담장을 넘기나 했지만 펜스에서 기다리고 있던 박재상의 슈퍼플레이에 막히고 말았다. 5차전에서도 윤길현에게 안타를 뽑아냈고, 이후 이종범의 타구 때 유격수 나주환의 송구실책까지 나오며 한 점을 더했다. 6차전에서는 첫 타석에 안타를 기록했고, 두 번째 타석에서는 송은범의 공을 잘 받아쳐 넘어가는 듯 했으나 막판에 폴대 오른쪽으로 타구가 휘어버려 파울이 되어 버리고 말았다. 비디오 판독까지 했지만 결국은 파울로 인정되었다. 7차전에서는 안타는 없었으나 나지완이 홈런 2개 3타점(하나는 끝내기)을 기록하며 우승을 차지하였고 생애 첫 우승반지까지 끼게 되었다. 정규시즌만큼은 아니었고, 득점권 타율 5할의 최희섭이나 시리즈 후반부에서 활약했던 나지완만큼의 임팩트는 남기지 못했지만 심하게 부진하지도 않았다.



시즌 끝나고는 다큐에도 출현했다.

탈쥐효과를 제대로 받긴 했으나 LG 팬들은 심드렁한 모양새였다. 임팩트는 못해도 여러 면에서 김상현보다 무난한 정성훈을 데려와서 김상현의 자리가 없었던 것이기 때문.

3.2. 2010 시즌

엄청난 연봉 인상과 함께 시즌을 시작했지만 무릎 통증으로 인해 좋은 모습을 보이진 못했다. 사실 LG 트윈스에 있을 때부터 무릎 통증이 조금 있었는데, 아무래도 지난 시즌 KIA로 트레이드되고 나서부터 풀타임을 뛰면서 피로가 급격히 누적된데다 하필이면 홈구장이 국내 야구장 중에선 소말리아급이라는 무등야구장이라...

결국 무릎 통증을 안고 뛰며 4월 26일까지 타율 .198 5홈런 18타점 25삼진을 기록하며 부진하다가 2군으로 강등, 무릎 수술을 받았다. 무릎 부상에서 복귀한 후 지명타자로 뛰며 홈런 3개를 추가했는데, 6월 25일 잠실 두산전에서 주루 플레이 도중 발목을 접질려 또 부상을 당했다. 그렇지 않아도 연패중이던 팀은 그야말로 나락으로 떨어지며 해태 시절을 포함하여 최다연패인 16연패를 당했고, 결국 또 한 달이 지나서야 복귀했다.

8월에는 홈런 10개를 몰아치며 해결사 본능을 발휘했으나, 그 이후 다시 부진하면서 최희섭의 별명 중 하나인 농부에 빗대어 어부라는 별명이 새로 생겼다.

시즌 최종 성적은 타율 .215 21홈런 53타점. 전형적인 공갈포 스탯을 찍었다. 세부 스탯은 더 낮아서, 79경기 출장해서 볼넷을 33개 얻었는데 반해 삼진은 85개나 당했고, 그러다 보니 출루율도 막장이어서 3할을 가까스로 넘기는 정도에 불과했다.[22] 그나마 위안거리로 생각되던 장타율도 딱히 나은 건 아니어서 4할 5푼대를 기록하였다. 이러다 보니 파워로 인한 장타력은 여전했지만 그 21홈런빨로도 겨우 wRC+가 100밖에 안 나온 폭망한 시즌이 되었다. 이때부터 2009년의 활약이 플루크였다며 KIA팬들의 우려를 사기 시작했고 이는 현실이 되었다.

시즌 후 수비 부담을 덜기 위해 코치진에서 외야 전향을 시켰다. 본인은 3루를 고집하기도 했지만, 결국 이범호가 입단하게 되면서 11시즌부터는 좌익수로 출전하게 되었다.

이해 기록한 타율 .215 21홈런은 역대 최저타율로 20홈런을 넘긴것이다.

3.3. 2011 시즌

헬을 예상했던 외야수비는 그럭저럭 해주고 있지만 가끔씩 머리 너머로 날아가는 타구가 나올 때마다 TV앞이나 야구장에 있는 팬들의 심장을 철렁거리게 하는 똥줄수비를 보여줬다. 그래도 전반적인 평가는 괜찮은 편. 특히 어깨가 원래 강한 편이라 외야 전향 후에도 강견을 보여주었다.

4월 말까지 타율 0.164로 극심한 타격부진을 겪으면서 LG 시절 모습으로 돌아온 게 아니냐는 비아냥을 듣기도 했다. 아이러니하게도 수비에서는 좋은 모습을 보여주고 있어 '수비요정'으로까지 불리기도 했다.

4월 30일 광주 롯데전에서 배장호를 상대로 투런 홈런을 뽑아냈다. 방망이가 부활할 것인가? 5월 4일 목동 넥센전에서 금민철을 상대로 역전 쓰리런을 뽑아냈다.

그리고 잠깐 방망이가 주춤했으나, 6월 2일 LG 트윈스와의 경기에서 2점 쐐기 홈런, 6월 3일 SK 와이번스와의 경기에서는 4타수 3안타 1홈런 3타점의 맹활약을 했다. 게다가 좌중간을 가르는 2루타성 안타와 박재홍의 홈런성 타구를 온몸을 던져 잡는 등 수비에서도 맹활약했다. 타율은 0.226으로 굉장히 저조하나 타점은 28점으로 오히려 최희섭보다 높으며 홈런도 6개나 되는 등 천천히 타격감이 오르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6월 23일에는 김광현을 상대로 역전 쓰리런 결승타, 그리고 이어진 타석에서 연타석 쓰리런까지 터트리면서 혼자 6타점을 쓸어담아 기아팬들을 다시 설레게 하였다. 6월 28일 송승준을 상대로 역전 2타점 2루타를 날렸으며 6월 29일 라이언 사도스키를 상대로 투런 홈런을 날렸다!

6월 말의 기록은 0.235 9홈런 46타점 삼진 64 안타 54! 타점 수랑 안타 수 차이가 8개... 변태 같은 스탯을 찍긴 했지만 확실히 방망이가 살아났다.

7월 10일 LG전에서 선취 타점과 솔로 홈런을 때려내면서 개인 통산 100홈런 기록을 세웠다.

헌데 7월 29일 넥센과의 경기 도중 김상수의 142km/h 포심을 얼굴에 맞아 앰뷸런스에 실려갔는데, 왼쪽 광대뼈 부상이라고 한다.[23] 남은 잔여 경기를 생각할 때 거의 시즌 아웃에 가까웠다.

그런데 괴물같은 회복력으로 8월 25일 1군에 복귀하였다. 그리고 27일 SK전에서 이영욱을 상대로 투런 홈런을 날렸다. 이후로는 장타는 줄었지만 17경기 연속 출루, 4경기 연속 타점 등을 기록하며 좋은 타격을 보여주었다.

시즌 최종 성적은 타율 .255 15홈런 64타점. 하지만 잘할 때의 기간을 제외하면 선구안이 형편없어 출루율 3할대에 OPS 7할, wRC+도 그나마 많던 홈런빨로도 겨우 110이라 2010년처럼 폭망한건 아니어도 아쉬운 시즌을 보냈다.

SK 와이번스와의 2011년 준플레이오프에서 13타수 5안타 3볼넷 타율 .385, 장타율 .385, 출루율 .500을 기록하였고, 팀은 시리즈 전적 1승 뒤 3연패로 탈락했다.

여담으로 2011 한국 최고의 스포츠 사진의 주인공으로 선정되었다. 그런데 사진이 영...[24]

3.4. 2012 시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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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7일 개막전에서 스윙을 하다 왼쪽 손에 극심한 통증을 느껴 교체. 왼쪽 손바닥 골절로 3달 결장 판정을 받았다.

이후 계속 재활에만 매진하였다. 본인은 타격 빼고는 모두 OK라고 한다.

6월 22일부터 2군에 출전하며 타격감을 찾아갔다. 26일 2군에서 홈런을 때려내기도 했다.

6월 말 팀이 다시 상승세를 타는 상황이라, 팬들은 득점권에 강한 김상현의 복귀만을 기다렸다.

7월 12일 신종길 대신 1군에 등록되었으며, 예상보다 일찍 복귀를 했기 때문에 우선은 대타로 출장을 하게되며 몸 상태를 살펴보면서 선발 출장을 고려한다고 한다.

7월 18일 무등야구장 두산 베어스전에서 팀이 0:4로 앞선 2회말 첫 마수걸이 투런 홈런을 터뜨렸다. 비 때문에 경기취소가 될 우려가 있었지만 5회초가 끝나며 정식 경기로 인정이 되면서 활약이 물거품으로 돌아가지 않을 수 있었다.
팀은 4:7로 강우콜드승.

7월 19일 무등야구장에서 열린 두산 베어스전에서도 팀이 0:4로 리드하던 5회말 우익수 쪽 펜스 맞는 2루타를 때려내며 장타력이 아직 건재하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이후 최희섭의 2점 쐐기 홈런까지 더해지며 팀은 0:6으로 승리. 후반기 CK포의 부활을 기대하게 했다.

7월 24일 무등야구장 넥센 히어로즈전에서 7회말 좌중간을 가르는 솔로 홈런을 터뜨렸으나 팀은 5:1로 패배하면서 빛이 바랬다. 더불어 이 날 기아 타선에서 안타를 기록한 선수는 김상현과 최희섭, CK포 둘뿐.

이후 7월 29일 홈런을 기록하였고, 8월 들어 삽질을 하다가 8월 8일 우익수 수비 도중 펜스에 부딪히며 또 무릎 부상을 당하였다. 이래저래 유리몸 때문에 고생이 많은 상황.
8월 14일 수술에 들어갔다. 재활은 6주 정도가 걸릴 것으로 보고 있다.

9월 18일부터 2군에서 다시 몸을 가다듬기 시작. 2군 복귀 첫 경기만에 멀티히트 유리멘탈인 어떤 선수들과는 다르게 착실한 모습을 보이고 있기에 팬들은 김상현의 복귀만을 목빠지게 기다리고 있다.
부상으로 인해 2군으로 내려갔다가 수십일만에 올라온 김상현 선수가 32이닝 무득점 행진을 끝냈어요. 이게 지금 KIA입니다. - 이병훈 해설위원, 사사구에서
9월 21일 오랜만에 1군 선발 출장. 지명타자로 출장하였으며, 6회말 1타점 적시 2루타를 쳐내며 팀의 연속 이닝 무실점 기록(...)을 적절히 끊어주었다.

10월 1일 군산 월명 야구장 롯데 자이언츠전에서 팀이 0:4로 크게 이기던 2회말 2사 만루에서 신인 투수 이경우를 상대로 승부에 쐐기를 박는 만루 홈런을 터뜨렸다.

시즌 최종 성적은 32경기 출전 타율 .259 4홈런 17타점 17득점. 그놈의 부상이 원수다. 2013년에 SK로 트레이드 되기 전까지 2009년 빼고는 영 신통치 않은 모습만 보여주었고 결과적으로는 한 시즌 플루크로 KIA에서의 생활을 마치게 되었다.

4. SK 와이번스 시절

4.1. 2013 시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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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7일 김상현, 진해수 ↔ 송은범, 신승현 트레이드 후 SK 소속으로 첫 출장 경기에서 홈런을 친 후. 하지만 그 후...

시즌 중 2:2 트레이드[25]를 통해 SK 와이번스로 이적했다.

4.2. 2014 시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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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16일 스프링캠프 기간중 요미우리 자이언츠와의 연습경기때 지명타자로 선발출장하여 4타수 무안타를 기록하였고 팀은 요미우리와 3-3으로 무승부를 거두었다.

2월 25일 주니치 드래곤즈 2군과의 연습경기에서 역전 만루홈런을 쳐내며 경기 MVP로 선정되었다.

3월 30일 넥센전에서는 먼거리를 달려와 파울타구를 잡아내는 호수비를 보여주었다.

이후 계속 2군에만 있다가 4월 24일 1군에 복귀하였으며 4월 25일 롯데 자이언츠와의 경기에서 5타수 3안타 1타점 1득점으로 오랜만에 좋은 활약을 하였다.

5월 3일 롯데 자이언츠와의 홈경기에서 9회말 대타로 출장해서 김승회를 상대로 마수걸이 투런홈런을 때리며 경기를 1점차까지 좁혀놓았다. 그러나 뒷타자들이 맥없이 물러나며 경기는 패배했다.

그러나 그 이후에는 계속 부진했으며 5월 8일 이후 다시 2군으로 내려갔다. 2군에서는 비교적 괜찮은 활약을 보이고는 있지만 아직 1군으로 콜업되지 못하는 중. 본인이 내년 시즌을 위해 콜업을 거부했다고 한다.

7월쯤 콜업, 홈런도 치고 4년만에 3루타도 치는 등 올라온 뒤 2경기 까지는 잘 하고 있다.

9월 7일 추석 원정 두산 베어스와의 잠실경기에서 만루홈런을 치는등, 4타수 3안타 1홈런 6타점으로 맹활약하며 이날의 MVP로 선정되었다.

만루홈런을 쳤다라는 자체로도 대단하지만 이날 김상현의 비거리는 아직까지도 힘이 살아있음을 보여주는 비거리였다. 어지간한 구장이면 장외홈런도 나올법한타구이고 잠실이어서 상단 광고판을 맞췄다. 그 구장도 넓고 외야 관중석도 넓은 잠실구장에서 모두가 뒤를 봐야만 낙하지점을 알 수 있는 타구를 보냈다 안경현 해설위원은 우즈이후로 이런홈런은 처음본다라고 평가했다. 영상

그러나 이후에는 딱히 좋은 모습을 보이지 못한 채 시즌을 마감하였다. 시즌 최종 성적은 42경기 87타석 80타수 21안타 5홈런 20타점 8득점 1도루 6사사구 타율 0.262.

5. kt wiz 시절

11월 28일, kt의 20인 외 특별지명으로 kt로 이적하게 되었다. 공교롭게도 그의 커리어하이 시즌인 2009년 당시 KIA의 감독이였던 조범현과 타격코치 황병일과 다시 조우하게 되었다. 이렇게 해서 김상현은 세 개의 통신사 에서 선수생활을 경험하게 되었다. 그래서 이런 드립도 나왔다. 댓글 참조

kt 이적후 "야구장 펜스만 보면 (홈런을 쳐서) 넘기고 싶다."라는 포부를 드러냈다.

5.1. 2015 시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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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범현 감독이 기대했던 kt wiz의 중심타자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20홈런도 무난하게 넘기며 제 2의 전성기를 기대하게 하는 모습. 오랜만에 제대로 된 실력발휘를 하면서 kt의 중심으로 거듭나는 중.

5.2. 2015 시즌 후, FA

시즌 후 FA 자격을 얻게 되며 kt 구단 창단 첫 FA 선수가 되었다. 우선 협상 마감일이었던 11월 28일 저녁 4년 17억원에 계약했다. 더 퍼줬어도 아깝지 않았을 것이라는게 중론.[26]

정작 본인은 위 계약에 구단에 매우 감사하다는 뜻을 밝혔다. FA거품시대에 비교적 적은 금액에도 감사함을 느끼는 모습에 팬들의 찬사가 이어진 건 당연. “17억도 큰 돈인데…” kt 김상현의 울림

5.3. 2016 시즌

시즌 전, 조범현 감독이 40홈런은 칠 수 있을 것이라고 예언했다. 작년 박경수 20홈런 예언이 적중했는데 올해는 과연...?

3월 8일, 시범경기 개막전에서 당겨치고 밀어치는 연타석 홈런으로 3타점을 올렸으나 경기는 무승부로 끝났다. [미스터 스프링]‘홈런 2방’ 김상현 “더 일찍 생각 바꾸지 못한 것 후회”

4월 2일, 친정팀 SK와의 시즌 두 번째 경기에서 연장 10회말 1사 만루의 위기상황에서 박재상의 평범한 병살성 타구를 포구하는데는 성공했으나 어처구니 없이 뒤로 벌러덩 넘어지면서 끝내기 실책을 저지르고 말았다. 야구 관련 각종 사이트에서는 히 드르렁 더 볼과 같은 온갖 관련 드립들이 터지고 있다. 송중기 1킬 추가 경기 종료 후 한동안 일어서지 못한 채 발을 매만져서 부상이 아니냐는 우려도 있었지만 다행히 부상은 아닌 듯 싶다.

그러나 무릎 통증으로 다음 날 경기에서 빠졌으며 추후 엔트리 제외까지 고려하고 있다는 기사가 떴다. 부상은 맞는 듯했으나 다행히도 엔트리 제외 없이 금방 복귀했고, 4월 10일 수원 KIA전에서 2회 윤석민, 6회 홍건희를 상대로 투런포 두 개를 쏘아올리며 시즌 1호 2호 홈런을 신고했다. 특히 2호 홈런은 2015년 박병호에 이어 하이트펍을 넘겨버리는 두 번째 홈런으로 비거리 145m로 기록되면서 수원야구장에서의 가장 큰 홈런 기록을 갈아치웠다. 이제 통산 150홈런까지 한 개 남았다.

그리고 12일 넥센전에서 두 경기 연속 홈런을 기록하며 통산 40번째 150호 홈런의 주인공이 되었다. 팀은 이날 넥센 선발 신재영의 호투에 2-5로 지면서 아쉬움을 남겼다.

하지만 위의 4월 10일 경기 이후에는 4월동안 홈런을 단 2개 추가하는데 그쳤고 극심한 타격 부진까지 찾아와 5월 초반을 기준으로 타율이 딱 2할대를 기록하는 부진에 빠져있다. 이후에도 살아날듯 하다가 찬물을 끼얹는 모습을 반복하고 있다. 팬들은 부진한테도 영웅 풀스윙을 한다며 비판하고 있다.

이렇게 작년보다 훨씬 페이스가 떨어지며 부진하던 중에 허리 통증으로 6월 2일 경기전에 엔트리에서 말소되었다. 일단 사흘정도 쉰 뒤에 익산으로 합류할 예정이라고 한다. 말소 전까지 성적은 타율 0.235, 9홈런, 26타점으로 작년보다 훨씬 뒤쩔어진 성적을 기록한 상태였다.

이후 6월 17일에 복귀, 이날 경기서 4회 대타로 나와 병살타를 기록하며 화려한 복귀신고를 알렸다.

복귀 이후에도 타격감은 계속 바닥이었고 6월 26일부터 7번 타자로 강등되었다.

7월 12일 넥센과의 경기에서 3회까지 소화한 후, 김연훈과 교체되었다. [27]

7월 13일 밑에 나와있는 사건 하나로 인해 구단에서 임의탈퇴 처리하였다. 야구인생의 커리어가 사실상 끝났다. 나이도 많을 뿐더러 실력도 예전만 못하기에 사실상 강제은퇴나 마찬가지다.

5.3.1. 자위행위 사건으로 임의탈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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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저니맨 외인구단 시절

6.1. 2017 시즌

최익성 대표의 인터뷰를 통해 유창식과 함께 독립구단인 저니맨 외인구단에서 뛰고 있음이 밝혀졌다.

4월 24일 목동 야구장에서 열린 연천 미라클과의 개막전에서 4번타자로 출장하여 5타수 4안타 1타점 4득점 1도루를 기록했다. 그 뒤로도 다수의 홈런을 치는 등 한국독립야구리그를 폭격중. 점점 임의탈퇴 해제 기간이 다가오고 있기 때문에 여기서 좋은 모습을 보여야 복귀가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7월 8일 기사를 통해 김진욱 kt감독이 "여론의 반응도 살펴봐야 하겠지만, 1년의 시간이면 충분한 반성의 기간이 되지 않을까"라고 언급하며 김상현에게 기회를 주고 싶다고 밝혔다. 기사에 따르면 김상현은 500만원의 벌금 및 임의탈퇴 징계 외에도 리틀야구단에 재능기부를 하며 반성의 시간을 보냈다고 한다. 누리꾼들의 반응은 찬반이 엇갈리지만, 도박들도 야구를 하는데 김상현은 못할게 뭐있냐는 반응이 다수다. 네이버 댓글 상황 다음 댓글 상황

김상현 본인은 7월 9일 기사를 통해 "내가 풀어야 할 문제는 내가 풀어야 한다. 감독님께 그 짐을 떠넘기고 싶지 않다"는 입장을 내보이는 중. 그는 "(김감독이 본인을)생각해주셨다는 자체가 감사하다. 팀에 민폐를 끼친 것 아닌가. 복귀 여부는 전적으로 구단의 판단이다"라며 선을 그었다.

그리고 7월 14일, kt wiz는 김상현의 임의탈퇴를 해제하고 웨이버 공시를 통해 김상현을 방출했다. 현재 kt가 젊은선수들을 주축으로 팀을 리빌딩중인데다 트레이드를 통해 넥센 히어로즈의 강타자인 윤석민을 영입했기 때문에 김상현의 자리가 없어서 이별을 선택한듯. 다행히도 FA 잔여연봉은 받는다고 한다. 이후 저니맨 외인구단의 감독인 최익성의 인터뷰에 언급된바에 따르면 김상현은 kt구단 관계자랑 만나 좋은 얘기를 나눈것으로 보였으나, 방출이라는 결과가 나오자 최익성 감독과 통화하면서 펑펑 울었다고 한다.

7월 25일, 결국 웨이버 공시기간동안 그를 찾는 팀이 없어서 올해에는 KBO 리그에서 뛸 수 없게 되었다. 1년간 쉰 노장인데다 kt와 2019년까지 FA 계약이 된 상태라 그를 대려갈 구단이 올해 남은 연봉 약 1억원 & 내년 연봉 2억원+옵션 1억원도 승계해야 하는데 금전적 부담이 있어 프로팀들이 눈을 돌린듯. 내년에 이 제한이 풀리더라도 다른팀들이 관심을 보일만큼 김상현의 몸상태가 베스트일지 어떨지 모르기 때문에 앞날이 어두운 상황에서 12월 19일 언론보도를 통해서 2018년부터 저니맨 선수 겸 2대 감독으로 활동한다는 소식이 전해진다.

6.2. 2018 시즌

이후 2018년 5월 16일자 엠스플뉴스 기사에 따르면 이날 기준으로 약 2주전, 그러니까 5월 초경에 합의하에 팀을 탈퇴했다고 한다. 관계자 말에 따르면 열악한 독립구단의 환경과 함께 개인사가 맞몰려 떠나게 됐다고. 후임으로는 위재영 인스트럭터가 대행을 맡게됐다.

엠팍에서의 언급에 따르면 은퇴 이후 인천에 거주하고 있으며[28] 인천 신흥동에 베이스볼 아카데미를 차렸다고 한다. 이후 한국 선수들로 구성된 호주 프로야구 리그 소속 질롱 코리아에 합류할 것이라는 얘기가 있었으나 합류하지 않았다. 요기

7. 연도별 성적

역대 기록
연도 소속팀 경기 타수 타율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타점 득점 도루 4사구 장타율 출루율
2001 KIA 16 20 .150 3 0 0 1 4 2 0 0 .000 .000
연도 소속팀 경기 타수 타율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타점 득점 도루 4사구 장타율 출루율
2002 LG 31 32 .313 10 0 1 1 6 7 0 10 .469 .476
2003 55 182 .269 49 9 1 7 28 24 7 23 .445 .346
2004 100 277 .242 67 10 2 9 35 37 7 35 .390 .326
2005 군복무( 상무 피닉스 야구단)
2006
2007 121 378 .235 89 27 0 7 41 44 6 43 .362 .311
2008 75 214 .243 52 9 2 8 18 28 2 22 .416 .311
연도 소속팀 경기 타수 타율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타점 득점 도루 4사구 장타율 출루율
2009 KIA 121 448 .315 141 30 2 36
(1위)
127
(1위)
77 7 47 .632
(1위)
.379
2010 79 288 .215 62 5 1 21 53 44 3 41 .458 .312
2011 101 357 .255 91 15 0 14 64 38 8 46 .415 .338
2012 32 116 .259 30 9 0 4 17 17 1 9 .440 .312
연도 소속팀 경기 타수 타율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타점 득점 도루 4사구 장타율 출루율
2013 KIA / SK 113 322 .236 76 17 0 7 37 39 8 33 .354 .304
2014 SK 42 80 .263 21 3 1 5 20 8 1 6 .513 .310
연도 소속팀 경기 타수 타율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타점 득점 도루 4사구 장타율 출루율
2015 kt 134 475 .280 133 20 0 27 88 71 4 58 .493 .354
2016 62 222 .225 50 5 0 11 32 29 0 22 .396 .293
<rowcolor=#373a3c> 통산 1082 3411 .256 874 159 10 158 570 465 54 373 .448 .331


[1] 본인의 이야기에 의하면 고교 졸업 당시까지만 해도 키도 작고 파워도 약한 편이었는데, 프로에 입단하면서 급성장했다고 한다. [2] 하지만 정성훈은 시즌 종료 후 박재홍을 얻기 위해 현대 유니콘스로 보내진다. 대신 3루를 맡게 된 선수는 바로 이현곤. [3] 문제는 김성근 방동민의 부상을 숨겼다는 점. 설상가상으로 기아에 오고 2주만에 인대가 찢어졌다. 때문에 이후 김성한이 야구계 선배가 이럴 수 있냐고 화를 냈다. 통산 1패뿐인 방동민은 2006 시즌 후 KIA에서 방출당했다. [4] 이 장면은 당시 지상파 스포츠 뉴스에도 보도가 되었다. 관중들이 동물원 우리 안에 있는 동물을 바라보는 것과 비슷한 눈빛을 하고 있는 게 인상적. [5] 이 점에 대해서는 이광환 감독이 김성근 감독 재임시절 데려온 김상현을 좋지 않게 봐서 그랬다는 음모론도 존재하긴 한다. 김성근 감독과 이광환 감독은 서로 사이가 좋지 못하기 때문. 하지만 어디까지나 음모론이니 섣불리 믿는 건 곤란하다. [6] 당시 LG의 팀 뎁스는 이효봉의 연고지 팜 박살의 후유증으로 2010년대 한화나 KIA마냥 휘청거리던 때였다. 그렇기에 수비는 몰라도 타격 면에서 포텐셜이 있었던 김상현에게 주전 3루수로 많은 기회가 주어졌다. 하지만 숱한 기회가 주어졌음에도 불구하고 타격은 공갈포였으며 수비면에서도 전혀 개선점이 없었다.(다만 2007, 2008년은 투고타저 시대였음을 감안해야 한다.) 당시 LG의 팀 컬러가 장타 포텐이 있는 선수들과 유독 안 맞는 부분이 있긴 했지만, 그걸 감안하더라도 LG 팬 입장으로서는 좋게 들릴 수 없는 핑계이긴 하다. [7] 본래 기아는 김상현만 받아올 생각이었는데, LG가 박기남까지 얹어주자 얼씨구나 하면서 둘 다 받아왔다. [8] 전설의 타이거즈에서 김종모 수석코치가 술회하길 김종모는 영입 찬성, 조범현 감독은 영입에 반대하는 입장이었으나 설득하여 기아로 영입하는 데 성공했다고 한다. 결과적으로 김종모의 선구안이 맞은 셈. [9] 중간에 한 번 좌익수로 선발 출장한 적이 있다. [10] 이 별명은 최훈이 소개하기 며칠 전부터 야구 사이트들 사이에서 불리기 시작했다. [11] 2005년 KIA는 LG에 투수 이원식과 소소경을 주고 이용규를 받았다. 2004년 엘지에서 52경기 출장, 0.129의 저조한 타율을 보여주던 이용규는 기아에서의 첫 시즌인 2005년부터 30도루를 찍더니 2006년에는 타율 3위-.318 도루 38개의 몬스터 시즌을 보여주기도... 이후에도 2008 베이징 올림픽에서의 주전급 활약으로 전국구 스타로도 발돋움 했다. [12] 의 4분 4초 [13] 외국인 선수까지 포함하면 트레이시 샌더스의 40개다. [14] 김상현뿐만이 아니라 내야수의 1루 송구 에러가 현저히 줄어들었는데, 이는 최희섭의 공이 크다. 그의 신체 사이즈와 포구 실력은 확실히 메이저리거 급이다. [15] 김상현 79표, 김현수 7표, 박용택 3표, 김광현 1표 [16] 물론 경쟁자가 없었던 것은 아니며 타율, OPS, wrc+에선 김상현 못지 않은 좋은 성적을 냈던 김동주가 앞섰으며 김상현이 트레이드되지 않았다면 압도적으로 골든글러브를 차지했을 성적이었다. [17] 리그 1위 [18] 리그 7위 [19] 리그 1위 [20] 리그 5위 [21] 리그 3위 [22] 이게 얼마나 심각한 거냐면 이 해 깝깝하다며 가루가 되도록 까인 이대형이 기록한 출루율이 0.333이다. [23] 이와 같은 부상을 당한 선수들로는 이종범, 심정수, 조성환 등이 있다. 조성환의 경우 39일 만에 경기에 출장했고, 심정수는 약 2달이 걸렸다. [24] 제목은 '얼굴없는 강타자'로, 7월 13일 광주에서 열린 프로야구 경기에서 김상현이 두산 투수였던 페르난도 니에베의 강속구에 머리를 맞고 쓰러지는 역동적인 장면을 담아내어 선정되었다고 한다. [25] 김상현, 진해수 ↔ 송은범, 신승현 트레이드. [26] 계약 자체도 옵션이 있는 데다가 세부옵션도 공개되지 않았다. [27] 7월 12일 마이데일리 기사에 따르면 실명이 공개되자 마자라고 한다. [28] 부인이 인천 출신인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SK 이적 이후에 생활했던 곳 역시 인천의 처가였다고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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