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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 권재홍(權在弘) |
본관 | 안동 권씨[1] |
출생 | 1958년 12월 11일 ([age(1958-12-11)]세) |
강원도
영월군 (現 강원특별자치도 영월군) |
|
학력 |
제물포고등학교 (졸업) 서울대학교 자연과학대학 ( 생물학[2] / 학사) 한양대학교 언론정보대학원 (석사)[3] |
병역 | 면제[4] |
종교 | 무종교 |
현직 | 공정언론국민연대 이사장 |
경력 |
문화방송 보도국 사회부 기자(1982~1984) 문화방송 보도국 보도제작부 기자(1984~1987) 문화방송 보도국 경제부 기자(1987~1988 / 1988~1994) 문화방송 올림픽특집국 특집1부 기자(1988) 문화방송 보도국 경제부 차장대우(1994~1995) 문화방송 보도국 뉴스데스크제작실 제작3CP(1995.2~8) 문화방송 보도국 경제부 차장(1996~1999) 문화방송 보도국 문화과학부 차장(1999~2000) 문화방송 보도국 정보과학부 차장(2000.3~10) 문화방송 보도국 뉴스편집1부 앵커(2000.10~2002.1) 문화방송 보도국 경제부장(2002.3~2003.3) 문화방송 보도국 뉴스편집1부장(2003.3~12) 문화방송 보도국 국제부 LA특파원(2004.6~2007.5) 문화방송 보도국 선임기자(2008.3~2010.5) 문화방송 보도국 앵커(국장급)(2010.5~2012.2) 문화방송 보도본부장(2012.2~2014.3)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부회장(2013~2015) 문화방송 부사장(2014.3~2017.2)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감사(2015~2017) MBC 플러스 대표이사 사장(2017.3~2018.2) 스트레이지샐러드 고문 TV조선 시청자위원회 부위원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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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의 언론인으로, 전 MBC 부사장.2. 일생
1958년 강원도 영월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 '말하기'를 좋아하여 여러 사람 앞에서 웅변을 했고, 카세트 테이프로 학교 안팎 소식을 녹음해서 학교 방송을 통해 학생들에게 들려주기도 했다. 제물포고 시절 생물반 활동을 하여 서울대학교 생물학과에 재학했는데, 당시 학과 정원이 9명이라 유학 후 교수 보장 제의에도 불구하고 기자의 길을 택했다. 그런고로 졸업 후 1981년 문화방송 공채 기자로 입사하여[5] 수습 기간을 거쳐 1982년부터 사회부에서 뛰었고, 보도제작부에 속하던 시절엔 <한국 야생화의 사계(1984)>, <한국의 나비(1984)>, <한국의 새(1986)>, <꿀벌의 세계(1987)> 등 굵직굵직한 보도 다큐멘터리에서 리포터로 얼굴을 많이 알리며 1986년 한국기자상 방송제작부문을 받는 등 나름 관록을 쌓았고, 1987년에 경제부를 거쳐 이듬해엔 서울 올림픽을 앞두고 올림픽특집국 특집1부로 옮겨졌다가, 폐막 후 경제부로 돌아와 1990년부터 1년 동안 뉴스데스크의 증권뉴스 코너를 맡았다.뉴스데스크 권재홍 앵커의 하루 엿보기
뉴스데스크 진행도 많이 해왔는데, 평일, 주말을 합산하여 총 8년 3개월간 진행하여 진행기간으로 보자면 엄기영, 이득렬 다음가는 최장수 앵커로 기록되고 있다. 1996년 11월 16일부터 2000년 5월 7일까지 주말 진행을 맡았다.[6] 이 시절 심각한 사건사고가 많이 벌어지곤 했다.[7]
2000년 상반기에는 MBC의 흑역사이기도 한 피자의 아침 메인진행을 맡았다. 메인진행자였기 때문에 뉴스파트 외에 교양파트도 같이 맡았다.
2000년 10월 30일부터는 이인용에 이어 다시 뉴스데스크 진행을 맡다가 2001년 12월 31일 하차했다. 후임은 다시 엄기영.[8]( 앵커 발탁 당시 소감)
2002년 3월 인사 당시 경제부장으로 첫 보직간부 생활을 시작해 2003년 뉴스편집1부장을 거쳐 2004년~ 2007년에는 워싱턴 특파원을 역임했고, 2008년에는 선임기자가 되었다. 선임기자가 된 권재홍은 토요일 아침에 방송되는 경제매거진 M과 100분 토론의 진행을 맡았으나 2010년 김재철 신임 사장에 반대하는 MBC 총파업 기간에 평일 뉴스데스크를 임시로 진행하게 되었고, 총파업 종료 이후에도 자리를 유지하게 돼 파업 후 복귀한 이정민 아나운서와 고정으로 평일 뉴스데스크를 진행했다.[9]
이후 이정민 아나운서가 출산 관계로 하차하고, 2011년 4월부터 당시 주말 뉴스데스크 앵커였던 배현진 앵커가 평일 진행을 맡게 되며 2013년 11월까지 3년 동안 함께 뉴스데스크를 진행했다.
2012년 2월 전임 전영배 보도본부장이 특임이사로 옮겨지자, 자신은 보도본부장으로 승진했으며 2013년부터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부회장도 겸했다.
런던 하계 올림픽 이전이자 MBC 노조 파업이 한창 진행중인 2012년 5월 17일에는 MBC 노조원들에 의해 신체적 폭력을 당해서 입원했다는 뉴스가 위에 사진과 함께 뉴스데스크에 방송되었는데 #, 바로 다음 날에 노조 측에서 원본 동영상을 공개하면서 허위로 드러났다.[10] 그러자 권재홍은 "정신적 충격으로 입원했다"고 말을 바꾸었고, "그렇게 해서 어떻게 앵커 자리에 앉느냐"는 비웃음을 당했다. 12일 뒤에는 다시 앵커직에 앉아서 " 할리우드 액션이다"[11]라는 소리까지 나올 정도였으니...
한편 2012 런던 올림픽 기간에는 런던에서 양승은 앵커와 함께 올림픽 소식을 전해 왔다.[12] 당시 본사에서 나머지 뉴스는 부앵커인 박용찬 기자가 채웠다.
그리고 동년 10월 안철수의 논문표절 의혹 보도[13] 등 검증되지 않은 내용의 특정 정치성향 방송을 계속하였고 이로 인해 뉴스데스크는 마침내 2012년 10월 23일에 선거방송심의회의 경고 조치까지 받고 말았다.
2014년 안광한 사장 취임 직후 부사장으로 승진했다. 그러나 전임 보도본부장 전영배가 저지른 행위를 반성하기는커녕, 보도본부장으로 있으면서 그에 못지 않은 한심한 활약(...)을 했다.
2017년 2월 방송문화진흥회의 차기 MBC 사장 공모에 참가해서 김장겸 보도본부장, 문철호 부산MBC 사장과 함께 후보까지 올랐으나, 김장겸이 사장으로 선임된 뒤 MBC 플러스 사장으로 발령났다. 그러나 진보성향의 PD 출신 최승호 MBC 신임 사장이 2017년 12월에 부임한 뒤, 권재홍의 해임이 협의되어 2018년 해임되었다.
MBC 대주주인 방문진 이사장 고영주가 사장면접 때 "노조원들을 업무에 배제할 방법"을 물었고, 권재홍은 “경력기자 중에도 앵커 할 수 있는 사람이 있습니다”라 말하며 노골적으로 블랙리스트의 성과를 자랑했다.[14] # 2018년 1월 안광한-김장겸 등 전직 사장 2명, 백종문 전 부사장과 함께 '노조활동 부당개입' 혐의로 불구속 기소되었고, 2019년 1심 및 2020년 2심에서 집행유예 선고를 받았다.( 연합뉴스 기사, 2018고합3 및 2019노808) 그러다가 2024년 윤석열 정부의 설날 특사에 포함되어 복권되었다.
이와는 별개로 퇴임 후 스트레이지샐러드 고문, TV조선 시청자위원회 부위원장 등을 맡다가 2023년 11월 방송통신심의위원회로부터 제22대 국회의원선거 선거방송심의위원으로 위촉되었고, 2024년 1월부터 공정언론국민연대 제2기 이사장을 맡고 있다.
3. 어록
"네, 경제를 배에 비유하자면 지금 우리 경제는 침몰 위기에 빠진 난파선과 다를 바가 없습니다. 이 배의 선장인
강경식 부총리는, "배는 뱃길로 간다"고 독배하고 있지만
배에 탄 사람들은 선장이
뱃길을 너무 모른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1997년 8월 31일 뉴스데스크 클로징 멘트
1997년 8월 31일 뉴스데스크 클로징 멘트
"오늘은 정말 입에 담기조차 싫은, 부끄럽고 참담한 소식부터 전하게 됐습니다. 경남 마산의 초등학교 손가락 절단 사건의 용의자는 바로 그 소년의 아버지였습니다."
1998년 9월 12일 뉴스데스크 오프닝 멘트.
1998년 9월 12일 뉴스데스크 오프닝 멘트.
"네, 세계 최강대국 미국의 본토가
테러 만행에 유린당했습니다.
누가 저지른 범죄인지? 그
이유는 무엇인지? 과연 미국은
전쟁 불사로 나갈 것인지?"
2001년 9월 12일 특집 뉴스데스크 오프닝 멘트. 테러 한 달 만에 미국-아프가니스탄 전쟁으로 이는 현실이 되었다.
2001년 9월 12일 특집 뉴스데스크 오프닝 멘트. 테러 한 달 만에 미국-아프가니스탄 전쟁으로 이는 현실이 되었다.
4. 수상 경력
- 제18회 한국기자상 보도제작부문 (1986, 한국의 새)
- 제22회 백상예술대상 TV 비극부문상 (1986)
- 제38회 한국방송대상 개인상 앵커부문 (2011, MBC 뉴스데스크)
- 제9회 한국참언론인대상 방송경영부문 (2013)
5. 방송 진행
- MBC 뉴스데스크
- 주말 진행 (1996년 11월 16일 ~ 2000년 5월 7일 / 2001년 1월 6일 ~ 2001년 1월 7일) - 이 때는 주로 1997년 외환 위기가 한창이던 시기로 그 문서로 가 보면 권재홍의 젊은(?) 시절 얼굴을 볼 수 있다.
- 평일 진행 (2000년 10월 30일 ~ 2001년 12월 31일 / 2010년 4월 5일 ~ 2013년 11월 15일)
- 피자의 아침 (2000년)
- 선택 2004 (2004년 4월 15일)
- 일자리가 미래다 (2009년 2월 21일)
- 경제매거진 M (2007년 8월 23일 ~ 2010년 5월 15일)
- MBC 100분 토론 (2009년 12월 3일 ~ 2010년 5월 13일)
6. 참고/관련 자료
- <MBC 가이드> 1997년 7월호 인터뷰 '주말 <MBC 뉴스데스크>의 앵커 권재홍: 토크 쇼를 꿈꾸는 유쾌한 신세대 앵커' p58~60.( #1, #2)
- <MBC 가이드> 2000년 11월호 '가이드 초대석: <MBC 뉴스데스크> 앵커 권재홍' p54~57.( #1,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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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부정공파 34세손이며, 출처는
안동권씨종보 제 496호다. 아들 1명과 며느리, 손녀가 1명 있다고 한다.
[2]
現 생명과학과
[3]
사건사고 뉴스와 시청률과의 상관관계 연구: MBC와 KBS 저녁 9시 뉴스를 중심으로(2001)
[4]
시력이 좋지 못해서 군복무를 하지 못했다.
참조
[5]
1983년 사회부 기자 시절 취재한 MBC 뉴스센터 영상이 MBC Archive에 있는데, 해당 리포트의 소재는
개고기에 관한 실태고발이다.
[6]
같은 시기 평일 뉴스데스크를 진행한
이인용은 권재홍보다 1살 많음에도 1년 후배다.
[7]
심지어 이인용 앵커가 휴가를 간 1997년 8월 첫째 주에 대타로 진행하던 중에는
대형 여객기 추락 참사가 벌어지기도 했고, 평일 앵커이던 2001년에는
세계 초강대국이
반인도주의적 테러에 희생된 사건이 벌어지기도 했다.
[8]
권재홍이 경제부장으로 보직이동하면서 당시 보도본부장이던
엄기영이 특임이사로 승진했으며, 동시에 뉴스데스크 진행을 2002년 1월부터 사장으로 승진하던 2008년 2월 1일까지 담당했다.
[9]
2010년 10월 5일 뉴스데스크 40주년 방송에서는
김국진에게 뉴스데스크 초대 앵커 박근숙 앵커와 "나이 차이가 얼마 되지 않아 보인다"는 쓴 소리를 듣게 되었다.(...)
[10]
2013년 1심 및 이듬해 2심에서 법원은 정정보도하라고 선고했으나 2015년 대법원이 "일부 과장이 있긴 하나 허위로 보기는 어렵다"며 파기환송시켰다가, 2016년 2월 18일 서울고등법원 파기환송심에서
반론보도 판결이 내려져 3월 11일이 돼서야 뉴스데스크에 반론보도문이 올라오게 된다.
[11]
실제로 이때 권재홍이 얻은 별명이 허리우드인데, 헐리우드 액션의 헐리우드와 허리가 wood(나무)처럼 약하다는 뜻의 중의적 표현이었다.
[12]
다른 사람도 아니고 보도본부장이 직접 나갔을 정도로 당시 파업으로 인한 후폭풍이 컸다.
[13]
2018년 MBC 정상화위원회 측은 이를 '사실상 조작'이라 규정했고, 해당 뉴스를 보도한 현원섭 기자는 이로 인해 해고되었다가 소송에서 승소하여 복직했다. 정상화위 규정 이후 안철수 측도 해당 기자를 처벌해달라고 서울서부지방검찰청에 진정서까지 냈으나 2020년 1월, 검찰 측은 '고의/비방 목적으로 보기 어렵다'고
소견을 밝혔다.
[14]
실제로 그해 6월부터 주말 뉴스데스크를 맡은
천현우 기자는 2012년 파업 이후 들어온 경력기자 출신으로 구 여권에 편향된 기사를 다수 작성한 인물로 알려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