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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 군북면 郡北面 | Gunbuk-myeon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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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60a82f><colcolor=#ffffff> 광역자치단체 | 경상남도 | ||
기초자치단체 | 함안군 | ||
행정표준코드 | 5400027 | ||
관할 법정리 | 17리 | ||
하위 행정구역 | 38행정리 127반 | ||
면적 | 80.42㎢ | ||
인구 | 5,911명[1] | ||
인구밀도 | 73.50명/㎢ | ||
정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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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북면사무소 |
1. 개요
경상남도 함안군의 면이다.위치상 함안군의 북쪽이 아닌 서쪽에 있음에도 ‘군북’이라 명명된 이유는 함안군청 공식 지명 유래 참고. 군북청년회의 유래는 산군(山群)이 겹쳐져 있어서 군복이던 것이 군북이 되었다고 기재되어 있는데, 함안군청 자료를 보면 청년회 쪽이 다소 와전된 것으로 보인다.
한편 충청북도 옥천군, 충청남도 금산군에도 각각 군북면이 있다. 참고로 옥천군에는 군서면도 있다. 다만 여기는 문자 그대로 각 군의 해당 방향에 있어서 붙은 이름들로, 함안 군북과는 유래가 다르다.
1.1. 상세
조선시대~구한말까지는 그냥 진주 근처의 작은 고을에 불과했으나 일제강점기를 거치며 의령을 비롯한 경남 내륙으로 들어가는 교통의 요지로 뛰어오른다. 자세한 상황은 군북역 문서 참조.함안군 내에서 남강과 적당히 떨어져 있고, 전체적으로 북향임에도 불구하고 방어산과 면 내 여러 구릉지가 북풍을 막아주는 안온한 기후 덕에 농업생산력이 좋은 지역이다. 구 군북역이 있던 중암리나 현재의 새로 이설된 새 군북역 인근에는 샘물이 펑펑 솟아나오고 수질도 좋다. 그러다보니 까마득한 석기시대, 청동기 시대부터 사람이 살던 지역이라 역 근처에는 고인돌이 보이고 산자락을 팠다 하면 삼국시대 유물이 우수수 쏟아져나온다. 이런 생산력 덕에 일제강점기에는 천석꾼 부자가 있었으며 그가 곧 효성그룹 창업주인 조홍제다.[2] 맑은 샘물은 증기기관차가 현역이던 시절 수자원 공급이 용이하여 옛 군북역 남쪽에 급수탑이 있었다.[3]
장지리, 월촌리, 원북리 등 북부와 서부 지역은 원래 죽남면이었으나, 1933년 죽남면 전체가 군북면에 편입됐다. 죽산의 남쪽에 있다고 하여 죽남이란 이름이 붙었으며 과거 함안군 일대가 남강 범람원이던 시기의 교통상을 잘 보여준다. 즉 현재의 군북면시무소 소재지인 중암리 북부의 벌판(남산벌)은 모두 늪지대였고, 조선시대에는 군북면 서부의 고만고만한 골짜기 안의 취락 주민들은 구릉지 기슭을 따라서 지나다녔는데, 이게 딱 죽남면 영역이다. 다만 현재도 조선시대 그대로 오솔길 내지 우마차도 정도만 남아있어서 차량통행은 힘들다. 예컨대 명관에서 죽산으로 가려면 원북, 하림, 수곡을 지나 야트막한 고개를 두 개나 넘어야 한다. 해발고도는 불과 100미터도 안 되는 구릉지지만, 과거였으면 멧돼지나 살쾡이 같은 맹수를 조심했어야 하는 험한 길이다. 게다가 이 골짜기 반대편에는 나병 환자 집단거주지도 있었다. 따라서 일제강점기에 건설된 철도와 신작로를 따라 교통이 이어졌고 이런 교통취락 발전과 변화로 죽남면은 군북면 쪽으로 병합된 것이다.
6.25 전쟁 당시에는 마산 전투의 주요 전장이 되기도 했다. 미군에 의해 근처 대도시인 마산의 이름이 붙었지만 실제 가장 치열한 전장이 된 곳은 군북면 남쪽의 서북산, 여항산, 방어산 일대의 낙남정맥 산자락이다. 이 당시 여항산 자락에 있던 신라 고찰인 의상대와 쌍둥이 절이던 원효암이 포화로 인해 전소되고 말았다. 의상대는 다행히 살아남아 옛 건물이 전해져오고 있으며 원효암은 1950년 불탄 뒤에도 1983년에 화재를 또 겪어서 2005년에야 복구되었다. 현재도 군북 읍내에서 남쪽으로 쳐다보면 깜깜한 산중턱에 전깃불이 하나 켜 져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6.25 이후에도 교통의 요지로서 번성했는데, 군북에서 의령으로 넘어가는 정암교가 1955년 개통되었기 때문이다.[4] 의령을 관문으로 합천읍, 생비량면, 쌍백면 등 중부경남 북서부는 군북역이 관문이었다. 이런 성장세는 1970년대에 정점을 이루어 군북 시장통에는 미곡을 사고파는 쌀전이 10군데나 있었고 면소재지인데도 보건지소 외에 간단한 외과수술이 가능한 의원급 병원도 2개나 있었다. 면내 초등학교는 중심부의 군북초등학교(1921년 개교) 외에도 국민학교가 6곳 더 있었다는 것,[5] 군북역도 아닌 원북역에서 1981년 승하차 객수가 연간 5만 명 단위였다는 데서 당시의 인구를 짐작할 수 있다. 이는 현재로 치면 웬만한 신도시 내 1개 택지지구와 맞먹는다. 1988년까지 사용하던 구 우편번호도 교통의 요지에 부여되는 3자리 우편번호[6]를 당당히 부여받았고 당시에는 군청소재지인 가야읍조차 군북면 우편번호에 가지번호를 더한 5자리였다.[7]
이후 1990년대부터 2015년까지는 대한민국에 산재한 일반적인 면들과 큰 차이가 없었다. 마산시외버스터미널에서 군북을 거쳐 수곡/하림, 혹은 오곡으로 가는 버스가 하루에 서너 번씩 다니고, 군북역에 무궁화호가 하루에 예닐곱 번 정차하고, 인구는 인근의 마산시로 계속 빠져나가고(...)
한편으로 이렇게 동네가 죽어가는 와중에도, 인터넷 태동기인 1990년대 후반 ~ 2000년대 초반 가야읍내에도 10Mbps급 랜선이 깔려있을 때에 군북면에는 100Mbps급 랜선이 깔려있었다.
2015년 제39보병사단이 군북면 소포리에 이전해오며 상황이 바뀌었다. 면소재지와 사단이 얕은 하천 하나를 두고 있는 만큼 상주 군인으로 인한 주변지역 개발로 인해 동네가 전성기만큼 활기를 띠게 되었다. 같은 사단본부가 소재한 전방지역 기준으로 원통보다는 크고 연천군, 인제군, 양구군 보다는 좀 작다. 그리고 차 타고 10분만 나가면 함안군청 소재지인 가야읍 읍내가 있다.[10] 거기에 경전선 군북역은 모든 무궁화호의 정차역이라 기차타고 마산역까지는 30분도 안 걸린다.[11]
39사단 함안 이전 부지(정확히는 사단본부대)에 원래 있던 동네 이름은 순한글 지명인 "붕듸미", "새내미(새남이)"이다. 붕듸미와 새내미 사이에는 봉림이란 촌락도 있어서 세 개의 마을이 한 골짜기 안에 군락을 이루고 있던 얕고 넓은 골짜기였다. 참고로 사단 정문 앞 삼거리 있는 동네 이름도 순한글 지명인 "에낄"이다. 서류상으로는 동촌리, 소포리에 걸쳐 있어서 외지 사람들은 잘 모르는 부분이다.
덧붙여 가야읍 쪽으로 79번 국도 따라 고개 넘어가는 쪽, 함안대 골프장 옆동네가 소포리 촌락이다. 그래서 현재 사단이 소포리에 주둔중이라고 하지만 군북 토박이들은 사단본부 있는 동네를 아무도 소포라고 생각 안 한다(...) 현재는 군북면 소포리의 대부분 지역이 사단 사령부에 들어가 있는데, 사실 이는 군북면 인구가 줄면서 인근 동리들이 행정상으로 죄다 그나마 인구가 있는 소포리에 통합되어버렸기 때문이다.
또한 현 군북역 위치의 행정 주소가 동촌리이지만 실제 역은 신창리에 붙어있디. 현재 군북면에서 중심을 이루던 동네들은 그 수많은 동리들(대암리(턱골), 지두리(오장골), 덕촌리, 신창리, 중암리. 안도리, 죽산리, 덕대리 등등)이 중암리, 덕대리 단 2곳으로 통합되어 있다. 소포리와 동촌리(새동네, 동촌, 서촌)는 사실 군북 중심가 동네도 아닌 외곽 지명인데 면사무소와 장터가 있는 중암 동네에서 하천을 경계로 딱 잘라서 에낄, 붕듸미, 새내미는 소포리에 통합되었다. 또한 군북초등학교 있는 동네인 덕촌과 신창은 덕대리로, 그 바로 밑의 신 군북역은 상술한 바와 같이 동촌리로 통합되었다.
예전에는 군북면 소재지에서 현 79번 국도 외에도 가야읍 서남쪽(신음리, 파수리)으로 통하는 길이 하나 더 있었는데(봉수로), 한동안 우마차 비포장도로였다가 1990년대말 드디어 2차선 포장도로로 개장했다. 그러나 2015년 부대 사령부 이전과 함께 이 구간이 사령부 부지를 정중앙으로 통과하게 되어서, 일반 차량은 통행이 불가능해지게 되어 지금은 옛날로 도로 돌아간 모양새이다. 즉 자동차가 가야읍으로 넘어가려면 국도를 통해 사단본부 부지를 우회해서 고개를 넘어가야 한다. 참고로 동촌리(새동네)에서도 가야읍(신음리)으로 넘어가는 임도가 하나 있긴 한데 꽤 옛날부터 있던 길이긴 하지만 길 모양새는 그냥 차량 하나 지나갈 수준의 1차선 포장도로고, 동촌 쪽 동네 사람들 외에는 거의 모른다. 상술한 봉수로나 이 도로나 둘 다 신음리에서 만난다.
군북에서 마산으로 가는 주요 교통로는 가야읍내를 지나는 30번 지방도지만, 진전면과 진동면을 지나 마산으로 가는 1029번 지방도 역시 군북과 마산을 잇기는 한다. 군북역애서 1029번 지방도를 따라 군북면 남쪽으로 계속 직진하면 사촌리, 오곡리를 지나 상데미산(전투산)과 오봉산 사이로 꼬불꼬볼한 오곡고개를 넘어가서 창원시 마산합포구 진전면(양촌리)에서 2번 국도와 만난다. 그런데 이 길은 군북역~오곡리 구간은 거의 대부분이 2차선이 좀 안 되는데다가[12] 오곡고개 구간 몇백 미터는 아예 경운기나 SUV가 겨우 지나갈 정도의 비포장 임도이다. 고개 넘어가서 창원시 구간은 전 구간 2차선 도로로 시원하게 뚫린 것도 모자라서 최근에는 아예 골짜기 한가운데에 고속화도로까지 내놓은 것과 대비된다.
2. 교통
2.1. 도로
남해고속도로 군북IC 그리고 장지IC, 함안휴게소가 있다.일반국도는 79번 국도가 있다. 이 도로는 북쪽으로 의령으로 가며 마산,함안과 의령을 잇는 주요 교통로다.
지방도는 1011번 지방도, 1029번 지방도, 1004번 지방도. 1040번 지방도가 있다.
2.2. 철도
경전선의 군북역이 있다.3. 주요 건물, 고적지
기차역인 군북역은 구 신창리(현 동촌리)에[14], 인근에 제39보병사단 본부가 소포리에 있다.[15]명승지로는 군북면 서쪽 방어산 산자락에 있는 마애사란 절에 약사삼존불(마애불)이 있으며, 구 원북역 뒤에는 채미정이라는 정자와 조선시대 서원이던 서산서원이 있다.[16] 여항산 자락에는 신라 고찰인 원효암과 의상대라는 작은 암자가 고즈넉한 풍광을 자아내는데 여기에서 군북면 동네가 한눈에 다 들어온다.
여항산 등정은 대개 이 절에서 상데미산(전투산)으로 바로 올라가거나, 혹은 사촌리 마을 입구에서 피바위능선을 타고 오른다. 군북면에서 남쪽으로 쳐다보면 크게 자리잡고 있는 쌍둥이 모양 봉우리의 왼쪽(동쪽)이 상데미산(전투산)이고 오른쪽의 바위절벽 봉우리가 상데미봉(피바위)이다. 피바위는 2020년대 들어서는 암벽등반 연습 코스로 경남 지역 동호인들에게 알려져 있다. 이외에도 군북 동네와 가까운 곳에 백이산이란 360미터짜리 산이 크게 존재감을 뽐내는데, 39사단 간부들은 아침에 꼭대기까지 뛰어올라갔다 출근하는 등 아예 동네 앞산 취급이다(...) 이 산의 산자락에는 고성 상족암처럼 중생대 말기 시절 공룡 발자국이 찍힌 바위가 3곳 있다.[17]
함안 조씨 문중의 재실과 조홍제씨의 생가가 군북면에 있다. 특히 조홍제 생가는 군북역에서 걸어서 5분도 걸리지 않는다.
군북역 근처에는 웬 바위가 논두렁에 널려있는데 이거 전부 고인돌이다. 학계에서 부르는 정식 이름은 함안 군북면 지석묘군(支石墓群) 이라고 하는데 원래 동촌리에 27기, 덕대리에 5기 등 상당히 많은 수가 있었으나 현재는 16기 정도가 남아있고 10기는 다른 데로 이전했다고 한다. 그와중에 1기는 매몰되었다고 한다.
4. 산업
- 군북농공단지 - 1989년 설립. 군북 면소재지 동네인 지두리 인근에 조성되어 있다.
- 이외에도 2000년대말 군북IC 뒤쪽 사도리 일대 구릉지를 밀어버리고 공장부지를 새로 조성하였다.
5. 출신 인물
- 안홍준(모로리)
- 이균용(모로리)
- 이만열(대암리)[18] - 역사학자, 전 국사편찬위원회 위원장. 숙명여자대학교 명예교수.
- 이우환(명관리)
- 이태준(명관리) - 구 군북역 역사가 현재 대암 이태준 기념관이다.
- 정정길(모로리)
- 조성규(사촌리)
- 조성기(하림리)
- 조성휘
- 조용태(1871)(하림리)
- 조용호(1874)(하림리)
- 조호진(독립운동가)(하림리)
- 조홍제(신창리)[19]
- 진종삼(수곡리)
6. 관련 문서
[1]
2022년 10월 주민등록인구
[2]
현 군북역으로 가다 보면 구 도로변 덕촌리 입구에 1935년 가뭄에 함안 조씨 집안이 곡식을 풀어 구휼한 것을 기리는 송덕비가 세워져 있다.
[3]
참고로 이 냇물의 수원지는 조사해보니 현 군북역 인근의 동촌리(새동네)로 나왔다. 여기서 지하로 스며든 물줄기가 다시 중암리 근방에서 용출되는 것. 현재 구자운의원 뒤의 도랑가가 바로 옛 급수탑 샘물을 수원으로 하는 물줄기다.
[4]
현
79번 국도 정암교 옆에 있는 트러스교량.
[5]
군북국민학교, 사촌국민학교, 명관국민학교, 하림국민학교, 수곡국민학교, 유현국민학교, 월촌국민학교. 현재는 멀리 떨어진 월촌초등학교를 제외하면 전부 군북초등학교의 분교가 되었다가 모두 폐교되었고 학생들은 스쿨버스를 타고 군북초등으로 통학한다. 덕분에 1989년 당시 죽산리 살던 학생이 "니 왜 지각했노?"하고 선생님이 다그치면 "아부지가 쇠 꼴(소여물) 다 비고(베어놓고) 가라캐서예" 하던 광경은 더 이상 안 봐도 된다...
[6]
611
[7]
611-74
[8]
당시는 1032번 지방도. 1987년 당시는 현
79번 국도 구간이 1004번 지방도 번호가 부여되어 있었다.
[9]
대표적인 것이 남해고속도로의 무료 이용. 현재는 전부 폐쇄식 IC로 바뀌었지만 1990년대말까지만 해도 마산에서 군북까지는 남해고속도로를 무료로 이용할 수 있었다. 톨게이트가 진주 방면인 남강휴게소, 그리고
동마산IC 지나서 있었기 때문에 그 사이 구간은 무료로 드나들 수 있었던 것. 이는 신군부 정권의 가담자 중 하나였던 예비역 대령
정동호(함안/의령 국회의원 및 한국도로공사 사장 역임)의 지역구 편의봐주기였다는 말이 있다.
[10]
이 때문에 신병교육대 수료식 때 심심치않게 가야읍내에도 면회중인 병사와 가족들이 많이 보인다.
[11]
선형개량 전에도
비둘기호 기준으로 딱 42분 걸렸다. 그것도 중리역이나 함안역에서 한 번 교행을 거쳐서. (12시 정각 마산발 열차 기준.
통일호 특급이던 용산-진주-순천 순환열차는
산인역에 정차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보다 덜 걸렸다.)
[12]
2차선도로 정규 규격인 11미터에 미달한다. 농어촌버스가 오면 길 한쪽으로 바켜줘야 할 정도.
[13]
사실 함안은 인구 6만이 조금 넘는 군이고 양촌리 등 마산이 소속된 창원은 그래도 인구 100만이 넘는 대도시다.
[14]
행정 주소상으로는 동촌리지만 동촌 동네에서는 엄~청 멀고 사실 신창리 동네와 붙어있다.
[15]
행정구역상으로는 소포리지만 옛날 동네사람 기준으로는 훨씬 남쪽인 붕디미 내지 에낄(39사 앞 냇가 다리 있는 동네)에 있다. 소포 동네는 지금도 함안대 골프장 옆에 멀쩡하게 존속중이다.
[16]
흥선대원군 시기 서원철폐령에 의해 폐원되었으나 그 명맥은 그대로 존속. 다만 원래 명관리에 있던 건물은 6.25때 소실되고 현재의 위치로 1950년대 이후 이설하였다.
[17]
상족암과 백이산 공룡발자국 군락은 생성 연대와 원인이 비슷하다. 둘 다 중생대 시절 경상 분지의 호숫가 퇴적층에 찍힌 발자국이 지층화된 것이다.
[18]
현 행정구역으로는 덕대리.
[19]
현재의 행정구역으로는 동촌리/덕대리 경계.