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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크 매덕스 문서 참고하십시오.
그렉 매덕스 관련 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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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예의 전당 헌액자 | ||||||||||||||||||||||||||||||||||||||||||||||||||||||||||||||||||||||||||||||||||||||||||||||||||||||||||||||||||||||||||||||||||||||||||||||||||||||||||||||||||||||||||||||||||||||||||||||||||||||||||||||||||||||||||||||||||||||||||||||||||||||||||||||||||||||||||||||||||||||||||||||||||||||||||||||||||||||||||||||||||||||||||||||||||||||||||||||||||||||||||||||||||||||||||||||||||||||||||||||||||||||||||||||||||||||||||||||||||||||||||||||||||||||||||||||||||||||||||||||||||||||||||||||||||||||||||||||||||||||||||||||||
그렉 매덕스 | |||||||||||||||||||||||||||||||||||||||||||||||||||||||||||||||||||||||||||||||||||||||||||||||||||||||||||||||||||||||||||||||||||||||||||||||||||||||||||||||||||||||||||||||||||||||||||||||||||||||||||||||||||||||||||||||||||||||||||||||||||||||||||||||||||||||||||||||||||||||||||||||||||||||||||||||||||||||||||||||||||||||||||||||||||||||||||||||||||||||||||||||||||||||||||||||||||||||||||||||||||||||||||||||||||||||||||||||||||||||||||||||||||||||||||||||||||||||||||||||||||||||||||||||||||||||||||||||||||||||||||||||||
헌액 연도 | 2014년 | ||||||||||||||||||||||||||||||||||||||||||||||||||||||||||||||||||||||||||||||||||||||||||||||||||||||||||||||||||||||||||||||||||||||||||||||||||||||||||||||||||||||||||||||||||||||||||||||||||||||||||||||||||||||||||||||||||||||||||||||||||||||||||||||||||||||||||||||||||||||||||||||||||||||||||||||||||||||||||||||||||||||||||||||||||||||||||||||||||||||||||||||||||||||||||||||||||||||||||||||||||||||||||||||||||||||||||||||||||||||||||||||||||||||||||||||||||||||||||||||||||||||||||||||||||||||||||||||||||||||||||||||||
헌액 방식 | 기자단(BBWAA) 투표 | ||||||||||||||||||||||||||||||||||||||||||||||||||||||||||||||||||||||||||||||||||||||||||||||||||||||||||||||||||||||||||||||||||||||||||||||||||||||||||||||||||||||||||||||||||||||||||||||||||||||||||||||||||||||||||||||||||||||||||||||||||||||||||||||||||||||||||||||||||||||||||||||||||||||||||||||||||||||||||||||||||||||||||||||||||||||||||||||||||||||||||||||||||||||||||||||||||||||||||||||||||||||||||||||||||||||||||||||||||||||||||||||||||||||||||||||||||||||||||||||||||||||||||||||||||||||||||||||||||||||||||||||||
투표 결과 | 97.19% (1회) |
그렉 매덕스의 수상 경력 / 보유 기록 / 역대 등번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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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LB 월드 시리즈 우승반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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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5 |
1992년 ~ 1995년 메이저 리그 내셔널 리그 사이 영 상 | ||||
톰 글래빈 ( 애틀랜타 브레이브스) |
→ |
그렉 매덕스 ( 시카고 컵스 / 애틀랜타 브레이브스) |
→ |
존 스몰츠 ( 애틀랜타 브레이브스) |
1990년 ~ 2002년 메이저 리그 내셔널 리그 투수 부문 골드 글러브 | ||||
론 달링 ( 뉴욕 메츠) |
→ |
그렉 매덕스 ( 시카고 컵스 / 애틀랜타 브레이브스) |
→ |
마이크 햄튼 ( 애틀랜타 브레이브스) |
2004년 ~ 2008년 메이저 리그 내셔널 리그 투수 부문 골드 글러브 | ||||
마이크 햄튼 ( 애틀랜타 브레이브스) |
→ |
그렉 매덕스 ( 시카고 컵스 / 로스앤젤레스 다저스 / 샌디에이고 파드리스) |
→ |
애덤 웨인라이트 (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 |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 연대별 최저 E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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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와이트 구든 (2.64/ 1980년대) |
→ |
그렉 매덕스 (2.54/ 1990년대) |
→ |
페드로 마르티네스 (3.01/ 2000년대) |
초대 수상자 | → |
그렉 매덕스 ( 로스앤젤레스 다저스) |
→ |
요한 산타나 ( 미네소타 트윈스) |
보유 기록 | |
최다 연속 이닝 무볼넷 | 72⅓이닝 |
최다 연속 사이 영 상 수상 | 4시즌[1] |
통산 최다 골드글러브 수상 | 18회[2] |
통산 최다 시즌 15승 | 18회 |
통산 최다 QS | 480회 |
시카고 컵스 등번호 31번 | ||||
레이 폰테넛 (1985~1986) |
→ |
그렉 매덕스 (1986~1992) |
→ |
케빈 포스터 (1994~1998) |
애틀랜타 브레이브스 등번호 31번 | ||||
제프 리어든 (1992) |
→ |
그렉 매덕스 (1993~2003) |
→ | 영구결번 |
시카고 컵스 등번호 31번 | ||||
마크 거스리 (2003) |
→ |
그렉 매덕스 (2004~2006) |
→ |
퍼거슨 젠킨스 /
그렉 매덕스 영구결번 |
로스앤젤레스 다저스 등번호 36번 | ||||
랜스 카터 (2006) |
→ |
그렉 매덕스 (2006) |
→ |
로베르토 에르난데스 (2007) |
샌디에이고 파드리스 등번호 30번 | ||||
히스 벨 (2007) |
→ |
그렉 매덕스 (2007~2008) |
→ |
엘리제 알폰소 (2009) |
로스앤젤레스 다저스 등번호 36번 | ||||
대니 아도인 (2008) |
→ |
그렉 매덕스 (2008) |
→ |
제프 위버 (2009~201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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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카고 컵스 No.31 | 애틀랜타 브레이브스 No.31 | |
<colcolor=#ffffff> 그렉 매덕스
Greg Maddux |
||
<colbgcolor=#13274f> 생년월일 | 1966년 4월 14일 ([age(1966-04-14)]세) | |
본명 |
그레고리 앨런 "그렉" 매덕스 Gregory Alan "Greg" Maddux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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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적 |
[[미국| ]][[틀:국기| ]][[틀:국기|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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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신지 | 텍사스 주 샌앤젤로 | |
신체 | 183cm / 77kg | |
포지션 | 선발 투수 | |
투타 | 우투우타 | |
프로 입단 | 1984년 드래프트 2라운드 전체 31번 ( CHC) | |
소속팀 |
시카고 컵스 (1986~1992) 애틀랜타 브레이브스 (1993~2003) 시카고 컵스 (2004~2006) 로스앤젤레스 다저스 (2006) 샌디에이고 파드리스 (2007~2008) 로스앤젤레스 다저스 (200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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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 | 형 마이크 매덕스 | |
별명 | 볼의 마술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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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내가 야구를 통해서 배운 것은
나의 투구 이외에 경기의 나머지 부분들은 내가 어찌해 볼 도리가 없다는 것이었다."
미국의 전
야구 선수로, 포지션은
투수였다.최후의 350승[4] 투수로, 1990년대 이후의 현대 야구에서는 단연코 랜디 존슨, 전성기의 페드로 마르티네스와 함께 최정점에 오른 투수로 평가받는다. 랜디 존슨과 함께 4년 연속 사이 영 상을 수상[5]한 둘뿐인 투수이며 시카고 컵스, 애틀랜타 브레이브스 두 팀에서 영구결번된 투수이다.
2. 선수 시절
물음표 가득한 유망주에서 특급 에이스로 활약한 시카고 컵스 시절 | 최고의 전성기를 구가했던 애틀랜타 브레이브스 시절 |
잠깐 거쳤던 로스앤젤레스 다저스 시절 | 말년을 보낸 샌디에이고 파드리스 시절 |
1990년대, 애틀랜타 브레이브스의 전성기를 이끌던 투수들 중 한 명이자 그들 중에서도 가장 유명하다.[6] 따라서 애틀랜타 브레이브스에서의 매덕스가 제일 평가도 높고 제일 유명하지만, 실은 시카고 컵스의 2라운더로 입단했다.
그의 아버지가 공군의 조종사. 다시 말해 군인 자녀였기 때문에 어린 시절의 대부분은 스페인의 마드리드에서 보냈어야 했다.[7] 고향으로 돌아온 아버지는 형인 마이크 매덕스[8]와 그렉 매덕스를 야구에 입문시켰다. 원래 형인 마이크가 처음부터 발군이었으나 금세 따라잡아 버렸다고. 그들을 가르친 라스베가스 벨리 고등학교 야구부 코치가 메이저리그 팀 스카우터 출신이었던 러스티 메다였는데, 메다는 "공의 속도 보다, 제구력과 무브먼트가 훨씬 중요한 것이다."라고 가르쳤는데, 이는 매덕스에게 거의 종교 수준이었다고 한다. 실제로 매덕스는 "나는 공을 더 빨리 던질 수 있다. 근데 왜 그렇게 빨리 던져야 하는거지?"라고 고교 시절 코치들에게 의문점을 던졌다고 한다. 그에 대한 답을 준 게 바로 러스티 메다였다고.
1982년 드래프트 즈음에 마이크 매덕스를 찾아온 스카우터들에게 매덕스 형제의 아버지가 "니들 몇 년 뒤에 또 우리 집 와야됨."이라고 호언장담한 것은 유명한 일화. 스카우터들은 그 당시만 해도, 구속이 84~5마일에 불과한 그렉을 보곤 "제구는 좋은데 구속이 영... 많이 봐줘야 5~6라운드 정도 아닐까?"라며 탐탁지 않게 봤는데, 진짜로 2년 뒤에 또 찾아왔다.
여하튼 1984년 시카고 컵스의 2라운더로 입단해 마이너리그 생활을 시작했다. 문제는 메이저리그에서 그의 실력이 과연 통하느냐는 의문이었다.
사실 그도 그럴 게, 매덕스는 대학에서도 러브콜을 거의 받지 못 했고, 프로팀 스카우터들도 그를 탐탁지 여기지 않았다고 한다. 컵스가 1라운더로 차마 지명하지 못 했던 건 비리비리한 마른 몸 때문에 체력 문제가 거론되었다는 것. 제구와 무브먼트가 뛰어난 건 사실이지만, 딱 그 정도까지의 유망주였던 셈. 기대 반 걱정 반으로 터지면 대박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2라운더로 지명했다고 한다. 오죽하면, 1986년에 메이저리그로 첫 콜업이 됐을 때 돈 짐머 감독이 "살 좀 찌워라. 로테 못 돌고 쓰러질 거 같다."는 반응이었다고 실제로 팀 린스컴 만큼이나 마른 몸이었다고 한다. 시즌 내내 매덕스는 웨이트에 매달렸고, 내년 시즌인 1987년에 몸을 찌워온 모습을 본 돈 짐머 감독은 "근데 왜 팔다리는 그대로냐?"며, 상당히 궁금해 했다고 한다. 당장 상기의 컵스 시절 모습을 보자. 상당히 마른 편인데, 저 게 찌워온 거다,
시카고 컵스 시절만 간략하게 요약하자면, 스카우팅 리포트에서 보이듯이 파이어볼러는 결코 아니기 때문에 마이너리그 시절부터 제구와 구위 만을 중점적으로 다듬었고, 2년 만인 1986년 메이저리그 데뷔전을 치르며, 6경기 31이닝 2승 4패 5.52를 기록한다. 우리가 아는 매덕스와는 조금 거리가 있는 모습이다. 제이미 모이어는 7승 4패. 1987년에는 스프링캠프에서 좋은 모습을 보여주며, 개막 로스터에 포함되었으나, 30경기 155.2이닝 6승 14패 5.61을 기록했다. 또한 시즌 최다패를 기록하기도 했다.
물론, 입단 동기이자, 메이저리그 데뷔 동기인 제이미 모이어[9]도 12승 15패 를 기록했으니 별로 이상할 건 없다. 사실 이닝이터의 속성이 있다면 무조건 올리는 게 맞다.
하지만 이듬해인 1988년 249이닝 18승 8패 ERA 3.18을 달성하며 포텐이 폭발했고, 우리가 아는 그 매덕스의 14년 연속 200이닝+17년 연속 15승 이상 달성의 전설을 써내려간 서막이 되었다.[10]
이후 컵스는 FA가 된 에이스 매덕스를
매덕스는 1988년부터 2004년까지 무려 연속으로 15승을 따냈을 뿐더러 사이 영 상을 네 번이나, 그것도 연속[11]으로 따내는 기염을 토했다. 물론 그가 오기 전에도 애틀랜타는 월드 시리즈에 오를 수 있는 강팀의 반열에 올랐지만, 14년 연속 지구 우승을 달성할 수 있는 원동력은 당연히 매덕스의 공도 컸다.[12]
이후 매덕스는 시카고 컵스, 샌디에이고 파드리스, 로스앤젤레스 다저스를 거쳐 355승의 전설적인 누적 성적을 쌓고 명예롭게 은퇴하였다.
2.1. 포스트시즌
메이저리그 데뷔 이래 첫 포스트 시즌인 1989년 NLCS에 선발로 출장해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를 상대로 7.1이닝 13피안타 4볼넷 2홈런 12실점으로 대패했다. 결국 컵스는 시리즈 전적 5차전까지 1승 4패로 힘없이 물러났고, 샌프에게 27년 만의 월드시리즈 진출을 허용하고 만다.클리블랜드 인디언스와의 1995년 월드 시리즈 1차전에 선발로 등판해, 9이닝 2실점 2피안타 4K 무볼넷 완투승을 거둔다. 5차전에서는 7이닝 4실점 7피안타 1피홈런 4K 3볼넷으로 무너지며 패전투수가 되었다. 참고로 매덕스를 상대로 홈런을 때려낸 선수가 다름 아닌 알버트 벨이다. 어찌 됐든 6차전에서 톰 글래빈이 8이닝 무실점으로 활약하며 승리를 따냈고, 팀은 시리즈 전적 4승 2패로 연고지 이전 후 첫 월드시리즈 우승을 차지한다. 이는 매덕스가 유일하게 경험한 월드시리즈 우승이다.
뉴욕 양키스[14]와의 1996년 월드 시리즈 2차전에 선발로 등판해 철저히 양키스의 타선을 막아 팀을 승리로 이끌었다. 그러나 팀은 2승 후, 4연패를 하며 양키즈에 우승을 내주었다. 본인도 6차전에 선발 등판해 7.1이닝 3실점으로 QS를 기록했지만 패전 투수가 되면서 팀의 시리즈 패배를 막지 못했다.
3년 후 뉴욕 양키스와 1999년 월드 시리즈에서 또 만나는데, 1차전에 7이닝 1실점으로 호투했으나 타선이 점수를 뽑지 못 하고 주자를 남겨둔 상태에서 강판당했고, 뒤이은 불펜이 불을 열심히 지르며 패전투수가 되었다. 결국 팀은 4연패로 양키스에게 다시 우승을 내주었다.[15]
3. 그의 전성기와 평가
자세한 내용은 그렉 매덕스/전성기 문서 참고하십시오.4. 피칭 스타일
스카우팅 리포트 ▶ '모든 구종'을 '원하는 곳'에 '원하는 속도'[16]로 던진다. [17] ▶ 구속은 그리 빠르진 않으나, 완벽한 무브먼트를 지닌 패스트볼. ▶ 실투가 거의 없다. |
나는 매덕스가 파워 피처가 아니라는 말에 동의하지 않는다. 노 볼 투 스트라이크 카운트에서 스트라이크를 잡으려고 들어오는데 그가 파워 피처가 아니면 누가 파워 피처인가?
ㅡ 배리 본즈
ㅡ 배리 본즈
흔히 알려진 것처럼 매덕스는 구속은 빠르지 않았지만[18], 다른 모든 부분이 압도적이었다. 특히 그의 장점으로 꼽히는 무브먼트와 제구력은 메이저리그 역사상 손에 꼽는 수준으로, 이에 따라서 역사상 가장 위대한 피네스 피쳐 중 한 명이라고 불린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그의 공격적인 피칭 성향을 고려해 파워 피쳐라고 보기도 한다.[19]
무브먼트와 제구력이 너무 압도적이어서 밀리는 점이 없잖아 있지만, 매덕스의 가장 뛰어난 장점 중 하나는 바로 심리전이었다. 심리전에 있어서 어떤 투수보다도 뛰어나서, "매덕스는 글러브 속에 수정구를 숨기고 있다"는 말까지 회자될 정도. LA 다저스 전에서 상대팀 타자의 타격을 지켜보면서 "아무래도 1루 코치 때문에 응급차를 불러야 할 것 같은데?"라는 말을 하자마자 상대 타자가 1루쪽 직선타를 날렸는데 그게 다저스 1루 코치의 가슴을 강타한 적이 있었다는 에피소드가 있다. 거기에 또 한 번은 게리 셰필드와 대결하기 전에 중견수 마퀴스 그리솜에게 "셰필드가 올라오면 내가 바깥쪽 슬라이더를 던질거야. 그러면 그 녀석은 분명히 억지로 끌어칠테고, 그러면 자네 머리 위로 날아간 공은 워닝 트랙까지 날아갈 테니 그렇게 알고 있어."라고 말했는데 셰필드는 그가 알려준 대로 그 위치 그대로 날아가 중견수 뜬 공으로 물러났다.
그렇다고 해서 이 아저씨가 떨어지는 구위를 철저한 제구랑 두뇌플레이만 가지고 버틴 건 절대 아니다. 공의 빠르기보다는 움직임에 초점을 두었을 뿐, 구속이 빠르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일반적인 강속구 투수들보다 구위가 휠씬 뛰어났다. 밑의 클립을 보면 매덕스의 구위가 엄청나다는 것을 실감하게 될 것이다.
매덕스의 스타일을 한 마디로 요약하면 극한의 효율이다. 매덕스의 목표는 삼진을 잡는 것이 아니라 일부러 범타를 유도하여 투구수를 아끼는 효율적인 피칭을 하는 것이었다. 볼넷을 주는 것을 끔찍하게 싫어하여 스트라이크존을 피해가는 소극적인 승부를 하지 않았고[20] 심지어 탈삼진을 위한 최소 3번의 투구조차 낭비로 여겼다. 그래서 매덕스는 일반적인 투수들이 던지는 탈삼진 유도용 레퍼토리인 포심 패스트볼과 커브, 슬라이더(본인 말로는 커터라고 한다) 등 브레이킹볼 계열의 공은 거의 던지지 않았다. 커브는 유망주 시절에 이미 빅리그 급으로 평가받았을 정도로 좋은 구질인데 실제 경기에선 구사율이 3~5% 였고, 슬라이더도 가장 많이 구사했던 2004년 컵스때 구사율이 8.1%였을 정도로 적게 던졌다.
대신 매덕스는 전체 투구의 대부분을 범타 유도용 구질인 변형 패스트볼과 오프스피드 피치로 도배했다. 덕분에 전성기의 매덕스는 초월적으로 많은 이닝을 던지고도 당대의 다른 에이스들에 비해 그리 많은 투구수를 기록하지 않았다. 183cm, 77kg의 야구선수로서는 작은 체격이기 때문에 이랬다는 것이 정설. 팀 린스컴이 자신의 체격(180cm, 77kg)을 망각하고, 셀프 혹사를 하면서 구위를 쥐어짜내다 6년 만에 하락세를 탔다.
여하튼 투구수도 적은데, 구태여 작은 체격으로 구속을 쥐어짜낼 필요도 없었기에 투구폼도 몸에 무리가 가지 않아 많은 이닝을 무리없이 소화해낼 수 있었고, 부상 위험이 높은 빠른 포심이나 브레이킹볼을 거의 던지지 않았기에 부상도 거의 없었다. 사실 투구폼은 한 번 바뀐 건데, 데뷔 시즌에는 팀 린스컴처럼 상당히 와일드하게 던졌었다. 운동선수로서는 환갑의 나이인 42세까지 선수 생활을 하면서 부상자 명단은 고작 1번 밖에 오르지 않았다. 그렇다고 매덕스가 탈삼진을 못 잡는 투수였냐면 그것도 아니다. 최전성기인 92-98시즌에는 리그 탈삼진율보다 높은 탈삼진을 기록했다.
매덕스의 주무기는 무브먼트가 끝내주는 투심이다. 말년인 파드리스 시절에는 구속과 구위는 많이 줄었지만 그래도 공의 위력이 엄청나다. 상대 타자가 아예 배트를 뻗을 생각도 못하고 허무하게 한가운데 루킹삼진을 당한다.
이견이 없는 역사상 최고의 투심 패스트볼을 던진 것으로 명성이 자자했는데, '체인지업'의 페드로 마르티네즈, '커터'의 마리아노 리베라, '너클볼'의 필 니크로 정도로 한 구종을 대표하는 인물일 정도로 역사상 최고의 마구로 타자들 사이에선 악명이, 투수들 사이에선 명성이 자자했다. 보면 알겠지만 구속이 빠르지 않더라도 패스트볼 맞나 의심될 싶을 정도로 엄청난 무브먼트로 보충했기에 타자가 느끼는 구위는 웬만한 파이어볼러보다도 압도적으로 높았다. 140km/h짜리 공이라고 해서 다 같은 공이 아니다. 위 움짤에서처럼 좌타자들이 몸쪽으로 날아오는 실투나 존을 벗어난 볼로 착각하고 타석에서 몸을 뒤로 빼거나 움찔하는 사이 포수 미트에 빨려 들어가는 공으로 삼진을 잡는건 매덕스의 트레이드 마크라 할 수 있다. 이러한 마구의 비결은 매덕스의 무지막지한 손가락의 힘과 감각으로, 오승환처럼 손은 작았지만 이를 악력으로 극복한 케이스이다. 자신이 가진 신체적 장점이 손가락의 힘이라는 것을 빠르게 간파하고 나서 누구보다도 강한 손가락을 만들려고 부단히 노력했다고 한다. [인사이드MLB] 그렉 매덕스 '짧은 손가락의 기적' 전성기 시절 지저분한 공끝 덕분에 땅볼을 대량으로 유도하며 장타를 억제했고, 특히 매덕스 정면으로 가기 일쑤였는데 매덕스의 깨끗한 투구폼과 곁들어져 많은 1-4-3 더블 플레이를 양산해냈다.
실제로 매덕스를 어떤 의미에서는 파이어볼러라고 할 수 있는데, 웬만한 강속구 투수들도 불펜투수가 아닌 이상 빠른 공의 투구비율이 60% 가까이 되는 경우는 드물다. 그런데 이 양반은 비록 투심 패스트볼이기는 하지만 빠른 공의 투구비율이 무려 '70%'를 넘나들었다. # 상대팀 타자들도 매덕스가 빠른 공에 많이 의존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저 투심의 무브먼트 때문에 배트를 휘둘러도 땅볼로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 여기서 엄청난 변화를 보이며 미트로 빨려 들어가는 듯한 구질이 투심 패스트볼이다.[21]
물론 투심을 많이 던진다 뿐이지 포심 패스트볼도 당연히 던졌다. 그 외에 서클 체인지업으로 타이밍을 뺏는 피칭도 구사했다.[22]
포크볼 같은 낙차를 보이는 체인지업
매덕스의 서클 체인지업은 본인의 투심 패스트볼이 역사상 최고여서 다소 묻히긴 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연히 리그에서 손꼽히는 결정구였다. 아마추어 때부터 사용하기 시작했고 프로에 데뷔한 후에도 요긴하게 써먹으며 패스트볼의 느린 구속에도 불구하고 3000K를 넘기는데 큰 역할을 했다.
그리고 이런 강력한 구위를 지닌 투심패스트볼과 체인지업을 받쳐주던 요소가 바로 메이저리그 역사상 최고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제구력이다. 이러한 제구력 때문에 사실상 제구력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선수이자, 제구의 마술사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다. 당장 위의 움짤들만 봐도 포수의 미트에 한 치의 오차없이 딱딱 집어넣는 걸 볼 수 있다.같은 구속의 공이라도 몸쪽-바깥쪽에 따라 체감속도가 달라진다는 점에서 알 수 있듯이 제구 역시 타석에서 타자가 체감하는 공의 위력에 큰 영향을 주는 요소다. 스트라이크 존을 6분할해서 제구할 수 있었고[23] 그의 등판은 (스트라이크 존으로부터) '1인치 놀이'라고도 불렀다. 2001년에는 72.1이닝 무볼넷으로 내셔널 리그 신기록을 세웠는데[24] 무서운 것은 저 무볼넷을 끝낸 것이 고의사구였다.
패스트볼의 강력한 구위와 정교한 제구력 덕분에 생긴 매덕스의 또다른 강점은 바로 피홈런 억제력이다. 대개 구속이 느리고 무브먼트로 승부하는 투수들은 소위 공이 '안 긁히는 날'에는 홈런을 얻어 맞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러나 기복이 거의 없었던 탓에 매덕스는 피홈런 억제력도 좋았다. 커리어의 절반 정도는 메이저리그에서 손꼽히는 중립구장인 터너 필드를 홈구장으로 썼지만, 두 번째로 많이 등판한 홈구장인 리글리 필드는 타자구장이다. 이런 조건에서 양대리그 가릴 것 없이 강타자들로 넘쳐나던[25] 최악의 타고투저시대에서 5000이닝을 넘게 소화하는 동안 매덕스의 통산 HR/9은 0.63개에 불과하다.[26]
흔한 메이저리그 투수 수비 모음집이 있을 정도로 엄청난 수비 실력을 보여주는 투격수.
또한 특유의 간결하고 안정된 투구폼을 가지고 있는데 이 때문에 부상 위험도 적었고 무엇보다 수비실력도 압도적이었다. 국내 커뮤니티에서는 '투격수' 라고 불릴 정도로 내야수를 1명 더 세워 놓은듯한 수비 실력을 자랑했다. 이는 위 움짤에서도 볼 수 있듯이 투구 직후 몸이 1루 쪽으로 치우쳐지지 않고 제빠르게 상체를 세워 수비 준비 자세를 취했기 때문이다.[27] 투수 부문 골드글러브 18회 수상은 'MLB 역대 최다기록'이다[28]. 더 무서운 점은 커리어 마지막 해였던 2008년에도 수상했다.[29]
타자를 집요하게 몰아세우는 공격적인 피칭으로도 유명한데, 볼넷을 줄이기 위해서는 제구도 중요하지만 공격적인 피칭이 더 큰 영향을 미친다.[30] 주무기가 초구 스트라이크라고 말할 정도로 항상 유리한 볼카운트를 선점하여 타자를 심리적으로 몰아세운 후 범타로 처리하는 모습을 자주 보여준다. 본즈가 매덕스를 파워 피처라고 평했던 것도 이러한 점 때문. 3인방 시절 브레이브스의 투수 코치였던 레오 마조니의 말에 따르면, 매덕스가 애틀란타로 이적했을 때 자신이 투스트라이크를 잡은 후에 안타를 정말 많이 맞을 것이라고 말했고 마조니가 그 이유를 물으니 타자들이 가장 소극적인 때가 투스트라이크니까 피하지 않고 스트라이크를 던질 거라고 대답했다고 한다.
제구력부터 탁월한데 도망가는 피칭도 안하니, 당연히 매덕스의 볼넷은 줄어들 수 밖에 없었다. 볼넷이 적으니 자연히 투구수도 줄어들었고 적은 투구수 덕분에 매덕스는 부담없이 엄청난 양의 이닝을 소화할 수 있었다. 대표적인 예시를 들면, 1997년 기록한 9이닝 5피안타 1실점 '78구 완투승', 2006년 기록한 8이닝 2피안타 무실점 투구수 '68개', 2008년의 현역 마지막 정규 패넌트레이스 경기서 기록한 6이닝 2피안타 1실점 투구수 47개 등등.
전성기는 4년 연속 사이영상을 수상한, 애틀랜타에 재적할 시절인 90년대 초반부터 2001년까지인데 특히 1점대 평균자책점을 기록한 94년을 최고로 꼽는다. 파업으로 인한 단축시즌으로 25경기에만 등판하고도 202이닝(평균 8이닝)을 던지면서 16승 6패, 평균자책 1.56을 기록했다. 당시 기록한 ERA는 1968년 밥 깁슨의 1.12, 1985년 드와이트 구든의 1.53에 이어 라이브볼 시대 이래 세 번째로 낮은 기록이다.
레오 마조니가 한 번은 시즌 개막 후 석 달동안 단 한 번도 마운드로 올라가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다보니 워낙 심심했던 매덕스가 일부러 마조니를 마운드로 불렀고, 바비 콕스는 코치를 불러달라는 걸 보고 무슨 문제가 생긴줄로 알았다고 한다. 마조니 코치와는 그냥 이야기를 나눈 적도 있다.
무브먼트가 뛰어난 공이 한참 멀어보이는 바깥쪽이나 몸쪽으로만 아득바득 들어오지, 수싸움도 잘해, 그렇다고 결정구와 변화구를 치자니 그 것도 무브먼트가 장난이 아니야, 볼넷도 안줘. 배트를 안 내면 삼진이고 휘두르면 땅볼이 되는, 정말 타자 입장에서는 환장할 수 밖에 없었던 투수. 국내에서 알려진 것과는 달리 구위는 다소 떨어지지만 절묘한 컨트롤과 두뇌플레이로 버틴 피네스 피처는 같이 애틀랜타의 황금시대를 이끌었던 좌완 톰 글래빈이 더 알맞고, 매덕스는 속도를 제외한 파워 피처의 스타일과 구위, 그것을 뒷밤침하고 실행 가능한 피네스 피처의 두뇌 모두를 갖춘 투수였다.
말년에는 구위가 떨어져서 빗맞아도 구위가 좋지 않다 보니 장타를 허용하는 일이 잦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은퇴 시즌까지 매년마다 200이닝에 육박하는 피칭을 보였으며 4점대 초반의 ERA, 1.20대의 WHIP를 보였다. 웬만한 프론트라인 4선발 급이다. 매덕스에게는 이게 부진한 피칭이라는 것이 놀라울 정도이다.
흔히 톰 글래빈은 거울에 비친 매덕스[31]라는 말 때문에 두 사람의 피칭 스타일이 비슷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아래의 매덕스에 대한 설명이나 톰 글래빈 문서를 보면 알겠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 느린 구속[32]과 정교한 제구력은 공통점이지만 매덕스는 스트라이크 존에 공을 공격적으로 집어넣고, 글래빈은 바깥쪽 스트라이크 존을 절묘하게 활용하여 여우 같이 상대를 요리하는 능력이 탁월했던 투수로서 피칭 스타일에서 대조적인 모습을 보여줬다.[33]
자신이 던졌던 구종들의 그립을 설명하시는 교수님
마쓰자카 다이스케에게 한수 지도하시는 교수님. 커리어 말년인데도 공끝의 움직임이 정말 엄청나다. 거기에 다이빙 캐치도 보여줬다.
매덕스의 위대함을 잘 정리해놓은 글을 읽고 싶다면 여기를 참고해보자
브레이브스 시절 매덕스의 전담 포수는 30홈런도 쳤던 하비 로페즈가 아닌 에디 페레즈였다. 매덕스의 경우 포수에게 공을 받을 때의 동작으로 포수에게 다음 공이 무엇인지 알려주는 습관이 있었다. 예를 들면 공을 받을 때 백스텝으로 물러나면서 글러브 낀 어깨쪽으로 받으면 다음 공은 우타자 몸쪽 높은 패스트볼 이런식으로. 그런데 하비 로페즈는 이런거 잘 기억 못하고 에디 페레즈는 잘 기억해서 페레즈를 전담포수가 된거라고. 실제 매덕스는 포수의 사인대로 공을 던지지 않기로 유명했다. 하비 로페즈에 따르면 직구 사인을 냈을 때, 체인지업이 날라오는 경우가 많았으며, 심지어 94년 스프링 캠프 때 매덕스가 던진 (다른 사인의) 공에 손가락 약지가 부러진 적도 있었다. 매덕스가 포수의 사인과 다른 공을 던지는 이유는 타자와의 빠른 승부를 선호하는 그로서는 포수의 사인에 고개를 흔드는 그 시간 조차 아깝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실제 하비 로페즈는 사인과 다른 공이 올지도 모른다는 긴장감을 늘 가지고 있었다고 한다.[34]
5. 매덕스는 강속구를 던질 수 있었는가?
데뷔 초기인 컵스 시절 매덕스의 구속에 대한 논쟁이 국내 MLB 팬들 사이에 종종 벌어지곤 했었다. 매덕스 하면 느린 공으로 마법처럼 타자를 잡아내는 이미지인데 '천하의 매덕스도 초창기에 빠른 공을 던지던 투수였다 카더라~'라는 주제는 그 시절의 매덕스를 보지 못했던 팬들에게 상당히 흥미로운 떡밥거리였기 때문.사실 매덕스의 전성기 시절의 평균 구속 데이터가 있으면 논쟁의 여지가 없겠지만, 아쉽게도 팬그래프에서 평균 구속 데이터는 2002년 이후부터 제공하기 때문에 간접적인 증언으로 알아보는 수밖에 없다.
ESPN의 시니어 라이터 Jerry Crasnick의 칼럼에 따르면 10대때(고등학교 시절로 여겨짐) 그렉 매덕스는 도리어 더 세게(직역하자면 더 열심히) 공을 던졌던 바, 92, 93마일을 던졌다고 한다. 이와 관련해서 설명을 조금 더한다면, 그렉 매덕스는 고등학교때 오버스로에서 3쿼터로 팔의 각도를 내리면서 포심보다는 투심을, 구속보다는 무브먼트를 중요시하는 투수가 되었다. 때문에 도리어 고등학교 시절의 구속이 약간 더 빨랐을 가능성도 없지 않다.
# 그렉 매덕스가 95마일을 던지진 않았지만 92마일을 던질 수 있었으며, 구속이 감소하기 전 그의 구속은 20-80스케일 기준으로 55-60 정도 되었다는 증언이 있다. 하지만 그렉 매덕스의 활약 시대를 감안하면 20~80스케일 기준 55~60점이라 해도 90마일 미만으로 여겨진다.
이와 관련해서 그렉 매덕스의 초창기 스카우팅 리포르를 실제로 살펴 본 바, 평균 구속은 87~88마일 즈음이었던 것으로 여겨진다.
1984년에 작성 된 스카우팅 리포트는 그렉 매덕스가 무브먼트가 아주 좋은 86~89마일 정도의 패스트볼을 꾸준히 구사하는 것으로 되어 있는데, 당시 메이저리그 평균구속이 86마일 전후였다.[35] 때문에 평균 86~89마일에 무브먼트가 굉장히 좋은 그렉 매덕스의 패스트볼이 실제로 20~80스케일 기준 60점 정도에 해당하는 점수를 받았다.
또한 메이저리고 데뷔 시즌이었던 1986년 스카우팅 리포트에서는 88마일 정도의 패스트볼을 구사하는 것으로 되어 있었다. 1987년 스카우팅 리포트에서는 패스트볼이 20~80 스케일 기준 50점에 해당하는 점수를 받았는데, 당시 메이저리그 평균이 86마일 전후, 85~87마일 정도 였음을 감안하면 당시 그렉 매덕스의 구속이 그렇게 빠르지 않았음을(지금의 관점으로 봤을 때에) 짐작할 수 있다. 1990년 스카우팅 리포트에는 그랙 매덕스의 구속이 플러스급으로 언급되어 있는데, 20~80스케일에서는 60점이 플러스급에 해당하는 점수, 이는 메이저리그 평균 범위에서 약간 높은 쪽을 의미한다.
당시 메이저리그 평균이 85~87마일로 여겨지던 시절, 때문에 그렉 매덕스는 충분히 메이저리그 평균 또는 평균 이상, 20~80 스케일에서 50~60점 정도를 받을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 기준에서 보면 90마일에 못 미치는 평균구속, 평균 87~88마일 정도였던 것으로 여겨진다. 1999년 NLDS 1차전에 선발로 등판했을 때의 그렉 매덕스의 패스트볼 평균 구속도 실제 이 정도였다.
그렉 매덕스의 마이너리그 시절부터 전성기까지를 기준으로 보면 당시 기준으로 구속이 느린 투수는 아니었다. 평균 또는 평균 보다 약간 빠른 수준이었다. 하지만 메이저리그 평균 구속이 해가 갈수록 빠르게 상승하고 있었던 것에 반해 그렉 매덕스의 구속은 빨라지지 않았기에[36] 1990년대 후반 또는 2000년대 초반 즈음에는(국내야구팬들이 박찬호를 통해서 메이저리그를 본격적으로 접하게 된 시점) 구속이 평범한 투수 또는 구속이 느린 투수로 여겨지게 되었으며, 2000년대 초반을 지나면서 실제로 구속이 눈에 띄게 느려지는 구속의 하락이 진행 된 바, 빌 제임스 핸드북에서도 메이저리그에서 공이 가장 느린 선발 투수 리스트에 등장한다. 일례로 2002년[37] 그렉 매덕스의 평균구속은 85.8마일이었으며 은퇴 직전에는 83.7마일까지 하락했다. 반면 1980~1990년대에는 평균 87~88마일 정도를 유지했던 것으로 여겨진다.
물론 저 당시 20-80 스케일에서 60 정도를 받을 수 있으므로 아주 느린 공의 피네스 피처라고 보기는 힘들다. 오히려 평균보다는 빠른 공을 던진 것. 지금 시점에서 패스트볼 20-80 스케일이 60 정도면 평속 90마일대 초중반, 최고 구속 90마일대 중후반 정도의 패스트볼을 던질 수 있는 것인데, 거기에 메이저리그 역사에 남을 수준의 무브먼트까지 곁들여진 것이므로 언터처블이었다.
정리하자면, 매덕스의 구속이 정말로 심하게 느렸는지에 대한 대답은 '아니오', 그렇다고 빨랐냐면 그 또한 '아니오'이다. 하지만 그렇기에 매덕스는 위대한가?에 대한 대답은 '네'로 귀결되는 것이다. KBO 리그로 비유하자면 장호연이나 차명석 스타일이라고 할 수 있겠다.[38]
6. 은퇴 이후
은퇴 이후 2011년까지 시카고 컵스의 단장 보좌로 일했고 2011년 말 테오 엡스타인과 제드 호이어가 시카고 컵스로 온 뒤 형을 따라 텍사스 레인저스로 옮겼다. 메이저와 마이너 투수들의 피칭을 개선시키는 일을 하고 있다. 2012년 8월에는 다르빗슈 유의 투구 폼 교정에도 나섰다고 한다. 그 덕분인지 다르빗슈의 볼질이 줄어들었다. 2014년에는 다르빗슈에게 "그에게 한계란 없다"며 극찬했다. #한편, 2013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미국 대표팀의 투수 코치직을 맡게 되었다.
2016년 2월 2일 라울 이바녜즈와 함께 LA다저스 야구운영부분사장특별보좌라는 직책을 맡게 되었다.
2016년 7월 16일부로 본인의 아들 체이스가 소속 되어있는 네바다 대학교 야구팀에서 투수코치로 활약 하게 되었다.
그렉 매덕스를 그린 최훈 카툰
2023년 시즌 시작 전 텍사스 레인저스의 특별 인스트럭터로 복귀하여 정반대 성향의 제이콥 디그롬과 얘기를 나누고 유망주 잭 라이터에게 코칭을 했다.
7. 명예의 전당 입성
연도 | 득표율(%) |
2014 | 97.2 |
결국 백지표를 던진 기자가 나오기도 했는데 그중 한 명이 MLB.com 로스앤젤레스 다저스 전담 기자인 켄 거닉[40] 이 그 주인공. 거닉의 논리는 상큼하기 그지 없는데 '난 스테로이드 시대 뛴 선수는 그 누가 되었든 표 안 줄 거임'이다. 그래서 거닉이 표를 준 사람은 잭 모리스뿐이다. 이 논리가 얼마나 병맛인가 하면 그 시절 뛰었던 모든 선수를 다 약물 복용자로 생각하겠다는 말과 똑같다. 매덕스뿐만이 아니라 톰 글래빈, 프랭크 토마스 같은 선수들까지. 그걸 떠나서 애초에 이게 헛소리인게 잭 모리스의 커리어는 1994년까지 이어진다는 것. 그래서 결국 그가 표를 준 잭 모리스도 PED 시대를 뛴 선수다.
게다가 야구계의 내부 사정을 선수나 코칭스탭 못지 않게, 아니 더 잘 알아야 하고 알 수 있는 기자인데 90년대 당시에도 이미 선수들 사이에서 쉬쉬하며 알려지던 약물 문제를 그때는 언급도 않더니 이제와서 개드립이냐는 의견도 많다.
결국 켄 거닉은 모든 야구 평론가, 기자, 팬들에게 죽도록 까였다. 야구계에 거닉의 편은 거의 없다. 켄 로젠탈이 '병신같은 의견이긴 하지만 그가 그 한 표를 행사할 수 있게 만든 그의 경력은 존중받아야 하며 일단 그 권리를 얻은 이상 그는 자기 의견을 표현할 수 있다' 라고 말 한 게 그나마 실드에 가까운 발언.
그리고 현지시각 2014년 1월 8일 발표된 명예의 전당 투표 결과 97.2%를 얻으며 첫 턴 입성이 확정되었다. 97.2%의 득표율은 당시[41] 입성 당시 기준으로 역대 8위에 오르는[42] 기록이며 투수로 한정할 경우 톰 시버(98.84%)와 놀란 라이언(98.79%)에 이은 3위의 기록이었다.
명예의 전당 투표에서 매덕스에게 표를 주지 않은 것은 거닉만이 해당되는 것이 아니다. 결국 매덕스는 16표를 얻지 못했으며,[43] 같은 투표에서 톰 글래빈도 91%에 머물렀다. 켄 거닉 같이 답이 안 나오는 이유로 투표하지 않는 케이스도 물론 있겠지만, 첫해 투표를 거부하는 보수성이나 투표율에 따른 은근한 우월 문제도 끼어 있어서 어차피 100%는 안나올 것이라는 평가가 지배적이었고, 실제로 구현되었다. 이것에 대해서 비난이나 이유 없는 보수성이라고 까는 것은 무의미한 일[44]이고, 흥미요소로만 보고 넘기는 것이 명예의 전당 투표를 제대로 즐기는 법일 것이다. 1년 100%로 헌액된 선수가 15년차 75%도 실패해서 원로위원회로 헌액된 선수보다 무조건 위대하다라고 단언할 수 있느냐하면 그건 또 아니올시다라는 것이 야구라는 스포츠[45]이고, 선수를 바라보는 관점일테니까.
명예의 전당 입성시 애틀랜타 브레이브스의 모자를 쓸거라고 예상되었는데, 이를 뒤엎고 팀 로고가 없는 모자를 쓴다고 한다. 이유는 데뷔팀인 시카고 컵스와 전성기 시절 팀인 브레이브스 어느 한쪽만을 선택할 수 없어서라고. 현지 애틀란타 팬들은 난리가 났지만 정작 주인공인 매덕스는 느긋한 분위기라고 한다.
7.1. 명예의 전당 통계(Hall of Fame Statistics)
블랙잉크 | 그레이잉크 | HOF 모니터 | HOF 스탠다드 | |
그렉 매덕스 | 87 | 336 | 254 | 70 |
HOF 입성자 평균 | 40 | 185 | 100 | 50 |
- JAWS - Starting Pitcher (10th):
career WAR | 7yr-peak WAR | JAWS | |
그렉 매덕스 | 106.8 | 56.3 | 81.6 |
선발투수 HOF 입성자 평균 | 73.9 | 50.3 | 62.1 |
8. 여담
- 별명으로 교수(the Professor)와 마스터(Master)가 있다. 운동 선수라기 보다는 학자 타입의 외모, 제구력과 수싸움으로 타자들을 제압해간 피칭 스타일에서 붙은 별명으로, 이 별명은 이후 로이 할러데이, 클리프 리가 이어 받게 된다. 또다른 별명으로는 본명에서 유래한 미친 개(Mad dog, 매드 독). 국내에선 (마)덕수 옹.
- 매덕스의 커리어 말년이었던 파드리스 시절 일화다. 어느날 매덕스가 트레이닝 룸을 지나가는데 전설중의 전설이 지나가자 모두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쳐다봤지만 감히 말 한 마디 건넬 수 없었다. 팀의 규칙 중 하나가 "절대로 그렉 매덕스한테 직접 말 걸지 말 것, 특히 루키들이라면 더더욱!"이었기 때문이다.[46] 그렇게 트레이닝 룸을 지나 카페테리아에 갔던 매덕스가 다시 지나가자 루키 하나가 불쑥 말을 걸었다: "그렉! 당신은 위대한 투수죠, 미래의 명전 입성자고요. 그런데 왜 1루 주자를 묶는 것은 잘 못하죠?" 룰을 어긴 것도 모자라 감히 대선배를 도발하는 멘트를 날린 것인데, 매덕스가 돌아서서 '뭐야 이 X신은'이라는 표정을 지었고 트레이닝 룸 분위기는 갑분싸 되었다. 이윽고 매덕스는 트레이닝 룸 전체를 스윽 훑어보더니 그 루키에게 이렇게 물었다: "2루를 훔친 녀석들의 득점 확률이 어느 정도인지 알아?" 아무도 대답이 없자 매덕스가 말했다: "30%야." 그리고 루키를 싸늘하게 쳐다보더니 이렇게 말했다: "그게 평균이지. ...그런데 난 평균이 아니야." 너무나도 간지나는 우문현답에 트레이닝 룸은 탄성과 환호성으로 뒤집어졌고, 매덕스는 그대로 가던 길을 갔다.[47]
- 매덕스의 커리어 하이 시즌은 4년 연속 사이 영 상을 받은 시즌 중 마지막 두 시즌인 1994~1995년으로 평가받는데, 하필 이 때 파업이 있었던지라 기록에서 좀 손해를 봤다. 근데 그 손해를 본 성적도 그야말로 탑클래스인지라... 풀시즌이었으면 페드로 마르티네스의 1999~2000년에 비견되는 성적이었을 거라는 평가를 받는다.
-
이분의 에이전트는 그 유명한
스캇 보라스였다. 역대 보라스의 오프시즌 거래 중 가장 충격적인 거래로 꼽힐만한 사례가 매덕스에게서 나왔던 바 있다. 2002년 시즌 종료 후 매덕스는 FA가 되었는데, 당시 보라스는 14년 연속 200이닝 투구 기록이 2002년 ⅔이닝 차이로 마감된 매덕스의 FA 재수 의지를 감안하여 브레이브스의
연봉조정 신청을 받아들이며 보다 상승한 연봉으로 1년 재계약에 합의, MLB FA 시장을
충공깽으로 몰아넣은 전례가 있다. 다만 2003년 시즌 성적이 2002년보다 더욱 하락해서 FA 재수에 성공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하지만 톰 글래빈을 놓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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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역시절 가끔씩 꼼수를 부렸는데,
흙으로 투구판을 은근슬쩍 덮고 투구했다고 한다(...). 2018년 9월 20일, 양키스의 보스턴전 홈경기때, 데이브 오브라이언과
데니스 에커슬리의 해설중 회상된 일화다. 6회말 1아웃 상황 (오후 9시 45분)
에커슬리: 저거 보세요. 투구판이 흙범벅인걸 이용해 릴리스 포인트를 최대한 좌측으로 끌고 가네요. 보면 제대로 밟고 있지도 않아요.
오브라이언: 돈 서튼이 쓴 요령중 하나죠. 또 누가했는지 아세요? 그렉 매덕스요.
에커슬리: 진짜요?
오브라이언: 가끔씩 썼어요. 상대 타자 입장에선 91마일이 갑자기 95마일로 바뀌는 느낌이었죠.(웃음)
에커슬리: 아... 그래도 그러면 안 되죠. 부정투구죠, 그건. 저 정도 실력이면 그러지 않아도 됐을텐데요?
오브라이언: 어우... 말도 안 되게 잘 던졌죠.
* 마크 맥과이어 등 장타자들 덕분에 야구의 인기가 치솟았지만, 덕분에 투수들이 묻혀버린 것을 유쾌하게 풍자한 나이키의 광고를 찍었다. 매덕스와 함께 출연한 건 톰 글래빈.[48] 물론 현재는 맥과이어의 약물 복용 사실이 알려지며 평가가 역전되었다.[49]
- 구속은 느리지만 치기 힘든 특이한 공을 던져서 그런지 여러 창작물 주인공들의 모티브가 된다. 대표적으로 네이버웹툰인 위닝샷!의 주인공 안시윤의 모티브가 그렉 매덕스이고 공식은 아니지만 여러 스타일을 종합해봤을때 다이아몬드 에이스의 주인공인 사와무라 에이준도 구속은 형편 없지만 타자가 치기 힘들고 무브먼트가 강한 더러운 공을 던진다는 점, 어디가서 꿀리지 않는 멘탈로 타자와 하는 심리전까지 그렉 매덕스가 생각나게 한다.[50]
- 은퇴 후 커리어를 시작한 시카고 컵스와 전성기를 보낸 애틀랜타 브레이브스에서 그의 번호인 31번을 영구결번으로 지정했다. 시카고 컵스에서는 퍼거슨 젠킨스와 공동 영구결번인데, 퍼기는 명예의 전당에 입성할 때 컵스의 모자를 썼음에도 당시 매덕스가 31번을 달고 있었기 때문에 매덕스가 은퇴하고서야 공동 영구결번이 되었다.
- 키는 182cm으로 현재 MLB 선발투수의 평균키인 193cm은 물론, 매덕스가 뛰던 당대 MLB 선발투수 평균키인 188cm에도 크게 모자란다. 야구선수로서 장점이라곤 하나도 없을거 같은 체격조건이지만 몸꽝이어도 성공할수 있다는 사례를 보여주었다. 본인도 투수의 신체조건에 대해서 그다지 신경 쓰지 않는다고. 다저스 시절 팬들과의 온라인 인터뷰에서 메이저리그에서 성공하기 위해 신체조건이 중요한가라는 질문을 받자 빠른 공의 로케이션이 되고 구속만 조절할 수 있다면 키가 크든 작든 상관없다고 답한 적이 있다. 다저스 팬들과의 온라인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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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천재답게 좀 특이한 면이 있는지 컵스에 콜업된 2006년에
류제국은 샤워하는
케리 우드 뒤에서 소변을 보면서 킬킬 웃는 괴팍한 장난을 치는 매덕스를 보고 충격 먹은 적이 있다고 한다.
케리 우드가 황당해서 벙쪄있으면 그 거 보고 또 낄낄 웃었다고 한다.[51] 그외에도 경기가 끝난 뒤 몇 몇 선수들이 식사 중인 클럽하우스 식당 테이블을 한꺼번에 모두 뒤엎고 좋다고 웃는다거나 기자들이 서류를 잔뜩 가지고 이동하고 있으면 그 걸 손으로 쳐서 떨어뜨리고 좋아라 하는 모습을 봤었다고. 거기다 웬만한 악동들도 상상하기 힘든 장난을 쳤다. 그 중 손 꼽히는 장난은 동료의 유니폼을 화장실로 가져가서 그 위에 오줌을 싸고 다시 그 동료의 라커에 쳐박아두는 등의 추잡한 장난들까지...[52]
톰 글래빈과 치퍼 존스가 밝힌 그렉 매덕스의 역겨웠던 장난질
정말 천재와 또라이는 종이 한장 차이인가
- 심지어 구단에서 선수들 먹으라고 도넛을 여러개 구비해두면 그 도넛들을 죄다 한입만 베어 먹은 채로 두는 장난을 쳤다도 한다. 물론 다른 선수들은 이를 알고도 레전드인 매덕스에게 아무말도 못했다고.
- 그래도 성격 자체는 좋으며 봉중근의 회고에 의하면 자신을 너무 챙겨줬다고 한다. 애틀란타 시절 메이저리그 풋내기 봉중근이 샤워장에서 투구폼에 대해 묻자 샤워하던 중에도 친절히 폼을 그리며 직접 시범을 보여줬다고.
- 하지만 한번 화를 내면 불같은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류제국이 MLB에서 직접 겪은 일화 중에는 이런 일도 있다고 한다. 류제국이 손가락 욕 먹은 사연(기사 하단부에 관련내용)
* 가장 상대하기 쉬운 타자로 배리 본즈를 뽑았다. 이유는 그냥 출루시키면 되니까 머리 쓸 이유가 없어서. 참으로 매덕스다운 이유다. 위 동영상의 1:09:19 부터.
아 근데 그거 알아요? 실제로는 배리 본즈가 세상에서 제일 던지기 쉬운 타자와도 같았어요. 왜냐면 그냥 출루시키면 되거든요. (청중 폭소) 그 친구는 다른 어떤 타자들보다도 훨씬 뛰어난 타자였어요. 싸움도 골라가면서 해야죠. 아웃 27개를 잡는데 누구를 잡을 건지 알아야죠. 그게 배리 본즈가 되진 않을거란 말이죠. 그래서 나머지 8명을 고르면 되는 거고, 그런 식으로 싸울 수 있어요."
- 같은 동영상의 다른 부분에서는 상대하기 껄끄러운 타자가 팀마다 한두 명씩은 꼭 있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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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니 그윈에게는 상당히 약했다. 후술할 말을 한 적도 있을 정도이다.
가끔 공의 회전을 읽어내는 타자들이 있습니다. 릴리스 포인트의 차이로 구종을 알아내는 타자들도 있고, 커브볼 특유의 손을 떠나는 순간의 떠오름을 포착하는 타자들도 있죠. 하지만 투수가 공의 속도에 변화를 줄 수 있다면 그 어떠한 타자라도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맙니다. 인간의 눈으로는 그걸 구분하는게 불가능한 일이거든요. 딱 한 명, X 같은 토니 그윈 빼고요.
Sometimes hitters can pick up differences in spin. They can identify pitches if there are different releases points or if a curveball starts with an upward hump as it leaves the pitcher’s hand. But if a pitcher can change speeds, every hitter is helpless, limited by human vision. Except, for that fucking Tony Gwynn.
- 앞에서 언급된 바와 같이 정교한 제구로 투구수를 줄이면서 많은 이닝을 소화하여 적은 투구로 완봉승을 달성한 경험이 많다. 2019년 5월 7일 류현진이 9이닝 93개의 투구로 완봉승을 달성하자 "매덕스"를 달성했다는 현지 언론의 보도를 보건대, 이미 그의 이름은 9이닝을 100개 미만의 투구로 완봉승을 달성하는 용어로 사용되고 있다 MLB.com에 공식적으로 올라올 정도다. # 제이슨 루크하트라는 기자에 의해 고안되었으며, 투구수를 정확히 기록하기 시작한 1988년부터 추적한 바 매덕스는 이런 업적을 통산 14회 달성했다. 그 다음으로 많이 기록한 선수가 고작 7회 달성했으니 매덕스라는 이름이 붙어도 손색이 없다. #
- 2021년 월드시리즈 5차전에서 시구를 하였다.
- 90년대 후반까지는 안경을 착용한 야구선수로 유명했지만 99년 시즌 렌즈착용을 하려다가 불편함을 느껴 시력교정수술을 받았다.
- 시카고 컵스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컵스 프런트가 매년 연초 열리는 컵스 컨벤션에 초대했지만, 그는 한번도 초대에 응하지 않았다.
- 세이버매트리션 연구의 시작점이 된 선수이기도 한데, 98년까지 2점대에 극강의 탈삼진을 자랑했던 선수가 99년에는 평균자책점이 무려 3.57까지 치솟았기 때문. 매덕스도 "나는 열심히 땅볼유도를 했는데 왜 안타가 되었는지 모르겠다."고 인터뷰할 정도.
9. 연도별 성적
탈삼진 부분을 제외한 나머지 성적들이 압도적이라는 것을 볼 수 있다. 최근 MLB에서 에이스로 불리는 투수들의 커리어 하이 성적을 밥먹듯이 찍었다. 특히 압권은 1992년부터 1998년까지 7시즌 연속으로 fWAR 7 이상을 찍었다는 점.그렉 매덕스의 역대 MLB 기록 | |||||||||||||||||
<rowcolor=#FFFFFF> 연도 | 팀 | G | W | L | S | HLD | IP | ERA | H | HR | BB | HBP | SO | WHIP | ERA+ | fWAR | bWAR |
1986 | CHC | 6 | 2 | 4 | 0 | 0 | 31 | 5.52 | 44 | 3 | 11 | 1 | 20 | 1.774 | 74 | 0.4 | 0.0 |
1987 | 30 | 6 | 14 | 0 | 0 | 155⅔ | 5.61 | 181 | 4 | 74 | 4 | 101 | 1.638 | 76 | 1.5 | -0.4 | |
1988 | 34 | 18 | 8 | 0 | 0 | 249 | 3.18 | 230 | 13 | 81 | 9 | 140 | 1.249 | 114 | 3.7 | 5.2 | |
1989 | 35 | 19 | 12 | 0 | 0 | 238⅓ | 2.95 | 222 | 13 | 82 | 6 | 135 | 1.276 | 129 | 3.7 | 5.0 | |
1990 | 35 | 15 | 15 | 0 | 0 | 237 | 3.46 | 242 | 11 | 71 | 4 | 144 | 1.321 | 119 | 5.1 | 4.0 | |
1991 | 37 | 15 | 11 | 0 | 0 | 263 | 3.35 | 232 | 18 | 66 | 6 | 198 | 1.133 | 116 | 5.8 | 3.5 | |
1992 | 35 | 20 | 11 | 0 | 0 | 268 | 2.18 | 201 | 7 | 70 | 14 | 199 | 1.011 | 166 | 7.0 | 9.1 | |
<rowcolor=#FFFFFF> 연도 | 팀 | G | W | L | S | HLD | IP | ERA | H | HR | BB | HBP | SO | WHIP | ERA+ | fWAR | bWAR |
1993 | ATL | 36 | 20 | 10 | 0 | 0 | 267 | 2.36 | 228 | 14 | 52 | 6 | 197 | 1.049 | 170 | 7.5 | 5.8 |
1994 | 25 | 16 | 6 | 0 | 0 | 202 | 1.56 | 150 | 4 | 31 | 6 | 156 | 0.896 | 271 | 7.4 | 8.5 | |
1995 | 28 | 19 | 2 | 0 | 0 | 209⅔ | 1.63 | 147 | 8 | 23 | 4 | 181 | 0.811 | 260 | 7.9 | 9.7 | |
1996 | 35 | 15 | 11 | 0 | 0 | 245 | 2.72 | 225 | 11 | 28 | 3 | 172 | 1.033 | 162 | 7.8 | 7.2 | |
1997 | 33 | 19 | 4 | 0 | 0 | 232⅔ | 2.20 | 200 | 9 | 20 | 6 | 177 | 0.946 | 189 | 8.0 | 7.8 | |
1998 | 34 | 18 | 9 | 0 | 0 | 251 | 2.22 | 201 | 13 | 45 | 7 | 204 | 0.980 | 187 | 7.5 | 6.6 | |
1999 | 33 | 19 | 9 | 0 | 0 | 219⅓ | 3.57 | 258 | 16 | 37 | 4 | 136 | 1.345 | 126 | 5.6 | 3.2 | |
2000 | 35 | 19 | 9 | 0 | 0 | 249⅓ | 3.00 | 225 | 19 | 42 | 10 | 190 | 1.071 | 153 | 7.2 | 6.5 | |
2001 | 34 | 17 | 11 | 0 | 0 | 233 | 3.05 | 220 | 20 | 27 | 7 | 173 | 1.060 | 146 | 6.3 | 5.2 | |
2002 | 34 | 16 | 6 | 0 | 0 | 199⅓ | 2.62 | 194 | 14 | 45 | 4 | 118 | 1.199 | 159 | 4.0 | 4.4 | |
2003 | 36 | 16 | 11 | 0 | 0 | 218⅓ | 3.96 | 225 | 24 | 33 | 8 | 124 | 1.182 | 108 | 3.6 | 1.3 | |
<rowcolor=#FFFFFF> 연도 | 팀 | G | W | L | S | HLD | IP | ERA | H | HR | BB | HBP | SO | WHIP | ERA+ | fWAR | bWAR |
2004 | CHC | 33 | 16 | 11 | 0 | 0 | 212⅔ | 4.02 | 218 | 35 | 33 | 9 | 151 | 1.180 | 110 | 2.6 | 3.2 |
2005 | 35 | 13 | 15 | 0 | 0 | 225 | 4.24 | 239 | 29 | 36 | 7 | 136 | 1.222 | 104 | 3.3 | 2.9 | |
<rowcolor=#FFFFFF> 연도 | 팀 | G | W | L | S | HLD | IP | ERA | H | HR | BB | HBP | SO | WHIP | ERA+ | fWAR | bWAR |
2006 | CHC/ LAD | 34 | 15 | 14 | 0 | 0 | 210 | 4.20 | 219 | 20 | 37 | 0 | 117 | 1.219 | 109 | 4.3 | 3.1 |
<rowcolor=#FFFFFF> 연도 | 팀 | G | W | L | S | HLD | IP | ERA | H | HR | BB | HBP | SO | WHIP | ERA+ | fWAR | bWAR |
2007 | SD | 34 | 14 | 11 | 0 | 0 | 198 | 4.14 | 221 | 14 | 25 | 6 | 104 | 1.242 | 97 | 3.9 | 2.6 |
<rowcolor=#FFFFFF> 연도 | 팀 | G | W | L | S | HLD | IP | ERA | H | HR | BB | HBP | SO | WHIP | ERA+ | fWAR | bWAR |
2008 | SD/ LAD | 33 | 8 | 13 | 0 | 0 | 194 | 4.22 | 204 | 21 | 30 | 6 | 98 | 1.206 | 92 | 2.4 | 0.5 |
MLB 통산 (23시즌) |
744 | 355 | 227 | 0 | 0 | 5008⅓ | 3.16 | 4726 | 353 | 999 | 137 | 3371 | 1.143 | 132 | 116.7 | 104.8 |
10. 둘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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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즌 | <rowcolor=#000> 1위 | 2위 | 3위 | ||
2000년 | 랜디 존슨 | 톰 글래빈 | 그렉 매덕스 | |||
2001년 | 랜디 존슨 | 커트 실링 | 맷 모리스 | |||
2002년 | 랜디 존슨 | 커트 실링 | 존 스몰츠 | |||
2003년 | 에리크 가녜 | 제이슨 슈미트 | 마크 프라이어 | |||
2004년 | 로저 클레멘스 | 랜디 존슨 | 로이 오스왈트 | |||
2005년 | 크리스 카펜터 | 돈트렐 윌리스 | 로저 클레멘스 | |||
2006년 | 브랜든 웹 | 트레버 호프먼 | 크리스 카펜터 | |||
2007년 | 제이크 피비 | 브랜든 웹 | 브래드 페니 | |||
2008년 | 팀 린스컴 | 브랜든 웹 | 요한 산타나 | |||
2009년 | 팀 린스컴 | 크리스 카펜터 | 애덤 웨인라이트 |
}}}}}}}}} ||
11. 관련 문서
[1]
랜디 존슨과 동률.
[2]
투타 통틀어 MLB 역대 최다 골드글러브 수상자이다. 야수 최다 골드글러브 수상자는
브룩스 로빈슨의 16회 수상
[3]
실제로 매덕스는 무려 1988~2004년까지 15승 이상을 거두었다.
[4]
최후의 300승 투수는
랜디 존슨이다. 300승은 현재
일말의 가능성이라도 남아 있는 투수가 존재하지만, 350승은 갈 수록 선발 투수의 이닝이 감소하고 있는 현대 야구의 추세상 절대 불가능하다.
[5]
사이 영 상 역사에서 4년은 고사하고, 3년 연속으로 수상한 선수도 이 둘 말고 전혀 없다. 그
페드로 마르티네스도 1998년에는 나머지 연도에 비해 성적이 떨어진 데다가 하필 그 해
약켓이 약빨이 잘 든 바람에 4년 연속 수상은 못했다. 그나마 최근에 4년 연속 수상에 가까웠던 투수가
클레이튼 커쇼였다. 2012년
R.A. 디키의 수상으로 끊기지 않았으면 2011~2014년 연속 사이 영 상 수상이라는 대기록을 매덕스와 존슨을 이어 기록할 수도 있었다.
[6]
흔히 매덕스와 함께
글래빈과
스몰츠를 꼽는데, 이 둘 역시 1990년대 최고의 투수로 평가받음을 고려하면 매덕스가 얼마나 위대한지를 알 수 있다.
[7]
아버지가
스페인에 주둔중인
미국 공군 출신이었기 때문이다. 미국 프로레슬러 출신 정치인
글렌 제이콥스도 이 때문에 출생지가
스페인
마드리드이다.
[8]
메이저리그의 명 투수코치로 이름이 알려져 있다.
[9]
물론 드래프트 순위는 매덕스에 비해 한참 밀렸던 6라운드 지명이다. 이쪽은 매덕스보다도 평균 구속이 느렸기에 지명에서 매덕스에게 밀린 것이다.
[10]
특히 1991년에는 37경기를 선발로 등판했는데 매덕스의 이 시즌 이후 단일 시즌 37경기를 선발등판한 투수는 없다.
[11]
1992~1995년
[12]
이 때 애틀랜타의 프론트라인 선발진이 잘 알다시피
톰 글래빈,
존 스몰츠, 스티브 에이버리였는데, 부상으로 단명한 에이버리를 제외하면 이 셋은 모두 명예의 전당에 입성했다.
[13]
1989년 10월 17일 3차전이 시작하기 30분 전에
샌프란시스코 지진이 일어났다. 캐스터였던
앨 마이클스는
팀 맥카버와 함께 이 때 중계를 맡기로 예정되어 있었는데,
ABC에서 생중계하기로 되어 있었는데, 지진으로 인해 검은 화면이 나오다가 라디오로 나오게 되었고, "자기 중계 인생에 있어서 가장 화끈한 오프닝이 될 거 같다."고 말했다. 인류 역사상 최초로 실시간 생중계된 대지진인 셈이다.
[14]
자신의 컵스 시절 은사인
돈 짐머 감독이 수석코치로 재직했다.
[15]
뉴욕 양키스는 1년 전인 1998년 월드시리즈에서 샌디에이고 파드레스를 상대로 4연승으로 우승했는데, 2년 연속으로 싹쓸이 우승을 해낸 것이다.
[16]
(최고)구속(Velocity)과는 다른 개념으로, "이번엔 한가운데에 투심을 던져야겠다"라는 판단을 아주 빠르게 내리고 바로 실행으로 옮긴다는 '판단을 내리는 속도' 정도로 보면 된다. 실제로 매덕스의 투구폼은 80마일 중후반대 투심 던지는 선수가 맞나 싶을 정도로 굉장히 빨라서 타이밍 뺏는 데는 도사였다. 그러니까 싸움닭 그 자체. 커리어 내내 도망가는 피칭 조차 흔치 않다. 그러한 마구에 필적하는 수준인 매덕스의 공을 유난히 잘 치기로 유명했던
토니 그윈도 특히나 투 스트 상황에서는 매우 빠르다고 증언할 정도였다.
[17]
매덕스가 피네스 피처, 즉 맞춰잡는 투수의 대명사격인 투수지만 그의 피칭 스타일은 서술했듯이 싸움닭에 가까운 파워 피처였다. 너무나도 빠른 투구 판단에 그것이 오차없이 바로 날아오니 타자는 무의식적으로 반응해버리면서 좋은 타구가 아닌 땅볼이 나오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에 아이러니하게도 피네스 피처처럼 돼 버린것.
[18]
주자 견제 역시 장점으로 부각되지는 않았었는데, 이는 매덕스 본인이 루상의 주자에 대해 그다지 신경쓰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게 가능했던 것은 본인이 주자를 홈에 들이지 않을 자신이 있었기 때문인데 덕분에 발빠른 주자가 나가서 투수를 흔드는 플레이에 영향을 받지 않았다.
[19]
매덕스가 파워 피쳐라는 말은 저 위에 본즈가 얘기했듯이, 구속은 빠르지 않아도 제구력이 출중했고 무브먼트가 너무 좋아서 구위가 압도적이었기 때문에 어느 정도 일리가 있는 말로 여겨지기도 한다.
[20]
매덕스의 스트라이크 비율은 70%에 육박한다. 반면 전형적인 피네스 피쳐인 톰 글래빈은 스트라이크 비율이 60% 초반대이다. 매덕스가 괜히 피네스 피쳐인 척 하는 파워 피쳐라는 소리를 듣는 게 아니다.
[21]
강속구를 잃었던 텍사스 말년의 박찬호가 땅볼유도용으로 열심히 써먹었던 투심 패스트볼 역시 긁히는 날은 Maddux-like라는 소리를 듣곤 했다. 그러다가 구속이 회춘한 필라델피아-다저스 시절에는 다시 포심을 주무기로 삼았지만. 은퇴 직전인 NPB와 KBO에서도 가끔 무브먼트 하나는 어지간한 국내투수들 쌈싸먹는 투심을 던지곤 했다.
[22]
톰 하우스가 매덕스에게 들은 바에 의하면, 전성기 시절 매덕스가 경기 후반 승부처에서 구사했던 레퍼토리는 안쪽 체인지업-바깥쪽 체인지업-안쪽 속구 조합으로 항상 동일했다고 한다. 심지어 타자들 역시 그 조합을 다 알고 있었지만 초구나 2구에 타자의 방망이를 나오게 만들면 3구째에는 어김없이 타자를 유격수나 2루수 땅볼로 처리할 수 있었다고 한다.
[23]
평소에는 4분할, 컨디션이 좋은 날은 6분할까지 가능했다고 한다. 존을 9분할해서 던진다는 것은 그야말로 만화 또는 게임에서나 가능한 일이고, 대부분의 투수들은 2분할(바깥쪽, 몸쪽)이 고작이며 제구 좀 된다는 투수들이나 존을 3분할해서 투구할 수 있다. 메이저에서 제구로 인정받는 잭 그레인키, 류현진 등이 최상의 컨디션일때 4분할 투구를 할 수 있다.
[24]
양대리그 통합 기록은 1962년 아메리칸 리그 소속인
캔자스시티 로열스의 투수 빌 피셔의 84.1이닝 무볼넷
[25]
매덕스가 전성기였던 시절 내셔널리그에는
배리 본즈와
새미 소사,
제프 배그웰,
토니 그윈이 버티고 있었고 특히 본즈, 배그웰, 그윈을 자주 상대해야 했다.
[26]
라이브볼 시대 투수들 중에서 매덕스보다 더 많은 이닝을 소화했고 통산 HR/9도 낮은 투수는 매덕스와 정확히 정반대의 투구 패턴을 가진
놀란 라이언 뿐이다. 라이언은 통산 5386이닝을 소화하는 동안 HR/9은 0.53개를 기록했다.
[27]
현역 선수 중에서는
제이크 오도리지가 이러한 케이스.
[28]
2위는
브룩스 로빈슨으로 16회
[29]
골드글러브 단골들이 다 그렇듯이 매덕스의 경우에도 네임밸류 문제로 수상에 있어 논란이 된 적이 있지만, 나이 마흔에
세이버메트리션들의 투표로 결정되는 필딩 바이블 어워드에서 투수 부문 초대 수상자로 결정되며 그 논란을 잠재웠다.
[30]
매덕스와 마찬가지로 역대급 제구력을 가졌던 글래빈이 통산 볼넷은 매덕스보다 500개 가까이 많은 것도 바깥쪽만 집요하게 던지는, 상대적으로 소극적인 피칭스타일 때문이었다. 물론 둘 다 헛스윙을 많이 유도해내긴 했다만, 루킹삼진 비율은 매덕스가 압도적이다.
[31]
매덕스는 우완, 글래빈은 좌완 투수.
[32]
다만 그렉 매덕스의 커리어 동안 평균 포심 구속은 80마일 후반대로, 팬그래프에서 투수의 구속에 대한 자료를 처음으로 제시한 2002년의 선발 투수 패스트볼 평균 구속인 88.6마일에 비해 엄청나게 느린 정도는 아니다. 일례로 KBO에서 80마일대 중후반 정도 나오는 선수들이 구위가 좋으면 불펜투수로 활용되는 경우도 왕왕 있다. 활동시기가 80년대 말~90년대 위주라면 이 간극은 더 좁혀질 수도 있다. 매덕스도 입단 초기에는 93마일까지 던졌다고는 하는데, 본인의 신체조건이 그런 빠른공을 던질 정도로 좋은 체격(183cm ,77kg)도 아니고, 성적도 별로 안 나오다 보니, 커리어를 본격적으로 쌓았던 시기로 미뤄봐서는 80마일 후반대 보다는 확실히 느렸을 것으로 추측된다. 매덕스의 강점은 포심에 맞먹는 투심의 구속이라는 점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즉, 빠른 변화구를 활용할 수 있는 선수였기에 느린 체인지업으로 경기를 평정했던
제이미 모이어 같은 선수와는 다른 유형이며, 정확하게는 포심의 구위는 다른 에이스급 투수들에 비해 뛰어나지는 않지만 패스트볼 계열인 투심을 자주 던져 다른 투수들 보다 상대적으로 느린 구속으로도 타자를 제압하는 유형의 투수로 보는 것이 맞다. 확실한 건 구속이 타팀 에이스들 보다 느린 구속인 건 맞지만, 그렇다고 엄청 느린 건 아니라는 것이다. 물론 현대 야구에서 140km/h 정도는 느린 구속이 맞긴 하지만, 140km/h 초반대도 못 던지던 모이어나 글래빈와 비교할 수준은 아니다.
[33]
다음의 기사를 보면 종래의 생각도 근거가 있다. 매덕스는 스트라이크 존의 구석구석을 파고드는 절묘한 컨트롤로 타자를 농락시키는 투수이다. 문제는 여기에서 시작된다. 스트라이크 존의 심판은 기계가 아닌 사람이 한다. 경기 당일 어떤 심판이 어떻게 볼 판정을 하느냐에 따라 경기의 판도가 달라질 수 밖에 없다. 매덕스는 바로 이 점을 교묘하게 이용한다. 그는 초반 3이닝을 던진 후 타자 일순할 쯤부터 조금씩 옆으로 자신의 스트라이크 존을 넓혀가며 타자와 심판을 교란시킨다. 즉, 공 한 개나 반개 정도가 빠지는 식의 자신 만의 스트라이크 존을 만들어간다. 여기에는 매덕스라는 대 투수의 이름에 걸맞은 경기를 진행시키기 위한 심판의 봐주기 논란이 있었고 타자들은 당연히 불만을 가질 수 밖에 없었다.
토니 그윈이 그의 컬럼에서 이런 점을 강력하게 비난하였다.
[MLB] 무결점 에이스, 그렉 매덕스 그런데 그윈은 매덕스를 만날 때마다 잘만 두들겼고 매덕스도 그윈을 상대하기 굉장히 껄끄러워 했다. 근데 이 건
박찬호나
류현진도 "특정 존에다 몇 번 던져보고 스트 안 주면 그 존은 포기하고, 스트 주면 거기를 유용하게 활용하라."고 할 정도로 심판과도 알게 모르게 심리전을 해야한다는 얘길 한 적이 있다.
[34]
하비 로페즈가 사인대로 던지지 않은 이유를 묻자 "네놈의 머저리 같은 리드 때문에 타자 타이밍을 맞춰줄 생각은 없어"라며 욕설을 했다는 일화가 있다.
[35]
그래서 100마일을 우습게 꽂는
랜디 존슨의 등장은 리그에 큰 충격으로 다가온 것이다.
[36]
100마일을 우습게 던지는
랜디 존슨은 매덕스 보다 키가 20cm 크고 쓰리쿼터에 딜리버리까지 뛰어난 루피 같은 팔을 지닌 파이어볼러 버전의 매덕스였다. 매덕스와 비슷한 시기, 또는 매덕스와 비슷한 시기에 등장한 선수들 중에 매덕스 보다 늦게 콜업된 투수들에게서 파이어볼러들이 나오기 시작하더니, 매덕스는 점차 느려져 보일 수 밖에 없었고, 90년대 중반으로 가면서 매덕스는 확실히 평균 이하의 구속이 되었던 것.
[37]
팬그래프가 메이저리그 투수들의 평균구속 정보를 제공하기 시작한 시점이다.
[38]
특히 차명석은 포지션은 선발이 아니었지만, 당대 KBO에서는 뛰어난 수준의 제구력으로 '차덕스'라는 별명이 붙었다.
[39]
게다가 이 선수들은 모두 청정이었기에 성적이 청정 선수들에 비해 좋은 경우가 많았던 약쟁이들까지 포함시키면 더욱 헬게이트이다. 물론 약쟁이들이 정말로 청정 선수들을 뚫고 명예의 전당에 갈 확률은 드물다.
[40]
류현진의 흡연에 대해 비판하거나 NLDS의 부진을 부상이라고 계속 우기는 기사를 내서 한국 사람들에게 안 좋은 의미(...)로도 유명한 기자이다. 정작 그가 깐 류뚱은 데뷔첫해 15승 2점대급 성적을 내버린......
[41]
2014년 1월 8일 기준을 한다.
[42]
2014년 당시 기준으로 1위부터
톰 시버-
놀란 라이언-
칼 립켄 주니어-
타이 콥-
조지 브렛-
행크 애런-
토니 그윈-매덕스
[43]
총 571표중에서 555표를 득표했다. 이 중에서 2명은 완전히 기권이었고, 나머지 14명은 투표를 했지만 매덕스에게 표를 주지 않았다.
[44]
10명을 다 채워넣을 필요도 없는 투표에서 누구는 100% 나와야 한다는 것 부터가 말도 안되는 명제이다. 기자 개개인과의 인간관계까지 문제가 되는 것이 이런 식의 투표이다. 실제로
득표율 100%를 달성한 선수가 한명 있긴 하지만.
[45]
기준이 되는 관점, 인간성에 대한 평가, 약물 문제 등등 의외로 들여다 보면 기준이 많다.
세이버매트릭스 이후에 바뀐 시선만 고려해도, 현재는 알 수 없는 기준이 한 50년 정도 지나면 튀어나올지도 모를 일. 일례로, 역대 명예의 전당 투수 득표율 2위는 놀란 라이언이지만 라이언이 역대 2위의 투수라고 하는 사람은 전혀 없다. 반면, 14수만에 겨우 입성한 버트 블라일레븐은 세이버메트리션들 사이에서 역대 20위 이내에 드는 투수로 인정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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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VER SPEAK DIRECTLY TO GREG MADDUX. ESPECIALY IF YOU ARE A ROOK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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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2000년대 마이너리거였던 존 매든의 회고.
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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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러니하게도 이 광고의 주인공 2명의 타격은 천지차이이다. 글래빈은 실버슬러거 4회 수상에, 자신의 올스타 시즌 1개에 맞먹는 6 이상의 WAR를 타격으로 쌓았으나, 매덕스는 의외로 23년 커리어동안 타격 fWAR, bWAR 모두 1.8에 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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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래빈, 매덕스 모두
명예의 전당에 첫 턴에 들어갔지만 맥과이어는 10번 버티다 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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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사와무라는 완결기준 구속 140km/h를 찍는다. 고등학생에 좌완
사우스 포인걸 감안하면 구속도 나쁘지 않은 수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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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로 매덕스가 11살이나 많고, 입단시기로도 11년 선배다. 거기에 183cm인 매덕스와 달리, 우드는 196cm였다. 후일담에 의하면 너무 황당하다 못해 얼어버렸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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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해자(...)는
오클랜드 애슬레틱스의 1라운드로 지명되어, 말년에
애틀랜타 브레이브스로 이적해 맹활약을 하며,
내셔널리그 올스타 유격수까지 뽑혔던
콜로라도 로키스의 감독을 거쳐,
애틀란타 브레이브스의 벤치코치로 있는
월트 와이스인데, 매덕스 보다 3살이나 많지만, 입단은 1년 늦었다. 심지어 그 유니폼은 입단할 때 받은 새 유니폼이었다고 한다. 나중에 매덕스가 한 것을 알고, 상상 이상의 라이브 또라이라고 생각했다고(...) 이 에피소드는 98년에 와이스가 이적한지 얼마 안 됐을 때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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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율과 장타율이 똑같다는 말은, 피안타 모두가 단타였다는 뜻으로 장타를 아예 허용하지 않았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